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20일 화요일

박은희 감독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시들어가는 노년기를 성장기보다 늘이려 애써왔다. 그러니 노년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노년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101살에 유명을 달리한 전설적인 편집자 다이애나 애실은 200691살에 <어떻게 늙을까>(2016) 쓴 이유를 이렇게 썼다. “청춘에 관한 책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고 출산 경험을 다룬 책들도 쏟아져 나오는데노년을 다룬 책은 별로 없어서다. 애실이 책으로 보여준 것처럼 할머니들의 기록이 늘어나고 있다. 이 할머니들은 정형화된 틀로 가둬지지 않는, 몰랐던 미지의 할머니들이다.

김영옥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는 늙은이를 가리키는 대명사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노인도, 노년도, 어르신도, 시니어 선배도, 할머니나 할아버지도, 할매나 할배도 다 온전한 자긍심을 담기에는 역부족이다.”(<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 올바른 이름이 발명되기 전, 그나마 비슷한 할머니의 정의는 날로 풍부해지고 있다. <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의 김원희씨는 유골이라면 운송비도 그다지 들지 않는다며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박막례 할머니가 유튜브에서 순발력과 유머감각을 뽐낸 지 어언 4년이 지났고, 유튜버 밀라논나는 엘레강스의 대명사가 됐다.

젊은층도 할머니에게 열광한다. 김연수는 다이애나 애실의 책을 읽고 쓴 글에서 그때 어떤 분이 장래희망에 대해 물었는데 얼떨결에 할머니라고 대답해버렸다. 얼결이라고는 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멋진 할머니들이 정말 많다. 할아버지들은, 글쎄 잘 모르겠다.”(<시절일기>)

이런 마음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까. 무루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 읽기책의 제목을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고 달았다. “나의 쓰기가 할머니의 바느질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다. “(할머니의) 손은 오래된 것들을 쉽게 버리지 않는 손이고, 때로는 그것들을 모두 꺼내 과감히 자르는 손이며, 끝내는 섬세하고 다정하게 깁고 이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낼 줄 아는 손이다. 나이 든 어느 날의 내 손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손이기도 하다.”

여기 다정하고 과감한 미지의 할머니들이 있다. 어느 날 내 모습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그 세계로 떠나보자._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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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 찍는 거야? 어디서 왔어? 영화에 나오고 나 유명해졌어. 이 동네에서만 50년 살았어. 여기서 슈퍼 하는데 여길 재개발하려고 한다잖아. 동네를 보존해줘야 해. 음료수라도 먹고 가.”

지하철역(지하철 8호선 산성역이나 신흥역)에 내려서 걸어갈 수 없을 만큼 높은 지대에 자리잡은 오래된 마을, 경기도 성남시 태평동. 그 동네에 들어서자마자 영화처럼영화 <태평동 사람들>에 등장했던 할아버지가 말을 건넸다. 다큐멘터리영화이니 별도의 세트장이 필요 없었겠지만 간판 속 글자가 다 떨어진 방앗간도 미용실도 그대로라 영화 속에 들어온 듯했다. 물론 이 풍경이 언제까지 그대로일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기록을 남기는 일에 박은희(66) 감독이 나섰다.

그는 2020년 서울노인영화제에서 <태평동 사람들>로 노인감독 부문 대상을 받았다. 영화는 예전에는 시청도 있었고 가장 번화했던 그곳의 역사를 기억하는 노포 상인들의 삶을 담아냈다. “1969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이 일대에 터를 잡고 산 상인들을 인터뷰했어요.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지만 결혼하고 1979년부터 성남에서 쭉 살았기 때문에 (인터뷰하면서) 잊었던 옛 시간이 생각나고 하나하나 공감되지 않은 부분이 없었죠. 재개발이 계속되는 성남 원도심을 영상으로 남기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202179, 태평동에서 만난 박 감독이 말한다.

공모전·영화제 수상작만 7

박 감독이 영상을 만난 건 2011, 성남문화원에서 영상편집을 배울 기회를 얻었을 때다. “컴퓨터에 사진 옮기는 것 정도나 할 줄 아는 수준이었죠. (프로그램) 프리미어로 영상을 편집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처음엔 집 컴퓨터에 프리미어를 까는 방법도 몰라서 선생님에게 물어봤어요. 정말 미쳤었죠. 하루에 16시간씩 영상편집을 했어요. 눈뜨면 컴퓨터를 켰고 밥을 먹었는지도 안 먹었는지도 잊고 빠져들었죠.”

201212월 문을 연 성남미디어센터의 시민제작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영상을 본격적으로 제작했다. 그 후 30여 편의 영화를 만들었고 이 가운데 공모전·영화제 수상작도 7편이나 나왔다(표 참조). “시민제작단 1기가 5명이었는데, 혼자 50대고 나머진 3040이었어요. 그들은 디에스엘알(DSLR·디지털일안반사식) 카메라를 잘 다루는데 나만 캠코더로 찍는 사람이라서 주눅 들었죠. 센터 계단 올라가는 길이 지옥 같기도 했어요.”

2019년 성남문화재단 지원을 받아 영화를 찍게 되면서 스태프로 참여한 젊은 친구들과 협업 경험을 쌓았다. 2019년엔 태평동, 2020년엔 산성동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고, 2021년엔 수지1동을 함께 찍고 편집하는 중이다. <태평동 사람들>처럼 성남의 오래된 마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동안은 캠코더로만 하다가 2020년부터 디에스엘알로 찍었어요. 혼자 유튜브를 보면서 배웠죠. 노안이 와서 돋보기를 쓰고 초점을 맞추다보니 시간도 오래 걸렸어요. 다른 스태프가 옆에 있으니 빨리빨리 못해서 눈치도 보였고 자존심도 상했죠. 그래도 천천히 내 페이스대로 하려고 합니다.”

여행 뒤 사진 붙인 동영상을 보고

애초 박 감독이 영상에 관심 갖게 된 것은 여행 때문이었다. “1979년 결혼했는데 식품대리점을 운영하던 남편 사업이 꽤 잘됐죠. 그러다 남편이 결혼 10년 만인 1989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이후 직접 대리점을 맡아 3년 정도 운영했는데 관뒀어요. 그때부터 여행을 많이 다니며 마음의 위로를 얻었죠. 그러다 2000년대 후반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뒤 여행 가이드가 사진을 이어붙여 동영상으로 만들어준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어요. 나도 이렇게 영상편집을 해보고 싶다고요.”

박 감독에게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은 2018년 서울노인영화제에서 장려상을 받은 <큰엉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기 때문이다. “큰언니는 9남매 중 막내인 나보다 19살이 많았어요. 큰언니와 나는 같은 해에 남편을 잃었어요. 언니 54, 내가 35살일 때였죠. 당시 언니가 나와 남편을 중매했기 때문에 남편 떠난 뒤 언니가 너무 힘들어했어요. 큰언니가 세상을 떠나고, 언니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다보니 내 이야기도 자연스레 나왔어요. 나는 당당하게 잘 살고 있는데 사람들이 혼자된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것이 싫어 아무에게도 내 이야기를 한 적 없었거든요. 영화를 찍는 동안 온몸이 다 아프고 살도 빠졌어요. 나를 내보이는 일이 너무나도 아프더라고요. 영화제에 내지 말까 고민도 들었지만 막상 작품을 상영하면서 빵 터뜨리고나니 괜찮았어요.”

꾸준히 하니 하나뿐인 아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아들은 어머니 놀잇감에 돈을 많이 들인다하더군요. 사양이 좋아야 한다고 컴퓨터도 세 번 바꿨지, 디에스엘알도 샀지. 밥도 안 해주고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뭐가 좋았겠어. 그래도 꾸준히 상 받고 결과물을 내니까 아들도 이젠 나를 지지해줘요. 아들도 엄마 영향을 받았는지 하고 싶은 일 즐겁게 하며 살고 있어요. 아들에게 결혼하라고 잔소리도 하지만 꼭 결혼해야 하나 생각도 들어요. 어차피 인간은 이러나저러나 외롭다, 행복하고 니 좋아하는 거 하면 된다고 말해줬어요.”

꿈은 죽기 전까지 내 다리로 걸어다니는 것

박 감독의 꿈은 계속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내 다리로 걸어다니는 것이라고 한다. “체력을 위해 꾸준히 운동하고 있어요. 걷기와 스트레칭을 빼먹지 않죠. 여행도 좋아하고 영상도 찍어야 하는데 다리가 시원찮으면 안 되니까요.”

60대인데다 손자도 없는 그에게 노인이나 할머니라는 호칭은 어색하다. 코로나19 이후로 고령자라는 말에는 익숙해졌다. “고령자 처지에서 보면 70대도 청년이죠. 지금 우리는 원치 않아도 100살까지 살 수밖에 없잖아요. 70살에 시작해도 30년을 더 살아야 하니 충분히 시작할 수 있는 나이죠.”

박 감독은 스스로가 특별한 사람으로 비칠까봐 걱정했다. 평범한 사람이지만 그저 열심히, 꾸준히 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원래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는 걸 좋아했고, 50살 넘어 영상이라는 재미있는 것이 나를 찾아왔어요. 젊은 사람보다 느린 속도로 독학했지만 끝까지 성실하게 하는 사람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힘들기도 해요. 장비도 무겁고 요즘에 너무 덥잖아요. 최근에도 영화 그만 찍을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그럼 뭐 하고 놀래? 스스로 물었죠. 여행도 못 가는 이 시국에 내가 좋아하는 건 이것뿐인데. 그래서 또 카메라를 든 거죠.”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출처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657.html?_fr=mb2

2021년 7월 12일 월요일

격몽요결

擊蒙要訣

 

人生斯世非學問이면 無以爲人이니 所謂學問者亦非異常別件物事也只是爲父當慈, 爲子當孝, 爲臣當忠, 爲夫婦當別, 爲兄弟當友, 爲少者當敬長, 爲朋友當有信이니 皆於日用動靜之間隨事各得其當而已非馳心玄妙하여 希覬奇效者也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학문이 아니면 사람 구실 하면서 살아갈 수 없다. 이른바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정상에서 벗어나거나 <일상 생활과 벗어나> 별도로 존재하는 일이 아니다. 단지 아버지가 되어서는 마땅히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되어서는 마땅히 부모를 사랑하며 신하가 되어서는 마땅히 임금에게 충성하며 부부 사이에서는 마땅히 내외를 구별하고 형제간에는 마땅히 서로 우애하고 어린 사람이 되어서는 마땅히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사이에는 마땅히 신의를 지키는 것이므로 모두 일상 생활 속에서 일에 따라 각각 그 마땅함을 얻는 것일 뿐이요 현묘(玄妙)한 곳에 관심을 집중시켜서 기이한 효력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但不學之人心地茅塞하고 識見茫昧必須讀書窮理하여 以明當行之路然後造詣得正而踐履得中矣리라 今人不知學問在於日用하고 而妄意高遠難行이라 推與別人하고 自安暴棄하니 豈不可哀也哉

다만 배우지 못한 사람은 마음이 욕심으로 가득 차 식견이 어둡게 된다. 그 때문에 반드시 독서를 통해 이치를 궁구함으로써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를 밝힌 뒤에 조예가 올바름을 얻어서 실천함이 중도에 부합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 생활 속에 있음을 알지 못하고 제멋대로 고원(高遠)해서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학문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어 버리고 스스로 포기함을 편안히 여기니 어찌 슬퍼할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余定居海山之陽할새 有一二學徒 相從問學하니 余慙無以爲師而且恐初學不知向方하고 且無堅固之志而泛泛請益이면 則彼此無補하고 反貽人譏略書一冊子하여 粗敍立心飭躬奉親接物之方하고 名曰擊蒙要訣이라하여 欲使學徒觀此하고 洗心立脚하여 當日下功하고 而余亦久患因循하여 欲以自警省焉하노라

丁丑季冬德水李珥하노라

내가 해산(海山 : 海州)의 남쪽에 거처를 정하자, 한 두 명의 학도(學徒)들이 서로 따라와 배우기를 요청하니, 내가 스승이 될 만한 자질이 없는 것이 부끄러울 뿐만 아니라 초학자(初學者)들이 학문의 올바른 방향을 알지 못하고 또 견고한 뜻없이 대충대충 배우고서 더 가르쳐주기를 요구하면 피차간에 도움됨이 없고 도리어 남의 비웃음을 살까 두려웠다. 그 때문에 간략하게 책 한 권을 써서 뜻을 세우고, 몸을 가다듬고, 어버이를 봉양하고,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거칠게나마 서술하여 이름을 격몽요결(擊蒙要訣)이라고 하여 학도들이 이를 보고 마음을 깨끗하게 씻고 새롭게 출발하여 그 날로 공부에 착수하게 하고 나 또한 오랫동안 그럭저럭 옛 것을 답습하는 태도를 근심했는데 이로써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고자 한다.

