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30년 동안 교수로 재직했던 중앙대가 좋지 않은 일로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어 씁쓸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요즘 드러나고 있는 문제는 대체로 예상했던 일이다. 대학이 기업논리에 휘말리고 거기에 정치가 개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작금의 중앙대 사태를 살펴보면 경기도 안성에 있는 제2 캠퍼스가 문제의 핵심임을 알게 된다. 1980년대 초 서울의 주요 대학들은 정부 정책에 부응해서 제2 캠퍼스를 건설했는데, 중앙대는 안성에 자리를 잡았다.
안성 캠퍼스라고 하지만 학생과 교수들 대부분이 서울에 살았기 때문에 통학과 출퇴근이 문제였다. 1980년대 말에는 경부고속도로가 막혀서 통학과 통근이 거의 지옥과 같았다. 고속도로 확장으로 통학과 통근 문제가 다소 나아지는 듯했으나 김영삼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고 대학 신설을 준칙제로 바꾸자 각 대학의 제2 캠퍼스가 위기를 맞았다. 제2 캠퍼스는 서울에 있는 대학 정원을 묶어둔다는 전제하에 세워진 것인데, 서울에 있는 대학의 정원을 늘리고 대학 신설을 허가하면서 그 전제가 무너진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는 대학, 대학원, 학과 등 교육단위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학과는 많고 각 학과의 학생 정원은 적어서 규모의 경제가 안되지만 교수들은 전공이기주의에 안주하기 마련이다. 제2 캠퍼스가 있는 대학은 동일하거나 유사한 전공을 본 캠퍼스와 제2 캠퍼스에 중복 설치하는 등 문제가 더 많다. 2000년 전후해서 대학에는 건축 붐이 일었고 교수 1인당 학생 숫자를 낮추기 위해 교수들을 많이 채용했다. 대학 등록금이 가파르게 인상된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었다.
다른 대학의 제2 캠퍼스가 있는 경기도 안산과 수원에는 전철이 들어가서 교통문제가 해결됐지만 중앙대 안성 캠퍼스는 그런 혜택도 갖지 못했다. 이제는 안성 캠퍼스가 중앙대 발전에 있어 장애물이 되고 말았으나 교육장소를 변경할 수 없기 때문에 해결할 방법이 요원했다. 그런데 박범훈 전 총장이 이 난제를 해결한 것이다.
2008년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중앙대 총장을 지낼 때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하고 박용성 전 두산 회장을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박 이사장은 위기에 처한 중앙대를 구하기 위해 인수했다고 했는데, 인수 과정에서 박범훈 당시 총장이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이사장은 학교의 중요한 모든 행정을 직접 챙겼다. 박 이사장은 1차 대학 구조조정을 통해 교육단위를 과감하게 통폐합했는데, 무리한 부분도 있지만 방향은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흑석동 캠퍼스와 안성 캠퍼스 통합을 이루어냈는데, 거기에는 박범훈 당시 교육문화수석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이 이제 분명해졌다.
무리하게 캠퍼스 통합을 하다 보니 흑석 캠퍼스는 과부하가 걸리고 안성 캠퍼스는 공동화되는 부작용이 생겼다. 무엇보다 이 조치는 엄청난 특혜였는데, 특혜의 배후에는 항상 무엇인가가 있음이 이번에도 입증되었다. 박범훈 전 총장이 MB 정권의 실세와 교류해서 모든 일을 벌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마저 있으나 검찰이 그 배후를 얼마나 밝혀낼지는 알 수 없다.
두산이 왜 중앙대를 인수해서 운영하고자 했는지 그것 자체가 의문이다. 두산은 육영에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여하튼 두산이 중앙대의 ‘시장가치’를 높이고자 했던 것은 분명하다. 캠퍼스 통합과 학과 철폐 등 구조조정은 잭 웰치 전 GE 회장의 기업 구조조정을 연상시킨다. 기업적 관점에서 볼 때 안성 캠퍼스와 정년이 보장된 교수집단은 가장 고약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대학은 기업이 아니다. 안성 캠퍼스 문제는 중앙대가 갖고 있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그 뿌리는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해법이 쉽지 않다. 기업적 관점에서 대학을 운영해 온 두산은 이번 사태로 자체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무엇보다 중앙대는 또다시 기로에 서 있는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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