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31일 월요일

2009 북스타트 전국대회

제천북스타트와 제천기적의도서관과 북스타트코리아가 ‘2009 북스타트 전국대회’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한국의 북스타트는 올해로 만 6년이 되었습니다. 전국에서 12번째로 북스타트를 도입한 제천은 5년여 동안 아가들을 그림책으로 함께 키우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25개의 ‘북스타트 공동육아 동아리’는 제천의 자랑입니다.

북스타트의 사회적 육아 지원은 제천을 아기키우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었고 아기를 안고 도서관에 들어서는 아빠, 책을 읽어주면 밝은 미소로 응답하는 아가의 얼굴이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참여하는 지자체도 날로 늘고 활동가들의 활동내용도 점점 깊어지는 북스타트 운동, 전국의 활동가와 제천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서로 힘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북스타트 전국대회’는 전국에서 활동 중인 삼천여 명의 북스타트 활동가와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지자체의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북스타트 활동 자료와 정보를 나누고 서로 힘내도록 독려하는 한 바탕의 축제입니다.

북스타트 도입 절차에서부터 운영 방법, 자원활동가 활동 사례, 북스타트 책놀이 방법, 간담회, 세미나 등을 통해 전국의 북스타트 활동 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서울, 강원도, 경상도, 충청도의 4개 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책놀이 시연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이튿날 아침 열리는 ‘이야기 마당’에서는 전국적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다문화 북스타트’와 ‘북스타트 연령 확장(북스타트 플러스, 북스타트 보물상자, 초등학생 북스타트)’을 안건으로 열띤 논의를 벌입니다.

일본 북스타트 대표인 시라이 테츠 씨는 직접 내한하여 일본의 북스타트 활동 내용을 발표해 주기로 했고, 북스타트를 처음 시작한 영국에서는 북스타트 창안자인 웬디 쿨링 여사의 축하와 격려의 동영상을 보내와서 개막식 때 함께 볼 예정입니다.

‘어울림’을 주제로, ‘호랑이’를 소재로 열리는 이번 ‘2009 북스타트 전국대회’에서 참가자들은 호랑이 분장도 하고 호랑이 노래도 부르며 격의 없이 어울릴 것입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보물찾기’, ‘호랑이 페이스 페인팅’, ‘그림책방 놀이’도 있고 엄마들을 위해 다양한 그림책 신간 전시회도 열립니다.

판소리꾼 남상일 씨가 진행하는 개막행사에서는 제천기적의도서관의 ‘호랑이 담뱃대’ 자원활동가들이 전국의 ‘아가 어르는 노래’를 가르쳐 주고, 특히 제주도의 ‘아가 어르는 노래’는 제주 북스타트 자원활동가들이 직접 보여줍니다. 이튿날 폐막식에서는 대구의 북스타트 자원활동 할머니들이 준비한 공연도 볼 수 있습니다.

제천시에서는 참가자들을 위해 도서관 마당에 커다란 가마솥을 걸고 소머리국밥과 육개장을 끓여 점심식사를 대접할 계획입니다.

아가, 어린이, 청소년, 어른, 북스타트 후원자와 자원활동가, 도서관, 보건소, 기타 공공기관, 지자체, 작가, 출판사, 기업, 대학 등 북스타트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부디 오셔서, 제천 아가들의 밝은 성장을 응원하고 전국의 자원활동가들과 운영자들에게 힘을 보태어 주십시오.
청풍명월 가을 길목에서 뵙겠습니다.


제천북스타트, 제천기적의도서관, 북스타트코리아


책읽는사회문화재단(bookreader.or.kr)/북스타트코리아(bookstart.org)
(02-3675-8783~4/read3@chol.com)

2009년 8월 30일 일요일

갑갑증

네이버가 일본에 진출했다는 이야기는 꽤 오래 전에 들었으나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나라마다 독특한 검색의 '습관'이 있지만, 지금 한국의 '독특한 인터넷 환경'이 세계적으로 어떤 위상 속에 있는지 잘 파악되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것은 '갑갑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갑갑증'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비스 업체의 문제이기도 하고, 정부의 갖가지 규제 때문이기도 하다.(그런데 그렇게도 규제 완화를 외치는 정부가 왜 인터넷에서만은 예외가 되는 것일까?)

 

오늘 강인규--<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는 책의 저자인지 오마이뉴스의 기사만으로는 분명치 않다.<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의 책날개에는 저자 강인규가 위스콘신대학의 강사인 미디어 학자다--의 짤막한 글, 트위터 '2등'으로 밀어낸 한국... 뿌듯해?라는 글을 읽었다. 이 글은 한겨레신문의 기사, 트위터도 당한 고추장 마케팅이라는 기사에 대한 문제제기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사실 한겨레의 기사는 흥미로운 기사이기는 하지만, 좋은 기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기사다. 왠지 '민족주의적'이다. 그리고 이 한겨레의 기사는 한국의 '독특한 인터넷 환경'이 지닌 문제점을 거론하지 않고 있다. 이 점을 강인규 씨는 지적하고 있다. 최근 국정원이 이메일뿐만 아니라 메신저까지 감청한다고 하니, 그 독특함에 기이한 독특함까지 더욱 더해질 거라는 생각뿐이다. 외국 서비스의 진입만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 진출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한국적 환경'은 어떤 환경인가라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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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표준 기술, 독과점과 담합에 의한 시장왜곡, 표현의 엄격한 규제 등 한국의 독특한 환경에 '최적화된' 서비스는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한국과 비슷한 환경을 가진 '형제국가' 한두 군데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제는 '한국적 환경'이 외국 서비스의 진입만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 진출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다.

 

네이버의 일본시장 실패나 싸이월드의 미국과 유럽시장 실패에서도 보듯, 한국의 인터넷 서비스가 국제적 성공을 거둔 사례는 전무하다. 앞으로 전망은 더욱 어둡다. 게다가 한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던 하드웨어 분야는 급속도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예컨대 휴대폰 산업은 애플이나 구글처럼 소프트웨어 기반업체들의 지배권 밑으로 편입되고 있다. 이제 제대로 된 인터넷 기반 플랫폼을 갖추지 못한 하드웨어 기업은 소프트웨어 업체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세계 최강의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 주식이 올 들어 16퍼센트 하락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삼성과 엘지 등의 하드웨어 업체들이 긴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심비안'이라는 자체 플랫폼을 가진 노키아는 한국의 어떤 업체보다 나은 상황이다.) '토종'도 좋고, '삼성 만세'도 좋지만, 한국이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지 객관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9년 8월 29일 토요일

월계축전 독서특강

2009년 8월 29일 토요일 오후2시. 목동에 있는 양정고등학교를 찾아갔습니다. '월계축전 독서특강' 때문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1982년에 졸업한 이후, 처음으로 모교를 찾아갔으니 27년만의 일이었습니다. 만리동에 있던 모교가 목동으로 이사간 것이 1988년의 일인데, 이사 간 학교를 찾은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이런 인연이 생긴 것은 올초에 정독도서관에서 서울 지역의 학교도서관 사서교사 선생님들의 연수 시간에 제가 한 시간의 강의를 맡게 된 것이 계기였습니다. 강의 시간에 저의 학창시절이었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의 학교도서관의 모습을 언급했는데, 강의가 끝난 뒤 어느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 선생님이 바로 양정고등학교의 학교도서관을 맡고 계신 송봉익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여름방학 때 도서반 학생들이 대학로에 있는 저의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독서신문'에 게재할 인터뷰 기사를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1학년 학생인 김세현 등 3명의 학생이 찾아와서 1시간 여의 시간 동안 준비해온 질문을 했습니다. 이번 월계축전 때 만들 독서신문의 특집이 양정학교를 졸업한 선배 시인과의 만남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조정권, 이상규, 조건청 시인 등과 함께 황송하게도 저를 소개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8월 29일 월계축전 때 특강의 강사로 초청되었습니다.

 

어느덧 한 세대가 지나갔음을 느꼈습니다. 저에게 잊혀지지 않는 월계축전의 장면들이 정말 말들이 달려가듯 지나갔습니다. 그때는 1980년, 5월항쟁이 있었던 해였습니다. 친구 녀석과 문집을 만들면서 우리는 문집의 제목을 '조기(弔旗)'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막상 축전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배포할 즈음에 선생님들께서 이런 제목의 문집은 곤란하다고 하시어 급하게 표지를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 기억들은 아주 큰 역사에서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지만, 개인의 기억 속에는 아주 커다랗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전날 강화 석모도에 누였던 몸을 일으켜 아침 일찍 길을 달려 모교를 찾아갔습니다.

 

도서관 앞에는 학생들이 '독서신문'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낡은 서가와 책들 사이에 서서 '책읽기와 꿈'이라고 학생들이 던져준 제목으로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꿈은 질문하는 것이다." 질문의 힘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내용의 말들이었습니다.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질문이 나를 밀어간다. 그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송봉익 선생님께서 서고에서 꺼내온 교지 42호에 실렸던 시, 고등학교 2학년 때 발표했던 시 '방황'과 첫 시집 <아름다운 지옥>의 첫번째 작품인 '진정 사랑할 수 있도록' 그리고 두번째 시집 <한 그루 나무의 시>에서 '갈매나무'를 낭송해주었습니다.

 

마침 진명여고 도서관의 사서교사 선생님께서 이끌고 온 진명여고 도서관 학생들도 자리를 함께 했는데, 강의가 끝난 뒤 일일이 한 마디씩 싸인을 해달라고 해서 황송스러웠습니다.

 

강의 시간 전에 문예반을 이끌고 있다는 강희수 선생은 본인이 문예반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또한 강의 시간 내내 함께 자리를 한 선생님께서는 국어를 담당하고 있는데, 학생들에게 잊지 못할 시간이 되었을 거라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도서관 바로 옆에 위치한 학교의 역사자료실에 들려 손기정 선배의 모습이나 김교신, 윤오영, 안종원, 장욱진 선생 등의 자취를 잠시나마 살펴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축전 전체를 관장하느라 바쁘실 터인데 김창동 교장 선생님께서는 일부러 시간을 내주시어 잠시 말씀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57회 졸업생이라 하셨습니다. 기회가 되고 예산이 마련되면 번듯한 학교도서관을 새로 짓고 싶다는 포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전주여고 학생들과 함께 진행한 독서토론 모임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김창동 교장 선생님은 2007년에 부임해오셨는데, 부임해 오니 문예반이나 도서관 등이 전혀 활동하지 않고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대학에 많은 학생들이 진학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런 점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그런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독서토론이나 문예반, 도서관의 부활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석모도

금요일 밤, 석모도에서 사무처 간사님들과 엠티. 토요일 아침에 석모를 나오며 몇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손이나 씻자!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식사 시간이나 모임에서 자연스레 화제로 오르는 것이 신종플루에 대한 이야기다. 신학기를 맞아 학교는 하나둘씩 개학을 하는데, 우리 아이한테 신종플루가 감염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지 않을 부모가 없을 듯싶다.

 

오늘 뉴스를 보니, "신종플루 사망자 최대 2만명 발생"이라는 기사도 있고 "신종플루 대유행 땐 800만 감염"이라는 기사도 있다. 이런 내용이다. "27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최영희(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신종플루 유행규모를 입원환자 10만∼15만명, 사망자 1만∼2만명으로 추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항바이러스제와 백신 등을 통해 적극적인 방역 대책을 펼쳤을 때의 예상 수치이며, 방역 대책이 없는 경우에는 전체 인구의 20%가 감염되고 입원환자 20만명, 사망자 2만∼4만명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좀 심한 것이 아닌가 싶어 '최영희 의원실'에 들어가 보니 이런 내용도 있다. "지난 5월21일 신종플루 관련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 결정된 국가 재난단계 상향조정(주의→경계)시 개최할 예정이었던 중앙안전관리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와 중앙인플루엔자정부합동대책본부(본부장 행정안전부장관)가 현재까지도 가동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정부가 신종플루 지역사회 감염 확산에 대해 안이한 대응을 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나같은 문외한이 보기에도 뭔가 대응이 신통치 않다. 지난 봄만 해도 사람들이 "김치 때문에 신종플루가 한국에서는 맹위를 떨치지 못할 거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기도 했는데, 어느새 대유행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김치가 신종플루의 천적?… 국내 환자 29명중 한국인 6명뿐"이라는 기사는 역시 조선일보 식의 기사였던 것인가? 신종플루와 김치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동시에 집어넣으니 이와 비슷한 기사가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어느 블로그의 "신종플루 걸려서 죽고싶지 않다구!"라는 글을 읽어보니, 신종풀루를 예방하는 길은 손씻기만한 것이 없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는 손이나 씻을 수밖에 없는 것인가. 손이나 씻자!

 

 

즐거운 상상

어느 사람이 매년 1천만원씩 저축을 한다.(금리는 전혀 계산하지 않기로 한다.) 10년이면 1억원이 모이고 100년이면 10억원, 1천년이면 100억원, 1만년이면 천억원이 모인다. 그렇게 1조원을 모으려면 10만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 10조원을 모으려면 백만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 20조원을 모으려면 2백만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 20조원,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다.

