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은 애초 민족문화 연구라는 장기적인 취지로 설립됐는데, 지난 40년 동안 그에 충실하지 못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본질적인 위상 회복에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안병욱 신임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원장이 취임 일성을 밝혔다. 28일 오후 기자들과 만난 안 원장은 “세종의 집현전, 정조의 규장각 등 국가의 학문·학술 정책을 이끌어갔던 사례들을 뒤이어, 민족문화를 집대성하고 세계적 수준으로 교류하는 데에 한중연이 ‘기능적 중추’ 구실을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고도의 심부름’ 기능을 회복하겠다”고 하는 등 여타 연구기관과는 구분되는, 국가적 차원의 학문·학술 정책의 기초 단위로서 한중연의 구실을 강조했다. 가톨릭대 명예교수(역사학)인 안 원장은 지난 9월 한중연 원장으로 선임됐고, 지난 11월13일 취임했다.
지난 정권 때 한중연은 전임 원장이 ‘국정교과서’ 편찬심의위원을 맡는 등 ‘정치적 입김’ 논란에 휩싸였던 바 있다. 이에 대해 안 원장은 “일부 연구원이 개인 차원에서 ‘국정교과서’ 검토 등에 참여했으나, 조직으로서 한중연과 국정교과서는 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보다는 “한국학의 본산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위상과 신뢰 회복을 한중연의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또 “내부 역량을 새롭게 배치할 큰 그림이 필요하다”며, 국가적인 차원의 학술·학문 정책의 수립 등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요청이 필요하다고도 지적했다.
앞으로의 중점 추진 사항으로, 한중연은 ‘장서각 소장 한글 기록문화 유산 집대성 연구’를 꼽았다. 한중연 장서각은 기존 왕실자료뿐 아니라 민간에서 수집한 고문헌 17만책을 보유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간찰, 소설 등 다양한 형태의 한글 자료 5000여건이 포함되어 있다. 전통 한글 자료는 한문 자료에 견줘 극히 일부만 연구된 상태로, 앞으로 장서각에 소장된 한글 자료를 집대성하는 사업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토지> <태백산맥> 등 현대 대하소설의 원류라 할 수 있는 고전 대하소설 <완월회맹연>(180책), <동의보감> 언문본 등이 포함된다. 

2027년까지 10년 동안 연간 3억원을 들여 번역과 주해, 디지털 데이터베이스 구축, 심화 연구까지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한중연 쪽은 “조선시대에서 근대 개화기에 이르기까지 한글을 기반으로 표출하고 전개한 사상·문화·전통지식·생활사를 망라하는 우리 인문정신문화에 대한 학제간 융복합 연구를 실행하여, 방대한 전통 한글자료의 세계사적 가치 제고 및 공유의 토대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