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 서울의 모습. 오른쪽 긴 도로가 을지로, 왼편이 종로, 그 가운데가 청계천으로 종로 끝 부분에 동대문이 보인다.
서울은 특별시다. 1천만 서울 시민의 의식 속에는 '나는 특별시민'이라는 자부심이 알게 모르게 배어 있다. 서울에 살다가 경기도의 어느 신도시로 이사한 한 지인은 차량 번호판을 '경기'로 바꿔 기분이 심란했다고 고백했다.나라마다 수도(首都)가 있지만, 특별시란 이름을 가진 수도는 서울이 유일하다. 많은 사람은 "서울은 특별하니까, 또는 수도니까 특별시라고 부르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서울이 특별시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서울시에 근무하던 1970년대까지 나도 서울특별시란 이름이 어떤 뜻으로 지어졌는지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자료를 정리하다가 서울이 특별시가 된 이유를 알고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었다.조선시대 서울의 공식 명칭은 한성부(漢城府)였다. 1910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서울의 이름을 경성부(京城府)로 바꿨다. 8.15 광복 후 경성부에 근무하던 일본인들이 모두 떠나가고 한국인 직원들만 남게 되자 일제의 잔재인 경성부 대신 '서울시'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구청에 내려보내는 공문서에도 서울시라는 이름을 썼지만 그것이 공식 명칭은 아니었다. 당시 중앙정부 기능을 맡았던 '미 군정청 지방행정처'가 경성부라는 일제시대 이름을 쓸 것을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또 당시 이범승 서울시장은 조선시대의 한성이라는 이름이 좋다며 스스로 한성시장이라고 불렀다. 이 때문에 당시 경찰국은 '한성경찰서'라는 간판을 달기도 했다. 광복 후 1년간 서울시는 공식 명칭을 갖지 못한 상태였던 것이다.46년 8월 14일 미 군정청 공보부는 '특별발표'라는 것을 발표했다. 특별발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극동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한 도시가 시민이 원하는 자치를 하게 되고 자치헌장을 가진다. 즉 조선의 수도 서울이 바로 그 도시다.
2. 서울은 미 군정장관 A L 러치 소장이 오늘 발표한 헌장에 의해 경기도 관할에서 독립하고 '자유독립시'가 된다.
군정청 공보부장은 이 내용을 광복 1주년에 미 군정장관이 서울 시민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48년까지 미 군정은 정말 무능했다. 한국인이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구호양곡을 미 본토에서 들여오는 식량정책과 최소한의 치안대책 외에는 한 일이 없었다. 한국인들의 불만이 쌓여만 갔다. 군정 당국자들도 스스로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국인의 여론은 서울시민이 좌우한다고 생각한 군정 당국자들이 광복 1주년을 맞아 서울 시민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내놓은 것이 '서울자유독립시(Seoul-freedom independent city)'였다. 이를 뒷받침하는 미 군정법령 제106호가 46년 9월 18일 공포됐다. 영어로 씌어진 군정법령이 한국어로 번역됐다.
영어 원문은 'Section Ⅱ (Seoul established as Independent City)'였다. 즉 서울독립시의 설치다. 경기도 관할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지방정부가 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법령 번역을 맡은 군정청의 한국인 직원은 고민에 빠졌다. 그의 상식으로는 '독립시'라는 이름은 쓸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특별부제'란 단어였다. 30년대 말 경성부 의회가 점점 팽창하는 경성부를 경기도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건의하자 당시 일본인 부윤이 경기도 관할에서 벗어나는 특별부제를 연구해보겠다고 답변한 신문기사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서 '서울-독립시의 설치'라는 영어 원문을 '서울-특별시의 설치'로 번역했다.
이렇게 해 군정법령의 효력이 발생한 46년 9월 28일부터 서울의 공식 명칭은 서울특별시로 정해졌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정리=신혜경 전문기자
<필자 프로필>
▶1928년 경주 출생▶69년 명지대 경영학사▶74년 단국대 행정학석사▶77년 단국대 법학박사▶52년 제2회 고등고시합격▶57년 경북 예천 군수▶60년 경북도청 선거지도과장▶63년 총무부 중앙공무원 교육원 교관▶70~75년 서울시 기획관리관.도시계획국장.내무국장▶75~78년 서울시 공무원교육원장▶78~94년 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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