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국 역사로 살핀 ‘헌법의 꿈’
헌법의 상상력-어느 민주공화국의 역사
심용환 지음/사계절·1만6000원
1959년 1월, 민주당 지도자 조병옥(민주당 구파)은 극비리에 이승만의 후계자인 이기붕을 찾아갔다. 한 해 전 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은 간신히 과반을 넘겨, 자유당의 권력 연장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였다. 이기붕과 조병옥은 이 자리에서 내각제 개헌과 조병옥에게 권력을 넘기기로 합의했다. 여야가 합쳐 거대 정당을 만들고 계파 수장들이 돌아가면서 내각제의 대통령-국무총리를 하겠다는 발상이었다.
<헌법의 상상력>은 우리나라 개헌의 역사를 살폈다. 제헌부터 이승만의 발췌개헌, 사사오입개헌, 박정희의 3선개헌 유신개헌, 전두환의 국보위 개헌 등 하나씩 짚어갔다. 2017년 정치권 일각에서 개헌 논의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헌법 문제를 궁구할 좋은 재료가 될 듯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지난 70년 동안 9번 바뀌었고, 끊임없이 정권 연장을 위한 정략적 도구로 취급당했다. 한 해 뒤 4·19혁명의 파도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이기붕과 조병옥의 밀실협약도 개헌을 고리로 진행되는 등 ‘개헌 시도’는 훨씬 더 많았다.
그런데 책은 단순한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 머물지 않았다. 특별히 우리 헌법의 기본권 문제에도 주목한 것인데, 헌법이 시민들의 삶과 직결된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를 지은이는 “헌법을 텍스트 바깥의 생활세계로 꺼내왔다”고 했다. 사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은 모두 헌법적 가치와 직결되는 문제들이다.
이를테면 1948년 7월의 제헌헌법의 경우, 권력구조는 주요 고민 대상이 아니었다. 가장 논의가 많이 된 대목은 ‘국호를 무엇으로 할 것이냐’이며, 다음으로 ‘노동 문제’였다. ‘이익 균점권’ 얘기도 나왔다.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18조)라는 조항도 들어갔다.
보통 내각제 문제만 주목하는 2공화국 헌법에선 기본권 조항의 큰 진전이 있었다. 제헌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 자유를 제한받지 아니한다”(10조)고 했는데, 이는 ‘법률에 의하면 제한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2공화국 헌법에는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이라는 구절이 삭제됐다.
책은 우리 헌법의 제정·개정 과정을 세계사적 맥락과 각각 연결함으로써 이해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제헌헌법은 미국의 헌법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교했고, 2공화국의 내각제 문제는 일본 헌법과 견줘본다. 박정희의 개헌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쿠데타와 연결해 본다. 마지막 1987년 개헌은 북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와 연결 짓는다. 지은이는 맺음말에서 “우리는 꿈을 꿔야 하고, 그 상상을 반드시 헌법 속에 담아내야 합니다”라고 했다.
헌법의 정신과 각 조문의 탄생배경을 알고 싶다면 <헌법의 귀환>(휴먼앤북스, 1만4000원)도 참고가 될 듯하다. 헌법학자로 대학에서 23년 동안 헌법학을 강의한 김승환 전북도 교육감이 “쉽고 재미있게” 풀어쓴 헌법 이야기로, 지난해 17회 진행한 순회강연을 바탕으로 했다. 130개 헌법 조항을 차례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해, 전체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83976.html#csidxc4c1fc7ec202a15b7b21b25a72142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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