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3일 금요일

'책읽는전남'을 만들기 위하여

2012년 3월 8일 오후2시, 전라남도의 대표도서관인 전남도립도서관에서 '책읽는전남'을 만들기 위한 관계기관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최동호 전라남도립도서관장의 초대로 1시간 가까이 '특강'이라는 형태로 저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이 자리에는 정인화 전라남도 관광문화국장, 정영덕 전라남도의회 의원, 전라남도 문화예술과 장경희를 비롯해 전라남도 주요 기관 126개 기관의 관계자 2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저의 '특강'은 현재 전라남도가 내놓은 '책읽는전남을 위한 10대 시책'에 대한 '쓴소리'였는데, 마침 그 자리에 참석한 <남도진>의 에디터 박혜미 씨가 원고 형태로 정리하여 잡지에 싣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시라"고 했습니다. 그 글-- '전남이 걸어갈 행복의 비단길, '책읽는문화'로부터' --이 인터넷에 올라와서 여기에 옮겨놓습니다. 저의 발언은 2012년 3월 13일 광진정보도서관에서 열렸던 서울특별시장 초청 좌담회에서의 것과 그 맥락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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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남도립도서관은 ‘책 읽는 전남’을 만들기 위해 지역 대표도서관(도서관법 제 22조에 의해 설치)으로서 범 도민 운동 10대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10대 시책은 아직까지 캠페인의 성격을 띠며 지역의 민관 단체 직원 및 임직원 등을 중심으로 솔선수범 책 읽기를 시작한 단계다. 현재 전남도립도서관은 도서관 운영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인 ‘도서관 친구들’(208명)을 조직해 자료대출, 반납, 도서관 안내, 환경정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앞으로 도민들의 참여를 활발히 이끌어내 지역을 대표하는 도서관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지역 대표 도서관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위해서는 아직까지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도서관에 비치할 양서들을 확보하고. 사서 등의 전문 인력을 추가 배치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예산 확보가 가장 시급한 문제다. 한편, 독서율이나 도서관 이용 등에 대한 기초 조사도 병행되어야 한다. 도서관과 독서 생활에 익숙지 않은 도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주목할 부분은 문화적으로 척박한 전남에서 독서운동을 벌이려는 현재의 노력이 매우 의미심장하다는 점이다. 책을 통해 문화토양을 일구려는 전남의 새로운 비전.  이제 막 그 첫걸음을 뗀 상황인 만큼 도민들의 관심과 지지, 참여가 필요하다.
  

본지에서는 2012년 한 해 동안 다양하게 추진될 ‘책 읽는 도민, 행복한 전남’ 만들기 10대 시책과 관련해 지난 8일 전남도립도서관에서 열린 안찬수 사무처장(책읽는사회문화재단 소속)의 강연 내용을 자세히 수록했다. 강연자에게서 쏟아져 나온 책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남도에서 전개될 독서운동에 대한 유익한 고민들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책 읽는 도민, 행복한 전남’을 위한 10대 시책>


  1. 「미니책방」 -마을회관, 경로당, 부녀회관, 아파트 등 지역 공동체와 공공시설 등에 책장과 도서를 비치해 독서 환경을 조성
  2. 「거실을 서재로」- 가정의 거실에 책장을 놓고 각종 도서를 비치해 거실을 독서와 대화공간으로 변경하도록 유도. 사회단체나 유관기관 직원 가정이 가장 먼저 동참하도록 유도.
  3. 「한 권의 책」 - 투표를 통해 한 권의 책을 행복한 전남 대표도서로 선정해 올해의 책 선포식, 작가와의 만남, 북 콘서트, 독서릴레이 등을 전개
  4. 「부모와 함께 서점가기」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특별한 기념일에 부모와 함께 서점가기 운동 추진. 서점가는 날을 지정해 홍보 
  5. 「이동도서관」- 문화적 혜택을 받기 어려운 섬, 오지 등의 주민들을 찾아가는 도서관 서비스. 도서관이 없는 학교와 마을을 방문해 도서대출, 독서문화 프로그램 운영. 병원선 등을 이용한 섬 지역 방문. 
  6. 「사랑의 책 나누기」- 각 기관 및 단체, 개인으로부터 도서 기증을 받아 도서기부 문화 육성. 
  7. 「생애주기별 독서프로그램」- 모든 연령층이 참여하는 다양한 독서프로그램 운영. 북스타트(영유아들을 대상으로 그림책을 통한 책읽기 습관 길러주기), 어린이*청소년*성인 독서교육, 찾아가는 어르신 독서프로그램 운영, 연령별 독서동아리 활성화
  8. 「독서왕 선발대회」- ‘올해의 책’ 선정해 감상문 공모. 학생과 일반부 2개 분야 선정.
  9. 「도 역점 사업 추천도서」-도민의 실생활(농업, 해양수산, 관광문화, 신재생에너지, 전략산업) 분야의 도서 선정. 해당 도서 선정의 전문성을 위해 분야별 전문가 구성 및 도서선정위원회 운영
  10. 「기관단체 임직원 책 읽기- 책 읽는 전남 만들기 범 도민운동이 조기에 정착할 수 있도록 공무원뿐만 아니라, 126개 기관* 단체의 임직원 모두가 독서를 생활화 할 수 있도록 홍보.  업무 시간 전 20분 독서하기, 독서 동아리 조직, 읽고 난 책을 부서 직원 간 돌려보기 , 직장 내 책 읽는 공간 갖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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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립도서관, 리더십 강한 함장이 되라!>