 

만약 그 '어느 사람'이 요즘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88만원 세대'라서 매년 1백만원밖에 저축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20조원을 모으려면 2천만년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람들이 백년도 살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2백만년이나 2천만년이나 실감이 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불과 며칠 사이에 학교도서관에 대한 토론에 두 번이나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내 머리 속에는 4대강 사업에 소요된다는 예산 22조원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전국 약 1만개 학교에 약 2천만원 정도의 급여를 주어야 하는 사서를 뽑아서 배치한다면, 2천억원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20조원이면 약 1만개의 학교에 사서를 100년 동안이나 고용할 수 있는 재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림출처: blog.daum.net

 

복지 부문의 전문연구자인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는 얼마 전에 '22조원의 즐거운 상상'이라는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출산 사회에서 육아부담을 줄이기 위해 거론되는 무상보육. 6세미만의 아동들을 전액 무료로 보육시설에 다닐 수 있도록 하자면 6조원 정도가 필요하다.

--이미 1930년대부터 서구국가가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아동의 사회적 양육 개념을 뿌리 내리게 한 아동수당 제도, OECD 주요국가에서 우리나라만이 외면하고 있는 이 제도의 도입을 위해 필요한 재원은, 12세미만의 아동 모두에게 월 10만원씩 지급한다고 할 때 8조원이 필요하다.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대학의 무상교육을 위해서 필요한 재원은 10조원이다.

--비수급빈곤층을 위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확대. 보건복지가족부의 공식적인 발표에서도 인정한대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빈곤선 이하이지만 수급권자가 되지 못하는 이들, 나아가 그 120% 수준인 차상위계층이지만 여전히 생활이 어려운 빈곤한 계층임에도 국가로부터 안정적인 급여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모두 410만명. 이들을 위해 적절한 보완책을 행하고 이로써 이들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에 의미 있는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현재 기초생활보장 예산 만큼인 약 8조원이 있다면 된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어디 이뿐인가? 건강보험에서 보장해주는 의료비의 보장수준이 평균 65%에 불과하여, 무상의료까지는 아니지만 선진국 수준인 80%의 보장성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정부의 추가 예산소요분은 2조원 정도이다.

--한때 시민사회단체들이 경제위기 하에 괜찮은 사회적 일자리(descent social job)를 창출하여 공공적 성격의 서비스를 획기적으로 늘리자고 했을 때에도 100만원의 월급을 100만명에게 주기 위해 필요한 재원이 10조원이라 주장했었다.

하지만 이태수 교수는 이런 '즐거운 상상'의 끝이 공허하다고 말한다. 정말 공허하기만 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4대강 사업에 소요될 예산 22조원의 재원 마련과 이 예산 때문에 조정될 수밖에 없는 각종 SOC 사업예산의 축소 때문에 말들이 많다.

 

나는 이런 논란들이 반갑다.

 

한 개인 1천만원씩 저금해서 2백만년이나 모아야 할 돈이 20조원. 우리들 개인은 앞으로 2백만년 동안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상상해보아야 한다. 2백만년이라는 세월이면 인간의 진화에 큰 돌연변이가 생겨도 생길 시간이다. 나한테 그런 세월이 주어진다면 뭘 못하겠는가!

 

그렇듯, 우리 사회도 20조원의 재원이 있다면 과연 무엇을 해야 할지 정말 진지한 논의를 해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냥 결정된 사업이라고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정말 어디에 써야 할지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태수 교수는 "보편적인 복지국가의 확립이란 현실은 사실 그리 멀리 있지도 않은 것이 아닐까?"라고 묻고 있다. 정말 가깝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게 너무 멀다.

 

 

2009년 8월 25일 화요일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야만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한겨레신문이 자리를 만든 '한겨레 시민 포럼'의 제목이다. 도정일 교수의 강의. 2009년 8월 25일. 저녁시간. 프레스센터.

 

요약문 가운데 눈에 띄는 대목을 옮겨놓는다.

 

"인문학은 방기할 수 없는 네 개의 커다란 윤리적 책임 영역을 갖고 있다. 역사에 대한 책임, 사회에 대한 책임, 문명에 대한 책임, 인간에 대한 책임이 그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 이 질문은 사회에 대한 인문학의 윤리적 책임을 요약한다. 이것은 한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추구해야 할 목표에 관한 질문이며 꿈과 이상, 정신과 가치에 관한 질문이다.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이 없는 사회는 비전도, 목표도, 방향도 갖지 못한 위험한 '막장사회'이다.

 

"민주주의라고 해서 언제나, 반드시, 현명한 결정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인문학이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 체제가 인권을 존중하고 시민의 기본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인간의 품위와 창조성에 가해질 수 있는 훼손의 범위를 최대한 축소시키고 자율성과 자발성의 발휘 기회를 신장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민주주의는 정치체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회체제이고 문화체제이며 교육체제이다. 이 점에서 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여전히 먼 길이다."

 

"한국 교육의 인간 파괴적 비자율적 성격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가진 최선의 능력들이 야만의 체제에 더 잘, 더 많이 봉사하도록 훈련시키는 교육은 이미 그 자체로 야만이다."

 

"시민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시민사회를 지탱할 민주적 자질과 함께 공동체를 유지할 선의, 연대, 협력, 신뢰, 자립의 덕목이다."

 

 

2009년 8월 24일 월요일

비판적 읽기

<자유의 교육학>(Pedagogy of Freedom)이란 파울로 프레이리가 1997년 가을학기 동안 하버드교육대학원(HGSE)에서 가르치로 예정되어 있던 해방교육학에 관한 대학원 세미나를 위해 쓴 책이다.

 

 

프레이리는 이 책에서 교사 양성 과정에서 거의 배울 수 없는 근본적인 지식들을 강조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지식들이 세계에 대한 비판적 읽기의 발달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판적 읽기의 과정은 매우 역동적인 과정이다.

 

1997년 5월 2일 파울로 프레이리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자 하버드교육대학원은 해방교육학에 관한 세미나를 취소했다. 프레이리와 함께 하버드교육대학원에서 해방교육학 세미나를 조직했고, 프레이리의 사후에 이 책의 영어판을 만든 페트릭 클락(Patrick Clarke)에 따르면 "보수적인 조직적 경험주의로 그 모습을 드러낸 하버드교육대학원의 숨은 이데올로기가 그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하버드교육대학원은 프레이리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교육자이지만 그의 이론과 사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강좌가 일반강좌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페트릭 클락은 이렇게 묻는다. "'문해정치학과 정책(The Literacyu Politics and Policy)'이라고 이름 붙인 대학원 과정마저도 프레이리를 일절 언급하지 않고 가르치려 하는 문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런 일은 마치 영미문학 교수들이 셰익스피어를 건너뛰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그것은 많은 이들이 프레이리의 비판적 이론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증거일 거라고 페트릭 클락은 말한다. 우리가 문해(literacy)에 대해 이야기하고, 문해교육에 대해 논의할 때 프레이리를 배제하는 것은 '일종의 극단적 반지성주의'이고 사실상의 '사상 검열'이다.

 

나는 이 책 전체를 평가하거나 주된 논지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지는 않을 것이다. 독서에 대한 짧게 언급된 대목을 인용한다. 프레이리는 '비판적 읽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독자는 저자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독자는 "텍스트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통해 주체가 되는 과정을 경험"해야 한다. '비판적 읽기'를 통해서만이 "올바르게 생각하고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다.

 

독서를 무엇인가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보는 사람에게 비판적 읽기란 불가능하다. 책 스무 권을 읽었다고 으스대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스무 권씩이나 말이다! 독서는 텍스트와 일종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 관계 속에서 택스트는 나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그 텍스트에 몰두하면서 그 텍스트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통해 주체가 되는 과정을 경험한다. 독서를 하는 동안 그 책이 마치 오로지 저자만의 생산물이라는 듯, 그 텍스트가 지닌 내용의 포로가 되어선 안 된다. 이것은 올바르게 생각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효과가 적은 읽기의 전형이다.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사람대사람 옮김, <자유의 교육학>, 아침이슬 2007년, 31쪽

인간

낡은 책을 뒤적거리다가 만난 한 구절.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적 기초>(The Philosophical Foundations of Marxism)라는 책이다. 조지 타운 대학 루이 뒤프레(Louis Dupre')가 1966년에 쓴 것을 홍윤기가 번역한 것이다. 1982년 한밭 출판사에서 펴낸 것이다. 이 출판사의 발행인은 김진묵이었다.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인륜적 투쟁을 통해 스스로를 실현하는 동태적 존재가 인간이다"고 하는 헤겔의 낭만적 이념이 "자연과 사회에 변증법적으로 관계하는 사회경제적 존재가 인간이다"는 마르크스의 개념에 아주 자연스럽게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009년 8월 23일 일요일

사람을 살리는 도서관

어린이책시민연대가 펴내고 있는 <어린이책과 삶>(2009년 7, 8월호, 제10호>을 훑어보았다. 지난 6월 4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던 '학교도서관 정상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민주당 안민석 의원실, 학교도서관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에 대한 글을 읽었다. 어린이책시민연대 당진지회의 박은희 씨가 쓴 글, '도서관 정책토론회 다녀와서'라는 제목의 글이다.

 

박은희 씨는 "어이없고 기가 찼다"고 말하고 있다. 장소는 국회였고, 정책을 다루는 토론회였지만 교육정책을 입안하는 것과 관련된 사람은 한 명도 없는 요상한 토톤회가 되고 말았다고 탄식하고 있다. '인력'이라는 말의 문제점을 지적한 다음과 같은 대목은 거듭 곱씹어 보며 생각할 대목이다.

 

 

발제를 담당한 교수 한 분도 학교 도서관에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사서들을 배치해야 한다면서 '사서 교사들을 키웠으면 잘 써먹어야 한다. 효율적으로 자원을 이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대로 방치하는 건 국가적인 낭비다. 학교 도서관이 제대로 되려면 전문 인력을 잘 써먹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람을 기계부품처럼, 상품처럼 대하는 것 같아 발제를 듣는 내내 기분이 찜찜했다. 사람을 지나치게 가벼이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자원의 개념이 되어버린 것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요, 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일도 아니다. 하지만 도서관 운동의 핵심은 사람을 살리는 운동이라는 다른 발제자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학교도서관 정책에는 학교 도서관의 교육적 원리와 지향, 학교도서관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와 인간상이 기본 철학과 이념으로' 녹아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을 살리는 도서관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놓고 책만 빼곡이 들여 놓아도 의미가 없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결국 그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 정신이며, 돈이나 행정적 권력이나 매너리즘에 빠진 관료주의가 아닌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있는 인간 정신이어야' 하는 것이다. 도서관이 살아난다는 것은 아이들의 꿈꾸는 책읽기가 가능해진다는 것이고, 그러한 책읽기를 통해 더 살맛나는 세상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박은희, '도서관 정책토론회 다녀와서', <어린이책과 삶>(2009.7-8호, 통권 제10호, 39쪽에서.

2009년 8월 22일 토요일

책읽는도시 김해

문화평론가 정윤수가 2009년 8월 22일자 한겨레에 게재한 '정윤수의 문화 가로지르기'. '책읽는도시 김해'를 다루고 있다. 제목은 "책 읽는 김해, 그 기적의 축제".

 

 책읽는도시 김해의 정책에 대해 상세하게 다루었다. 정윤수는 오늘날 여러 도시들이 펼치고 있는 축제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우선 지적한다. "문제는 그 많은 축제들이 나름대로 그 지역의 특산물에 기반하였으되 차별화된 콘텐츠나 해당 지역의 역사문화와는 조금은 동떨어진 풍물장터로 방문자를 질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넉넉지 않은 예산을 빠듯하게 아껴 서야 하는 지자체가 '책 읽는 도시'를 표방하고 그에 걸맞은 내실을 착실하게 가꾸어왔다는 데 대하여 '깊은 연대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이 칼럼도 그런 연대의 표현이리라. 다만 기적의도서관이 오는 10월에 개관 예정이 하였는데, 내년 10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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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에 무려 1천여개의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이 계산대로라면 하루에도 서너 건씩 열리는 셈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선가 떠들썩한 마당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많은 축제들이 나름대로 그 지역의 특산물에 기반하였으되 차별화된 콘텐츠나 해당 지역의 역사문화와는 조금은 동떨어진 풍물장터로 방문자를 질리게 한다는 것이다. 차분한 산책이나 여유 있는 나들이를 생각한 방문자로서는 거리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이나 안내 방송 때문에 주차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경남 김해도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가락문화제와 단감축제를 비롯하여 대여섯 가지 축제가 열리는데, 다른 지역과는 다른 각별한 노력이 있어 이를 눈여겨보고자 한다. 김해가 내걸고 있는 강력한 대표 이미지는 ‘책 읽는 도시’다. 책 읽는 도시라, 그것도 넉넉지 않은 예산을 빠듯하게 아껴 써야 하는 지자체가 책 읽는 도시를 표방하고 그에 걸맞은 내실을 2년여 동안 착실하게 가꿔왔다는 것은, 오늘날 여러 도시들의 번잡하고 맥락 없는 ‘화장발’에 비하여 깊은 연대의 마음을 갖게 한다. 김해는 인구 5만명당 공공도서관 1곳 건립을 목표로 하여 2015년까지 작은 도서관 100곳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선 인프라를 확실히 세우고 더불어 콘텐츠를 풍부하게 채워나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오는 10월 개관 예정인 ‘기적의 도서관’을 비롯하여 권역별로 어린이 전문도서관을 짓는가 하면 공원 화장실이나 일반 사무실에 ‘미니도서관’을 세우고 버스 승강장 같은 곳에도 ‘참 작은 도서관’을 조성하는 등 온 도시를 책과 그 문화로 채우겠다는 갸륵한 발상을 우선 격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제는, 무엇보다 콘텐츠다. 크고 작은 도서관의 건립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채워질 장서의 성격과 그것을 매개로 하여 어떻게 지역 주민과 진정한 지식의 배움과 나눔을 이룰 것인가 하는 대목이다.

