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8일 수요일

1992--"기다려줘"

 

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대 마음에 이르는 그 길을 찾고 있어

그대의 슬픈 마음을 환히 비춰줄 수 있는
변하지 않을 사랑이 되는 길을 찾고 있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대 마음에 다다르는 길
찾을 수 있을까 언제나 멀리 있는 그대

기다려줘 기다려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줘 기다려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대 마음에 이르는 그 길을 찾고 있어

그대의 슬픈 마음을 환히 비춰줄 수 있는
변하지 않을 사랑이 되는 길을 찾고 있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대 마음에 다다르는 길
찾을 수 있을까 언제나 멀리 있는 그대

기다려줘 기다려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줘 기다려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줘 기다려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줘 기다려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철학과 정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의 글을 읽었습니다. 제목은 철학과 정의. 박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박노자는 오늘날의 한국의 실상을 '재분배적 정의가 사라진 착취공장형 국가'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김상봉 교수와 같은 분을 '복지주의적 진보 세력의 후보를 위해 지원유세하는 진정한 철학자''라고 추켜세우고 있습니다. 보편의 상공에서 특수성이라는 이름의 땅으로 뛰어내리기는 쉽지 않은데 김상봉 교수는 구체성이라는 이름의 땅에 발을 딛고 서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의의 문제. 정의의 개념은 철학의 출발점이라고 박 교수는 말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가 말하듯, 육아, 교육, 의료, 환경, 취업기회와 같은 부문들을 균등하게 나누는 사회로 나아가는 사회가 정의로워지려는 사회이겠죠.

 

또한 "복지주의자들의 국회 입성은 착취공장형 국가가 약간이라도 다수의 권익이 지켜지고 사회적 정의가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변모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봐야 합니다."라고 박 교수는 말합니다. 하지만 '미래의 씨앗'이 이렇게 뿌려진다는 사실을 확인한다고 하더라도, 야당의 원칙 없는 단일화만 주목하는 언론 속에서는 서민 수탈경제 심판과 대안 중심의 진보재구성, 그리고 아직 우리 시민들에게 속속들이 소개되지 못한 '기본소득' 정책 등에 대한 보도는 눈을 부비고 살펴보아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현재 우리의 '공론의 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슨 정당과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의제 설정의 기능의 파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박노자 교수가 확인한 '미래의 씨앗'이 지닌 긍정적 밝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부정적 어둠을 거듭 확인하였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은 어둡고, 갈 길이 멉니다.

 

철학과 정의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그저께 전남대 철학과의 김상봉 교수님이 은평(을)에서 출마하는 진보세력 후보 금민 (사회당)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지원유세를 벌이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 번 제가 김 교수님을 존경하는 이유 중의 하나를 깨달은 것입니다.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정치 참여란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인문학의 여러 갈래 중에서도 철학이라는 학문은 너무나 보편화, 추상화되는 원칙들을 탐구하는 영역이다 보니 그 추상, 보편의 상공에서 특수성이라는 이름의 땅으로 뛰어내리다가는 다리 다칠 수도 있는 것이죠. 쉽게 이야기하면, 독일 관념 철학에서의 숭고의 개념 연구에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거리에 나서서 "내가 누구 누구를 지지한다"고 호소하는 것은 고역일 수 있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직업적 정치인에게 숭고의 개념 탐구를 하라면 좀 힘들어 할 걸요?). 그런데 비록 힘들더라도 김상봉 선생님이 그리 하시는 게 참 존경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철학자에게 금은보석보다 더 귀중한 게 正義이기 때문입니다. 정의의 개념이란, 철학의 출발점 중의 하나죠. 그런데 이 정의라는 것은, 특수적 (구체적) 정치 영역에서의 실천과 직결돼 있어 가끔가다 철학도에게까지도 (비록 힘들고 마음이 내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치 참여를 강하게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죠. 1968년, 파리에서의 바리케이드에서의 사르트르를 생각해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정의라는 게 무엇인가요? 여러 차원에서는 여러 가지 정의 (定義)들이 가능하지만, 사회적 정의란 결국 만인들에게 사회적 자원들을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일 겝니다. 사회적 자원이란, 사회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육아, 교육, 의료, 환경, 취업기회와 같은 부문들인데, 이를 균등하게 나누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인 셈이죠. 우연의 일치인 출신배경이 무엇이든간에 본인에게 필요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본인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실업자들이 없는 완전교용이 이루어지도록 국가가 적어도 노력이라도 하는, 그런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에 가깝죠. 그리고 사회의 상당수 구성원들이 가난하거나 중상층 하부 부분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회 정의"는 결국 육아, 교육, 의료 등의 부문의 점차적 무상화를 의미할 수밖에 없죠. 그렇지 않고서는 "만인에게의 균등한 분배"란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혹자가 제게 "그러면, 백성의 대다수는 한문은커녕 언문도 못배우고 의료혜택이고 뭐고 없었던 전통시절에는 사회적 정의가 없었느냐"고 물을 터인데, 제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전통시대에는 "재분배적 정의"는 없었지만 ("규휼"이라는 최소한의 형태로는 있긴 있었죠), 국가는 민중의 생활에 개입하지도 않았던 것이죠. 심지어 세곡을 거둘 때도 동네에 들어가서 가가호호 거두지 않고 그냥 동네 전체의 몫을 동임을 통해 전달 받곤 했죠. 세금을 내고 부역을 다하고, 흉악범죄만 저지르지 않는 이상 다수의 백성은 대체로 국가를 그냥 몰라도 됐던 거죠. 그러나 지금 우리 모두들은 국가와 자본에 의해서 늘 "동원"된 상태에 있습니다. 의무적으로 국가에 유리한 "국민윤리"부터 자본의 이윤추구에 필요할 수 있는 수학, 지배자들의 언어인 영어 등을 배우고, 지배자들을 지키기 위해 군에 가서 살인의 術도 익히고 (그리고 살인교육을 살인교육이라고 부르는 순간에 바로 마녀재판도 당하고....), 지배자들이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시사적 내용을 "텔레비전 뉴스"라는 이름으로 맨날 듣고 (바보상자를 아주 처리한 일부의 쾌활한 군자, 숙녀를 제외하고서는), 그리고 우리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놓아 팔고 이를 사줄 자본가가 없으면 결국 실의 상태에 빠지기도 하죠. 우리는 국가와 자본에 의해서 촘촘히 조직된 사회에서 사는 것이고, 매일씩 자본가들의 잉여가치를 생산해내면서 국가의 통제를 받죠. 늘 동원되고 상품으로 거래되고 잉여수취에 이용되는 "조직 사회" 구성원들에게 최소한의 재분배적 정의라도 없다면, 이게 정상적 사회의 그림자도 안보이는 곳이죠. 이는 그냥 하나의 커다란 착취공장일 뿐이죠.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이 지옥에다가 최소한의 사회적 정의의 요소를 도입하는 현실적인 길이란 실제 두 가지입니다. 1987년과 같은 대투쟁이 있을 경우에는, 비록 착취자들의 정부라 하더라도 결국 양보를 해서 일부의 복지주의적 요소를 도입하죠. 1988-89년에 비록 초보적 형태긴 하지만, 의료보험이 일단 전국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건 과연 우연입니까? 그런데 대투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복지주의적 요소의 도입은 의회 안팎에서의 아주 오래되고 질긴 지구전의 결과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긴 싸움이 가능해지려면, 복지주의적 지향의 민중 정치인들이 일단 의회에 들어가서 복지확충의 구체적인 안이라도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복지주의자들의 국회 입성은 착취공장형 국가가 약간이라도 다수의 권익이 지켜지고 사회적 정의가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변모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 비록 정치 그 자체는 인문학자의 체질과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 복지주의적 진보 세력의 후보를 위해 지원유세하는 철학자는 진정한 철학자일 것입니다. "구체적 정의"라는 이름의 땅이 없다면 "보편", "추상"이라는 이름의 하늘도 결국 없기 때문이죠.
 
철학자가 지지한다고 해서 진보 세력의 후보가 이길 보장이 있느냐, 결국 그에게 표를 던져봐야 사표가 아닐 것이냐 물어볼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한 답 역시 간단합니다. 100명의 아이들에게 어릴 때에 음악을 가르친다고 해서 과연 다 음악가가 될 것인가요? 물론 아니지만, 그 중에서는 한 명의 모차르트가 나타나도 이미 만족스러운 결과고, 열 명이라도 차후에 음악을 좋아하고 자주 듣고 즐기면 이미 태만족입니다. 일단 그 100 명에게 음악의 기초를 배워주는 것은 미래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고, 거기에서 어떤 싹이 언제 틀 것인가는 하늘의 섭리입니다. 사회주의자에게 던지는 한 표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합니다. 지금의 "승리"가 문제가 아니고 복지 국가 쟁취를 위한 한 걸음으로서 사회주의자가 민초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게 미래 "승리"의 씨앗이죠. 내일이 아니고 모레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언젠가 이 착취공장의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고 십장들의 폭력과 폭언을 없애고 작업의 강도를 낮추고 노동자끼리의 충성경쟁을 그만두고 자유시간에 음악이라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는 기나긴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봐야겠죠.  

 

 

 

 

2010년 7월 24일 토요일

'일어나'-88만원세대와 기본소득

"오늘날 20대들의 또 다른 이름은 88만원 세대다."라고 시작하는 선언문을 읽고 있습니다. 은평구의 아르바이트 청년 88명이 이 지역 보궐선거에 후보로 나온 사회당의 금민을 지지하는 선언문입니다.(출처: 은평구 ‘아르바이트’ 청년 88명, 금민 후보 지지 선언)

 

세상에나.

 

많고 많은 선언문들을 읽어보았지만, 편의점과 PC방의 아르바이트 청년들의 선언문은 처음 읽어봅니다. 아마도 인류역사상 아르바이트 청년의 선언문은 처음 나온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이 선언문이 발표될 때, <88만원세대>라는 책을 내어 '88만원세대'라는 말 자체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만들었던 우석훈 씨가 김광석의 '일어나'라는 노래를 불렀다 합니다. 우석훈 씨, 무척 애를 쓰긴 합니다만(그리고 저보다는 노래를 잘 부르지만), 그래도 웬지 피곤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아예 내친김에 김광석이 노래 부르던 모습을 검색을 통해 찾아보았습니다. 김광석의 목소리에 들어가 있는 '슬픈 힘'을 새삼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겠죠. 그런데 노래 가사가 다시금 가슴 떨리게 합니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거야 /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노래 가사의 후렴구가 자꾸 입안에 맴돕니다.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어어어어럼!"

 

 

88만원 세대에게 기본소득을!

은평구 ‘아르바이트’ 청년 88인 금민 후보 지지 선언

 

오늘날 20대들의 또 다른 이름은 ‘88만원 세대’다. 그것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이다. 오늘날 20대의 대부분은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취업을 하려고 해도 말 그대로 바늘구멍이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들이 저임금 중노동의 비정규직이거나, 아르바이트의 연장일 뿐이다.

 

'88만원 세대'가 곧 우리의 비극적인 삶이지만, 이를 극복할 해결책은 마땅치 않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다시 성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더라도 노동자, 서민 그리고 88만원 세대의 삶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10여 년의 양극화를 통해서 체험했다.

 

이명박 정부도, 민주화 10년도 우리의 처지를 개선할 뾰족한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지난 해 미국발 경제위기로 한국경제가 추락할 때도 이명박 정부는 국민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고 임금을 삭감하면 일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고통분담만 있고 고통을 분담한 대가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어차피 모든 20대들의 고용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비정규직 88만원 세대를 더 양산하는 것에 그치는 이명박 정부의 20대 수탈정책을 더 이상 지지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장하는 대안은 은평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기호 9번 금민 후보가 강조하는 전국민 기본소득제 도입이다. 국가가 모든 국민들에게 노동여부와 상관없이, 또 소득이나 자산에 대한 심사 없이 무조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것만이 우리 20대 88만원 세대들의 미래를 희망차게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국민이 투표권뿐만 아니라, 당당한 국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보장할 것을 국가에 요구할 수 있다.