-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안찬수 사무처장 강연회-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은 정보 지식의 기반시설과 내용 확충을 통해 시민들의 정보격차 및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지난 2001년 6월 출발한 시민을 위한 시민연대 운동이다. 우리 사회를 책 읽는 문화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9개 시민단체(대한출판문화협회ㆍ문화연대ㆍ한국작가회의민주화를 위한 교육협의회ㆍ어린이도서연구회ㆍ전국교직원노동조합ㆍ학교도서관살리기 국민연대ㆍ한국도서관협회ㆍ한국출판인협회)가 연합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오고 있다. 공공도서관의 전국적인 증설과 도서 콘텐츠 예산 확충을 정부에 요구하는 한편, 독서 및 도서관 관련 각종 정책 포럼을 개최해 오고 있다. 또한 각급 학교도서관의 활성화를 위한 방향을 모색하고, 지방자치단체들과 협력해 소규모 어린이 도서관 건립 및  운영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있다.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www.bookreader.or.kr)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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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년 역사 이래 책 읽는 문화를 만드는 첫자리”


   오늘 이 자리는 뜻 깊고 역사적인 자리입니다. 전남도립도서관 서비스 담당 팀장님과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일제 때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일제가 한반도를 통치하던 당시에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에 도서관을 지어주지 않았습니다. 일본인들은 비지배계급인 조선인들이 책을 읽는 것에 대해 상당히 두려워했습니다. 일본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대만에 대해서도 식민 통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일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인들은 대만을 식민통치하면서도 한반도와는 달리 그곳엔 도서관을 지어줬다고 합니다. 당시 제국주의 일본은 한국인들의 두뇌가 명석하기 때문에 도서관을 지어줘서 읽고, 배우고 탐구하게 하면 한반도를 통치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근대 도서관, 즉 공공도서관의 역사는 1850년부터 시작됐다고는 하나, 우리나라의 도서관 역사는 해방 이후에 겨우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 설립 등에 대한 부분은 1990년까지 문교부 소관이었습니다. 이후 1991년부터는 문화부와 자치단체 책무사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자치정부 1기, 2기, 3기를 각각 축약해보자면 1기 때는 도로 닦느라고 시간을 다 보냈습니다. 2기 때는 축제 기획하느라, 3기 때는 대부분 청사를 짓는 데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업인 문화, 교육, 복지 분야의 계획들은 사실상 그 때를 놓쳤습니다. 현재 민주통합당 총선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이미경 의원께서 17대 국회가 열렸을 당시 문화관광통신위원회에 유일하게 입법 의안을 낸 것이 바로 ‘도서관법’입니다. 2004년과 2005년 도서관법이 논의될 때, 나중에 초대 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장을 하신 한상완 연세대 부총장님께서 사회를 보는데 이미경 의원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나라 도서관 현실이 어떻습니까?” 그러자 한상완 부총장께서 “아프리카보다 못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아프리카보다 못하다.. 우리가 잘 아는 주요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아프리카 주요국과 비교해서도 매우 낙후되어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비단 도서관 문화의 낙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민주주의 기틀이 그만큼 튼튼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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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도서관에 관한 법률, 지난 2007년 출발”   


