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선생은 그 기백이 대륙적이었다. 그의 팔은 안으로 굽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두 팔을 있는 대로 활짝 벌려 다 내주었다”며 “선생은 상처투성이였으되 그 생채기는 쉽게 잊으셨다. 하지만 그 원한만큼은 불같은 실천력으로 재조직하는 예인이었다. 그 갓대(증거)로 구질구질하고 쩨쩨한 생각 따위는 그 티도 보이질 않았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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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철 이사장은 “2~3년 전부터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며 “2012년 ‘병은 없다’를, 최근엔 소책자인 ‘건강생활수첩’을 발간한데 이어 돌아가시기 전까지 편집을 독려한 ‘가정생활보감’은 돌아가신 바로 다음날 출간됐다. 올 1월부터 시작된 ‘생명살림 대강연회’의 제주도 강연을 휠체어에 의지해 마무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이어 그는 “나 죽거든 슬퍼하지 마라. 나는 하늘이나 어디에도 내 죄를 고할 길이 없다. 독재자처럼 굴며 너희들을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 이 모든 것 용서를 빌고 간다. 눈물 흘리지 말고 장례는 축제를 벌여라. 4일장으로 치르고 사람이 오기 편한 곳으로 장례식장을 잡아라. 지지고 볶는 음식은 하지 말고 홍어, 나물 등으로 대접하라”며 마지막 장례까지 꼼꼼히 챙겼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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