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5일 화요일

청소년 인문학 강좌 현장

2012년 6월 3일 오선영 씨(조선일보 맛있는공부 기자)의 기사, 답 없는 고민...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을 돌아보다를 여기에 옮겨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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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인문학 강좌 현장에 가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의 부분들에 대해(On the parts of animal)'란 글에서 '손은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다목적 도구'라고 했습니다. 여느 동물과 달리 인간은 엄지손가락의 기능 분화 덕분에 물건을 붙잡고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됐거든요. "

토요일이었던 지난달 26일, 연세대 신촌캠퍼스 외솔관 내 한 강의실.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산하 HK문자연구사업단이 개최한 '2012 봄 학기 청소년 인문학 강좌'를 들으려 100여 명의 고교생이 모였다. 이날의 주제는 '손, 몸짓, 말, 문자'. 김남시 박사(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의 열강에 객석에 앉은 학생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세상 접하는 새로운 시각 갖게 됐죠”
쳇바퀴 도는 다람쥐처럼 집과 학교, 학원을 오가며 국어·영어·수학 공부에 매달리던 우리나라 청소년의 삶에 작은 변화가 일고 있다. 지금껏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인문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 이 같은 열풍을 반영하듯 최근 청소년 대상 인문학 강좌 개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날 강연장에서 만난 고교생들은 하나같이 “인문학 덕분에 세상을 접하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민다혜(18·서울 혜원여고 3년)양은 “이과생이지만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 독서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학 중”이라며 “인문학을 공부할수록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학문과 연구 분야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동갑내기 친구 사이인 유의현·조채환(16·서울 광영남고 1년)군은 학교 교사의 추천으로 나란히 강연장을 찾았다. 유군은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는데 이런 강좌를 통해 다양한 학문을 접하며 나 자신을 탐색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조군은 “이제껏 단 한 번도 내가 쓰는 물건이나 손의 역할, 손과 문자의 관계에 대해 관심 가진 적이 없었다”며 “오늘 강연을 듣고 나니 사람의 감정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말’과 ‘문자’로 표현돼 왔는지 쉽게 이해된다”고 했다.

인문학 교육의 효과는 사고력·상상력·창의력 등 세 가지 ‘힘(力)’으로 입증된다. 인문학자들이 청소년 인문학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윤주옥 박사(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교수)는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청소년 인문학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요즘 대학생은 다짜고짜 ‘교수님, 그래서 답이 뭐예요?’라고 묻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설명부터 받아쓰려는 거죠. 주입식 교육에 길들어 있다 보니 스스로 읽고 느끼고 생각하는 힘이 부족해진 탓입니다.”

◇호기심·창의성 발현에 ‘최적의 수단’

기사 이미지
지난달 26일 ‘2012 봄 학기 청소년 인문학 강좌’ 현장을 찾은 고교생들이 김남시 박사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산하 HK문자연구사업단이 마련한 이번 행사는 오는 23일까지 계속된다. /한준호 기자 gokorea21@chosun.com
김용민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인문학연구원 부원장)는 “인문학 공부는 규격화된 사고를 탈피하는 데 특히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입시용 공부에 쫓겨 허덕이는 동안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창의성’을 키우는 데 인문학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학창 시절엔 ‘나’가 없습니다. 창의력은 말 그대로 남과 다른, 자신만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힘을 일컫는데 그걸 기를 수 없는 환경이란 거죠. 그런 점에서 인문학 공부는 학생들에게 ‘달리 생각할’ 기회를 열어줍니다. 오늘 강의가 (우리가 늘 보던) ‘손’에 대한 색다른 관점을 제시한 것처럼요.”

김남시 박사는 “(대학 입시란 미명 아래) 학생의 호기심을 유예시키는 현 교육 상황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제대로 된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 건 대학 가서 해도 된다”며 지레 막아서는 기성세대 때문이다.

◇자문자답 습관으로 참된 자아 발견

학교 공부하기도 벅찬 상황에서 인문학 공부를 들먹이면 대다수 고교생은 한숨부터 내쉰다. 하지만 “인문학 공부는 결코 거창하거나 어렵지 않다”는 게 전문가의 공통된 조언이다.

