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역사적 경험과 시대적 사명으로부터 도출한 국가의 핵심 가치를 정의 인도 동포애로 규정하고, 그에 입각하여 국가가 수행할 제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과제들을 제시한다. 그런데 정의 인도 동포애란 무엇인가? 이것들은 누구나 그 의미를 명료히 이해할 수 있는 초역사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다. 민족이 분단되어 대립하는 상황에서 ‘동포애’는 비교적 쉽게 체감되는 개념이지만, 정의와 인도는 그렇지 않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정의란 무엇인가>조차도 ‘정의’가 무엇인지 명백한 답을 주지 않는다. ‘인도’가 삼강오륜으로 압축되는 유교의 인륜과 다름은 분명하지만, 이를 몇 개의 단어나 문장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1987년 헌법은 이것들을 국가의 핵심 가치로 정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국민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동의했을까?
사실 정의 인도 동포애를 국가의 핵심 가치로 명기한 것은 1948년의 제헌헌법이었다. 1987년의 헌법 전문은 제헌헌법 전문을 일부 수정했을 뿐이다. 그리고 제헌헌법에서 규정한 정의와 인도는 1919년의 기미독립선언서에서 ‘정의의 군(軍)과 인도의 간과(干戈)’라고 표현한 ‘인류통성(人類通性)과 시대양심’이었다. 인류통성이 인도(人道)요, 시대양심이 정의(正義)다.
인도란 휴머니즘의 번역어인 인도주의를 줄인 말이다. 역사상 크게 보아 세 차례의 인도주의 고조기가 있었다. 첫째는 그리스 로마 시대. 둘째는 르네상스 시대. 셋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 앞 두 시대의 인도주의가 신에게 속박되어 있던 인간의 자립을 지향한 반면, 세 번째 인도주의는 그와 정반대 방향, 동물적 삶을 극복한 인간을 전망했다.
1859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하여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동물에서 진화한 ‘동물의 일종’임을 선언했다. 그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 진화의 원인으로 생존투쟁과 자연선택을 제시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경쟁 중심의 세계와 무척 정합적이었다. 허버트 스펜서 등의 사회과학자들은 이를 생물 진화의 원리를 넘어서는 사회와 역사 발전의 일반 원리로 정립했다. 이른바 ‘사회진화론’의 탄생이다. 모든 생명체의 삶은 자체로 동종 사이의 생존경쟁이며, 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승자만이 살아남는 것은 종의 진화뿐 아니라 역사와 문명 발전의 철칙이다. 더 날카롭고 튼튼한 이빨이 호랑이의 경쟁력이고, 더 빠른 발이 사슴의 경쟁력이며, 더 많은 재화와 지식이 인간의 경쟁력이다. 사회진화론의 세계관과 역사관은 약육강식(弱肉强食), 우승열패(優勝劣敗),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사자성어 세트로 한자 문화권에 침투하여 사람들의 의식을 장악했다. 경쟁만이 역사를 발전시키며, 강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세계를 지배했다. 이런 생각에서는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는 것도,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수탈하는 것도, 백인이 유색인을 학살하는 것도 결코 죄가 아니었다. 이것들은 자연법칙에 충실한 행위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제국주의는 이런 생각이 지배하는 세계를 즐겼다. 그런데 제국주의의 식민지 분할이 예선이라면, 제1차 세계대전은 승자들끼리 싸우는 본선이었다. 경쟁의 최후 형식은 전쟁이다. 경쟁이 문명 발전의 유일한 동력이라는 생각은, 문명의 성취들을 무참히 파괴하는 전쟁을 겪으며 여지없이 깨졌다. 사람들은 무한 경쟁의 종착점이 인류의 공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의 삶을 동물적 생존경쟁과 다른 차원으로 옮겨 놓는 일은 절체절명의 시대적 요구였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 인도주의가 되었다. 약한 민족에게도 자기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민족자결주의도, 인도주의의 한 구성요소였다.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는 사회진화론이 퇴조하고 인도주의가 부상하는 상황을 ‘인류적 양심의 발로에 기인한 세계개조의 대기운’으로 규정하고 ‘위력의 시대가 거(去)하고 도의의 시대가 래(來)하도다’라고 선언했다.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가 모두 ‘공존동생권’을 갖는 것이 3·1운동이 주창한 ‘인도’이며, 이 인도에 부합하는 것이 ‘정의’였다. 정의는 힘이 아니라 배려와 이해, 연대와 협력으로 구현되는 것이었다. 1948년 제헌헌법은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이 건국했다고 선언했을 뿐 아니라, 3·1정신의 요체인 정의 인도를 국가의 핵심가치로 천명했다. 이 가치는 1987년 헌법에 그대로 승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사회는 사회진화론을 소생시키고 경쟁 만능의 세계를 재구축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사회진화론이 무덤에서 나와 신자유주의 뉴라이트로 부활했다.
개헌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정의 인도 동포애라는 핵심가치는 바꾸지 않기 바란다. 삼일절 100주년이 이제 13개월여밖에 안 남았다. ‘구사상 구세력에 기미(羈미)된’ 이전 정권은 건국절 제정 운운하며 민간의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조차 백안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 현충원 방명록에 “건국 100년을 준비하겠다”고 썼지만, 제대로 준비하기에는 시일이 너무 촉박하다. 그래도 서울에 기념관과 기념탑 하나씩은 세웠으면 한다. 3·1운동 100년이 되도록 발원지인 서울에 3·1운동을 오롯이 기념하는 구조물이 하나도 없다는 건, 우리 자신과 후손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이는 정의 인도의 가치를 되새기고, 전 인류 공존동생권, 즉 모든 인간이 함께 살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이룩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이상이라는 생각을 공유하며 전승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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