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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동굴부터 쇼핑몰까지 인간의 또 다른 땅을 찾아서
[중앙일보] 입력 2015.01.24 00:41 / 수정 2015.01.24 00:50김재성 지음, 글항아리
396쪽, 2만5000원
10여 년 전만 해도 서울 시청 앞은 차만 다닐 수 있었다. 보행자는 타원형 잔디광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지하로 걸어다녔다. 지하보도에 가게가 들어서고, 지하철도 뚫리면서 서울의 지하공간은 점점 복잡해졌다. 최근 들어 ‘걷기 좋은 도시’ 열풍이 불면서 지상에 건널목이 많이 설치됐다. 사람들이 지하보다 지상으로 걷길 원하면서 옛 지하공간들은 잊히고 있다.
고대부터 지하공간은 개발과 퇴화를 거듭했다. 인간에게 상반되는 두 감정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토목 전문가로 오랜 세월 지하공간을 마주했던 저자는 “지하공간은 안온함이라는 이점과 더불어 폐쇄의 불안감이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에 현대의 지하공간을 기획할 때 이 두 가지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필요에 의해 개발했어도 한편으로 기피했던 것이 지하공간의 역사가 됐다.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동굴은 연약한 인간의 안식처였다. 지중해 연안에 있는 나할 메아롯 동굴에는 구석기시대부터 50만 년에 걸친 인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인간이 도구를 다루게 되면서 동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광물을 캐며 동굴을 활용했다. 발파기법 등 기술이 점점 발달하면서 현대 지하공간의 용도는 공연장·경기장 등 문화시설로 넓혀졌다.
역사는 오래됐지만, 지하공간에 대한 관심은 많지 않았다. 국내의 경우 최근 서울 잠실 일대에서 땅이 꺼지는 씽크홀이 발견되면서 지하 공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정부가 전국에 지하 3D통합지도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필요에 따라 개발했지만 사후 관리가 부족했다. 저자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도 마찬가지다. 그는 “왜 지하공간에 대한 체계적 이해는커녕 그것이 무엇인가라는 수준의 질문도 던지지 못하는가”라고 묻는다.
신화 속에서는 지하와 지상은 단절된 공간이 아니었다. 페르세포네 신화에서 그는 1년의 3분의 2를 지상에서 살다가 지하세계로 돌아가 나머지 시간을 보낸다. 저자는 “신화에는 계절이 순환하듯이 인간의 삶도 지상과 지하를 순환한다는 인식이 공유되어 있다”고 분석한다.
그런데 요즘 개발 추세를 보면, 지표면을 기준으로 지상과 지하를 구분하는 게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신도시 구축사업인 레 알 프로젝트는 도시 기반시설과 생활공간을 지하와 지상에 분산배치했다. 미국 록펠러 센터의 로워 프라자 지하가로망도 지하와 지상을 연계한 도시설계다. 국내에서도 지상과 연계한 거대한 지하 쇼핑센터를 많이 짓고 있다. 저자는 “인구 도시 집중이 심할수록, 도시 기반시설의 지하화는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진단한다. 동시에 지금껏 단절의 공간으로만 여겼던 지하공간을 신화 속 순환의 공간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문한다.
지하개발의 패러다임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지상 같은 지하 공간 개발’을 하는데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지하공간의 장점을 더욱 부각해야한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동서양의 수많은 지하공간을 종횡무진 누비며 장대한 지하 서사를 책으로 남겼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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