 

심각한 양극화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이라는 우리의 요구는 과도하지 않다. 당장 실현할 수 있다. 지금까지 비생산적 방식의 투기불로소득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겨왔고, 오늘날의 경제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으면서도 실제로 책임은 지지 않은 고소득 불로소득 생활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동안 이행하지 않았던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져야 하며, 국가는 여기서 마련된 재원으로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우리 20대들은 먹고살기 위한 취업이 아닌, 꿈을 실현하는 직업을 찾을 수 있다. 보다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공부를 더 할 수도 있고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직업을 창출할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더 이상 88만원 세대가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 희망 세대로 거듭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88만원 세대로서의 삶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기 위해 7.28 은평을 재선거에서 기본소득을, 기호 9번 금민 후보를 지지할 것이다. 평생 고난을 감당해야만 하는 우울한 미래가 아니라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장밋빛 미래를 오는 7월 28일에 선택할 것이다.

 

2010년 7월 22일

 

기본소득과 금민 후보를 지지하는 88만원 세대 은평구 ‘아르바이트’ 청년 88명

 

<편의점>
고보경 권오현 김강석 김동훈 김명순 김문수 김미진 김병수 김수자 김시진 김일수 김창현 류은영 민용기 박보은 박소연 박충은 박효경 배기백 석광섭 송창훈 안민영 여현지 오경식 오세원 오은주 왕지정 유성진 윤강의 윤덕희 이강희 이기명 이미애 이병학 이성희 이아름 이정훈 이중선 장강희 장우성 전재훈 천정우 최윤호 홍예나 황영진 (이상 45명)

 

<PC방>
강현수 김소연 김연정 김준우 김지권 박혜원 송지선 신종철 심영환 오인영 유아린 이은주 이주희 이준이 장솔이 전민주 조아해 주지인 최   솔 한상우 (이상 20명)

 

<기타 아르바이트>
강영환 김시원 김태규 김현철 민하늘 박수영 박지영 박진영 사가영 송형택 안용수 안창규 엄민지 유진아 윤주호 이덕선 임상철 장영휘 전정현 정대윤 천현우 최고영 한태경 (이상 23명)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 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 없었지
인생이란 강물 위를 뜻없이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어느 고요한 호수가에 닿으면 물과 함께 썩어 가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끝이 없는 말들 속에 나와 너는 지쳐가고
또 다른 행동으로 또 다른 말들로 스스로를 안심시키지
인정함이 많을수록 새로움은 점점 더 멀어지고
그저 왔다갔다 시계추와 같이 매일매일 흔들리겠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가볍게 산다는 건 결국은 스스로를 얽어매고
세상이 외면해도 나는 어차피 살아살아 있는걸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가고
햇살이 비치면 투명하던
이슬도 한순간에 말라 버리지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번 해보는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생태 환경의 미래도 블로그에 달려 있다"

김훤주 기자의 글에서 한 대목을 가져옵니다. 김훤주 기자는 "생태 환경의 미래도 블로그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모든 운동은 스스로 미디어로 탈바꿈해야 한다"고도 말합니다.

보도 자료 따위는 대중을 바로 향하기보다는 기존 보도 매체를 향해 바라기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보도 자료를 내고 기자회견을 내고 신문·방송·통신 같은 기존 보도 매체에서 다루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 됩니다. 애써 한 노력이 아깝게도 헛수고가 됩니다. 운동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매체가 돼야 한다는 의무감과 스스로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 둘뿐입니다.

 

2010년 7월 22일 목요일

The IFLA Multicultural Library Manifesto – a tool for creating a better world

The IFLA Multicultural Library Manifesto – a tool for creating a better world

Kirsten Leth Nielsen Head of Multilingual Library, Deichmanske bibliotek/Oslo Public Library. Norway Kirsten-leth.nielsen@kie.oslo.kommune.no

 

WORLD LIBRARY AND INFORMATION CONGRESS: 73RD IFLA GENERAL CONFERENCE AND COUNCIL
19-23 August 2007, Durban, South Africa
http://www.ifla.org/iv/ifla73/index.htm

 

It's no coincidence that «The IFLA Multicultural Library Manifesto» is under construction in the beginning of the 21st century. It is long overdue. There are at least 6000 different languages and cultures on our planet today, and the development we are witnessing points more and more in the direction of a larger cultural diversity. Migration is increasing world-wide, resulting in a population where an increasing number of people have a transnational identity, an increasing number of people study abroad, and an increasing number of people want or need to live somewhere other than their homeland for a period of time. This is, on the whole, positive, but it also has its drawbacks. Never before has the distance between people been so small, yet so huge. Never before have cultures and languages been under such pressure and been so threatened, and never before have these pressures and threats loomed so large and been so frightening. Global warming is not the only destructive element threatening our world. The narrowing of languages and cultural identities is every bit as threatening to our human and cultural diversity – a diversity that is of at least as much importance for creativity and growth as our natural resources and climate are.

 

Definitions

Culture, multicultural and cultural diversity

 

Before I present the Manifesto, it's necessary to define some terminology. For our purposes, «culture» is defined in the following manner: «culture should be regarded as the set of distinctive spiritual, material, intellectual and emotional features of society or a social group, and that it encompasses, in addition to art and literature, lifestyles, ways of living together, value systems, traditions and beliefs». This definition can be found in the “UNESCO Universal Declaration on Cultural Diversity” from 2001, and it is this publication on which “The IFLA Multicultural Library Manifesto” is built. The terms “multicultural”, “multiculturalism” and “cultural diversity” are considered synonymous.


Cross-cultural and inter-cultural

 

In my many years of experience working in an international milieu, and as a member of IFLA's section for «Library Services to Multicultural Populations», I have found the terms Cross-cultural and inter-cultural are used in slightly different ways in different parts of the world. In this lecture, the term «inter-cultural» will be used to denote an equal dialogue between persons of a similar status, who are from different cultural backgrounds.

 

Positive aspects of development

 

As I've already mentioned, greater diversity and increased human interaction is for the most part positive. It generates synergy and creativity, and allows new cultural expression to evolve. I'd like to illustrate this with an example. A major exhibition of Norwegian silver had a silver coffee pot with a half-moon-shaped handle as its logo. The exhibition's title was «Norsk arvesølv», an expression that best translates as «Norwegian family silver». The silver coffee pot was made in Bergen in the year 1719 by an artisan from the German Hanseater, and the half-moon symbol was borrowed from the realm of Islam. The silver coffee pot is one of the most beautiful articles I have ever seen! Communication creates a broader understanding between people, and thereby creates a platform for a peaceful coexistence. As I've already stated, cultural diversity is just as important as biological diversity for the survival of the human race. I mention this again because it's an important point that cannot be emphasized enough.

 

To emphasize this yet again, I'd like to share a story with you. It takes place in the Middle East in the 1600's. A ship filled with immigrants arrives at a harbour in Levanten. The ship docks and a messenger is immediately sent to the country's ruler to petition for asylum. The messenger returns without having accomplished his mission. He has been told that the ruler sees no reason to grant the passengers the right to remain in the country. The immigrants' leader is a wise woman, who decides to brew a pot of strong tea. The tea, along with a cup of sugar, is sent with the messenger, who returns to petition the ruler once more. Upon arrival, the messenger informs the ruler «I have brought you the reason to grant us asylum», and asks him to produce a cup. He pours the tea, adds sugar, gives the cup back to the ruler and says «Please, drink! ». Afterwards, the messenger can return to the ship with the good news that the passengers can now disembark. With very simple means, the wise woman was able to demonstrate how the immigrants' presence in the country would contribute to society, and that they would become completely integrated with their new countrymen.

 

Negative aspects

 

At the same time, however, it's clear that the development we are experiencing today can and has many negative consequences. The fear that certain strong religious, ideological or economic groups will come to dominate, has already taken hold. The oppression of culture and language has in some cases caused a partial - and in many cases, complete – eradication of ethnic groups, and their languages and cultures. A lack of communication and dialogue sets the stage for misunderstanding and conflict. Too little contact between ethic groups, segregation and a lack of places where people of different backgrounds can meet and become acquainted, creates suspicion and creates an atmosphere in which prejudice, racism, discrimination and conflict can grow.

 

The library's role

 

This is where libraries come in. As centres for culture, information, learning and meeting, libraries have the possibility to be active initiators in a positive process of development. Libraries offer services that include everyone, regardless of social status, skin colour, or religious belief. As a value-neutral arena for learning, where access to uncensored information and cultural expression is the foundation on which services are based, libraries have a unique position. Libraries offer an access to information that enables all citizens to be active. As a meeting place, libraries set the stage for inter-cultural communication. This aspect will be addressed further, later on.

A long way to go!

 

But what must be in place for libraries to be able to develop good, operational multicultural services? Unfortunately, libraries today are not adequately equipped to meet these challenges. Only a very few geographic areas today have libraries that are able to meet the needs of the multicultural population to a certain extent. Even in countries where libraries are well-developed and well-functioning, we see that multicultural library services don't yet meet the requirements outlined in the Manifesto. I can use my own experience in Scandinavia – one of the richest and most peaceful areas on earth - as an example. Scandinavian libraries, both public and professional, have a high status on an international level, and are considered to be well-equipped and to be run with a high level of professionalism. Despite this, they do not measure up in the area of multicultural services. Despite Library Laws that guarantee free access to information to all citizens, the fact of the matter is that libraries' development has its roots in the middle class, with the consequences this implies: libraries are above all built by and for the Nordic Caucasian majority, by and large the middle class. This is mirrored in the staff, the services offered, and the collections' content. Library heads and librarians with linguistic or cultural background other than Nordic can be counted on the fingers of one hand. A strategic collections development, with a goal of contributing to cross-cultural understanding, is practically nonexistent. Patrons with a different linguistic background are not seen as a resource, but rather as a problem, and a group needing «special services». The status is more or less the same for professional and research libraries. The professional milieu has yet to accept the fact that many patrons are first-generation immigrants, or foreign students and researchers from around the world. It's clear that there are still many challenges that need to be met when forming services in The Multicultural Library. The Manifesto can be a useful tool in this start-up phase.

 

The Multicultural Library

 

The Multicultural Library is built on three important principles.
1. The Multicultural Library includes all types of libraries, not only public libraries.
2 Services are offered to both majority and minority groups and services to minority groups are integrated in services intended for everyone. Multicultural services are not a special service.
3 All together, services include also services adapted for cultural and linguistic minorities, with special emphasis on marginalized groups, such as refugees, asylum seekers, immigrants and indigenous groups.


Goal of the Multicultural Library

Library as an arena for learning

 

Libraries as arenas for learning are an accepted and documented concept. «Knowledge is power» is a wise expression. It is a fact that knowledge lays the foundation for understanding. Collections and services in libraries that contribute to an understanding of both majority and minority groups in society are part of the foundation of the Multicultural Library. «Language is power» is also an important expression, one that illustrates that she or he, who has the power of words, is well-equipped to participate fully in society. Media collections that contribute to an understanding and the learning of languages are important in this respect.

 

The library as cultural centre

 

One of the library's most important roles is to contribute to the preservation of linguistic and cultural expression, in order to make the world's cultural and linguistic diversity available to future generations. Indigenous groups are under extra pressure; linguistically, they represent small groups, based on oral traditions and often without written language. Culturally - because they have become highly marginalized in our increasingly technologic society. Libraries have an important function, in that they present and make available diverse cultural expression, expression that mirrors both local and global culture. Libraries must therefore place special emphasis focus on indeginous groups.

 

The library as a meeting place

 

Libraries have contact with a wide area and with many groups within the population, and have arenas that are open for everyone. This makes them ideal as physical meeting places where people from all groups in society can meet and become acquainted. Studies show that even if a patron does not necessarily have contact with and / or speak with other patrons, there is still a feeling of mutual understanding, created by seeing people of other cultures using the same services.

 

The Library as a shaper of attitude

 

All of these roles make the library a perfect arena for transmitting positive attitudes and values in relation to a multicultural and multilingual society – attitudes that contribute positively to society.

