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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N 회원, '하얀' 님의 글. 2014년 11월 21일
하이데거는 시인을 일컬어 ‘존재의 거처를 지키는 파수꾼’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은 왜 스스로 아무도 돌보지 않는 존재의 터, 텅 빈 그 자리의 문지기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그들의 시쓰기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수행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시를 들여다보는 일은 나와 더불어 세계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됩니다. [풍문으로 들은 시]에서는 2000년 이후의 출판된 한국의 좋은 시집들을 한권씩 소개하려 합니다. 풍문으로만 들었던 시를 읽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코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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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는 것들의 공동체
-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창비,2012
하얀/수유너머N 회원
진은영 시인은 시인이자 철학자이다. 동사무소에서 일하던 시절, 시를 쓰고 싶다는 진은영의 꿈을 응원하던 한 언니에게 “시인은 철학을 잘해야 된다”는 말을 들은 후 시를 잘 쓰기 위해 철학과에 가게 되었다. 지금까지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2003), 『우리는 매일매일』(2008), 『훔쳐가는 노래』(2014)를 출간하였다. 평론가 신형철은 진은영의 시세계를 “미학적 공동체”로 명명한다.
1.자본주의 가치법칙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예외 없이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가치법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본주의 가치법칙은 모든 사물들이 화폐라는 척도로 교환을 통해 결정된다. 화폐로 교환되지 못하는 노동 혹은 활동들, 그 외 사물들은 유용하지 않는 것들로 소외된다. 그리고 이렇게 가치화되지 않는 것들을 우리는 쓸모없는 것들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것들은 쓸모없을지라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being)들이다. 오히려 그것들은 자본주의 가치법칙이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자본주의 이전/이후에 고유한 가치를 지니는 것들이 반드시 있다. 진은영은 이 쓸모없는 것들의 노래를 받아 적으며 시집 『훔쳐가는 노래』에서 고유한 가치세계를 창안하려 한다.
2.쓸모없는 것들
창 전면에 롤스크린이 쳐진 정오의 방처럼/책의 몇 줄이 환해질 때가 있다/창밖을 지나가는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때가 있다/여기에 네가 있다 어린 시절의 작은 알코올램프가 있다/늪 위로 쏟아지는 버드나무 노란 꽃가루가 있다/죽은 가지 위에 밤새 우는 것들이 있다/그 울음이 비에 젖은 속옷처럼 온몸에 달라붙을 때가 있다
확인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깨진 나팔의 비명처럼/물결 위를 떠도는 낙하산처럼/투신한 여자의 얼굴 위로 펼쳐진 넓은 치마처럼/집 둘레에 노래가 있다
-「있다」중에서
이 시의 화자는 달빛이 켜진 밤에 “알 수 없는” 존재들을 본다. 그것들은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존재들이며, “확인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것들은 지나가버린 기억들과 같지만 현재에도 온몸에 달라붙어 자신의 있음을 알린다. 어떤 이들은 그러한 존재의 현재성을 거부할 것이다. 그것은 환상이라고 말하리라. 하지만 그러한 존재들이 화자의 신체 속에 자신을 드러내듯 당신도 모를 존재 때문에 불현듯 울컥했던 기억이 있지 않은가? 당신은 분명히 그날 당신이 거부한 그들의 존재의 거처가 되어준 것이다. 그들의 존재는 기존의 “있음”에 대해 물음을 던지며 “책의 몇 줄처럼” 당신의 신체를 다른 세계로 초대하며 환하게 비추는 노래다. 시인은 쓸모없는 것들의 목록들(종이/펜/질문들/쓸모없는 거룩함/쓸모없는 부끄러움/푸른 앵두/바람이 부는데/그림액자 속의 큰 배 흰 돛/너에 대한 감정/빈집 유리창을 데우는 햇빛/자비로운 기계/아무도 오지 않는 무덤가에/미칠 듯 향기로운 장미덩굴 가시들/아무도 펼치지 않는/양피지 책/여공들의 파업 기사/밤과 낮/서로 다른 두 밤/네가 깊이 잠든 사이의 입맞춤/푸른 앵두/자본론/죽은 향나무숲에 내리는 비/너의 두 귀(「쓸모없는 이야기」))과 그것들의 노래를 적어 내려간다.
3.공정한 물물교환
시인은 “평생 동안의 월급과 술병 더미들/단 하나의 녹색 태양, 연애의 비밀들과 양쪽 폐를 팔아”(「공정한 물물교환」) 이 쓸모없는 것들을 거래하는 것을 “공정한 물물교환”이라고 말하며, 또한 이것을 문학이라고 명명한다. 한 문장을 얻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내놓는 것이 문학이다.
이 공정한 물물교환은 주고받는 교환이기보다 훔침을 당하고-훔쳐가는 관계를 통해 성립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연한 사건을 통해 이루어진다는데 그 특이한 점이 있다.
꿈속을 걸으면서 너는 기억하네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크고 둥근 식탁/부드럽고 위태로운 장소의 이름 속으로/너는 들어오겠지, 둘러앉아 우리 무얼 먹을까 궁리하며
전기 끊긴, 낭만적인 유사 별밤에서 노래도 몇 소절 훔쳐왔다네/아름답게 반쯤 감긴 눈으로 너는 기억할 수 있겠지/옛날에 한 술꾼 평론가가 먼 기차 소리의 검은 아치 아래 등을 기대던 곳/새벽의 투명한 술잔 속에 시인이 떨어뜨린 한점의 불꽃을 천천히 마시던 곳/이젠 죽은 그가 천천히 걷다가 모퉁이를 돌아가며/다른 이들의 노래로 가엽게 굽은 등을 조용히 숨기던 밤의 근처들
-「몽유의 방문객」중에서
위의 시는 두리반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두리반은 동교동 167번지의 식당이었다. 그곳은 문화시위를 통해 철거 반대 투쟁을 이어 갔고 승리했다. 그리고 그곳에 진은영도 있었다. 진은영은 동료 시인 및 뮤지션 등과 함께 8개월 동안 매달 ‘두리반’에서 ‘불킨 낭독회’를 꾸렸다.
이 공간은 또한 시인에게 “전기 끊긴, 낭만적인 유사 별밤에서 노래도 몇 소절 훔져”가도록 훔침을 당하는 장소로 기록된다. 누구든, 무엇이든 훔쳐가도록 열려 있는 것, 어떤 장소, 어떤 기억, 그리고 쓸모없는 것들이야말로 “공정한 물물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가치 법칙이 아닌 훔침을 당하고-훔쳐가는 공유의 법칙이 통용되는 공동체, 모두가 ‘도둑’이 되어 서로에게 연루된 ‘모리배’들의 나라(「죽은이의 평화」)를 진은영은 꿈꾸고 있다.
또한 시인은 자신의 시를 이제 가치법칙에서 벗어나 무용한 것이 되길 소원한다. 누구나 훔쳐갈 수 있도록 열린 것이 되는 시. 이 시집은 훔침을 당함으로써 여러분을 무용한 것들의 공동체로 초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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