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6일, 경남도민일보, 이서후 기자 보도
"세월호, 능력중심주의 교육이 낳은 대참사"
경남대 인문과학연구소 학술대회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모색과 실천'에서 교육문제 지적 쏟아져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4년 11월 26일 수요일
지난 21일 경남대학교 국제세미나실에서는 경남대 인문과학연구소가 주최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주제는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모색과 실천'이다. 이날 장은주 경기도 교육연구원 선임연구원(영산대 교수·휴직)이 꺼낸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란 개념이 인상적이었다. 이는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 1915∼2002)이 처음 사용한 개념인데 장 연구원은 이를 능력주의 사회나 능력자 지배 체제 등으로 번역한다. 독특하지만 한국 교육을 설명하는 적절한 분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지면에 소개한다.
장은주 연구원은 이야기 출발점을 세월호 대참사로 삼았다. 그는 법적 책임이나 진상 규명 문제와는 다른 차원에서 세월호 대참사는 우리 사회 근대적 삶의 양식 전체가 앓는 심각한 병이 압축적으로 발현된 결과라고 했다. 그 병은 '지독한 물질 만능주의'와 '권위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인 문화'다.
"대참사는 자율적 개인의 부재라는 문화적 배경 위에 지극히 이기적이고 물질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습관만을 몸에 익힌 기성세대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체제와 질서에 일방적으로 순응하라고 강요하는 한국 교육 현실의 가장 추악한 단면에 대한 가장 적절한 알레고리다."
그래서 세월호는 '교육 대참사'이며 우리 교육을 지배하는 근본 패러다임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은주 경기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원 |
장 연구원은 한국 사회 지배적 교육 패러다임을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로 규정했다. 이는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경쟁해서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가지는 게 '정의롭다'고 여겨지는 이념이다. 장 연구원은 이 개념을 두고 혈통과 계급에 따라 부와 권력, 명예 등 사회적 재화가 분배되는 것에 반발해 나온 근대적 자본주의 분배 이론이라고 해설했다.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나오는 유머가 있다. 수능시험 점수는 모두 9등급으로 나뉘는데, 1등급에서 3등급까지 아이들은 치킨을 시켜먹는 사람이 되고, 4등급에서 6등급까지는 치킨을 튀기는 사람이 되고, 나머지 아이들은 치킨을 배달하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는 성적에 따라 사회적 계급이 나뉜다는 메리토크라시적인 이념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
장 연구원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과거제도도 그 이념상으로는 아주 메리토크라시적인 인재 선발 방식이었다고 보고 있다. 이런 유교적인 메리토크라시 이념이 근대화 과정에서 입신양명 이념과 결합해 아주 효율적으로 근대적인 주체들을 길러냈다고 장 연구원은 설명했다.
"메리토크라시 이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교육은 '능력자를 추려내는 경연'의 과정이다. 능력이란 게 사실은 아주 주관적이고 자의적이다. 하지만 사회는 교육을 통해 드러나는 성적과 학력으로 이런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 교육의 중심은 언제나 성적과 학력일 수밖에 없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도 가능한 한 높은 학력을 얻는 것이 되고, 학교 사명은 이 목표를 위해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줄 세우는 것이 되고 만다. 그 결과 인생의 질과 전망은 성적과 학력에 따라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또 그런 것이 정당하고 정의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런 사회에서 대졸자와 고졸자 간 큰 임금 격차는 너무도 정의롭다. 의사나 변호사 등 공부 잘했던 사람이 부와 권력과 명예를 독차지하는 것은 마땅하다.
"예를 들어 의사, 변호사 평균 연봉을 1억 5000만 원이라고 가정하고, 단순노동자는 연봉 1500만 원만 받아 열 배 차이가 난다고 하자. 메리토크라시 사회에서는 이것이 당연한 일이다. 의사나 변호사는 공부를 잘했다. 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고, 그래서 사회적 기여를 많이 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단순노동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거다. 이런 식으로 성적 경쟁에서 패배한 이들을 배제하고 무시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한국 교육은 지금 이 패러다임에 지배를 받고 있다."
