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4일 화요일

출판사와 서점, 다투지 않으려면/한국경제 서화동 문화스포츠부장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041377441

출판사와 서점들이 또다시 티격태격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개정·시행된 도서정가제가 수년째 불황에 허덕여온 대다수 출판사들을 구해주지 못해서다.

개정된 정가제는 신간, 구간을 막론하고 모든 책에 대해 할인과 마일리지 합계가 정가의 15%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이전에는 할인폭이 19%였다. 줄어든 할인폭만큼 서점들의 이익은 늘었다. 출판사들로선 얻는 게 없다. 오히려 사정이 나빠졌다. 책값에 거품이 끼었다는 인식 때문에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후 자진해서 1000~2000원씩 책값을 내린 곳이 많다.

출판사들은 줄어든 할인폭만큼의 이익 중 일부를 나누자고 서점에 요구하고 있다. 출판사들이 서점에 책을 공급하는 공급률(공급가를 정가로 나눈 것)을 올려달라는 것이다.

첫 단추 잘못 꿴 정가제

서점들은 반대한다. 개정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책 판매 가격이 올라 책이 덜 팔린다는 이유에서다. 협상이 여의치 않자 출판사가 책 공급을 중단한 사례도 있을 만큼 양측의 갈등은 심상치 않다.


1970년대 출판·서점계의 자율 결의로 시작된 도서정가제가 법으로 시행된 건 2003년 2월이다. 전자상거래 육성을 위해 온라인서점에 10% 할인을 허용하도록 출판 및 인쇄진흥법에 규정한 것. 엄밀히 말하자면 정가제가 아니라 할인을 법으로 허용한 제도였다. 2007년에는 오프라인 서점에도 10% 할인이 적용됐고, 2010년에는 경품·마일리지를 포함한 할인 폭이 최대 19%로 늘었다.

이 과정에서 서점들은 할인을 위해 출판사에 책의 공급률 인하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오프라인 서점보다 책을 싸게 팔아야 하는 인터넷 서점들로선 당연한 요구였다.

문제는 정도가 지나쳤다는 것. 도서정가제 법제화 이전에는 평균 70% 정도였던 공급률은 하락을 거듭해 50%를 밑도는 경우까지 생겼다. ‘유통 권력’이 된 대형 서점들이 공급률을 후려친다는 소리도 적잖게 들렸다. 책 시장에선 광폭 할인이 만연했다. 출판·서점업계가 자율결의 형식으로 도서정가제를 강화한 배경이다.

원인에서 답을 찾아야

시행 5개월째인 현행 도서정가제가 큰 힘을 쓰지 못하는 건 무슨 까닭일까. 편법 할인과 경품 제공 등의 허점이 많기도 하지만 정가제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초 출판계를 어렵게 한 건 공급률이다. 출판사들은 서점에 공급률 인하를 요구하지만 한 번 내려간 공급률을 다시 끌어올리기란 간단치 않다. 더구나 대형서점과의 관계에서 대다수 출판사들의 입지는 약하다.

책은 문화공공재라고 출판계는 주장한다. 하지만 공공재든 일반 상품이든 시장의 원리에 따르는 게 순리다. 가격을 통제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란 참으로 어렵고 복잡하다. 다수의 독자들에게 정가를 강요하기보다 출판계와 서점업계가 공급률을 일정 선 밑으로 끌어내리지 않기로 합의하면 어떨까. 서점이 출판사에 지나치게 낮은 공급가를 강요할 수 없도록 공급률 하한선을 법으로 정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정가제의 미비점을 공급률 제한으로 보완해도 좋을 것이다. 정가제든 공급률 하한제든 시장에 개입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왕이면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개입이 낫지 않을까.

서화동 문화스포츠부장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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