 

The library's role as a proponent of integration

 

All these roles also create an atmosphere that promotes integration. Via the acquisition of knowledge, citizens are given the tools necessary for understanding and accepting minorities. This again creates an atmosphere of inclusion. For new countrymen, information about the new country contributes to understanding of the society in which one now finds oneself. Linguistic competence is naturally the foundation for communication and participation. Access to language-learning tools of all kinds in the library makes possible the acquisition of language skills.

 

How to accomplish this?

Firmly rooted in management

 

On a meta-level, a clear political will, carried out by the library's administration, is obviously necessary before the Multicultural Library can exist and function. A strategy must be established by which the library's leadership feels these services to be an integral part of the library's services overall. This will then result in appropriate policies regarding recruiting and human resources, finances, services and content. Another prerequisite is that the policy must be decided upon with the cooperation of all relevant parties in the library's patron mass or in the local milieu, to ensure that policy reflects the demographics in the area.

 

Collections

 

The backbone of the Multicultural Library has so far been the physical collections. At the same time, the tendency has been toward electronic or virtual services, which are slowly replacing physical services. Services for immigrants and those who are in the area temporarily must reflect these groups' needs, in relation to cultural expression and information from the patrons' own languages and cultures, as well as material and services that introduce these patrons' cultures and languages to society at large. In effect, this means collections must include media in many languages, and reflect a broad selection of both large and small cultures and language areas.

 

Language without script and threatened cultures

 – a chapter for themselves


The Multicultural Library has, as mentioned, a special responsibility to acquire, preserve and make available cultural expression and knowledge from cultures where more or less everything is conveyed orally. This is an area in which libraries are well-equipped, based on staffs' professional and methodological competence. Tendencies in society today can lend a helping hand in this
respect. Oral transmission is experiencing a renaissance – large storyteller conferences are not unusual many places in the world – including places where this has not previously been a tradition.

 

Services

 

Educational programs, user instruction and informational material the library provides, are all part of the gateway to the library and local community. Informational services the library provides are also an important part of this. In order to create services that are relevant and efficient, the library must cooperate with those for whom the services are intended. The most important aspect in these services is that the content and interface accommodate the patrons’ needs.

 

Multilingual access

 

In an environment where many mother tongues exist, all types of information must be made available in languages the patrons understand. This means that information explaining services is produced in the relevant languages, that the collection is searchable in the relevant languages, and – last but not least – that languages used on printed signs in the library’s physical buildings reflects the patrons’ various languages. A Multilingual approach to how we communicate with our patrons in cyberspace is also a necessity in our age - to create a better dialog.

 

Staff

 

That familiarity creates a feeling of safety is a well-known phenomenon, and applies to patrons of “ TheMulticultural Library”. Experience has shown that we seek contact with those people with whom we identify the most, consciously, or unconsciously. This is only one reason the staff of “ The Multicultural Library” needs to reflect the demographic of the local area and the group it services. But the collective competence of the staff must also reflect the patron group. Even though it is often not possible to have representatives on staff for all patron groups, a staff member who represents a large immigrant group in the local population will nonetheless be able to exemplify some of what all immigrant groups have in common. In addition, it is of course important that the entire staff acquires knowledge of the cultures and languages represented in the library. Finally, the staff must be able to communicate well with many types of patrons. Knowledge of inter-cultural communication is obligatory, as is knowledge awareness of mechanisms that create racism, discrimination and exclusion.

 

The Manifesto in context

 

As previously mentioned, ”The Multicultural Library” is a concept that encompasses all types of libraries, regardless of content and function. It is therefore not an isolated concept, but rather flexible and dynamic. Many countries already have laws in place that guarantee good library services to the population, free of charge. In addition, there are three other library manifestos which supplement “The IFLA Multicultural Library Manifesto”: ”IFLA/UNESCO Public Library Manifesto”. 1994, ”IFLA/UNOSCO School Library Manifesto”. 1999 and “The IFLA Internet Manifesto” 2002; all documents that establish important principles for library development. A brochure designed by the section for Library Services to Multicultural Populations, ”Raison d’être for Multicultural Library Services” is also useful when lobbying politicians and private sponsors. The brochure exists in 12 languages, and is available from IFLA’s website, as are the other documents I’ve mentioned. These documents can be used at a local level, in the library, when planning services and deciding policy. When services and policy are ready to be put into action, additional help is needed, which can be met by the myriad of guidelines developed by various libraries. However - many of these have not implemented elements from ”The IFLA Multicultural Library Manifesto”. In order to expedite this process, a revised edition of” Multicultural Communities: Guidelines for Library Services”, guidelines developed by Library Services to Multicultural Populations Section, will be published in the autumn of 2007.

Status and continuation -”The IFLA Multicultural Library Manifesto”

 

“The IFLA Multicultural Library Manifesto” was given status as an official IFLA manifesto when it was approved by the Governing Board of IFLA during the World Library and Information Congress: 72nd IFLA General Conference and Council in Seoul, Republic of Korea in August, 2006. This approval was the first step toward the goal of having the Manifesto approved by important international cultural organisations. Library Services to Multicultural Populations Secton in IFLA is now working intensely in order to attain the final goal for the Manifesto – to have it approved by Unesco, so that it can have the same influence as two other important Manifestos - ”The Public Library Manifesto”, ”The School Library Manifesto”.

 

Implementation – vision or reality?

 

Many will say that these are impressive words, but that it is naive to believe that ”The Multicultural Library” is attainable. There are many factors that point in that direction. Large groups in the global society, not only including indigenous groups, live in poverty, and library services are not their first priority. A legal right to library services is the exception, rather than the rule. A large percentage of the world’s population doesn’t have access to library services at all. And of course “The Multicultural Library” can only be realised by the use of extensive resources. The concept requires the ability and willingness to adapt and change; a new attitude and way of thinking must be implemented throughout the chain of development. This is in fact the most challenging aspect – today, only idealists work in this field.

 

I will still allow myself to postulate that a well-developed library is one of many prerequisites for a healthy economic and cultural global development. Libraries alone can’t change the world, of course, but we can be a major player in initiating change. Similarities can be seen in the crisis of global warming. If we don’t undertake efficient means for change, we risk an increased level of conflict between groups, stagnation in economic development, and a dilution in the world’s languages and cultural inheritance.

 

We have no choice!

 

It may feel like fighting windmills, undertaking a project as all-encompassing as “The Multicultural Library”. My only comment is that we have no choice. As professionals with education and expertise in library and information services, we have a professional, social and moral responsibility for global development. We have the knowledge and insight needed to change development in the right direction. My personal experience, after having lived more than 50 years, is that anything is possible, even if the results will only be harvested in the distant future. With “The IFLA Multicultural Library Manifesto”, we will be a step further. We have a document we can use in a very real, practical way, to effect change.

 

References:

 

IFLA/UNESCO Public Library Manifesto. 1994
http://www.ifla.org/VII/s8/unesco/eng.htm

 

IFLA/UNESCO School Library Manifesto. 1999
http://www.ifla.org/VII/s11/pubs/schoolmanif.htm

The IFLA Internet Manifesto. 2002
http://www.ifla.org/III/misc/im-e.htm

 

Unesco Universal Declaration on Cultural Diversity
http://unesdoc.unesco.org/images/0012/001271/127160m.pdf

 

Convention on the Protection and Promotion of the Diversity of Cultural Expressions
http://unesdoc.unesco.org/images/0014/001429/142919e.pdf Audunsson, R. (2005).

 

Public Libraries and the Necessity of Low-Intensive Meeting Places. Journal of Documentation, Vol 61, 3, 429-441

협객과 리빠똥과 필부필부

재미있는 글이다. 통렬하다. 보수진영의 분열이 가속화할 거라고 보아도 될 만하다. 또한 <중앙일보>라는 보수언론 권력이 이명박 정부와 거리두기를 본격적으로 할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보아도 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협객'도 아니고 '리빠똥'도 아니다. 진지하게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해 초석을 다지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 사람들은 필부필부의 시민들이다.

 

[중앙시평] ‘리빠똥’은 가라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 했다. 치세(治世) 뒤엔 난세(亂世)가 온다. 난세엔 군웅이 할거하고 이들을 제압해 우뚝 선 자가 새 왕조의 문을 연다. 중국 왕조사를 이런 순환 사관(史觀)으로 풀이할 때, 한나라의 고조 유방(劉邦)이 가장 특징적인 인물이다. 유방은 동네의 한갓 건달에 지나지 않았다. 라이벌 항우보다 집안 내력도 미천했고 학력 또한 보잘것없었다. 힘이나 싸움으로 천하장사 항우를 어찌 당할까. 그런데도 집권은 항우가 아닌 유방이 했다. 어째서일까. 유방의 통합적 리더십 때문이라고 중국의 인문학자 이중톈(易中天)이 갈파한 바 있다. 일본의 한 학자가 유방 집단에 관한 연구를 했다. 유방 집단은 임협 협객정신으로 무장된 강인한 조직이다. 중국사를 관통하는 이 협객정신이 권력 창출의 에너지라는 분석을 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 소설 『수호지』의 영웅들, 이를 탐독했던 마오쩌둥의 신중국 건설 등이 이 협객정신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우리의 이른바 민주정권도 일치일란을 거듭하며 5년마다 새 정권이 들어선다. YS, DJ, 노무현 정권 모두 개국공신, 가신그룹이 있었다. 상도동계, 동교동계, 386세력들이 그들의 주군을 선생님처럼, 형님처럼 모시며 거리투쟁을 했다. 가난한 살림에 잔돈푼 쪼개 쓰며 선생님을 위해, 또는 형님을 위해 감옥도 마다하지 않았다. 민주화를 위한 의리와 협객의 조직체였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정권을 잡은 뒤 권력을 나누고 농단했지만 한때 민주화 투사였다는 점에서 그래도 얼마쯤 접어주고 이해할 만한 구석도 있었다.

그러면 이명박(MB) 정권은 어떤가. 독재와 맞서 거리투쟁을 한 적도, 고통분담의 쓰라린 추억도 없다. 시대적 사명을 위해 조직된 협객단체라기보다 ‘고소영’처럼, ‘S라인’처럼 이해집단끼리 뭉친 컨소시엄 형태라 할 만하다. YS, DJ정권이 그나마 민주화를 위한 가치의 정치를 추구한 집단이라면 MB정권의 추종자들은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이익추구 세력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지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영포횐지 선진 무슨 연대인지 하는 조직을 보라. 이들이 잘나갈 때 회원이 4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조직인가. 결국 임기 5년 내내 자리를 탐내며 끝없이 탐욕을 부리는 권력 대기조 아닌가. 촛불시위로 이명박 정권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을 때 이들 조직이 대통령을 위하여 또는 보수정권을 위하여 짹 소리라도 한번 낸 적이 있는가. 허공의 숫자를 남발하며 그들이 마치 권력을 창출해낸 투사고, 용사인 양 거드름 피우며 국민을 깔보고 사찰하지 않았는가.

적어도 이명박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진 사람이라면 다 안다. 몰락하는 중산층이 더 이상 좌파에게 나라살림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한 표를 던졌다. 기업을 크게 해본 후보에게 정권을 맡기면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믿었기에 한 표를 던졌다. 청년실업 구제해줄 사람 그밖에 없다 해서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몰렸다. 종부세 폭탄 때문에 못 살겠다고 강남 아줌마들도 나섰다. 이래서 500만 표가 넘는 차이로 승리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엉뚱한 자들이 권좌 뒷전에서 재미 보고 위세 부리며 권력을 농단하고 있지 않은가.

작가 김용성의 작품 중에 『리빠똥 장군』이 있다. 1970년대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사회풍자 소설이다. ‘리빠똥’은 똥파리를 거꾸로 쓴 말이다. 한 대령이 장군이 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권력에 아부하고 부하를 닦달하자 부관이 나폴레옹 시대 유명 장군이라면서 리빠똥 장군이란 희화적(戱畵的) 별명을 붙여준다. 권력을 향해 날아드는 똥파리들의 행군은 군사정권이든 민주정권이든, 좌파정권이든 우파정권이든 고금동서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해줄 뿐이다.

