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현암사 회의실
참여자: 서평가 '로쟈' 이현우, 번역가 공진호
인터뷰 진행: 애서가 김신식
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40110130653
1522년, 마르틴 루터는 11주 만에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옮겼다. 당시 루터의 번역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번역가' 마르틴 루터는 번역을 밭 고르는 일에 비유했다. 밭에서 땀 흘리고 수고해서 돌과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 루터에게 번역은 그런 의미였다. 허나 자신의 번역본을 놓고 비판이 계속 제기되자 이렇게 말했다.
"밭을 깨끗이 고른 다음에 하는 쟁기질은 쉬운 법이다."
이 '쟁기질'을 번역 비평이란 이름으로 이야기해볼 수 있다면, 그간 번역 비평을 둘러싼 여러 목소리가 있었다. 평자와 역자 사이에 신랄한 언어가 오가는 가운데 번역 비평은 그 어떤 격식과 성실한 지적이라 할지라도, '헐뜯음'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과연 제대로 된 번역 비평은 가능한가.' '프레시안 books'의 기획 제안으로 묵직하지만 한번은 진득하게 파고픈 고민을 나누고자 책과 번역을 좋아하는 두 사람을 만났다.
서평가 '로쟈' 이현우와 문학 번역가 공진호. 두 사람 다 블로그를 통해 오랫동안 번역 비평을 스스로 실천하거나 공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각자 준비해온 다양한 고뇌의 말을 여기 간추려본다.
읽기, 번역 비평의 출발점
김신식 : 번역 비평을 하려면 일단 책을 읽는 게 순서겠죠. "이 책 번역 참 좋네" 혹은 "덕지덕지 붙은 번역투 참 거슬리네" 하는 반응이 자연스레 나옵니다. 성실한 사람들은 원서도 장바구니에 담고 책이 도착하면 비교해가면서 읽어봅니다. 곧 인상을 찌푸리거나 '오~' 하는 반응도 보이겠죠. 두 분이 번역서를 '따져 읽기' 시작했던 때와 그 경험을 밝혀주신다면.
이현우 : 저의 경우 러시아문학을 전공하면서 공부하는 방식의 특성상 원서와 번역서를 비교해서 읽는 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인문 번역서들을 주로 읽다가 번역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고요. 대학원 시절에 움베르토 에코나 폴 리쾨르를 영어본으로 읽고 번역하는 스터디 모임을 꾸린 적이 있는데, 한국어 번역본이 상당히 안 좋은 경우가 있었어요. 오역이 눈에 띄면 아무래도 더 주의 깊게 읽게 되니까 결과적으론 번역서 '독해력'을 많이 키우게 됐지요.
▲ 번역가 공진호. ⓒ현암사 제공 |
가령 이런 것입니다. 조지 오웰의 <1984>를 열면 첫 문장에 "the clocks were striking 13."이 나옵니다. 시중에 나온 번역을 보면 "괘종시계가 13시를 알렸다" 혹은 "시계는 13시를 치고 있었다"는 식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오웰은 첫 문장부터 자기 소설 속의 세계가 정상적인 세계와 다르다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13시"라고 하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군대에서나 철도 시간표 같은 경우 24시 시스템으로 시간을 말하잖아요. 시계들의 종소리가 13번 울리고 있었다고 해야 하는데,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을 13번 치는 시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일제히 여기저기서 시계들이 그 종소리를 울리는 광경을 떠올리게 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문구나 실수라면 기억을 못해서 알아채지 못할 텐데, 작중 세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구절이라 기억하는 것이죠. 그런 게 의외로 많더란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번역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현우 선생님의 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바로가기)에 소개된 관련 포스트를 접하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론 문학 작품 번역에 문제점이 많다고 느끼는 편입니다.
김신식 : 공진호 선생님이 '로쟈의 저공비행' 이야기를 잠깐 해주셨지만, 이현우 선생님은 예전부터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꾸준하게 번역 비평을 실천해오고 있습니다. 또 번역학 관련해 학계 일도 맡으시면서 학술적인 참여도 하셨구요. 일반 독자와 학계 사이를 오가면서 번역 비평이 어떤 모습으로 정리될 수 있는지 고민해보셨을 듯합니다.