이 점에서도 몇 가지 ‘특이 사항’이 있어, 이거 무슨 지자체 홍보냐 하는 오해를 무릅쓰고라도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우선 내 눈에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외국인을 위한 도서관 계획이다. 김해시는 지난 10년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급속히 공업화되면서 인구 50만명을 바라볼 정도로 팽창했다. 자연히 공단과 기업을 중심으로 외국인들도 늘어 1만5천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낯선 나라에 일하러 온 사람들이라고 해서 책이 필요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을 위하여 김해시는 현재 리모델링 중인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 안에 8개 국어 5천여권 장서의 다문화도서관을 착착 준비하고 있다. 올 10월이면 개관하는데, 이 점만으로도 김해시의 정책적 시선이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다른 지자체에서도 아쉬운 대로 얼마든지 ‘벤치마킹’을 할 만한 일이다. 일종의 사회적 육아 프로그램인 ‘김해 북스타트 운동’은 관내 모든 신생아에게 책 꾸러미를 배부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러 오면 그림책 2권과 독서 지도를 위한 북 가이드 그리고 손수건을 선물한다. 이렇게 책과 더불어 태어난 아이는 동네의 작은 도서관에서 그림책과 더불어 세상을 익히게 되고 좀더 커서는 현재 진행 중인 ‘청소년 책 프로그램’과 만나게 된다. 그야말로 책과 더불어 태어나고 자라서 성인이 되는 것이다.

김해시는 오는 10월30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31개 학교의 37개 팀이 참여하는 ‘제1회 청소년 인문학 읽기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입시에 찌든 중고생은 물론 이 나라의 여러 대학들도 그 무슨 ‘국가 경쟁력’ 타령으로 책을 읽는 일이나 인문적 소양 다지는 일을 일제히 배척하는 마당에 김해시의 이러한 실험은, 그것이 비록 아직은 ‘대회’라는 제목을 걸고 있기는 해도, 당연히 관심을 둘 만한 일이다.

장차 김해시는 최고 수준의 북페스티벌이나 국제 심포지엄 그리고 유네스코 지정 ‘세계 책의 수도’ 추진에도 나설 예정인데, 사실 이런 장쾌한 계획은 아직 귀에 착 달라붙지는 않는다. 지자체로서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책 실천이긴 하겠지만, 좀더 낮은 자리의 섬세한 책 읽기 문화 확산을 바라는 입장에서는 너무 거창한 계획보다 하루하루의 근면한 문화 확산이 더 요긴해 보인다.

역사의 우연이겠지만, 이 지역 출신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종간 현 시장 모두 고졸 출신의 자수성가형 인물로 말 그대로 ‘책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 사람들이다. 가난하여 서럽고 배고팠던 시절, 그들에게 책은 컴컴한 밤하늘에 뜬 보름달이었을 게다. 지금이라고 해서 모든 사정이 나아졌겠는가. 많은 아이들이 책 속에 파묻혀 성장하고 그 책들이 권하는 진지한 삶의 태도와 지식에 대한 끝없는 갈증에 의하여 이 세상을 더욱 깊고 따스하게 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김해시는 ‘책의 수도’인 것이다.

정윤수 문화평론가
 

2009년 8월 20일 목요일

수수께끼 수학자는 왜?

2006년 8월 22일,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국제수학연합(International Mathematical Union)이 주최하는 필즈상 수상식이 열렸다. 필즈상은 4년에 한 번 숙학계에서 뛰어난 공적을 쌓은 수학자 몇 명에게만 주는 수학계 최고의 상이다. 이 해 필즈상은 '푸앵카레 추측(Poincare conjecture)'을 해결한 수학자인 그리고리 페렐만에게 수여될 것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 상을 받기 위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마드리드로 날아오지 않았다. 필즈상 역사상 전대미문의 수상 거부. 언론은 '푸앵카레 추측'이라는 100년의 난제를 해결한 이 '수수께끼의 수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기사로 만들었다.

 

나는 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의 대학 풍토를 살짝 비틀면서 언급한 도정일 교수의 칼럼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버섯 따러 간 천재 수학자'에서 도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생각할 거리는 그리샤 페렐만 같은 사람이 지금의 대한민국에 태어나 학위를 한다면 그가 대학에 취직이나 할 수 있을까, 버섯이나 따러 다니고 영광도 명예도 돈도 내팽개치는 사람이 한국 대학사회 어느 곳에 발붙일 수 있을까라는 문제다. 그가 천재라면 우리의 교육이, 우리 대학들이, 그런 유형의 천재를 길러내고 보듬을 수 있을까. 돈 될 ‘대형연구’ 같은 것에나 목매단 대학들이 혼자 외롭게 무언가를 추구하는 페렐만 스타일의 학자를 쫒아내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그리샤, 너는 한국에는 오지 말라. 여긴 버섯의 숲도 없다네."

 

 

<100년의 난제,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라는 책을 읽었다. 재미있다. NHK 교양프로그램 프로듀서인 가스가 마사히토라는 이가 바로 이 '수수께끼 수학자'를 취재한 이야기다.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뒤따르는 취재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흥미로운 수학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기도 하다.

 

가스가 마사히토도 취재 과정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토로하였듯이, 수학 분야의 고유 언어 즉 '수학언어'(보통 한두 개의 수식으로 표현되는 그것)를 이해하는 것은 나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사실 이 책에는 수식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난해한 '수학언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수학자들이 도전해서 풀고자 하는 문제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닐 것이다.

 

'푸앵카레 추측'이 묻고 있는 것은 우리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가하는 질문과 연관이 있다. 과연 우주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 책에 소개된 것으로는 2008년 3월 시점까지의 결과로는 (1)우주의 나이는 약 137억 살이다. (2)우주의 크기는 적어도 780억 광년 이상이다. (3)우주의 조성은 약 5%가 통상의 물질, 23%가 정체 불명의 암흑 물질, 72%가 암흑에너지라고 생각한다. (4)WMAP 위성 자료에 지금의 우주 모델 이론을 적용하면 우주는 영원히 팽창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는 대우주의 가장자리에 서서 눈에 보이는 범위만 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자료는 우주의 곡률은 제로, 다시 말해 평평하다고 말하지만 과연 대우주가 평평한 것인지는 모른다. "일찍이 인류는 지구를 오로지 평평한 평면이라고 믿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는 겨우 대우주의 가장자리에 서서 눈에 보이는 범위만으로 우주의 형태를 파악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푸앵카레 추측'이라는 것이 흥미로운 것은 인간은 우주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우주 바깥으로 나간다'는 말은 얼마나 막막한가, 얼마나 상상력을 발동해야 하는가.) 상태에서도 우주의 형태를 알 수 있는 실마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그런데 불과 4백년 전의 사람들만 하더라도 지구는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과연 우주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이 책에는 '푸앵카레 추측'을 풀고자 했던, 수학자들의 100년간의 노력을 추적하면서 윌리엄 서스턴 박사의 '기하화 추측'도 소개하고 있다. 우주는 적어도 여덟 가지 형태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가하는 질문도 질문이지만, 이 책에서는 수수께끼 주인공인 그리고리 페렐만이 왜 필즈상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거의 완전한 은둔자가 되어 버섯이나 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왜 페렐만이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단절하게 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하나의 해석으로 제시되는 것이 그의 스승인 미하일 그로모프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불필요한 일은 철저히 버리고, 자신을 사회에서 완전히 차단시켜 문제에만 집중했습니다. 그의 순수성이 7년 동안 고독한 연구를 가능하게 했고,동시에 필즈상을 거절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의 업적을 평가할 때 순수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수학, 예술, 과학, 어디든 타락이 생기면 소멸의 길을 걷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도 논의 순수성이 일정 수준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붕괴할 것입니다. 의식하든 안 하든 관계없이 수학은 순수성에 가장 많이 의존하는 학문입니다. 자신의 내면이 무너지면 수학은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내면이 무너지면 수학은 불가능하다"는 말. 이것 차라리 수학자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종교인이거나 시인의 말이라 해야 할 것이다.

 

수학 분야 책의 목록을 쌓아가고 있는 '살림math'의 책들은 또 무엇이 나올까, 궁금해진다.

2009년 8월 19일 수요일

사람이 살면서 알아야 할 것은 몇 가지일까?

김학원 휴머니스트 대표가 내놓은 <편집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었다. 20년에 가까운 출판인 경력과 2년 정도의 미국 유학을 정리한 편집자 매뉴얼이다. 한평생 편집자로 살겠다는 김학원 대표의 '출사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학원 대표는 "책 만드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은 3000가지가 넘는다"고 말한다.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고 많은 것을 익혀야 한다. 여기서 '익힌다'는 말은 '학이시습'의 그 '습'이다. 몸에 붙여야 한다는 말이다. 김학원 대표는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그 익힘의 결과를 이번에 한 권의 책으로 내놓았다. 좋다. '출사표'를 쓰는 심정, 자기 정체성의 확인,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사회적 의의와 전망, 여기에 후배와 동료들을 위해 업무의 세목을 일러주는 것 등등.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학원사 편집장이었던 김성재의 <출판의 이론과 실제>(일지사), 김영사 편집장을 지냈던 최봉수(현 웅진씽크빅 총괄 대표이사)의 <출판기획의 테크닉>(살림), 창작과비평사 영업부를 이끌던 한기호의 <출판마케팅 입문>의 맥을 잇고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책 만드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이 3천 가지가 넘는다면, 사람이 살면서 알아야 할 것은 몇 가지일까?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한 3만 가지 정도 되는 것일까?

 

 

홀가분해진다는 것

한 사람 두 사람, 길을 떠나고 있다.

오늘 문득 박경리 선생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왜일까? 왜였을까?

문득, 아주 문득

"참 홀가분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버리고 갈 것만 남기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까? 나는?

 

홀가분해지고 싶다

짐을 내려놓는다는 것

어깨의 그 무거운 짐

그것은 산다는 것

 

살아서 삶의 무게를 감당한다는 것

그리고 홀가분해진다는 것

 

오늘 문득

그 홀가분한 느낌이

시서늘한 바람처럼

나를 스쳐지나갔다

 

 

 

                         *사진출처: http://blog.ohmynews.com/q9447/249636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의 시 <옛날의 그 집> 중에서

2009년 8월 18일 화요일

오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출처: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18일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가 이희호씨의 손을 잡고 오열하고 있다.

 


 

2009년 8월 16일 일요일

어떤 실험의 기록

이러한 기이한 환경은 그것을 규명하고 기록해 둘 만한 가치가 있다. 내가 남은 생애를 이 규명에 바치는 것도 그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일에 성공하기 위하여는 어떠한 일정한 방법과 순서에 따라야겠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을 뿐더러 그것은 나의 마음의 변동과 그 줄거리를 밝힌다는 당초의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물리학자들이 기상 상황을 알기 위하여 행하는 대기에 관한 실험을 어떤 의미에서 내 자신에게도 적용한다. 나는 내 마음에 바로미터를 대본다. 이 실험을 오랜 시일을 두고 요령 있게 행한다면 물리학자의 실험 결과와 동일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계획을 그러한 범위에까지 확대시키지 않겠다. 오직 실험의 기록만을 작성하고, 그 실험의 기록을 체계적인 이론으로 발전시킬 의사는 없다.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리터러시'라는 말에 대하여

'리터러시(literacy)'라는 말은

 

1 the ability to read and write:
Far more resources are needed to improve adult literacy.

2 knowledge of a particular subject, or a particular type of knowledge:
Computer literacy is becoming as essential as the ability to drive a car.

 

http://dictionary.cambridge.org/

 

 

 

 

2009년 8월 15일 토요일

꿈에 대하여

꿈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레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어느 분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니 서울에서 출발하여 파리에서 커피를 마시는 꿈을 꾸고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아니라 차를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이 꿈은 오늘의 우리 현실에서는 거의 '몽상'에 가까운 것처럼 생각되지만, 전혀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차를 몰고 북한만 통과할 수만 있다면 파리가 아니라 남아프리카 끝에 있는 희망봉까지도 갈 수 있다. 대륙들은 아메리카 대륙과 오세아니아만 빼고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국적이라는 것을 지금처럼 '치사하게' 체크하지 않던 시대, 다시 말해 장구한 인류의 역사를 생각할 때 멀지 않은 과거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일부러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가지 않았던 것뿐이다.

 

사계절 뚜렷하고 먹을 거 먹을 만큼 나오는 땅에 살고 있던 사람이 고단한 길을 나서게 되었다면 거기에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무슨 큰 뜻을 품었거나 누군가의 엄한 명령을 받았거나. 이런 측면에서 보면, 조선시대 열하를 거쳐 중국에 갔다 온 이나, 일본 땅을 밟았던 조선통신사의 동선이란 오늘의 눈으로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의 인식의 지평이 지금 한반도의 남쪽에 살고 있는 이들처럼 '갇힌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튼 차를 끌고 서울을 출발하여 파리까지 갔다오는 것, 나도 해보고 싶다. 지금 내가 끌고 다니는 차는 2005년에 구입한 것인데, 출퇴근 때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출장을 많이 다니느라고 벌써 주행거리가 8만 킬로미터를 넘겼다. 서울에서 파리까지 많이 잡아도 1만 킬로미터니까 왕복 2만킬로미터, 주행거리만으로는 벌써 서울과 파리 사이를 네 번쯤 왕복한 셈이다. 왜 파리냐고 한다면, 별 이유는 없다. 대서양이 보이는, 유럽대륙의 어느 바닷가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생각을 우리 사회에서는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혹은 정파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문제다.

