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에 관한 몇 가지 메모 : 미덕과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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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섬세하게 재현된 1987년 1월에서 6월.
= 근래 만들어진 ‘역사영화’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된다. 중요한 '정치적 수용'을 야기할 텍스트다.
‘혁명’이 부글부글 내연하던 그해 1월에서 6월 사이의 사건과 6월항쟁은 이렇게 성공한 대중 영화를 통해 재현 체계 속으로 깊고 확고하게 인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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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철의 죽음과 49제 날의 시위, 아버님의 ‘종철아 잘 가그래이’, 이한열의 최루탄 피격,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5월18 성명 그리고 남영동 대공분실, 시청앞, 연대 정문 앞 등은 다 1987년과 6월항쟁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_공간들이다. 이를 정성이 깃든 그림으로 보는 일은 새삼 벅차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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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아니 너무나 인형 같이 생긴) 여대생 연희(김태리 분)의 시선으로 비춰지는 6월의 광장과 이어진 엔딩의 노래 <그날이 오면>, 그리고 문익환 목사의 저 유명한 <열사여, 연설> 장면에서는 ‘울컥’하지 않기 어려웠다. 청소년 관객들도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걸 끝까지 보고 있었고, 중년 관객들 중엔 코를 훌쩍이며 일어서는 이들이 여럿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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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운동화 한짝 : 사랑과 혁명과
= 그러나 내게는 운동화 한짝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실제로 이한열(강동원 분)이 남긴 싼 흰색 운동화 한짝을 모티프로 한 시퀀스들은 대단히 낭만적이고 또 ‘문학적’이다.
두 사람은 벗겨진 운동화 때문에 만나고 또 운동화를 서로에게 사준다. 하지만 결국 한열은 운동화 한짝을 남기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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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운동화는 청춘의 결연(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은)의 매개물이자 ‘운동’의 상징이기도 하다. 함께 최루탄을 맞고 같이 울면서 스크럼 짜고 노래를 부르던 운동(광장)은 그 시대 사랑ㆍ우정의 ‘기반’이었다. 그래서 운동화 시퀀스들은 ‘사랑과 혁명(그리고 죽음)’이라는, 어쩌면 가장 ‘80년대적인’ 코드들로 이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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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사의 겹
: 서사의 복합성은 거대한 항쟁의 복합성과 조응한다. 즉 정치사로서의 박종철 사건과 6월항쟁, 연희의 ‘마음의 드라마’로서의 6월항쟁 등 서사의 겹.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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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한 허구의 인물인 연희의 배치와 그 면모는 실로 절묘하다.
나아가 영화 <아가씨>의 주연이자 촛불에 참여했으며, 박종철이란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는 현실의 김태리라는 젊은 배우가 텍스트 안팎에서 영화 전체를 구원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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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계 : 민주화와 6월항쟁에 대한 주류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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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섬세하게 재현된 1987년 1월에서 6월.
= 근래 만들어진 ‘역사영화’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된다. 중요한 '정치적 수용'을 야기할 텍스트다.
‘혁명’이 부글부글 내연하던 그해 1월에서 6월 사이의 사건과 6월항쟁은 이렇게 성공한 대중 영화를 통해 재현 체계 속으로 깊고 확고하게 인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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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철의 죽음과 49제 날의 시위, 아버님의 ‘종철아 잘 가그래이’, 이한열의 최루탄 피격,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5월18 성명 그리고 남영동 대공분실, 시청앞, 연대 정문 앞 등은 다 1987년과 6월항쟁에 관한 유명한 이야기_공간들이다. 이를 정성이 깃든 그림으로 보는 일은 새삼 벅차고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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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아니 너무나 인형 같이 생긴) 여대생 연희(김태리 분)의 시선으로 비춰지는 6월의 광장과 이어진 엔딩의 노래 <그날이 오면>, 그리고 문익환 목사의 저 유명한 <열사여, 연설> 장면에서는 ‘울컥’하지 않기 어려웠다. 청소년 관객들도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걸 끝까지 보고 있었고, 중년 관객들 중엔 코를 훌쩍이며 일어서는 이들이 여럿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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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운동화 한짝 : 사랑과 혁명과
= 그러나 내게는 운동화 한짝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실제로 이한열(강동원 분)이 남긴 싼 흰색 운동화 한짝을 모티프로 한 시퀀스들은 대단히 낭만적이고 또 ‘문학적’이다.
