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북스
브랜드는 타이포다. 긁힌 자국을 의미했던 타이포는 ‘펭귄북스의 구성 법칙’ 이후 평면 공간 구성에 집중한다. 타이포는 ‘긁기’의 압박이 가해져 획이 살아난 것. 거기서 필체는 필력이 된다. 그것 때문에 타이포에 에너지의 흐름이 생기고 책은 에너지를 머금는다.
■ 글자는 ‘긁자’에서 시작됐다
영어 타이포그래피의 ‘타이포(typo-)’는 글자를 인쇄하기 위해 만든 활자였다. 활판 인쇄가 사라진 지금 ‘타이포’라 할 때는 그저 서체나 그 서체의 배치 정도로 이해된다.
하지만 ‘타이포’의 핵심은 ‘긁기’에 있었다. 종이가 없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사람들은 밀랍판에 철필을 긁어 기록했다. 밀랍으로 돼 있기에 긁힌 자국을 쉽게 문질러 없앤 뒤 다시 긁어 글과 그림을 남겼다. 로마인들이 사용한 밀랍판이 오늘날 ‘태블릿’의 어원인 ‘타블라(tabula)’이고, 철필은 ‘스타일’의 어원인 ‘스틸루스(stilus)’였다. 긁힌 자국을 라틴어로는 영어 ‘form’의 어원인 ‘포르마(forma)’라 했다. 이 단어의 그리스어가 ‘튀포스’다.
그러니까 ‘튀포스’는 뭔가에 긁힌 자국으로 일종의 압박에 눌려 들어간 흔적. 우리말 ‘글’과 ‘그림’의 어원도 ‘긁다’라고 한다면, 긁기의 매력은 고대 동서양을 막론하는 것이다. ‘긁기’에 대한 다음 시를 보자.
“창작, 긁어대기 시작한다
창작, 긁어대기 시작한다”
(황병승, ‘첨에 관한 아홉소 ihopeso 씨(氏)의 에세이’, <트랙과 들판의 별>에서)
‘I hope so’에서 따온 화자 ‘아홉소’는 ‘창작’을 ‘긁어대기’라고 한다. 힘주어 꼭꼭 눌러 ‘긁은 글씨’로 더 이상 쓸 수 없는 시인은 “창작, 긁어대기 시작한다”를 굵은 글씨체로 처리했다. 맘이든 몸이든 긁어댔다면 그 어딘가에 자국이 남을 것이요, 그것은 곧 창작이 된다.
타이포그래피로 가장 큰 자극을 준 출판사가 있다. 바로 펭귄북스, 이 출판사의 북디자인은 타의 추종을 ‘부추긴다’. 펭귄북스의 디자인 정체성은 그곳의 아트디렉터였던 얀 치홀트가 마련한 것. 그가 펭귄북스에서 일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 펭귄북스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1935년 설립된 펭귄북스는 얀 치홀트가 오기 전 문고서적으로 일대 전성기를 구가했다. 특히 1940년부터 있었던 종이의 할당과 전투복 주머니, 일명 ‘펭귄 포켓’에 휴대가 간편한 판형, 그리고 전 세계에 파병된 영국군과 연합군 병사들에게 도서를 공급할 권리 획득으로 ‘군 도서 클럽’이라는 총서를 발간한다. 게다가 제대 군인을 위한 ‘직업교육부서’가 생기고, 1943년에는 ‘전쟁포로’를 위한 도서 계획이 세워졌으며, 전쟁이 끝난 1945년에는 ‘병역 에디션’ 총서가 발간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인쇄 기술과 활판 세팅 방식이 도입되면서 출판사들은 표지디자인을 내지로부터 분리하고, 전문적인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사진가를 고용했다. 대중화된 문고판 시장을 둘러싼 출판 시장의 경쟁이 점차 가열되면서 펭귄북스의 창업자 앨런 레인은 큰 고민에 빠진다. 당시 표지디자인을 여러 번 새롭게 시작했지만 앨런 레인은 ‘혼란스럽기만 한 이미지’라 여겼고 명성을 잃어 가던 차에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를 주창하는 얀 치홀트를 1947년 펭귄북스로 초빙했다.
얀 치홀트는 인쇄와 정보의 양이 증가함에 따라 독자들이 단순명료한 디자인을 원한다고 확신했다. 화려한 서체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불필요한 장식이어서 독자들에겐 더 이상 그 현란함에 대한 끌림이 없었다.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의 핵심은 단순성이다.”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그는 1947~1949년까지 2년여 동안 펭귄북스에서 총 네 쪽으로 된 ‘펭귄북스 구성 법칙’을 만들었다. 여기서 그는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자세한 설명뿐만 아니라 표준화된 포맷도 개발했다. 문단의 길이나 자간과 같은 본문 구성, 그래픽디자인, 타이포포토, 포토몽타주 등의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밝혔다.
