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때 살았던 광주 지산동에 사는 ‘배은심 엄마'가 영화 <1987>에서 당신의 아들 역을 한 배우 강동원에게 “애기야, 김장김치 가져가렴”이라고 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내 입에서 엄마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열이 엄마는 집에 온 배우에게 그랬을 것이다. 아이고, 이쁜 울애기 왔네에.
전라도에서 태어난 우리 엄마는 살아생전 전라도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진짜배기 전라도말을 썼다. 엄마말은 전라도말 하면 흔히 떠올리기 쉬운 ‘조폭식’ 억양도 아니고, 요즘의 ‘테레비말’로 오염된 서울말 비슷한 말도 아니다. 순하디순한 전라도 엄마들 말은 말이 아니라 꽃 같았다. 채송화나 봉숭아 같았다. 애기들한테 아가라고 부르면서도 곧잘 높임말 비슷하게 하신가체를 썼다. 뭐뭐 허신가아, 울애기 추우신가, 더우신가. 또 뒷말에 뭐뭐 ‘하소 와’라고 했다. 학교 파허고 핑 오소 와. 집안일이 바쁘니 학교 끝나면 빨리 오라는 뜻이다.
예전에 나는 이 세상의 엄마들은 다 우리 엄마(들)처럼 말하는 줄 알았다. 흙 묻은 머릿수건을 급하게 벗으며, 오메 울애기 배고파서 기함 드시겄네에, 젖을 물리던 엄마들만 봐와서인지는 몰라도 전라도말을 쓰지 않는 엄마들한테는 왠지 정이 안 갔다. 그렇게 정이 담뿍 든 말을 쓰는 전라도 엄마들은 아이들을 ‘애기’라고 불렀다. 크든 작든, 모든 아이들한테, 내 아이뿐 아니라 모르는 아이한테도, 그 자식들이 스무살이나 서른살이 되었어도 전라도 엄마들은 아가, 라고 했다.
내 귀에는 그 말이 ‘악아’라고 들려서 전라도 엄마들이 아이를 부르는 장면을 묘사할 때 나는 늘 ‘악아’라고 표현했다. 전라도 아버지들은 잘 쓰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어느 집 자식이 먼 데서 돌아오면 이녁 자식처럼 살갑게 오메 울애기 오네에, 볼을 부비던 우리 엄마들도 한때는 ‘큰애기들’이었다. 시집 안 간 아가씨를 일러 전라도에서는 큰애기라고 했다. 큰애기들은 늘 한데 모여 일하고 노래하고 몰려다녔다. 읍내에 서커스 같은 굿이 들어오면 ‘말만한 큰애기’들 구경하는 것도 솔찮은 재미였다. 그 큰애기들은 나이 열일곱, 늦으면 열아홉, 그보다 아주 늦으면 스물을 넘겨 시집을 갔다. 그래서 요즘으로 치면 애기가 애기를 낳았다. 이제 막 시집온 새댁들을 ‘풋각시’ 혹은 풋각시에서 변형된 ‘폭각시’라고 불렀다.
그 폭각시들은 시누이를 ‘애기씨’라고 불렀다. 말만한 큰애기인 애기씨들과 폭각시들은 나이대가 비슷해서 함께 잘 놀고 함께 잘 일했다. 애기씨들과 폭각시들은 겨울 긴긴 밤에 넓적한 ‘옹구’에다 물을 담고 박바가지를 엎어놓고는 밤새 뚜드리고 놀았다. 애기씨들과 폭각시들은 미영밭에서 ‘노래노래’ 부르며 미영을 땄다. 미영을 따서 미영씨를 발라내고 물레를 돌려 실을 잣고 ‘실것’에 걸어 실을 나서 베틀에 걸어 미영베를 짰다. 우리 엄마들은 그때 겨우 스물 이쪽 저쪽이었다. 그래도 엄마들은 어쩌면 그리 애기 같지 않고 ‘오래된 엄마’들 같았는지.
내가 한때 살았던 광주 지산동에 사는 ‘배은심 엄마’가 영화 <1987>에서 당신의 아들 역을 한 배우 강동원에게 “애기야, 김장김치 가져가렴”이라고 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내 입에서 엄마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열이 엄마에게 자식 또래 ‘애기’들은 다 당신의 자식 같을 것이니, 66년생 한열이보다 세 살 많은 나에게도 한열이 엄마는 ‘우리엄마’ 같다. 우리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전라도 엄마인 한열이 엄마에게도 내 새끼 남의 새끼 따로 없이 세상의 새끼들은 다아 ‘이쁜 울애기’다. 그래서 한열이 엄마는 집에 온 배우에게 그랬을 것이다. 아이고, 이쁜 울애기 왔네에.
아들 넷과 딸 그리고 손주를 천주교 성직자로 키운 한 할머니에 관한 글의 한 대목을 읽다가 한참을 책을 가슴에 안고 울었다. 이제 막 신부 서품을 받은 아들에게 어머니는 아들이 애기 때 입었던 옷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신부님, 신부님도 이렇게 작은 애기였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탯줄을 자른 할머니에게 새해 인사를 했다고 한다. 아, 문재인 대통령도 한때는 애기였구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아, 한때는 애기였다. 선인도 악인도 세상 똑똑한 사람도 세상 어리석은 사람도 다아. 이제 엄마가 된 나는 이 엄동설한에 죄없이 죽어간 세상의 애기들에 관한 나쁜 소식들을 듣는다. 우리 엄마들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을 위해 하던 것처럼 애기들아, 애기들아, 이 세상 나쁜 것들은 다 잊어불고 부디 좋은 데로, 한사코 좋은 데로, 좋은 데로만 가소 와아. 나는 그저 먼 데서 손만 비비고 있다.
예전에 나는 이 세상의 엄마들은 다 우리 엄마(들)처럼 말하는 줄 알았다. 흙 묻은 머릿수건을 급하게 벗으며, 오메 울애기 배고파서 기함 드시겄네에, 젖을 물리던 엄마들만 봐와서인지는 몰라도 전라도말을 쓰지 않는 엄마들한테는 왠지 정이 안 갔다. 그렇게 정이 담뿍 든 말을 쓰는 전라도 엄마들은 아이들을 ‘애기’라고 불렀다. 크든 작든, 모든 아이들한테, 내 아이뿐 아니라 모르는 아이한테도, 그 자식들이 스무살이나 서른살이 되었어도 전라도 엄마들은 아가,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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