두 사람은 벗겨진 운동화 때문에 만나고 또 운동화를 서로에게 사준다. 하지만 결국 한열은 운동화 한짝을 남기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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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운동화는 청춘의 결연(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은)의 매개물이자 ‘운동’의 상징이기도 하다. 함께 최루탄을 맞고 같이 울면서 스크럼 짜고 노래를 부르던 운동(광장)은 그 시대 사랑ㆍ우정의 ‘기반’이었다. 그래서 운동화 시퀀스들은 ‘사랑과 혁명(그리고 죽음)’이라는, 어쩌면 가장 ‘80년대적인’ 코드들로 이루어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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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사의 겹
: 서사의 복합성은 거대한 항쟁의 복합성과 조응한다. 즉 정치사로서의 박종철 사건과 6월항쟁, 연희의 ‘마음의 드라마’로서의 6월항쟁 등 서사의 겹.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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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한 허구의 인물인 연희의 배치와 그 면모는 실로 절묘하다.
나아가 영화 <아가씨>의 주연이자 촛불에 참여했으며, 박종철이란 사람이 누군지 몰랐다는 현실의 김태리라는 젊은 배우가 텍스트 안팎에서 영화 전체를 구원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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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계 : 민주화와 6월항쟁에 대한 주류의 서사
영화의 민주화투쟁과 6월항쟁에 대한 해석은 가장 상식적인 수준에 머무른다. 강동원이 특유의 ‘사슴 눈’으로 말한 ‘너무 가슴이 아파서...’라는 대사가 상징하듯, 기본적으로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청년들 vs 극악한 군부독재라는 대비가 기본 얼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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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항쟁이 단지 순수한 박종철이나 이한열의 죽음 때문에가 아니라 길고도 처절하게 특히 ‘좌경 운동권 세력’들에 의해 준비되어온 것이었으며, 7월부터의 1987년의 나머지 딱 반은 또다른 혁명(노동자대투쟁)과 반혁명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은 가려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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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광장을 겪은 1학년 태리는 그후 어떻게 됐을까? 주사파 아니면 민중민주파? 아니면 페미니스트나 공장 활동가?
<변호인> <택시운전사>와 마찬가지로 ‘순수한 운동’이 있(었)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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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효과
<변호인> <택시운전사> 그리고 <1987>을 통해 이제 민주화투쟁과 6월항쟁은 거의 ‘국민 서사’가 되다시피 한다. 이 대중적 민주화운동-이야기는 양가성을 갖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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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 나라의 정체성이 ‘반공’ ‘애국’ 따위가 아니라, 야만적인 극우ㆍ군부 세력으로부터 구해낸 시민_민주주의_공화국이라는 것. 또 광장(운동)의 정치가 의회나 제도 보다 더 근본적이라는 것.
오늘날 ‘촛불’이 이같은 성격의 민주주의를 대유한다. ‘시민혁명의 국가이념’이랄까? 이것이 불가역하고 양보할 수 없는 상식이 되는 것.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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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반면, 이 이념은 사실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고 과거 민주정부의 이념이었다. 그리고 현정부의 이념과 곧장 닿은 것이다. 문재인과 정부의 핵심들이 바로 ‘6월항쟁의 아이들’ 아닌가? 그래서 영화는 ‘(87년)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소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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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일 것은, 이 양가성은 지극히 맥락적이고 현재적인 시점에 놓여 있다는 사실. 우리는 ‘이명박근혜’ 시대의 뒤끝, 분명 혁명은 아니나 대규모 시민항쟁이 낳은 모호한 ‘열린 국면’을 살고 있다. 단체관람이 시작됐다는 이 국민_계몽적인 영화의 뒷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장기-1987년의 종결, 즉 개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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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86의 눈물
촛불을 통해 586은 다시 ‘중심’에 들어왔는데, 이 영화는 ‘586 헤게모니' 같은 것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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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586 남성 엘리트의 회고록을 다룬 논문에서 말했듯, 80년대에 대한 그들의 자기서사는 “각성 - 참여 - 투쟁 / 고난(죽음) 극복 - 승리(환멸) / 보상(이탈)-공식(권력)화- 화해”의 3단계 플롯을 갖고 있다. 이는 ‘87년체제’와 완전히 결합돼 있다. 저 플롯에서의 ‘승리’란 대개 87년 6월항쟁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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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는 ‘아재’들은 경계해야 한다. 거리두기가 불가능해서 쏟은 눈물은 당연히 인간적으론 이해가 잘 간다. 하지만 눈물을 닦으시기를 부탁드린다. 집단적인 자기연민의 눈물이 결국 다른 세대들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할지 모를 위험에 대해 말하고 싶다.
