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272108125&code=960202
어느 미술책을 뒤져봐도 시작은 짐승이나 사람 형상을 그린 구상그림이다. 20세기나 돼서야 추상화,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 따위가 나온다. 서양과 다를 법도 한데 동양미술사나 한국미술사도 전개 맥락은 마찬가지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동시에 너무나 당연하지 않다. 무슨 말인가.
구상과 추상은 그림언어가 실현된 3만5000여 년 전부터 동시에 존재했다. 그 후 말과 그림이 만나 문자라는 제3의 언어가 탄생하고 진화되면서 이 둘은 줄곧 주거니 받거니 살아왔다. 서양은 그렇지 않았다고 항변한다면, 적어도 동양이나 한국에서는 붓 한 자루로 서화를 넘나들며 그래 왔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장구한 미술의 역사를 구상 중심으로만 인식해왔는가. 우리가 아는 추상은 왜 고작해야 100년 남짓한 역사뿐인가. 그것도 존경해 마지않는 칸딘스키, 몬드리안, 말레비치 같은 서양미술 거장들뿐이다.
그간 추상은 어디에 저당을 잡혀 있었는가. 아니면 어느 때부터 우리 인간이 추상적으로 사고하는 조형언어를 아예 망각해 버렸던가. 점·선·면의 구성이 점획이나 결구 장법과 도대체 어떻게 다르기에 이런 결과를 가져왔을까. 반구대 암각화는 고래, 사슴, 호랑이 따위가 가득한 사실화다. 인간이 외부사물의 구조적 특징을 보고 획으로, 면으로 묘사한 것이다. 천전리는 이와 정반대다. 눈에 보이는 자연물이 아니다. 획으로 동심원, 마름모꼴과 같은 기하학적 문양이 어떤 맥락 아래 여러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분명히 인간 내면세계의 표출이다. 미술책은 추상화를 자연의 대상을 떠나 점·선·면과 같은 순수 조형요소만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비대상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미 1만여 년 전부터 이 땅에서는 붓 이전에 칼로, 선이 아닌 획으로 추상화가 실현되고 있었다. 그 후 상형문자의 칼끝 새김질을 지나 한자, 한글을 쓰는 붓끝에 이르기까지 35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실천되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미술책에서 근 100년 동안 실종되었던 서예다. 하지만 우리가 망각했던 서예는 서구로 잡혀가 칼의 주술도, 붓의 인문적 아우라도 저당잡힌 채 20세기 현대추상미술에 불을 지폈다.
■ 서(書)가 추상이 되는 내력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는 볼펜글씨의 연장 내지 잘해봐야 디자인 같은 실용예술로 취급되는 서(書)가 왜 서구에서는 추상이 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본 대로 붓 ‘쓰기’의 전신(前身)은 칼 ‘새김’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선이 아닌 획이다. 선은 평면이고 획은 입체다. 선은 혼자서 말을 못하지만 획은 문자가 되기 이전에 그 자체만으로도 오만 말을 한다. 그래서 매우 다의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획 때문에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칼과 굽힐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붓이 반대 물성을 지닌 도구임에도 서예란 이름으로 통한다.
요컨대 죽어도 평면일 수밖에 없는 화선지에 그어재낀 붓글씨의 선이 그냥 선이 아닌 입체적인 획이 되는 이유가 바로 돌에 푹 푹 파인 칼 새김에서 이미 실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붓의 무의식 속에는 바로 태고의 칼질 기억이 내장돼 있다. 서예에서 금과옥조로 여기는 경구는 ‘추획사(錐劃沙) 인인니(印印泥)’다. 무슨 말인가 하면 ‘모래에 송곳으로 그어재끼듯 진흙에 인장을 찍듯’ 평면의 선이 아닌 입체적인 획으로 붓글씨를 쓰라는 것이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서화동원(同源), 서화일치, 시서화일체의 근거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 지점이다. 이것은 애초부터 서화가 구상, 추상의 구분이 없는 하나임을 방증한다. 근본 글씨가 그림이고 그림이 글씨인 것이다.
그런데 왜 한 몸이었던 서화가 생이별을 하고, 지금 우리는 낫 놓고도 기역자도 모르게 되었는가. 그것은 바로 식민지시대 고야마 쇼타로 같은 화가들이 지껄인 ‘서는 미술이 아니다’라는 서구 잣대가 우리 서화를 일방적으로 재단했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에서 서예는 미술에서 삭제되고 공교육이 서를 망각하면서 결과적으로 서예문맹이 된 것이다.
■ 주술 내지 아우라
그렇다면 다시 천전리 암각화로 돌아가 보자. 높이 3m 너비 15m의 거대 암벽에 마름모꼴, 동심원, 나선형 이중·삼중 곡선이 파여 있다. 일정한 질서하에 그물처럼 유기적으로 반복 구사된다. 이런 추상언어는 동시대 빗살무늬토기나 청동거울, 고령 양전동 암각화에서도 균일한 직획(直劃)으로, 동심원으로, 직획과 동심원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구사됐다.
그런데 정작 궁금한 것은 이 그림의 뜻이다. 추상이 내면세계의 표출이라면 당시 사람들의 어떤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는가. 분명한 것은 선사인이 현대인과 다른 점은 살고 죽는 문제부터 고래를 많이 잡고 말고 농사가 잘 되고 말고 하는 일상의 일까지 모두 하늘에 빌고 맡긴다는 점이다. 물론 그 주재자는 집단의 우두머리인 샤먼이다. 이런 맥락에서 천전리는 당시 인간의 절대소원을 샤먼이 천신에게 빌고 성취해내는 현장이자 제단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천전리 기하문양의 암각은 풍요와 다산을 비는 주술이나 즐문, 다뉴세문의 태양 상징 빗살과 직결됨을 짐작할 수 있다. 모든 생명체의 원초적 에너지원인 신을 향한 인간의 열망을 그어재낀 것이다. 그래서 그 자체가 아우라 덩어리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약속이나 한 듯 ‘현대미술과 서예-그리기와 쓰기의 접점에서’(4·5~5·5,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글자, 그림이 되다’(8·22~10·22/포스코뮤지엄)와 같은 전시가 연달아 열리고 있음이 주목된다. 서구 추상미술의 뿌리가 동아시아 서예라고 달려온 그들이라 반갑다. 그간 망각했던 서예를 현대미술이 찾아나선 것은 우리 미술이 본정신으로 돌아오는 징후인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선과 획도 구분 못하는 당달봉사가 우리라는 사실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리히터씨, 우리 미술은 획이여!” 전시장에서 표암 강세황 선생이 정신없이 캔버스를 문지르고 있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에게 붓을 꼭 쥐여주며 이렇게 외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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