윤주옥 박사는 “인문학 공부의 출발점은 질문”이라고 말했다. “요즘 학생들은 자기 생각 없이 누가 시키는 대로 하려는 경향이 강해요. 무슨 일을 하든 자문자답하는 습관을 가져보세요.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그 작품이 왜 좋은지 따지고 공부하기 싫을 때면 그 이유를 곰곰이 떠올려보는 겁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 정말 하고 싶은 일 등으로 질문 범위를 확장시켜가다 보면 자신에 대해 좀 더 깊이 성찰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히 사고력도 발달하게 되고요.”


◇철학·과학·경제… 어려운 인문학 재밌게 풀어내… 가볼 만한 '청소년 인문학 강좌'

주 5일 수업제가 시행되고 인문학 교육 열풍이 불면서 여기저기서 청소년 대상 인문학 강좌가 개설되고 있다. 인문학을 중고생 눈높이에서 쉽고 재밌게 풀어주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주제에 따라 유적지 탐방 등 체험 프로그램과 결합된 상품도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http://www.nlcy.go.kr/) 인문학 강연이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이 프로그램은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인문학 서적 저자를 한 명씩 초청, 무료 강연을 펼치는 형태로 진행된다. 4일 현재 6월 강연은 마감된 상태. 7월 이후 강연은 신청할 수 있다. △영화 읽기와 글쓰기(강유정·7월 21일) △S라인을 꿈꾸는 청춘에게(김종갑·8월 17일)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배병삼·9월 15일) △청소년, 철학하라(서동욱·10월 20일) △괴테의 ‘젊은 베르터의 슬픔’(김경후·11월17일) △과학자의 서재(최재천·12월 8일) 등 다양한 주제별 강좌가 예정돼 있다. 10월 이후 강연 참가 신청은 9월 3일부터 28일까지 받는다.

연세대 인문학연구원(inmun.yonsei.ac.kr) 산하 HK문자연구사업단이 개최하는 ‘2012 봄 학기 청소년 인문학 강좌’는 오는 23일까지 매주 토요일 진행된다. ‘문자로 만나는 세상’이란 주제로 △세계 여러 문자의 변화와 발달(연규동·9일) △한자 ‘맞’보기, 문화 엿보기(김은희·16일) △한글 이전의 우리 문자(이전경·23일) 등의 강좌가 대기 중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도서관도 청소년 대상 인문학 강좌를 활발히 열고 있다. 광주시교육청 ‘청소년 인문학 교실’이 대표적. ‘2012 학생 인문학교실 상생의 숲’이란 이름으로 열리는 이 프로그램은 오는 16일부터 9월 1일까지 1학기 과정이, 9월 15일부터 11월 24일까지 2학기 과정이 각각 진행된다. 전체 강좌를 ‘비전 인문학’과 ‘리더십 인문학’으로 구분, 역사·철학·경제·문학·법·국악·정치리더십·인문학 심화 등 8개 교육과정으로 구성한 게 특징이다. 이 밖에도 △인천 서구도서관 ‘고려왕조 강화 천도시대’(6월 28일~7월 12일) △충남 천안시중앙도서관 ‘인문학 작가와의 만남’(~6월 15일) △제주시청소년수련관 ‘I-my-me-mine, myself’(~11월) 등 여러 기관에서 청소년 대상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참석 희망자는 해당 거주 지역 기관에 예정된 인문학 강연이 있는지 미리 확인해두면 편리하다.

2012년 6월 1일 금요일

우리는 지금 충분히 가난하고 평화로운가

우리는 지금 충분히 가난하고 평화로운가
-권정생 5주기, 그의 문학과 삶이 남긴 이야기


한국의 어린이문학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 권정생. 지난 5월 17일은 권정생 선생의 5주기였다. 5주기를 맞아 그의 미발표 원고를 묶은 몇 권의 책이 더 나왔고, 대표작이라 불리는 『몽실 언니』는 개정판이 출간됐다. 기일을 즈음하여 그의 삶과 문학을 되짚는 다양한 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나비의 6월 특집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권 선생이 자신의 글을 통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를 기억하고 되새기고 싶었다. 문학보다 삶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했던 그이기에, 안상학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사무처장은 권 선생의 작품을 읽기 전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먼저 알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권 선생의 삶을 먼저 알면 작품을 훨씬 풍부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권정생 문학의 토대가 된 그의 삶 이야기는 이번 특집 중 이주영 선생의 글에서 엿볼 수 있다.(▶아직도 휴전선이 그대로 있단 말인가?) 권정생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주영 선생은, 전쟁과 가난, 질병으로 “항상 죽음을 마주보아야” 하는 삶을 산 권정생이 “세상에 태어나 그냥 죽는 게 억울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항일투쟁기와 해방과 전쟁과 독재사회와 민주화운동을 지켜보면서 하고 싶은 말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몸으로 할 수 없으니 억울해서 그 말을 동화로 썼다”는 것이다.

