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5일 경향신문 김정인(춘천교대, 한국사) 칼럼
2015년을 '광복 70주년'이라고 부를 터인데...
내년은 일본 패망, 한국 독립, 중국 승전 70주년이 되는 해다. 식민과 전쟁이 남긴 상처가 아물고 흉터마저 없어질 만큼 세월이 흘렀건만, 동아시아에선 그 상처가 곪아 터져 아물 줄을 모른다. 올해는 더욱 잔인한 해였다. 일본 정부와 우익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표적 삼아 가해의 기억을 은폐하기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짓밟고 그 위에 일본의 국익이란 깃발을 꽂으려는 그들의 패악에 어렵게 자신의 삶을 드러내고 불편한 몸으로 1000회가 훌쩍 넘는 수요시위를 이어오던 할머니들의 가슴에는 피고름이 맺혔다.
2015년을 맞아 이제 일본 정부는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담화 외교를 접는 수순을 밟으려 할지 모른다. 일본이 도발한 동아시아 역사전쟁은 1982년에 시작되었다. 그해 일본 정부는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집필자들에게 침략을 진출로, 탄압을 진압으로, 출병을 파견으로 수정하도록 지시했다. 명백한 역사왜곡에 한국과 중국이 격렬히 반발하며 외교 분쟁이 일어났다.
역사전쟁은 이웃나라의 비판에 귀 기울이며 교과서를 쓰겠다는 미야자와 관방장관의 담화와 ‘근린제국조항’이란 검정기준이 신설되면서 일단락됐다. ‘가까운 이웃 나라의 근현대사를 다룰 때는 국제 이해와 국제 협조라는 견지에서 배려하도록 한다’고 약속한 것이다.
1990년대에 일본 정부는 과거사와 관련하여 두 번의 담화를 발표했다. 1993년에는 일본군 ‘위안부’의 모집과 관리에서 일본군에 의한 강제동원과 조직적 관여를 인정하는 고노 관방장관의 담화가 나왔다. 1995년에는 무라야마 총리가 식민 지배와 침략 사실에 대한 사죄를 담은 담화를 내놓았다. 일본에게 미야자와 담화,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로 이어진 담화 외교는 과거사 문제로 일어난 역사전쟁 국면을 벗어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지금은 태도가 달라졌다. 일본 정부와 우익은 이들 담화를 뒤엎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 때마침 8월5일과 6일자 아사히신문이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증언한 요시다의 발언을 실은 1982년의 기사를 오보라며 철회했다.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기억 중 단 하나가 오류로 드러난 것뿐인데 일본 우익은 정부를 향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강제동원을 전면 부인하며 고노 담화를 취소하라고 압박했다. 일본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에 관한 잘못된 보도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고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공세의 선두에 섰다. 스가 관방장관은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자료가 없는데도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인정한 것은 큰 문제였다며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주장으로 아베를 거들었다. 이제 그들의 질주는 세계로 향하고 있다. 이달 초 일본 외무성이 미국의 대형 교과서 출판사인 맥그로힐의 세계사 교과서 서술을 문제 삼았다. ‘일본군은 14~20세의 약 20만명의 여성을 위안소에서 일을 시키기 위해 강제 모집, 징용했다’는 내용이 오류이니 수정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역사전쟁은 이웃나라의 비판에 귀 기울이며 교과서를 쓰겠다는 미야자와 관방장관의 담화와 ‘근린제국조항’이란 검정기준이 신설되면서 일단락됐다. ‘가까운 이웃 나라의 근현대사를 다룰 때는 국제 이해와 국제 협조라는 견지에서 배려하도록 한다’고 약속한 것이다.
1990년대에 일본 정부는 과거사와 관련하여 두 번의 담화를 발표했다. 1993년에는 일본군 ‘위안부’의 모집과 관리에서 일본군에 의한 강제동원과 조직적 관여를 인정하는 고노 관방장관의 담화가 나왔다. 1995년에는 무라야마 총리가 식민 지배와 침략 사실에 대한 사죄를 담은 담화를 내놓았다. 일본에게 미야자와 담화,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로 이어진 담화 외교는 과거사 문제로 일어난 역사전쟁 국면을 벗어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지금은 태도가 달라졌다. 일본 정부와 우익은 이들 담화를 뒤엎을 기회를 노리고 있다. 때마침 8월5일과 6일자 아사히신문이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증언한 요시다의 발언을 실은 1982년의 기사를 오보라며 철회했다.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된 기억 중 단 하나가 오류로 드러난 것뿐인데 일본 우익은 정부를 향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강제동원을 전면 부인하며 고노 담화를 취소하라고 압박했다. 일본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에 관한 잘못된 보도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고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공세의 선두에 섰다. 스가 관방장관은 일본군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자료가 없는데도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 동원을 인정한 것은 큰 문제였다며 사실과 부합하지 않은 주장으로 아베를 거들었다. 이제 그들의 질주는 세계로 향하고 있다. 이달 초 일본 외무성이 미국의 대형 교과서 출판사인 맥그로힐의 세계사 교과서 서술을 문제 삼았다. ‘일본군은 14~20세의 약 20만명의 여성을 위안소에서 일을 시키기 위해 강제 모집, 징용했다’는 내용이 오류이니 수정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일본 정부와 우익의 무리수의 끝은 어딜까.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가해자 스스로 가해의 기억을 밝혀내고 사과하고 보상해야 마땅한데, 수많은 가해자 중 한 사람의 증언이 허구였다는 것을 근거로 세계를 향해 가해 사실 전부가 날조라고 우기니 말이다. 이번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놓고 벌인 도발이라 더욱 섬뜩하다. 자신들이 저지른 가장 반인류적이고 가혹한 전쟁 범죄를 은폐한다는 것이 그들에 의해 소중한 삶을 짓밟힌 여성들을 또다시 모욕하는 범죄행위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이토록 잔인한 도발은 일본이 ‘종전 70주년’으로 기념할 2015년에 일어날 역사전쟁의 서막에 불과하다. 그건 동아시아 역사전쟁인 동시에 세계 차원의 역사전쟁이 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 인권의 잣대에서 국가 권력에 의한 성폭력이요, 전쟁범죄로 규정한 국제사회를 상대로 일본 정부가 맞서야 하는 역사전쟁이 될 것이다. 과거사를 딛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모색하는 역사 화해의 길이 내년에도 열리지 않을 듯하다.
이토록 잔인한 도발은 일본이 ‘종전 70주년’으로 기념할 2015년에 일어날 역사전쟁의 서막에 불과하다. 그건 동아시아 역사전쟁인 동시에 세계 차원의 역사전쟁이 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 인권의 잣대에서 국가 권력에 의한 성폭력이요, 전쟁범죄로 규정한 국제사회를 상대로 일본 정부가 맞서야 하는 역사전쟁이 될 것이다. 과거사를 딛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모색하는 역사 화해의 길이 내년에도 열리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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