이전까지 편집자에게 타이포그래피란 인쇄 교육 기간에 잠시 익히는 수업 과정에 불과했다. 문단의 배치나 레이아웃 따위는 전적으로 활판 인쇄공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펭귄북스 구성 법칙’은 20세기 후반 유럽인들의 출판과 독서 행위에 근본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현대에 만들어진 인쇄물은 어떤 것도 현대의 표식을 붙여야만 하며 과거 인쇄물의 모방이어서는 안된다.” 이런 주장을 펼쳤다고 해서 얀 치홀트의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를 과거와 전혀 이질적인 디자인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이전부터 있었던 구두점, 서체의 크기와 기울기, 책 높이와 너비, 활자가 차지하는 공간, 표지의 규격, 책등의 스타일과 제목 서체 등을 새롭게 구성했을 뿐이다.
얀 치홀트는 미묘한 수정을 가해 전체적으로 시각적 효과를 높이고자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그의 업적은 그리드 체계였다. 특히 책 표지에 수평 그리드를 만들고 책 내용이나 저자와 관련된 목판화 그림을 넣은 뒤 그 그림 아래위에 글자를 넣었다. 또한 표지 양쪽에 수직 그리드를 넣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출판사의 로고인 펭귄의 모습을 세밀하게 수정했다. 그로 인해 20세기 후반 펭귄북스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현대적인 감수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 사라져 버린 ‘긁기’의 물질성을 평면 구성으로 되살리다
오늘날은 디지털 타이포그래피 시대다. 과거 타이포그래피와는 달리 창조적인 서체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전자책보다는 종이책 매출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전자책이 종이책과 동일한 내용과 이미지를 표현한다 해도 종이책의 물질성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종이책은 우리의 다양한 감각에 감정을 더 많이 불어넣는 자극을 지닌다. 거기엔 세월을 품은 특유의 향이 있고 손가락에 만져지는 질감과 활자의 감촉이 있다. 책에는 책장을 넘길 때 대기의 습도에 따른 다양한 소리가 있다. 이 모두가 3차원 이상의 오브제가 줄 수 있는 자극인 것. 그 자극을 통해 인간은 몰입의 기쁨을 얻을 수 있다. 종이책은 우리의 오감을 만족시킨다.
타이포그래피적 물질성이 지녀야 할 리얼리티의 본질은 획의 공간감을 살리는 것이다. 얀 치홀트는 이런 공간성이 이제 평면 구성에서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모든 타이포그래피는 평면에서의 디자인이다. (……) 우리는 낱말이나 글줄을 만드는 활자의 역할을 넘어 평면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서 활자의 역할도 주목해야 한다. (……) 바로 여기서 디자인 작업, 다시 말해 타이포의 가치(Formwert)에 질서를 불어넣는 작업이 시작된다.”(얀 치홀트,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에서)
‘타이포의 가치’란 무엇일까? ‘타이포’가 본래 ‘긁기’라는 행위에서 생겼다면 필체란 표면이 필기구에 의해 긁힌 흔적에 다름 아니고, 그것을 통해 우리에게 공간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공간감각 맥락에서 서체를 이해한다면 그 깊이는 필기구에 가한 압력이고 획의 굵기는 깊이와 비례한다. 특히 필기구의 단면에 있어서 쐐기형이나 납작펜의 직사각형은 획의 유연한 회전성과 획의 끊어짐에서 더욱 특이한 공간감을 준다. 우리는 글자의 획에서 에너지의 흐름과 그 공간감을 어림하는 것이다.
과거 원래의 글자는 긁히고 읽히는 순간 시각, 촉각, 청각 등 다양한 감각이 하나로 합쳐진 공감각적인 체험을 선사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타이포’는 평면 구성을 통한 공간성으로 수렴된다. 같은 길이의 한 획이라도 서로 다른 넓이의 두 평면에 놓였을 때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글자는 2차원 평면에 구성되어 긁힘의 3차원 공간성을 대체한다.
타이포그래피를 평면 구성, 즉 공간 배치의 문제로 검토한다는 것은 글자 획의 움직임과 융합되어 어떤 힘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타이포그래피와 함께 책의 내용과 책의 재질은 한층 아름다워지고 단순한 지식을 뛰어넘는 지평이 열린다. 전자책은 아직까지 종이책만 한 평면 구성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디지털은 필체와 획의 깊은 긁힘의 공간성을 평면 구성으로 가져오지 못한 것이다.
