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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다큐사진가 권철 '스스로 늑대가 된 사나이'
[중앙일보] 입력 2015.01.26 05:00 / 수정 2015.01.26 07:33다큐사진가 권철과 그의 사진을 아십니까?
대중의 인기를 누리는 작가가 아닙니다. 사진가들에조차 널리 알려진 이름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를 모르는 이가 대다수이지만 적어도 일본에서의 울림은 일본을 흔들어 왔습니다. 가치 있는 일과 사람을 세상에 알리는 일, 기자가 해야 할 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노골적인 홍보는 삼가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보고 알려서 보는 이들이 선입견 없이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자의 직분을 망각(?)하고서라도 노골적으로 세상에 알리고 싶은 게 그와 그의 사진입니다.
그의 첫 번째 사진집은 2005년 발행된 『강제철거에 맞선 조선인 마을 우토로』입니다. 위기에 놓인 오사카(大阪)의 조선인마을 ‘우토로 살리기’를 이슈화시켰고, 당시 방송 신문 등에서 우토로를 앞 다투어 보도하게 된 기폭제가 된 사진집입니다.
2013년 사진집 『가부키초』로 일본 출판명가 고단샤(講談社)가 선정하는 ‘2013 출판문화상’ 사진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 이 상은 일본 최고 권위의 사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진집엔 ‘가부키초’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담겨있습니다.
더구나 저자가 한국인 권철이었습니다. 한국인 인줄 모르고 이 상을 줬을 것이라는 풍문이 날 정도로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가부키초’는 술과 도박, 마약과 매춘, 호객꾼과 취객, 경찰과 야쿠자, 그리고 부(富)와 빈(貧)이 교차하는 아시아 최고의 환락가입니다. 그는 이곳을 거의 18년간 사진 찍었습니다. 인간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환락가를 사진 찍는 일, 사실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입니다.
실제로 그는 야쿠자에게 감금당하고, 폭행당하기도 했습니다. 카메라가 부셔지는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카메라를 숨기고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카메라를 들고 자그마치 18년 동안 맞서 왔습니다.
2013년 발행된 사진집 『텟짱! 한센병에 감사한 시인』은 2014년 도쿄북페어에서 ‘지금 꼭 읽어야 할 책 30권’에 포함되었습니다. 1997년부터 한센병회복자 시인 사쿠라이 데쓰오(1924~2011, 본명 나가미네 도시조)와 연을 맺고 찍어 온 사진들로 만든 사진집입니다.
자신을 희생해 나병을 세상에 바로 알리려했던 시인 탯짱은 눈멀고 뭉개진 얼굴을 당당히 보여줬고, 권철은 당당히 그 얼굴을 찍었습니다. 이것은 권철과 텟짱 뿐만 아니라 한센병회복자와 세상 사이에 존재했던 벽을 허무는 일이었습니다.
권철은 JVJA(일본 비주얼저널리스트협회) 회원이기도 했습니다. 일본에서 13명 남짓인 JVJA회원이 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 정도로 어렵습니다. 그는 스스로 탈퇴를 했습니다. 조직과 배경보다는 '도코다이(獨對)'로 세상과 마주해야한다는 자신의 사진철학 때문입니다.
사진을 위해 배수진을 친 겁니다. 스스로 ‘한 마리 고독한 늑대’로 살고 싶다했습니다. 인터뷰 후 사진촬영, 그 늑대의 표정을 보여 달라 했습니다. 그가 보여준 모습, 늑대 그 자체였습니다. 일순간의 요구에 누구나 지을 수 있는 표정이 아닙니다. 살아온 삶이 축적되어 나타나는 늑대의 표정, 으르렁거리는 듯했습니다.
노골적으로 권철과 그의 사진을 소개했습니다. 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진가로서, 그의 사진 앞에서 제 스스로 부끄러웠던 기억 탓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진이 더 큰 울림으로 세상에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더구나 오늘(1월 26일)부터 그의 사진전이 열립니다.
그런데 그의 사진전을 알리는 보도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기자의 직분을 망각(?)하고서라도 노골적으로 알리고 싶습니다. 그의 사진전을….
『텟짱, 한센병에 감사한 시인』 사진전. 서울 대학교 아시아연구소 2층 전시실. 2015년 1월 26일~2월 6일.
권혁재 기자 shotgun@joongq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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