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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조금씩 애달프고 호젓하다
떠나보내는 일도 떠나는 일도 “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시인 김사인(59·사진)의 시집 <어린 당나귀 곁에서>(창비)는 순하고 처연하게 말을 건다. 시집은 국가 권력부터 아픈 한국사, 길거리 보통 사람들 삶의 갖가지를 품었는데 다 조금씩 애달프고 호젓하다.
정치 풍자라면 조롱 혹은 분노가 스미기 마련이지만, 김씨의 시에서는 서글픔이 먼저 묻어난다.
그는 국가정보원 직원을 두고 “자신도 자기가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모른다고 하니/ 오른손도 모르게 하라는 성경 말씀과 같고/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고 하니/ 좀 음산하지만 또 겸허하게도 느껴지고/ 아무튼 모른다 아무도/ 다만 비가 내릴 뿐”(‘내곡동 블루스’)이라고 담담하게 읊어 본다. 국정원과 이름이 같은 ‘정원’이들을 불러내며 말장난도 쳐 본다.
그러나 젊은 시절 국정원의 전신인 곳에 연행돼 심신을 다쳤던 그에게 저녁은 아직 “고등계 형사 같은 어둠” “남산 지하실 같은 어둠”(‘불길한 저녁’)이다. 삼십년이 지나고도 “콧속으로 물이 입으로도, 비명을, 숨이 ……비명을, ……컥!”(‘일기장 악몽’)하고 취조당하던 악몽을 꾼다. 반만년 조상의 빛난 얼을 자랑하는 잘난 나라를 비웃어 볼 때도, 피칠갑의 세월 동안 돈 푼을 꼭 쥐고 버러지처럼 졸음과 배고픔을 느껴 온 나를 자조하는 일을 빠트리지 않는다(‘지전 석장’).
초로에 접어든 김씨가 노래하는 관능과 사랑은 환하게 생동한다. 영주 사과에서 처자 치마 속 탱탱한 엉덩이를 떠올리고 성교를 ‘먹는다는 것’으로 대담하게 비유했다. “너를 먹네/ 포충식물처럼 끈끈하게, 세포 하나하나까지 활짝 열어 너를 맞네 세포 하나하나까지 너에게 내주네./ (…)몸 너머 영혼 속에까지 너를 들이고 싶은 것 네가 되겠다는 것 기어이/ 먹는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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