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0일 월요일

암흑 속에 빛나는 기억--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천주교 130190인 선언(요약)

2014년 11월 10일자 <한겨레> 1면 하단 선언문. 여기에 직접 입력해놓는다.

그런데 나는 "매일 4시 16분, 각자의 자리에서 희생자와 생존자, 이 고통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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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속 빛나는 기억

--세월호 참사 진상규멍을 염원하는 천주교 130190인 선언(요약)

"내 눈과 내 마음이 언제나 이곳에 있을 것이다."(1열왕 9.3)



1. 공개적으로 내버려진 무수한 생명

망망대해도, 창공도 아니었다. 전시(戰時)도,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사고 역시 아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속수무책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생중계, 가히 첨단 문명의 이기로 가장 비문명적인 장면의 목격자가 된 셈이다. 근대 이성의 꽃이라고 믿었던 효율성과 국가 행정력을 총동원해 역사 이래 가장 체계적인 살상을 고안한 아우슈비츠의 역설이다. 그날 이후 우리가 목격한 것은 비단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무능한 정부만이 아니다. 그것은 갈 곳을 잃어버린 이 시대, 무의미한 항해의 비참한 난파였고, 양도할 수 없는 가치인 '인간'을 아무렇게나 내다버린 정치공동체의 몰락, 곧 목적에 대한 수단들의 배반이다.

2. 가장 딱하고 절박해진 질문, 국가란 무엇인가

국정 최고책임자는 이미 자신의 취임사에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정부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 공언했다. 그러나 모든 정부 역량을 집중해야 할 그날,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가. 밀양과 쌍용자동차, 저 멀리 강정과 한진중공업에 쏟아 붓던 그 엄청난 공권력들은 그날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사람들의 아우성과 눈물을 우악스레 틀어막던 그 집요하고 조직적인 국가의 의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이보다 딱하고 절박한 질문이 오늘 어디 있단 말인가.

3. 탐욕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회

참사로 열린 심연에서는 온갖 것이 올라왔다. 6개월간 우리가 목도한 것은 죽음의 대량화, 목숨의 계량화, 통곡의 장기화만이 아니었다. 절망도 뼛속 깊숙이 내면화되었다. 언제든 찾아오라던 대통령을 기다리며 76일간 풍찬노숙을 했던 유족들은 다시는 "애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말했다. 그것은 국각의 완벽한 부재에 대한 슬픈 고백이며, 자신의 토대와 목적인 인간(사목헌장 25항)을 내다버린 정치에 대한 깊은 환멸이다. 사법 권력은 참사의 원인과 구조실패, 국가의 책임을 따지는 대신 문제를 희석하는 데 열중했다. 덕분에 참사의 진상규명은 특별법의 위헌 소지에 대한 논란으로 환치되었다. 이에 부역한 언론, 정론직필은 고어(古語)가 되었고 오직 자극적 정보를 요구하는 소비문화의 생산자만 남았다. 가장 참혹한 것은 고통에 대한 연대와 기억이 '경제'를 해친다고 호도하는 천박함, 무절제한 탐욕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 시대다.

4. '예리코' 길목에서 묻게 되는 교회의 길, 인간의 길

세월호 집회에 참석한 '죄'를 묻지 않는 조건으로 반성문을 요구당한 한 대학생의 눈물을 기억한다. 그 눈물은 고통에 대한 연대가 범법행위가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통탄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숱한 무명의 힘없는 이들의 연대야말로 잘못된 국가를 바로 서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전언이다. 민의를 잃어버린 국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다름 아닌 양심들의 눈물이다. 때문에 저 한 양심이 흘린 눈물은 작금의 국가보다 위대하고 고귀하다. 이미 권력기구들의 불법 선거 개입으로 절차적 적법성을 훼손당한 현 정권은 참사 앞에 제 스스로 적법성의 결핍을 실천적으로도 증명한 셈이다. 무릇 "참된 민주주의의 목적은 모든 인간의 존엄, 인권 존중, 공동선의 증진"(백주년 48항)에 있으므로, 인간의 고통을 외면한 오늘의 국가는 목적을 배반한 수단일 뿐이다. 이로써 참사는 심연인 동시에 이 사회가 길어온 모든 길에 대한 총체적 재고이자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갈림길이다. 교회 역시 눈먼 이와(마태 10.29), 천대받던 이(루카 19.1), 강도 만난 이를 마주하게 되는(루카 10.33) 저 옛날 '예리코'의 길목, 곧 위선적 거룩함과 신실한 '이웃'됨 사이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

5. 암흑 속 빛나는 기억

오늘 교회는 이 갈림길에서 "눈을 뜨고"(마태 10.33), 변두리 사람을 초대하고(루카 19.4), 피 흘리는 이들의 이웃(루카 10.36), 그들의 '야전병원'이 되길 다시 한 번 다짐하려 한다. 인간 존엄과 공동선이 "위협받을 때 예언자적 목소리를 드높여야"(복음의 기쁨 218항) 함은 교회의 마땅한 몫이다. 때문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유족들이 흘린 눈물의 값진 열매이지만, 이제 그들의 눈물은 '우리'들의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참사는 단지 유족들의 운명을 뒤바꾼 사고 이전에, 이 사회의 내일을 위한 이정표이자, 믿는 이들에게는 참된 교회로 가는 '사건'이 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이 새로운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비단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아니라, 새로운 국가 공동체, 무너진 인간 사회의 재건, 참된 교회로의 거듭남이다. 이 고통의 연대에 '기억'이 '죄'가 된다면 기꺼이 죄인이 되겠다. 길은 어둠이 드리울 때면 더욱 밝은 기억으로 빛나겠다.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며 온 교회는 아래와 같이 행동한다.

1)희생자 가족의 아픔에 끝까지 동행하며 진실을 은폐하려는 모든 권력에 함께 저항한다. 

2)온 교회는 매일 4시 16분, 각자의 자리에서 희생자와 생존자, 이 고통에 함께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12월부터 304일간 그들을 기억하는 매일 미사를 봉헌한다. 

3)참사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을 '백서'를 발간하고 보편 교회와의 국제 연대를 통해 참사의 진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한다. 

4)국민의 고통을 외면한 정치권력은 반드시 도태됨을 끊임없이 경고하며, 국가보다 위대한 저마다 지닌 양심의 고귀한 눈물을 언제나 신뢰한다. 


2014년 11월 19일, 세월호 참사 209일째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천주교 130190인 선언

"지각 있는 자는 자신의 시대를 증오하지만,
어쨌든 그 자신이 돌이킬 수 없는 형태로 이 시대에 속해 있음을,
또 그로부터 도망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조르지오 아감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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