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news.kbs.co.kr/news/NewsView.do?SEARCH_NEWS_CODE=3009637&ref=D
- [취재후] 이윤보다 사람, 사회적 기업의 ‘딜레마’
이윤보다 사람, 사익보다 공익.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가능할까요?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 이라는 생각이 너무도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오늘, 또 다른 상식을 꿈꾸는 사람들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많은 논란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경제는 적어도 양적으로는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2007년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제정된 이후, 현재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은 사회적 기업만 1200개를 넘어섰습니다. 마을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등 각 부처별로 비슷한 유형의 사회적 경제 조직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윤을 내기 위해 직원들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이윤을 낸다는 사회적 기업가들. 이 기업가들의 초심은 잘 지켜지고 있는 걸까요? 사회적 기업들을 만나봤습니다.
■ 사람이 먼저다
1세대 사회적 기업들 가운데, 지금도 안정적으로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을 먼저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경상남도 통영, 이주여성들이 함께 모여 누비 가방을 만드는 ‘민들레누비’라는 업체를 찾아갔습니다.
민들레누비는 지난 2010년, 지역 YWCA에서 만든 업체였습니다. 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 조사해보니, 일자리가 없다는 것을 1순위 고민으로 꼽았다는 겁니다. 한국말도 서툴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이주여성들이 한국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나마 한국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 알아보니, 이주여성들 상당수가 재봉질을 해 본 경험은 있었습니다. 통영에는 예전부터 누비 제품이 유명하니 누비를 이용한 가방 공장을 만들어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생각이 기업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창업 초창기부터 이곳에서 일해온 올해 32살의 이수진씨를 만났습니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지 벌써 5년째. 아는 사람도 없이 아이를 낳고, 키우고, 갈 곳도 없이 집에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국 생활이 한창 힘들 때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수진씨는 서툰 한국말로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그만두고 싶지 않아요.’
이 기업은 지난 2011년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은 이후, 올해까지 쭉 사회적 기업지원을 받아왔습니다. 인증을 받으면 취약 계층 고용 인원에 대해서는 인건비 지원을 받습니다. 예비 사회적 기업 2년 동안에는 각각 최저 임금의 100%, 90%, 사회적 기업 3년 동안에는 인건비의 90%, 80%, 70%를 지원받습니다. 적지 않은 돈입니다.
이제 이 기업은 올 가을이면 사회적 기업 지원 연한이 끝납니다. 기업의 고민은 단순히 일자리만 제공하는 기업을 넘어서야 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재봉질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방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마케팅에 대한 고민까지. 일하는 이주여성들을 이 분야 전문가로 성장하도록 도와줘야 사회적 기업의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냐는 겁니다. 단순 노동을 넘어선, 전문 인력의 양성. 사회적 기업들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채용인원의 증가만 쫓는 것이 아닌, 더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꼭 필요한 일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름을 내려놓은 기업
이렇게 ‘전문 인력 채용과 소외 계층 고용 창출’ 이라는 두 마리 토끼 앞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름을 내려놓은 기업도 있었습니다. 지난 2010년 문을 연, 저가형 보청기 생산 기업 딜라이트입니다.
기업 창업자는 올해 30살이 된 김정현씨입니다. 저소득층이 감당하기에는 보청기 가격이 너무 비싼 것을 보고,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들을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싶다’는 마음에 저가형 보청기를 생산하는 기업을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부품을 직접 수입해 자체 제작하는 방식으로 생산원가를 낮추고, 온라인 판매와 직영점 판매를 통해 유통마진을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빈곤층이 청각장애인 판정을 받으면 보청기를 살 때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최대 34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 사실상 ‘공짜’ 보청기인 34만원짜리 보청기를 생산했습니다.
과연 저가형 보청기가 시장에서 통할까.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창업 3년 만에 매출액 40억원을 넘어설 정도로 소비자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보청기 제조 업계 매출액 5위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창업자 정현씨는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사회적 기업 인증 연장을 포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업을 사회적 기업으로 알고 있고, 기업에 기대하는 점이 사회공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인증을 포기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기업 인증 연장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문제는 인력 운용에 있었습니다. 보청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숙련된 전문 인력들인데, 저소득층을 전체 인원의 3분의 1이상 고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업 인증 요건을 맞추는 일이 말처럼 쉽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증요건을 맞추려다보면 기업 운영자체가 어려워지는 곤경에 빠진 겁니다.
