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근무제 10년… 생활의 재발견
“근로시간을 단축해 삶의 질은 개선하되 임금 삭감은 안 된다.”(노동계)
“법정 근로시간을 줄이면 인건비 부담으로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다.”(재계)
2000년 5월 당시 최선정 노동부 장관이 “법정 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히자 노사는 찬반 공방을 벌였다. 논쟁은 종교계에까지 번졌다. 불교계는 “산사(山寺) 순례생활을 하는 신도가 늘 것”이라며 환영했지만 기독교계는 “주말에 여행을 가는 등 교회에 오는 신도가 줄어든다”며 반대했다.
나라 전체가 3년 넘게 홍역을 앓은 끝에 2003년 8월 ‘주5일 근무제(주5일제)’의 근거가 된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리고 2004년 7월, 마침내 주5일제가 시행됐다. 정부는 근로자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문화 관광 레저 등 새로운 내수산업이 발전할 것으로 기대했다. 근로시간이 줄면 추가 고용이 5.2% 증가할 거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왔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주5일제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2005년 레저시장 규모는 37조9815억 원으로 전년(34조5140억 원)에 비해 10.5% 증가했다. 전해 ―0.1%로 뒷걸음질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후 레저시장 규모는 꾸준히 커져 지난해 57조1813억 원 규모에 이르렀다. 2004년과 비교하면 65.7%나 높아진 수치다.
주5일제가 시행된 지 10년.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취업자의 주당 근로시간은 2003년 49.1시간에서 지난해는 43.1시간으로 6시간이나 줄었다. 근로문화도 오랜 시간 일하는 ‘양’ 중심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일하는 ‘질’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가 실감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주5일제가 대한민국 사회에 불러온 변화를 구석구석 살펴봤다.
▼ 회식은 木요일, 동창회는 金요일… 주말은 가족과 ▼
레저의 재발견
유흥가 대목 ‘金-土’서 ‘木-金’으로… 가족 단위 나들이 크게 늘어
2014년 캠핑인구 300만명 예상… 4년만에 5배로 크게 늘어
“신토불이!”
2000년대 초 한 TV 예능프로그램 ‘천생연분’의 진행자 강호동이 오프닝 때마다 이렇게 외쳤다. ‘우리 게 소중한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신나는 토요일 불타는 이 밤”의 줄임말이다. 당시 토요일 밤은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직장인 회식이 많았던 금요일과 함께 토요일은 유흥가의 대목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일주일 내내 손꼽아 기다리던 ‘신나는 토요일’은 ‘불타는 금요일(불금)’에 자리를 내줬다. 직장인의 회식자리는 자연스럽게 금요일에서 목요일로 당겨졌다. 주말에 이틀을 온전히 쉴 수 있게 되면서 1박 2일, 2박 3일로 떠나는 캠핑이 여가활동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주 5일근무제 시행 10년이 가져온 변화다.
목요일은 ‘회식 데이’
6일(목) 오후 7시경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BBQ종로관철점. 제너시스BBQ 본사 직원 6명이 모였다. 이날은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호프(Hope)데이’다. 주로 3년차 이하 주니어급 직원들의 소통을 위해 만든 자리다. 호프데이 회식은 언제나 목요일에 열린다. 금요일 회식은 10년 이상 회사를 다닌 고참들의 추억 속에만 남아있다. 제너시스BBQ 운용본부 선한성 주임(30)은 “지금은 목요일 회식이 대세”라며 “금요일에 정상근무를 하다 보니 회식 자리도 길지 않고 술도 덜 마시는 게 목요일 회식의 특징이다”라고 전했다.
식당과 술집의 풍경도 바뀌었다. 1996년부터 서울 광화문에서 한식당을 운영해온 김시영 씨(55)는 “딱 금요일 점심까지만 손님이 많다”며 “금요일 단체회식 예약을 받아도 막상 오는 손님을 보면 예약한 숫자보다 적을 때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요즘 택시기사들이 가장 바쁜 날도 목요일이다. 2년째 택시를 몰고 있는 김모 씨(59)는 “지난해 택시비가 인상된 뒤 전체적으로 손님이 줄었지만 그나마 목요일에는 돈을 좀 번다”며 “목요일 밤에는 직장인이 많은 여의도와 강남에서 수입이 특히 짭짤하다”고 전했다.