장 연구원은 이 메리토크라시 패러다임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인성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지난 5월 여야 국회의원 100여 명이 인성교육진흥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도 교육 패러다임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법안에는 '이준석 방지법'이란 별칭이 붙었다. 당시 대표발의자인 국회 인성교육실천포럼 정의화(현 국회의장) 대표가 취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의 이기적인 행동을 예로 들어 제2의 이준석을 길러서는 안 된다고 해서다. 한편에서는 이를 두고 우리 교육이 드디어 주지교육에서 인성교육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장 연구원은 이런 움직임에는 아주 회의적이다. 그는 국가가 주도하는 대규모 인성교육은 변형된 일제강점기 수신교육이거나 변형된 유신 시대 국민 윤리 교육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단순히 착하게 살라고 명령을 전달하는 식으로 인성이나 가치관 교육을 할 게 아니라 청소년들이 스스로 '비도덕적인 사회'에서도 올바르게 도덕적으로 성숙할 수 있도록 성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똑바로 살아라, 올바른 인성을 갖춰야 한다고 백날 이야기해 보라. 오히려 반발만 불러일으킬 것이다. 청소년들은 착하게 살라고 하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가 얼마나 비도덕적인가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장 연구원은 이를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라고 했다. 모든 학생들이 다양한 방향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인정하는 교육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 교육 패러다임은 무엇보다 교육 과정을, 단순히 능력자를 추려내는 경연장이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존엄성을 평등하게 누리는 토대로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단순히 특정한 능력이 모자라서 무시당하거나 모욕당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능력 개념을 학업성적이나 학력 등에만 고정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있는 나름의 재능과 잠재력을 포괄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예컨대 소아마비 장애인이 신체적 한계 안에서 나름의 인간적인 성취를 보이려는 노력, 그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 연구원은 경기도에서 시작해 전국적으로 퍼져 나간 혁신학교 실험을 이런 교육 패러다임을 실현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이날 장 연구원에 이어 경기도 대표적인 혁신학교인 이우중고등학교 이수광 교장이 발표를 이어갔다. 이 교장은 세월호 이후 학교 체제를 바꾸려면 학교 의미부터 다시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학교를 '공부하는 곳, 입시 준비하는 곳'이 아닌 '삶을 익히는 곳, 관계를 통해 긍정적 자아를 빚는 배움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학생도 '공부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 '자기 삶을 사는 존재, 자신을 값있게 만드는 존재'로 정의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교장은 학교의 이상적인 모습을 홀라크라시(holacracy)라고 했다. 그리스어 홀라(hola)는 전체를, 크라시(cracy)는 통치를 뜻한다. 다시 말해 구성원 개개인이 의사결정 권한을 행사하며 전체를 유기적으로 이끌어간다는 개념이다. 이런 개념 안에서 교사는 지식적인 전문성을 넘어 인간존재에 대한 철학적 이해, 경험의 교육적 해석, 지적 성장 과정을 진단할 수 있는 안목, 사회적 현상을 분별하는 감수성까지 종합적인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서 이 교장은 좋은 교사는 결국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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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진흥법안(1910733)
제안이유
오늘날 고도의 과학기술 및 정보화시대에 강조되는 정보기술의 발전과 활용의 원천은 인간에게 있고, 인간의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人性) 여하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보다 장기적이고 진정한 경쟁력은 인성에 달려있다고 하겠음.
제안이유
오늘날 고도의 과학기술 및 정보화시대에 강조되는 정보기술의 발전과 활용의 원천은 인간에게 있고, 인간의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人性) 여하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보다 장기적이고 진정한 경쟁력은 인성에 달려있다고 하겠음.
이런 점에서 인성교육은 학교를 포함한 사회적 차원에서 종합적ㆍ상호 유기적ㆍ체계적으로 실시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국가와 지역사회 차원의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겠음.
이에 인성교육을 활성화할 수 있는 국가ㆍ사회적 기반을 구축하고, 인성교육의 틀을 가정ㆍ학교ㆍ사회가 협력하는 구조로 개편하여 효과적인 인성교육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이 법을 제정함으로써 장기적 비전과 일관성 있는 인성교육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인성 중심의 미래사회 핵심역량을 강화하려는 것임.
주요내용
가. 이 법은 「대한민국헌법」에 따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교육기본법」에 따른 교육이념을 바탕으로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人性)을 갖춘 시민을 육성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함(안 제1조).
나. ‘인성교육’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ㆍ공동체ㆍ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으로 정의함(안 제2조제1호).
다. 교육부장관은 인성교육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하여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국가인성교육진흥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인성교육진흥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도록 함(안 제7조제1항).
라. 인성교육정책의 목표와 추진방향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하기 위하여 교육부장관 소속으로 국가인성교육진흥위원회를 둠(안 제10조).
마. 국가는 인성교육과 관련된 업무를 지원하기 위하여 한국인성교육진흥원을 설립하도록 함(안 제11조).
바. 교육부장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각 학교에 대한 인성교육 목표와 성취 기준을 정하고, 각 학교의 장은 인성교육 실시기준과 교육대상의 연령 등을 고려하여 매년 교육계획을 수립하여 교육을 실시하도록 함(안 제12조제1항 및 제2항).
사. 교육부장관은 가정, 지역사회 등 학교 밖에서 인성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인성교육프로그램을 개발ㆍ보급하기 위하여 노력하여 함(안 제14조).
아. 언론에서는 범국민적 차원에서 인성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이들의 참여의지를 촉진시키기 위해 캠페인 활동을 전개하도록 노력해야 함(안 제2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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