 

아들 녀석의 꿈은 얼마 전까지 축구선수였다. 그러다가 최근에 그 꿈이 탐정으로 바뀌었다. 왜 그럴까. 그런 궁금증이 일면서도 한편으로는 옛날 우리가 자라던 때 대통령이니 과학자니 하는 거창한 꿈보다 그런 꿈 이야기가 나는 좋게 느껴진다. 탐정 다음에는 또 무엇이 꿈이 될까. 죽기 전에 아들 녀석하고 함께 차를 끌고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09년 8월 14일 금요일

시민참여교육

최근 내 관심사인 시민교육 혹은 시민참여교육에 대한 기사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벌인 '시민참여교육(프로젝트 시티즌)'에 대한 내용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에서 직접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렸다. 여기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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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하겠다는 이 나라에서 교육은 '시민'을 길러내고 있는가? '시민학'(Civics)을 기초과목으로 가르치는 대학이 있는가? 창조적 교육을 되뇌면서도 창조정신의 핵심이 비판적 사고라는 것을 지금의 우리 사회는 알고 있는가?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그들의 평생 화두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도정일, 한겨레신문, 2009년 6월 4일)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 참 어렵다. 한국의 교육 현실을 보면 더욱 더 꺼내기 어려운 말이다. 그래도 그 필요성과 절박함에 대한 공감은 있는 듯 싶다.

 

미국의 시민 참여 교육(프로젝트 시티즌)을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 8월 10일부터 4박 5일간 프로젝트 시티즌 교사연수를 실시했다. '프로젝트 시티즌'이란 제목만 듣고는 어떤 내용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시민교육', '시민 참여 교육'이란 말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익숙하지 않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프로젝트 시티즌' 교육을 위해 미국의 시민교육센터(Center for Civic Education, 이하CCE)는 필리스 보이, 글렌 맨스 2명의 교사를 파견했고 지난 8월 10일(월)부터 14일(금)까지 전국 초중고 교사와 시민교육 활동가 30명이 서울 수유리의 호텔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숙식을 같이 하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프로젝트 시티즌은 미국 CCE에서 만든 시민의 사회참여 프로그램으로 현재 미국 30개 주와 전세계 80개 국가에서 실행하고 있는 시민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CCE 측은 "학생들로 하여금 책임감을 갖고 사회참여를 할 수 있는 시민으로 길러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로 학생들이 정부의 의무와 시민의 권리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정부나 지역사회의 갈등 문제를 어떤 과정을 통해 해결해 가는지를 배우고 체험하도록 돕는 실천형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포트폴리오 발표 시간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시민교육

이번 연수는 이 프로그램을 교사들이 직접 체험해 보는 과정이다. 

 

30명의 참가자들은 두개 팀으로 나뉘어 각각 지역의 문제점을 찾아 나섰다. 팀은 또 '문제점 찾기', '대안정책 조사', '공공정책 제안', '실행계획' 4개의 조로 나뉘어져 지역의 문제점을 찾고 문제점을 해결할 실행계획까지 세우는 작업을 수행했다.

 

참가자들은 연 이틀 동안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가운데에도 숙소인 수유리에서 가까운 지역을 돌며 현장조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지역의 문제점을 찾아냈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주제는 "강북구내 공공기관의 분리수거 실시 현황"과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골목상권 침공"이다.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 정책 조사도 이루어졌다. 조례를 살피고, 담당공무원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유사한 사례를 살피고 인터넷을 뒤지며 직접 공공정책을 마련했다. 그리고 실제로 실행에 옮기기에 필요한 방법들을 제안했다.

 

8월 13일 목요일 오후3시, 그동안의 팀별 성과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발표자의 열의와 참가자들의 뜨거운 호응만 봐도 그동안의 수업과 활동이 얼마나 활발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점 찾기', '대안정책', '공공정책', '실행계획' 등 참가자들이 함께 준비한 포트폴리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시민교육

참가자들의 소감을 들어봤다.

 

"단순히 사회문제에 아이들이 관심을 갖고 해결하는 차원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집단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작은 문제들에서도 해결의 단계를 못 찾아서 문제를 심화시키거나 문제를 간과하는 아이들에게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문제해결과정을 알려줄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김유정, 초등학교 교사)

 

"즐거운 경험이었지만 마음도 무겁다. 공립학교의 특성상 잘 적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한수현, 중학교 교사)

 

"적용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재량활동시간에 이 프로그램을 권장사항으로 넣어줬으면 좋겠다. 인문계 고교교사로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미국의 경우는 이 프로그램에 쏟은 시간을 봉사활동으로 기록한다는데 우리 사회에서도 봉사활동으로 인정할 수 있는 제도가 생겼으면 좋겠다. 대학입학과정에서 입학사정에도 활용될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신용균, 고등학교 교사)

 

4박5일동안 프로젝트 시티즌을 강의한 두 명의 강사도 "능력있고 활기차고 밝은 모습으로 함께 시간을 보낸 선생님들께 감사하다. 시민정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동의 합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인데 여러분들이 자연스럽게 협의에 이르는 모습을 보고 학교에서도 충분히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굴렌 맨스), "여러분들이 배운 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지속적으로 사회, 학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역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면서 한국에 온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필리스 보이)고 소감을 밝혔다.

 

  
CCE에서 파견된 프로젝트 시티즌 강사, 글렌 맨스, 필리스 보이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시민교육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이번 연수 이후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11월14일에는 '프로젝트 시티즌' 프로그램에 입각한 '청소년 사회참여 발표 대회'를 고려대학교와 공동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발표된 사례 중 우수 작품을 내년 상반기 미국에서 열리는 CCE 주최 '프로젝트 시티즌' 미국 대회에 출품할 예정이다. (프로그램 문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사업팀 은영준, 02-3709-7622).

성찰하지 않는 사회를 성찰하기

“성찰하지 않는 사회를 성찰하는 글을 썼습니다. 지금은 과거를 소비해버리고 앞만 보고 가는 시대입니다. 역사인식이 탈각된 채로 소비주의에 젖어 상품의 포로가 되다시피하고 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닌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로 바뀐 시대입니다.”

*현기영 선생, 김영민 기자의 사진

 

*현기영씨(68) 선생의 장편소설 <누란>(창비) 표지


 

-현기영 선생의 발언. <경향신문>인터넷판, 2009년 8월 13일자. 이영경 기자의 기사에서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8131735185&code=960205

시민의 권리

진영아, 소주 한 잔 마시자. 정말 보고 싶다.

글 잘 읽었다. 그리고 건강해라. 보고 싶다. 

정말 슬프다. 우리가 잘못 산 거다.

 

갈길이 멀다.

 

 

 

모든 시민은 자신의 견해를 밝힐 권리가 있습니다.

 

알지 못하면 알려고 노력을 해야 하고, 최소한 자기가 아는 만큼의 발언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사회는 그런 발언을 묵살하거나 무시할 것이 아니라, 혹 잘 모르고 있다면 설명을 해야 하며, 설득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합리적 사회의 문화적인 건강성 아닌가요? 전문가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 잘 모르면 가만히 있어라 라는 말은 소통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병들고 시들어가는 반문화적인 언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진영(영화배우), <오마이뉴스> 2009년 8월 13일 광우병과 김민선과 전여옥과 관련된 글에서

 

--참고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95494&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6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8131443021&code=940100


2009년 8월 13일 목요일

광장의 꽃은 사람이다

광장의 꽃은 사람이다. 사람들로 사건이 생기면서 광장은 펼쳐지고, 비어 있기에 담겨진 곳으로 존재하는 곳. 최소한의 디자인이라는 기본적이고 정석적인 품위를 갖출 때 그 공간은 광장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지닐 수 있다. 몇 년 전 런던의 트라팔가 스퀘어에서는, 젊은이들이 한구석에 늘어져 잡담을 하고 철도 노동자들은 파업 시작을 알리는 흰색 풍선을 하늘 높이 날리고 있었다. 몇 달 전 독일의 포츠담 광장 한가운데에서는 해괴망측한 복장을 한 밴드 그룹이 음악 실험을 하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미국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리고 붉은악마가 보여준 거대한 함성과 최근의 촛불은 우리 광장만의 카타르시스적 기억이다. 이렇게 광장 디자인은 사람들의 행위, 이야기, 사건으로 완성되는 생성적 디자인의 대표 사례이다. 그렇기에 그 자리를 꽃과 박제 조형물로 가득 채운 광화문광장은 그 의도의 불순성으로, 조형적 가치를 논하기조차 불가능한 조야한 장소로 기록될 수밖에 없다.

 

--조현신(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교수), '불순하기에 조야한 광화문광장 디자인', <시사in>2009년 8월 15일자(제100호) 83쪽에서

2009년 8월 12일 수요일

그러고 보면, 나도 헛살았다.

선가에서 사냥꾼을 대표하는 인물로 석공 혜장 선사를 꼽는 모양이다. 어느 날 혜장이 사냥을 하던 중 마조 선사를 만나 그의 법문을 듣고 활과 화살을 버리고 출가하였고 깨달음을 얻었다 한다. 하지만 산중에 있어도 본성을 마저 버리지 못해 소리를 지르며 활 시위를 당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세상 어느 곳이나 호적수가 있게 마련이다. 삼평이라는 이가 가슴을 풀어헤지며 "자, 쏠 테면 쏘아보라"고 하였다. 그때 석공 혜장은 활을 버렸다 한다. 삼평은 물었다.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활인전'입니까? 아니면 사람을 죽이는 '살인전'입니까? 여기서 '전'이라는 화살 전을 말한다. 말도 되지 않는 행동을 버리고 진짜배기를 드러내보이라는 말이다. 살인전은 살인검이다.

 

불가의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놀라운 것은, 왜 이러한 교육 방법이나 사람을 보는 눈은 전승이 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다. 왜 이런 교육 방법은 근대교육에 전혀 접목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불가에서는 사람을 '법기'(법의 그릇)으로 본다. 아무리 촌놈, 무지랭이라 하더라도 사람을 막무가내로 보지 않는다. 그 그릇으로 본다. 그것도 글을 아느냐 글을 모르느냐가 아니라 깨칠 놈이냐 아니냐로 본다. 물론 모든 사람이 깨칠 수 있다는 전제가 밑바탕에 놓여 있다.

 

<육조단경>은 그냥 문헌이 아니다. 근대교육의 말도 안되는 시스템이 만들어놓은 인간상보다 <육조단경>이 만들어놓은 인간상이 더 위대한 것 아닌가? 나는 오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육조 혜능이 오조 홍인에게서 가사와 발우를 전수 받게 되는 이야기는 신화이자 전설이고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사와 발우란 것이 뭐 별거인가? 아닐 것이다. 그에게 전승된 법통이란 것도 별거 아닐 것이다.(이런 이야기를 하면 머리 깎은 스님들께서 들고 일어날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식으로 말한다면 "그놈 사람 됐다"는 이야기일 거다. '사람되기'가 얼마나 힘든가. 하지만 육조 혜능은 쓸데없는 글을 읽은 바 없기에 오히려 '사람 그릇'이, 근기가 깊었던 것일 터이다.

 

최근 내 마음은 천근만근 무겁다. 용산참사나 쌍용자동차 파업현장에서 무지막지한 경찰들의 '활약'을 보면서 도대체 이런 무장력으로 현실화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이놈의 교육이라던가, 정책이라던가, 또 제도라던가, 법이란던가 하는 것이 도대체 뭐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인간말종'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지금 '인간말종'을 키워내고 있고, 그런 '인간말종'들끼리 히히덕거리면서 돈 몇 푼에 웃음을 지으며 사람 흉내를 내고 있다. 끔찍한 일이다. 탄압과 진압의 현장을 보거나, 듣거나, 그 어떤 방식으로 보고를 받았을 '인간'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나도 사람이요"라고 뻣뻣하게 말을 한다. 잘난 체한다. 정말 잘 났다.

 

그러고 보면, 나도 헛살았다. 목숨을 부지하느라고 세상이 이렇게까지 낭떠러지에 와 있는 것을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이니까. 글을 읽고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게 부끄럽고 또 부끄러울 뿐이다.

 

'선문답'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오늘 문득 든다. 그냥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그것도 진짜배기로 살고 싶었던 인간들의 이야기다. 나도 정말 살고 싶다.

 

--원철 지음, <할로 죽이고 방으로 살리고>, 호미, 2009년 8월 참고

 

2009년 8월 11일 화요일

일반화된 타자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미드(G.H.Mead)의 자아 이론의 중심 개념 중 하나. 사람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가치와 문화에 따라 행동하는데, 이때 자아에 반영된 일반적인 타인의 모습을 '일반화된 타자'(generalized other)라고 한다. 미드의 자아에 대한 개념적 틀 속에는 '주체로서의 나(I)'와 '객체, 혹은 대상으로서의 나(Me)'라는 두 가지 자아가 있다. '주체로서의 나'는 개인적 신념과 충동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자아이다. 반면 '대상으로서의 나'는 사회에 적응하고 사회의 요구를 대표하는 자아이다. '일반화된 타자'는 '대상으로서의 나'에 해당되는 것이다. 문화권에 따라 이 두 가지 '나' 사이의 균형이 다른데, 서양에서는 '주체로서의 나'가 강하고 동양에서는 '대상으로서의 나'가 강하다.

