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의 증언을 접하고 떠올린 이명박 때(2008~2012) 내가 당한 일들...
- 1.2008년 8월 - 한국연구재단의 중점연구소 선정에서 당시 내가 원장이던 민주사회정책연구원이 1등을 했으나 배제됐다. 이때 학계 블랙리스트 의혹이 강력히 제기됐다.
- 2.2009년 5월이었나, 환경련에서 받은 강연료 20만원 때문에 은행 계좌가 수색당한 것을 6개월 뒤에 통보받았다.
- 3.2009년 9월 프레시안에 쓴 칼럼에서 이동관의 군역에 관한 표를 인용했다가 몇 시간 뒤 틀린 내용이 있는 걸 알게 되어 삭제했으나, 이동관에게 고소되어 경찰 조사 두 차례 11시간, 검찰 조사 9시간 등 대단히 강력한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경찰 팀장은 청와대의 지시를 받는 것으로 보였고, 내 실수에 대해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냐고 계속 물었다. 그리고 검찰은 나를 기소해서 무려 징역 1년을 구형했는데 판결을 1주일 앞두고 이동관이 고소를 취하해서 없던 일이 되었다. 변호사의 예상처럼 무죄 판결이 명백했기에 끝까지 괴롭히고 취하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아주 작은 실수를 범하고 바로 시정했으나 2009년 11월에서 2010년 7월까지 8개월 동안이나 경찰-검찰-법원에 크게 시달렸고, 덧붙여서 이 과정에서 경찰의 불법적인 실명 개인정보 유출과 동아일보의 사설을 통한 실명 거론 공격도 당했다.
4.2011년 국방부 금서 목록에 내 책 <개발주의를 비판한다>도 올랐다. 이 책은 2007년에 출판되어 문화부 우수도서로 선정됐던 책이다. 박정희 개발독재의 사회적 결과, 김대중 정부의 새만금 정책, 참여정부의 행정수도 정책 등을 생태주의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비판하는 논문집으로 개발주의와 생태주의의 사회적 연구를 진척시킨 것이나 박정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고 금서로 정했다. 금서라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그 이유도 시대의 역행을 고스란히 입증했다
나는 2004년 4월 청계천 사업의 역사 유적 파괴 문제 때문에 이명박을 서울지검에 고발했고, 2008년 운하반대교수모임의 조직을 주도했고, 여러 글들을 통해 그의 잘못들을 계속 비판했다. 그러나 나의 활동이나 글들은 별 영향력은 없었다. 이명박 쪽은 이런 나도 상당히 괴롭혔다. 내가 2010년 여름에 프레시안 칼럼을 중단한 것에는 이 영향도 있었다. 큰 영향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정말 강력히 사찰당했을 것이다. 도청과 미행을 다반사로 당했을 것이다. 시커먼 시절이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eongtae.hong.7?fref=nf
- 3.2009년 9월 프레시안에 쓴 칼럼에서 이동관의 군역에 관한 표를 인용했다가 몇 시간 뒤 틀린 내용이 있는 걸 알게 되어 삭제했으나, 이동관에게 고소되어 경찰 조사 두 차례 11시간, 검찰 조사 9시간 등 대단히 강력한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경찰 팀장은 청와대의 지시를 받는 것으로 보였고, 내 실수에 대해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냐고 계속 물었다. 그리고 검찰은 나를 기소해서 무려 징역 1년을 구형했는데 판결을 1주일 앞두고 이동관이 고소를 취하해서 없던 일이 되었다. 변호사의 예상처럼 무죄 판결이 명백했기에 끝까지 괴롭히고 취하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아주 작은 실수를 범하고 바로 시정했으나 2009년 11월에서 2010년 7월까지 8개월 동안이나 경찰-검찰-법원에 크게 시달렸고, 덧붙여서 이 과정에서 경찰의 불법적인 실명 개인정보 유출과 동아일보의 사설을 통한 실명 거론 공격도 당했다.
4.2011년 국방부 금서 목록에 내 책 <개발주의를 비판한다>도 올랐다. 이 책은 2007년에 출판되어 문화부 우수도서로 선정됐던 책이다. 박정희 개발독재의 사회적 결과, 김대중 정부의 새만금 정책, 참여정부의 행정수도 정책 등을 생태주의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비판하는 논문집으로 개발주의와 생태주의의 사회적 연구를 진척시킨 것이나 박정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고 금서로 정했다. 금서라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그 이유도 시대의 역행을 고스란히 입증했다
나는 2004년 4월 청계천 사업의 역사 유적 파괴 문제 때문에 이명박을 서울지검에 고발했고, 2008년 운하반대교수모임의 조직을 주도했고, 여러 글들을 통해 그의 잘못들을 계속 비판했다. 그러나 나의 활동이나 글들은 별 영향력은 없었다. 이명박 쪽은 이런 나도 상당히 괴롭혔다. 내가 2010년 여름에 프레시안 칼럼을 중단한 것에는 이 영향도 있었다. 큰 영향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정말 강력히 사찰당했을 것이다. 도청과 미행을 다반사로 당했을 것이다. 시커먼 시절이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eongtae.hong.7?fref=n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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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MB 민간인 사찰, 박근혜 블랙리스트 10배"
【 앵커멘트 】 한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정두언 전 의원은 민간인 불법사찰이 국정원 특활비 상납만큼이나 핵폭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의 10배에 해당하는 범위의 민간인 사찰이 이뤄졌다는 겁니다. 김현웅 기자입니다.
【 기자 】 이명박정부의 개국공신으로 한때 활약했던 정두언 전 의원이 민간인 불법사찰이 큰 논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 인터뷰(☎) : 정두언 / 전 의원 - "MB에 대해서 비판하는 자들은 분야를 막론하고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사찰한다, 이게 민간인 사찰이거든요."
정 전 의원은 이명박정부 당시 이른바 영포회를 중심으로 공기업에 각종 이권 청탁을 했고, 요구를 안 들어주면 민간인 사찰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인터뷰(☎) : 정두언 / 전 의원 - "민간인 사찰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들이 잘 모르고 그런데 또 하나의 핵이죠.…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에 분개하는데 이건 그거의 10배 해당하는 블랙리스트죠."
정 전 의원은 국정원 특활비와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 대선 과정에서 세 차례의 위기가 있었는데, 이를 처리하는 데 돈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인터뷰(☎) : 정두언 / 전 의원 -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습니다.…그 후유증이 대통령 후까지 갑니다. 그걸 처리하는 과정에서 돈들이 필요해요."
정 전 의원은 노무현정권에 대해 5년 동안 조사했던 만큼 특별한 내용이 없을 것이라며, 이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MBN뉴스 김현웅입니다. [ Kimhw74@mbn.co.kr ]
출처 http://v.media.daum.net/v/20180119202453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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