뜨거운 ‘불금’
7일(금) 오후 6시경 서울 강남구 지하철 3호선 신사역 8번 출구 앞. 이제 막 퇴근한 직장인들의 발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가로수길. 오후 7시경 일대 식당마다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하더니 8시를 넘자 대부분 식당에서 빈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한 족발가게에서 만난 30대 남성 직장인 3명은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리려는 듯 와이셔츠 단추까지 풀어헤친 채 건배를 했다.
용산구 이태원도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낳은 명소 가운데 한 곳이다. 매주 금요일 밤 이태원역 2번 출구로 나와 골목으로 걸어가면 나오는 세계음식 문화거리는 20, 30대 직장인들과 외국인들로 넘쳐난다. 근처 경리단길, 해방촌도 불금이면 뜨겁게 달아오르는 명소가 됐다. 광화문 근처 회사의 4년차 직장인 전모 씨(27·여)는 “불금에는 직장 동료보다 친구들을 만나 즐긴다. 회사 근처에 약속을 잡으면 혹시라도 직장상사와 마주칠 수 있어 부담스럽다. 기왕이면 분위기 좋은 카페, 술집이 몰려 있는 이태원이나 가로수길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로수길에 일본식 선술집을 낸 최모 씨(33·여)는 “금요일 저녁이면 평소보다 3배 이상의 손님이 몰린다”며 “금요일 장사는 토요일 오전 4시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주말은 ‘가족 데이’
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가장 큰 특수를 누리는 곳은 레저업계다. 이틀간의 휴일이 주어지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덕분이다. 여가활동의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은 바로 ‘캠핑’.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0년 60만 명이었던 캠핑인구가 올해 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1박 2일’ ‘아빠. 어디가’처럼 짧은 여행을 소재로 한 TV 예능프로그램은 시청률 보증수표가 됐다. 석영준 대한캠핑협회 사무총장은 “과거 캠핑족들이 주로 40대 남성이었다면 최근에는 가족 단위 캠핑족이 대부분으로 캠핑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8일 오후 취재진이 찾은 경기 가평군 자라섬 캠핑장에도 가족 단위 캠핑객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은 서울에서 멀지 않고 면적이 넓어 대표적인 가족 친화형 캠핑장으로 불린다. 이날도 아이는 폴대를 들고 아빠는 망치를 두드리며 텐트를 설치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캠핑장 내 설치된 100여 개의 텐트 중에서 커플족의 텐트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캠핑 2년차인 이상원 씨(40) 가족은 이제 한 달에 두세 번 짐을 꾸려 떠날 정도로 캠핑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이날도 온 가족이 힘을 합쳐 텐트를 설치한 뒤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씨의 아내인 박정선 씨(40)는 “콘도나 펜션으로 휴가를 떠나면 (집에 있는 것처럼) TV만 보다 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캠핑은 자연 속에서 가족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직장인과 가족의 문화를 바꿔놓은 ‘주 5일제의 힘’이었다.
▼ 근무시간 줄었지만… 기업 생산성은 되레 높아졌다 ▼
근로의 재발견
법정근로 週 44시간서 40시간으로… 연공서열 대신 직급 파괴 늘고
현장 출장은 화상회의로 대체… 양보다 질 ‘똑똑한 근무’ 확산
SK텔레콤은 2007년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직급서열을 파괴한 ‘매니저 제도’를 도입했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나뉘던 직급을 폐지하고 ‘매니저’라는 호칭으로 바꿨다. 수직적 서열에 따른 경직된 조직문화를 업무 중심의 수평적 문화로 바꿔 보자는 취지였다. 이 회사는 능력 위주로 선발한 팀장이 각 업무를 책임지면서 업무 효율화까지 꾀했다.
