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1일 토요일

[서예로 찾은 우리 미학](1) 언어의 탄생 - 반구대 암각화

ㆍ한국인 DNA에 내장된 조형언어의 원형은 ‘획쪼기·면갈기’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132231025&code=960100

한자문화권의 독자적 예술인 서예는 한국미의 정체성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를 꿰뚫는 보편성도 갖는다. 시서화가 붓끝에 합쳐진 만인의 예술인 동시에 현대미술과 디자인의 뿌리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큐레이터가 문자와 서예의 흥미로운 역사, 다양한 현대적 변용 가능성을 타진하는 글을 연재한다.


그림1(왼쪽 사진): 아톤신이 세누오스레트 1세의 코에 청동거울을 들이대면서 남근을 세운 아몬 라 신 쪽으로 이끄는 장면이다. 사방은 온통 그림문자다. 그림2(오른쪽): 오만 고래가 온갖 자태를 뽐내며 놀고 있다. 그야말로 고래 천국이다. 맨 아래는 엑스터시에 이른 샤먼이 사지를 쫙 벌리고 절정의 춤을 추고 있고, 맨 위는 고추를 곧추세운 남정네가 멀리 망을 보고 있다.

여기서 뻔한 문제를 하나 드리겠다. 그림1과 그림2 중 어느 것이 더 앞설까. 후자라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같은 그림이라도 이집트의 히에로글리프는 이미 문자단계로 접어들었고, 반구대 암각화는 양식화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그림이기 때문이다. 힌트를 하나 주자면 전자는 BC 3930년경 제작되었다. 그렇다면 반구대 암각화는 이보다 먼저 만들어졌어야 한다. 

과연 그럴까? 지금도 학계에서는 교과서 기술대로 ‘청동기시대다’, ‘아니다. 新石器로 올려잡아야 한다’고 논쟁 중이다. 철제도구가 아니면 고래를 잡을 수 없다는 논리와 고래 어깨뼈에 박힌 골제(骨制) 작살 물증이 충돌하고 있다. 그런데 몇 년 전 1999년에 발굴된 부산 동삼동 조개무덤을 뒤지다 사슴이 새겨진 BC 5200년경 신석기시대 토기조각이 나왔다. 두 뿔과 사다리꼴 몸통은 물론 다리 등 대상의 특징만 단순화시킨 선각(線刻) 묘사는 양식적으로 반구대 암각화 사슴과 같았다. 그렇다면 그림2는 돌을 쓴 사람들이 만들기 시작한 게 아닐까. 이 시점에서 반구대 암각화의 제작시기를 획정하는 일이 왜 울산시민 식수문제보다 더 시급하고 고래가 몇 마리인가를 헤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가. 먼저 짚고 가야 할 일이 있다. 말, 그림, 문자의 언어적 상관관계다.

■ 말에다 그림을 곱한 것이 문자 

인류학에서는 인간이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으로 말을 하고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을 든다. 두 가지는 인간의 자의식을 소리와 새김질로 직접 표출한 것이다. 손 쓴 사람을 기준으로 200만년을 헤아리는 인간역사에서 최초의 언어음은 3만5000년 전에 구사되었다. 알타미라·라스코 동굴 벽화 작자들인데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이다. 인간이 손을 쓴 후 곧게 서고 다시 머리가 커져 말이 실현될 때까지 몸짓 옹알이 수준으로 170만년을 살아 온 것이다. 이후 문자로 말을 시각기호화하기 시작한 것은 수메르·이집트·은허 등지에서 상형문자를 사용하면서다. 

다시 그림1의 히에로글리프(고대 이집트문자) 속으로 들어가보자. 청동거울은 ‘생명(ANKH)’을 상징한다. 구리가 빛을 잡아 가두는 천계의 금속이고 거울은 우주적 사랑의 여신인 하토르와 관계된다. 인간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신들의 글자답게 네 개나 그려져 있다. 