정축년(1577) 계동(季冬 : 섣달)에 덕수(德水) 이이(李珥)는 쓰노라

 

立志章 第一

 

初學先須立志하되 必以聖人自期하여 不可有一毫自小退託之念이니라 蓋衆人與聖人其本性則一也雖氣質不能無淸濁粹駁之異而苟能眞知實踐하여 去其舊染而復其性初則不增毫末而萬善具足矣리니 衆人豈可不以聖人自期乎孟子道性善하시되 而必稱堯舜以實之曰 人皆可以爲堯舜이라하시니 豈欺我哉시리오

처음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뜻을 세우되, 반드시 성인(聖人)이 되겠다고 스스로 기약하여, 털끝만큼이라도 자신을 작게 여겨서 핑계 대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보통사람이나 성인이나 그 본성은 마찬가지이다. 비록 기질은 맑고 흐림과 순수하고 잡됨의 차이가 없을 수 없지만, 만약 참되게 알고 실천하여 옛날에 물든 나쁜 습관을 버리고 그 본성의 처음을 회복한다면 털끝만큼도 보태지 않고서 온갖 선이 넉넉히 갖추어질 것이니, 보통사람들이 어찌 성인을 스스로 기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때문에 맹자께서는 모든 사람의 본성이 착하다고 주장하시되 반드시 요 임금과 순 임금을 일컬어 실증하시며 사람은 모두 요 임금이나 순 임금처럼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어찌 나를 속이시겠는가?

 

當常自奮發曰 人性本善하여 無古今智愚之殊어늘 聖人何故獨爲聖人이며 我則何故獨爲衆人耶良由志不立, 知不明, 行不篤耳志之立, 知之明, 行之篤皆在我耳豈可他求哉리오 顔淵曰 舜何人也予何人也有爲者 亦若是라하시니 我亦當以顔之希舜爲法이니라

마땅히 항상 스스로 분발하여 사람의 본성은 본래 선()하여 고금(古今)과 지우(智愚)의 차이가 없거늘, 성인은 무슨 연고로 홀로 성인이 되시며, 나는 무슨 연고로 홀로 중인(衆人)이 되었는가. 이는 진실로 뜻을 확립하지 못하고 아는 것이 분명하지 못하고 행실을 도타이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미암은 것일 뿐이다. 뜻을 확립하고 아는 것을 분명히 하고 행실을 도타이 하는 것은 모두 나에게 달려 있으니, 어찌 다른 데서 구하겠는가? 안연(顔淵)() 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훌륭한 행동을 하는 자는 또한 순임금과 같을 뿐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나 또한 마땅히 안연이 순임금이 되기를 바란 마음가짐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人之容貌不可變醜爲姸이며 膂力不可變弱爲强이며 身體不可變短爲長이니 此則已定之分이라 不可改也어니와 惟有心志則可以變愚爲智하며 變不肖爲賢이니 此則心之虛靈不拘於稟受故也莫美於智하며 莫貴於賢이어늘 何苦而不爲賢智하여 以虧損天所賦之本性乎人存此志하여 堅固不退則庶幾乎道矣리라

사람의 용모는 추한 것을 바꾸어 예쁘게 만들 수 없으며, 체력은 약한 것을 바꾸어 강하게 할 수 없으며, 신체는 짧은 것을 바꾸어 길게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것들은 <타고나면서부터> 이미 결정된 분수인지라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나 오직 심지(心志)만은 어리석은 것을 바꾸어 슬기롭게 할 수 있으며, 불초한 것을 바꾸어 어질게 할 수 있다. 이것은 마음의 허령(虛靈)한 지각능력은 태어날 때 부여받은 기질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이다. 슬기로움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으며, 어짊보다 귀한 것이 없거늘 무엇이 괴로워서 어짊과 지혜로움을 실천하지 아니하여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훼손하는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뜻을 마음속에 보존하여 굳게 지켜 물러서지 않는다면 거의 도에 가까울 수 있을 것이다.

 

凡人自謂立志하되 而不卽用功하고 遲回等待者名爲立志而實無向學之誠故也苟使吾志誠在於學이면 則爲仁由己欲之則至何求於人이며 何待於後哉리오 所貴乎立志者卽下工夫하여 猶恐不及하여 念念不退故也如或志不誠篤하여 因循度日이면 則窮年沒世인들 豈有所成就哉리오

무릇 사람들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 말하되, 곧바로 공부하지 않고 미적거리면서 뒷날을 기다리는 까닭은 말로는 뜻을 세웠다고 하나 실제로는 배움을 향한 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나의 뜻으로 하여금 진실로 배움에 있게 한다면 인()을 실천하는 일은 자기에게 말미암는 것이어서 <인을 실천>하고자 하면 <인이 곧바로>이르게 되니, 어찌 남에게서 구하며 어찌 후일을 기다리겠는가. 입지를 중시하는 까닭은 <입지를 확고히 하면> 곧바로 공부에 착수하여 오히려 미치지 못할까 염려해서 항상 공부할 것을 생각하여 물러서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혹시라도 뜻이 성실하고 독실하지 못하여 그럭저럭 옛습관을 답습하면서 세월만 보낸다면 수명을 다하여 세상을 마친들 어찌 성취하는 바가 있겠는가.

 

 

革舊習章 第二

 

人雖有志於學이나 而不能勇往直前하여 以有所成就者舊習有以沮敗之也舊習之目條列如左하노니 若非勵志痛絶이면 則終無爲學之地矣리라

사람이 비록 학문에 뜻을 두었다 하더라도 용감하게 곧바로 전진하여 <학문을> 성취하지 못하는 까닭은 구습이 <학문하겠다는 결심을> 가로막고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구습에 해당하는 항목을 다음과 같이 열거하였으니, 만약 뜻을 더욱 굳게 세워 뼈아프게 끊어 버리지 않는다면 끝내 학문을 할 터전이 마련되지 않을 것이다.

 

其一惰其心志하고 放其儀形하여 只思暇逸하여 深厭拘束이요

其二常思動作하여 不能守靜하고 紛紜出入하여 打話度日이요

其三喜同惡()하여 汨於流俗하여 稍欲修飭이나 恐乖於衆이요

其四好以文辭取譽於時하여 剽竊經傳하여 以飾浮藻

其五工於筆札하고 業於琴酒하여 優游卒歲하여 自謂淸致

其六好聚閒人하여 圍棋局戲하여 飽食終日하여 只資爭競이요

其七歆羨富貴하고 厭薄貧賤하여 惡衣惡食深以爲恥

其八嗜慾無節하여 不能斷制하여 貨利聲色其味如蔗니라

첫째는, 자신의 심지(心志)를 게을리 하고 몸가짐을 함부로 해서, 단지 한가하고 편안하기만을 생각하여 구속당하기를 매우 싫어하는 것이요.

둘째는, 항상 동작할 것을 생각하여 고요함을 지키지 못하고, 어지럽게 드나들면서 말만 하면서 세월만 보내는 것이요.

셋째는, <여러 사람들과 의견이> 같은 것을 좋아하고 다른 것을 싫어하여 세속에 빠져 조금 행실을 닦고 삼가려 하나 남들과 괴리될까 두려워하는 것이요.

넷째는, 문장으로 당시 세상에서 이름나기를 좋아하여, 경전의 내용을 표절해서 부조(浮藻 : 쓸데없이 화려하기만한 문장)를 꾸미는 것이요.

다섯째는, 글짓는 일에만 힘을 기울이고, 거문고 타기와 술 마시는 것을 업으로 삼아 한가히 놀면서 세월을 보내며 스스로는 깨끗한 운치(韻致)라고 여기는 것이요.

여섯째는, 한가한 사람을 모아 바둑이나 장기를 두면서 배불리 먹고 하루를 마쳐 다만 남과 다투는 데만 힘을 보태는 것이요.

일곱째는, 부귀를 부러워하고, 가난하고 천한 것을 싫어하여 남루한 옷과 거친 음식 먹는 것을 몹시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요.

여덟째는, 즐겨하고 좋아하는 욕심을 절제함이 없어 끊어 억제하지 못해서 재리와 음악과 여색에 빠져 그 맛을 사탕처럼 달게 여기는 것이다.

 

習之害心者 大槪如斯하니 其餘難以悉擧此習使人志不堅固하고 行不篤實하여 今日所爲明日難改하고 朝悔其行이라가 暮已復然하나니 必須大奮勇猛之志하여 如將一刀하여 快斷根株하고 淨洗心地하여 無毫髮餘脈하며 而時時每加猛省之功하여 使此心無一點舊染之汚然後可以論進學之工夫矣리라

습관 중에서 마음을 수양하는 데 방해되는 것이 대개 이와 같으니, 그 나머지는 이루 다 들기 어렵다. 이러한 습관이 사람으로 하여금 뜻을 견고하지 지키지 못하게 하고 행실을 독실하지 실천하지 못하게 하여, 오늘 저지른 일을 내일 고치기 어렵고, 아침에 그 행실을 뉘우쳤다가 저녁에는 이미 다시 그렇게 하나니, 반드시 용맹스런 뜻을 크게 분발해서 마치 칼을 가지고 단칼에 뿌리를 깨끗이 끊어버리듯이 하고,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어 털끝만치라도 남은 맥이 없게 하며, 때때로 매양 크게 반성하는 공부를 더하여 이 마음으로 하여금 한 점이라도 옛날에 물든 더러움이 없게 한 뒤에야 학문에 나아가는 공부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持身章 第三

 

學者必誠心向道하여 不以世俗雜事亂其志然後爲學有基址夫子曰 主忠信이라하시니 朱子釋之曰 人不忠信이면 事皆無實하여 爲惡則易하고 爲善則難이라 必以是爲主焉이라하시니 必以忠信爲主而勇下工夫然後能有所成就黃勉齋所謂眞實心地, 刻苦工夫兩言盡之矣로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진실한 마음으로 도를 향하여 세속의 잡된 일로 자신의 뜻을 어지럽히지 않은 뒤에야 학문을 함에 기초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부자(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과 신()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셨으니, 주자께서 이를 해석하여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 충과 신이 없으면 하는 일이 모두 진실함이 없어서 악()을 저지르기는 쉽고 선()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를 중심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고 하셨으니, 반드시 충과 신을 중심으로 삼고 용감하게 공부에 착수한 뒤에야 성취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면재(勉齋) 황간(黃榦)이 이른바 마음을 진실하게 하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공부하라.”는 두 마디 말씀이 그 뜻을 다하였다고 할 것이다.

 

常須夙興夜寐하여 衣冠必正하고 容色必肅하여 拱手危坐하고 行步安詳하며 言語愼重하여 一動一靜不可輕忽苟且放過니라

모름지기 항상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서 의관을 반드시 바르게 하고, 얼굴빛을 반드시 엄숙하게 하여 두 손을 모으고 무릎꿇고 앉으며, 걸음걸이를 편안하고 조심스럽게 하며, 언어를 신중히 하여 일동일정을 가볍고 소홀히 하여 구차스럽게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된다.

