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4일 KBS 박종훈 기자
■ '한달에 한번' 부동산 정책 발표
2008년 이후 한국에선 한 달에 한 번 꼴로 부동산 부양책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부동산 부양책을 내놓아도 집값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집값이 끝없이 오를 것으로 믿었던 기성세대가 순자산의 90%를 부동산에 쏟아 부은 탓에 '하우스 푸어(house poor)'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너무나 많은 돈이 부동산에 묶이는 바람에 부동산 시장 침체가 우리나라 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대부분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기성세대가 좀처럼 지갑을 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경기 부양을 한다며 부동산 부양책에 우리나라에 남은 자원을 쏟아 붓고 있습니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침체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증상만 잡으려는 '대증요법(對症療法)'에만 몰두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만일 남은 여력을 부동산에 모두 소진하고도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는 더욱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우리가 일본의 실패를 이미 목격하고도 그 실패를 그대로 답습한다면 그만큼 한심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행히 일본과 같은 시기에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겪었지만 비교적 성공적으로 대처한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북유럽의 대표적인 강소국가인 스웨덴입니다. 우리가 두 나라의 차이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을 피할 열쇠를 얻을 수 있습니다.
■ 일본과 스웨덴의 정책 차이
일본과 스웨덴은 1990년을 전후해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면서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런데 버블 붕괴에 대응하는 두 나라의 정책 방향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리고 그 정책의 차이가 일본과 스웨덴의 운명을 갈랐습니다. 일본은 20여 년 동안 장기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스웨덴은 1990년대 중반부터 종전의 경제성장률을 완전히 회복하였습니다. 도대체 두 나라의 정책은 어떻게 달랐기에 이렇게 큰 차이가 난 것일까요?
일본과 같은 시기에 부동산 버블이 붕괴됐던 스웨덴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1991년 스웨덴은 극심한 재정난에도 불구하고 GDP의 1%가 넘는 재정을 투입해 공공보육 시설을 확대하고 무상보육체제를 확립하였습니다. 노후 연금 등 다른 복지 정책을 일부 축소한 것과 달리 스웨덴 경제를 이끌어 갈 미래 세대에 대해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정책은 2000년대 스웨덴 경제 호황의 놀라운 밑거름을 제공하였습니다.
이 같은 결단의 배경에는 스웨덴이 자랑하는 최고의 경제학자인 귄나르 뮈르달(Gunnar Myrdal)과 그의 아내 알바 뮈르달(Alva Myrdal)의 연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뮈르달 부부는 오래전인 1934년에 이미 『인구문제의 위기(Crisis in the Popuation Question)』라는 저서를 통해 스웨덴이 앞으로 출산율 저하에 시달릴 것이며, 이는 스웨덴의 경제성장률을 추락시킬 것이라는 놀라운 예견을 내놓았습니다. 뮈르달 부부는 양육비와 집값 상승으로 젊은 부부가 아이를 낳기를 꺼려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아이를 키우는 젊은 세대를 위한 각종 '복지투자'를 강화해 출산을 장려해야 스웨덴 경제를 지킬 수 있다고 역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양육수당과 아동수당을 강화하고 청년세대에 주거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스웨덴은 부동산 부양책에 국가의 재정을 낭비하지 않고, 청년의 실질적인 소득기반을 확충하는데 국가의 소중한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하였습니다. 이렇게 청년층의 소득기반이 회복되자 부동산에 대한 실질적인 수요가 살아나 일본과 대조적으로 2000년대 이후엔 집값도 다시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청년을 위한 스웨덴의 과감한 투자가 장기적으로 기성세대의 자산 가격을 지키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노후는 우리 청년과 미래세대에 달려 있습니다. 앞으로 은퇴한 다음 우리 세대를 위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건강보험료를 내줘야 하는 것은 바로 지금의 청년과 미래세대입니다. 만일 청년들이 인적자본을 쌓는데 실패해 생산성이 하락하고, 소득기반을 구축하지 못해 소비가 줄어들어 경제가 정체된다면, 그 피해는 단지 청년들 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들에게 의존해야하는 우리 기성세대에게도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보유한 값비싼 부동산을 청년 세대가 사주지 않는다면 아무리 부동산 부양책에 국가재정을 퍼부어도 집값이 오르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현재 30대 청년들의 평균 소득은 3000만원을 조금 넘는 정도입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의 평균 4억 8천만 원이니까, 16년 동안 한 푼도 안 쓰고 모아야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습니다. 소득의 3분의 1을 저축한다고 가정해도 48년이 걸린다는 얘깁니다. 한마디로 지금의 청년층은 평생 열심히 일을 해도 집 한 채 장만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된 것입니다.
더구나 청년들의 숫자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2차 베이비부머인 기자가 태어난 시기에는 한 해 백만 명 안팎의 신생아가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에는 신생아가 60~70만 명대로 줄어들었고, 2000년대에는 40만 명대까지 급감하였습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1.18명으로 일부 도시 국가를 제외하면 사실상 세계 꼴찌입니다. 인구학자인 영국 옥스퍼드대학 데이비드 콜먼 교수가 한국을 '인구소멸 1호 국가'로 지목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 청년에 대한 투자가 비용인가?