 

--EBS <동과 서> 제작팀, 김명진 지음.<동과 서>, 예담, 2008년, 211쪽

길과 주막

아침에 전자우편함을 열어보니 '다산연구소'에서 허시명 선배의 글을 보내왔다. 반가웠다. 얼굴을 뵌 지 오래 된 만큼이나 반가웠다. 제목은 '길은 흩어짐이요, 주막은 만남이라'이다. 오랜 시간 길 위에서 갖가지 이야기를 길어올리면서 살아온 '여행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글이다.

그런데 허 선배와 다산연구소는 어떻게 연결된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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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흩어짐이요, 주막은 만남이라

                                                                        허 시 명(여행작가)

길의 속성은 흩어짐이다. 여럿이 길을 가다보면 끊임없이 흩어진다. 갈등을 제공하는 것은 갈림길이다. 어느 쪽으로 갈 것인가, 이 길이 맞는가 저 길이 빠른가 시끄러워진다. 어찌 갈림길뿐이겠는가, 한 길을 가다가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엿가락처럼 늘어지며 흩어지고 종내에 혼자가 되고 만다. 그래서인지 길을 맹렬하게 걷는 도보꾼들 중에는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 결혼했더라도 제갈 길 가듯이 흩어지고 만다.

다산의 남도 유배길, 지금은 멋진 여행길


지난봄에 다산 유배길을 걸었다. 서울에서부터 걸어야 마땅하지만, 강진에서부터 걸어 영암으로 넘어왔다. 문화부에서 추진하는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의 후보지로 오른 다산의 남도 유배길을 실사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다산 초당에서 백련사까지 걸었다. 동백숲이 좋은 산고개를 하나 넘으니 백련사가 있었다. 남도의 활엽수림 속을 걷는 것도 좋지만, 다산과 혜장선사가 나눴을 얘기가 묻어있는 것 같아 좋았다. 800m밖에 안 되는 구간이라, 가족이나 학생들이 무리지어 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나 또한 이 길에 매료되다보니, 다산의 유배길이 적막하고 슬픈 길이 아니라 아름답고 싱그러운 길로 여겨졌다.

다산의 유배길의 주요 구간은 강진읍내의 동문주막에서 다시 시작된다. 동문주막은 다산이 강진에 유배되어 왔을 때 처음 4년 동안 머물렀던 공간이다. 유배지 치고는 아주 멋들어진 공간이다. 자취도 없으리라고 여겼던 동문주막이 뜻밖에 복원되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동문주막에 들어서니 마당에 대나무 평상이 놓였고, 마당 안쪽에 표주박이 떠있는 우물이 있었다. 우물물로 목을 축이고 돌아서니, 다산이 머물렀던 주막 뒷방 사의재(四宜齋)가 눈에 들어왔다. 사의재 방안은 다산이 책을 읽다가 잠시 마실 나간 것처럼 갓과 흰 도포가 벽에 걸려있고 앉은뱅이 책상에 책들이 정연하게 놓여있었다.

길은 흩어짐이지만, 길 위에 있는 주막은 만남이다. 길을 걸을 때는 흩어짐을 각오해야 마음 편하고, 주막에 들어설 때는 뒤섞이는 것을 마다지 않아야 마음 편하다. 주막거리가 번성했던 시절에 산 밑이나 나루터에는 주막이 있었다. 함께 모여야 떠날 수 있고, 함께 가야 안전하기 때문에 주막에서 기다렸다 다시 길을 떠났다. 그런 점에서 주막은 통합의 철학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통합은 이성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감성의 울림이 있어야 한다. 그 울림에 군불을 떼는 것이 술이다. 앞뒤로 흩어져 걷던 우리 일행도 대나무 평상에 앉아 두부 한모와 막걸리 한잔으로 마음을 모을 수 있었다. 다산도 유배지에서 갈갈이 흩어졌던 마음을 동문주막의 술 한 잔으로 추슬렀을 것이다.

다산 유배길은 남도 여행길이다. 무위사에서 차밭을 지나 월남사지에 이르는 길도 좋지만, 강진에서 영암으로 넘어가는 월출산 누릿재길은 또 다른 울림이 있었다. 영암에서 강진으로 넘어가는 지름길로, 제주 유배길에 올랐던 송시열도 넘었고, 해남 가는 윤선도도 넘었던 길이다.

갈라지기만 하는 길들, 주막도 두고 술도 갖다 놓아야


인적이 끊기고 옛길의 흔적도 희미해, 우리 일행은 누릿재 밑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이 옳은지 한바탕 옥신각신했다. 갈림길에서 제 길이 옳다고 우길 때는 대책이 없다. 각자 가봤다면서 우길 때면 더더욱 난감해진다. 이런 갈등이 빚어질 때, 우리 사회는 나이가 많거나 목소리가 큰 사람이 선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우리는 경험이 많은 사람쪽에 줄을 서서 제대로 누릿재를 넘어 월출산의 웅장한 자태에 압도된 채 피곤한 줄 모르고 산을 넘을 수 있었다. 아하, 옛사람들이 길을 간다는 것은 산수를 즐기는 것이었겠구나, 퍽퍽한 고난 행군이 아니라, 우리 국토의 혈관 속을 떠도는 즐거운 나들이였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멋진 길이었다.

선도자가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자가 되면 행복하다. 그런데 요즘은 돈 많은 사람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고, 돈되는 쪽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걷기 바람, 자전거길 내기, 강길 조성사업 등등 요사이 길내기 작업은 경험 많은 사람들이 내는 길이 아니다. 돈 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몰려가는 길이다. 길만 가다보면, 길만 내다보면 반드시 갈라지게 된다. 어디에 주막을 둘 것인지 고민하지 않으면, 그 주막에 감성을 울리는 한 단지 술을 갖춰놓지 않으면 민심은 갈갈이 흩어지고 만다. 

글쓴이 / 허시명
· 여행작가이자 술평론가
· (사)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 저서: <조선문인기행>, <비주, 숨겨진 우리술을 찾아서>,
          <허시명의 주당천리>, <평생 잊을 수 없는 체험여행 40>,
          <맛이 통하면 마음도 통한다> 등

 

2009년 8월 10일 월요일

봉사자와 주인

공공도서관의 이용자는 크게 늘어나는 데 비해 직원 수는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2006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공공도서관 야간 개관 확대로 말미암아 공공도서관의 직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람은 서비스를 감당할 만큼 충원되지 않는데, 서비스를 감당해야 할 시간이 늘어나는 데 따른 어려움이다.

 

공익요원이나 일용직 등 보조인력이 투입되고 있지만 역시 일시적인 대응일 수밖에 없다. 공공도서관의 지속성을 생각한다면 좀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해결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2003년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2004년 7월부터 주5일제 근무가 법제화되었고, 2011년까지 주당 40시간 근로를 고용근로의 기본조건으로 하게 되어 있음을 생각하면, 공공도서관의 직원들의 근로조건의 열악함이 도드라져 보인다. 우리나라 도서관의 운영이 일본과 흡사해서 주말근무가 보편화되어 있고 '특근'이 일상화되어 있지만 그런 서비스를 감당하는 것만큼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도서관연구소의 두번째 연구보고서로 발간된 <공공도서관 개관시간의 합리적 운영방안 연구>(연구책임: 정현태)를 보니, 그 기저에 깔린 도서관인의 사회적 '대접'에 대한 요구를 느낄 수 있었다.

 

주 40시간제에 의한 여가시간의 증가와 출산기피로 인한 고령인구 증가 등에 대해 정부는 공공문화기반시설의 개관시간 연장사업과 다자녀출산에 의한 양육비 지원 등 각종 대응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공공시설의 이용기회를 확대하여 국민의 여가생활을 개선한다는 정책의 이면에는 정작 공공도서관 직원들을 국민의 범주에서 배제하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위 연구보고서, 114쪽)

 

공공도서관 직원은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도서관 직원들도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나도 적극 공감한다. 공무원들을 총정원제로 묶어서 늘어나야 할 공공서비스가 위축되는 것은 맞지 않다. 공공서비스가 늘어나야 한다면 당연히 그 서비스를 감당하는 사람들도 늘어나야 한다. 현 정부의 정책기조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해서 감당해야 할 공공서비스가 부실해지거나 공백이 생겨서는 안된다. 공공서비스를 비정규직 인력이 감당해서는 그 서비스의 지속성을 가늠하기 어렵다. 마땅히 지속되어야 하는 공공서비스라면 정규직으로 채용하여 그 서비스를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에 발간된 <공공도서관 개관시간의 합리적 운영방안 연구>는 도서관인들의 하소연이자 청원이고, '작은 정부' 기조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연구보고서의 개선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을 검토하면 '작은 정부' 기조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을 뿐더러 제시되어 있는 방안도 아주 우회적인 것뿐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연구보고서는 "공공도서관의 현 여건에서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고 하였다.(116쪽 이하) 건물의 구조적 변경, 공익요원 확보, 일반열람실 운영 및 관리를 시설관리 부서에서 담당, 무인 예약대출 반납기 설치 및 운영 활성화, 탄력근무제 실시, 2교대 근무 실시, 휴관일과 평일 중 대체휴무 사용, 수당지급 규정 개정 등등을 나열한 뒤에야 여덟번째로 정규직원의 증원을 언급하고 있다.

 

뭐랄까? 하고 싶은 이야기와 꺼내야 할 의제는 분명히 있지만, '현 여건'을 고려할 때 차마 다 하지 못하고 있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공공도서관의 야간 개관으로 직원들의 업무량도 많아지고 있으며,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볼 때 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 현재로서는 비정규직 인력을 충원하여 요구되는 서비스를 감당하고 있지만 이또한 역부족인 실정이다, 당연히 정규직원의 증원이 요구된다고 결론을 도출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 한 가지만 더 덧붙인다면, 문제점의 외적 요인으로 거론한 '이용자 우선주의'에 대한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지적은 나를 화들짝 놀라게 만든다.

 

공공시설 서비스현장에서 부지불식간에 드러나는 이용자와 직원간의 불합리한 가정, 즉, 공무원은 봉사자(Servant)이고 이용자는 주인(Master)이라는 불공정한 관계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통해 교화되고 교정될 필요가 있다. (116쪽)

 

이는 공공도서관을 진정 이용자로서 이용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과연 공공도서관에서 그 이용자가 주인이었던 적이 있던가. 물론 이용자들 가운데 일부는 과도한 '주인행세'를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시민들이 느끼는 것은 여전히 공공도서관의 '문턱'이 높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어느 독서모임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도서관에서 독서모임을 열려고 하니, 곤란하다는 응답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절차도 너무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담당직원이 마치 아주 큰 청탁이라도 들어주는 것처럼 대응하더라는 것이다.

 

교화나 교정이라는 단어는 사실 개인적으로는 금기로 여기는 단어인데, 이 단어를 쓴 위의 문장을 '이용자의 시각'에서 고쳐보고자 한다. 우리 '국민'의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아래 문장이 현실을 드러내는 표현일 것이다. 각종 공공기관에서 친절함을 강조하는 서비스헌장을 내걸어 놓아야 할 만큼 우리의 공공서비스가 진정 시민을 '주인'으로 여겨온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공공시설 서비스현장에서 부지불식간에 드러나는 이용자와 직원간의 불합리한 가정, 즉 공무원은 주인이고 이용자는 민원인이라는 불공정한 관계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통해 지속적으로 교화되고 교정될 필요가 있다.

간디의 교육1

마하트마 간디는 <힌두 스와라지>에서 “교육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우선 간디는 “통상적으로 교육은 글을 배우는 것을 뜻합니다”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어린이에게 읽기와 쓰기와 셈하기를 가르치는 것을 초등 교육”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글은 모르지만 부모와 아내와 자식과 이웃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잘 알고 있는 농민, 즉 도덕적 규범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농민에게 과연 읽기와 쓰기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줌으로써 과연 어떤 것을 기대하게 되는 것인지 묻는다.

 

민중에게 ‘그런 종류의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결론’은 우리가 서구 사상의 홍수에 정신을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그런 종류의 교육’이란 ‘잘못된 교육’을 말하는 것이다. 글이란 단지 도구에 불과한 것이고 도구란 선용될 수도 있지만 악용될 수 있다. 세상의 숱한 사람들이 글을 사용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글을 선용하기보다는 악용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글을 너무나 잘 아는 ‘나쁜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간디도 “글을 통해 선이 행해졌다기보다 악이 더 많이 행해졌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

2009년 8월 9일 일요일

보트에 탄 아이

핀란드 교육에 대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오늘 만난 한 문장입니다.

 

"교육이라는 이름의 보트에 탄 아이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물에 빠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시지만 데츠(石島徹), 핀란드 보고2, <요미우리 신문> 2005. 3. 24.

-후쿠다 세이지(福田誠治), <핀란드 교육의 성공>, 북스힐, 2008. 4. 89쪽.

피로 써라

피로 써라

 --예브게니 비노쿠로프(헝가리 시인)

 

피로 써라!

피는 만인의 화근이지만

나는 오직 그 하나만을

믿는다.

피로 써라,

참된

선홍빛의

피로 써라

오직 그 하나만으로!

피로 써라,

그러면 알게 되리라

피가 옳다는 것을

그리고 언제나 새롭다는 것을.

바래기 쉬운 잉크는 집어치워라

고통받은 자에게는 말할 권리가 있다!

 

피로 써라

나는 다시 되풀이한다

그리고 나도 되풀이 하리라

해마다 영원히.

피로 써라,

나는 그를 믿는다

너희들도 그를 믿어라!

피는 허식을 모른다!