쉽고 간단하게 요약하자. 재산을 쌓고 힘을 축적하는 게 보수정권이라면 이를 나누어 고르게 잘 쓰자는 게 진보정권이다. 지금은 부를 쌓고 물을 가득 채우며 군사를 기르고 힘을 축적해 부국강병의 터전을 다질 때다. 그런데 지방선거 끝나자마자 닥치는 이 레임덕 강풍을 어쩔 것인가. 한 정권의 성패가 아니라 한 나라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긴 안목의, 폭넓은 정치적 조망이 필요하다. 진보 10년이면 보수 20년은 집권해야 부를 쌓고 물을 채워 균형을 이룰 수 있다. 똥파리 보수는 물러가고 건전한 진짜 보수들이 대연합을 해야 정권을 재창출할까 말까다.

‘리빠똥’ 무리들이 권력을 농단하고 권력 싸움에 정신을 가누지 못한다면, 이 정권은 역사 앞에, 그를 지지했던 국민 앞에 고개를 들 수 없게 된다. ‘리빠똥’의 척결, 이것이 세종시·4대 강보다 더 크고 화급한 과제다.

권영빈 경기문화재단 대표·전 중앙일보 사장

 

 

 

2010년 7월 21일 수요일

금민 후보와 진보정치의 개편

7.28 보궐선거에 은평을 후보를 입후보한 금민 후보와 '대안 중심 진보재구성' 즉 '진보대안연합'에 대하여 최승현 노무사의 글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출처는 금민 후보의 블로그에서.

 

진보의 미래, 은평 삼분지계부터

 

[투고] 진보적 지식인들 은평으로…진보정치 대대적 개편 암시

 

 

“김수행 교수는 민주노동당 당원 아닌가요?”


『자본론』 한국어판 번역자이자 진보적 경제학자인 김수행 서울대 교수가 금민 후보를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친구가 첫 번째로 보인 반응은 이랬다.


진보적 지식인, 노동자, 시민, 학생은 왜 은평으로 가는가?

김수행 교수가 민주노동당 당원(김 교수는 후원당원임-편집자)인 것은 몰랐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 보면 7월 한국의 진보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일은 놀랍다. 김수행, 김세균 교수 등 한국의 내노라 할 진보적 지식인들이 금민 후보를 진보진영 단일후보로 추대한 7월 1일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은평으로 향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발걸음이 심상치 않다.


진보신당이 금민 후보에 대한 지지를 결정한 18~19일을 전후해서는 더 많은 지식인들의 이름이 금민 후보 지지 대열에 올랐다. 촛불 당시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성을 논리적으로 설명해 촛불스타가 된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금민 후보 지원유세를 위해 은평에 갔다.


김수행 교수와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최영미 시인도 금민 후보 지원유세를 위해 은평으로 간다고 한다.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지난 대선 때, 진짜 금민 찍고 싶었는데, 눈물을 머금고 권영길에게 투표한 적이 있다. 사회당과, 생각보다 많은 일을 했었다만, 자주 안본 지 어느덧 2년 가까이 되는 것 같기는 하다. 하여간 기왕 나서기로 한 것, 최선을 다하기를 빈다.”며 가슴 뭉클한 금민 후보 지지 선언을 했다.

 

우석훈 “이번에는 금민을 지지하기로”

그 동안 사회당과 상관없는 것처럼 보였던 진보적 지식인들이 금민 후보 지지를 위해 은평을 찾는 것은 7.28 재보선 이후 진보정치의 대대적 개편을 암시하고 있다. 금민 후보가 말하는 ‘대안 중심 진보재구성’에 많은 지식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동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식인들만 은평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이미 728명의 노동자, 728명의 학생, 728명의 시민이 금민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진보신당 홈페이지에서는 ‘금민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선거운동 지원을 나가겠다.’, ‘금민 후보에게 후원금을 전달하겠다.’는 진보신당 당원들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번 더 생각해보면 6.2지방선거 이후 반MB연대의 압박에 몰린 진보정치세력이 ‘대안 중심 진보재구성’을 바라고 있고, 금민 후보는 그 열망의 기표가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보정치의 미래가 은평에서 시작된다

사회당에서 말하는 것처럼 현재 진보정치세력의 시대적 소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 ‘대안 중심 진보재구성’이다. 지난 6.2지방선거 과정과 선거 이후 진보정치세력이 묻지 마 반MB연대의 흐름에 휩쓸린 것은 국민들이 진보정치세력을 집권할 세력으로 보지 않고, 양보할 세력으로만 봤기 때문이다.


진보정치세력은 그 동안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서민수탈 경제에 반대했을 뿐, 집권하면 이를 어떻게 극복하겠다는 대안을 국민에게 제시하지 못해왔다. 당연히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소멸하는 것이고, 대안을 제시하면 진보정치 재구성뿐만 아니라 수순대로 한국 정치를 재구성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진보의 가치를 지키고, 나아가 진보정치를 재구성하기 위해서 금민 후보는 은평을 재선거에서 ‘전국민 기본소득제’와 같은 대안을 좀 더 정교하게 가다듬고, 정치적-사회적 의제로 제출해야 한다. 또 진보정치세력 전체를 대표해 반MB연대에 맞서 7.28 은평을 재선거를 완주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대안 중심 진보재구성의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한국정치의 삼분지계

진보신당의 금민 후보 지지선언으로 은평을 선거에서 이명박 정부 vs 야권연대 vs 진보대안연합의 구도가 균형을 갖췄다. 후보는 7명이지만 그 중 3명, 혹은 4명은 묻지 마 반이명박 후보 단일화 논의 구도 속에 묶여 있다. 은평을 재선거가 7명이 끝까지 완주하는 것으로 끝나든, 3명의 후보로 압축되든 이와 같은 구도가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구도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은 단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7.28 은평을 재선거 이후에 한국정치가 우선 은평삼분지계와 같은 균형을 갖춘 상태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금민 후보뿐만 아니라 대안 중심 진보재구성에 동의한 모든 진보정치세력 및 개인들은 7.28 재보선에서 ‘대안’을 대중적으로 제시해, 재구성된 미래 진보의 지지 대중을 전국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사족이지만 은평을 선거는 처음부터 지역선거가 아니었다.


7.28 은평을 재선거에서 금민 후보를 한 목소리로 지지한 힘이 재선거 이후 미래를 실현할 진보진영과 지지대중 모두의 화학적 결합까지 성공적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승현 / 노무법인 '삶' 대표 노무사 

 

 

2010년 7월 19일 월요일

책이란 무엇인가? --디지털시대, 책과 출판과 독서의 변화

Electronic reading devices are transforming the concept of a book

 

Digital tools advance beyond screens that talk and play videos, connecting readers to authors and online fan communities.

 

Los Angeles Times

July 18, 2010

 

참고: Monday: Chat about the future of reading

http://latimesblogs.latimes.com/readers/2010/07/chat-about-the-future-of-reading.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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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ma Teitgen, 12, thought the chemistry book her teacher recommended would make perfect bedside reading. Perfect because it might help her fall asleep.

Then she downloaded
"The Elements: A Visual Exploration" to her iPad. Instead of making her drowsy, it blossomed in her hands. The 118 chemical elements, from hydrogen to ununoctium, came alive in vivid images that could be rotated with a swipe of the finger.

Tapping on link after link, Teitgen was soon engrossed in a world of atomic weights and crystal structures. Three hours later, the seventh-grader looked up to see that it was 11 p.m., way past her bedtime.

 

"It was like a breath of fresh air compared to my textbook," said Teitgen, who lives in Pittsford, N.Y. "I was really amazed by all the things it could do. I just kept clicking so I could read more."

More than 550 years after Johannes Gutenberg printed 180 copies of the Bible on paper and vellum, new technologies as revolutionary as the printing press are changing the concept of a book and what it means to be literate. Sound, animation and the ability to connect to the Internet have created the notion of a living book that can establish an entirely new kind of relationship with readers.

As electronic reading devices evolve and proliferate, books are increasingly able to talk to readers, quiz them on their grasp of the material, play videos to illustrate a point or connect them with a community of fellow readers. The same technology allows readers to reach out to authors, provide instant reaction and even become creative collaborators, influencing plot developments and the writer's use of dramatic devices.

Digital tools are also making it possible for independent authors to publish and promote their books, causing an outpouring of written work on every topic imaginable.

If the upheaval in the music industry over the last decade is any guide, the closing of more bookstores and a decreasing demand for physical books will force authors and their publishers to find new ways to profit from their work.

"There is not a single aspect of book publishing that digital won't touch," said Carolyn Kroll Reidy, chief executive of Simon & Schuster. "It is transformational."

"The Master of Rampling Gate," a novella by Anne Rice published in 1991 as a paperback, illustrates some of the possibilities. The work tells the story of a brother and sister who inherit a remote mansion occupied by the undead.

The out-of-print title was given new life in March, when it was reissued in
digital form by Vook, an Alameda, Calif., start-up that sells titles for the iPad and iPhone. As a $4.99 application sold through Apple's iTunes store, "The Master of Rampling Gate" comes with video interviews with Rice and others. Rice speaks about her inspiration for her works and about the Gothic genre in which she writes.

Within the text are links to Web pages that elaborate on events and places in the story -- a description of the Mayfair neighborhood in London where the protagonists live or a history of the Black Death plague, which plays a key role in the fourth chapter.

"For me, this is a way to communicate with my readers, establish a connection with them and build a community around them," Rice said in an interview.

Vook (the name is a mash-up of "video" and "book") has published more than two dozen titles, including "Reckless Road," which describes the early days of heavy metal band Guns N' Roses. "Reckless Road" weaves in dozens of videos of the L.A. band's early performances and interviews with band members and groupies.

The videos and other digital features are designed to "project the emotion of the book without getting in the way of the story," said Brad Inman, Vook's chief executive and a former real estate columnist for the San Francisco Examiner. "We want to revive the passion for traditional narrative. Multimedia could be a catalyst for spawning more reading."

Vook does not disclose information about its finances or its payments to authors. Its biggest cost, Inman said, is the production of the videos.

Tim O'Reilly, whose O'Reilly Media in Sebastopol, Calif., is at the forefront of designing and distributing digital books over the Internet and on mobile devices, said technology has the power to "broaden our thinking about what a book does."

Owners of
"iBird Explorer," a digital book produced for the iPhone by field guide publisher Mitch Waite Group, can play the songs of more than 900 bird species. Using microphones, it can also capture the chirps and warbles of wild birds and match them against a database of bird sounds to help the "reader" identify the species.

In addition to displaying pages from a book, digital e-readers can read them aloud, opening up a literary trove for the blind and the visually impaired who have long had only a thin selection of audio and Braille books to choose from. Devices made by Amazon.com Inc. and Intel Corp. are able to convert text into speech.

 

"You now have the ability to make a book talk," said George Kerscher, head of the Digital Accessible Information System Consortium in Zurich, Switzerland. Kerscher, who studied computer science at the University of Montana and is blind, has spent two decades lobbying publishers to make books more accessible to visually impaired readers.

Digital technology is also transforming reading from a famously solitary experience into a social one.

The newest generation of readers -- the texting, chatting, YouTubing kids for whom the term "offline" sounds quaint -- has run circles around the fusty publishing process, keeping its favorite stories alive online long after they're done reading the books.

 

At online fan communities for popular fantasy series like "Harry Potter" and "Twilight," young enthusiasts collaborate on new story lines involving monsters, ghosts and secret crushes.

Fans in other forums, blogs and chat rooms weave alternative endings or side plots for their favorite works. One site,
FanFiction.net, features hundreds of short stories based on a series of young adult novels by Scott Westerfeld called "Uglies."

"They're extending the world by creating new characters," Westerfeld said. "That's what good readers do. They take apart the narrative engine and, examining the different parts, they ask how things could have been different." Authors are pulled into the scene by fans who barrage them with e-mail to share their reactions, ask how plots came about and glean hints of what will happen in the next novel.

"There's an ongoing feedback loop with my readers," said Westerfeld, 47, who splits his time between New York and Australia. He figures he's logged more than 30,000 e-mails from readers over the years. "They educate me a lot about the way they are reading. I'm a lot smarter about it now than when I was locked up in a room writing on my own."