이현우 : 마땅한 번역 비평의 모델이란 게 아직 정립되진 않은 것 같습니다. 번역 비평에 관한 연구논문을 찾아보시면, 비평의 모델을 고민하는 결과물들이 있습니다. 연구자 스스로 논문 안에 번역 비평을 실천해 적합한 형식과 내용을 제시하는 형태가 많죠. 꼭 학계 사람이 아니더라도 블로그 등 일반 독자가 '뜨겁게' 참여하는 번역 비평 공간도 종종 발견됩니다.
김신식 : 번역 비평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까.
이현우 : 어느 정도 지식은 필요하겠죠. 특히 독해력. 그런데 번역 비평이라고 해서 소수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독자라면 누구나 관여할 수 있는 서평보다는 문턱이 높을 테지만, 어떤 번역이 좋다, 나쁘다 정도를 식별하고 판별할 수 있다면 자기 몫의 번역 비평을 할 수 있는 거지요.
더불어 '번역을 하는 사람'과 '번역을 비평하는 사람'이 꼭 분리돼 있는 것도 아니고, 대립할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사실 현장 번역가들이 가장 훌륭한 번역 비평가가 될 수도 있지요. 가령 영화 쪽에도 영화감독과 영화비평가를 겸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서로에 대한 조언과 건강한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신식 : 현장에 계신 공진호 선생님은 번역 비평을 유익하게 받아들이시나요?
공진호 : 공개적으로 어떤 비평을 받아본 적은 없습니다. 다만 번역이론을 공부함으로써 제 자신의 번역과 거리를 두는 경우는 있습니다. 거기에는 '번역밥'을 먹고사는 입장에서 유익한 점이 분명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번역한 결과물에 대한 교정 수단으로 삼고 있지요.
번역 비평은 '헐뜯음'이 아니다
이현우 : 번역 비평이라 하면 혹자는 꼭 '번역 비판' 심지어 '번역 비난'으로만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는 않지요. 찬사와 경탄도 얼마든지 가능하잖아요? 번역 비평을 오역 시비로만 여기고, 좋은 번역의 가치를 알리고 번역가 노력과 성취를 평가해주려는 비평은 마치 주례사 비평인 양 치부한다면 아쉬운 노릇이죠.
상식적인 말이지만, 비평이 옳다/그르다 식의 재단만 일삼는 건 아니죠. 물론 아직은 번역 비평이라고 하면 오역 비판이 주종이 되곤 합니다. 원론적으로 번역이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고 그런 만큼 또 이견을 허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좋은 번역 vs 나쁜 번역'이라는 구도보다는 '좋은 번역 vs 더 좋은 번역'의 구도로 가는 게 훨씬 생산적이고 바람직하죠. 우리 번역문화도 그런 방향으로 가면 좋겠어요.
김신식 : 본디 비평이란 요물의 타고난 업보인지 모르겠으나, 날 선 비평문 자체는 읽는 사람에게 속 시원함을 안겨다주기도 하지만, 때론 당사자에게 엄청난 서운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이 서운함이 간혹 오해를 낳으면 물리적이거나 법적인 충돌로 일어나기도 하죠. 이현우 선생님은 몇 년 전 한 인문서의 오역을 짚다가 번역가 당사자에게 고소를 당하신 적도 있습니다. 번역 비평을 둘러싼 사람들의 정서라고 할까요. 그런 걸 한번 생각해본 기회도 되셨을 법한데요.
▲ 서평가 이현우. ⓒ현암사 제공 |
한편으론 독자 입장도 고려해야 합니다. 어떤 상품에 하자가 있으면 '리콜'을 요구하는 게 당연하지만, 책은 좀 특수합니다. 쇄를 다시 찍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상식 이하의 번역서라면 반품하면 될 테지만(그런 반품이 사실 가능하진 않지요. 내용상의 파본이라고 해서 교환해주진 않으니까요), 부분적인 오류의 문제라면 저로선 독자들끼리라도 교정해서 읽자는 생각입니다. 만약 1퍼센트의 문제가 있다고 하면, 그걸 고쳐서 읽자는 겁니다. 오역 문제를 시비 거리로만 끝낼 게 아니라, 더 나온 번역문화, 독서문화로 나아가는 계기로 만드는 게 생산적이죠. 출판사나 역자는 한 번 더 확인해보는 계기가 될 터이고, 독자로선 번역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지 가늠해보면서 읽게 되겠죠.