SK텔레콤이 이런 변화에 나선 건 10년 전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한 게 결정적이었다. 업무시간이 줄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해야 할 상황이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기존의 연공서열 중심의 조직으로는 과거와 같은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장기 근로’에서 ‘효율적 근로’로
주5일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되면서 국내 대기업의 조직문화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업무시간이 주44시간에서 주40시간으로 줄어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해야 하는 현실적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이 때문에 매니저 제도 같은 다양한 인사 시스템뿐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 활용하는 ‘스마트워크’ 시스템도 일반화됐다. 예컨대 해외 출장 업무가 발생해도 반드시 현장을 방문할 필요가 없으면 화상회의나 콘퍼런스 콜(여러 명이 동시에 하는 전화회의)로 진행하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
주5일제 도입 전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중심으로 한 재계의 우려가 많았다. 재계는 “주5일제 도입은 단순한 근로시간의 단축이 아닌, 나라 전체의 근무일수가 하루 줄어드는 대단히 크고 근본적인 변화”라며 “기업 생산성 저하 문제 등 사회적 비용이 매우 크다”고 걱정했다. 또 “근로시간 단축으로 소득이 줄고 자유시간이 늘어난 근로자들은 줄어든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다른 직업을 갖거나 파트타임 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신규 고용창출은 물론이고 삶의 질 향상도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스마트워크가 보편화되면서 기업의 생산성은 떨어지지 않았다. 원격기술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업무 시스템이 일터에서의 근무시간을 줄였다. 다만 실질적인 근로시간은 줄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의 한 직원은 “쉬는 날에도 스마트폰으로 간단한 업무 처리가 가능해 업무와 관련한 연락이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영세기업에 주5일제는 ‘그림의 떡’
다만 중소기업의 경우 주5일제로 인한 영향은 업종과 규모에 따라 편차가 있다. 제도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업종과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된 탓이다.
주5일제 도입 당시에는 중소기업이 더 큰 피해를 볼 거라는 분석도 나왔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인 126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주5일제 시행으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9% 정도 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소기업중앙회가 182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인건비 복리후생비 등 제반 비용이 평균 20% 상승하고, 제품 단가도 16%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이때 대기업에 비해 자금과 인력이 충분치 않은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은 추가 인력을 고용해서라도 생산량을 달성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하루 생산량을 늘리자고 추가 인원을 뽑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런 일부 중소기업의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부품소재 전문 중소기업인 SJ테크의 경우 2006년 매출액이 주5일제 도입 이전에 비해 50% 이상 늘었다. 유창근 SJ테크 대표는 “2004년 개성공단에 입주해 생산기지로 활용하고 국내 본사 인력의 자기 계발을 지원하면서 관리와 기술개발 역량을 끌어올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주5일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중소기업도 있다. 건설 장비를 제조하는 중소기업인 B사는 직원 복지와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며 주5일제를 앞장서 시행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오히려 직원들이 노는 시간만 늘어난 게 아닌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이 회사의 김모 대표는 “주5일제에는 찬성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가 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살릴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규모가 작은 영세기업에 주5일제는 먼 나라 얘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 생산량이 유동적이어서 주5일 근무를 보장해 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로 부족해진 일손을 메우려면 사람을 더 뽑거나 설비를 새로 들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직원이 50여 명인 대구의 한 중소 금속기계 제조업체에 다니는 이모 씨는 “지금도 2주에 한 번만 주5일 근무를 한다”며 “애초부터 대기업을 위한 제도였다”고 푸념했다.
