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교육의 바탕이 되는 교육철학 쉽게 알아보기
2009년 경기도에서 진보 교육감이 탄생함에 따라 아이들을 배움의 주체로 놓자는 ‘혁신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개별학교 차원의 실천들이 있었지만 혁신교육이 공식적으로 전면화된 것은 2009년 경기도에서 추진한 ‘혁신학교’의 운영부터였다. 그 이후 혁신교육은 서울, 강원, 전남, 전북, 광주 등 전국의 진보 교육감 당선 지역으로 퍼져 현재 일반화를 모색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2014년 말에 이르면 우리나라 전체 학교의 약 12%를 혁신학교가 차지하게 된다.
혁신교육은 기존 교육에 대한 실천적 반성으로부터 나왔다. 파행적 입시경쟁, 과잉 사교육, 교육격차의 심화, 교육 시장화 등은 한국에서 공교육의 위기를 불러오는 주범으로 지목되곤 했다. 또한 아이들의 전인적 발달을 위한 전제 조건인 학교환경의 개선, 학교 민주주의 실현, 교사의 전문성 신장, 주입식 암기교육의 극복, 학생인권의 보장 등이 학교 차원의 혁신 과제들로 떠올랐다. 그동안 전교조를 비롯한 교직단체, 각종 교과모임, 자발적 교사공동체 등이 학교개선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경쟁교육의 악순환은 점점 심화되어 갔다.
그동안 한국은 고도성장을 거듭하여 OECD 주요국의 지위를 확보하였으나 유독 교육 분야는 전 영역에 걸쳐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후진성이 지속되었다. 선진국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교육관계법 체계, 교육부에서 단위학교까지 이어지는 획일적 관료주의, 교사의 자주성과 전문성의 침해, 여전히 학생들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보수적 풍토 등은 더 이상 교육의 혁신을 미룰 수 없도록 압박하였다.
마이클 풀란과 앤디 하그리브스(2005)는 학교개선을 가로막는 여섯 가지 장애로 교직업무의 과중, 관계절연의 팽배, 집단주의의 만연, 능력개발의 미흡, 교사역할의 제한, 해결방안의 부재를 들었다. 교사들은 무엇보다도 수업에 전념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학교 개선을 희망했다. 이에 따라 혁신학교 초기에는 교사가 수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업무를 재조정하고, 교사 간 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프로그램 가동, 집단사고를 통한 계획과 실천 등이 권장되었다.
혁신교육 및 혁신학교의 이론적 배경으로 그동안 연구된 문헌들을 조사한 결과 각기 강조점이 다르긴 했으나 큰 틀에서는 공통점이 있었다. 먼저 강충열 등(2013)은 학교혁신의 바탕이 되는 이론으로 평형이론과 갈등이론을 비교하여 제시하고 이를 통합적으로 조망할 것을 주문하였다. 서용선(2012)은 ‘복잡성 이론’이 듀이의 교육철학과 만나는 지점에서 혁신교육의 논의가 풍성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김성천(2011)은 혁신학교의 이론적 배경으로 스톨의 학교 5유형, OECD 미래학교의 6가지 시나리오, 배움의 공동체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광호 등(2012)은 혁신학교에서 추구하고 있는 수업혁신 이론으로 루소의 이론, 듀이 등의 학습자중심수업, 배움의 공동체 수업을 제시하였다.
경기도교육청은 혁신교육의 지향점으로 ‘창의지성교육’을 내걸었다. 창의지성교육은 ‘지성교육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창의성을 달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성교육’이란 ‘인류사회의 다양한 지적전통, 문화적 소양, 경험과 실천을 바탕으로 비판적(반성적, 성찰적)인 사고력(critical thinking)을 키우는 교육방법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비고츠키의 발달 이론을 혁신교육의 바탕으로 제시한 초등교육과정연구모임(2011)에서는 혁신학교의 철학으로 어린이의 전면적 발달, 민주주의 구현, 교육 공공성의 확립을 꼽았다.
혁신학교의 초기 단계에서는 주로 수업혁신을 통해 학교의 혁신을 모색하였다. 이에 따라 사토마나부의 ‘배움의 공동체’ 모델을 적용한 학교가 많았다. 아이들이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교실 상황에서 이들이 참여하고 협력하며, 표현하는 배움을 중심에 놓는 수업 방식은 교실수업에 지쳐있는 한국 교사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섰다. 배움의 공동체 모델에서는 교육의 공공성, 민주주의, 탁월성을 철학의 근간으로 내세우고 있다. 또한 전교사가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고 수업평가회를 기초로 민주적 동료성을 구축하는 등 교사들의 협력과 집단 활동을 강조한다. 현재 배움의 공동체를 적용하고 있는 학교는 전국에 분포돼 있다.