공진호 : 번역 오류가 지적되어도 잘 팔리는 책은 여전히 잘 팔리더라고요. (웃음)
이현우 : 제가 들으니 인문서의 경우 구매 독자의 5퍼센트 가량이 완독한다고 해요. 구매 독자와 실제 독자 사이에 차이가 있는 거죠. 그 5퍼센트 독자 중에도 책의 내용을 꼼꼼히 따져가면서 읽는 독자는 극소수일 성싶어요.
번역 비판이나 비평은 그런 제한된 독자들만의 관심사처럼도 보입니다. 그렇더라도 좋은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요건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죠. 인문출판에서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인 상황에서 좋은 번역서, 신뢰할 만한 번역서가 나오게끔 해줄 수 있는 분위기나 문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죠. 이를 위해서라도 '좋은 번역을 위한 감시' 같은 번역 비평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신식 : 번역 비평이 다룰 수 있는 주제는 많겠지만 그래도 '오역'을 지적하고 더 적합한 번역을 찾아보는 과정을 기본적으로 배제할 순 없을 듯합니다. 번역 비평은 원문과 번역문이라는 두 텍스트가 있는 상황에서 '오류' '잘못됨'이라는 부분을 드러낼 수밖엔 없을 듯한데요.
공진호 : 오류와 오역은 좀 더 달리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을 대하는 반응도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자신의 원작보다 나은 번역을 했다고 말한 두 문학 번역가가 있습니다.
그레고리 라밧사와 이디스 그로스먼. 둘 다 당대 최고의 남미 문학 번역가로 불립니다. 그로스먼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영어로 옮길 때였어요. 번역을 하고 나서 그로스먼은 세르반테스의 '실수에 애착이 간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세르반테스는 경제적으로 늘 쪼들리고 이 때문에 혹사에 시달리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초판본에 오류들이 눈에 띄었나 봐요. 어떤 번역가는 역사상 가장 부주의하게 쓰인 걸작으로 <돈키호테>를 꼽기도 했습니다.
허나 그로스먼은 세르반테스의 부주의를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주목하고 원본에 다가가기 위한 친근한 정서로 해석했죠. 이처럼 오류 혹은 오역도 때론 작품의 일부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이현우 : 원작의 오류를 어떻게 교정해서 옮길 것인가, 그대로 옮길 것인가, 하는 것도 흥미로운 문제지요. 공진호 선생의 말처럼 문학 작품상에서 오류와 오역은 작품을 새롭게 바라보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문서 번역, 특히 이론서 번역은 사정이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이론서 번역은 쉽게 말하자면 진위 여부를 따져야 하니까요. 마땅한 사례는 아니지만, 가령 슬라보예 지젝을 읽다보면 헤겔 철학이나 라캉 정신분석학의 용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아직 합의가 돼 있지 않은 용어들이 많습니다. 같은 개념을 번역서마다, 번역자마다 달리 옮기게 되면 일반 독자로선 좀 당혹스럽게 되죠. 주이상스(jouissance)라는 단어도 영어로는 쾌락(pleasure)과 구분해서 'enjoyment'라고 옮기는데, 우리말로는 '주이상스' '향유' '향락' '희열' 등으로 다양하게 옮겨지고 있어요.
▲ <소리와 분노>(윌리엄 포크너 지음, 공진호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세상에 '로쟈'라는 이름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로쟈의 저공비행' 신랄한 평어로 번역을 지적하며, 티격태격했던 '썰전'의 흔적은 여전히 '번역과 번역가'라는 카테고리에 남아 있다.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인상적이었던 블로그를 하나 더 발견했다. 공진호 선생이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를 번역하고 나서 만든 이른바 '역자의 공간(가칭)'(☞바로가기)
http://soriwabunno.blogspot.kr/
흔히 난해한 글과 작품에는 '악명 높은'이란 수사가 달리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포크너의 이 책은 손에 꼽을 만하다. 이럴수록 사람들에겐 읽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번역가에게 이런 오기는 때론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는 책이 나온 뒤 스스로 블로그를 개설했다. 독자들이 어려워하거나 잘못된 번역이 아닌가라고 지적하는 대목에 답해주면서 편집상 담지 못한 책과 관련된 정보·해설을 추가하기도 했다. 온라인 공간은 번역을 하는 사람에게, 번역을 평하는 사람에게 '핫 플레이스'가 될 수 있을까.