  시도차원의 도서관 정책을 담당할 수 있는 대표도서관에 관한 법률은 지난 2007년 4월 5일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도서관법을 통해 시행되었습니다. 제주도의 경우 한라도서관을 대표도서관으로 삼아 도서관을 지었습니다. 규모는 중급 공공도서관 정도밖에 안되지만, 법률상 대표도서관을 지정하거나 건립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개관 과정에서 제가 그곳을 직접 방문했었는데, 당시 사서 한 분이 개관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대표도서관이라고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가운데 전라남도가 상당한 규모의 대표도서관을 건립하고, 도서관뿐만 아니라 전라남도의 유관기관 관계자 분들을 이렇게 전부 모셔놓고 ‘책 읽는 전남’을 만드는 데 머리를 맞댔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매우 뜻 깊은 자리입니다. 100년 뒤를 생각해보십시오. 대한민국, 그리고 전라남도에 처음으로 대표도서관을 개관하고, 그 역할에 대해 논의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전라남도가 정말 발전하려면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대한민국 5천년 역사 이래에 첫 모임입니다.   
 
“독서문화정책은 문화, 교육, 복지 정책이자 경제정책, 국제화 정책이다”


   직설적으로 말씀드리면 현재 제시된 10대 시책만으로는 독서문화의 토대를 만들 수 없습니다. 부족한 예산 때문에 여러 모로 궁리한 것이 현재의 10대 시책일 것입니다. 하지만 책 읽는 전남을 실제로 만들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10대 시책 중에서 그나마 도의 정책이라고 할 만 한 것은 세 가지 정도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도서관 부분, 생애주기별 독서프로그램, 기관 단체 임직원의 솔선수범 등입니다. 2007년도에 저희 단체(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와 책 읽는 도시 김해가 협약을 맺었습니다. ‘기초자치단체를 통해 책 읽는 도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정책영역 부분을 논의하는 단계가 있었습니다. 현재 책 읽는 전남에서 내놓은 정책은 도서관과 독서문화와 관련된 정책입니다. 하지만 ‘독서’는 단순히 도서관이나 독서문화로만 한정할 수 없는 교육 정책이기도 합니다. 교육정책이기에 학교 도서관의 역할, 독서교육도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현재 우리의 교육자치가 지방자치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지원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지닙니다.  (대표도서관 건립과 효과적인 운영은)  이러한 한계를 새롭게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의 고리입니다.
 
  다음으로 독서는 복지정책이기도 합니다. 최근 생애주기별 독서프로그램인 ‘북스타트’ 등의 활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독서가 중요한 복지 정책임을 말해줍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서비스 중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는 부분이 경제 정책으로서의 독서문화 정책입니다. 또한 도서관 및 독서 문화의 국제화 정책입니다. 전라남도에 있는 다양한 자치체를 국제사회와 연계해 독서문화를 확산시키려는 노력도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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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국내에서 출판되는 책 5만종..

전남도립도서관, 도민들이 믿고 찾아볼 수 있도록 신뢰 줘야”


  현재 전 사회적으로 큰 착각에 빠져있습니다. ‘스마트 폰 때문에 책을 안 읽게 된다’, ‘새로운 정보는 인터넷 검색창에 다 있다’라는 인식들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특히 각 부문의 중요한 정책을 담당하시고 결정을 내리시는 분들은 이에 대해 뚜렷한 인식을 갖고 계셔야 합니다. 하버드 대학 도서관장인 로버트 단턴이 고등교육 잡지에 게재한 글을 요약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서관입니다. 가장 큰 도서관은 미국의 LC라는 곳입니다. 그곳엔 1억 3천만 점의 자료가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곳 다음에 방대한 자료를 소장한 곳이 바로 하버드대학 도서관입니다. 단턴은 하버드대 도서관의 도서관장이자 입니다. 그는 먼저 ‘책은 이제 끝났다’라는 인식에 대해 잘못된 생각이라고 일침을 가합니다. ‘이제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데 종이책이 어떻게 살아남겠느냐’라는 착각에 빠진 사람들을 향해 잘못된 생각이라고 꼬집습니다. 매년 세계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책의 양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책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또 '스마트 폰 등을 활용하는 오늘날에 이르러서야 겨우 정보화시대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착각에 대해 언급합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시기들은 저마다 정보화시대였다고 말합니다. 단지 정보의 수단이 달랐을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1999년과 2000년에 국내 출판업계에 디지털 바람이 크게 불었습니다. ‘이제 종이책은 끝났다’, ‘출판도 끝났다’라고 모두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쏟아져 나오는 책들은 5만여 종입니다. 한국은 세계 7대 출판 강국입니다. 앞으로 전남도립도서관에서는 2016년까지 8만권~ 25만권의 장서를 구비할 계획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1년에 쏟아져 나오는 국내 자료가 5만 여 종입니다. 전라도민이라면 대한민국에서 나오는 기본 도서들을 전남도립도서관에 가면 적어도 살펴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한 든든한 믿음을 심어줘야 합니다. 따라서 더 큰 투자가 필요합니다.

