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기준으로 판사·검사·변호사를 합친 법조인들의 수는 1만7000여명이다. 한국 인구를 5000만명으로 잡았을 때 전체 인구의 0.03%에 불과하다. 법조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전체 인구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훨씬 넘어선다. 2012년 총선에서 법조인 출신의 국회의원 당선율은 14%에 달했다.
법률가들의 결정이 발휘하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구속력은 법과 법해석의 공정성과 정의로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법과 법해석이 공정하고 정의로울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법률가들에게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는 법률가들의 권위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논쟁적인 저작이다. 40년 동안 미국 예일대 로스쿨 헌법학 교수를 지낸 프레드 로델(1907~1981)이 1939년에 썼다. 저자의 비판은 호전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혹독하다. 저자에게 법이란 “고등 사기술”이거나 “사이비 과학”에 불과하다. 그 법을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법률가들은 부족시대의 주술사와 중세의 성직자들처럼 “자신들이 갈고 닦은 특수한 지식의 권위를 지켜내기 위해 기술적 수법에 뻔뻔하고 그럴 듯한 말장난을 첨가”해 인간 사회에 군림하는 무리들에 불과하다.
첫째, 법은 변화를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 앞을 바라보는 대신 지나간 원칙과 선례에 집착한다. 1935년 석탄업계의 과당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역청탄보호법’이 제정됐을 때 미국 연방대법원은 ‘법률의 일부가 위헌’이라는 이유로 법률 전체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법은 속성상 ‘현장 유지’를 원하며 필연적으로 부자와 보수주의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운다. 둘째, 법률가들은 법이 특정 문제에 대해 단 하나의 올바른 답을 제출할 수 있다고 믿지만, 이 또한 사기다. 법이 작동하는 과정은 어떤 항구불변의 원칙으로부터 올바른 답을 추출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런 원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그 반대다.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기준이 달라진다. 파업에 대한 노동자 측 변호사의 견해와 사용자 측 변호사의 견해는 정반대다. 저자는 법의 원칙이란 “사실은 고상한 체하는 말들의 조합”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문제는 법이 이처럼 보수적이고 임의적인 데다 허공에 떠 있는 추상적인 말들의 조합임에도, 시민들이 그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률가들이 난해한 그들만의 전문용어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 용어의 난해함은 고등수학이나 생화학 분야의 그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고등수학이나 생화학은 대상 자체가 전문적이다. 반면 법이 다루는 영역은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평범한 사건이다. 저자는 이것이 “법률적 사고의 혼란·모호·공허함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라고 말한다.
저자의 비판은 문제의 뿌리까지 파고든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근본주의적이다. 대안 또한 그렇다. 저자는 “법률가와 그들의 법을 폐지”하고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법적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제도를 구축하자고 말한다. 미국 법학자 제롬 프랭크(1889~1957)는 이 책 개정판에 쓴 서문에서 “법률가와 법관에 대한 로델의 비난은 생각건대 확실히 극단적”이며 개혁안은 “지나치게 공허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까지 염두에 둔 채 문제를 끝까지 밀어붙여 통념을 뒤엎으려는 태도야말로 이 책이 지닌 매력이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1242004345&code=960205
■ 함께 읽을 책
법률가 집단의 폐쇄성을 꼬집고 동시대의 법현실을 비판하는 책으로 우선 꼽히는 것은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헌법의 풍경>(교양인·2004)과 <불멸의 신성가족>(창비·2009)이다. 법조계의 현실과 법조인들의 사고방식을 저자 특유의 성찰적이고 부드러운 문체로 담아낸 이 책들은 이 분야의 교양 필독서로 꼽힌다. 특히 <불멸의 신성가족>은 핵심 직군인 판사, 검사, 변호사, 브로커, 법원 공무원, 경찰, 기자 등 23명을 심층 면접해 이른바 ‘신성가족’이라 불리는 법조계의 문제점을 내부 인사들의 생생한 육성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법불신의 기원을 찾아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의 <법률가의 탄생>(후마니타스·2012)도 함께 읽을 만하다. 이 교수는 대학 교육, 사법시험 준비, 사법연수원 연수, 현장 적응 등 법조인 양성 경로를 단계별로 짚으면서 한국 법률가들의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는 방식을 고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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