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71825
▲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 |
ⓒ 도서출판 피플파워 |
채현국(79) 양산 효암학원(효암고·개운중) 이사장. 기자가 그를 처음 만난 건 80년대 후반이었다. 대학 다닐 때 진주에서 박노정 시인의 소개로 채 이사장께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양산에 학교가 있었지만 진주에 자주 오셨다. 부인(윤병희 경상대 명예교수)이 진주에 직장을 두고 있기도 했지만, 진주사람들도 그를 좋아했다.
그때 채 이사장을 만나면 사실 겁부터 났다. 늘 만나면 책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 특히 서점에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책을 자주 거론하셨다. 대학생이니까 분명히 읽었을 것으로 알고 말씀하셨다. 채 이사장의 말씀을 듣기만 했고 대답은 늘 '예'만 했던 것 같다. 그런 다음 채 이사장이 언급했던 책을 사서 읽어본 기억이 난다.
효암고에 몇 번 놀러간 기억이 난다. 대학 선후배들이 그 학교에 교사로 있었다. 그때 채 이사장에 대해 들은 말 가운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게 있다. 대부분 사학재단은 전교조를 꺼리는데 채 이사장은 전교조 출신을 교장과 교감으로 채용하고, 교사를 채용하는데 돈 한 푼 안 받는다는 것.
대학 선후배들이 그 학교에 교사로 채용되었는데, 실제로 돈 한 푼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박노정 시인은 "교사를 소개해 주었더니 돈을 요구하기는커녕 좋은 사람 소개해 주어 고맙다며 밥을 사주시더라"고 할 정도였다.
한동안 채 이사장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1년 전 <한겨레> 인터뷰(2014년 1월 4일) 때 했던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노인 세대를 절대 봐주지 마라"라는 '채현국 어록'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1년 만에 채 이사장은 또 울림을 주었다. 김주완 기자(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가 그를 인터뷰 해 <풍운아 채현국>(도서출판 피플파워)을 펴낸 것이다. 이 책에는 '거부(巨富)에서 신용불량자까지 거침없는 인생'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한때 개인소득세 납부액 전국 열 손가락 안에 들어
▲ 도서출판 피플파워는 최근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을 소개한 책 <풍운아 채현국>을 펴냈다. | |
ⓒ 피플파워 |
김주완 기자는 네 차례 채현국 이사장을 인터뷰 해 그 내용을 풀어놓았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절대 훌륭한 어른이나 근사한 사람으로 그리지 말라"는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채현국 이사장답다.
사람들은 그를 '가두의 철학자' '맨발의 철학도' '민주화운동의 든든한 후원자' '이 시대의 어른' 등이라 표현한다. 김주완 기자는 "그의 삶은 바람과 구름을 몰고 다녔고 지금도 그가 우리 사회에 던져준 울림은 계속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채기엽·채현국 부자는 1960년대 우리나라 개인소득세 납부액이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거부였다. 아버지 채기엽(1907~1988)은 1952년 서울에서 연탄공장을 차렸고 1956년 흥국탄광회사를 설립했다. 채기엽은 강원도 사북탄광을 개발할 때 큰 일을 했다. 사북역 광장에 있는 '채기엽 선생 공덕비'가 이를 증명한다.
채기엽은 이후 무역·목축·임산·조선·해운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늘렸고, 경남대학교의 전신인 옛 해인대학이 기틀을 마련하도록 지원했다. 그후 양산시 웅상에 현재의 효암학원을 설립했다. '효암'은 채기엽의 호다.
채현국 이사장은 서울대 다닐 때 탤런트 이순재(2년 선배)와 함께 연극반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도 연락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한 번 전화를 해서 '이 자식, 알면서 전화도 한번 안 했냐'고 하니 '지금도 욕하는데, 뭐 욕 먹으려고 전화하냐' 하더군"이라며 웃었다.
채현국 이사장과 인연이 깊은 문인, 정치인, 언론인이 많다. 채 이사장이 해직기자들과 계간 <창작과 비평>을 도운 사실은 어느 정도 연륜이 있는 언론계 인사나 문인이면 안다. 임재경(언론인)은 2008년 한 글에서 "친구들에게 밥과 술을 사주며 헤어질 때 차비를 쥐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셋방살이하는 친구들에게는 조그마한 집을 한 채씩 사주는 파격의 인간"이라며 "흥국탄광에서 일했던 친구들 중에 집 장만하는데 채현국의 신세를 진 사람은 숫자가 훨씬 여럿"이라고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는 채 이사장은 정치인과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난 그런 데(정치판) 안 간다니까. 나는 친구가 해도 안 가요. 고형곤 선생 아들이 고건이라고 총리했습니다. 또 대학 동기생으로 곧잘 친한 서울대 총장 했던 이수성도 총리했는데 근처에도 안 가요. 그 자리에 있을 땐 전화 한 통화도 안 했어요. … 정말 권력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겁니다."