결국 딜라이트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름과 이에 따른 정부 지원을 포기하고, 홀로서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경영권을 대형제약회사로 넘겼습니다. 현재 경영을 맡은 회사도 여러 사회 공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는 있지만, 딜라이트가 사회적 기업 범주 안에 계속 있었더라면, 더 나은 활동들을 많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도 나옵니다.
막 시작하는 사회적 기업, 자생력이 부족한 기업들을 지속적으로 보살펴주고, 당장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인내하며 투자해 줄 사회적 자본이 잘 갖춰져 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인증 연장을 반납하거나 포기한 것으로 집계된 68개의 사회적 기업 숫자도 훨씬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름의 굴레
사회적 기업이 부딪히는 어려움은 또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 제품이라고 하면, 일단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폐현수막이나 페트병 등 재활용품들을 모아 담요나 가방, 생활 소품 등 쓸모있는 물건으로 재생산하는 ‘터치포굿’이라는 사회적 기업을 만났습니다.
김미현 대표는 말했습니다. ‘사회적 기업 제품이라서 더많이 사주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시장에서 해가 될 줄은 몰랐다.’고 말입니다.
공익적인 목적을 가지고 선한 마음으로 소비를 하는 것 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사회적 기업 제품이라고 하면 오히려 소비자들이 색안경을 끼고 대할 줄은 몰랐다는 겁니다. 장애인이나 저소득층이 만들었으니 품질도 좋지 않고, 깨끗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식의 편견을 마주하게 될 때, 많이 속상하다고 말했습니다.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사회적 기업에 대한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일 하는 기업이니 일이 좀 한가하겠지, 혹은 매일 웃으면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김 대표는 말했습니다. 사회적 기업은 한가하지 않다고 말입니다. 공익을 추구하면서도 이윤까지 내야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렵고, 더 힘든 점이 많다는 겁니다. 사회적 기업이 넘어서야 할 과제는 참 많았습니다.
■ 지원, 그 이후
이렇게 정부지원의 테두리 속에 있다가 지원이 끝난 기업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요? 잘 운영되고 있을까요? 1세대 사회적 기업으로 업체를 운영하다가, 지난해 사회적 기업 지원이 끝난 한 기업을 찾았습니다.
재활용 토너 카트리지 제조 기업 심원테크였습니다. 전체 19명의 직원들 가운데 12명이 장애를 가진 직원들이었습니다. 잘 들리지 않아 수화로 대화를 해야 하는 직원에서부터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계속 사용해야 하는 직원까지. 이런 저런 불편함이 있어보였지만, 직원들 모두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이 업계에서는 매출액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김준호 대표는 ‘사회적 기업 그 이후도 정말 쉽지 않았다’ 고 말했습니다. 애초 문을 열 때부터 취업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한 기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터였습니다. 군대에서 오랜 시간 근무를 하면서, 컴퓨터 부품 관련 업체를 창업해야겠다고 계획하고 있었고, 기업을 세운다면 내 지갑만 채우는 것이 아닌 사회에 보탬이 되는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들을 고용했습니다. 기업의 모든 요건은 사회적 기업 인증요건에 맞아떨어졌습니다. 어렵지 않게 인증을 받고 지원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흘러간 5년. 이제 장애인들에 대한 인건비 부담이 고스란히 업체의 몫으로 돌아왔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기업을 유지, 발전시키려면 사활을 건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이 김준호 대표의 설명이었습니다.
지원 5년 동안 내실을 갖추지 않으면, 사회에 득이 되는 기업을 하겠다던 본래의 목표를 유지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겁니다. 정부가 제공하는 인건비 지원에만 만족하지 말고 연구개발, 판로개척 등 다각적인 방면에서 내실을 갖춰놔야 사회적 기업 지원, 그 이후의 미래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사회적 기업 전문가 가운데 한 명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말이 왜 정답이냐.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은 협동하는 동물, 이타적인 동물일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말입니다.