배움의 공동체 외에도 노동의 가치, 표현적 배움, 아동의 흥미 중심, 자연적 방법, 탐구수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프레네 교육철학이나 구조의 모순을 혁신함으로써 개인의 해방을 추구하는 애플이나 프레이리의 교육관도 드러난다. 주변인과의 협력적 배움을 통해 언어를 매개로 지식을 내면화하여 고등정신기능을 습득해 간다는 비고츠키 문화발달심리학, 해체와 재구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등 최근 혁신교육을 직간접으로 지탱하는 교육이론들은 상당히 다양하다.
혁신교육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활동가들이 말하는 내용에는 공통점이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지적 전통주의와 효율성에 기초한 경제논리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로 이는 교육본질을 회복하고자하는 긍정적 방향이다.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방법과 절차에 비중을 두는 혁신교육의 추진 과정에 대한 우려이다.
배움의 공동체 모델을 적용해 본 어떤 교사의 경우 몇 개의 키워드로 자신이 적용하는 수업방법을 명확하게 정리해 낸다. 협력적 배움, 활동적 배움, 표현적 배움, 교사들의 수업평가회, 도전 과제를 제시하는 점프, 협력을 위한 책상 배치 등이 수업의 방법이고 이를 지탱하는 철학은 동료성, 공공성, 민주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사토 마나부의 독창적 철학이라기보다 (그 자신도 인정하듯) 이미 100년 전 듀이가 시카고 대학에 실험학교를 열면서 대부분 적용했던 민주적 원리들이다.
배움의 공동체가 가진 탁월한 이식성은 비교적 명료한 적용 방법에 있다. 이것이 축복이자 독이 되고 있다. 듀이가 흥미와 관심에 매몰되는 학습방법과 절차에 비중을 두는 민주주의 실천을 경계하고 늘 비판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배움의 공동체는 ‘방법’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일부 한국 교사들에게서 나타나는 이 수업방법에 대한 ‘과잉 신념화’ 역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아울러 프레네 교육 지지자인 경우 아동의 흥미, 자연적 방법, 탐구수업, 노작교육의 중요성을 거론한다. 프레네가 듀이보다는 조금 늦게 교육적 소신을 펼쳤다는 것을 상기하면, 듀이의 철학이 자연스럽게 프레네 교육에 스며들어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초기 프레네 교육의 동기를 보면 혁명을 완수하기 위한 과정으로 교육을 사고했다는 점(물론, 나중에 브르주아적 개인주의에 빠진다고 비판을 받았지만)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듀이 철학을 적용하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특히 권위적 학교에서는 자율과 책임, 협력의 능력을 갖춘 능동적인 시민을 길러내기 힘들다는 문제의식은 듀이가 ‘삶의 방식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말한 것의 연장선 위에 놓인다.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이 평등한 권리로 참여하는 집회에서 공동의 삶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은 듀이의 민주적 시민성의 핵심 과제와 일치한다.
비고츠키는 종종 피아제와 비교된다. 피아제는 개인적 지식 구성에 비중을 두었고 비고츠키는 지식 구성의 사회성을 강조한 것처럼 알려지고 있지만 초기 비고츠키는 피아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 맞다. 다만, 그의 사회문화발달 이론을 완성해 가는 여정에서 지식이 언어라는 경로를 거쳐 고등정신기능으로 내면화되는가를 보다 상세히 밝혔다. 그 점에서 비고츠키는 피아제를 넘어섰다. 구소련의 심리학자였던 비고츠키는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데, 폐쇄적인 소련 사회에서 서방 학자들의 이론을 접하기란 쉽지 않았다. 비고츠키의 서적들이 당시 소련에서 판매 금지된 이유로 서방학자들의 이론을 연구, 적용했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심스럽게 듀이의 사회,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연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사실 우리가 비고츠키를 알게 된 것은 서방의 학자들이 비고츠키를 '사회적 구성주의자'로 분류하면서이다. 많은 교사들이 피아제를 개인적 구성주의자로, 비고츠키를 사회적 구성주의자로 도식화하지만, 정작 비고츠키는 이른 나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그는 구성주의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고, 쓰지도 않았다. 비고츠키 연구자들은 그를 구성주의로 도식화하는 것에 저항감을 드러낸다. 그래서 사회문화발달이론으로 부르자는 말, 사회문화역사발달이론으로 명명하자는 의견들이 있다. 그 어떤 경우로 보더라도 아동과 사회와의 상호작용과정에서 언어를 매개로 지식을 내면화하는 과정이 고등정신기능을 축적, 구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때 이는 듀이가 제시하는 '아동과 사회와의 관계'의 연장이거나 (언어를 매개로 한) 구체화라 추측해 볼 수 있다.