“온라인상에서 수집 가능한 정보는 전체의 11%에 불과” 


  최근 청소년들은 정보에 대한 몰이해에 빠져 있습니다. 중요한 정보들이 전부 온라인상에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물론 디지털라이징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여러 가지 자료들이 디지털화 되고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글에서 ‘구글 북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책을 디지털로 한번 만들어보자는 게 구글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현재까지 전 세계 자료 중에 디지털라이징 된 것은 약 11% 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자료를 찾아서 특정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할 때 온라인상에서는 전체의  1/10 정도로 밖에는 찾아낼 수 없는 겁니다. 또 다른 착각은 ‘모든 자료들이 이제 디지털화되고 있는데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 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도서관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대한민국 유사 이래 전라남도에 도립도서관이 만들어졌다는 사실. 100년 뒤 역사를 생각하면 이는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현재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를 합쳐  ‘디지로그(Digilog)’라는 신조어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는 미디어가 병존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텔레비전이 세상에 등장했을 때 라디오는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라디오는 지금도 그 쓰임새가 다양합니다. 새로운 미디어가 나와서 기존 미디어를 완전히 대체한 경우는 인류 역사상 아직까지 없습니다. 다시 말해 미디어들은 항상 병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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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 가치를 지닌 양서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


   도서관에 대한 큰 착각은 도서관이 건물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입니다. 도립도서관에 와서 보니 사찰을 지을 때 쓰이는 건축양식인 맞배지붕으로 지붕을 삼고, 건물 외벽에 훈민정음과 관련된 글자를 새겨 넣은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인도 도서관의 근대 역사를 언급한 글을 살펴보면, 타고르 시인이 보리수나무 밑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은 도서관이 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다시 말해, 시인과 청중들이 만나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맺는 그 장면이 바로 ‘도서관’을 상징합니다. 곧 도서관은 느티나무 밑이고, 소나무 밑이며, 보리수나무 밑입니다. 도서관 건물을 잘 짓는 것보다 그 안에 어떤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현재 10대 시책 중 하나로 도민들의 도서기증운동을 추진 중이신 걸로 압니다. 일본의 사례를 들겠습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현직에 있을 때 지역 자치단체의 통폐합 사업을 추진했답니다. 그런데 한 자치단체가 의회 논의 후 통폐합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그저 작은 지자체로 남았습니다. 주민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책과 도서관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통폐합에 참여하지 않아 광역 단위의 예산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전국에 ‘책을 보내 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관련 사진이 신문지상에 보도됐습니다. 덕분에 전국에서 40만권의 책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면 40만권이나 되는 도서들을 그들이 전부 자신들의 도서관에 그냥 넣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모여서 밤새 기증받은 도서들을 일일이 선별해냈습니다. 40만권 중의 몇 만권만을 모아 도서관에 비치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이유는, 기증받은 도서의 90% 이상은 도립도서관에서 영구적으로 보존할 책들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도서관하면 건물을 생각하고, 자료 모으는 일만 생각해서 궁핍한 예산을 대신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기증 운동을 벌이는데 이것은 정도(正道)가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 모인 자료들이 양질의 것일 수 없습니다. 
 

“도서관, 사람과 아이디어, 사람과 자료를 결합시키는 네트워크”


  도서관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곳입니다. 사람과 아이디어, 사람과 자료를 서로 결합시켜가는 것이 도서관의 본질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책(자료)이 채워 줄 수 있도록, 사람을 조직하는 것. 이것이 바로 도서관의 중요한 책임입니다.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는 예산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여러 곳에서 ‘브랜치(branch, 분관)’를 닫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경제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이용률을 조사해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는 지역의 분관을 닫자’고 의견이 모였습니다. 결국 A라는 지역의 분관을 닫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A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도서관 이용률뿐만 아니라, 지역의 공공기관들의 이용률을 전부 조사해보고 나서 다시 결정하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주민들은 또 “보통 기업은 변호사를 고용해 연말정산을 합니다. 변호사를 고용한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갖고 있는 고급 정보를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료는 바로 도서관에 있습니다. 그러한 정보서비스를  받으러 시민들은 도서관에 갑니다. 아이들은 또 학교에서 내준 글쓰기 숙제를 해야 하는데, 관련 자료가 도서관에 있습니다. 공공도서관과 학교가 협력해서 글쓰기 숙제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러니 도서관을 닫으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게 됩니다.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도서관을 닫습니까?”라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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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독서실로 여기는 낡은 인식 버려야”