근로조건이 열악한 회사의 사무직은 생산직보다 주5일 근무에 따른 불만이 더 크다. 생산직은 주말에 출근하면 수당을 받지만 연봉제인 사무직은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샘물 evey@donga.com·강홍구·임우선·최고야·정세진·김호경·김창덕 기자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41115/67903979/1#csidxddfb8e53f042e4eb21cc85d09d6b464
“법정 근로시간을 줄이면 인건비 부담으로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다.”(재계)
2000년 5월 당시 최선정 노동부 장관이 “법정 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히자 노사는 찬반 공방을 벌였다. 논쟁은 종교계에까지 번졌다. 불교계는 “산사(山寺) 순례생활을 하는 신도가 늘 것”이라며 환영했지만 기독교계는 “주말에 여행을 가는 등 교회에 오는 신도가 줄어든다”며 반대했다.
나라 전체가 3년 넘게 홍역을 앓은 끝에 2003년 8월 ‘주5일 근무제(주5일제)’의 근거가 된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리고 2004년 7월, 마침내 주5일제가 시행됐다. 정부는 근로자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문화 관광 레저 등 새로운 내수산업이 발전할 것으로 기대했다. 근로시간이 줄면 추가 고용이 5.2% 증가할 거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왔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주5일제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2005년 레저시장 규모는 37조9815억 원으로 전년(34조5140억 원)에 비해 10.5% 증가했다. 전해 ―0.1%로 뒷걸음질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이후 레저시장 규모는 꾸준히 커져 지난해 57조1813억 원 규모에 이르렀다. 2004년과 비교하면 65.7%나 높아진 수치다.
주5일제가 시행된 지 10년.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취업자의 주당 근로시간은 2003년 49.1시간에서 지난해는 43.1시간으로 6시간이나 줄었다. 근로문화도 오랜 시간 일하는 ‘양’ 중심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효율적으로 일하는 ‘질’ 중심으로 탈바꿈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가 실감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주5일제가 대한민국 사회에 불러온 변화를 구석구석 살펴봤다.
▼ 회식은 木요일, 동창회는 金요일… 주말은 가족과 ▼
레저의 재발견
유흥가 대목 ‘金-土’서 ‘木-金’으로… 가족 단위 나들이 크게 늘어
2014년 캠핑인구 300만명 예상… 4년만에 5배로 크게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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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떨까. 일주일 내내 손꼽아 기다리던 ‘신나는 토요일’은 ‘불타는 금요일(불금)’에 자리를 내줬다. 직장인의 회식자리는 자연스럽게 금요일에서 목요일로 당겨졌다. 주말에 이틀을 온전히 쉴 수 있게 되면서 1박 2일, 2박 3일로 떠나는 캠핑이 여가활동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 주 5일근무제 시행 10년이 가져온 변화다.
목요일은 ‘회식 데이’
6일(목) 오후 7시경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BBQ종로관철점. 제너시스BBQ 본사 직원 6명이 모였다. 이날은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호프(Hope)데이’다. 주로 3년차 이하 주니어급 직원들의 소통을 위해 만든 자리다. 호프데이 회식은 언제나 목요일에 열린다. 금요일 회식은 10년 이상 회사를 다닌 고참들의 추억 속에만 남아있다. 제너시스BBQ 운용본부 선한성 주임(30)은 “지금은 목요일 회식이 대세”라며 “금요일에 정상근무를 하다 보니 회식 자리도 길지 않고 술도 덜 마시는 게 목요일 회식의 특징이다”라고 전했다.
식당과 술집의 풍경도 바뀌었다. 1996년부터 서울 광화문에서 한식당을 운영해온 김시영 씨(55)는 “딱 금요일 점심까지만 손님이 많다”며 “금요일 단체회식 예약을 받아도 막상 오는 손님을 보면 예약한 숫자보다 적을 때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요즘 택시기사들이 가장 바쁜 날도 목요일이다. 2년째 택시를 몰고 있는 김모 씨(59)는 “지난해 택시비가 인상된 뒤 전체적으로 손님이 줄었지만 그나마 목요일에는 돈을 좀 번다”며 “목요일 밤에는 직장인이 많은 여의도와 강남에서 수입이 특히 짭짤하다”고 전했다.
