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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6일,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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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문화사 전경. 사진=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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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12월 설립.. 6·25로 존폐위기 넘기고 우뚝
지나친 상업주의 지양..뜻이 있는 책 펴내야
[이데일리 김재은 기자]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에 있는 핑크빛 콘크리트 5층 건물과 낡은 목재간판.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에 올해 탄생 70돌을 맞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출판사인 ‘을유문화사’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여기가 제 방이었어요. 늦잠 자다 학교 안 가서 아버지께 말채찍으로 맞던 곳이요. 아버지는 막내인 제게 참 엄하셨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참 여리신 분이셨죠.”
을유문화사 정무영(71.사진) 사장은 회사경영이 힘들 때마다 아직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문득문득 그리워진다고 귀띔했다. 2011년부터 을유문화사를 이끌고 있는 정 사장은 고 정진숙 회장의 4남 1녀중 막내아들이다. 고 정진숙 회장은 1973년 집터에 건물을 짓고 을유문화사를 관철동에서 조계사 옆으로 이전했다. 1970년대엔 편집부 직원만 40명에 이를 정도로 황금기를 거쳤지만, 지금은 직원 20여명에 매출은 26억원수준으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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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쟁이 나서 아수라장이 되자 다들 원래 하던 일을 찾아 갔고, 결국 아버지는 수많은 부채만 남은 을유문화사를 다시 세우셨죠. 아버지는 돈을 벌기위해 출판사를 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책을 내기 위해 사업을 해야 한다고요.” 고 정 회장은 조흥은행의 전신인 동일은행에 다녔지만, 반일적인 언행이 문제가 돼 감옥에도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당시 고문으로 청각이 많이 손상돼 2008년 타계할 때까지 평생 보청기를 끼었다고 한다.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시작하고, 너무 많이 욕심을 내는 것들이 실패의 주요 원인이다.”
정 사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출판사들이 문닫는 현실에서 70년간 장수한 비결로 ‘자족’을 꼽았다. 70년간 이어 온 을유문화사만의 기업문화도 대동소이하다. “을유문화사는 너무 상업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독자들이 읽어서 유익하다는 책, 회사에서 발행하기 창피하지 않은, 뜻이 있는 책을 고집한다. 지나치게 이익을 좇아가지 않고, 베스트셀러만 찾아 다니는 게 아니다.”
인터뷰 말미에 정 사장이 사인과 함께 건넨 책은 조안나의 ‘당신을 만난 다음 페이지’. 처음 마주한 글귀는 그가 들려주는 얘기인 양 기억에 오래 남았다. ‘당신은 고독을 향해 직진하지. 난 아니야. 내겐 책들이 있어.’(마르그리트 뒤라스)
-창간 70주년을 맞은 소회는.
△제가 창업한 회사가 아니고, 선친께서 하신 것을 물려받은 것이다. 조금 더 좋은 회사를 만들었으면 하는데, 요새 출판업계 여건이 어렵다.
-광복후 4개월만에 창업주께서 다른 사업이 아닌 도서출판업을 하신 특별한 이유는...
△어릴 적부터 집안 어르신이나 선친이 애국지사라는 얘길 들었다. 일제시대에 감옥도 가실 정도였으니…. 광복이 됐으니깐 뜻이 있는 사업을 하자, 우리문화와 글자를 다시 찾아야겠다 해서 만드신 것이다.
-창립이후 6.25 전쟁외 회사가 겪은 가장 큰 위기는.
△1970년대 검인정 교과서 파동으로 교과서 업계가 최악의 위기 상황에 몰려있을 때 새 교과서 검정실시가 있었다. 을유도 초등학교 1, 2,3학년 교과서 6종씩 총 18종을 냈지만, 단 한권도 채택되지 않았다. 검인정 교과서 파동으로 상당액수의 벌금을 맞은 데다 100% 투자한 교과서마저 채택되지 않으며 중역 3명이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을유문화사가 70년간 발행한 서적과 판매량은 얼마나 되나,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는...
△6·25때 소실된 것 등을 감안하면 대략 어림잡아 7000종정도 된다. 예전엔 20권이 1세트인 문고본도 냈었다. 가장 많이 판매된 책은 2007년 발간된 번역서인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다. 당시 10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기억한다.
-1955년 일찌감치 외국영업부를 만들고, 한국학 관련 도서를 세계 주요 대학 도서관 등에 공급했는데, 현재는 어떤가.
△지금도 하고 있다. 연간 한국돈 3억~4억원가량 판매하고 있다. 미국 국회도서관을 비롯해 미시간대, 프린스턴대, 하버드대 등 유수의 대학에 공급한다. 미국 외에 유럽, 호주지역에도 책을 보내고 있다. 1955년 처음엔 영문판으로 히스토릭 코리아를 납품하기 시작했지만, 요즘엔 거의 한국어 책을 공급한다.
- 70년 역사 속에 을유문화사만의 독특한 기업문화는...
△너무 상업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독자들이 읽어서 유익하다는 책, 회사에서 발행하기 창피하지 않은 뜻이 있는 책을 고집한다. 지나친 이익을 바라지 않고 베스트셀러만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뜻이 있는 출판사가 되고자 한다. 선친이 하실 때는 신진작가도 많이 발굴했고, 우리말 큰사전이나 한국사 등은 역사에 남을만 했다.
-출판업계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70년 장수기업의 수장으로서 그 장수비결이나 성공DNA는 뭐라 생각하는가.
△저는 선친이 하신대로 그대로 따르고 있다. 다만, 시대가 변했으니까 변해야하는 점도 있지만, 직원들의 회사로 운영하고 있다. 가족같은 직원들이라고 생각하고, 복지도 챙기려 하고, 같이하고자 한다. 예전처럼 을유문화사의 명성을 되찾고, 모든 면에서 최고인 출판사로 만들고 싶다.
-연장 선상에서 단명하는 기업과 장수하는 기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충분한 준비를 못하고 시작을 하고, 너무 욕심을 많이 내고, 그런 것들이 실패를 하는 요인이다.
-을유문화사같은 장수기업에서 직원들의 이직률은 낮을 것 같은데...
△면접보면서 여사원 뽑을 때 결혼하고 애낳고 하고, 힘들어서 관두고 싶을 때까지 오래오래 다녀야 한다고 말한다. 20여명의 직원중 20년이 넘은 친구도 있고, 평균 10년정도 되는 것 같다. 다만 최근 젊은 신입직원들은 조금 더 준다고 하면 이직하는 경우가 왕왕 있어 아쉽다.
-앞으로 꿈이나 포부가 있다면.
△옛날에는 을유문화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출판계 거목이었다. 다시 한번 그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 을유문화사가 명문 출판사가 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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