   우리 도서관 문화는 일제의 유산으로, 도서관이 공공서비스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독서실로만 이용해온 역사가 있습니다. 언론사 기자들이 제게 독서문화 운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물어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과거에서 비롯된 낡은 인식을 혁파해 나가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대답합니다. 도서관을 고시공부를 하는 독서실로만 생각하는 인식들을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도서관 문화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이후의 도서관과 독서문화를 형성하는 기초입니다. 이전의 100년이 아닙니다. 그런데 정책 등의 의사 결정을 하는 분들은 머릿속에, 과거에 자신이 독서실로 삼았던 100년 전의 도서관을 담아두고 결정을 내립니다. 어느 시장님, 군수님이 자신이 고시공부를 할 때 도서관을 이용한 경험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머릿속에 남아있는 모습을 도서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도서관은 책 한 권 없이도 가능하다고 여깁니다. 그는 고시를 통과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자신이 들고 온 육법전서만 하루 종일 보았기 때문입니다. 공공기관을 개인이 점유하는 형태로 이용해온 탓입니다. 그래서 도서관 민원에는 흔히 ‘아이들이 소란을 피워서 공부를 할 수가 없다’라는 항의들이 들어옵니다. 그러고 나면 도서관 이곳저곳에는 ‘정숙’씨를 찾는 표어가 나붙습니다. 도서관을 생활과 괴리된 공간으로 이용해오고, 독서실로 여겨온 낡은 인식들을 바꿔야 합니다. 


“도시발전 계획과 독서문화 정책 밀접하게 결합시켜야”


  ‘책 읽는 전남’의 정책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각 지자체마다 자치체 발전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발전2030, 발전 2040’ 계획 등이 있습니다. 제가 도서관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 건축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전국 229개 자치체의 발전계획을 수집해 인구 통계를 산출한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가 2020년 무렵 자치체의 발전 계획상 인구를 합치면 총 2억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어떤 지자체나 단체나 발전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서란 것은 이러한 도시발전 계획과 괴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도시 발전계획에 독서 계획과 독서문화를 결합시켜야 합니다. 이제껏 한국의 도시발전은 토목과 직결되어 왔습니다. 건물을 짓고 도로를 내는 일을 도시발전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도시발전을 위한 정형화된 하나의 모형으로 머릿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의 요구사항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교육, 문화, 복지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를 도서관의 역할 없이는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이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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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 필요 조사해야”


  제가 가본 지자체 가운데 가장 낙후된 도서관 문화의 도시를 꼽으라면 그곳은 광주와 대구입니다. 이들 지역의 특징은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이 어느 특정당의 깃발만 내걸면 다 당선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주민들의 요구와 필요를 조사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이들 지역의 도서관들은 낙후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남도립도서관에서 내놓은 10대 시책은 예산 수반사업이 아닙니다. 주민들을 봉사자들로 조직하고 책 기증을 받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독서문화와 도서관 문화의 인프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일반 회계 예산의 2% 정도는 이 분야에 투자하겠다는 실제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도서관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소방서에서도 참석하셨습니다. 일 년 예산을 짤 때 소방서 조직원들을 위해 전체 예산의 일부를 분배하겠다는 모색 없이는 독서 운동과 도서관 문화를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현재 전남도에서 내놓은 10대 시책을 살펴보면, 여러 방책은 있지만 종합적인 계획은 부재합니다. 또 기초  조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현재 전라남도 도민이 ‘얼마나 책을 읽고 있고, 도서관을 얼마나 자주 이용하며,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지, 단체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의 기본조사를 해야 합니다. 10년 뒤에 이러한 자료를 통해 누군가가 추가조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그 토대를 만들어 놔야 합니다.