게다가 민주화 운동 출신 정치 엘리트 ‘아재’들에겐 이미 국가훈장이 주어졌다.(김부겸ㆍ유시민ㆍ우상호ㆍ정청래ㆍ안희정ㆍ정봉주 등(심지어 하태경까지)이 그 상징 중 하나다.) 다시 그들이 1987년 민주항쟁의 서사와 이념을 횡령하고 독점하게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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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보내고 <1987년>의 핵심이 살아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김태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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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항쟁이 단지 순수한 박종철이나 이한열의 죽음 때문에가 아니라 길고도 처절하게 특히 ‘좌경 운동권 세력’들에 의해 준비되어온 것이었으며, 7월부터의 1987년의 나머지 딱 반은 또다른 혁명(노동자대투쟁)과 반혁명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은 가려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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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광장을 겪은 1학년 태리는 그후 어떻게 됐을까? 주사파 아니면 민중민주파? 아니면 페미니스트나 공장 활동가?
<변호인> <택시운전사>와 마찬가지로 ‘순수한 운동’이 있(었)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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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효과
<변호인> <택시운전사> 그리고 <1987>을 통해 이제 민주화투쟁과 6월항쟁은 거의 ‘국민 서사’가 되다시피 한다. 이 대중적 민주화운동-이야기는 양가성을 갖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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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 나라의 정체성이 ‘반공’ ‘애국’ 따위가 아니라, 야만적인 극우ㆍ군부 세력으로부터 구해낸 시민_민주주의_공화국이라는 것. 또 광장(운동)의 정치가 의회나 제도 보다 더 근본적이라는 것.
오늘날 ‘촛불’이 이같은 성격의 민주주의를 대유한다. ‘시민혁명의 국가이념’이랄까? 이것이 불가역하고 양보할 수 없는 상식이 되는 것.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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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반면, 이 이념은 사실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고 과거 민주정부의 이념이었다. 그리고 현정부의 이념과 곧장 닿은 것이다. 문재인과 정부의 핵심들이 바로 ‘6월항쟁의 아이들’ 아닌가? 그래서 영화는 ‘(87년) 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소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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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일 것은, 이 양가성은 지극히 맥락적이고 현재적인 시점에 놓여 있다는 사실. 우리는 ‘이명박근혜’ 시대의 뒤끝, 분명 혁명은 아니나 대규모 시민항쟁이 낳은 모호한 ‘열린 국면’을 살고 있다. 단체관람이 시작됐다는 이 국민_계몽적인 영화의 뒷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장기-1987년의 종결, 즉 개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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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86의 눈물
촛불을 통해 586은 다시 ‘중심’에 들어왔는데, 이 영화는 ‘586 헤게모니' 같은 것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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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586 남성 엘리트의 회고록을 다룬 논문에서 말했듯, 80년대에 대한 그들의 자기서사는 “각성 - 참여 - 투쟁 / 고난(죽음) 극복 - 승리(환멸) / 보상(이탈)-공식(권력)화- 화해”의 3단계 플롯을 갖고 있다. 이는 ‘87년체제’와 완전히 결합돼 있다. 저 플롯에서의 ‘승리’란 대개 87년 6월항쟁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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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며 계속 눈물을 흘렸다는 ‘아재’들은 경계해야 한다. 거리두기가 불가능해서 쏟은 눈물은 당연히 인간적으론 이해가 잘 간다. 하지만 눈물을 닦으시기를 부탁드린다. 집단적인 자기연민의 눈물이 결국 다른 세대들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할지 모를 위험에 대해 말하고 싶다.
게다가 민주화 운동 출신 정치 엘리트 ‘아재’들에겐 이미 국가훈장이 주어졌다.(김부겸ㆍ유시민ㆍ우상호ㆍ정청래ㆍ안희정ㆍ정봉주 등(심지어 하태경까지)이 그 상징 중 하나다.) 다시 그들이 1987년 민주항쟁의 서사와 이념을 횡령하고 독점하게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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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보내고 <1987년>의 핵심이 살아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김태리’여야 한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junghwan.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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