He learned, for example, that writing about conflict can unsettle his younger readers.

"When two characters in my book have an argument, I get a lot of e-mail," Westerfeld said. "Adults see it as churn. But kids are far more affected by it, so I use it only when there is a real need in the story for conflict." Now that anyone with an Internet connection -- or even a cellphone -- effectively owns a digital printing press, the distinction between professional and amateur writers is rapidly blurring. Digital publishing has uncapped a geyser of creative output from authors who may never have made it into print or wouldn't have thought to try.

On
Textnovel.com, thousands of cellphone-toting authors write novels via text message, one or two sentences at a time. Aspiring writers can sign up on the free site and begin writing, either from phones or computers. Readers can follow the stories online or receive a text every time their favorite author adds a plot twist.

Shannon Rheinbold-Gee tapped out her 85,000-word thriller about teenage werewolves in just under five weeks using the Textnovel site. The former middle-school teacher figured she had no chance of getting a traditional publishing deal.

"I had absolutely no concept of where it was going to go," said Reinbold-Gee, 37, of Otego, N.Y. As she wrote, "I would just throw things out and hope something hit the target."

It did. The book, "13 to Life," won Textnovel's first annual contest and earned its author a three-book contract with the prestigious St. Martin's Press, including a $10,000 advance. The first installment came out in paperback in June and will appear in Wal-Mart stores in August.

Reinbold-Gee, who now writes under the name Shannon Delany, frequently asked readers to help her make decisions about plot and character twists in "13 to Life." At the end of Chapter 6, she asked which beau her main character, Jessica, ought to go to the prom with. Fans voted for Jessica to go stag -- and that's how Reinbold-Gee wrote it.

Textnovel, which is funded by contributions from its own members, is just one example of how the Internet has become fertile ground for creative amateurs.

On
Scribd.com, writers and digital packrats are building a huge swap meet for written works of every length, many of which once existed on paper.

Visitors can browse digital versions of novels and nonfiction books -- some by established authors, others by complete unknowns -- along with recipes for spinach calzones and 1950s-era manuals for building transistor radios, nearly all of which is free.

As in many places online, free content is the rule. Writers who are intent on making money will have to find creative ways to attract readers and build an audience. As the YouTube of books, Scribd provides a virtual printing press for budding writers and a community of potential readers. The company gets most of its revenue by selling advertising on the site.

A small portion of the titles on Scribd, roughly 15% of more than 20 million documents, is for sale. The prices, which are set by publishers, range from $1.99 for "The Dark Dreamweaver," a fantasy novel about an 11-year-old who ventures into a land of dreams, to a $27.99 book published by O'Reilly Media for designing Web pages. Scribd takes a 20% cut of those sales.

Trip Adler, a 26-year-old entrepreneur who started developing the site as a Harvard undergraduate, says it's on the verge of being profitable.

 

"It's like having a huge library at your fingertips, but with stuff you'd never think to look at," said Helen Black, a mother of five in Portland, Ore.

On Scribd, Black found a 1957 tourist map of Bemidji, Minn., where she'd gone to summer camp as a girl. She read a chunk of the Senate's healthcare reform bill, a document called "What's in a Can of Red Bull?" (partial answer: "meat sugar") and the 1894 diary of a woman traveling east from Oregon by wagon.

The proliferation of amateur content poses a conundrum for publishers, who must find a way to make a profit in a sprawling marketplace increasingly filled with free content.

 

"We've pretty much reached the point where the supply has now shifted to infinite," said Richard Nash, former head of Soft Skull Press, a small New York publisher. "So the next question is: How do you make people want it?" Part of the answer may be found on Goodreads.com, a digital library and social networking site where millions of members can log in and chat about any book they want, including many that will never see print.

Lori Hettler of Tobyhanna, Pa., runs one of the largest book clubs on Goodreads, with nearly 7,000 members chiming in from all over the globe. Discussions can go on for hundreds of messages, with readers passionately championing -- or eviscerating -- the club's latest selection.

A recommendation by Hettler can help little-known authors find an audience. Her recent picks include M. Clifford's "The Book" and D.H. Haney's "Banned for Life," both self-published efforts.

"Word of mouth goes a long way," Hettler said. "Once I review a book for one guy, he usually has someone he would like me to read, and then that guy has someone he would like me to read. ... It's this wonderful, endless cycle." Hettler may be broadening reading horizons, but some people worry that new technologies will diminish the classic reading experience.

Whereas printed texts often are linear paths paved by the author chapter by chapter, digital books encourage readers to click here or tap there, launching them on side journeys before they even reach the bottom of a page. Some scholars fear that this is breeding a generation of readers who won't have the attention span to get through "The Catcher in the Rye," let alone "Moby-Dick."

"Reading well is like playing the piano or the violin," said the poet and critic Dana Gioia, former chairman of the 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It is a high-level cognitive ability that requires long-term practice. I worry that those mechanisms in our culture that used to take a child and have him or her learn more words and more complex syntax are breaking down."

But Larry Rosen, a psychology professor at Cal State Dominguez Hills, said it was a mistake to conclude that young people learned less simply because "they are flitting around all over the place" as they read.

"Kids are reading and writing more than ever," he said. "Their lives are all centered around words."

Dr. Gary Small, director of the Center on Aging at UCLA and author of "iBrain," said Internet use activated more parts of the brain than reading a book did.

On the other hand, online readers often demonstrate what Small calls "continuous partial attention" as they click from one link to the next. The risk is that we become mindless ants following endless crumbs of digital data. "People tend to ask whether this is good or bad," he said. "My response is that the tech train is out of the station, and it's impossible to stop."

alex.pham@latimes.com

david.sarno@latimes.com

 


2010년 7월 18일 일요일

덴마크 오픈 액세스 위원회, 실행 권고안

공적 영역에서 생산된 연구 결과의 출판물을 생산 주체가 다시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출판(구독) 비용의 지속적인 증가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중소규모 기업체에 소속되거나 개인적인 연구자가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는 데 상당한 제약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오픈 액세스는 전 세계 국가에서 관심의 대상이며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들은 실행에 힘쓰고 있다. 덴마크 오픈 액세스 위원회는 덴마크에서 오픈 액세스를 실행하는 데 적용될 수 있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공적 자금으로 수행된 연구의 결과에 무료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덴마크의 연구 결과 출판물과 연구 데이터research data에 장기적인 접근을 보장하는 것을 중요한 의제로 둔다. 위원회가 제시한 권고 사항은 14가지로 다음과 같다.

1. 국가적 오픈 액세스 정책은 과학기술혁신부Ministry of Science, Technology and Innovation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2. 연구위원회와 연구재단이 오픈 액세스 정책을 수립한다.
3. 대학을 비롯한 연구기관은 오픈 액세스 정책을 수립한다.
4. 계량서지학적 연구 지표가 국가 오픈 액세스 정책에 조정되어야 한다.
5. 덴마크 연구 결과를 인터넷에서 이용하는 공동 포털을 만든다.
6. 덴마크 과학 출판사들은 오픈 액세스로 이동하는 것에 대한 토론을 준비한다.
7. 덴마크 전자연구도서관Denmark`s Electronic Research Library (DEFF)는 오픈 액세스 위원회의 권고안 이행을 조정한다.
8. 전문적인 매체나 커뮤니케이션 기관이 정보 전달과 토론,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
9. 국제적인 포럼을 통해 국가 연구회 간 오픈 액세스 정책 조정을 보장한다.
10. DEFF 컨소시엄 라이선스에서 오픈 액세스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킨다.
11. 오픈 액세스 리포지터리 연합Confederation of Open Access Repositories (
COAR)과 함께 활동한다.
12.대학 출판물에 포괄적인 장기적 접근을 할 수 있는 보존 서비스를 수립한다.
13. 전처리 연구 데이터에 대한 보존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접근을 할 수 있는 국가 계획을 세운다.
14. 폭 넓은 시각에서 과학 정보를 장기적으로 보존하고 처리하는 협력을 위한 주요 국제 포럼에서 활동한다. 주요 국제 협력 포럼으로는
Alliance for Permanent AccessDataCite가 있다.

위원회는 그린 OA가 골드 OA보다 현실적으로 협상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의견을 나타낸다.

 

출처:

http://www.openaire.eu/index.php

http://www.openaire.eu/en/about-openaire/news-a-events.html

2010년 7월 17일 토요일

'민심을 거꾸로 가면 레임덕 가속화된다'

이동관 씨는 '인사파탄' '소통 부재의 리더십' '자폐적인 인사'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민심을 거꾸로 가는 정치야말로 레임덕을 재촉할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투브에서 가져 왔습니다.

 

2010년 7월 16일 금요일

어린이놀이터 만들기를 통한 더 건강한 지역사회 만들기-KaBoom.org

소파 방정환 선생은 1923년 '어린이 선언'을 내면서 부속문서로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글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 글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나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오늘 제가 만난 소식 속에서 미국의 커붐(Kaboom.org)이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우르르꽝꽝'이라고 해야 할 단어를 단체 이름으로 쓴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이들이 펼치고 있는 활동이 바로 소파 선생이 말한 그 '놀이터 만들기'라는 점이 더욱 흥미롭습니다.

 

이 단체의 목적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를 각 지역사회에 만듦으로써 지역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나간다는 것입니다. 멧라이프 재단(Metlife Foundation)과 같은 곳에서 재원을 지원받고, 미국자원봉사자들(VOA, Volunteers of America)이 참여하는 등, 성공적인 사례를 미국 각지에 만들어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커붐의 누리집에 따르면 14년 동안, 1800개의 놀이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몇 가지 동영상을 옮겨놓습니다.

 

1. Active Kids are Healthy Kids

 

2. KaBOOM! Fighting Childhood Obesity

 

3. Innovation in Play

 

4. Playground Build: CaliforniaVolunteers

 

5. First Lady Michelle Obama Speaks at a Build

 

 

6. All About KaBOOM!

소박하면서도 소중한 기록

다음에 옮겨놓는 글은 <용인시민신문> 2010년 7월 14일자 "도서관과 함께 한 2년"라는 제목의 글이다. 글을 쓴 이는 신영희 씨. 도서관과의 첫 인연을 시작으로 도서관활동가가 되고, 이웃과 더불어 잘 살아야겠다는 새로운 자아의식이 싹트는 이야기른 찬찬하게 들려주고 있는 글이다. 아주 짤막한 글이지만, 한 여성이 도서관 활동을 통해 어떻게 '성숙'해졌는지, 잘 드러내어 보여주는 소박하면서도 소중한 기록이다.

 

우리 아파트에 이사 온 지 6개월쯤 지났을 무렵 놀이터에서 큰아이 같은 반 친구 엄마가 도서바자회를 한다며 와 보라고해서 간 것이 나와 도서관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지치기도 하고 내 안에 에너지가 소진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던 그때 독서토론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틈틈이 책을 읽으며 책 속에서 현실의 힘듦을 잊고 꿈을 꿀 수 있었다.

도서관과 나와의 인연은 평소 나답지 않게 큰 고민 없이 참여하면서 계속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할 수 있다는 편안함에 부담 없이 도서관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소식지 만드는 일도 맡게 되었다.

소식지 만드는 일을 통해 나는 많이 컸다. 우선, 아이들 엄마는 ‘컴맹’이라고 놀릴 정도로 컴퓨터가 낯설었었다. 지금은 우리 큰아이가 “엄마가 컴전문가가 되었네!” 하고 자랑스러워한다. 그렇다. 정말 문서작성이 낯설었던 내가 지금은 ‘한글’은 웬만큼 다룰 줄 알고, 컴퓨터에 겁을 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소식지를 통해 글을 쓰면서 지금 하는 일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또 자신에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우리 가족 중심에서 벗어나 사고의 틀을 넓혔다는 것이다. 이웃을 생각하게 되고 더불어 잘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여러 도서관 아줌마들과 부녀회, 관리사무소 직원들과도 친근한 사이가 되어서 아파트 생활을 아주 잘 하고 있다.