 

收斂身心莫切於九容이요 進學益智莫切於九思하니 所謂九容者足容重,[不輕擧也 若趨于尊長之前 則不可拘此] 手容恭,[手無慢弛 無事則當端拱 不妄動] 目容端,[定其眼睫 視瞻當正 不可流眄邪睇] 口容止,[非言語飮食之時 則口常不動] 聲容靜,[當整攝形氣 不可出噦咳等雜聲] 頭容直,[當正頭直身 不可傾回偏倚] 氣容肅,[當調和鼻息 不可使有聲氣] 立容德,[中立不倚 儼然有德之氣像] 色容莊이요[顔色整齊 無怠慢之氣]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방법은 구용보다 더 친절한 것이 없고, 배움을 진보시키고 지혜를 더하는 방법은 구사보다 더 친절한 것이 없다. 이른바 구용이라는 것은, 발의 움직임을 무겁게 하고,(가볍게 거동하지 않음이다. 어른 앞에서 종종걸음으로 걸을 적에는 이 조목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손 모양을 공손히 하고,(손을 함부로 늘어뜨리지 않음이다. 일이 없을 때는 마땅히 단정히 손을 모으고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눈 모양을 단정히 하고,(눈동자를 안정시켜 마땅히 시선을 바르게 할 것이요, 흘려보거나 훔쳐보아서는 안 된다.) 입은 꼭 다물고,(말을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가 아니면 입은 항상 움직이지 않는다.) 목소리는 조용히 하고,(마땅히 형기를 가다듬어 구역질을 하거나 트림을 하는 따위의 잡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머리는 곧게 세우고,(마땅히 머리를 바르게 세우고 몸을 곧게 해야 하며 기울여 돌리거나 한쪽으로 치우치게 해서는 안 된다.) 숨쉬기는 조용하게 하고,(호흡을 고르게 하여 소리가 나게 해서는 안 된다.) 서 있는 모양은 덕스럽게 하고,(똑바로 서고 치우치지 않아서 엄숙하게 덕스러운 기상을 지녀야 한다.) 얼굴 모양을 장엄하게 하는 것이요.(얼굴빛을 단정히 하여 태만한 기색이 없어야 한다.)

 

所謂九思者視思明,[視無所蔽則明無不見] 聽思聰,[聽無所壅則聰無不聞] 色思溫,[容色和舒 無忿 之氣] 貌思恭,[一身儀形 無不端莊] 言思忠,[一言之發 無不忠信] 事思敬,[一事之作 無不敬愼] 疑思問,[有疑于心 必就先覺審問 不知不措] 忿思難,[有忿必懲 以理自勝] 見得思義니라[臨財必明義利之辨 合義然後取之]

이른바 구사라는 것은, 볼 때는 분명하게 볼 것을 생각하고,(사물을 볼 때 시선에 가리는 바가 없으면 분명하여 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들을 때는 분명히 들을 것을 생각하고,(들을 때 막히는 바가 없으면 분명하여 듣지 못하는 것이 없다.) 얼굴빛은 온화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얼굴빛을 온화하고 부드럽게 하여 화를 내거나 사나운 기색이 없어야 한다.) 용모는 공손할 것을 생각하고,(일신의 태도가 단정하고 씩씩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 말은 진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한 마디 말이라도 진실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 일은 신중하게 할 것을 생각하고,(한 가지 일이라도 신중하고 조심하지 않음이 없게 한다.) 의심이 나면 질문할 것을 생각하고,(마음속에 의심이 있으면 반드시 선각자에게 나아가 자세히 물어서 모르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분할 때는 환난을 생각하고,(분이 나면 반드시 징계하여 이치로써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얻을 것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는 것이다.(재물을 마주했을 때는 반드시 의와 리를 분명히 구분하여, 의에 부합된 뒤에야 취한다.)

 

常以九容九思存於心而檢其身하여 不可頃刻放捨且書諸座隅하여 時時寓目이니라

항상 구용과 구사를 마음속에 붙잡아 두어 자기 몸을 단속하여 잠깐 동안이라도 놓아버리지 말 것이요, 또 이것을 앉는 자리의 귀퉁이에 써 붙여놓고 때때로 눈을 붙여 보아야 할 것이다.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四者修身之要也禮與非禮初學難辨이니 必須窮理而明之하여 但於已知處力行之則思過半矣리라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는 네 가지 조목은 몸을 수양하는 요점이다. 예와 예가 아닌 것을 처음 배우는 이가 분별하기 어려우니, 반드시 이치를 궁구하여 이것을 밝혀서 다만 이미 아는 부분을 힘써 실천한다면 생각함이 반을 넘을 것이다.(깨달은 바가 이미 많을 것이다.)

 

爲學在於日用行事之間하니 若於平居居處恭하며 執事敬하며 與人忠이면 則是名爲學이니 讀書者欲明此理而已니라

학문을 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행하는 일 속에 있으니, 만약 평소 생활할 때에 거처함을 공손히 하고, 일을 집행하기를 공경히 하고, 남과 함께 할 때 진실하면, 이것을 이름하여 학문이라 하는 것이니, 책을 읽는 것은 이 이치를 밝히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衣服不可華侈禦寒而已飮食不可甘美救飢而已居處不可安泰不病而已惟是學問之功, 心術之正, 威儀之則則日勉勉而不可自足也니라

의복은 화려하거나 사치스러움을 추구해서는 아니 되고 추위를 막을 정도면 그만이요, 음식은 달고 맛있기를 추구해서는 아니 되고 굶주림을 면할 정도면 그만이요, 거처는 편안함을 추구해서는 아니 되고 병들지 않을 정도면 그만이다. 오직 학문하는 힘과 마음을 수양하는 올바른 방법과 몸가짐을 단속하는 법칙은 날마다 부지런히 힘써, 스스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克己工夫 最切於日用하니 所謂己者吾心所好 不合天理之謂也必須檢察吾心好色乎好利乎好名譽乎好仕宦乎好安逸乎好宴樂乎好珍玩乎아하여 凡百所好 若不合理어든 則一切痛斷하여 不留苗脈然後에야 吾心所好 始在於義理하여 而無己可克矣리라

자기의 사욕을 이기는 극기 공부가 일상 생활 속에서 가장 절실한 것이다. 이른바 라는 것은 내 마음이 좋아하는 바가 천리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반드시 내 마음이 여색을 좋아하는가, 이익을 좋아하는가, 명예를 좋아하는가, 벼슬하기를 좋아하는가, 편안하게 지내기를 좋아하는가, 잔치하고 즐기기를 좋아하는가, 진귀한 보배를 좋아하는가를 검찰하여, 여러 가지 좋아하는 바가 만일 이치에 부합하지 않거든, 일절 통렬히 끊어서 싹이나 맥을 남겨두지 않은 뒤에야 내 마음이 좋아하는 것이 비로소 의리에 부합되어서 이길 만한 사욕이 없게 될 것이다.

 

多言多慮 最害心術하니 無事則當靜坐存心하고 接人則當擇言簡重하여 時然後言이면 則言不得不簡이니 言簡者近道니라

말이 많고 생각이 많은 것은 마음을 수양하는 데 가장 해롭다. 일이 없으면 마땅히 고요히 앉아서 마음을 보존하고, 사람을 만날 때는 마땅히 말을 가려서 간략히 하고 신중히 하여, 때에 맞은 뒤에 말하면 말이 간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말이 간략한 자가 도에 가깝다.

 

非先王之法服이어든 不敢服하며 非先王之法言이어든 不敢道하여 非先王之德行이어든 不敢行이니 此當終身服膺者也니라

선왕의 법도에 맞는 옷이 아니면 감히 입지 아니하며, 선왕의 법도에 맞는 말이 아니면 감히 말하지 아니하며, 선왕의 덕행이 아니면 감히 행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은 마땅히 몸을 마칠 때까지 가슴속에 넣어두어야 할 것이다.

 

爲學者一味向道하여 不可爲外物所勝이니 外物之不正者當一切不留於心하여 鄕人會處若設博奕樗蒲等戱어든 則當不寓目하여 逡巡引退하고 若遇倡妓作歌舞어든 則必須避去如値鄕中大會하여 或尊長强留하여 不能避退어든 則雖在座而整容淸心하여 不可使奸聲亂色으로 有干於我當宴飮酒不可沈醉浹洽而止 可也니라 凡飮食當適中이니 不可快意有傷乎氣言笑當簡重이니 不可喧譁以過其節이며 動止當安詳이니 不可粗率以失其儀니라

배움을 추구하는 이는 한결같이 도를 향하여 외물이 이기는 바를 당하지 않아야 할 것이니, 외물 중에서 바르지 못한 것은 마땅히 일절 마음에 두지 않아야 한다. 고을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만일 장기나 바둑, 저포 같은 놀이를 벌려 놓았거든 마땅히 눈을 붙여 보지 말고 뒷걸음질쳐 물러나고, 만일 기생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만나면 반드시 피해 가야 할 것이요, 만일 고을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상황을 만나 혹 존장이 억지로 만류하여 피해 물러갈 수 없으면, 비록 그 자리에 있을지라도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마음을 맑게 하여 간사한 소리와 음란한 색으로 하여금 나를 침범함이 있지 않게 할 것이며, 잔치를 만나 술을 마실 때에는 빠지도록 취해서는 안 되고, 술기운이 무젖으면 그만 마시는 것이 옳다. 모든 음식은 마땅히 알맞게 먹어야 할 것이니, 뜻대로 실컷 먹어서 기를 손상시키지 말 것이며, 말과 웃음은 마땅히 간략하고 신중히 해야 할 것이니, 시끄럽게 떠들면서 절도를 넘어서지 말 것이며, 행동거지는 마땅히 편안하고 조심스럽게 해야 할 것이니, 거칠고 경솔하게 하여 몸가짐을 잃어서는 안 된다.

 

有事則以理應事하고 讀書則以誠窮理하여 除二者外靜坐收斂此心하여 使寂寂無紛起之念하고 惺惺無昏昧之失可也所謂敬以直內者如此니라

일이 있으면 사리대로 일을 처리하고, 책을 읽을 때는 진실한 마음가짐으로 이치를 궁구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조용히 앉아 이 마음을 거두어 들여서, <마음으로 하여금> 고요하고 고요하여 어지럽게 일어나는 잡념이 없게 하며, 정신을 바짝 차려서 어두워지는 실수가 없게 하는 것이 옳으니, 이른바 경으로써 마음속을 곧게 한다는 것이 이와 같이 하는 것이다.

 

當正身心하여 表裏如一이니 處幽如顯하며 處獨如衆하여 使此心如靑天白日人得而見之니라

마땅히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겉과 속이 한결같게 하여야 할 것이니, 깊숙한 곳에 있더라도 드러난 곳에 있는 것처럼 하고, 혼자 있더라도 여럿이 있는 것처럼 하여, 이 마음으로 하여금 푸른 하늘의 밝은 해를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는 것처럼 하여야 한다.

 

常以行一不義, 殺一不辜而得天下라도 不爲底意思存諸胸中이니라

항상 한 가지라도 의롭지 못한 일을 행하고,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죽여서 천하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하지 않겠다는 뜻을 가슴속에 두고 있어야 한다.

 

居敬以立其本하며 窮理以明乎善하며 力行以踐其實이니 三者終身事業也니라

경을 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하고, 이치를 궁구함으로써 선을 밝히고, 힘써 행함으로써 그 진실을 실천하여야 하니, 이 세 가지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사업이다.

 

思無邪, 毋不敬只此二句一生受用이라도 不盡이니 當揭諸壁上하여 須臾不可忘也니라

생각에 부정함이 없다.”는 것과 공경하지 아니치 말라.”는 오직 이 두 구절만은 일생토록 받아쓰더라도 다하지 않을 일이니, 마땅히 이것을 벽 위에 써 붙여서 잠깐 동안이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每日頻自點檢하여 心不存乎學不進乎行不力乎아하여 有則改之하고 無則加勉하여 孜孜毋怠하여 斃而後已니라

매일 자주 스스로 점검하되 마음을 보존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학문이 진전되지 않음이 있었던가, 행실을 힘쓰지 않음이 있었던가 반성하여, 있으면 그것을 고치고 없으면 더 힘써서, 부지런히 힘써서 게을리 하지 말아서 죽은 뒤에야 그만둘 것이다.

讀書章 第四

 

學者常存此心하여 不被事物所勝이요 而必須窮理明善然後當行之道 曉然在前하여 可以進步入道莫先於窮理하고 窮理莫先乎讀書하니 以聖賢用心之迹及善惡之可效可戒者 皆在於書故也니라

배우는 자는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하여 사물에게 이김을 당하지 않게 하고, 반드시 이치를 궁구하여 선을 밝힌 뒤에야 마땅히 실천해야 할 도리가 분명하게 앞에 나타나게 되어서 진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에 들어감은 이치를 궁구하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고, 이치를 궁구함은 책을 읽는 것보다 먼저 할 것이 없으니, 성현들께서 마음을 쓴 자취와 선과 악 중에서 본받고 경계해야 할 것이 모두 책에 쓰여 있기 때문이다.

