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66463.html
2014년 11월 27일, 한겨레, 박찬수 논설위원 칼럼
[아침 햇발] 야당에 386은 있는가 / 박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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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 치러진 16대 총선은 유례없는 혁신과 변화의 경연장이었다. 50년 만에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정권을 뺏긴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절치부심했다. 여야는 경쟁적으로 사회 각 분야의 ‘젊은 피’를 수혈했다.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 이른바 ‘386’들이 대거 정치권에 들어온 게 2000년 총선~2002년 대선 무렵이다. 이때 한나라당으로 원희룡·나경원·오세훈·조윤선·남경필(1998년 보궐선거로 아버지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등이 갔고, 민주당엔 임종석·이인영·송영길·우상호 등이 들어갔다. 한나라당이 주로 변호사·판사 등 전문직 출신을 영입했다면, 민주당을 택한 이들 가운데엔 80~9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운동권 출신’이 많았다. 언론에선 여야의 젊은 피들을 비교하며 ‘386 시대의 도래’를 점쳤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택했던 386들의 정치적 위치를 비교해보는 건 흥미롭다. 원희룡 제주지사나 나경원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등은 일정한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여권의 차세대 주자로 거론된다. 반면에 이들보다 훨씬 주목을 받으며 정치를 시작한 야당의 386 가운데 차기 대선후보군 명단에서 이름을 찾을 수 있는 이는 거의 없다. 여당 386들이 각자 자기 정치를 하는 데 나름 성공했다면, 야당의 386들은 국민에게 뚜렷한 정치적 각인을 남기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간단치 않다.
사실, 지금 야당의 위기는 386의 실패와 궤를 같이한다. 야당의 궤멸을 386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386이 애초의 기대에 절반이라도 부응했다면 지금처럼 야당이 지리멸렬하진 않을 것이다. 1997년 정권을 빼앗기고 패닉에 빠진 한나라당을 일으켜 세운 건, 김영삼 정권 시절 정치권에 들어온 김문수·홍준표·이재오와 같은 겁없는 초선들이었다. 그러나 2007년과 2012년 두차례 대선에 진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을 맨 앞에서 붙들고 있는 건 여전히 과거의 지도부들이다. 지금 새정치연합의 전면에 386들이 서 있다면 야당의 모습이 이처럼 처참하진 않을 것이다.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리더십만 뚜렷하면 국민은 그 정당에 기꺼이 미래를 맡긴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민심이 돌아서는데도 야당 지지율이 바닥인 건, 유권자 마음을 부여잡을 리더십의 부재 탓이 크다. 그 공백은 지금 거기에 있어야 할 386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서 생긴 것이다. 야당 386들의 존재가 희미해진 건, 당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려 하기보다 기존 계파와 손을 잡고 생존을 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주요 당직을 맡거나 공천 심사에 깊숙이 개입하며 ‘정치적 생존’을 하는 데엔 성공했지만, 야당의 재집권을 추동할 만한 권력의지를 보여주진 못했던 탓이다.
내년 2월 새정치연합은 새 당대표를 뽑는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선거가 대권·당권 분리냐 아니냐, 친노냐 비노냐의 싸움으로 흘러가선 계속 국민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과거회귀적인 논쟁보다는 차라리 선명한 세대 대결로 가는 게 훨씬 낫다. ‘강력한 군사정권과 무기력한 야당’이란 구도를 깨뜨린 건 1970년 ‘40대 기수론’을 내걸었던 김대중과 김영삼이었다. 386이 나이가 들어 이젠 486, 586이 됐지만, 도전과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을 ‘젊음’은 아직 있으리라 본다. 스스로 대중적 지지가 부족하다고 여기면, 김부겸이든 박영선이든 새로운 세대를 상징할 다른 이를 위해 헌신할 수도 있다. 그게 야당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고, ‘386 세대’가 정치권에 들어간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할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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