 

 

--김삼웅(전 독립기념관장)이 <출판저널> 2009년 8월호에 소개한 '<문학사상> 1974년 2월호에 실린 저항시' 가운데 한 편임.

pisa는 결과가 아닌 원인에 주목해야

“PISA에 대해 민감한 것은 어떤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며 그런 현상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PISA는 결과만이 아니라 결과에 다다른 원인까지 종합 분석해 내놓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좋은 점은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은 PISA 성적이 우수하지만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지 않습니까? 똑같이 성적이 우수한 핀란드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고요. 이런 점을 비교 분석해 더 나은 교육을 만들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PISA결과를 제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혁신연구센터(CERI) 선임연구위원인 데이비드 이스턴스(David Istance,55) 박사의 인터뷰에서. 2009-06-04

--원문출처: http://www.hangyo.com/app/news/article.asp?idx=29068

2009년 8월 6일 목요일

핀란드의 독서운동과 독서교육에 대한 자료

원문출처: http://www.eduting.co.kr/zbxe/?document_srl=1047&mid=freeboard

 

1990년대 초반 핀란드는 경제불황으로 벼랑 끝까지 몰렸던 유럽의 문제아였다.
그런 핀란드가 2000년대에 들어와 연속적으로 국가경쟁력 세계1위를 차지했다.
그 바탕에는 교육개혁의 성공, 첨단정보통신사업에 대한 집중투자와 성공 등이 있었다.

교육경쟁력 1위 인터넷과 휴대전화 보급률 1위, 전자금융 사용률 1위, 국가청렴도 1위 등과 함께 인구당 도서관 비율 1위, 국민 1인당 장서수 1위, 도서관 이용률 1위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독서운동이 밑바탕이 되었다.

핀란드는 독해력 세계 1위의 국가이다. 즉 국민들의 독해능력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다. 독서가 국력이라 했듯이 독서능력의 향상 없이는 국가의 발전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즉 독서능력이 낮은 사람을 독서 장애자로 규정하였다.

이 독서장애자를 치료하는 것이 곧 국가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독서장애자들은 옳고 그름도 잘 분간하지 못하며, 정보습득에도 뒤처지게 되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으므로 사회통합의 장애가 되어 민주주의 실현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책과 친하도록 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하루씩 묵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도서관에 따라서는 사서가 주 2회 초등학교에 가서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교사는 책을 빌릴 수 있게 도와주고 책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한다.도서관은 단순히 자료를 찾는 곳이 아니라 수업의 연장이다
. 학생들은 교과서 대신 도서관의 책들을 이용해 수업준비와 과제를 해결한다. 수업이 교과서로만 진행되지도 않고, 대부분의 수업준비도 도서관을 활용해 이루어지므로 굳이 참고서 같은 책을 사서 집에 둘 필요도 없다.

이처럼 어릴 때나 나이 들어서나 도서관을 제 집 드나들듯 이용하면서 독서가 전 국민적인 취미인 핀란드 사람들은 생활수준, 직업의 차이 없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독서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을 핀란드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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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skyand.egloos.com/4200112

 

읽기 경쟁력 1위   도서관이 놀이터다   핀란드 Finland


쓰기 연습은 학교 입학 전까지 하지 않는다. 학교에 다녀오면 가방 던져놓고 놀러 나가기 일쑤다. 사교육도 없고, 수업 시간도 OECD 국가 중 최저인 나라 핀란드. 다만 놀러 가듯 도서관만 드나들 뿐이다. 교육이라는 이름의 보트에 탄 아이들은 하나라도 물에 빠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핀란드는 자일리톨로만 유명한 나라가 아니다.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읽기, 수학, 과학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최상위에 랭크된다. 교육 강국이라 불리는 일본은 몇 년 전부터 ‘핀란드를 배우자’며 이 나라를 따라 하지 못해 안달이다. 핀란드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학력경쟁을 부추기지 않는 평등교육이다. 부모나 교사나 아이들을 야단치거나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법도 없다. 하지만 이는 하향평준화 교육이 아닌, 어느 하나 떨어지는 학생 없이 모든 아이들을 일정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제도다. ‘교육이라는 이름의 보트에 탄 아이들은 하나라도 물에 빠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말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학교에서는 잘 못하는 아이에게 강도 높은 개인별 지도를 한다. 책상 배치만 봐도 3~4명의 소수 그룹 교육이 가능하도록 4개의 책상을 붙여 개개인의 학습 수준에 맞는 교육을 실시한다.



정부가 ‘교육지상주의’를 지향한다


핀란드 교육 시스템에서 부러운 것은 수준 높은 교사와 그들이 지닌 자부심이다. 핀란드에서 교사는 고교생이 지망하는 직업 1, 2위를 다툴 만큼 선망의 대상이다.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석사 학위를 취득해야 하며, 지원자의 10%만이 교육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즉, 능력이 뛰어나고 의욕이 앞선 사람을 뽑는다는 말이다. 평생교육의 마인드가 팽배한 사회 분위기 역시 핀란드가 풍기는 지적 향기의 배경이다. 마음만 먹으면 나이에 상관없이 다양한 루트로 공부할 수 있는 교육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대학까지 수업료는 무료이고, 고등학교까지 교재를 비롯해 연필 한 자루까지 수업에 필요한 모든 것이 지원된다. 핀란드에서 살다 온 정도상 박사는 “핀란드에서는 휴가가 긴 여름이면 대학에서 평생교육 클래스를 연다. 헬싱키대학은 외국어에서부터 미술과 음악 등 예술까지 1백 개가 넘는 강좌를 연다. 일반인이 참여할 수 있는데, 단 1명이 신청해도 강의가 열린다”라며 공부가 생활화한 핀란드의 분위기를 전한다.


매일 1시간씩 책을 읽는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의외로 집에서 사교육을 시키는 일은 없다. 대신 77%의 사람이 매일 1시간씩 독서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독서가 생활화한 사회로 독서를 통한 읽기는 아이들의 일상이다.
이메일, 인터넷 정보, 잡지도 독서의 대상이다 핀란드 아이들은 독서의 대상을 단순히 책으로 한정하지 않는다. 잡지를 비롯해 코믹 만화, 이메일, 인터넷 등 읽기 대상을 문자에서 정보매체로 폭을 넓힌 것. 책을 읽을 때도 전체를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짧은 문장을 읽고, 시・단편・소설 발췌문을 읽도록 한다. 이런 다양한 읽을거리를 통해 책을 싫어하는 아이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것에 읽기 습관을 들이고, 시험에 관계 없이 독서를 생활화하는 것이다.


학생이 신문을 보면 반액 할인해준다. 핀란드 신문은 40면을 훌쩍 넘을 정도로 지면이 방대한데,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다. 학생이 신문을 구독할 경우 신문 가격을 반값으로 할인해주며 학교에서는 신문에 대한 관심을 키우기 위해 저널리스트를 학교에 초대해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한다. 학생신문을 발행하거나 신문사 견학 등으로 신문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


핀란드 사람들의 집에는 책이 없다 1인당 보유 장서 수를 살펴보면 핀란드만큼 집에 책이 없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대신 도서관 이용률은 세계 제일로 한 사람당 1년에 21권의 책을 대출한다. 늘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이 적다는 비판을 가할 때 비교대상이 되는 일본도 1인당 공공도서관 대출 권수는 1년에 4.1권에 불과하다. 도서관 수 역시 많아 어린아이들이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자리해 있으며 책 외에도 비디오테이프나 오디오테이프 등 다양한 교구가 마련되어 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 주 1회나 월 1회 정도 교사가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을 찾아 책을 빌리도록 한다. 때때로 도서관이 먼 동네에는 이동도서관 차가 온다. 핀란드 사람에게 도서관은 단지 책을 빌리거나 공부하는 장소가 아니다.

지역 도서관에서는 ‘책 힌트’라는 이름으로 신간 소개, 읽으면 좋은 책 리스트, 서평 등 다양한 내용을 담은 정보를 아이들을 비롯해 지역 주민에게 제공하며 책을 읽고 감상하는 독서 서클도 다양하게 운영한다. 또 하나 감탄할 만한 핀란드 도서관의 시스템은 바로 독서와 읽기 교육에 열성적인 도서관 사서다. 한때 아이들의 읽기능력 등 언어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자, 초등학교 교사와 도서관 사서가 나서서 국어교육 촉진 운동을 벌였을 정도다. 핀란드에서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도서관 사서가 일주일에 2회 정도 학교를 방문해 읽기교육을 비롯한 특별 수업을 진행한다. 읽기교육 방법을 개선하고, 아이들에게 더 열심히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한 노력이다. 몇 년 전에는 대학입시 자격시험에서 국어 과목의 성적이 현저하게 떨어지자 핀란드 교육 당국에서는 그 이듬해를 읽기 능력 향상의 해로 정하고, 전국에 더 많은 도서관을 설립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도 국어 시험을 본다 모국어에 대한 사랑과 존중 역시 핀란드 아이들의 읽기 능력을 향상시킨 비결이다. 초등학생들의 수업 시간표를 보면 핵심 과목이라 하여 배움의 기초가 되는 읽기와 쓰기, 셈하기를 열심히 가르치는데 그중에서도 언어 과목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것. 또한 제대로 진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읽기 보조 수업이 철저히 이뤄진다. 수업은 대부분 독서와 토론 중심이다. 역사 과목 시험은 달달 외워 적는 것이 아니라 아는 지식을 바탕으로 서술하는 식이다. 정도상 박사는 “언어가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시험에도 국어 시험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이들은 컴퓨터를 지식 기계라는 뜻의 핀란드 말인 ‘티에토코네 Tietokone’라고 말하는 식으로 외래어가 들어와도 핀란드어로 변형해 사용한다”며 이들의 모국어 존중을 강조했다.


Interview
핀란드의 한국 워킹맘이 들려주는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내려오는 핀란드의 가정교육


10년 전 핀란드로 유학을 떠난 뒤 결혼하고, 직장에 다니며 핀란드 살이를 하고 있는 이지영 씨. 올해 만 여섯 살, 세 살 된 두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이다. 큰아들은 프리스쿨에 다니고, 둘째는 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이씨는 두 아이를 오전 6시 30분쯤 데려다주는데, 아이들은 이곳에서 아침을 먹고, 8시까지 자유시간을 보낸 뒤, 보드게임을 하거나 야외 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핀란드 유치원에서는 알파벳을 가르치는 식의 교육 커리큘럼은 찾아볼 수 없어요. 유치원에 딸린 마당에서 뛰놀거나 인근에 자리한 실내 체육관을 찾아 전문 교사에게 체조 프로그램을 배워요. 날씨가 좋은 봄, 가을에는 숲 도깨비 체험이라 해서 자연을 관찰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죠.”

프리스쿨 교재는 셈이나 읽기, 쓰기를 가르치는 대신 두 개의 점을 연결한다든가, 선 긋기라든가, 같은 모양 연결하기 등 부담 없는 내용들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선행학습식 사교육은 찾아볼 수 없다. 핀란드 어린이들이 어릴 때부터 배우는 것은 스포츠나 미술, 음악 등 예술 활동이다. 네댓 살이면 지역 커뮤니티에서 축구를 비롯해 아이스하키, 아이스 스케이트 등 스포츠를 배우고,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 악기 연주를 배운다.

하루 2시간 바깥바람을 쐬고 잠자기 전 책을 읽는다


“핀란드 사람들에겐 대대로 내려오는 교육 원칙이 있어요. 첫째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둘째는 하루 2시간 동안 바깥바람을 쐬기, 셋째는 많이 움직이기, 넷째는 자기 전 책 읽기예요.”


집에서는 엄마들이 아이를 끼고 앉아 글자를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을 자주 찾을 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아이들이 자주 보는 글자를 따라 발음하게 되고, 몇 가지 짚어주면서 발음해주는 것이 전부다. 다만 늘 책을 읽어주다 보니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글자에 익숙하다.
“핀란드어가 문법은 어렵지만 ‘아·에·이·오·우’ 등 소리 나는 대로 알파벳을 쓸 수 있어 읽는 법을 쉽게 깨치거든요. 덕분에 40~50% 아이들이 스스로 읽기를 터득합니다.”


1 당장 어린이용 신문을 구독한다 아이가 소화할 수 있는 짧고 쉬운 내용의 기사를 하루에 하나씩 읽는 습관을 들인다. 성인용 신문이 부담스럽다면 ‘소년○○’ 등 어린이용 신문을 활용해보자. 읽기 능력은 물론 사고력과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다.


2 저녁 식사 후 독서 타임을 즐긴다. 온 가족이 모여 책을 읽자. 아이가 어리면 그림책을 보여주되, 평소 엄마 아빠가 독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을 읽은 후에는 “뭐가 재미있었어?” “어떤 생각이 들어?” 등 아이의 감상을 물어보자. 독서노트를 마련해 읽은 책 제목과 감상을 한 줄씩 써 넣으면 표현력과 쓰기 능력도 키울 수 있다.


3 세종대왕의 뜻을 기린다 전문가들이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국어는 모든 학습의 기본이다. 우리말을 잘해야 영어도 잘한다. 우리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에게 외국어부터 가르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제대로 한글을 읽고 쓰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교육이 먼저임을 잊지 말자.


4 도서관 사서와 친해진다 우리나라에도 어린이 도서관을 비롯해 시립·구립 도서관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책 외에도 잡지, DVD 등을 감상할 수 있으며 영화 상영 등 다양한 문화행사와 동화구연, 독서교실 등 문화강좌를 여는 곳들이 많다. 아이들을 위한 독서모임을 꾸려 읽기 교육을 시키는 곳도 있다.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힐지 고민이라면 사서를 찾아가 이것저것 물어보며 정보를 얻자.