 

凡讀書者 必端拱危坐하여 敬對方冊하여 專心致志하고 精思涵泳하여[涵泳者 熟讀深思之謂] 深解義趣하고 而每句必求踐履之方이니 若口讀而心不體, 身不行이면 則書自書, 我自我何益之有리오

무릇 책을 읽는 자는 반드시 단정히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공경하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마주하여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극진히 하며 자세히 생각하고 함영하여,(함영이라는 것은 익숙히 읽고 깊이 생각함을 이른다.)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구절마다 반드시 실천할 방법을 구해야 하니, 만일 입으로만 읽고 마음에 체득하지 않고 몸으로 실행하지 않는다면 책은 책대로 이고 나는 나대로 일 것이니,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先讀小學하여 於事親, 敬兄, 忠君, 弟長, 隆師, 親友之道一一詳玩而力行之니라

次讀大學及或問하여 於窮理, 正心, 修己, 治人之道一一眞知而實踐之니라

次讀論語하여 於求仁爲己, 涵養本原之功一一精思而深體之니라

次讀孟子하여 於明辨義利, 遏人慾, 存天理之說一一明察而擴充之니라

次讀中庸하여 於性情之德, 推致之功, 位育之妙一一玩索而有得焉이니라

먼저 소학을 읽어, 어버이를 섬기고 형을 공경하며, 임금에게 충성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높이고 벗을 사귀는 도리에 대해 일일이 자세히 익혀서 힘써 실행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대학대학혹문을 읽어,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며, 자기 몸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도리에 대해 일일이 참되게 알아서 진실하게 실천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논어를 읽어 인을 구하고, 참된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고, 본원을 함양하는 공부에 대해 일일이 자세히 생각하고 깊이 체득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맹자를 읽어, 의리와 이익을 분명하게 분별하는 일과,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는 내용에 대해 일일이 밝게 살펴서 확충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중용을 읽어, 성정의 올바른 뜻과 미루어 지극히 하는 공부와 천지가 제 자리를 얻고 만물이 생육되는 미묘한 이치에 대해 일일이 깊이 음미하고 탐색하여 터득함이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次讀詩經하여 於性情之邪正, 善惡之褒戒一一潛繹하여 感發而懲創之니라

次讀禮經하여 於天理之節文, 儀則之度數一一講究而有立焉이니라

次讀書經하여 於二帝三王治天下之大經大法一一領要而遡本焉이니라

次讀易經하여 於吉凶存亡進退消長之幾一一觀玩而窮硏焉이니라

次讀春秋하여 於聖人賞善罰惡, 抑揚操縱之微辭奧義一一精硏而契悟焉이니라

다음으로 시경을 읽어, 성정의 간사하고 바름과 선악을 칭찬하고 징계함에 대해 일일이 깊이 생각하여 선한 마음을 감발하고 악한 마음을 징계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예경을 읽어, 천리의 절문과 의칙의 도수에 대해 일일이 강구해서 확립함이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서경을 읽어, 이제와 삼왕이 천하를 다스린 대경대법에 대해 일일이 요령을 터득하여 근본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다음에 역경을 읽어, 길흉과 존망, 진퇴와 소장의 기미에 대해 일일이 관찰하여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춘추를 읽어, 성인이 선을 기리고 악을 벌하며, 억양하고 조종하는 은미한 말씀과 오묘한 뜻에 대해 일일이 자세히 연구하여 정확하게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다.

 

五書五經循環熟讀하여 理會不已하여 使義理日明하고 而宋之先正所著之書如近思錄, 家禮, 心經, 二程全書, 朱子大全, 語類及他性理之說宜間間精讀하여 使義理常常浸灌吾心하여 無時間斷하고 而餘力亦讀史書하여 通古今, 達事變하여 以長識見이니 若異端雜類不正之書則不可頃刻披閱也니라

이상의 오서와 오경을 돌려가며 익숙히 읽어 이회(理會)하기를 그만두지 않아서 의리로 이치로 하여금 날로 밝아지게 해야 한다. 그리고 송나라의 선현들이 지은 책으로서 이를테면 근사록, 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대전, 주자어류및 기타 성리설 같은 책을 마땅히 틈틈이 정독해서 의리로 하여금 항상 내 마음속에 젖어들어 어느 때고 끊어짐이 없도록 하고, 남은 여가에 또한 역사책을 읽어 고금의 사변을 통달하여 식견을 신장시켜야 할 것이다. 이단이나 잡류로 바르지 못한 책 같은 경우는 잠깐 동안이라도 펼쳐 보아서는 안 된다.

 

凡讀書必熟讀一冊하여 盡曉義趣하여 貫通無疑然後乃改讀他書不可貪多務得하여 忙迫涉獵也니라

무릇 책을 읽을 때에는 반드시 한 책을 익숙히 읽어서 의미를 다 깨달아 꿰뚫어 통달하고 의심스러운 것이 없어진 뒤에야 비로소 다시 다른 책을 읽을 것이요, 많이 읽기를 탐내고 얻기를 힘써서 바삐 섭렵해서는 안 된다.

 

 

事親章 第五

 

凡人莫不知親之當孝로되 而孝者甚鮮하니 由不深知父母之恩故也詩不云乎父兮生我하시고 母兮鞠我하시니 欲報之德인댄 昊天罔極이라하니 人子之受生性命血肉皆親所遺喘息呼吸氣脈相通하니 此身非我私物이요 及父母之遺氣也曰 哀哀父母生我劬勞라하니 父母之恩爲如何哉豈敢自有其身하여 以不盡孝於父母乎人能恒存此心이면 則自有向親之誠矣리라

무릇 사람들이 부모에게 마땅히 효도해야 함을 알지 못하는 이가 없되 효도하는 자가 심히 드무니, 이것은 부모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는 데서 말미암은 연고이다. 시경에 이르지 않았던가. “아버님! 나를 낳으시고, 어머님! 나를 기르시니, 그 은덕을 갚고자 할진댄 하늘같아 다함이 없다.”고 하였으니, 자식이 생명을 받을 적에 성명과 혈육이 모두 어버이가 남겨주신 것이다. 숨을 쉬어 호흡함에 기맥이 서로 통하니, 이 몸은 나의 사유물이 아니요, 바로 부모께서 남겨주신 기운이다. 그러므로 시경슬프고 슬프다. 부모님이여! 나를 낳으시느라 수고로우셨도다.”하였으니, 부모의 은혜가 어떠한가. 어찌 감히 스스로 자기 몸을 사유하여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이 항상 이 마음을 지닐 수 있다면 저절로 부모를 향한 정성이 생길 것이다.

 

凡事父母者 一事一行毋敢自專하여 必稟命而後行이니 若事之可爲者父母不許어시든 則必委曲陳達하여 頷可而後行이요 若終不許라도 則亦不可直遂其情也니라

무릇 부모를 섬기는 자는 한 가지 일과 한 가지 행실을 감히 스스로 오로지 하지 말아, 반드시 부모에게 명령을 받은 뒤에 시행해야 할 것이다. 만일 일 중에서 해야 할 것을 부모가 허락하지 않으시거든 반드시 자세히 말씀드려서 허락하신 뒤에 시행할 것이요, 만일 끝내 허락하지 않으시더라도 또한 곧바로 자기 뜻을 이루어서는 안 된다.

 

每日未明而起하여 盥櫛衣帶하고 就父母寢所하여 下氣怡聲하여 問燠寒安否하며 昏則詣寢所하여 定其褥席하고 察其溫凉하며 日間侍奉常愉色婉容하여 應對恭敬하고 左右就養하여 極盡其誠하며 出入必拜辭拜謁이니라

매일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을 입고 띠를 띠고서 부모의 침소로 나아가 기운을 낮추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더우시거나 추우신 지와 편안하신 지 그렇지 않은지를 여쭙고, 날이 어두워지면 침소에 나아가 이부자리를 정해 드리고, 따뜻한지 서늘한지를 살펴보며, 낮 동안 받들어 모실 적에는 항상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용모를 공손히 하여 응대하기를 공경히 하고, 좌우로 나아가 봉양하여 그 정성을 극진히 하며, 나가고 들어올 적에는 반드시 절하고 하직하며, 절하고 뵈어야 한다.

 

今人多是被養於父母하고 不能以己力養其父母하니 若此奄過日月이면 則終無忠養之時也리라 必須躬幹家事하여 自備甘旨然後子職乃修若父母堅不聽從이면 則雖不能幹家亦當周旋補助하여 而盡力得甘旨之具하여 以適親口 可也니라 若心心念念在於養親이면 則珍味亦必可得矣리라 每念王延隆冬盛寒體無全衣호되 而親極滋味하여 令人感歎流涕也리라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부모에게 양육을 받기만 하고 자기 힘으로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니, 이와 같이 하여 어느덧 세월을 보낸다면 끝내 정성으로 봉양할 때가 없을 것이다. 반드시 몸소 집안 일을 담당하여 스스로 맛있는 음식을 마련한 뒤에야 자식의 직분이 비로소 닦여지는 것이니, 만일 부모님께서 굳이 들어주지 않으시면 비록 집안 일을 담당하지는 못하나, 또한 마땅히 이리저리 움직여 도와드려서 힘을 다해 맛있는 음식을 얻어, 어버이의 입맛에 맞도록 함이 옳다. 만일 마음과 생각이 항상 어버이를 봉양하는 데 있다면, 진미를 또한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매양 왕연이 한겨울 몹시 추운 때에 자기 몸에는 성한 옷이 없었으되 어버이에게는 맛있는 음식을 극진하게 대접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하고 눈물을 흘리게 한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人家父子間多是愛逾於敬하니 必須痛洗舊習하여 極其尊敬이니 父母所坐臥處子不敢坐臥하며 所接客處子不敢接私客하며 上下馬處子不敢上下馬 可也니라

사람들 집안에서 부자간에 대부분 사랑이 공경보다 지나치니, 반드시 옛습관을 통렬히 씻어버려, 존경을 극진히 하여야 한다. 부모가 앉고 누우시는 곳에는 자식이 감히 앉고 눕지 않으며, 부모가 손님을 접대하시는 곳에서는 자식이 감히 사사로운 손님을 접대하지 않으며, 부모가 말을 타고 내리시는 곳에는 자식이 감히 말을 타고 내리지 않는 것이 옳다.

 

父母之志 若非害於義理어든 則當先意承順하여 毫忽不可違若其害理者則和氣怡色柔聲以諫하여 反覆開陳하여 必期於聽從이니라

부모의 뜻이 만일 의리에 해로운 것이 아니면, 마땅히 부모의 뜻을 따라 부모의 뜻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받들어 순종하여 조금이라도 어기지 말 것이요, 만일 의리에 해로운 것이면 기운을 온화하게 하고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며 음성을 따뜻하게 하여 간해서, 반복하여 아뢰어 반드시 들어 따르시게 하기를 기약하여야 한다.

 

父母有疾이어시든 心憂色沮하여 捨置他事하고 只以問醫劑藥爲務疾止어시든 復初니라

부모께서 병환이 걸리시면 마음으로도 근심하고 얼굴빛으로도 근심하여, 다른 일은 버려두고 다만 의원에게 묻고 약을 짓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니, 병이 그치면 평소대로 돌아간다.

 

日用之間, 一毫之頃不忘父母然後乃名爲孝彼持身不謹하며 出言無章하여 嬉戱度日者皆是忘父母者也니라

일상 생활하는 사이와 잠깐 동안이라도 부모를 잊지 않은 뒤에야 효도한다고 이름할 수 있으니, 저 몸가짐을 삼가지 않으며 말을 함에 법도가 없어 장난이나 치면서 세월을 보내는 자는 모두 부모를 잊어버린 것이다.

 

日月如流하여 事親不可久也爲子者須盡誠竭力하여 如恐不及可也니라 古人詩曰 古人一日養不以三公換이라하니 所謂愛日者如此니라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아서 어버이를 섬기기를 오래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식된 자는 모름지기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미치지 못할까 염려하듯 함이 옳다. 옛사람의 시에 이르기를, “옛날 사람은 하루의 봉양을 삼공과도 바꾸지 않는다.”하였으니, 이른바 날을 아낀다는 것이 이와 같다.

