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학력 막으면 GDP 1%P 증가
무상교육 논쟁은 더 이상 무의미
교육개혁 없는 국가 경쟁력 없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무상교육 논쟁은 더 이상 무의미
교육개혁 없는 국가 경쟁력 없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 경제학자다. 우리에겐 ‘부유한 노예’ ‘슈퍼자본주의’ 등의 저서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소득 격차 문제를 집중 연구하면서 기업과 상위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통해 경제 불균형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온 인물이다.
그렇다면 그의 교육관이 어땠기에 전혀 다른 논리라고 할까. 그는 교육과 사회보장 문제만 해결되면 미국의 모든 문제가 풀린다고 주장해온 인물이다. 특히 고등교육의 신봉자였다. 미국의 산업구조상 오프쇼어링은 불가피하니 고부가가치 직업에 맞는 인력을 끊임없이 배출해낼 수 있도록 누구나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저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방법을 제시했다. 대학 진학 전에는 소득 수준에 맞춰 바우처를 지급한다. 가난하건 부자이건 똑같은 조건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학 교육도 다르지 않다. 국공립대학 등록금은 전액 무상이어야 하고, 사립대학은 정부가 대출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립대 등록금도 다 갚을 필요가 없다. 졸업생이 취직하면 자신의 연봉에서 매년 최대 10%씩만 떼어 10년간 갚으면 그만이다. 사실상 정부가 사립대 등록금도 대줘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교육을 통한 부의 승계가 사라지고, 빈부 격차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중산층이 두터워져 소비가 촉진되고, 미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순항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 라이시가 자신의 주장을 수정했다. 왜일까. 경제는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점을 뒤늦게 깨달아서다. 미국 기업들은 제조시설뿐만 아니라 창의력과 혁신의 중심이라는 연구개발(R&D) 분야까지 해외로 들고 나가기 시작했다. 하이테크 기업의 절반이 아웃소싱에 나섰다. 일터가 남아날 리 없다. 대학교육을 받아본들 고부가가치 직업은커녕 당장 먹고살 직업이 없다. 대학 졸업생 가운데 46%가 학위가 필요 없는 곳에 취직해 있다는 뉴욕연방은행의 작년 통계는 그가 블로그에 인용한 숫자다. 그뿐이랴.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기술자들이 줄어들었다. 이런 첨단시대에 미국의 전기전자 기술자 수가 10년 사이에 30%가 줄었다니 말이다. 고급 인재만 길러낸다고 경쟁력이 생기는 건 아니다. 누가 PC를 수리하고, 누가 페인트칠을 하겠는가. 라이시의 개탄이다.
라이시는 4년제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부모까지 가세해 벌이는 경쟁을 ‘미친 짓’이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대안을 제시해줘야 한다면서 세계적 수준의 직업기술 교육을 예로 들었다. 독일의 사례다. 고등교육 이수율이 29%에 불과한데도 세계 최강의 산업경쟁력을 유지하는 바로 그 시스템이다. 그는 고등학교 수학기간을 1~2년 늘려 기술자 자격증을 주거나 미국 사회에 잘 갖춰져 있는 2년제 공립대학 커뮤니티칼리지 과정을 대폭 강화하자고 제안한다. 수긍할 만하다. 개혁을 위한 재원은 부유층에 대한 증세로 해결하자는 좌파의 고약한 버릇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대학 진학률 40% 나라의 고민이 이 정도다. 진학률이 미국의 두 배인 한국은 어떤가. 청년실업률은 11%다. 젊은 층의 체감실업률이 37.5%에 이른다는 보고서도 있다. 일자리도 씨가 말랐지만 미스매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012년 추정한 대졸 과잉학력자는 무려 42%다. 지금은 그보다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과잉학력자가 대학 진학 대신 취업해 생산 활동을 한다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포인트 이상 높아질 것이라는 계산도 나와 있다. 과잉학력에 따른 기회비용은 무려 20조원에 육박한다.
그런데도 한국은 교육 개혁은 뒷전에 밀어놓은 채 무상교육과 복지 논쟁에 소일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 국가 경쟁력은 누가 고민하고 있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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