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해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왼쪽부터 시계 방향), 이은경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 대표, 장미순 참보육을 위한 부모연대 의장, 김호연 보육교사협의회 고충상담센터장이 누리과정 예산 관련 논란과 보육 공공성 확보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 좌담회는 지난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흔들리는 보육 공공성 어떻게?
보육 정책 전문가들을 만날 때마다 큰 한숨 소리만 듣는다. 그들은 만신창이가 된 보육 정책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듬어가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말한다. 보육 현장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은데, 무상보육에 대한 논의가 보육료 지원 여부에만 머무르고 있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는 부모들을 만나도 역시 한숨 소리뿐이다. 대선 전 박근혜 대통령이 무상보육 정책을 내세우며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를 약속했는데, 이제 와서 선별적 복지 혜택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새누리당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보육교사들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보육교사의 처우는 여전하다. 재정 논란으로 무상보육 정책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한겨레> 육아웹진 ‘베이비트리’는 이 분야 전문가를 비롯해 부모, 교사, 어린이집 원장 등으로부터 정부 정책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앞으로 보육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정리했다. 좌담회는 지난 17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진행됐다.
선별 복지 거론은 후진적 인식 ‘민낯’
보편적 서비스 제공해야 저출산 해결
국공립 어린이집 5.3% 구조 개선 절실
공공성 확대해 보육의 질 높여야
특별활동비 등 관리·감독도 강화를
보육 서비스는 보편적으로 제공해야
“현재 무상보육 정책은 진정한 무상보육 정책이 아니에요. 보육료 중 일부를 주면서 마치 공짜로 혜택 주는 것처럼 말하면 안 되죠. 그 지원금도 다 우리 세금인데 말이죠.
많은 부모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무상보육은 국가가 책임지고 아이를 함께 키우는 거예요. 보육료 지원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그런데 이제는 보육료 지원까지도 선별적으로 하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니 기가 막힙니다.”
5살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있는 장미순(42)씨의 말이다. 그는
‘참보육을 위한 부모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무상보육 정책으로 보육료 일부를 지원받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자신이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당장 취업을 하거나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활동을 하면서 네트워크도 쌓고 재취업의 기회도 모색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장씨는 “소득에 따라 선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취업모 중심으로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정부나 정책 입안자들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보육료 지원 혜택을 전 계층으로 확대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고작 1년 한 뒤 돈이 부족하니 선별적으로 하자며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싸잡아 ‘포퓰리즘’으로 몰아가는 상황에 부모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만 커지고 있다고 장씨는 전했다.
김종해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육 서비스는 보편적으로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미 80년 전 스웨덴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편적 복지 정책을 펼쳐 정책적 효과를 봤다”며 “아직도 우리나라 사회 지도층이 선별적 복지를 운운하고 있어 답답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무상보육 논란은 우리 사회의 복지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낮은지 그 민낯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공공성 위해 시급
참석자들 모두
보육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가 가장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17년째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집을 운영해온 이은경 큰하늘어린이집 대표는 최근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 진실>을 펴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어린이집 원장 출신인 그는 이 책에서 현재
민간 어린이집과 가정 어린이집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 사실을 낱낱이 고발했다. 닭 한마리로 90인분의 닭죽을 끓여 먹이는 것과 같은 급식 비리, 유령 교사를 등록해 교사 인건비를 가로채는 일, 특별활동비나 현장체험 학습비 일부를 횡령해 대출금을 갚는 데 사용하는 원장들, 비리·부패를 감시해야 할 공무원들의 부실한 지도 점검 문제까지 조목조목 짚었다. 이씨는 이날 좌담회에서 “개인 돈을 투자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들은 어떻게든 이윤을 남기려 할 수밖에 없다”며 “민간 자본을 토대로 한 어린이집이 90% 이상을 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보육 환경을 만들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현재 전체 어린이집 가운데 5.3%(2013년 기준)에 머무르고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리고, 비영리로 보육사업을 할 수 없는 민간 어린이집이 시장에서 나갈 수 있는 퇴로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해 교수 역시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가 가장 시급하다고 봤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 보육 정책의 기본은 비용 지원 정책”이라며 “정책 담당자들이 부모에게 구매력을 지원해주면 시장 기능이 작동해 보육 서비스가 잘 제공될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서비스 전달 체계나 공공성의 담보 없이 보육료 지원만 하면 제대로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회계 투명성 강화 등 규제 강화 방침을 내면,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이나 사립 유치원 원장들이 반대 목소리를 높여 제대로 정책을 펼치지 못하는 경우가 그 예다.
김호연 보육교사협의회 고충상담센터장은
“보육교사들도 자신들의 처우 개선 문제가 급한데도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운동을 벌이고 있다”며 “국공립 어린이집이 확충되면 자연스럽게 나머지 문제들도 풀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 국공립 어린이집은 위탁이 아닌 직영 방식으로 운영돼야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모두 최근
서울시와 서울교육청이 협력을 통해 초등학교 빈 교실을 활용해 보육 시설을 확충한다는 방안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이씨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짓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언제까지 중요한 문제를 미룰 것이냐”며 “국고가 부족하면 전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 휴면예금이나 복권기금 중 일부 등을 떼어내 영유아 보육기금을 만들어 어떤 형태로든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리는 데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별활동비 등 정부 규제 더 강화해야
학부모인 장씨는 보육의 공공성을 위해서는 정부가 어린이집의 특별활동비 등에 대해 관리·감독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장씨는 “보육료를 정부가 지원해줬지만, 어린이집에서 특별활동비 등 각종 명목으로 부모에게 추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상보육이라고 하지만 어린이집에서 부담시키는 각종 추가 비용 때문에 실질적으로 보육료 부담이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육교사들 역시 무상보육 정책으로 자신들의 근로 여건이 개선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육료 지원 혜택이 전 계층으로 확대되면서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아이들 수는 그 전보다 1.3배 늘었다. 그러나 정부가 정한 교사 대 아동 비율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보육교사는 초과 인원을 감당해야 하고, 보육교사 임금은 4년째 동결 상태다.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가 결정하는데, 이런 상태라면 보육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김 센터장은 “정부가 지원하는 보육료 안에는 보육교사 인건비가 포함돼 있다”며 “그 인건비가 보육교사에게 제대로 잘 전달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보건복지부가 인건비 지급 실태를 조사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보육교사는 12시간 근로를 하고 있고, 아이들은 12시간 어린이집에서 보내고 있다”며 “이런 환경 자체가 아동학대”라고 말했다. 그는 “보육 정책은 단지 보육 문제로만 논의되어서는 안 되며, 여성의 노동시간 등 노동 정책과 아동 인권 등 다양한 정책과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의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시간을 줄이고, 아이를 키우면서 믿고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을 확보하는 정책이 모두 함께 가야 한다는 의미다.
부모·교사들 세력화해 목소리 높여야
좌담회에서는 보육 문제와 관련해 제대로 된 정책을 정부에 요구하기 위해서는 부모나 교사 중심의 세력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어린이집 원장들은 연합회를 구성해 조직적으로 회계 투명성 강화 등과 같은 각종 규제 방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지만, 상대적으로 부모나 교사들은 자신들의 요구를 정책적으로 관철할 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장씨는 “아이가 너무 어릴 땐 부모들은 아이 키우느라 정신없고, 2~3년 정도 보육 정책에 관심 갖다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하면 보육 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모두 “부모들과 교사들이 좀더 보육 문제에 대해 끈질기게 관심 갖고 제대로 된 정책이 펼쳐질 수 있도록 정부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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