강의나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을 통해서도 나는 성장했다. 비누 만들기 행사를 한 적이 있는데, 강사와 연락을 몇 번 했는지 모른다. 내 머릿속에 강의진행에 대한 전반적인 틀없이 주먹구구로 했었던 것 같다. 한두 번 강의를 맡아서 진행해 보니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겼다. 빛 그림 제작을 해 보면서는 멀게 만 느껴지던 포토샵과 MS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이용할 줄도 알게 되었다. 나는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 기계나 컴퓨터가 두려우신 분은 도서관으로 오시라고. 부딪치면서 배우는 것이 그야말로 ‘산지식’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힘든 시간도 있었다. 연체료에 항의를 하며 도서관이 무슨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오해를 하시던 분도 있었다. 지금도 도서관을 우려의 눈으로 보는 주민들도 있다. 직접 도서관에 들어와 일을 해 보면 될 것을 얘기해서만은 절대로 모르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다섯 살인 둘째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 활동을 하느라 힘든 점도 많았다. 엄마가 도서관에서 일을 하거나 모임중 시간이 길어지면 짜증내며 힘들어 해서 갈등할 때가 있었다. 또 밀린 집안일을 보며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아이들과 내게 모두 유익한 시간이었지만, 항상 아이 데리고 발을 동동 구르며 바쁘게 살았던 것 같다.

우리 도서관이 5살 생일을 맞는다. 정말 감회가 남다르고, 도서관 활동은 내가 여태까지 했던 일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지난 2년의 소중한 경험을 통해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도서관에서 함께 한 모든 자원활동가들도 도서관이라는 둥지에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날을 기대해 본다.

/신영희 자이행복한도서관

 

작은도서관의 발전 방향

2010년 7월 14일자 <고양신문> 최보윤 기자의 기사, "아이들 웃음 넘치는 도서관이 마을의 희망"을 스크랩해놓습니다.

 

2010년 7월 8일 덕양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고양시 작은도서관 발전을 위한 공청회'의 소식입니다. 주요 발표자는 공유선 관장(천일어린이도서관 웃는책), 정종모 부회장(파주작은도서관협의회), 김소희 관장(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박미숙 관장(고양시작은도서관협의회).  

 

몇 군데 오자와 띄어쓰기를 바로잡았습니다.  

 

*사진출처: <고양신문>

 

내리쬐는 햇빛을 피해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쉼터, 다 못한 한글 공부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는 공부방. 오랜 시간동안 주민의 곁을 지켜온 작은도서관이 맡아온 역할이다. 그동안 민간의 품에서 운영되어 온 작은도서관은 정부의 지원으로 인해 공립의 형태를 가지게 되었고, 작은 도서관들은 이후 그 운영에 있어서 관변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공청회는 작은도서관의 역사와 역활을 되짚어보고 파주, 부천, 마포 지역의 사례를 들어 성공적인 민관 협력의 공립작은도서관의 운영 방안에 대해 모색하는 자리였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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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덕양구청 대강당에서는 이러한 작은도서관을 되짚어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고양시작은도서관협의회와 고양신문이 주최하고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경기지부에서 후원한 ‘고양시 작은도서관 발전을 위한 공청회’는 공유선 천일어린이도서관 웃는책 관장, 정종모 파주작은도서관협의회 부회장, 김소희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위탁팀장, 박미숙 고양시작은도서관협의회 회장의 주제 발표로 이뤄졌다.

 

아래로부터의 도서관 운동

 

공유선 천일어린이도서관 웃는책 관장은 공공도서관의 분관 형식으로 시작되는 도서관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민간인 아래에서 조금씩 바꿔나갔던 역사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 소외된 지역의 아이들과 청년들의 사랑방이자 공부방 역할을 했던 주민도서실과 최규철 가정도서관을 시작으로 어린이도서관운동이 태동했다.

이렇게 민간에서 시작된 도서관 운동의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2002년에 ‘MBC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기적의 도서관 운동’이다. 그동안 민간에서 꾸준히 진행해온 작은 도서관, 어린이도서관 운동을 밑바탕으로 해서 매스컴은 전국적인 도서관운동을 이끌어냈다. 

‘기적의 도서관 운동’은 그동안 동떨어져 있던 민관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국민운동으로 기적의 도서관을 지자체들이 받아들이면서 도서관 운영 과정에 민간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동안 이렇다 할 기준이 없었던 도서관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정부도 작은 도서관 조성에 관심


작은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면서 2006년에는 국립중앙도서관 산하에 ‘작은 도서관진흥팀’이 꾸려졌다. 김소희 한국어린이도서관협회 위탁팀장은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팀을 이루면서 그동안의 도서관 정책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동안 규모만을 보고 무시해왔던 정부에서 작은도서관을 배우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리고 작은도서관 개념을 두고 ‘작은도서관은 공동이다. 사람이 중요하다’라는 식의 추상적인 표현이 정부 정책문서인 작은 도서관 개념집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작은도서관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시작으로 전국에 민간 뿐만이 아닌 공립작은도서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제1회 대한민국 도서관축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책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경험자가 맡아야

 

김소희 팀장은 이러한 활성화 과정 속에서 걱정되는 부분들도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 예가 바로 새마을 문고였다. 주민과 인접한 도서관으로는 이미 새마을 문고가 있었지만 주민들과는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누가’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시설관리공단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는 성동구 작은도서관의 경우 관리개념을 가진 기존의 도서관에서 규모를 축소해놓은 도서관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프로그램도 문화센터 식의 강좌와 교육중심으로 다양한 엄마들의 품앗이라든가 동아리 활동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김 팀장은 “대민서비스라든가 이용자들의 욕구, 문화의 체험, 실제 책의 내용을 습득해 놀아보고 누려보는 다양한 욕구를 해결할 역량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박미숙 고양시작은도서관협의회장은 사람을 중심으로 위탁이 맡겨져야고 말한다. 박 회장은 “그동안의 고양시 7개의 공립 작은 도서관이 ‘공간’ 중심으로 위탁이 진행되어 왔다면 이제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서관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곳을 살펴보면 그 곳을 움직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박 회장의 주장이다. 그만큼 운영자의 마인드가 중요하고 이들이 ‘도서관’과 ‘책’ 자체에 관심을 갖고 있는 주체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양보다는 질, 내실있는 지원 필요

예산 문제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김소희 팀장은 일년 위탁사업비인 1억2000만원을 마포구 내 작은도서관 네 관으로 나누어 사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1년 한 개관에 사용되는 위탁사업비는 3000~4000만원 정도로 이는 김 팀장이 운영하고 있는 또 다른 민간작은도서관에 비해서 약 50%에 불과하다.

한 도서관 당 장서구입비로 할당되는 액수는 1년에 500여만원 정도다. 어린이도서관과 같이 특성화된 곳이 아닌 어른, 청소년과 같이 이용되는 작은도서관으로서는 어떤 대상도 만족시킬 수가 없다. 

김 팀장은 “한정된 재정이라면 작은 도서관을 새로 짓는 것보다는 이미 있는 도서관을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미 있는 민간작은도서관을 지원하거나 성공적인 사례의 작은 도서관을 차등 지원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파주시의 경우 작은도서관의 이러한 차등 지원 정책을 실행하고 있는 곳이다. 정종모 파주시작은도서관협의회 부회장은 “파주시 역시 처음에는 균등지원을 했었지만 우수한 작은 도서관을 집중적으로 육성화시켜 그렇지 못한 도서관들의 모범사례로서 확산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판단했다”고 말한다.

우수 작은도서관의 운영사례나 자원활동가들의 활동들, 역량들을 그렇지 못한 도서관들에게 알려주고 함께 연대함으로써 지역의 도서관 문화를 좀 더 끌어올리고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우수작은도서관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차등지원했다는 것이 정 부회장의 설명이다.

파주시는 목적의 적합성, 시설의 적정성, 자료의 성장, 이용 수칙, 현황, 필요성, 절실한 정도, 지속적인 홍보, 재정 자립도 등을 평가해서 우수 작은도서관을 올해부터 1000만원 운영비를 포함해서 도서구입비를 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작은 도서관

이처럼 도서관의 필요성과 역할을 사회 전반적으로 펼쳐나가게 되면서 정부에서도 발 벗고 나서면서 수많은 도서관들이 생겼지만 숫자보다도 그 역할을 얼마나 충실히 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공유선 관장은 “작은도서관이 유기체로 지역에서 뿌려내려 자리잡게 하는 것, 그리고 그 중심에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작은도서관. 그 방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선 작은도서관은 이용자 중심의 정보거점센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도서관의 주요이용자가 누구냐에 따라 장서의 종류나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

 

또한 마을 교육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작은 도서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할머니나 어머니, 뜻있는 자원봉사자들과 아이들이 함께 자랄 수 있는 마을교육공동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평생복지실천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작은 도서관은 지역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그 속에서 보육하고 보호하는 역할도 하는 곳이 많다.

공 관장은 평생교육과 관련한 한 교수의 말을 빌려 저소득층, 위기가정, 보호받아야할 아이들을 그 아이들끼리 모아놓고 보호하는 것은 일종의 차등 복지이라고 말한다. 그것보다는 누구나 이용 가능한 개방된 공간에서 아이들이 이웃과 함께 자랄 수 있어야 하며는 그것의 단초가 될 있는 곳이 도서관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역할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작은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의 쉼터일 수도, 아이들의 공부방일 수도, 엄마들의 모임방일 수도 있다.

공유선 관장은 “사람이 그리고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는 도서관이 되기 위한 중요한 철학과 가치를 살린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노력해온 민간의 노하우나 정신을 지자체에서 받아들여 좋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책읽는도시, 어떻게 만들 것인가

책읽는도시,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익산희망연대가 연 '지역사회 희망찾기 열린강좌'에서 시민들의 창발적인 아이디어가 어떤 것인지, 몇 장의 글로 정리한 것을 사진으로 찍었습니다. 그 사진들을 공유합니다. "무엇보다도 시민을 먼저 생각하는 정책을 펴라"는 메시지가 제일 중요하다는 데 참석한 시민들이 모두 공감했습니다. 그런데 그 쪽지만 거꾸로 붙어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2010년 7월 15일 목요일

우분투Ubuntu

 

"아프리카에는 우분투ubuntu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누구나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심오한 생각이지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언가를 이룬다면, 그 절반은 타인의 작업과 성취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11월 넬슨 만델라.
--러처드 스텐절 지음, 넬슨 만델라 서문, 박영록 옮김, <만델라스 웨이>(2010년 6월 25일 초판)에서.
 

*사진은 영국 런던의 사우스뱅크 센터(Southbank Centre) 앞에 세워져 있는 넬슨 만델라의 상입니다. 2010년 7월 1일, 안찬수가 찍은 것입니다.
 
동상 아래 안내문을 읽어보면 넬슨 만델라는 "투쟁은 나의 삶이다"라고 말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 동상 제막식에 만델라가 수감되었을 때 ANC(African National Congress) 즉 아프리카민족회의(1912년 남아공에서 남아프리카원주민민족회의로 출범한 정치단체,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헌신한 단체이다. 1923년부터 아프리카민족회의라는 명칭을 사용) 의장을 맡았던 올리버 탐보가 참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에 동상 밑의 글이 일부 잘렸지만, 그 글에는 이렇게 씌어 있습니다.
 
"1962년 8월 5일 수감되었고, 1964년 6월 12일 아파르트헤이트 반대행동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넬슨 만델라는 1990년 2월 11일 27년의 수감 끝에 풀려났다. 1993년 12월 10일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94년 5월 10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극소수와 다수--누가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가?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 내정자는 14일 4대강 사업 반대 여론에 대해 "4대강사업 현장에 가서 피켓 들고 읏샤읏샤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소수다. 그걸 알아야 한다"며 사업의 강행추진 의사를 밝혔다"고 <경향신문> 2010년 7월 14일자 기사 정진석 정무수석 “4대강 반대 피켓 든 사람들은 극소수”는 전하고 있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문득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준구 교수의 지적이 머리에 떠올랐다. 이준구 교수는 2010년 5월 30일 자신의 누리집에  "나는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정진석 정무수석이 말하고 있는 '극소수'에 대해 '이미' 반박해놓고 있다.