책에서는 울림을 던지는 말이 많다. 남은 인생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채 이사장은 "좀 덜 치사하고, 덜 비겁하고, 정말 남 기죽이거나 남 깔아뭉개는 짓 안 하고, 남 해코지 안 하고 …. 그것만 하고 살아도 인생은 살 만하지"라고 대답했다.
채 이사장은 "다양한 가치가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회,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계산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정치하는 사람, 권력 가진 사람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그는 "그 사람들도 남의 말 전혀 안 듣는 사람들이죠. 이용하는 것 외에는 남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죠. 이용감이 아닌 남은 전부 귀찮은 존재들이야. 그런 놈을 내가 뭐하러 좋아해요"라며 "권력자나 정치가뿐 아니라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명성 있는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내 명성을 내주고 나에게 쩔쩔 매주는 사람 이외에는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나이 먹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이유?
▲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오른쪽)이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을 인터뷰해 책 <풍운아 채현국>을 펴냈다. | |
ⓒ 도서출판 피플파워 |
채현국 이사장이 "나이 먹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농경사회에는 나이 먹을수록 지혜로워지는데,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지혜보다는 노욕의 덩어리가 될 염려가 더 크다는 겁니다. 농경사회에서는 욕망이 커봤자 뻔한 욕망밖에 안 되거든. 지가 날 수도 없고 기차 탈 수도 없고 자동차도 못 타니까 그랬는지 확실히 농경사회의 노인네는 경험이 중요했지. 지금은 경험이 다 고정관념이고 경험이 다 틀린 시대입니다. 먼저 안 건 전부 오류가 되는 시대입니다. 정보도 지식도 먼저 것은 다 틀리게 되죠. 이게 작동을 해서 그런지 나이 먹은 사람들이 지혜롭지 못하고 점점 더 욕구만 남는 노욕 덩어리가 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어버이연합 같은 완고한 노인들도 많지 않느냐"고 했더니, 채 이사장은 "그 사람들이야말로 제일 겁많은 비겁한 사람들로 보이거든요. 그 완고를 드러내는 게 이미 비겁하고 겁이 나서 그런 완고를 가장해서 꾸미는 거죠. 버러지 정도의 의지도 없기에 저렇게 추악한 걸 인정 못하죠. 용기가 있으면 자기가 그렇게 하면 추악해진다는 걸 인정할 줄은 알아야죠. 그 인정도 못하는 것 보십시오. 얼마나 용기가 없고 비겁한 사람들입니까"라고 말했다.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고 한 것에 대해, 그는 "생각해야 할 걸 생각 안 했고, 배워야 할 걸 안 배웠고, 습득해야 할 걸 습득 안 했고, 남한테 해줘야 할 일 안 했어. 저 사람들은. 내 순간 매 순간 안 했어. 젊은 날에, 열 살 때, 스무살 때, 서른 살 때 늘 해야 할 걸 안 했어. 남 배려해야 할 능력이 생겼을 때 남 배려 안 했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 이사장은 "불쌍한 사람들이야. 자기 할 일을 안 하기도 했지만 잘못된 시절에 순전히 잘못된 통치자들에 의해서 잘못된 것만 하나 가득 배워가지고 저렇게 된 건데…"라며 "그 사람들 6․25 때 살인이 정의라고 해서 열심히 살인한 사람들이야. 그걸 생각해야지. 살인을 정의로 알고 살인한 사람들을"이라고 강조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웃대가리만이 아니라 그 웃대가리를 이용해 처먹는 집단. 조선조에 양반이라 하고 선비라는 그 집단. 성실하고 마음씨 좋은 놈들은 탈락했지만 나머지는 그 집단이 남아서 일제 때 재미를 봤거든요. 이 집단이 해방이 되고 나서 지리산 속에서 빨치산으로, 보도연맹으로 죽기도 하지만, 큰 덩어리는 또 이승만이 밑에서 그대로 해먹고, 북쪽은 북쪽대로 김일성이한테 붙어서 그래도 해먹고, 이승만이가 쫓겨서 축출 당하고 나니까 또 박정희한테 붙어서 그대로 해먹습니다.
이 집단, 자기네 대표는 언제 죽더라도 우리는 살 수 있다는 이 집단. 불특정인인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이것들은 지역과 학연과 혈연, 혼인까지 맺은 집단입니다. 약간의 변동이 있을 뿐이지 그 덩어리 전체는 동일한 것들로, 앞잡이 해먹고 이용해먹는 이 집단은 언론이 다루지 않는 한 위에 보이는 그것들에게 또 협조합니다. 위에 보이는 이명박이나 바라고 박근혜나 바라면 이 놈들을 또 살려주는 결과가 됩니다. 문제는 이 놈들입니다. 요놈에는 나도 끼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여기 끼니까 지금 이사장이라도 해먹잖아요."
채현국 이사장은 책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세상에 정답은 없다. 틀리다는 말도 없다. 다른 게 있을 뿐이다. 정답은 없다. 해답이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다.
"죽음이 불안과 공포라는데, 사는 것 자체가 불안과 공포 아닌가? 죽음이란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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