5 이메일로 독서를 시킨다 읽는 대상이 꼭 책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책만 보면 머리가 아픈 아이라면 아이에게 독서를 강요하는 것은 부작용만 가져온다. 손수 편지를 쓰거나 이메일을 보내 읽게 하는 것은 어떨까. 이때 짧은 동시를 첨부하거나 동화책의 한 부분을 인용해 적어본다. 만화책 역시 교육 효과가 높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으니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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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 : 주간동아(2009.05.19 686호(p44~47))(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2009/05/15/200905150500059/200905150500059_1.html)

선진국에서 배운다, 독서 통한 국력 강화 프로젝트

 

U.S.A.] 각급 학교마다 깐깐하게 선발한 사서교사 활발하게 활동

얼마 전 미국인 부부와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자녀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부부는 요즘 두 살 난 아들에게 읽어줄 동화책을 고르느라 고심한다고 했다. 신데렐라처럼 왜곡된 성역할을 주입하거나 백인만 등장시켜 인종적 편견을 조장하는 동화책을 피하다 보니 선택의 범위가 좁아진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안목이 조금은 까다롭고 유별나다고 생각했지만 자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독서 교육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은 본받을 만한 일임이 분명했다. 독서 교육은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미국의 독서 교육은 공공도서관이 제공하는 여러 프로그램에서 그 다양한 방법론을 엿볼 수 있다. 영·유아에게 책을 읽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정기적으로 동화책 작가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또한 각종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도서관을 친숙하게 느끼도록 유도한다. 특히 독서 교육이 소홀해지는 방학에는 독서 클럽을 운영해 학교를 대신하는 기능을 한다.

 

도서관마다 어린이 독서교육 전문가를 두는 것은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자리잡은 전통이다. 1900년에는 전미도서관협회에 어린이 전문가 분과가 따로 만들어졌으며, 미국 최초로 어린이 독서 전문가 양성학교가 설립됐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했듯, 미국의 독서 교육은 말 그대로 백 년의 계획을 실현하는 셈이다.

이러한 전통은 미국 대부분의 학교가 사서교사를 두고 있는 현실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에도 독서 지도교사가 있지만 전문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다. 미국은 14개 주에서 사서교사의 자격요건으로 도서관학에 관련된 석사학위를 필요로 한다. 아이들의 인성 교육을 책임지는 직업이다 보니 요건이 깐깐할 수밖에 없다.

미국 학교에서 사서교사의 임무는 대단히 중요하다. 실제로 사서교사의 존재 여부에 따라 학생들의 학습능력이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01년 텍사스 주정부가 실시한 조사에서 사서교사가 있는 학교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높은 학업성취도를 보였다.

그러나 미국 역시 인터넷이 보편화하고 전자오락이 유행하면서 아이들의 관심이 책에서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국예술진흥재단이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17세 청소년의 경우 ‘교과서와 관계없는 책은 전혀 읽지 않는다’고 답한 학생이 1984년 9%에서 2004년 19%로 늘어났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년에 한 권이라도 책을 읽은 성인의 비율은 61%에서 57%로 줄어들었다.

문제는 독서습관이 빈부격차를 반영한다는 것. 이는 소득이 높은 사람일수록 다독하는 경향을 보인 것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백인이 소수인종보다 열심히 읽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독서의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단체는 저소득층 자녀의 독서 교육에 힘쓰고 있다. ‘누군가를 도와 차의 시동을 걸게 하다’는 뜻의 NGO(비정부기구) ‘점프스타트’는 형편이 넉넉지 않은 가정의 미취학 아동에게 독서 교육을 제공한다. 1993년 15명의 대학생으로 시작한 이 단체는 현재 4000명 가까운 자원봉사자를 거느린다.

‘독서 교육에는 되도록 빨리 개입하는 게 좋다’는 이들의 교육철학은 독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한다. 금전적 빈곤이 정서적 빈곤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는 미국 사회의 노력은 갈수록 교육격차가 빈부격차를 재생산하는 한국 사회에 많은 함의를 던진다.

스탠퍼드= 김수경 통신원 sookim76@gmail.com

 

FRANCE] 책 안 읽으면 대학 못 가는 입시 시스템

“우화 작가 라 퐁텐의 작품 ‘이리와 양’을 다음 주까지 외워오세요.”

프랑스의 초등학교에서는 유독 시를 외워오라거나 단편소설, 희곡 등을 읽어오라는 숙제가 많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의 선생님들도 단편소설 ‘검은 고양이’ ‘그림자와 나’, 짧은 희곡 ‘엄마! 엄마! 배가 아파요’ ‘펭귄의 모험’ 등을 친구끼리 등장인물을 바꿔 읽어보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다양한 문학작품을 접하게 했다. 흥미로운 독서활동으로 책 자체에 취미를 붙이게 하려는 취지다.

수시로 열리는 읽기 평가는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주옥같은 단어들을 ‘내 것’으로 만들게 하려는 일종의 학습도구로 함께 읽은 책에 나온 단어 목록을 주고 각 단어의 뜻과 반대말, 비슷한 말 등을 적게 하는 시험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읽기 평가는 이어졌다. 중학교 때는 2주에 한 번꼴로 권장도서를 읽고 주제와 핵심인물을 파악하는 시험 문제들이 주를 이뤘다. 중학교에서도 장르별로 지속적으로 책 읽을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어딜 가나 자연스럽게 책을 집어들게 된다. 등굣길에 책을 보면서 가거나 점심시간을 쪼개 책과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재미있는 책을 친구들끼리 추천해주고 그 내용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풍경도 흔했다. 하루에 한 권꼴로 책을 읽던 프랑스 친구 안나는 “책은 내게 초콜릿과 같아. 없으면 허전하고 몹시 갈구하게 되니까…”라고 말했다. 이렇게 책을 ‘음미’하던 그는 특히 프랑스어 성적이 우수했다.

고등학교 독서교육의 목표는 분석력과 비판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 배운 동화나 우화가 다시 독서 자료가 되기도 했다. 어렸을 때 접한 친숙한 작품을 좀더 색다른, 자신만의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나도 초등학교 때는 그저 외우기만 했던 ‘이리와 양’을 다시 읽게 됐고, 이 작품에 주석(Commentaire de texte)을 다는 과정을 통해 비평 능력을 기를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쌓인 독서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치르는 프랑스어 능력평가(Baccalaureat de Francais)를 통해 종합적으로 평가된다. 고교 졸업 및 대입 자격을 평가하는 이 시험은 프랑스어 과목에 한해서만 3학년이 아닌 2학년 때 치르게 된다.

논술 등으로 구성된 이 시험의 특징은 자신이 펼칠 주장들의 근거를 지금까지 읽은 책에서 인용하게 한다는 것. ‘지금까지 접한 연극 작품들과 독서를 바탕으로 일인극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해 쓰시오’ ‘자서전을 읽을 때는 반드시 제삼자가 그 인물에 대해 쓴 전기를 먼저 참고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읽은 책들을 인용해 쓰시오’ 등의 문제는 웬만큼 독서량이 확보되지 않고는 쓰기 힘든 문제들이다.

뉴미디어의 발달로 프랑스에서도 독서량이 줄고 있다는 통계결과가 언론매체를 통해 종종 발표된다. 최근 프랑스 일간지 ‘라 크루아(La Croix)’는 프랑스 성인들이 읽는 독서량이 20년 전보다 4% 줄었다고 보도한다. 이처럼 조금씩 사그라지는 독서문화를 되살리고자 정부에서는 도서관 폐관시간을 늦추고 지역별 도서관 예산을 늘리는 등의 방식으로 ‘독서 강국’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고 현지 언론매체들은 전한다.

박혜진 코리아넷 프랑스어판 에디터 haejin_park@naver.com

 

[FINLAND] 신문활용교육으로 ‘독서형 인간’ 기른다

유럽이나 북미 대륙을 여행할 때 만나는 가장 부러운 풍경 중 하나는 작은 시골 마을의 노천카페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는 모습이다. 핀란드는 지구상에서 이 모습 그대로 책을 즐기는 국민이 가장 많은 나라일 것이다.

핀란드에는 ‘독서형 인간’이 가득하다. 국민의 77%가 매일 1시간씩 독서한다는 통계가 있다. 도서관 이용률은 67.8%, 인구 1000명당 신문구독 부수는 518.4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 더욱 부러운 것은 이른 저녁을 먹고 난 뒤 온 식구가 모여 한두 시간씩 책이나 신문을 읽는 문화. 이렇게 하는 동안 핀란드인의 몸과 마음에는 자연스레 ‘읽기 DNA’가 생겨난다.

10년 전 핀란드로 유학 갔다가 현지에서 결혼하고 정착한 이지영 씨는 “핀란드 사람들에겐 대대로 내려오는 교육 원칙이 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하루 2시간 바깥바람 쐬기 △많이 움직이기와 함께 ‘4대 원칙’으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자기 전에 책 읽기”라며 “그 덕분인지 대부분의 아이가 별다른 학습 없이 문자를 습득한다”고 소개했다. 이런 원칙이 아이가 평생 ‘읽기’를 사랑하게 만드는 바탕이 된다.

학교에 진학해도 읽기 교육은 이어진다. 핀란드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일찍부터 신문활용교육(NIE)을 시킨다. 주한 핀란드대사관에 따르면 핀란드 학생의 3분의 2는 신문이나 만화 읽기 동호회에서 활동한다. 학생의 61%가 거의 매일 신문을 읽고, 85%는 한 달에 여러 번 신문을 본다. 학생이 신문을 보면 구독료를 반액 할인해줄 정도로 읽기를 강조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대부분 신문을 정독한다.

책을 많이 읽는 나라지만 핀란드 사람들의 집에는 책이 그리 많지 않다. 한 권 가격이 보통 45달러, 우리 돈으로 5만원이 넘을 만큼 비싸기 때문이다. 대신 주로 도서관을 이용한다. 사실 도서관 시스템이 잘돼 있어 굳이 책을 사지 않아도 누구나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

핀란드 사람들은 평균 한 사람당 1년에 21권의 책을 대출하는데, 책을 많이 읽는다는 일본의 1인당 공공도서관 대출 권수가 1년에 4.1권인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다.

핀란드의 도서관은 단순히 책만 빌려주는 공간이 아니다. 지역 도서관에서는 ‘책 힌트’라는 이름으로 신간 소개, 읽으면 좋은 책 리스트, 서평 등 다양한 내용을 담은 정보를 제공한다. 도서관 사서들도 열정적이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일주일에 2회 정도 사서가 지역 내 학교를 방문해 읽기 교육을 비롯한 특별수업을 진행한다.

‘읽기’를 강조하는 문화, NIE 및 지역도서관 활성화는 핀란드 사람들이 ‘읽기’를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평생 즐길 수 있게 하는 밑바탕이다.

이경선 자유기고가 dayoung1404@naver.com
*참고도서 : ‘핀란드 교육의 성공’(북스힐)

 

[JAPAN] 일본 ‘국민독서의 해’ 행동계획 발표

많은 곳의 일본 초·중학교에서는 매일 1교시가 시작하기 10분 전, 교실 안이 조용해진다. 교사도 학생도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꺼내놓고 읽기 시작한다. 전국 초·중학교의 69%가 실시하는 ‘아침독서’ 시간인 것이다.

1988년 지바(千葉)현의 한 교사의 제창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학급 붕괴’가 거론되던 90년대에 전국의 교사들이 동참하면서 번져나갔다. 뜻을 같이하는 교사들이 모여 ‘아침독서 추진협회’를 만들기도 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아침독서를 실천하는 초·중학교는 일본 전국에서 2만6000여 개교, 참가 인원은 960만명에 이른다. 아침독서 덕분에 “아이들이 침착해지고 독서 습관이 몸에 붙었다”고 정평이 나 있다.

독서 인구가 많기로 유명한 일본이지만 ‘활자 이탈’에 대한 경계는 대단하다. 독서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가 발 벗고 나서는 양상이다. 2001년 일본 국회는 ‘어린이 독서활동 추진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어린이 독서활동 확대를 위해 독자적으로 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할 것을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2002년에는 4월23일을 ‘어린이 독서의 날’로 정했다. 그리고 광역자치단체가 큰 틀을 정하면 각 기초자치단체가 계획을 구체화해 각 학교에 제안하는 식으로 활동 계획을 수립하는데 아침독서, 독서감상 발표회, 책 읽어주기, 책 소개 연극 등 다양한 이벤트가 전국의 학교와 공립도서관별로 기획된다.

일본 의회는 나아가 2005년 여야 만장일치로 ‘문자·활자문화 진흥법’을 제정했다. 컴퓨터 등 정보통신기기 범람으로 젊은 층의 활자 이탈 현상이 심각하다고 진단한 것이다. 공립도서관을 설치하고 사서와 자료를 충분히 갖춘다는 것 등이 골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2007년 10월에는 민간도 나섰다. 출판, 신문, 정치, 경제 등 폭넓은 업계 단체가 모여 재단법인 문자활자문화추진기구를 결성한 것이다. 화장품 회사 시세이도(資生堂)의 명예회장인 후쿠하라 요시하루 씨가 초대회장을 맡은 이 단체는 일본 사회의 내로라하는 명사나 지식인을 총망라해 독서장려운동의 중심축이 되고 있다.