이처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데도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합계 출산율이 2.47로 떨어지자 프랑스 정부는 국가 비상상황이라고 판단하고 GDP의 3%나 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출산율을 다시 높이는데 성공했습니다. 일본은 합계출산율이 1.57로 떨어지자 이를 '157쇼크'라고 부를 정도로 사회전체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물론 일본은 노인 복지에 매달린 탓에 출산율 제고에 투자한 돈은 크지 않았지만 적어도 출산율 하락에 대한 경각심은 우리나라보다 높았습니다.
최근에 복지 논쟁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아동과 청년을 위한 복지 투자를 단순히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동과 청년을 위한 투자는 결코 허공으로 사라지는 돈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선진국들은 아동과 청년을 위한 투자야말로 성숙한 경제에서 가장 효율적인 투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국립조기교육연구기구(National Institute for Early Education Research)는 학생들에게 1달러를 투자했을 때 사회로 환원되는 효과가 무려 3달러 78센트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사람이 가장 소중한 자원인 우리나라에서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일본의 실패와 스웨덴의 성공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와 준비를 하지 못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본 기자가 『지상최대의 경제 사기극, 세대전쟁(2013, 21세기북스)』을 통해 이미 기술한 것처럼 '세대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사기극이 미래세대와 우리 자신을 위한 소중한 투자를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5년 안에 세대전쟁을 종식시키고 근본적인 정책적 전환에 나서지 않는다면 일본식 장기불황을 피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KBS 1TV 시사기획 창에서는 '세대 공존 프로젝트' 2부작이 11월 25일과 12월 2일 밤 10시에 방송됩니다. 세대전쟁이라는 지상 최대의 사기극에 굴복해 청년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그 결과 기성세대의 노후까지 위협받고 있는 일본과 이탈리아의 비참한 현실을 소개하고, 세대전쟁의 기로에 서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심층 분석합니다. 그리고 세대간 갈등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사례를 통해 우리의 청년을 살리고, 나아가 우리 기성세대의 노후까지 지킬 수 있는 세대간 공존의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바로가기 [시사기획 창] 시사기획 창:세대 공존 프로젝트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박종훈기자 ( jongh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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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20일 시사인 197호 이종태 기자 보도
[197호] 2011년 06월 20일 (월) 10:29:52 |
20세기 접어들어 스웨덴의 출산율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21세기 초의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당시 ‘출산율 저하’는 ‘보수 꼴통’의 의제였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스웨덴 민족이 사라질 것’이라며 피임·낙태를 규제하는 등 강압적 출산장려 정책을 고집했다. 그런데 이 의제를 가로채 진보 정치의 의제로 바꿔버린 인물이 있었다. 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군나르 뮈르달이 그 사람이다.
스웨덴의 소장파 경제학자였던 군나르 뮈르달은 1931년 사회민주당에 들어가 비그포르스와 함께 ‘위기 안정화 프로그램’을 입안했다. 그러나 뮈르달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1934년 <인구문제의 위기>를 출간한 뒤부터다. 이 책에서 그는 ‘급속한 사회복지 확충만이 스웨덴 민족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웨덴 사민당은 강력한 복지 정책으로 저출산 위기를 극복했다. 위는 유모차를 끌고 스칸센 박물관을 찾은 스웨덴 남성들. |
그렇다면 그가 분석한 저출산의 원인은? 시장자유주의에 입각한 스웨덴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을 옥죄어 아이도 가질 수 없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분명했다. 국가가 개입해서, 가족이 아이에게 지출해야 하는 비용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뮈르달은 저출산을 타개하기 위한 대안으로 아동수당, 주택보조금, 건강보험, 무상급식, 무상보육, 간호, 교육수당 등 광범위한 사회복지 정책을 내놓았다.
더욱이 뮈르달의 복지정책에는 ‘출산율 올리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스웨덴 경제가 급격히 산업화되면서 새로운 고숙련 노동력이 대량으로 필요하게 될 것이었고, 이는 교육·건강보험·무상급식·보육 같은 사회복지정책으로 키워낼 수밖에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정책들은, 젊은 층(어린이와 청년)의 건강과 사회 적응 능력을 미리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예방적 사회복지’이기도 했다. 뮈르달은 “국가 지출이 건강·교육·가족 등에 투입되면 국민이 인간적 삶을 향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노동력의 질과 생산성을 높이기까지 한다. 예방적 사회복지정책은 인적 자원에 대한 생산적 투자다”라고 말했다.
뮈르달은 보수파가 중시하는 ‘출산율 저하’를 진보의 의제로 빼앗아 보수파가 반대하는 복지정책을 제도화하는 데 기여했다. 자본 측이 매력을 느낄 ‘노동력 공급’ 문제를 자본 측이 반대할 ‘복지 확충’의 틀로 전화했다. 그는 얼핏 보기에는 상반되는 ‘보수-진보’의 왜소한 논의 구도를 무너뜨린 뒤 이를 한 차원 더 높은 진보 정치의 실천적 틀로 포용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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