 

 

喪制章 第六

 

喪制當一依朱文公家禮若有疑晦處어든 則質問于先生長者識禮處하여 必盡其禮 可也니라

상제는 마땅히 한결같이 주문공의 가례를 따라야 하니, 만일 의심스럽거나 모르는 곳이 있거든 선생이나 어른으로서 예를 아는 곳에 질문해서 반드시 그 예를 다하는 것이 옳다.

 

復時俗例必呼小字하니 非禮也少者則猶可呼名이어니와 長者則不可呼名이요 隨生時所稱可也니라[婦女尤不宜呼名]

사자의 혼을 부르는 복을 할 때 세속의 관례에는 반드시 소자(어린 시절의 이름)를 부르니, 예가 아니다. 어린 사람이 죽었을 경우에는 그래도 이름을 부를 수 있지만, 어른일 경우에는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고 살았을 적에 일컫던 바를 따르는 것이 옳다.(부녀자의 경우는 더더욱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

 

母喪父在則父爲喪主凡祝辭皆當用夫告妻之例也니라

어머니 상을 당했을 때에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아버지가 상주가 되니, 모든 축사를 모두 마땅히 남편이 아내에게 고하는 예를 써야 한다.

 

父母初沒妻妾婦及女子皆被髮하고 男子則被髮扱上衽徒跣이니라[小斂後 男子則袒括髮 婦人則髽]若子爲他人後者及女子已嫁者皆不被髮徒跣이니라[男子則免冠]

부모가 막 돌아가셨을 때에는 아내와 첩, 며느리와 딸은 모두 머리를 풀고, 남자들은 머리를 풀고 옷깃을 걷어올리고 맨발을 한다.(소렴을 한 뒤에는 남자는 왼쪽 어깨를 드러내고 머리를 묶으며 부인은 머리를 묶는다.) 만일 아들로서 남의 양자가 된 자와 딸로서 이미 출가한 자일 경우에는 모두 머리를 풀거나 맨발을 하지 않는다.(남자는 관을 벗는다.)

 

尸在牀而未殯男女位于尸傍이면 則其位南上이니 以尸頭所在爲上也旣殯之後女子則依前位于堂上호되 南上하고 男子則位于階下호되 其位當北上이니 以殯所在爲上也發引時男女之位 復南上이니 以靈柩所在爲上也隨時變位而各有禮意니라

시신이 침상 위에 있고 아직 빈소를 차리지 않았을 때에 남녀가 시신 곁에 자리하게 되면 그 위치는 남쪽을 상석으로 삼으니, 이는 시신의 머리가 있는 곳을 상석으로 삼기 때문이고, 이미 빈소를 차린 뒤에는 여자들은 앞서 대로 당의 위에 자리하되 남쪽을 상석으로 삼고, 남자들은 뜰 아래에 자리하되 그 위치는 마땅히 북쪽을 상석으로 삼아야 하니, 빈소가 있는 곳을 상석으로 삼기 때문이고, 발인할 때에는 남녀의 위치가 다시 남쪽을 상석으로 삼으니, 영구가 놓여 있는 곳을 상석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처럼 때에 따라 위치를 바꾸되 각각 그에 적절한 예의 뜻이 있는 것이다.

 

今人多不解禮하여 每弔客致慰專不起動하고 只俯伏而已하니 此非禮也弔客拜靈座而出이어든 則喪者當出自喪次하여 向弔客하여 再拜而哭可也니라[弔客當答拜]

지금 사람들이 대부분 예를 알지 못하여, 매양 조문객이 위로할 때에 전혀 기동하지 않고 다만 엎드려 있을 뿐이니, 이것은 예가 아니다. 조문객이 영좌에 절하고 나오거든 상주는 마땅히 상차로부터 나와서 조객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곡함이 옳다.(조객도 마땅히 답절해야 한다.)

 

衰絰非疾病服役이면 則不可脫也니라

상복과 수질이나 요질은 질병에 걸리거나 일하는 경우가 아니면 벗어서는 안 된다.

 

家禮父母之喪成服之日始食粥하고 卒哭之日始疏食[糲飯也] 水飮하고[不食羹也] 不食菜果하며 小祥之後始食菜果하니[羹亦可食] 禮文如此하니 非有疾病이면 則當從禮文이니라 人或有過禮而啜粥三年者하니 若是誠孝出人하여 無一毫勉强之意則雖過禮라도 猶或可也어니와 若誠孝未至어늘 而勉强踰禮則是自欺而欺親也切宜戒之니라

가례에 부모의 상에는 상복을 갖추어 입는 날에 비로소 죽을 먹고, 졸곡하는 날에 비로소 거친 밥(곱게 쓿지 않은 곡식으로 지은 밥이다.)과 물만 마시고(국을 먹지 않는다.) 채소와 과일은 먹지 않으며, 소상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채소와 과일을 먹는다.(국도 먹을 수 있다.) 예법이 이와 같으니, 질병에 걸리지 않으면 당연히 예법을 따라야 한다. 사람들 중에는 혹 예법을 지나쳐서 3년 동안 죽만을 먹는 자가 있으니, 만일 효성이 남보다 뛰어나, 조금도 힘써서 억지로 하는 뜻이 없다면 비록 예법을 지나치더라도 그런대로 괜찮지만, 만일 효성이 지극하지 못하면서 힘써 억지로 하여 예법을 지나친다면 이것은 자신을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는 것이니, 의당 절실하게 경계해야 할 것이다.

 

今之識禮之家 多於葬後返魂하니 此固正禮로되 但時人效顰하여 遂廢廬墓之俗하고 返魂之後各還其家하여 與妻子同處하여 禮坊大壞하니 甚可寒心이라 凡喪親者 自度()一一從禮하여 無毫分虧欠이어든 則當依禮返魂이어니와 如或未然이면 則當依舊俗廬墓 可也니라

요즘 예법을 아는 집안들이 대부분 장사지낸 뒤에 반혼하니, 이것은 진실로 바른 예이다. 다만 요즈음 사람들은 남의 흉내를 내어 마침내 여묘하는 풍속을 버리고 반혼한 뒤에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가 처자식들과 함께 생활하여 예방이 크게 무너졌으니, 몹시 한심스러워 할 만하다. 무릇 어버이를 잃은 자는 일일이 예를 따랐는가를 스스로 헤아려 조금도 모자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마땅히 예를 따라 반혼할 것이요, 만일 혹 그렇지 못하면 옛 풍속을 따라 여묘하는 것이 옳다.

 

親喪成服之前哭泣不絶於口하고[氣盡則令婢僕代哭] 葬前哭無定時하여 哀至則哭하며 卒哭後則朝夕哭二時而已禮文大槪如此어니와 若孝子情至則哭泣豈有定數哉凡喪與其哀不足而禮有餘也不若禮不足而哀有餘也喪事不過盡其哀敬而已니라

어버이 상을 당했을 때에 상복을 갖추어 입기 전에는 곡하고 우는 것을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고,(기운이 다하면 하인으로 하여금 대신 곡하게 한다.) 장사지내기 전에는 곡을 함에 일정한 때를 정함이 없어서 슬픔이 일어나면 곡하며, 졸곡을 지낸 뒤에는 아침과 저녁 두 때에만 곡할 뿐이다. 예법이 대개 이와 같거니와, 만일 효자로서 정이 지극하면 곡하고 욺에 어찌 일정한 수가 있겠는가? 무릇 초상에는 슬픔이 부족하고 예가 넉넉한 것이 예가 부족하고 슬픔이 넉넉한 것만 못하니, 상사는 그 슬픔과 공경을 다함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曾子曰 人未有自致者也必也親喪乎인저하시니 送死者事親之大節也於此不用其誠이면 ()乎用其誠이리오

증자가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스스로 <정성을> 지극히 하는 경우가 있지 않으나, 반드시 어버이의 상에는 지극히 해야 할 것이다.”하셨으니, 죽은 이를 장사지내는 것은 어버이를 섬기는 큰 예절이다. 이 일에서 그 정성을 쓰지 않는다면 어디에 그 정성을 쓰겠는가.

 

昔者小連大連善居喪하여 三日不怠하고 三月不懈하고 期悲哀하고 三年憂하니 此是居喪之則也孝誠之至者則不勉而能矣어니와 如有不及者則勉而從之 可也니라

옛날에 소련과 대련은 상사를 잘 치러서 3일 동안 게을리 하지 않고, 석달 동안 태만히 하지 않고, 1년간 슬퍼하고, 3년 동안 근심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상사를 치르는 법칙이다. 효성이 지극한 자는 힘쓰지 않아도 잘 할 수 있거니와, 만일 미치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힘써서 예를 따름이 옳다.

 

人之居喪誠孝不至하여 不能從禮者固不足道矣어니와 間有質美而未學者하여 徒知執禮之爲孝하고 而不知傷生之失正하여 過於哀毁하여 羸疾已作호되 而不忍從權하여 以至滅性者 或有之하니 深可惜也是故毁瘠傷生君子謂之不孝니라

사람이 상사를 치를 때에 효성이 지극하지 못하여 예법을 따르지 못하는 자는 진실로 말할 것이 없거니와, 간혹 자질은 아름다우나 배우지 못한 자가 있어 한갓 예를 행하는 것이 효도가 되는 줄만 알고, 자신의 생명을 손상하는 것이 올바른 도리를 잃는 것임을 알지 못하여, 슬퍼하고 훼손하기를 지나치게 해서 파리한 병이 이미 나타났는데도 차마 권도를 따르지 못하여 생명을 잃는 데 이르는 자가 간혹 있으니, 심히 애석하다. 그러므로 몸을 훼손하고 수척하게 하여 생명을 손상하는 것을 군자는 불효라 이르는 것이다.

 

凡有服親戚之喪若他處聞訃어든 則設位而哭이니 若奔喪이면 則至家而成服하고 若不奔喪이면 則四日成服이니라 若齊衰之服이면 則未成服前三日中朝夕爲位會哭이니라[齊衰降大功者亦同]

무릇 복을 입어야 할 친척의 상을 당했을 때에 만일 다른 곳에서 부음을 들었으면 신위를 설치하고 곡을 한다. 만일 초상에 달려가야 할 경우이면 집에 이르러 상복을 갖추어 입고, 만일 초상에 달려가지 못할 경우이면 4일 만에 상복을 갖추어 입는다. 만일 자최복을 입어야 할 초상이면 상복을 갖추어 입기 전 3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신위를 설치하고 모여 곡한다.(자최복으로서 대공으로 낮추어진 경우도 이와 같다.)

 

師友之義重者及親戚之無服而情厚者與凡相知之分密者皆於聞喪之日若道遠하여 不能往臨其喪이면 則設位而哭이니라 師則隨其情義深淺하여 或心喪三年, 或期年, 或九月, 或五月, 或三月이요 友則雖最重이나 不過三月이니라 若師喪欲行三年期年者 不能奔喪이어든 則當朝夕設位而哭하여 四日而止니라[止於四日之朝 若情重者則不止此限]

스승과 벗 중에서 정의가 무거운 자와, 친척으로서 상복을 입지 않는 관계이지만 정의가 두터운 자와, 무릇 서로 알고 지내는 자로서 교분이 친밀한 자는, 모두 상을 들은 날에 만약 길이 멀어 그 초상에 가서 참여할 수 없으면 신위를 설치하고 곡한다. 스승일 경우에는 그 정의가 깊고 얕음에 따라 혹은 심상 3, 혹은 1, 혹은 9개월, 혹은 5개월, 혹은 3개월을 할 것이요, 친구일 경우에는 비록 가장 두터운 관계라 하더라도 3개월을 넘기지 않는다. 만약 스승의 상에 3년복이나 기년복을 행하고자 하는 자가 초상에 참여할 수 없거든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신위를 설치하고 곡하여, 4일만에 그친다.[나흘 째 되는 날 아침에 곡을 그친다. 만약 정의가 두터운 관계일 경우에는 이 한계에서 그치지 않는다.]