이들은 일본 국민에게 신문과 책을 효과적으로 읽는 법을 가르치고 언어의 힘을 기르기 위한 갖가지 활동을 전개한다. 이에 힘입어 2008년 6월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이 2010년을 ‘국민독서의 해’로 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활자 이탈이나 언어 피폐는 경제 불안과 같은 심각한 문제라는 위기의식의 발로다. 11월에는 이를 위한 추진회의가 따로 발족해 ‘국민독서의 해 행동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사회인의 언어력(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심포지엄, 강좌 등을 기업이나 지역 단위로 개최하고 올 가을에는 ‘언어력 검정’을 시작할 계획이다. 청소년의 독해력이나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 학력 단계에 맞춰 문장이나 도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측정한다고 한다. 2010년 10월에는 국민에게 폭넓은 참가를 요구하는 ‘국민독서의 해 제전’을 실시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신문사들도 활자 이탈을 막기 위한 활동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사는 사내에 ‘활자문화추진회의’를 만들어 각종 관련 행사를 주최하거나 지원한다. 각 언론사가 진행하는 신문활용교육 활동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문자활자문화추진기구와 공동으로 ‘업무를 살리는 독서술’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책 덕분에 우리는 선인들의 사상이나 경험, 미의식을 알 수 있고 동세대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 활자문화의 역사 없이 인간의 창조력이나 기술 발달도, 경제 사회의 진보도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역할이 없어지는 일은 없다.”

자타가 공인하는 독서가인 후쿠하라 문자활자문화추진기구 회장의 독서론이다.

도쿄=서영아 동아일보 특파원 sya@donga.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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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mode=view&code=210000&artid=200907301809265

 

ㆍ핀란드 고3 요한나 - 한국의 고3 이지영

“정말 이상하게 들리는데요.”

핀란드 살로고등학교 3학년 요한나 투오미넨(18)의 눈이 커졌다. 기자가 “한국의 네 또래 고등학생들은 방과후에 학원과 독서실에서 새벽까지 공부를 한다”고 전했을 때 요한나의 첫 반응이 그랬다. 요한나는 되물었다. “왜 그래야만 하나요.”


요한나는 핀란드의 고등학교 3학년이다.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서 100㎞ 정도 떨어진 소도시 살로에서 살고 있다. ‘언어치료사’가 되기 위해 대학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종합대학인 투르크대학과 폴리테크닉(기능대학)에 입학지원서를 넣었다.

지난 5월29일 집으로 요한나를 찾아갔다. 투르크대학 공대 교수인 아버지 알루이스 투오미넨이 함께 기자를 맞이했다. 알루이스는 “핀란드의 교육을 취재하러 왔다니 기쁘다”며 “핀란드 교육은 자율과 평등이 특징이고 강점”이라고 한마디로 정리했다.

지난 2000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년에 1번씩 각국 15세 학생(한국은 고등학교 1학년)들의 학력을 비교 평가하고 있다.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다. 한국은 2000년, 2003년, 2006년 세 차례 모두 상위권에 올랐다. ‘전 세계에서 공부를 가장 많이 하는’ 한국 학생들로서는 당연한 성취였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이란 영예는 핀란드에 돌아갔다. 핀란드는 3회 동안 단 1항목에서도 4위 밖으로 밀려나지 않았다.

기자는 요한나에게 “핀란드 고3의 생활을 알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요한나는 “고3이라고 다를 것이 없을 텐데 무슨 얘기를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알루이스는 “한국 학생들도 공부를 잘한다고 들었는데 핀란드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물었다.

요한나는 지난해 8월부터 졸업식이 있었던 지난 5월30일까지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것도 대학입학을 준비해야 하는 인문계 고3이었다. 그러나 요한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나 3학년 때나 다른 점이 거의 없었다”며 “대학입시 준비라고 해봐야 5월15일 치른 ‘대학입학자격시험’이고, 그것도 2주 전부터 수학 공부를 조금 더한 정도”라고 했다.

요한나를 인터뷰한 지 열흘 뒤에 서울에서 ‘한국의 고3생’ 이지영양(18·가명)을 만났다. 지영이는 서울 강북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지영이와 함께 나온 교사는 “성적만 놓고보면 전국에서 딱 중간 정도 되는 학교”라고 설명했다.

지영이의 성적은 반에서 1등이다. 3학년이 된 뒤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단다. 그러나 지영이는 여전히 조바심을 냈다. 지영이는 “외고나 과학고 애들에 비하면 바닥을 기는 수준”이라며 “1등을 해도 성적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지영이는 올해 3월에 고3이 됐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다. 지영이는 1년 전에도, 2년 전에도 고3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영이는 “사실 대학입시준비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하는 것 아니냐”며 “고등학교 1학년 때도 고3과 똑같은 스케줄로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흥미와 따분함

요한나는 오전 8시30분까지 학교에 간다. 보통 95분짜리 수업 4개를 듣는다. 수업마다 숙제가 딸려 나온다. 대부분의 숙제는 에세이 형식이다. 줄줄 외운 지식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적어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요한나는 “생물학을 특히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혹시 의대 진학에 관심이 있느냐”고 물었다. 요한나는 “그럴 생각이었으면 화학이나 물리를 먼저 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생물학도 약간 도움이 되긴 했겠지만 그보다는 흥미가 있고 재미가 있어서 더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학교수업은 오후 3시30분이면 끝난다. 이는 이날 해야 할 공부도 함께 끝난다는 의미이다. 요한나는 “집에 가서 또 공부를 한다는 것은 학교에서 그만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숙제는 하지만 별도로 학교 밖에서 더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동갑내기 지영이는 오전 6시30분이면 잠을 깬다. 7시40분까지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씻고 아침밥 먹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지만 지영이는 어머니가 식사준비를 하는 동안 틈틈이 영어단어를 외운다. 학교 수업은 8시10분부터 시작된다. 그 전에는 자습시간이다. 보통 문제집을 풀며 시간을 보낸다.

정규수업은 오후 4시면 끝이 난다. 그러나 하교는 아직 이르다.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방과후 보충수업이 있다. 물론 모두 대학입시와 관련된 과목들이다. 지영이는 가장 취약한 논술과 수학을 선택했다. 단 하루도 수업을 빼먹은 적은 없다.


여유와 속박

기자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보통 무엇을 하며 지내느냐”고 물었다. 요한나는 “먼저 숙제를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집 청소를 할 때도 있고, 강아지랑 산책을 한다”고 말했다. 요한나는 “언어에 관심이 많아 시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로 가서 세계 각국의 언어들을 배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인데 공부를 더하지는 않냐”고 물었다. 요한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 마테오란 이탈리아 친구가 우리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며 “마테오에게 영어와 핀란드어를 가르쳐주고 이탈리아어를 배운다”고 말했다.

요한나에게 조심스럽게 반 등수를 물었다. 요한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석차를 들어본 적이 없고, 알고 싶어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대신 “언어와 생물학을 잘하고, 수학을 못한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고 했다. 핀란드 학교에서는 각 과목을 4~10점으로 평가한 뒤 학생들에게 성적을 알려준다. 4점이면 낙제다. 요한나는 “2학년 때까지 수학성적이 좋지 않았다”며 “올해에는 수학공부에 조금 더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요한나는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학교는 생활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한 번 실패하더라도 다른 길이 있고, 또 되돌아갈 여유가 있다. 기자를 만난 날 요한나에게 가장 급한 일은 ‘졸업파티’ 준비였다. 그리고 올해의 숙제는 무엇보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었다.

비슷한 시간, 지영이는 정신 없이 학교를 나와 집으로 가고 있었다. 수학과 영어 과외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수학은 지영이가 제일 자신 없어하는 과목이다. 지영이는 “중학교 때 뉴질랜드로 2년 동안 유학을 다녀왔다”며 “서울에 있는 친구들 대부분이 선행학습을 했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온 뒤 수학 진도를 따라가는 데 엄청나게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영어 과외시간에는 토플과 텝스를 공부한다. 지영이는 “영어는 제일 자신 있는 과목”이라면서도 “대학입학 원서를 쓸 때 외부조건으로 토플과 텝스 점수가 필요한 경우도 많기 때문에 따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과외수업이 없는 날에는 학원에서 언어영역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과외와 학원수업은 오후 9시가 돼서야 끝난다. 다음 코스는 독서실. 매일 새벽 1시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한다. 하루에 잠자는 시간은 많아야 5시간.

주말이 되어도 지영이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학교를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오전 8시까지 독서실로 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평일과 같다. 지영이는 “오전 8시에 (늦게) 가는 이유는, 그 시간이 되기 전에는 독서실이 문을 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영이는 집에서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지 않는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돈을 쓸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영이는 “참고서 등이 필요할 때만 따로 타서 쓴다”며 “고등학교 1~2학년 때는 시험 끝난 날, 소풍가는 날에는 그래도 하루 정도 놀았는데 고3 들어서는 한시도 그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지영이에게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하나씩 갖고 있는 인터넷 미니홈피도 없다.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아” 일찌감치 폐쇄했다.

지영이는 사실 성적 말고는 고민이 없다. 이성에 대한 생각도, 사회에 대한 관심도 없는 편이다. 모든 고민과 잡생각은 명문대학 입학 뒤로 유예돼 있기 때문이다. 지영이는 “대학에 가도 천국이 펼쳐져 있지 않으리란 사실은 잘 안다”면서도 “그래도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과 두려움

요한나가 되고 싶어하는 언어치료사는 핀란드에서도 생소한 직업이다. 요한나는 “작년에 학교에서 우연히 언어치료사란 직업이 있다는 말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됐다”며 “원래 다양한 언어에 관심이 많아 나에게 적합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진로를 결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함께 상담을 한 부모와 선생님 모두 요한나의 결정을 존중했다. 아버지 알루이스는 “자신의 선택과 만족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딸이 ‘내가 뭘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아 격려를 해줬다”고 말했다. 또 “만약 지금의 결정을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돌아나올 방법은 많다”며 “핀란드의 대학에서 학생이 전공을 바꾸는 것은 아주 쉽고, 또 일반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요한나는 재수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요한나는 “시험성적이 기대만큼 잘 나올 것 같지는 않다”며 “(대학에 떨어지면) 1년 뒤에 다시 시험을 치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대학입시학원은 없지만) 집과 도서관에서 공부하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떨어진다’란 말이 나올 때 아버지의 인상이 잠시 찡그려졌다. 알루이스는 “네가 공부를 조금 더 열심히 했으면 좋았잖아”라며 딸의 얼굴을 흘겨봤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알루이스는 “앞으로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많다”고 말했다.

요한나는 기자를 만난 다음날인 5월30일 살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여학생들은 화려한 드레스를, 남학생들은 깔끔한 정장을 입고 졸업식장에 모여들었다. 교장이 100여명의 졸업생을 한명씩 단상으로 불러냈다. 대부분의 졸업생 가족들이 참석해서 강당이 비좁았다. 뒤늦게 온 가족과 친구들은 강당 밖에서 스크린을 통해 졸업식을 지켜봤다.

대학 합격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요한나의 가족들은 졸업식을 마친 뒤 이웃들을 집으로 초대해 조촐한 축하파티를 벌였다. 다시 만난 요한나는 밝은 표정으로 “어차피 대학에 들어가서 석사과정까지 공부할 계획이기 때문에 (떨어져도) 미리 기초를 탄탄히 만들고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요한나의 가족들은 6월이 되자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다. 알루이스는 “앞으로 한 달은 전화도 받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영이는 영어교육과 진학이 목표다. 영어는 “잘하고, 또 좋아하는 과목”이라며 “교직이 주는 보장성과 안정성이 가장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또 “지금보다 성적이 더 올라가면 법대 진학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영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재수다. 지영이는 “대학에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란 생각에 매일같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특별히 해소를 한다기보다는 ‘나는 할 수 있다’란 자기위안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지영이의 올 여름방학 일정은 이미 정해져 있다. 지영이는 “수능시험이 너무 급박하게 다가오고 있어 도저히 놀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점수가 만족스럽지 않은 사회탐구영역을 학원에서 보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영이에게 “고등학교 생활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다. 지영이는 “그래도 나는 공부가 ‘죽도록 싫어서 못하겠다’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바람이 있다면 일주일에 단 몇시간이라도 학교에서 성적과 상관없는 수업을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비 없고등수 없고…핀란드 학업성취도 ‘최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int Assessment)’를 실시한 적이 있다.

각국의 만 15세(한국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학력과 학습배경(생활실태) 등을 조사하는 사업이다. 한국도 3번 모두 참가해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3회에 걸친 평가에서 가장 뛰어난 국가는 핀란드였다. 2000년 첫번째 평가에서 읽기 소양 1위, 수학적 소양 2위, 과학적 소양 3위에 올랐던 핀란드는 3년 뒤에는 읽기와 과학 1위, 수학 2위, 문제해결 능력 3위를 차지했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핀란드 교육제도를 연구하는 붐이 일었다. 핀란드는 가장 최근에 평가가 이뤄진 2006년에도 과학적 소양 1위, 읽기와 수학적 소양에서 2위에 올라, ‘세계 최고의 교육강국’임을 증명했다.

세계 각국에서 문의가 잇따르자 핀란드 국가교육청은 2004년 ‘핀란드가 PISA에서 성공한 배경’이란 공식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가정, 성별, 경제상황, 모국어와 관계없이 교육 기회를 평등하게 할 것 ②지역에 관계없이 교육하고 성별에 따른 분리와 차별을 부정할 것 ③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할 것 ④선별하지 않은 기초 교육을 실시할 것 ⑤모든 교육단계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협동하며 활동할 것. ⑥시험과 성적에 의한 등수 제도를 없애고 발달 시점에 서서 학생을 평가할 것 ⑦교사는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것.

<살로(핀란드) | 글·사진 홍진수기자 soo43@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