그림1-1(왼쪽)·1-2


그림 2-1(왼쪽)·2-2

수메르 쐐기문자는 소머리 윤곽선으로 ‘소’를 기록하였고, ‘여성’은 역삼각형으로 그린 성기형상 하단에 점을 찍어 나타내었다.(그림1-1, 2) 은허의 갑골 종정에는 호랑이 윤곽선으로 ‘호(虎)’를 기록하였는가 하면 붓(筆)도, 글(書)도 본래 오른손으로 붓을 잡은 형상인 ‘율(聿)’이 본체다.(그림2-1, 2) 이들 그림문자는 빨라야 BC 5000년에서 3500여년의 역사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 한글은? 하늘 땅 사람을 ㆍ ㅡ ㅣ로, 어금니 혀 입술 이빨 목구멍을 ㄱ ㄴ ㅁ ㅅ ㅇ으로 기호화한 한글은 500년 정도다. 이렇게 보면 한글은 인류가 가장 늦게 만들어낸 문자이었지만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말·그림·문자의 모든 원리를 가장 잘 녹여낸 글자다. 

■ 무문자시대 만년의 그림책 

요컨대 지금 우리 조상들이 무문자로 산 지는 3만여년이다. 그 후 태어난 문자는 문명권마다 다른 말의 구조에 약속된 그림을 더하고 곱한 것이고, 시세 물정에 따라 진화한 결과다. 반구대 암각화의 호랑이, 고래(그림3-1, 2) 따위는 라스코 동굴의 들소보다 나중에 등장하지만 은·주의 갑골 종정에 박힌 호랑이와 같은 상형문자보다는 앞섰다. 


그림 3-1(왼쪽)·3-2

문자조형의 역사야말로 인간이 재해석해낸 사물과 세계의 본질을 가장 잘 담아내는데, 서예는 근본적으로 이런 말·그림·문자언어를 하나로 문제 삼는다. 그 속에서 만들어진 장구한 칼질, 붓질의 반복미학의 결정인 점과 획이 서예라고 하는 조형언어의 1차적 토대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든다. 그림2와 같은 선사시대 암각화가 반구대뿐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있으면서 고래 사슴 호랑이 샤먼 등 표현 대상이 지역마다 같고도 다르지만, 돌과 칼의 획·면·새김을 토대로 한 조형언어의 양식은 같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서로 만난 일도 없고 지금처럼 스마트폰 문자영상으로 통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바로 선사 암각화를 그린 당사자들이 동궤의 인지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시대가 명확하지 않으면 그림언어의 해석이 달라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붓 이전 칼의 미학이 그림언어로 실현

대체로 암각화의 시작은 1만3000여년 전으로 잡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지구를 덮친 마지막 빙하기를 기점으로 동굴에서 들판으로 뛰쳐나온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을 민낯 그대로 보여주는 그림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림2로 다시 돌아가서 반구대 암각화의 작자는 어느 시대 사람들부터 비롯됐을까. 유라시아 대륙에 속하는 한반도는 당시 해수면이 낮아 일본과 땅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 점을 감안하면 어로와 수렵을 동시에 경영한 1만여년 전 이 땅의 신석기시대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요컨대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반구대 암각화에는 붓 이전 칼의 미학이 문자의 아버지인 그림언어로 실현돼 있다. 한국 사람들의 무의식이나 DNA에 내장된 조형언어의 원형이 그대로 획쪼기, 면갈기로 각인돼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중섭의 황소 골격이나 비디오 무당으로 환생한 백남준도 거슬러 올라가면 근본은 여기다. 구상 시인의 말대로 언어 이전의 시가 실현된 중광 예술의 천진난만의 세계나 추사 김정희가 거슬러 찾아간 고졸미의 궁극은 또 어디겠는가. 이곳이 바로 서(書)를 잉태하고 있었던 반구대 파라다이스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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