뜨거운 ‘불금’
7일(금) 오후 6시경 서울 강남구 지하철 3호선 신사역 8번 출구 앞. 이제 막 퇴근한 직장인들의 발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가로수길. 오후 7시경 일대 식당마다 사람들이 들어차기 시작하더니 8시를 넘자 대부분 식당에서 빈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한 족발가게에서 만난 30대 남성 직장인 3명은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리려는 듯 와이셔츠 단추까지 풀어헤친 채 건배를 했다.
용산구 이태원도 ‘불금(불타는 금요일)’이 낳은 명소 가운데 한 곳이다. 매주 금요일 밤 이태원역 2번 출구로 나와 골목으로 걸어가면 나오는 세계음식 문화거리는 20, 30대 직장인들과 외국인들로 넘쳐난다. 근처 경리단길, 해방촌도 불금이면 뜨겁게 달아오르는 명소가 됐다. 광화문 근처 회사의 4년차 직장인 전모 씨(27·여)는 “불금에는 직장 동료보다 친구들을 만나 즐긴다. 회사 근처에 약속을 잡으면 혹시라도 직장상사와 마주칠 수 있어 부담스럽다. 기왕이면 분위기 좋은 카페, 술집이 몰려 있는 이태원이나 가로수길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로수길에 일본식 선술집을 낸 최모 씨(33·여)는 “금요일 저녁이면 평소보다 3배 이상의 손님이 몰린다”며 “금요일 장사는 토요일 오전 4시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주말은 ‘가족 데이’
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가장 큰 특수를 누리는 곳은 레저업계다. 이틀간의 휴일이 주어지면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덕분이다. 여가활동의 대세로 자리 잡은 것은 바로 ‘캠핑’.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0년 60만 명이었던 캠핑인구가 올해 3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1박 2일’ ‘아빠. 어디가’처럼 짧은 여행을 소재로 한 TV 예능프로그램은 시청률 보증수표가 됐다. 석영준 대한캠핑협회 사무총장은 “과거 캠핑족들이 주로 40대 남성이었다면 최근에는 가족 단위 캠핑족이 대부분으로 캠핑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8일 오후 취재진이 찾은 경기 가평군 자라섬 캠핑장에도 가족 단위 캠핑객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은 서울에서 멀지 않고 면적이 넓어 대표적인 가족 친화형 캠핑장으로 불린다. 이날도 아이는 폴대를 들고 아빠는 망치를 두드리며 텐트를 설치하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캠핑장 내 설치된 100여 개의 텐트 중에서 커플족의 텐트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캠핑 2년차인 이상원 씨(40) 가족은 이제 한 달에 두세 번 짐을 꾸려 떠날 정도로 캠핑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이날도 온 가족이 힘을 합쳐 텐트를 설치한 뒤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씨의 아내인 박정선 씨(40)는 “콘도나 펜션으로 휴가를 떠나면 (집에 있는 것처럼) TV만 보다 오는 경우가 많았다”며 “캠핑은 자연 속에서 가족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직장인과 가족의 문화를 바꿔놓은 ‘주 5일제의 힘’이었다.
▼ 근무시간 줄었지만… 기업 생산성은 되레 높아졌다 ▼
근로의 재발견
법정근로 週 44시간서 40시간으로… 연공서열 대신 직급 파괴 늘고
현장 출장은 화상회의로 대체… 양보다 질 ‘똑똑한 근무’ 확산
SK텔레콤은 2007년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직급서열을 파괴한 ‘매니저 제도’를 도입했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나뉘던 직급을 폐지하고 ‘매니저’라는 호칭으로 바꿨다. 수직적 서열에 따른 경직된 조직문화를 업무 중심의 수평적 문화로 바꿔 보자는 취지였다. 이 회사는 능력 위주로 선발한 팀장이 각 업무를 책임지면서 업무 효율화까지 꾀했다.