때문에 권정생의 동화에는 “가난한 백성들이 겪은 해방과 전쟁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며 평화의 염원을 담고 있다. 권정생은 “바로 현재 지금 이 땅에서 평화로운 삶을 가꾸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권 선생은 원고료와 인세로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이후에도 ‘자발적 가난’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글로 생긴 돈을 어려운 아이들한테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언을 실천하기 위해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만들어졌다. 재단이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에서 사무처장 직을 맡고 있는 안상학 시인에게 들었다.(▶“너도 꼭 무언가에 귀하게 쓰일 거야”)

이번 특집에서 권정생의 문학에 대해 글을 쓴 교사 김도균은 그의 문학을 ‘똥’의 문학으로 풀이한다.(▶‘똥’의 미학, 미완의 어린이문학) 그에 따르면 “권정생의 이야기 곳곳에서 ‘똥’은 의식적으로 되풀이되어 나타”나는데 “권정생의 ‘똥’은 사람이 스스로를 되돌릴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꾸밈없는 상태”이자 “사람다운 세상으로 바로잡기 위해 누구나가 가장 먼저 갖춰야할 조건”이다. 김도균은 권정생의 ‘똥’이 ‘씻김’과도 같다고 말한다. 

그는 권정생 문학의 이 같은 원초적인 정직과 자연스러움에 주목하면서도 “권정생의 문학 그대로가 오늘날 우리 어린이문학의 새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며 권정생의 문학을 “미완의 어린이문학”이라고 평했다. 권정생의 이야기에는 “어른의 욕망”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권정생을 추모하고 기리는 사람들이 모인 똘배어린이문학회는 권정생을 읽고 자신을 성찰한 글을 묶어 최근 『내 삶에 들어온 권정생』이라는 한 권의 책을 펴냈다. 그중 권정생의 『초가집이 있던 마을』 문학기행을 다녀온 기록이 있어 이를 받아 실었다.(▶권정생이 살던 마을과 피난길을 따라) 권정생 문학의 자취를 따르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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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특집 가운데서 눈에 띄는 대목들.
이주영 선생:
그가 저 세상을 여행하다 잠시 쉴 때면 한반도를 내려다 볼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휴전선이 그대로 있단 말인가? 아니 이젠 바로 전쟁까지 하려고 해? 아이구 답답한 것들아.’ 하면서 쪼그리고 앉아 울지도 모른다. 팔푼돌이네 삼형제처럼 눈물을 펑펑 흘리며.

김도균 선생:
권정생의 ‘똥’은 사람이 스스로를 되돌릴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꾸밈없는 상태를 말한다. “모든 목숨은 모름지기 가장 밑바닥에서 엉망진창으로 견뎌봐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바로 알게 된다.” 권정생의 『밥데기 죽데기』에 나오는 말이다. 권정생의 ‘똥’은 사람다운 세상으로 바로잡기 위해 누구나가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조건이기도 하다.

안상학 선생:
무엇보다도 권정생 선생의 삶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삶을 사셨던 분이기에 이런 글을 쓰셨을까를 고민하고 연구한 후 작품을 보면 훨씬 풍부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알 수 있는 거죠. 그래야만 아이들에게도 선생의 깊은 마음을 전달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예컨대 『강아지똥』도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전쟁과 폭력을 볼 수 있나요? 있습니다. 자기 땅을 떠나서 낯선 곳에 떨어진 흙덩이에서는 일본에서 태어난 선생의 모습을 봅니다. 수레바퀴가 곧 으깨어버릴 듯 달려오는 상황은 어떤가요? 가까스로 살아나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설정에서 무엇을 알 수 있나요. 전쟁에서 살아남아 고국, 고향으로 돌아온 선생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연결해서 보면 강아지똥은 권정생 선생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삶을 알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며, 그래야 아이들에게도 선생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