비고츠키 이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마르크스 심리학, 피아제의 발생적 인식론, 자넷의 사회심리학, 소련의 신경생리학 정도를 꼽는데 자넷이 '인간 정신은 계통발생적으로 진화한다', '정신기능은 사회적 산물'이라고 한 점에 비추어 진화론적 관점과 정신과 사회의 연결 관점을 강하게 견지했던 듀이 관점과 통한다. 다만, 지식을 다루는 인식론에 있어서 두 사람의 견해 차이가 발견된다. 듀이는 지식의 주관적 상대성에 비중을 두었던 반면, 비고츠키는 지식을 ‘객관적 실재’로 보았으며 진리에 대한 인식 가능성을 전제하였다. 이 글에서는 비고츠키와 듀이의 연관성을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려운 부분이다. 당시 둘은 체제가 다른 국가에 살았고, 비고츠키가 젊은 나이로 일찍 생을 마감했으며, 구소련의 학문적 폐쇄성으로 인해 비고츠키가 서방에 알려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점 등으로 인해 관련성에 대한 규명이 쉽지 않다.
'나의 교육신조(1897)'에서 듀이가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어느 편이든 듀이는 교육이 국가적 이데올로기 전수의 방편으로 쓰이는 것을 경계했던 것이고, 그것은 자연인인 학습자의 삶 속에 뿌리내리는 민주적 시민성을 위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편, 비고츠키는 마르크스 심리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당시 구소련에서 교육의 목표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한 혁명적 인간형의 완수였으므로 교육은 이러한 인간형을 길러내기 위해 조직되었다. 비고츠키는 스탈린 정권에 의해 그의 저작이 판매금지에 처해질 정도로 서방 학문의 흐름에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교사의 개별적 노력에 의한 수업의 혁신이나 학교 차원의 실천적 개선만으로 교육혁신을 이루기 어렵다고 생각한 교사들은 구조 및 시스템의 개선에 주목하였다. 애플은 학교교육을 통한 문화의 재생산이 지속적인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의 관심은 불평등 상황을 드러내고 해소하는 것에 있었다. 한편 교사 개인의 실존과 성찰을 강조하는 흐름도 생겨났는데, 파이나의 자서전적 방법, 쇤의 반성적 성찰 등이 있다.
이러한 흐름은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적어 그 속에 녹아있는 본질을 파악하고자하는 '반성저널', ‘성찰노트’ 등의 방법론으로 시도되었다. 또는 자신의 교육경험을 교단일기 형태로 적고 이를 공유하면서 자신과 타인의 경험 속에 녹아 있는 교육사태의 실존적 의미를 파악하려 하는 교사공동체 운동에 반영되었다. 아이즈너가 견지했던 미학적 관심사는 행동목표를 비판하면서 개인의 참 발달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교육혁신 과정에서 적용되고 있는 '수업비평'은 아이즈너의 질적 관찰, 해석, 기술에 이론적 기반을 두고 있다.
결국 혁신교육의 과정에서 주요한 방법적, 이론적 기반으로 적용된 배움의 공동체, 프레네 교육 및 수업비평, 반성적 실천 등은 듀이 철학의 연장선에서 놓여있다. 아울러 비고츠키 발달 이론과 듀이 철학은, 발달이 사회적 맥락과 연동된다는 관점, 협력적 문제해결 과정, 인식 주체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상호작용 등에서 많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오래 전 미국과 소련에서 활동했던 두 거장의 철학이 21세기 한국의 혁신교육 과정에서 동시에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듀이와 비고츠키의 이론적 맥락의 연관성과 우리 교육에 주는 시사점에 대한 천착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혁신교육의 과정에서 우리 교육사를 통해 세 번째로 듀이 철학이 등장하고 있는 배경을 알아보았다. 적용되는 교육방법들을 낱낱의 개념으로 이해하기보다 그것을 관통하는 교육철학을 이해할 때 혁신교육 과정에서 우려되는 두 가지의 측면, 수업방법의 혁신에 매몰되는 것, 정치 경제적 논리에 휘말리는 것을 근원의 문제로부터 극복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교육사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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