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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5일 경향신문 김여란 기자 보도
- ‘돈키호테’ 완역 안영옥 교수 “5년 동안 스페인 누비다 보니 스스로 돈키호테가 되더군요”
- 김여란 기자 peel@kyunghyang.com
ㆍ“소외된 자 돕는 정의로움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
“내가 돈키호테가 되고 싶었어요.”
<돈키호테> 속편이 나온 지 400주년이 되는 내년을 앞두고, 안영옥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교수(56·사진)가 5년간 매달린 <돈키호테 1·2>(열린책들) 번역의 결실을 내놨다. 안 교수는 안식년이던 2010년부터 방학 때면 스페인에 한두 달 체류하면서 돈키호테가 거쳤던 모험의 여정을 순서대로 모두 따라갔다. 돈키호테가 처음 모험을 떠났던 들판에 섰고, 그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경험을 했던 동굴에서 박쥐를 만났다. 돈키호테에게 기사 서품식을 해준 객줏집 주인이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지역 땅을 밟고, 세금 징수원이었던 작가 세르반테스가 돌아다녔던 스페인 안달루시아 곳곳을 누벼 온 안 교수에게 <돈키호테> 번역은 곧 돈키호테가 되는 과정이었다.
“돈키호테가 살던 라만차 마을은 참 구경거리도 없고, 막막하고 고적한 곳이에요. 그렇다 보니 거기 사는 사람들 중에는 원대한 꿈을 꾸는 몽상가가 많았다고 해요. 작품 속 시대와 장소를 글만 보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직접 몸으로 느끼고 싶었습니다. 정말 제대로 된 번역을 하고 싶었기에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 했지요.”
17세기 스페인 작가 미구엘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는 ‘인류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고전이다. 그러나 막상 스페인어 원전을 우리말로 직접 번역한 작품은 국내에 드물고, <돈키호테>를 제대로 읽은 이도 드물다. 정편과 속편까지 원전에 충실하게 완역한 작품은 안 교수가 이번에 내놓은 1700여쪽의 <돈키호테 1·2>와 2012년 창비에서 낸 <돈 끼호떼 1·2>가 전부다. 오랫동안 우리가 읽었던 <돈키호테>는 대부분 축약본이거나 영어·일본어 등을 중역한 작품이었다.
번역을 시작하고 안 교수는 작품 속 구어체 표현이나 지금 사용되지 않는 어휘, 소설에 나오는 숱한 속담 등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정확히 알기 위해 스페인 현지 취재에 공을 들였다. 안 교수가 유학했던 마드리드 대학 교수나 책방 주인, 행인 모두 돈키호테 전문가였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 안 교수가 인적 드문 라만차 거리를 지나다 만난 한 할머니에게 자신이 <돈키호테>를 번역하고 있다고 소개하자 할머니는 전화를 걸어 몇 사람을 부르더니, 안 교수에게 “이 사람도 돈키호테고, 저 사람도 돈키호테야. 맨날 꿈만 꾸고 살아”라고 말했다.
이런 경험 덕에 안 교수는 한국 독자가 <돈키호테>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했다고 자부한다. 한 예로 ‘지독한 매질을 당하면 멋지게 말을 탄다’는 말은 번역만으로는 알아듣기 어려운데, 안 교수는 17세기 초 스페인에서 죄지은 자가 당나귀에 올라타 매를 맞으며 거리로 끌려다니던 풍습을 주석으로 설명했다. 이 같은 주석이 840여개다.
안 교수는 “돈키호테는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내는 인물”이라며 “스펙과 돈에 목을 매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돈키호테>는 꼭 읽어야 할 작품”이라고 했다. “우리는 정상 궤도에서 어긋나 괴짜 행동을 하는 이를 두고 부정적인 의미로 돈키호테라며 잘못 부르는데, 돈키호테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돕는 정의로운 사람이에요. 따뜻한 인간성과 절대적인 의지를 갖고 실제 행동하지요.”
안 교수는 내년 10월 해설서 <돈키호테를 읽다>(가제)를 낼 계획이다. 오는 29일에는 고려대에서 출간 기념회를 열고 ‘죽기 전 꼭 읽어야 할 고전 돈키호테, 어떻게 읽을 것인가’란 주제로 강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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