상대를 믿고, 서로 협동해야만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경제학의 개념도 자세히 설명해줬습니다. 인간은 이타적일 수도 있다는 믿음, 공익을 위한다는 기본 목표가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이윤을 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 사회적 기업가들을 만나면서 이 희망이 헛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적 기업이 넘어야 할 벽은 정말 많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정부와 기업 모두 한걸음씩 걸어간다면, 사회적 기업들이 우리 사회에서 해낼 역할은 충분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지난 2007년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 제정된 이후, 현재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은 사회적 기업만 1200개를 넘어섰습니다. 마을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등 각 부처별로 비슷한 유형의 사회적 경제 조직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윤을 내기 위해 직원들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이윤을 낸다는 사회적 기업가들. 이 기업가들의 초심은 잘 지켜지고 있는 걸까요? 사회적 기업들을 만나봤습니다.
■ 사람이 먼저다
1세대 사회적 기업들 가운데, 지금도 안정적으로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을 먼저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경상남도 통영, 이주여성들이 함께 모여 누비 가방을 만드는 ‘민들레누비’라는 업체를 찾아갔습니다.
민들레누비는 지난 2010년, 지역 YWCA에서 만든 업체였습니다. 이주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 조사해보니, 일자리가 없다는 것을 1순위 고민으로 꼽았다는 겁니다. 한국말도 서툴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이주여성들이 한국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나마 한국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 알아보니, 이주여성들 상당수가 재봉질을 해 본 경험은 있었습니다. 통영에는 예전부터 누비 제품이 유명하니 누비를 이용한 가방 공장을 만들어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자는 생각이 기업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창업 초창기부터 이곳에서 일해온 올해 32살의 이수진씨를 만났습니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지 벌써 5년째. 아는 사람도 없이 아이를 낳고, 키우고, 갈 곳도 없이 집에만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국 생활이 한창 힘들 때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수진씨는 서툰 한국말로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그만두고 싶지 않아요.’
이 기업은 지난 2011년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은 이후, 올해까지 쭉 사회적 기업지원을 받아왔습니다. 인증을 받으면 취약 계층 고용 인원에 대해서는 인건비 지원을 받습니다. 예비 사회적 기업 2년 동안에는 각각 최저 임금의 100%, 90%, 사회적 기업 3년 동안에는 인건비의 90%, 80%, 70%를 지원받습니다. 적지 않은 돈입니다.
이제 이 기업은 올 가을이면 사회적 기업 지원 연한이 끝납니다. 기업의 고민은 단순히 일자리만 제공하는 기업을 넘어서야 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재봉질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가방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에서 마케팅에 대한 고민까지. 일하는 이주여성들을 이 분야 전문가로 성장하도록 도와줘야 사회적 기업의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냐는 겁니다. 단순 노동을 넘어선, 전문 인력의 양성. 사회적 기업들이 단순히 눈에 보이는 채용인원의 증가만 쫓는 것이 아닌, 더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꼭 필요한 일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름을 내려놓은 기업
이렇게 ‘전문 인력 채용과 소외 계층 고용 창출’ 이라는 두 마리 토끼 앞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름을 내려놓은 기업도 있었습니다. 지난 2010년 문을 연, 저가형 보청기 생산 기업 딜라이트입니다.
기업 창업자는 올해 30살이 된 김정현씨입니다. 저소득층이 감당하기에는 보청기 가격이 너무 비싼 것을 보고,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들을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싶다’는 마음에 저가형 보청기를 생산하는 기업을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부품을 직접 수입해 자체 제작하는 방식으로 생산원가를 낮추고, 온라인 판매와 직영점 판매를 통해 유통마진을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빈곤층이 청각장애인 판정을 받으면 보청기를 살 때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최대 34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 사실상 ‘공짜’ 보청기인 34만원짜리 보청기를 생산했습니다.
과연 저가형 보청기가 시장에서 통할까.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창업 3년 만에 매출액 40억원을 넘어설 정도로 소비자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보청기 제조 업계 매출액 5위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창업자 정현씨는 사업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사회적 기업 인증 연장을 포기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업을 사회적 기업으로 알고 있고, 기업에 기대하는 점이 사회공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인증을 포기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기업 인증 연장을 포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문제는 인력 운용에 있었습니다. 보청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숙련된 전문 인력들인데, 저소득층을 전체 인원의 3분의 1이상 고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업 인증 요건을 맞추는 일이 말처럼 쉽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증요건을 맞추려다보면 기업 운영자체가 어려워지는 곤경에 빠진 겁니다.
결국 딜라이트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름과 이에 따른 정부 지원을 포기하고, 홀로서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경영권을 대형제약회사로 넘겼습니다. 현재 경영을 맡은 회사도 여러 사회 공헌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는 있지만, 딜라이트가 사회적 기업 범주 안에 계속 있었더라면, 더 나은 활동들을 많이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섞인 목소리도 나옵니다.