공진호 : <소리와 분노>는 미국을 대표하는 고전인데, 난해한 구조와 어법 때문에 미국 독자도 읽기가 어려운 작품입니다. 한편 번역가에게 어렵다는 것은 곧 시대적 용법, 구문상·형식상의 어려움, 문화상의 차이를 잘 전달해야 하는데 그게 여의치 않다는 거죠. 번역으로 고심하다가 본문에 다 표현할 수 없는 내용은 주석을 달았어요. 근데 현실적으로 문학 책 편집의 일정한 룰이란 게 있잖아요. 가독성도 그렇고. 일부 주석을 삭제했는데, 독자들이 어렵겠다는 판단 아래 궁금한 점이 있는 독자와 번역에 문제가 있다 생각한 독자는 제가 만든 블로그에서 논의를 해봅시다, 이런 마음으로 블로그를 운영했어요.
이현우 : '애프터서비스' 차원에서 그런 경우 출판사가 공식적으로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 국내 출판계 현실상 기대하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김신식 : 이현우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번역 비평을 위한 온라인 공간상이 궁금합니다.
이현우 : 고전 작품의 번역본은 번역을 평가하고 서로 좋은 번역을 위해 의견을 주고받는 공간이 여러 곳 생기면 좋겠어요. 경제경영서나 실용서는 좀 무리일 것 같지만, 이론서나 철학서는 지식을 서로 즐겁게 공유하는 차원에서도 유익하다고 보구요.
갈수록 하향세라는 인문·사회과학 출판 현실을 지적해서 미안하지만, 이론서는 재판을 찍기 어려운 책이 많습니다. 예전에 지젝 관련서들도 그랬고, 오역이나 오류가 많더라도 수정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불가피하게 독자가 스스로 고쳐 읽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거구요. 어차피 책이 나온 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다버릴 게 아니라면, 적어도 정오표 정도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제시되면 좋겠어요. 독자가 참고해서 읽어갈 수 있게끔요. 실제로 국내에서도 번역가가 책을 낸 다음에 발견한 오류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정오표를 만들어 블로그에 올린 적도 있죠.
김신식 : '인문 중년'의 시대입니다. 서점에 가면 등산복 차림에 백팩을 매고, 인문서 매대로 가서 정약용 책이나 <논어> 등등 고전을 진지하게 챙기는 어른들의 모습. 이젠 익숙한 풍경입니다. 이런 분들도 번역과 관련해 한 가닥 하시는 분들이 많죠. 온라인상으로 그 나이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지만, 고전 읽기의 연륜을 엄청난 번역 오류 지적으로 잡아내시는 걸 종종 보기도 합니다.
이현우 : 고전 번역에 대한 비평은 '이견'의 주고받음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견 교환이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라 생산적인 소통이 되게끔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 같아요.
번역의 '프리 프로덕션'이 필요하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 메리(레이첼 맥애덤스 役)의 직업은 '리더reader'다. 우리말로 하면 원고검토자. '글맛'부터 시작해서 여러 포인트를 잡고 이 책을 과연 출간해도 될지 판단해주는 사람인데, 국내 출판계에서는 생소한 직종이다(솔직히 말하자면 '배부른 소리'라고 할 윗분들이 많을 게다).
오역이 일어나서 수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출간 전 단계에 있는 한 권의 외서를 두고 세심히 따져보는 시간은 번역 비평보다 나은 것일 수도 있다.
공진호 : 국내 편집자가 번역을 의뢰하면 아직 '이렇게 번역해주세요'라는 요구를 세세히 들어본 적이 없어요. 미국과 영국의 경우 흔히 편집자가 '리더'를 통해 같이 출간 여부를 따지는 과정이 이루어집니다. 원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원고검토자인 리더와 편집자가 꼼꼼하게 원서의 맥락을 점검해 번역 여부를 결정하고 마땅한 번역자를 고르는 단계로 나아가죠. 번역자를 택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작품일 경우 한 사람 이상에게 샘플 번역을 맡겨 적임자를 고르기도 합니다. 베테랑 번역가들이라도 개인차가 있어서 특정 작품에 더 잘 맞는 번역가가 있으니까요.