 

이준구 교수의 지적은 이러하다. "발행부수 많은 일간지만 읽고 지상파 방송만 보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며, "굳이 눈을 돌려 좀 더 균형 있는 보도에 접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들에 따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4대강사업에 반대를 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극소수의 정치적인 지식인, 종교인만이 반대를 하고 있을 뿐, 말 없는 다수는 4대강사업에 대해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이준구 교수의 그 글, '나는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가?"를 다시 꺼내어 읽어본다. 이 반대의 목소리는 정진석 정무수석이 말하듯 그렇게 소수, 그것도 극소수의 목소리가 절대 아니다. 정진석 정무수석의 말은 마치 온 국민이 '읏샤읏샤'해야 그 소리를 듣겠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 말투가 흡사 전두환 시절에 "극소수 학생들이...(운운)"하던 때의 말투와 너무 흡사하다는 데 놀란다.

 

이준구 교수의 글, 조금 긴 듯싶지만, 꼭 다시금 되새겨 보아야 할 명문이다.

 

나는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가?

 

1. 머리말

 

발행부수 많은 일간지만 읽고 지상파 방송만 보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스스로 입에 재갈을 물렸는지 아니면 암묵적 담합이 있었는지 몰라도, 웬일인지 4대강사업에 대해서는 언제나 굳게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 정론지 뉴욕타임즈는 “보도하기에 적합한 모든 뉴스를 보도한다.”(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라는 모토를 내걸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수 언론은 언제부터인가 “내가 원하는 뉴스만을 보도한다.”(Only the News That I Want to Print.)라는 모토를 채택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눈을 돌려 좀 더 균형 있는 보도에 접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들에 따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4대강사업에 반대를 하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극소수의 정치적인 지식인, 종교인만이 반대를 하고 있을 뿐, 말 없는 다수는 4대강사업에 대해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정부가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대화를 제의해도 이들은 일방적으로 그 제의를 거부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지금 우리에게 이처럼 자기 마음대로 왜곡한 진실을 믿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 언론에 세뇌된 사람이라 할지라도 세상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들은 대통령과 정부가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을 향해 날이 선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이유가 무언지 궁금해 한다. 반대하는 소수의 지식인, 종교인을 그냥 무시해 버리면 될 텐데 구태여 그들에게 날을 세우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

 

무슨 일이든 반대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그렇게 일일이 신경을 쓸 필요가 있을까? 아마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아무리 진실을 가리려 해도 언제든 밝혀지게 마련이다. 보수 언론이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왜곡 보도를 한다 해도 그림 전체를 짜맞추면 진실이 반드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공격에 관한 기사를 보고 사람들은 반대하는 세력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수 언론이 그것을 보도한 의도는 4대강사업을 띄워 주려는 데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과 관련된 진실을 만천하에 알린 셈이 된다.

 

보수 언론이 아무리 가리려 해도 가릴 수 없는 진실은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세력이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숱한 문제들로 운동 집단이 형성되고 해체되었지만, 지금까지 4대강사업 반대 그룹처럼 규모가 큰 집단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목 타게 갈구하고 있던 시절에도 지금처럼 우리나라 4대 종교집단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어떤 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몇 천 명이나 되는 대학교수가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낸 경우도 전혀 없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사상 초유의 대규모 사회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취미 삼아 한 번 모이자는 식으로 만들어진 집단이 결코 아니다. 우리 국토 전체의 안위가 달려 있는 심각한 문제를 팔짱만 끼고 바라볼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뭉쳐진 집단이다. 따라서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수는 없게끔 되어 있다. 이들에게 4대강사업을 계속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하는 한 반대 의사를 스스로 철회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과 정부는 이들이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홍보 부족으로 인해 실정을 잘 모르고 반대한다는 말로 받아치고 있다. 소통이 없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이 문제라고 지적하는데, 듣지는 않고 내 말 더 들어보라고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목적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고 역공을 취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말은 단 한 마디도 들으려 하지 않는 독선과 아집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4대강사업 반대 그룹의 일원으로서, 나는 실정을 몰라서 반대하고 있다는 말에 심한 모욕감을 느낀다. 이 사업에 경제적 측면 못지않게 환경공학적, 수문학적, 생태학적 측면이 중요성을 갖는 것은 사실이며, 내가 그 방면의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무조건 반대를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동안 부지런히 4대강사업과 관련된 정보를 수집해 왔으며, 나름대로의 판단을 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지식을 축적했다.

 

내가 신뢰하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4대강사업은 환경공학적, 수문학적, 생태학적 측면에서 전혀 쓸모없을 뿐 아니라 매우 큰 위험성을 수반하는 사업이다. 나는 그들이 엄밀한 과학적 근거 위에서 그와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에 비해 지금까지 정부가 4대강사업이 필요하다는 근거로 내세운 것들을 보면 믿음이 전혀 가지 않는 엉터리 논리뿐이다. 게다가 내가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거의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는 사업이다.

 

정치적 목적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말은 한층 더 모욕적으로 들린다. 그 동안 나에게 배운 수많은 제자들이 증언해 주겠지만, 나는 일생을 정치와 담을 쌓고 살아온 사람이다. 비록 능력과 노력 부족으로 인해 훌륭한 업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학자로서의 한 길을 걸어온 데에 대해서는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앞으로도 정치판에 발을 들여 놓을 의사가 추호도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나에게 정치적 목적 운운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들린다. 다른 교수, 신부, 목사, 스님, 교무들 어느 분에게도 그런 말을 입에 담기라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내 양심을 몽땅 걸고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경제학자로서의 양심에 비추어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행동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 동안 나는 이런 저런 각도에서 왜 4대강사업을 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 많을 글을 써 왔다. 실정을 몰라서 반대한다는, 정치적 목적에서 반대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공격에 반박하기 위해 내가 왜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밝혀 보려고 한다.

 

2. 4대강사업은 시대착오적인 ‘강 죽이기’다

 

한반도대운하사업 얘기가 나왔을 때 사람들이 가장 주목했던 것은 그 사업의 시대착오적 성격이었다. 아니, 비행기로 화물을 나르는 세상인데 강 위에 느림보 화물선을 띄워 물류혁명을 일으키겠다고? 한 마디로 한반도를 길게 관통하는 운하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해외토픽에나 나올 시대착오적 발상이었다. 대선 때 내건 공약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겠다고 다짐했지만 국민의 반응은 냉담하기 짝이 없었다. 취임 반년도 안 되어 그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의 필연이었다.

 

한반도대운하 계획을 포기하겠다는 발표가 나온 지 몇 달 후 뜬금없이 등장한 4대강사업은 온통 초록색 분칠을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녹색뉴딜’이라는 가당치 않은 구호와 함께 나타났기 때문에 시대를 앞서가는 성격의 계획이라고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한반도대운하사업을 4대강사업으로 ‘이름 세탁’을 했다고 해서 공사의 본질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이름과 명분이 바뀌었어도 시대착오적이며 반(反)생태적인 사업의 본질은 털끝 하나 바뀌지 않았다. 토목공사의 기본 내용이 한반도대운하의 경우와 똑같이 대대적인 준설과 여러 개의 댐(보) 쌓기인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물을 잘 흐르게 만든다고 물길을 똑바로 만들고, 물을 가둬 둔다는 목적으로 높은 댐 쌓는 것은 치수의 낡은 패러다임이다. 홍수 방지라는 명목으로 높은 시멘트 제방을 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도 이미 오래 전에 밝혀진 사실이다. 강에 대한 인간의 간섭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자연의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 역시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선진국에서는 강 주변에 만들어 놓은 인공구조물을 철거하는 것이 일종의 트렌드가 되어 있다.

 

4대강사업이 갖는 시대착오성은 외국 전문가에 의해서도 정확하게 지적된 바 있다. 세계적 과학저널인 사이언스(Science)지는 2010년 3월 26일 "Restoration or Devastation"이란 제목하에서 4대강사업에 관한 특집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서 지형학의 권위자인 UC버클리대학의 컨돌프(G. Mathias Kondolf)교수는 이 사업의 발상이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조금 길지만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한 문단을 그대로 인용해 보기로 한다.

 

더욱 근본적으로 어떤 학자들은 그 계획[4대강사업]이 하천 관리에 관한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믿는다. “4대강사업은 선진국에서 하천 관리방식이 진화되어 온 길에서 벗어나 있다.”라고 UC 버클리대학의 지형학자 컨돌프 교수는 말한다. 그는 유럽과 미국에서 개발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이제는 강들에 굽이쳐 흐르고 넘쳐흐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데 역점을 둔다고 말한다. 이 접근방식이 생태적으로 더욱 건전할 뿐 아니라, 준설이나 제방축조로 인한 하천 관리작업을 필요 없게 만든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사업 담당자 홍씨는 이에 대해 한국의 강에 대해 자신들이 연구하고 사례 분석을 한 결과에 따르면 댐과 준설이 최선의 대안이라고 대꾸했다.

 

(More fundamentally, some academics believe the plan reflected outdated thinking about watershed management. "The Four Rivers Project is out of step with the way river management is evolving in the developed world." says G. Mathias Kondolf, a geomorphologist at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He says planners in Europe and the United States now aim to give rivers room to meander and flood. This approach is more ecologically sound, Kondolf says, and eliminates river maintenance imposed by dredging and embankments. Project official Hong counters that based on their research and case studies of rivers in South Korea, dams and dredging is the best solution. )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말하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으려 할 테지만, 외국의 전문가가 말했으니 믿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는 댐 축조와 준설이 현재 선진국에서 하천을 관리하는 방식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접근방식이라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입만 열면 선진국을 본받자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왜 강에 대해서만은 선진국이 가는 길과 정반대의 길을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자기 편할 때만 선진국의 예를 인용하는 그들의 버릇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입맛이 영 씁쓸하다.

 

그리고 이 글에 나온 홍씨라는 사람이 누구를 뜻하는지 모르지만, 대답 치고는 무척 궁색하다는 느낌이다. 도대체 몇 달 동안의 짧은 기간 동안 우리 강에 대해 무슨 심도 있는 연구를 하고 사례연구를 할 수 있었을까? 별 근거 없이 궁색함으로 모면하기 위해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 너무나 뻔하다. 최선의 대안이란 것은 몇 년의 기간에 걸쳐 수많은 모형실험을 거치고도 찾아내기 힘든 법이다.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4대강사업의 찬성논리가 대체로 이 정도로 엉성하고 뜬금없는 수준을 넘지 못한다.

 

강물이 자유롭게 굽이쳐 흐르고 넘쳐흐르도록 놓아두는 하천 관리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명확한 과학적 근거에 기초하고 있다. 그 동안의 연구를 통해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강바닥의 모래와 자갈이 엄청난 수질 정화의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엄청난 양의 오염물질이 강으로 흘러들어도 강물이 그런대로 맑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는 그것을 모두 준설해 강을 깨끗하게 만든다지만, 사실은 이 자연 정수기를 철저하게 망가뜨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강의 자정기능을 말살시켜 버리고 수질 개선한답시고 엄청난 혈세를 쏟아 부으려는 모습이 “병 주고 약 준다.“는 속담을 생각나게 만든다.

 

또한 홍수 예방의 측면에서 볼 때도 자연스러운 강의 흐름에 섣불리 손대는 것은 위험한 장난이다. 그 동안 수많은 홍수를 겪으면서 자연은 나름대로의 방어장치를 만들어 놓았다. 적절한 장소 몇 곳을 둑으로 보완하기만 하면 자연 그대로의 강은 훌륭한 홍수방지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가 경험한 대부분의 홍수 피해가 4대강사업의 공사 대상이 아닌 상류나 지류에서 일어났으며, 그나마 산림 파괴나 난개발로 인해 발생한 ‘인재’(人災)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무모한 4대강의 직강화(直江化)가 어떤 초대형 인재를 초래하게 될지는 역사가 증언해 줄 것으로 믿는다.