 

凡遭服者 每月朔日設位服其服而會哭하고[師友雖無服亦同] 月數旣滿이면 則於次月朔日設位服其服하고 會哭而除之其間哀至則哭可也니라

무릇 상복을 입게 된 자는 매월 초하루에 신위를 설치하고, 입어야 할 상복을 입고 모여서 곡하며,(스승이나 친구로서 복이 없는 경우라도 마찬가지이다.) 달수가 차고 나면 다음 달 초하루에 신위를 설치하고 입어야 할 상복을 입고 모여서 곡하고는 상복을 벗어야 할 것이니, 그 사이에 슬픔이 일어나면 곡하는 것이 옳다.

 

凡大功以上喪則未葬前非有故어든 不可出入이며 亦不可弔人이요 常以治喪講禮爲事니라

무릇 대공 이상의 상을 당했을 때에 장사를 지내기 전에는 연고가 없거든 밖에 출입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남에게 조문하러 가서도 아니 되고, 항상 상사를 다스리고 예를 강론하는 것을 일삼아야 한다.

 

 

祭禮章 第七

 

祭祀當依家禮하여 必立祠堂하여 以奉先主하고 置祭田, 具祭器하여 宗子主之니라

제사는 마땅히 주자가례를 따라 반드시 사당을 세워서 선조의 신주를 받들고, 제전을 설치하고 제기를 갖추어서 종자가 이를 주관해야 한다.

 

主祠堂者每晨謁于大門之內하여 再拜하고[雖非主人 隨主人同謁 無妨] 出入必告이니라

사당을 주관하는 자는 매일 새벽마다 대문 안에서 배알하여 두 번 절하고(주인이 아니더라도 주인을 따라 함께 뵙는 것은 무방하다.) 출입할 때는 반드시 아뢴다.

 

或有水火盜賊이어든 則先救祠堂하여 遷神主遺書하고 次及祭器하고 然後及家財니라

혹 수재나 화재나 도적이 있으면 먼저 사당을 구원하여 신주와 유서를 옮기고, 다음에 제기에 미치고 그런 뒤에 가재에 미쳐야 한다.

 

[正朝][冬至][一日][十五日]則參()하고 俗節則薦以時食이니라

정월 초하루와 동짓날과 초하루와 보름날이 되면 사당에 참배하고, 속절일 경우에는 그 때에 맞는 음식을 올린다.

 

時祭則散齊四日하고 致齊三日하며 忌祭則散齊二日하고 致齊一日하며 參禮則齊宿一日이니 所謂散齊者不弔喪, 不問疾, 不茹葷, 飮酒不得至亂하며 凡凶穢之事皆不得預[若路中猝遇凶穢 則掩目而避 不可視也]所謂致齊者不聽樂, 不出入하고 專心想念所祭之人하여 思其居處하며 思其笑語하며 思其所樂()하며 思其所嗜之謂也夫然後當祭之時하여 如見其形하고 如聞其聲하여 誠至而神享也니라

시제를 지낼 경우에는 산재를 4일간 하고 치재를 3일간 하며, 기제를 지낼 경우에는 산재를 2일간 하고 치재를 1일간 하며, 참례할 경우에는 미리 재계하기를 1일간 한다. 이른바 산재라는 것은 남의 초상에 조문하지 않고 질병을 문병하지 않으며, 냄새나는 음식을 먹지 않고 술을 마시되 취하는 데 이르지 않으며, 모든 흉하고 더러운 일에 다 상관하지 않는 것이요,(만일 길에서 흉하고 더러운 것을 갑자기 만나면 눈을 가리고 피하여 보지 말아야 한다.) 이른바 치재라는 것은 음악을 듣지 않고, 출입하지 않고, 마음을 오로지 하여 제사지낼 분을 생각하여, 그 분이 <생전에> 생활하시던 모습을 생각하며, 웃고 말씀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좋아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즐기시던 것을 생각함을 이른다. 이렇게 한 뒤에야 제사 지낼 때를 맞이하여 그 모습을 보는 듯하고, 그 음성을 듣는 듯하여 정성이 지극하여 신이 흠향하는 것이다.

 

凡祭主於盡愛敬之誠而已貧則稱家之有無하고 疾則量筋力而行之호되 財力可及者自當如儀니라

무릇 제사는 사랑하고 공경하는 정성을 극진히 하는 것을 중심으로 삼을 뿐이다. 가난하면 가산의 있고 없음에 맞추어 할 것이요, 병이 있으면 근력을 헤아려 치르되, 재물과 힘이 미칠 수 있는 자는 스스로 마땅히 예법과 같이 해야 할 것이다.

 

墓祭, 忌祭世俗輪行하니 非禮也墓祭則雖輪行이라도 皆祭于墓上하니 猶之可也어니와 忌祭不祭于神主하고 而乃祭于紙榜하니 此甚未安이라 雖不免輪行이나 須具祭饌하여 行于家廟 庶乎可矣리라

묘제와 기제를 세속에서 자손들이 돌려가며 지내고 있으니, 이것은 예가 아니다. 묘제는 비록 돌려가며 지내더라도 모두 묘소에서 제사지내니 그래도 괜찮지만, 기제는 신주에게 제사지내지 않고 지방에 제사를 지내니, 이는 매우 미안한 일이다. 비록 돌려가며 지냄을 피치 못하더라도 모름지기 제찬을 갖추어 가묘에서 지내는 것이 옳음에 가까울 것이다.

 

喪祭二禮最是人子致誠處也已沒之親不可追養이니 若非喪盡其禮, 祭盡其誠이면 則終天之痛無事可寓無時可洩也於人子之情當如何哉曾子曰 愼終追遠이면 民德歸厚矣라하시니 爲人子者 所當深念也니라

상례와 제례 두 예는 사람의 자식이 가장 정성을 다해야 할 일이다. 이미 돌아가신 어버이를 뒤쫓아 봉양할 수 없으니, 만약 상례를 치를 때 그 예를 다하고 제례를 치를 때 그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면 평생동안 남는 비통함을 붙일 만한 일이 없고 쏟을 만한 때가 없을 것이니, 자식된 심정에 마땅히 어떠하겠는가? 증자가 말씀하시기를, “장례를 삼가 보시고 먼 조상을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한 데로 돌아가게 된다.”고 하셨으니, 자식된 자가 마땅히 깊이 생각해야 할 바이다.

 

今俗多不識禮하여 其行祭之儀 家家不同하니 甚可笑也若不一裁之以禮則終不免紊亂無序하여 歸於夷虜之風矣리라 玆鈔祭禮하여 附錄于後하고 且爲之圖하노니 須詳審倣行호되 而若父兄不欲이어시든 則當委曲陳達하여 期於歸正이니라

지금 세속이 대부분 예를 알지 못하여 제사지내는 의식이 집집마다 같이 않으니, 심히 웃을 만한 일이다. 만약 한결같이 예법으로 제재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문란하고 차례가 없게 되어 오랑캐의 풍속으로 돌아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에 제례를 뽑아 뒤에 붙이고 또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 놓았으니, 반드시 자세히 살펴 이대로 따라 행하되, 만약 부형이 그대로 하려고 하지 않으시거든 마땅히 간곡히 말씀드려 바른 데로 돌아가기를 기약해야 할 것이다.

 

居家章 第八

 

凡居家當謹守禮法하여 以率妻子及家衆이니 分之以職하고 授之以事하여 而責其成功하며 制財用之節하여 量入而爲出하며 稱家之有無하여 以給上下之衣食及吉凶之費호되 皆有品節하여 而莫不均一하며 裁省()冗費하고 禁止奢華하여 常須稍存嬴餘하여 以備不虞니라

무릇 집에서 머물 때에는 마땅히 삼가 예법을 지켜서 처자와 집안 식구들을 거느려야 할 것이니, 그들에게 직책을 나누어주고 할 일을 맡겨주어 그 성공하기를 요구하며, 재용의 씀씀이를 절제하여, 수입을 헤아려서 지출을 시행하며, 가산의 있고 없음에 맞추어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옷과 음식 및 길사와 흉사의 비용을 지급하되 모두 등급대로 조절하여 균일하지 않음이 없게 하며,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고, 사치와 호화를 금지하여 항상 모름지기 다소 남음이 있게 해서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冠婚之制當依家禮不可苟且從俗이니라

관례와 혼례의 제도는 마땅히 주자가례를 따라야 할 것이요, 구차스럽게 세속을 따라서는 안 된다.

 

兄弟同受父母遺體하여 與我如一身하니 視之當無彼我之間하여 飮食衣服有無皆當共之니라 設使兄飢而弟飽하고 弟寒而兄溫이면 則是一身之中肢體或病或健也身心豈得偏安乎今人兄弟不相愛者皆緣不愛父母故也若有愛父母之心이면 則豈可不愛父母之子乎兄弟 若有不善之行이면 則當積誠忠諫하여 漸喩以理하여 期於感悟不可遽加厲色拂言하여 以失其和也니라

형제는 부모가 남겨주신 몸을 함께 받아서 나와 더불어 한 몸과 같으니, 형제를 보기를 마땅히 저와 나의 구분이 없게 하여, 음식과 의복의 있고 없음을 모두 마땅히 같이 해야 한다. 가령 형은 굶주리는데 아우는 배부르고, 아우는 추운데 형은 따뜻하다면, 이는 한 몸 가운데에 지체가 어떤 것은 병들고 어떤 것은 건강한 것과 같으니, 몸과 마음이 어찌 한쪽만 편안할 수 있겠는가? 요즘 사람들이 형제간에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두 부모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그 부모의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제가 만일 좋지 못한 행실이 저지르면 마땅히 정성을 쌓아 충고해서, 점차 도리로써 깨우쳐 감동하여 깨닫게 하기를 기약할 것이요, 갑자기 노여운 낯빛과 거슬리는 말을 하여 그 화합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今之學者 外雖矜持而內鮮篤實하여 夫婦之間, 袵席之上多縱情慾하여 失其威儀夫婦不相昵狎而能相敬者甚少하니 如是而欲修身正家인들 不亦難乎必須夫和而制以義하고 妻順而承以正하여 夫婦之間不失禮敬然後家事可治也리라 若從前相狎이라가 而一朝遽欲相敬이면 其勢難行이니 須是與妻相戒하여 必去前習하고 漸入於禮 可也니라 妻若見我發言持身一出於正이면 則必漸相信而順從矣리라

지금의 학자들은 겉으로는 비록 엄숙한 모습을 지키나 속으로는 독실한 이가 드물어서, 부부간에 이부자리 위에서 함부로 정욕을 부려서 그 몸가짐을 잃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부부가 서로 친압하지 않고 서로 공경할 줄 아는 이가 매우 적으니, 이와 같이 하면서 몸을 닦고 집안을 바로잡고자 한들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반드시 모름지기 남편은 화합하는 태도를 지니고 올바른 도리로 제어하고, 아내는 유순하면서 올바른 도리로써 받들어 부부 사이에 예의와 공경을 잃지 않은 뒤에나 집안 일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종전에 서로 친압하다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서로 공경하고자 한다면 그 세가 행해지기 어려우니, 모름지기 아내와 더불어 서로 경계하여 반드시 전날의 습관을 버리고 점차 예에 들어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아내가 만일 내가 말하고 움직이는 것이 한결같이 올바른 도리에서 나오는 것을 본다면 반드시 점점 서로 믿고 순종하게 될 것이다.

 

生子自稍有知識時當導之以善이니 若幼而不敎하여 至於旣長이면 則習非放心하여 敎之甚難이니 敎之之序當依小學이니라 大抵一家之內禮法與行하고 簡編筆墨之外無他雜技則子弟亦無外馳畔學之患矣리라 兄弟之子猶我子也其愛之, 其敎之當均一이요 不可有輕重厚薄也니라

자식을 낳으면 조금 지식이 생길 때부터 마땅히 선으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려서 가르치지 않고 이미 장성함에 이르면 그른 것을 익히고 방심하게 되어 이를 가르치기가 매우 어려우니, 가르치는 차례는 마땅히 소학을 따라야 할 것이다. 대저 어떤 집안에 예법이 흥행하고 서간이나 책, 글씨 쓰기 이외에 다른 잡기가 없으면, 자제들 또한 <마음을> 밖으로 달려 배움을 저버리는 병통이 없을 것이다. 형제의 자식은 내 자식과 같으니, 그를 사랑하고 가르치기를 마땅히 균일하게 할 것이요, 경중과 후박을 두어서는 안 된다.

