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66556.html
2014년 11월 27일 한겨레, 황광수 문학평론가 서평
감시·검열의 디스토피아에 심판과 분노로 맞서다
|
|
100년 뒤 미래를 배경 삼은 디스토피아 소설 <강철 무지개>를 내놓은 작가 최인석. “우리는 지금 인간과 인간사이에 남은 것이라곤 오해와 의심뿐인 세계로 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세계에서 최소한의 생존은 어떻게 가능할지를 모색해 보았다”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최인석 장편 ‘강철 무지개’
22세기 무대로 삼은 근미래 소설
인간의 존재와 행방을 묻는다
강철 무지개
최인석 지음/한겨레출판·1만4000원
‘강철 무지개’로 표상되는 이 소설 속 미래(2100년의 앞뒤 11년) 세계는 화려한 약속 아래 치밀한 감시와 검열로 관리되는 강고한 디스토피아이다. 거기에서 일어나는 다방면의 사건들은 스물여섯 개의 장과 ‘에필로그’에 순서 없이 분배되어 있다. 인물의 회상을 통해 과거를 현재화하는 방법의 한계를 의식한 듯, 작가는 그 시간대에 펼쳐지는 다양한 국면과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낯선 세계를 빚어내는 상상력은 예언적이기보다는 추론적이다. 그 세계는 지금의 현실이 투사된 것인 만큼 지금 우리 삶의 부정적 요소들에 대한 강력한 환기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인간의 삶은 정밀하게 미분된 시간과 감시망으로 관리되고, 거대기업들은 국가의 기능까지 침식하며 인간의 삶을 자신들의 계획대로 짜가며 치밀하게 관리한다. 이를테면, 기업과 국가가 손잡고 만들어낸 ‘에너지돔’이라는 공간이 있다. 거기에는 그 세계의 지배논리가 오롯이 압축되어 있다. “SS 울트라돔,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의식주 무상, 직장 보장, 의료 보장, 세금이 없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여러분의 평생을 보장합니다.” 거기에 필수적인 메타물질 EM(익스트럼 모듈)은 태양열에 반응하여 고효율의 에너지를 생산하고, 에너지 소모율은 제로에 가깝다. 서울클라우드익스프레스 회장 한창수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세계는 에너지돔과 에너지돔이 연결된 네트워크로 이행될 것이다. 결국 국가는 조정기구 정도로 이행될 것이다.” 교묘하게 착취한 노동력으로 세금을 대납하는 기업은 선거에 의존하는 대의민주주의까지 좌지우지한다.
이 세계에서 우주 개발은 인류에 대한 감시의 수단이 되고, 에너지 개발은 삶의 터전을 폐허로 만든다. 20년 전 중국의 화물선 ‘안줘호’가 황해에서 침몰, 핵물질이 누출되어 서해안 지역은 완전한 폐허가 되어 있다. 이 암담한 세계에서 한 줄기 빛이 반짝한다. 재선과 지연이 조밀하게 관리되는 그물망에서 빠져나와 그 ‘세계의 끝’에서 자신들만의 공간을 발견한 것이다. 이들에게 그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온전히,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은 듯 의식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것도 가능해졌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애너벨 리>(포)의 두 연인처럼 그들도 가혹한 ‘질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군위수지역’이었던 그곳에서 그들은 가혹하게 추방된 것이다. 한순간 반짝하고 영영 사라져버린 그들만의 ‘작은 세계’는 아프게 우리의 뇌리에 각인된다.
지옥 같은 그 세계에는 이른바 ‘테러리스트’들도 있다. 아이리스는 소년의 간 절반을 빼앗은 자에게 금속 채찍을 휘두르고, 지연은 에너지돔과 함께 폭파된다. 그리고 아이리스의 애인 멜라니(프랭크)는 자신을 죽이러 온 멕시코 깡패들을 살해한다. 이들의 행동원리에 내재해 있는 것은 ‘심판’과 ‘분노’이다. 이 세계는 심판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닌 아이리스가 ‘심판’의 옹호자라면, 그녀의 천진한 낙원을 믿지 않는, 그래서 회복 불가능한 파괴밖에 생각할 수 없는 프랭크(멜라니)는 ‘분노’의 화신이다. 이들이 하나같이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연(지니), 아이리스(에스다), 프랭크(멜라니) 들에게 사랑과 폭력은 진정한 삶과 사랑이 가능한 세계에 대한 열망에서 피어나는 것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물론, 이들의 폭력은 상황적 필연성과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안영희-마릴린-나오미-프랭크-나탈리-멜라니. 이것은 여섯 사람의 이름을 나열해놓은 것이 아니다. 열한살에 거리로 쫓겨난 전과 8범인 한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름들이다.
‘아담’이라는 이름을 가진 멕시코 소년이 있다. 인류의 아버지가 가졌던 이름으로 불리는 이 소년은 한창수에게 간의 절반을 빼앗긴 채 버려졌다. 이 소설의 ‘에필로그’에는 그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외침이 절절하다. “아담, 아담, 어디 있어? 어디 있는 거야? 돈데 에스타 아담?” 간이식 수술에 간호사로 참여하고도 그 소년의 행방을 몰랐던 아이리스의 외침은 소설 밖으로까지 쟁쟁하게 울려 퍼진다. 인간아, 인간아, 너는 어디 있는 거야?
황광수/문학평론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