■ 펭귄북스의 일관성과 창작
얀 치홀트 이후 펭귄북스의 디자이너들은 제르마노 파셰티, 로멕 마버, 데릭 버솔, 데이비드 펠헴, 그리고 데이비드 피어슨 등이었다. 이들이 출판사를 이끌면서 ‘펭귄 시인선’, ‘설계, 디자인 그리고 미술책 총서’, ‘참고 문헌 총서’, ‘핸드북 총서’, ‘펭귄 클래식 총서’, ‘펭귄 현대작가선’, ‘현대화가들 총서’, ‘퍼핀 시리즈’ 등이 출간되었다.
모든 펭귄북스의 총서에서 출판사의 일관성이 드러나는데, 그 이유는 디자이너들이 얀 치홀트의 정신을 물려받았고 그가 시도한 개혁을 계속하였기 때문이다. 얀 치홀트는 기준이 되는 색팔레트를 만들고 레이아웃을 정교하게 표준화했다. 내용면에서도 표지의 오렌지색은 픽션, 녹색은 추리소설, 어두운 청색은 전기문학, 선홍색은 여행과 모험소설, 그리고 빨간색은 희곡을 각각 상징했다. 그뿐만 아니라 얀 치홀트의 수정을 거쳐 좀 더 명확해진 펭귄의 로고는 2003년까지 큰 수정 없이 사용되었다.
서두에서 ‘창작’을 ‘긁어대기’라고 했던 시인은 그 앞 구절에서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무엇을 창작이라 하는지 밝히고 있다. 다음을 보자.
“이를테면, 포엣poet, 온리only, 누벨바그nouvellevague,
그것은 어딘가로부터 몰려와 낡은 것을 휩쓸고 어딘가로 다시 몰려가는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그것은 정지이고 정지의 침묵 속에서 비극을 바라보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서서히 바뀌는 것이다”(황병승, ‘첨에 관한 아홉소 ihopeso 씨(氏)의 에세이’, <트랙과 들판의 별>에서)
그 창작자에 대해 화자는 “이를테면, 포엣poet, 온리only, 누벨바그nouvellevague”, 그러니까 “시인은 오직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는 자”라 말한다. 포엣의 뿌리어인 그리스어 ‘포이에테스’가 ‘만드는 자’라는 사실로 볼 때, (창)작가는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자이다. 우리는 ‘긁어대기 시작’하는 창작자에 시인, 소설가, 극작가, 드라마 작가, 블로거, 타이포그래퍼 등을 총망라한다.
창작과 긁기의 뗄 수 없는 관계를 화자는 “그것은 어딘가로부터 몰려와 낡은 것을 휩쓸고 어딘가로 다시 몰려가는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그것은 정지이고 정지의 침묵 속에서 비극을 바라보는 것에 가깝다 그리고 서서히 바뀌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멋진 ‘타이포’에 대한 설명이 있을까. 창작은 낡은 것을 휩쓸고 몰아붙여 일단 ‘정지’시키지만 그 침묵 속에서 서서히 바꾸는 것이다. 몸에 난 상처를 볼라치면 그 자국은 말라붙은 낡은 딱지로 서서히 아물게 된다. 언제 아물지 정지된 듯 침묵하고 있는 그 상흔의 침묵을 슬프게 바라보다가 불현듯 새살이 돋은 자리를 본다.
이쯤에서 얀 치홀트가 위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설명하면서 밝혔던 두 마디를 보자. “현대에 만들어진 인쇄물은 어떤 것도 현대의 표식을 붙여야만 하며 과거 인쇄물의 모방이어서는 안된다.” “모든 타이포그래피는 평면에서의 디자인이다.”
그의 앞 문장은 “그것은 어딘가로부터 몰려와 낡은 것을 휩쓸고 어딘가로 다시 몰려가는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의 시구와 들어맞고 그의 뒤 문장은 “그것은 정지이고 정지의 침묵 속에서 비극을 바라보는 것에” 해당한다.
타이포그래퍼들은 오늘도 책의 내용과 걸맞은 서체를 만들고 글자를 골라 평면을 구성한다. 무수한 출력을 통해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가 3차원 오브제로 나온다. 책을 만드는 공정에서 공간감이 살아난다. 과거 긁기로 표시했던 ‘타이포’의 공간감이 부활한 것이다. ‘타이포’가 살아났다!
글자는 ‘긁기’의 압박이 가해져 획이 살아난 것. 거기서 필체는 필력이 된다. 타이포에 에너지의 흐름이 있다. “세상은 도서관”이라고 한 보르헤스의 말대로라면, 사람은 책이다. 당신은 자신의 인생책에 어떤 자국을 남길 것인가? 인생의 책을 제작하려면 말이다. 우리의 생채기에 창작이 있다. 책 속에 에너지가 흐르듯 당신의 글자는 ‘긁자’에서 시작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262052005&code=960100#csidx2d991a52c808e88adbc8922790e88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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