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월호인 것이다. 내가 바로 차디찬 바다로 가라앉으며 아이들의 생명을 빼앗은 ‘부실한 배’였던 거다. 그러지 않고선 목련과 벚꽃을 피우는 이 따스한 봄날의 햇살 아래서도 이리 추울 리가 없다.
2부에서 나눈 이야기는 이러했다. 뭐든지 양보하며 괜찮다고 했던 대책없는 긍정 마인드의 아이가 죽은 것이라고. 그래서 더욱더 슬프다고. 아니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괜찮지 않은 세상에 살게 해놓고선 괜찮다는 말을 하게 한 내가, 우리가, 이 사회가 죽인 것임을 알았다고. 자신의 꿈은 결코 양보하지 않았던 그 아이의 꿈을 살려주지 못한 내가, 우리가, 이 사회가 너무나 원망스럽다고. 아직 진상규명도 안됐고, 아직 아이들을 찾지 못한 이들이 있는데도 배·보상금이란 이름으로 돈을 꺼내 흔들며 “이제 그만 잊으라” 하는 ‘그들’은 대체 어떤 사람인 것이냐고, 아니, 사람이기는 한 것이냐고.
이 이야기들을 들으며 든 생각이 바로 ‘내가 세월호인 것이다’였다. 그리고 추워졌던 거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직후 학생들에게 사죄했다. 부실한 배를 방치하고 여러분들을 싣고 바다로 나가게 한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죄송스럽다고. 앞으로는 그리 살지 않겠다고. 괜찮지 않은 세상을 ‘현실’이란 이름으로,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억측으로 ‘이리 가야 해, 저리 가야 해’ 하는 어른으로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좀 도와달라고, 형편없는 어른이 되지 않게 지켜봐주고 이끌어달라고 뻔뻔한 부탁까지 했다. 선생들끼리 그런 마음을 담아 성명서란 이름의 ‘반성문’도 만들어 발표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부끄러움이, 죄스러움이 밀려왔다. 이런 저런 말로 정치와 세상을 탓하고 간혹 행진하고 광장에 나가기도 했지만, 내 삶의 현장에서 무엇을 얼마나 바꿔냈을까. 아니, 바꿔내려고 노력했을까. 여전히 더 많은 손님과 화물을 싣기 위해 평형수마저 빼낸 채 탐욕의 출항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설사 그것은 아니라고 해도 또다시 어쩔 수 없어, 괜찮아, 다들 그리 살고 있잖아 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런 물음의 형태를 취하는 것마저 비겁한 것이다. 분명 그리했다. 나는 아무것도 바꾸지도, 바꾸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은 ‘방법’을 몰라 그런 거야. 누가 방법을 알려주면 달라질 거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은 그 방법을 알고 있으면서도 혹은 달리 방법이 있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그리했다. 방법은 이문재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오래된 기도’에 있다.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되고, 꽃진 자리에서 지난 봄을 떠올리기만 해도 되고,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되는 그런 기도를 모른 척하며 딴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바로 세월호임을 알아채지 못했고, 내 자신부터 바꾸면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거다. 그래서 한 달 중 하루라도 빼서 참사를 기억할 언어와 반복하지 않게 할 대책을 뭇사람들과 함께 찾아보는 일조차 하지 않았던 거다. 그래서 또다시, 나야말로 세월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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