 

婢僕代我之勞하니 當先恩而後威라야 乃得其心이니 君之於民主之於僕其理一也君不恤民則民散이니 民散則國亡하고 主不恤僕則僕散이니 僕散則家敗勢所必至其於婢僕必須軫念飢寒하여 資給衣食하여 使得其所하고 而有過惡이면 則先須勤勤敎誨하여 使之改革하고 敎之不改然後乃施楚撻하여 使其心으로 知厥主之楚撻出於敎誨而非所以憎嫉이니 然後可使改心革面矣리라

비복들은 나의 수고로움을 대신하니, 마땅히 은혜를 먼저 베풀고 난 뒤에 위엄을 부려야 비로소 그들의 마음을 얻을 것이니, 임금이 백성에게 대한 것과 주인이 비복에 대한 것은 그 이치가 똑같은 것이다. 임금이 백성을 돌보지 않으면 백성이 흩어질 것이니,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며, 주인이 비복을 돌보지 않으면 비복이 흩어질 것이니, 비복이 흩어지면 집이 패망하는 것은 형편상 반드시 이르는 것이다. 그 비복에 대하여 반드시 모름지기 그들의 추위와 굶주림을 깊이 염려해서 옷과 밥을 대주어 제자리를 얻게 할 것이요, 허물과 악행이 있으면 먼저 모름지기 부지런히 가르쳐서 그로 하여금 고치게 하고, 가르쳐도 고치지 않은 뒤에야 초달을 가해서 그 마음으로 하여금 주인의 초달이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요, 미워해서가 아님을 알게 하여야 하니, 그런 뒤에야 마음을 고치고 얼굴을 바꾸게 될 것이다.

 

治家當以禮法으로 辨別內外하여 雖婢僕이라도 男女不可混處男僕非有所使令이면 則不可輒入內하고 女僕皆當使有定夫하여 不可使淫亂이니 若淫亂不止者則當黜使別居하여 毋令汚穢家風이니라 婢僕當令和睦이니 若有鬪鬩喧噪者어든 則當痛加禁制니라

집안을 다스림에 마땅히 예법으로써 내외를 분별하여 비록 비복이라도 남자와 여자가 뒤섞여 거처해서는 안 된다. 남자 종은 시키는 바가 있지 않으면 함부로 안에 들어가지 않게 하고, 여자 종은 모두 마땅히 정한 남편이 있게 하여 음란하게 하지 말아야 하니, 만일 음란한 짓을 그치지 않는 자는 마땅히 내 쫓아 따로 거처하게 해서 가풍을 더럽히지 않게 해야 한다. 비복을 마땅히 화목하게 해야 할 것이니, 만일 싸우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자가 있거든 마땅히 금지와 제재를 통렬히 가해야 한다.

 

君子憂道不當憂貧이니 但家貧하여 無以資生이면 則雖當思救窮之策이나 亦只可免飢寒而已不可存居積豊足之念이며 且不可以世間鄙事留滯于心胸之間이니라 古之隱者 有織屨而食者, 樵漁而活者, ()杖而耘者하니 此等人富貴不能動其心이라 能安於此하니 若有較利害計豊約之念이면 則豈不爲心術之害哉學者要須以輕富貴守貧賤爲心이니라

군자는 도를 근심할 것이요,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집이 가난하여 의뢰하여 살아갈 수가 없으면 비록 마땅히 빈궁에서 벗어날 대책을 생각하여야 하나 또한 다만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뿐이요, 많이 쌓아두고 풍족하게 살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며, 또 세간의 비루한 일을 마음속에 머물러 두어서는 안 된다. 옛날의 은자 중에는 신을 삼아 팔아서 먹고 산 자와 땔나무를 하거나 고기를 잡아서 생활한 자와 지팡이를 꽂아 놓고 김을 매며 산 자가 있었으니, 이런 사람들은 부귀가 그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이에 편안할 수 있었던 것이니, 만일 이해를 비교하고 풍성함과 가난함을 헤아리는 생각이 있다면 어찌 마음을 수양하는데 해롭지 않겠는가.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부귀를 가벼이 여기고 빈천을 지키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居家貧窶則必爲貧窶所困하여 失其所守者多矣學者 正當於此處用功이니 古人曰 窮視其所不爲하며 貧視其所不取라하고 孔子曰 小人窮斯濫矣라하시니 若動於貧窶하여 而不能行義則焉用學問爲哉리오

집에서 생활할 때에 가난하면 반드시 가난에 찌들려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를 잃는 자가 많다. 배우는 자는 바로 이런 곳에 힘을 써야 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곤궁할 때에는 그가 하지 않는 바를 살펴보고, 가난할 때에는 그가 취하지 않는 바를 살펴본다.”하였고,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소인은 곤궁하면 넘친다.”하셨으니, 만일 가난에 마음이 동요되어 올바른 도리를 행할 수 없다면 학문을 어디에 쓰겠는가?

 

凡辭受取與之際必精思義與非義하여 義則取之하고 不義則不取하여 不可毫髮放過니라 若朋友則有通財之義하니 所遺皆當受로되 但我非乏而遺以米布則不可受也니라 其他相識者則只受其有名之饋하고 而無名則不可受也所謂有名者賻喪, 贐行, 助婚禮, 周飢乏之類 是也

무릇 사양하고 받으며 취하고 주는 즈음에는 반드시 의로운가 의롭지 않은가를 자세히 생각해서 의로우면 취하고 의롭지 않으면 취하지 아니하여, 털끝만큼이라도 그대로 지나쳐버리지 말아야 한다. 친구로 말하면 재물을 통용해서 쓰는 의리가 있으니, 주는 바를 마땅히 받아야 하되, 다만 내가 궁핍하지 않은데도 쌀이나 삼베를 주면 받아서는 안 된다. 기타 서로 알고 지내는 자는, 다만 명분이 있는 선물을 받을 것이요, 명분이 없는 것은 받지 말아야 한다. 이른바 명분이 있다는 것은 상사 때의 부의나, 여행 때의 노자나, 혼인 때의 부조나, 굶주림을 구원해 주는 것 등이 이것이다.

 

若是大段惡人心所鄙惡()則其饋雖有名이나 受之心必不安이리니 心不安이면 則不可抑而受之也니라 孟子曰 無爲其所不爲하며 無欲其所不欲이라하시니 此是行義之法也니라

만일 대단한 악인으로서 마음에 더럽고 나쁘게 여기는 사람이면, 그 선물이 비록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받으면 마음이 반드시 편안하지 못할 것이니,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면 그 마음을 억누르고 받아서는 안 된다.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말고, 마땅히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을 바라지 말라.”고 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의를 행하는 법이다.

 

中朝則列邑之宰 有私俸이라 推其餘하여 可以周人之急矣어니와 我國則守令別無私俸하고 只以公穀으로 應日用之需어늘 而若私與他人이면 則不論多少하고 皆有罪譴하여 甚則至於犯贓하고 受者亦然하니 爲士而受守令之饋則是乃犯禁也

중국에는 여러 읍의 수령들에게 사사로운 녹봉이 있다. 그러므로 그 중에서 남는 것을 미루어 남의 위급함을 도와줄 수 있거니와, 우리나라는 수령들에게 별도로 받는 사사로운 녹봉이 없고 다만 공곡으로써 일상의 수요를 충당하고 있는데, 만약 사사로이 남에게 준다면 많고 적음을 따질 것 없이 다 죄에 걸려, 심하면 장죄를 범하는 데에 이르고, 받은 사람도 또한 그러하니, 선비가 되어 수령의 선물을 받으면 이는 바로 법금을 범하는 것이다.

 

古者入國而問禁하니 則居其國者 豈可犯禁乎守令之饋大抵難受하니 若私與官庫之穀이면 則不論人之親疏, 名之有無, 物之多寡하고 皆不可受也니라[若分厚邑宰 以衙中私財周急則或可受也]

옛날에는 다른 나라에 들어갈 때에도 그 나라에서 금하는 것을 물었으니, 그 나라에 사는 자가 어찌 법금을 범할 수 있겠는가? 수령의 선물은 대개 받기가 어려우니, 만일 국고의 곡식을 사사로이 준다면 관계의 친소와 명분의 유무와 재물의 다과를 막론하고 모두 받지 말아야 한다.(만일 친분이 두터운 수령이 관아에 있는 사재로 도와준다면 받을 수도 있다.)

 

 

接人章 第九

 

凡接人當務和敬이니 年長以倍어든 則父事之하고 十年以長이어든 則兄事之하고 五年以長이어든 亦稍加敬이니 最不可恃學自高, 尙氣陵人也니라

무릇 사람을 대할 때에는 마땅히 온화하고 공경함에 힘써야 하니, 나보다 나이가 갑절이 많으면 아버지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10년이 많으면 형을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5년이 많으면 또한 약간 공경을 더할 것이니, 가장 해서는 안 될 것은 배운 것을 믿고 스스로 고상한 체하며 기운을 숭상하여 남을 업신여기는 일이다.

 

擇友必取好學, 好善, 方嚴, 直諒之人하여 與之同處하여 虛受規戒하여 以攻吾闕하고 若其怠惰, 好嬉, 柔佞不直者則不可交也니라

벗을 가리되 반드시 학문을 좋아하고 선을 좋아하며 바르고 엄하며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을 취하여, 그와 더불어 함께 거처하여 겸허한 마음으로 바로 잡아주고 경계해 줌을 받아들여 나의 결점을 다스릴 것이요, 만일 게으르고 놀기를 좋아하며 아첨을 잘하고 말재주만 뛰어나고 바르지 못한 자일 경우는 사귀어서는 안 된다.

 

鄕人之善者則必須親近通情하고 而鄕人之不善者亦不可惡言揚其陋行이요 但待之泛然하여 不相往來若前日相知者則相見只敍寒暄하고 不交他語則自當漸疎하여 亦不至於怨怒矣리라

고을 사람 중에 선한 자는 반드시 모름지기 가까이 지내면서 정을 통하고, 고을 사람 중에 선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역시 나쁜 말로 그의 더러운 행실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다만 대하기를 범연하게 하여 서로 왕래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전날에 서로 알고 지내던 자라면 서로 만났을 적에 다만 근황이나 묻고 다른 말을 주고받지 않는다면, 스스로 마땅히 점점 소원해져서 또한 원망하고 노여워함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同聲相應하며 同氣相求하나니 若我志於學問이면 則我必求學問之士學問之士 亦必求我矣리라 彼名爲學問而門庭多雜客하여 喧囂度日者必其所樂() 不在學問故也니라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찾게 되니, 만일 내가 학문에 뜻을 두고 있다면 나는 반드시 학문하는 선비를 찾을 것이요, 학문하는 선비도 또한 반드시 나를 찾을 것이다. 저 말로는 학문을 한다 하나 문정에 잡객이 많아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세월을 보내는 자는 반드시 그가 좋아하는 바가 학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凡拜揖之禮不可預定이니 大抵父之執友則當拜洞內年長十五歲以上者當拜爵階堂上而長於我十年以上者當拜鄕人年長二十歲以上者當拜로되 而其間高下曲折在隨時節中이요 亦不必拘於此例但常以自卑尊人底意思存諸胸中可也니라 詩曰 溫溫恭人惟德之基라하니라

무릇 절하고 읍하는 예는 미리 결정할 수 없으니, 대개 아버지의 집우이면 마땅히 절을 해야 하고, 동네에서 나이가 15세 이상인 자에게는 마땅히 절을 해야 하고, 벼슬의 품계가 당상이고 나보다 10세 연상인 자에게는 마땅히 절을 해야 하고, 마을 사람으로서 나이가 20세 이상인 자에게는 마땅히 절하되, 그 사이에 높이고 낮추는 자잘한 예절은 때에 따라 알맞게 할 것이요, 또한 반드시 이 예에 구애될 것은 없으니, 다만 항상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인다는 뜻을 가슴속에 두는 것이 옳다. 시경에 이르기를 온순하고 공손한 사람이 덕의 근본이다.”고 하였다.