SK텔레콤이 이런 변화에 나선 건 10년 전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한 게 결정적이었다. 업무시간이 줄면서 보다 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해야 할 상황이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기존의 연공서열 중심의 조직으로는 과거와 같은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장기 근로’에서 ‘효율적 근로’로
주5일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되면서 국내 대기업의 조직문화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업무시간이 주44시간에서 주40시간으로 줄어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해야 하는 현실적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이 때문에 매니저 제도 같은 다양한 인사 시스템뿐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 활용하는 ‘스마트워크’ 시스템도 일반화됐다. 예컨대 해외 출장 업무가 발생해도 반드시 현장을 방문할 필요가 없으면 화상회의나 콘퍼런스 콜(여러 명이 동시에 하는 전화회의)로 진행하는 기업이 부쩍 늘었다.
주5일제 도입 전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중심으로 한 재계의 우려가 많았다. 재계는 “주5일제 도입은 단순한 근로시간의 단축이 아닌, 나라 전체의 근무일수가 하루 줄어드는 대단히 크고 근본적인 변화”라며 “기업 생산성 저하 문제 등 사회적 비용이 매우 크다”고 걱정했다. 또 “근로시간 단축으로 소득이 줄고 자유시간이 늘어난 근로자들은 줄어든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다른 직업을 갖거나 파트타임 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신규 고용창출은 물론이고 삶의 질 향상도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스마트워크가 보편화되면서 기업의 생산성은 떨어지지 않았다. 원격기술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나’ 가능한 업무 시스템이 일터에서의 근무시간을 줄였다. 다만 실질적인 근로시간은 줄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의 한 직원은 “쉬는 날에도 스마트폰으로 간단한 업무 처리가 가능해 업무와 관련한 연락이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영세기업에 주5일제는 ‘그림의 떡’
다만 중소기업의 경우 주5일제로 인한 영향은 업종과 규모에 따라 편차가 있다. 제도가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업종과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된 탓이다.
주5일제 도입 당시에는 중소기업이 더 큰 피해를 볼 거라는 분석도 나왔다.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기업인 126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주5일제 시행으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은 9% 정도 늘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소기업중앙회가 182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인건비 복리후생비 등 제반 비용이 평균 20% 상승하고, 제품 단가도 16% 정도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이때 대기업에 비해 자금과 인력이 충분치 않은 중소기업들은 “대기업은 추가 인력을 고용해서라도 생산량을 달성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하루 생산량을 늘리자고 추가 인원을 뽑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중소기업의 구인난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런 일부 중소기업의 걱정은 기우에 그쳤다. 부품소재 전문 중소기업인 SJ테크의 경우 2006년 매출액이 주5일제 도입 이전에 비해 50% 이상 늘었다. 유창근 SJ테크 대표는 “2004년 개성공단에 입주해 생산기지로 활용하고 국내 본사 인력의 자기 계발을 지원하면서 관리와 기술개발 역량을 끌어올린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주5일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중소기업도 있다. 건설 장비를 제조하는 중소기업인 B사는 직원 복지와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며 주5일제를 앞장서 시행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오히려 직원들이 노는 시간만 늘어난 게 아닌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이 회사의 김모 대표는 “주5일제에는 찬성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가 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살릴 만큼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규모가 작은 영세기업에 주5일제는 먼 나라 얘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 생산량이 유동적이어서 주5일 근무를 보장해 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로 부족해진 일손을 메우려면 사람을 더 뽑거나 설비를 새로 들여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직원이 50여 명인 대구의 한 중소 금속기계 제조업체에 다니는 이모 씨는 “지금도 2주에 한 번만 주5일 근무를 한다”며 “애초부터 대기업을 위한 제도였다”고 푸념했다.
근로조건이 열악한 회사의 사무직은 생산직보다 주5일 근무에 따른 불만이 더 크다. 생산직은 주말에 출근하면 수당을 받지만 연봉제인 사무직은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샘물 evey@donga.com·강홍구·임우선·최고야·정세진·김호경·김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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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donga.com/3/all/20141115/67903979/1#csidxddfb8e53f042e4eb21cc85d09d6b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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