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글로벌 북 카페]佛 볼테르의 ‘관용론’, 250년만에 베스트셀러로
입력 2015-01-29 03:00:00 수정 2015-01-29 08:35:47
‘파리 테러’ 이후 표현의 자유 관심 폭발
이달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공화국 행진’ 당시 거리에 나붙었던 볼테르 초상화를 배경으로 한 ‘나는 샤를리다’ 구호. 사진 출처 콩트르푸앵
프랑스 인터넷 전자서점 ‘아마존’ 사이트나 출판 전문 잡지인 ‘리브르 에브도(Livres Hebdo)’의 베스트셀러 톱 20위 집계에서 샤를리 에브도 테러에 희생된 유명 만화가들의 유작이 6권이나 자리를 차지했다. 수년 전에 발행된 이 책들은 갑자기 늘어난 수요에 추가 인쇄에 들어갔다. ‘샤를리 에브도 1면 만평 모음집: 1969∼1981년’은 3만5000부, 스테판 샤르보니에 편집장의 만평 에세이인 ‘샤르브의 파트와’는 2만 부, 카뷔의 ‘보프 전집’은 4만 부를 새로 찍어냈다. 지난주 발행된 샤를리 에브도 생존자 특별호는 700만 부가 발행됐고, 샤를리 에브도는 5만 명의 신규 구독자가 생겼다고 한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책을 통해 희생자들에게 연대를 표하려는 프랑스 독자들의 의지”라고 분석하고 “그러나 대중이 관심을 갖는 것은 샤를리 에브도의 ‘정신’이지 ‘만평’ 자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 증거로 1763년 출판된 볼테르의 ‘관용론(Trait´e sur la tol´erance·사진)’이 250년 만에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된 기이한 현상을 들었다.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가인 볼테르(1694∼1778)의 ‘관용론’은 프랑스의 신구교 갈등 속에서 누명을 뒤집어쓰고 처형된 한 프로테스탄트 상인의 복권을 요구하면서 쓴 책이다. 교과서에나 등장하는 잊혀진 고전이었는데 1월 11일 ‘공화국 행진’ 이후 판매가 급증했다. 갈리마르 출판사는 ‘분량은 144쪽, 가격은 2유로’에 불과한 이 책을 급하게 1만 부 증쇄에 들어갔다.
책에서 볼테르가 “나는 당신이 쓴 글을 혐오한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당신에게 보장해주기 위해 나는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 말은 프랑스 공화국의 원칙인 ‘톨레랑스’와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문구가 됐다. 1월 11일 세계 45개국 정상들은 레퓌블리크(공화국) 광장에서 출발해 볼테르 대로(大路)까지 3km를 걸었다. ‘공화국’과 ‘볼테르’를 상징하는 의미의 행진이었다.
프랑스에서는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 ‘시대를 상징하는 책’이 등장하곤 한다. 2002년 봄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당수 장마리 르펜이 급부상해 사회당 후보를 누르고 결선투표까지 진출했을 때 프랑크 파블로프의 ‘갈색 아침(matin brun)’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어떤 나라에서 ‘갈색당’이 집권해 차례로 법령을 제정해 옷도, 집도, 자동차도, 고양이도 모든 것이 갈색이 됐다는 우화다. 또한 2010년 뉴욕 월가의 ‘점령하라’ 시위 당시에는 스테판 에셀의 저서 ‘분노하라(Indignez-Vous)’가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250년 전에 출간된 볼테르의 고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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