 

人有毁謗我者어든 則必反而自省이니 若我實有可毁之行이면 則自責內訟하여 不憚改過하고 若我過甚微而增衍附益이면 則彼言雖過而我實有受謗之苗脈하니 亦當剗鋤前愆하여 不留毫末하고 若我本無過而捏造虛言이면 則此不過妄人而已與妄人으로 何足計較虛實哉리오

사람들 중에 나를 헐뜯고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돌이켜 스스로 살펴야 하니, 만약 나에게 실제로 헐뜯음을 당할 만한 행실이 있었으면 스스로 꾸짖고 안으로 따져서 허물을 고치기를 꺼리지 말 것이요, 만약 나의 잘못이 매우 미미한데 더 보태어 늘렸다면 저의 말이 비록 지나치나 나에게 실제로 헐뜯음을 받을 만한 싹과 맥이 있는 것이니, 또한 마땅히 전의 잘못을 제거하여 털끝만큼도 남겨 두지 말 것이요, 만약 나에게 본래 허물이 없는데 거짓말을 날조했다면, 이는 망령된 사람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망령된 사람과 어찌 거짓과 진실을 따질 것이 있겠는가?

 

且彼之虛謗如風之過耳, 雲之過空하니 於我何與哉夫如是則毁謗之來有則改之하고 無則加勉하여 莫非有益於我也리라 若聞過自辨하여 曉曉然不置하여 必欲置身於無過之地則其過愈甚而取謗益重矣리라 昔者或問止謗之道한대 文中子曰 莫如自修니라 請益한대 曰 無辨이라하니 此言可爲學者之法이니라

또 저의 헛된 비방은 바람이 귓가를 스쳐 지나가고, 구름이 허공을 지나는 것과 같으니,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무릇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훼방이 올 때에 허물이 있으면 고치고 없으면 더욱 힘쓰게 되어 나에게 유익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만약 허물을 듣고 스스로 변명하여 시끄럽게 떠들면서 그대로 버려두지 아니하여, 반드시 자신을 잘못이 없는 처지에 놓으려고 한다면, 그 허물이 더욱 깊어져 훼방을 받음이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훼방을 그치게 하는 방법을 묻자, 문중자가 말하기를 스스로 행실을 닦는 것만 못하다.”하였다. 다시 더 말해주기를 청하자, 대답하기를, “변명하지 말라.”하였으니, 이 말이 배우는 자들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

 

凡侍先生長者當質問義理難曉處하여 以明其學하고 侍鄕黨長老當小心恭謹하여 不放言語하여 有問則敬對以實하고 與朋友處當以道義講磨하여 只談文字義理而已世俗鄙俚之說及時政得失, 守令賢否, 他人過惡一切不可掛口하고 與鄕人處雖隨問應答이나 而終不可發鄙褻之言하며 雖莊栗自持而切不可存矜高之色이요 惟當以善言誘掖하여 必欲引而向學하고 與幼者處當諄諄言孝悌忠信하여 使發善心이니 若此不已則鄕俗漸可變也리라

무릇 선생과 어른을 모실 적에는 마땅히 의리 중에서 깨우치기 어려운 부분을 질문하여 그 배움을 분명히 해야 하고, 고을의 어르신을 모실 적에는 마땅히 조심하고 공손하며 삼가서 말을 함부로 하지 아니하여, 물으심이 있으면 공경히 사실대로 대답하여야 하고, 붕우와 함께 거처할 적에는 마땅히 도의를 강마하여, 다만 문자와 의리를 말할 뿐이요, 세속의 더러운 말과 당시 정치의 잘잘못과 수령의 어질고 어질지 못함과 타인의 허물과 악행을 일절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하고, 고을 사람과 함께 거처할 적에는 비록 물음에 따라 응답하더라도 끝내 더러운 말을 해서는 아니 되며, 비록 엄숙한 몸가짐을 스스로 지키더라도 절대로 자랑하고 고상한 체하는 기색을 지니지 말고, 오직 마땅히 좋은 말로 타이르고 이끌어서, 반드시 그를 인도하여 학문으로 향하게 하고자 하며, 어린아이와 함께 거처할 적에는 마땅히 간절하게 효제충신의 도리를 말해주어 그들로 하여금 착한 마음을 일으키게 해야 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여 마지않는다면 고을의 풍속을 점점 변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常以溫恭慈愛, 惠人濟物爲心이니 若其侵人害物之事則一毫不可留於心曲이니라 凡人欲利於己인댄 必至侵害人物이라 學者先絶利心然後可以學仁矣리라

항상 온화하고 공손하고 자애로우며 남에게 은혜를 베풀고 일을 이루는 것을 마음으로 삼아야 할 것이니, 남을 침노하고 일을 해치는 일일 경우에는 털끝만큼이라도 마음 한 구석에 두어서는 안 된다. 무릇 사람들이 자기에게 이롭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남을 침해하는 데 이른다. 이 때문에 배우는 자는 먼저 <자기에게> 이롭게 하려는 마음을 끊어버린 뒤에야 인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居鄕之士非公事禮見及不得已之故則不可出入官府邑宰雖至親이라도 亦不可數數(삭삭)往見이어든 況非親舊乎若非義干請則當一切勿爲也니라

고을에 머물고 있는 선비는 공사나 예의석상에서 만나보는 것, 및 부득이한 연고가 아니면 관청에 드나들어서는 아니 되니, 고을 원이 비록 지극히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또한 자주 찾아가 만나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친구가 아님에랴. 도리에 맞지 않는 청탁 같은 것은 마땅히 일절 하지 말아야 한다.

 

 

處世章 第十

 

古之學者 未嘗求仕로되 學成則爲上者 擧而用之하니 蓋仕者爲人이요 非爲己也今世則不然하여 以科擧取人하여 雖有通天之學, 絶人之行이라도 非科擧無由進於行道之位父敎其子하고 兄勉其弟하여 科擧之外更無他術하니 士習之偸 職此之由第今爲士者 多爲父母之望, 門戶之計하여 不免做科業이나 亦當利其器, 俟其時하여 得失付之天命이요 不可貪躁熱中하여 以喪其志也니라

옛날의 학자들은 일찍이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되 학문이 이루어지면 윗사람이 된 자가 천거해서 등용하였으니, 벼슬하는 것은 남을 위하는 것이요,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세상은 그렇지 아니하여, 과거로써 사람을 뽑아, 비록 하늘의 이치를 통달한 학문과 남보다 빼어난 행실이 있더라도 과거가 아니면 치도를 실천할 수 있는 지위에 나아갈 길이 없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들에게 <과거공부를> 시키고 형은 아우에게 <과거공부>를 권하여, 과거 이외에는 다시 다른 학술이 없으니, 선비들의 습관이 각박해지는 것은 오로지 이에 연유한다. 다만 요즘 선비가 된 자들은 대부분 부모의 바램과 가문의 계책을 위하여 과거공부를 함을 피할 수 없으나, 또한 마땅히 그 기구를 갈고 닦으며 그 때를 기다려, 급제와 낙방을 천명에 맡길 것이요, 벼슬을 탐하고 조급해 하고 마음을 끓어오르게 해서 자신의 뜻을 손상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人言科業爲累하여 不能學問이라하니 此亦推託之言이요 非出於誠心也古人養親有躬耕者하며 有行傭者하며 有負米者하니 夫躬耕, 行傭, 負米之時勤苦甚矣何暇讀書乎

사람들이 말하기를 과거공부에 얽매여서 학문을 할 수 없다.”고 하니 이 또한 미루어 핑계 대는 말이요 성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옛날 사람은 부모를 봉양함에 몸소 밭을 갈았던 이도 있었으며,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품팔이한 이도 있었으며, 쌀가마니 지는 일을 한 이도 있었으니, 몸소 밭 갈고, 다니며 품팔이하고, 쌀가마니를 질 때에 근고가 심하였을 것이니, 어느 겨를에 글을 읽었겠는가.

 

惟其爲親任勞하여 旣修子職하고 而餘力學文이로되 亦可進德이어든 今日之爲士者不見爲親任勞如古人者하고 只是科業一事 是親情之所欲이라하여 今旣不免做功하니 則科業雖與理學不同이나 亦是坐而讀書作文이라 其便於躬耕, 行傭, 負米 不翅百倍況有餘力하여 可讀性理之書哉

오직 그 부모를 위해 수고로움을 자임하여 이미 자식의 직분을 닦고 남은 여가에 글을 배웠는데도, 또한 덕에 나아갈 수가 있었거든, 요즈음 선비된 자들은 어버이를 위하여 수고로움을 맡기를 옛날 사람과 같이 하는 자를 보지 못하겠고, 다만 과거공부 한 가지 일이 곧 어버이의 마음이 바라는 것이라 하여 이제 이미 과거공부함을 면하지 못하니, 그렇다면 과거공부가 비록 이학과는 같지 않으나 역시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짓는 것이어서 몸소 밭 갈고, 다니며 품팔이하고, 쌀가마니를 지는 일보다 편함이 백 배일 뿐만이 아니다. 하물며 남은 여가에 성리에 관한 책을 읽을 수 있음에랴.

 

只是做科業者例爲得失所動하여 心常躁競하여 反不若勞力之不害心術이라 先賢曰 不患妨功이요 惟患奪志라하니 若能爲其事而不喪其守則科業理學可以竝行不悖矣리라

다만 과거공부를 하는 자들은 으레 과거에 급제하느냐 낙방하느냐에 동요되어 마음이 항상 조급하고 다투어, 도리어 수고롭게 일함이 마음을 수양하는 공부를 해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그러므로 선현의 말씀에 “<과거공부가> 공부에 방해될까를 걱정하지 말고, 오로지 뜻을 빼앗길까를 걱정해야 한다.”고 하셨으니, 만약 과거 공부하는 일을 하면서도 지켜야 할 것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과거공부와 이학공부를 병행해도 서로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今人名爲做擧業而實不著功하고 名爲做理學而實不下手하여 若責以科業이면 則曰 我志於理學하여 不能屑屑於此라하고 若責以理學이면 則曰 我爲科業所累하여 不能用功於實地라하여 如是兩占便宜하여 悠悠度日이라가 卒至於科業理學兩無所成하니 老大之後雖悔인들 何追리오 嗚呼可不戒哉

요즘 사람들은 말로는 과거공부를 한다 하나 실제로는 과거공부를 하지 않고, 말로는 이학공부를 한다 하나 실제로는 착수하지 아니하여, 만약 과거공부로써 질책하면 말하기를 나는 이학에 뜻을 두고 있어서 이런 데에 연연해 할 수 없다.”고 하며, 만약 이학공부로써 질책하면 말하기를 나는 과거공부에 얽매여서 실지에 힘을 쓸 수가 없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와 같이 양쪽으로 편리한 처지를 차지하여 하는 일없이 하루하루 세월만 보내다가 마침내는 과거공부와 이학공부 두 가지 다 이루는 바가 없음에 이르니, 늙은 뒤에 비록 뉘우친들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人於未仕時惟仕是急하고 旣仕後又恐失之하나니 如是汨沒하여 喪其本心者 多矣豈不可懼哉位高者主於行道하니 道不可行이면 則可以退矣若家貧하여 未免祿仕則須辭內就外하고 辭尊居卑하여 以免飢寒而已雖曰祿仕亦當廉勤奉公하여 盡其職務不可曠官而餔啜也니라

사람들이 아직 벼슬하지 않을 때에는 오직 벼슬하는 것을 급무로 여기고, 이미 벼슬에 오른 뒤에는 또 벼슬을 잃을까 걱정하니, 이와 같이 골몰하여 그 본심을 잃는 자가 많다. 어찌 두려워 할 만하지 않겠는가. 지위가 높은 자는 치도를 베푸는 것을 중심으로 삼아야 하니, 치도가 베풀어질 수 없으면 물러나야 할 것이요, 만일 집이 가난하여 녹봉을 받기 위한 벼슬을 면치 못한다면, 모름지기 내직을 사양하고 외직으로 나가며,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낮은 자리에 머물러서 굶주림과 추위를 면할 뿐이다. 비록 녹봉을 받기 위한 벼슬이라고 하나 또한 마땅히 청렴하고 부지런히 공무를 받들어 행하여 그 직무를 다해야 할 것이요, 직분을 버려두고 먹고 마시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