막 시작하는 사회적 기업, 자생력이 부족한 기업들을 지속적으로 보살펴주고, 당장 이익이 나지 않더라도 인내하며 투자해 줄 사회적 자본이 잘 갖춰져 있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인증 연장을 반납하거나 포기한 것으로 집계된 68개의 사회적 기업 숫자도 훨씬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름의 굴레
사회적 기업이 부딪히는 어려움은 또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 제품이라고 하면, 일단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폐현수막이나 페트병 등 재활용품들을 모아 담요나 가방, 생활 소품 등 쓸모있는 물건으로 재생산하는 ‘터치포굿’이라는 사회적 기업을 만났습니다.
김미현 대표는 말했습니다. ‘사회적 기업 제품이라서 더많이 사주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시장에서 해가 될 줄은 몰랐다.’고 말입니다.
공익적인 목적을 가지고 선한 마음으로 소비를 하는 것 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사회적 기업 제품이라고 하면 오히려 소비자들이 색안경을 끼고 대할 줄은 몰랐다는 겁니다. 장애인이나 저소득층이 만들었으니 품질도 좋지 않고, 깨끗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식의 편견을 마주하게 될 때, 많이 속상하다고 말했습니다.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사회적 기업에 대한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은 일 하는 기업이니 일이 좀 한가하겠지, 혹은 매일 웃으면서 행복하게 일할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겁니다.
김 대표는 말했습니다. 사회적 기업은 한가하지 않다고 말입니다. 공익을 추구하면서도 이윤까지 내야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렵고, 더 힘든 점이 많다는 겁니다. 사회적 기업이 넘어서야 할 과제는 참 많았습니다.
■ 지원, 그 이후
이렇게 정부지원의 테두리 속에 있다가 지원이 끝난 기업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요? 잘 운영되고 있을까요? 1세대 사회적 기업으로 업체를 운영하다가, 지난해 사회적 기업 지원이 끝난 한 기업을 찾았습니다.
재활용 토너 카트리지 제조 기업 심원테크였습니다. 전체 19명의 직원들 가운데 12명이 장애를 가진 직원들이었습니다. 잘 들리지 않아 수화로 대화를 해야 하는 직원에서부터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계속 사용해야 하는 직원까지. 이런 저런 불편함이 있어보였지만, 직원들 모두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이 업계에서는 매출액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김준호 대표는 ‘사회적 기업 그 이후도 정말 쉽지 않았다’ 고 말했습니다. 애초 문을 열 때부터 취업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한 기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터였습니다. 군대에서 오랜 시간 근무를 하면서, 컴퓨터 부품 관련 업체를 창업해야겠다고 계획하고 있었고, 기업을 세운다면 내 지갑만 채우는 것이 아닌 사회에 보탬이 되는 회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들을 고용했습니다. 기업의 모든 요건은 사회적 기업 인증요건에 맞아떨어졌습니다. 어렵지 않게 인증을 받고 지원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흘러간 5년. 이제 장애인들에 대한 인건비 부담이 고스란히 업체의 몫으로 돌아왔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기업을 유지, 발전시키려면 사활을 건 노력이 필요했다는 것이 김준호 대표의 설명이었습니다.
지원 5년 동안 내실을 갖추지 않으면, 사회에 득이 되는 기업을 하겠다던 본래의 목표를 유지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겁니다. 정부가 제공하는 인건비 지원에만 만족하지 말고 연구개발, 판로개척 등 다각적인 방면에서 내실을 갖춰놔야 사회적 기업 지원, 그 이후의 미래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취재를 하면서 만난 사회적 기업 전문가 가운데 한 명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말이 왜 정답이냐.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은 협동하는 동물, 이타적인 동물일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말입니다.
상대를 믿고, 서로 협동해야만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경제학의 개념도 자세히 설명해줬습니다. 인간은 이타적일 수도 있다는 믿음, 공익을 위한다는 기본 목표가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이윤을 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희망. 사회적 기업가들을 만나면서 이 희망이 헛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적 기업이 넘어야 할 벽은 정말 많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정부와 기업 모두 한걸음씩 걸어간다면, 사회적 기업들이 우리 사회에서 해낼 역할은 충분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