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을 느낀 그는 더 많은 용골을 사들였고, 이 기호들이 거북 껍질이나 짐승의 뼈에 새겨진 한자의 초기 자체(字體)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출토된 거북 껍질과 짐승의 뼈는 10만점이 넘었고, 문자의 수는 4000개에 이르렀다. 이것들이 갑골문이다.
대만의 전방위 문화비평가인 저자는 갑골문을 문자학의 영역에서 구해낸다. 갑골문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상상하고, 인류의 역사에서 문자가 가진 의미를 추론한다. 그 상상력이 때로 신화적이고 또 문학적이다.
아침 단(旦) 자는 태양이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저자는 이 글자의 탄생 과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동해의 바닷가에 오래 거주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글자이거나, 누군가 아무 생각 없이 해가 뜰 무렵 바닷가에 서 있다가 더없이 찬란한 일출의 광경에 마음을 잃고서, 이 모습이야말로 죽음 같은 긴 밤이 지나가고 완전히 새로운 날이 다가오고 있는 기쁘고 아름다운 순간을 나타내는 도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한자가 아름다운 상황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고대 사회는 현대인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한 측면이 있었다.
해(해)는 오늘날 ‘젓갈’의 의미로 사용되지만, 처음엔 큰 절구 안에 절망적인 표정의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한 갑골문에서 유래했다. 두 손으로 절굿공이를 든 이가 산 채로 사람을 내리쳐 육장(肉醬)을 만드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기(棄) 자에는 영아 살해의 흔적이 묻어 있다. 두 손으로 삼태기를 들고 갓 태어난 아이를 내다버리는 모습을 그려냈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힘든 데다가 가족계획도 마땅치 않았던 시대의 실상이다.
말(馬)과 관련한 한자가 28개나 된다는 사실에서는 말이 인간에게 그만큼 중요한 짐승이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끔찍하든 아름답든, 문자는 인류의 기적이다.
인류는 수백만년간 짐승처럼 떠돌아다니다 불과 수천년 사이에 급속한 문명 발전을 이룩했다. 레비 스트로스는 이를 ‘신석기 시대의 모순’이라고 불렀다. 탕누어는 이러한 발전의 핵심에는 문자의 발생이 있다고 본다.
“문자가 생겨남으로써 인류의 사유와 표현은 시간의 독재에서 벗어나 순간적으로 공기 속으로 흩어지지 않으면서 축적되기 시작하고, 점차 두께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현대인들도 도형문자를 활발하게 사용한다. 화장실, 좌측통행, 미끄러운 바닥 주의, 금연 등을 표시할 때 간단한 그림문자가 사용된다. 하지만 문자가 도형으로 돌아갈 일은 없다.
문자는 사물의 윤곽과 흔적을 간단하게 기억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미의 혼란이 인간의 상상력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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