이현우 : 일종의 번역 오디션 같은 건가요?
공진호 : 그렇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들긴 했으나 출판사 입장에서 경비가 아깝다는 인식도 제법 있는 것 같아요. 한 사람 이상에게 샘플 번역을 의뢰할 경우 채택되지 않는 번역가에게 적정 고료를 지불해야 하고 또 바쁘게 돌아가는 편집자들의 업무상 접촉과 검토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도 무시할 수 없을 테니까요.
국내 현장에서 경험해보니 편집자 개개인의 업무량이 상당해요. 편집자가 번역을 의뢰하기 전에 한 편의 작품을 파악하고 번역자와 호흡을 맞춰가기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할 듯해요. 책임편집자가 번역 원고를 넘겨받고 직접 교열교정하든 다른 사람에게 맡기든 자신이 먼저 한 번이라도 통독하는 일도 없는 것 같아요. 해당 작품을 잘 모르면 한 번 끝까지 통독해서 작품 전체에 대한 감을 잡고 난 다음 교열교정 주안점을 잡아 일을 진행하면 관련된 모두가 나중에 많을 수고를 덜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아무튼 적어도 리더라는 제도는 적극 활용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편집자의 업무를 보완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원작의 문체를 살릴 수 있는 번역자를 찾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공진호 : 물론 하고 있는 출판사도 있겠지만, 편집 과정상 번역가와 편집자 간 말썽을 줄이기 위해 샘플 번역 단계에서 편집자가 꼼꼼히 교정을 한번 보는 단계는 제안해보고 싶어요. 샘플 번역이 마음에 들면 어느 정도의 교정이 가해지는지 교정을 해서 번역자에게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거죠. 그러면 번역을 마치고 편집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큰 갈등과 시간 낭비와 감정의 소모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거든요. 실제로 외국 번역 심포지엄에서도 권장하는 사항이에요. 물론 모든 책에 그런 작업을 다 거칠 순 없다는 건 감안해야겠죠.
▲ <번역 예찬>(이디스 그로스먼 지음, 공진호 옮김, 현암사 펴냄). ⓒ현암사 |
공진호 : 정리하자면, 결국 편집자들이 교정교열을 볼 때 가독성이 영원한 문젯거리로 남지 않나 싶어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타협점을 분명히 해야 시간이 덜 낭비될 것 같아요.
이현우 : 이 모든 과정을 영화계에서 쓰는 표현으로 '프리 프로덕션'이라고 부른다면, 번역 출판에서도 적극적으로 고려해봄직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책의 성격에 따라, 또 출판사의 사정에 따라 양상은 많이 달라지겠지만요.
김수영은 시인이지만, 번역가로서의 행적 또한 주목할 만하다. '모기와 개미'(1966년)라는 글에는 '번역 비평'의 한 풍경이라 할 체험기가 나온다. 그는 도대체 왜 우리나라는 번역문학이 없느냐 한탄하면서, 짤막한 단편소설 하나 제대로 번역된 것을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분개한다. 어느 날 김수영은 한 출판사로부터 싼 비용의 번역일을 제안 받았다. 궁핍한 삶을 면피하기 위해 그는 불가피하게 번역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번역의 열정마저 값싸진 않았다. 김수영은 일에 착수하기로 한 뒤 너대니얼 호손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을 읽고 갖가지 오역을 잡아낸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청년 사장과 오역을 두고 옥신각신하다 김수영이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그러니까 나는 혹을 떼러갔다가 혹을 하나 더 붙여오고 그 두 개가 된 혹을 또 떼러갔다가 또 혹을 그 위에 하나 더 붙여온 셈이 되었다."
번역을 평하는 사람이나 번역을 하는 사람이나 이 운명 속에서 오늘도 울고 웃는다.
(*인터뷰 전문은 곧 출간을 앞둔 <번역 예찬>(이디스 그로스먼 지음, 공진호 옮김, 현암사 펴냄)의 부록 '작은 인터뷰'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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