“종이 교과서 폐기, 4대 강 문제보다 더 심각”


   ‘팝콘 브레인(현실에 무감각한 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오프라인상의  변화에 점점 둔감해진다는 겁니다. 온라인상의 변화에는 빨리 대응하면서도 실물에 대해서는 그들의 행동이 점점 느려지더라는 겁니다. 최근 서울 강남의 엄마들은 유치원에도 안 들어간 아이 손에 아이패드를 쥐어주고 한글을 가르칩니다. 그렇게 글자를 다 익히고 나서 아이들에게 종이책을 쥐어주면 “엄마, 왜 글자가 안 움직여?”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지난해 대한민국 교육정책 중에 큰 변화는 ‘7.4지침’과 ‘6.29지침’입니다. ‘6.29지침’은 모든 교과서를 디지털화 하겠다는 교육부의 계획입니다. 이러한 계획은 앞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아이들이 디지털로 아이패드로, 스마트 폰으로 공부한다는 겁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백만이나 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종이책을 모두 없애고 디지털교과서를 제공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저는 4대 강 문제보다 이 정책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현재 디지털교과서를 개발 중이며 2015년까지 모든 학교 교과서를 종이책에서 디지털로 전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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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들, 먼저 책 읽는 솔선수범으로 도민의 참여 이끌어내라”


   공직자들이 독서운동을 위해 먼저 보일 수 있는 솔선수범은 시민에게 ‘책을 읽어라’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책을 읽는 것입니다. 독서운동은 집에서 아빠로서, 엄마로서 내가 먼저 책을 읽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독서를 하라고 강요하지 마십시오. 먼저 읽으십시오. 주민들을 향해 독서운동하자고 외치기 전에 도지사님께서 먼저 책을 읽으셔야 합니다.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 내실 겁니까. 전남도립도서관 2층에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공간도 마련해 놓으신 걸로 압니다. 도립도서관 각 팀에 직원이 7명씩, 관장님까지 포함해 현재 정직원이 15명 정도 되겠군요. 이 인원만으로 어떻게 도서관을 운영하실 겁니까. 시민의 참여, 관심, 지지, 협력, 연대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역민들의 도움을 어떻게 이끌어내고 조직할 것인가는 앞으로 도립도서관이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언론을 이용하거나 활용하는 방식을 통해 ‘하고자 한다’가 아니라 ‘함께 하자’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피력하십시오.


“시민 권력 키우는 요람, ‘도서관’”


   대한민국의 국가 인정 통계 중에 독서 관련 통계처럼 비참한 것이 없습니다. 국가통계에서 출생률은 2.0%에서 1.0%떨어지는 데 10년, 20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독서관련 통계는 지난 1년 사이에 1.0%가 떨어졌습니다. 독서 문화, 도서관 문화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지식이 권력이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많은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권력을 지니는 것이 아닙니다. 시민들이 알아야만 시민 권력이 나온다는 뜻입니다. 

  ‘리터러쉬(literacy)’라는 단어는 문헌정보학에서는 문해력(글을 읽고 쓸 줄 알며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말로 번역합니다. 저는 이 단어를 ‘시민적 소양’이라고 정의합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맺습니다. 단순히 문자만 알고 해독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서 (사회 전반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하며 의사 결정할 수 있는 시민으로서의 능력. 그 능력을 바로 도서관에서 키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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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립도서관, 돛단배 정책 아닌 함대 정책이 필요하다”


   전라남도에 있는 도서관과 다양한 자료들은 전라남도 도민의 것입니다. 만일 도민이 자료 검색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관련 도서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특정 도서가 목포에는 없고 전남의 다른 지역에 있다면, 도민은 도서관에 해당 도서를 신청합니다. 만일 도서 신청작 신청도서를 찾아가면 대출이 되고, 찾아가지 않으면 책이 보관되어 있는 원래의 도서관으로 자료를 돌려보냅니다. 현재 ‘책 읽는 김해’에서 활용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한 자지체 안에 존재하는 책들이 서로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특정 도서관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한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책에는 여수현암도서관 관인이 찍히는 게 아니라 그냥 ‘여수도서관’이라는 관인이 찍힙니다. 한 시스템에서 한 덩어리로 책들이 움직이는 구조입니다. 전남도립도서관을 법상으로 광역시도의 도서관으로 지정해 놓은 까닭은 도 단위의 함대로서 지역의 도서관들을 어떻게 총체적으로 운영해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독서 관련 정책을 위해서 도비 예산의 몇 %를 실제적으로 편성해야 한다는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거대한 함대가 모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책 읽는 전남’을 위해 막강한 함대가 돼서 움직일 것인가, 고민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시해 놓은 정책은 돛단배 정책입니다. 전남도립도서관이 함장으로서 어떤 방식으로 전남이라는 거대한 함대를 이끌어 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에디터: 박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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