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사는가
도널드 발렛·제임스 스틸 지음, 이찬 옮김
어마마마·1만5000원
케빈 플래너건은 잘나가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이었다. 그러나 2003년, 7년 동안 일해왔던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 쫓겨났다. 마지막날 회사 주차장에서 자신의 머리에 산탄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일자리를 외국으로 보내는 ‘아웃소싱’이 유행하면서 인도인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결과다.
중산층은 미국 민주주의의 심장과 영혼이었고, 아메리칸드림이라는 ‘기회의 불꽃’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뭔가 변하기 시작했다. 중산층의 소득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상류층의 소득은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이 책의 지은이들은 이것이 일시적 경기변동이나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고 확언한다.
미국 중산층 붕괴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게 지은이들의 주장이다. 먼저 ‘자유무역’ 정책은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체계적으로 파괴했다.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는 1979년에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내리막이다. 미국이 자랑하는 ‘혁신 기업’도 중산층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애플의 성공으로 잠시 좋은 일자리가 생겼지만, 곧바로 일자리는 중국으로 ‘수출’됐다.
‘규제완화’는 어떤가. 1978년 항공산업과 1980년 트럭운수업 규제완화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뒤, 미국의 항공산업과 트럭운수업에는 거대한 파괴의 행진이 이어졌다. 금융 규제 완화가 2008년 금융위기로 이어진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 물론 미국 우파는 지금도 이런 일들이 “시장의 힘에 충분히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책은 이밖에 상위 1%에 유리하게 꾸준히 바뀌어 온 ‘세금 제도’와 체계적으로 축소돼 온 ‘퇴직연금’이 미국 중산층을 어떻게 빈곤층으로 떨어지게 했는지, 미국 갑남을녀의 목소리와 함께 전한다. 그들은 “아메리칸드림은 이미 끝나버렸다”고 입을 모은다.
지은이들은 이런 실태 분석을 통해 미국에 새로운 형태의 금권 귀족정치가 들어섰다고 결론 내렸다.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소수 지배층의 손아귀”에 놓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산층 복원은 ‘다수의 지배’를 통해 가능하다고 했다. 유권자들이 후보 가운데 누구를 선출하고 어떤 정책을 지지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방향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지은이들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기자들답게, 꼼꼼한 현장 취재를 통해 평범한 미국인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여준다.
‘중산층의 축소’(양극화)가 우리나라에도 화두가 된 상황에서 좋은 참고서가 될 듯하다. 다만, 제3세계 빈국의 경제적 노력에 대해 ‘사다리 걷어차기’를 해야 한다는 듯한 주장은 거슬리는 대목이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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