 

한 마디로 말해 4대강사업은 시대착오적인 ‘강(江) 죽이기’에 불과하다. 자연 그대로의 강을 살려 둔 채 부분적인 손질을 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댐 축조와 준설이라는 낡은 교리를 적용해 우리의 강들을 몽땅 죽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나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토목공사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

 

3. 생태계 교란은 위험한 불장난이다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이 공사의 본질이 ‘4대강 죽이기’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다. 강은 그 자체의 생명을 갖고 오랜 기간 동안 진화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강변의 하찮게 보이는 풀숲, 모래톱, 웅덩이라 할지라도 수억 년을 끊임없이 흐른 물길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생명체라고 볼 수 있다. 그것들이 수많은 홍수와 가뭄을 거쳐 갖게 된 오늘날의 모습은 자연의 이치를 그대로 나타내 주고 있다.

 

이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오직 심미적인 측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아름답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자연에 섣불리 손대지 말아야 할 더 중요하고 더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원래 상태 그대로 잘 보존된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가장 이롭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실질적인 이득의 관점에서 볼 때도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수질 정화나 홍수 예방의 측면에서도 (약간의 보완을 가한) 자연 그대로의 강이 가장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무슨 말을 하든 4대강사업과 관련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국토 전체의 생태계가 몽땅 뒤집혀질 정도로 심각한 교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이다. 정부 자신도 현재의 상태에 심각한 교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진실은 감히 부정하지 못하리라고 믿는다. 청계천과 양재천의 작은 성공에 들떠있는 정부는 생태계 교란의 위험성을 전혀 모른 채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다. 썩어 있던 작은 물줄기들을 깨끗하게 만드는 일과 아무 문제가 없던 4대강을 뒤집어엎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생태계에 대한 무지 때문에 4대강을 청계천과 양재천처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불장난인지 모를 뿐이다.

 

최근 섬진강에서만 사는 갈겨니가 난데없이 청계천에서 발견되어 우리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청계천 관리당국이 풀어 넣었는지의 여부는 확인된 바 없지만, 하여튼 청계천의 생태환경이 엉망으로 망가졌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말할 수 있다. 깨끗한 물이 흐르기 시작하면서 서식하는 물고기의 종류가 크게 늘었다는 선전도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문제는 지금 정부가 온 국토의 강들을 청계천의 꼴로 만들어 놓으려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청계천의 예를 보면 4대강사업이 모두 끝난 후 강 주변의 생태계가 더욱 풍성해지리라는 정부의 호언장담이 어디서 나오는지 짐작할 수 있다. 여기저기서 물고기 잡아와 4대강 아무 곳에나 풀어 놓겠다는 심산인 것 같은데, 한강에만 사는 물고기가 영산강에서 발견되는 일 같은 것을 자주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 놓고는 강물이 깨끗해져서 서식 어종이 더욱 풍부해졌다고 거짓 홍보를 해댈 것이 틀림없다. 우리나라 큰 강들이 고유의 생태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초대형 어항이나 수족관으로 변화한다는 뜻인데, 그렇게 되면 생물학 교과서를 바꿔 써야 하는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모르는 무신경의 소유자들이 지금 우리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생태계의 교란은 그 귀결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특히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전국의 4대강을 온통 뒤집어엎은 후 우리 국토 전반에 걸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자신 있게 예측하지 못한다. 기후가 어떻게 변화할지, 지하수 수위가 어떻게 변화할지, 혹은 어떤 동식물의 종이 사라지고 어떤 종이 새로 나타날지 전혀 모르는 상태다.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면 새만금사업의 여파로 인근 변산해수욕장의 모래가 몇 미터 깊이로 파여 나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새만금사업이 시작되기 전은 물론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과정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전 국토에 걸쳐 이런 예기치 못한 결과들이 속속 나타난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게 될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4대강사업으로 전 국토의 생태계가 엉망으로 망가지면 원상회복을 하고 싶어도 하기가 어려울 테니 걱정이 더욱 크다. 뿌리째 뽑혀나간 나무들과 풀이 다시 무성해지려면 수십 년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강바닥의 모래를 몽땅 긁어내는 바람에 산란장을 잃은 물고기들이 다시 떼지어 다닐 만큼 그 수가 늘어나려면 더 긴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더군다나 불도저와 포클레인으로 뭉개진 모래톱과 습지는 영영 되살아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목전의 이득에 눈이 어두워 이런 위험한 일을 저지른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4대강사업의 반(反)생태성은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수만, 수억 년을 평화스럽게 살아오던 뭇 생명들을 죽음의 구렁이로 내몰고 있다. 요즈음 인터넷상에서 나도는 사진들을 보면 4대강사업이 우리 국토를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뜨렸으며,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생명들이 억울한 죽음을 맞이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들도 우리 인간과 똑같은 생명의 권리를 갖고 이 땅에서 터 잡고 살아가는데, 도대체 우리가 그들을 떼죽음으로 몰아갈 그 어떤 권리를 갖고 있다는 말인가? 한 인간으로서의 내 양심은 이 거대한 ‘죽음의 사업’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4. 정당한 절차가 무시된 반(反)민주적 사업이다

 

일반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지금 4대강사업과 관련해 우리 민주주의는 중대한 시련에 직면해 있다. 이 사업이 그대로 강행되느냐 아니면 중단되느냐에 따라 민주주의적 원칙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고 그대로 지켜질 수도 있다. 국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개인적인 신념 하나만에 의해 강행되고 있는 4대강사업은 명백한 반민주성을 갖고 있다. 이것을 막지 못한다면 어렵게 얻은 이 땅의 민주주의는 또 다시 시궁창에 내던져지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잘 알다시피 4대강사업은 불과 몇 달 동안의 밀실작업의 결과로 급조된 토목공사다. 무리하게 추진되다 좌절된 한반도대운하사업과 달리, 4대강사업은 대선공약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그 정체를 드러냈다. 그리고는 이렇다 할 공론과정도 거치지 않고 집권여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서둘러 통과시킴으로써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런 식으로 얼렁뚱땅 일을 해치워 버렸기 때문에, 그 사업을 한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삽질이 시작되고 전국의 강은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버렸다.

 

정부는 모든 절차를 지켜 공사에 착수했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형식상의 절차를 지켰을지 몰라도, 상식의 선에서 보면 결코 정당한 절차가 지켜졌다고 말할 수 없다. 예컨대 불과 몇달 동안의 짧은 기간 동안에 그와 같은 초대형 토목공사의 환경영향 평가를 끝마쳤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단순한 토목사업도 몇 달 안에 끝내기 힘든 마당에, 전국에 걸친 생태계에 거의 지각변동에 가까운 영향을 줄 사업의 평가를 몇 달만에 끝마쳤다면 보나마나 부실평가였음에 틀림없다.

 

22조원이나 드는 초대형 토목사업인데 거의 모든 비용지출이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정부는 “국가재정법 시행령 13조에 따라 보 설치, 하천 준설 등의 사업은 재해 예방사업이기 때문에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변명한다. 궁색하기 짝이 없는 변명인데,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편의주의적 행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형식적으로 법 규정만 지켰다고 절차의 정당성이 보장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렇다 할 여론 수렴의 과정 없이 대통령의 지시 하나만으로 사업계획을 짜기 시작했다는 것부터가 민주주의의 원칙에 어긋난다. 모두가 잘 기억하고 있겠지만, 4대강사업이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 제대로 된 토론회 하나 열려 본 적이 없다. 모든 보수언론은 약속이나 한듯 입을 다물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업 그 자체에 대한 정보조차 갖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국민을 이렇게 무지의 상태에 몰아넣은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추진된 사업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4대강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구도에서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이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다. 입법부와 사법부가 견제를 함으로써 행정부의 독주를 막고 건전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원칙은 거수기 역할에 충실하기로 결심한 거대여당이 국회를 장악함으로 인해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사법부가 간간히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때마다 정부와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비틀거리기 일쑤다. 그나마 사법부의 견제도 아주 사소한 사안에 관해서만 행해지고 있을 뿐, 국가운영의 기본틀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실 견제와 균형은 행정부 안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 부처의 성격에 따라 이와 같은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져야 합리적인 정책 수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4대강사업의 주무부서가 국토해양부라 해서 다른 부서들이 일체 관심을 끊고 방관만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이 사업에서 나오는 파장이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바로 자기 부서의 관심분야라 한다면 제3의 부서라도 당연히 그 사업에 간여해 견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환경부의 입장에서 볼 때 4대강사업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이에 대한 경보를 발령해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환경부의 존재이유라는 사실에 한 점 의문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4대강사업과 관련해 환경부는 그 존재이유를 망각하고 거수기로 전락하는 길을 스스로 선택하고 말았다. 환경에 대한 위험요인을 찾아내고 대비책을 촉구해야 할 환경부가 오히려 만세를 불러주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 본다 해도 이런 사례는 찾기 힘들 텐데, 내가 내는 아까운 세금이 왜 이런 부서의 유지를 위해 쓰여야 하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나아가 민주주의적 원칙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제4부라고 할 수 있는 언론이 제 구실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표적 일간지 3개사와 지상파 3개 방송국의 보도 태도를 보면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 내가 이들에게 4대강사업의 반대투쟁에 앞서 주기를 바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도 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그런 정도로 터무니없는 기대를 할 리가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은 최소한 객관적인 사실만이라도 정확하게 보도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중요한 사건조차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여론을 왜곡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금까지 가톨릭 교단이 주교회의라는 공식기구의 결의를 통해 사회적 현안문제에 대해 목소리 낸 것을 본 적이 없다. 5천 여 명이나 되는 가톨릭 성직자들이 서명해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밝힌 것을 본 적도 없다. 아마 조선시대 기독교가 전파된 이래 처음 보는 중대한 사건이 아닌가 한다. 뿐만 아니라 2천 명이 넘는 선방의 수도승들이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례도 처음 보는 일이다. 산사에서 오직 수행에 정진하고 있어야 할 수도승이 사회적 이슈에 목소리를 내는 것 그 자체도 신기한 일인데, 그 숫자가 2천여 명이나 된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도 보수 언론은 이 중요한 사건들을 거의 모두 무시해 버렸다. 단 한 줄의 기사도 싣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설사 기사를 싣는다 해도 시시한 상해사건보다도 더 작은 비중으로 다루기 일쑤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국민은 누가 무슨 이유로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이렇게 언론까지 적극적인 협조자로 전락해 버린 상황에서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견제할 방법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 원칙이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현재 국민의 절반 이상이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정부 자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주요 종교 지도자들이 거의 모두 반대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4대강사업의 강행을 고집하는 것은 국민의 의견을 듣지 않고 독선적으로 나라를 이끌어가겠다는 뜻이다.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사업을 강행하려 하는 정부 때문에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나는 이 비민주적인 4대강사업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5. 아무런 준비도 없는 졸속사업이다

 

4대강사업에 대한 정부의 홍보를 보면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가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불과 몇 달만의 밀실작업에서 태동한 사업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근거가 있을 리 만무하다. 정부가 이 사업을 해야 하는 당위성의 주요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수질 정화, 홍수 예방, 용수 확보 세 가지다. 그런데 왜 그런 목적의 사업이 필요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수치는 하나도 없고 그저 막연한 수사(rhetoric)로 채워져 있을 뿐이다. 물고기와 새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빨리 강을 살려야 한다, 물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 담을 그릇을 크게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허황한 수사 이상의 것을 발견하기 힘들다.

 

수질 정화를 위해 4대강사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납득시키려면 현재 4대강의 수질오염이 어느 정도이며,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장기간에 걸쳐 4대강의 각 지점에서 정확한 오염도를 측정하고, 주요 오염원은 무엇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이런 정확한 데이터에 기초해 여러 가지 대책의 효율성을 비교, 평가하는 작업이 따라야 한다. 이런 포괄적인 분석작업의 결과 4대강사업 같은 대규모 준설 이외의 적절한 대안은 없다는 결론이 나와야 비로소 이 사업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내가 신뢰하는 우리 대학의 환경공학 전문가에 따르면, 지금처럼 4대강을 대대적으로 파헤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한다. 강 밑바닥의 흙이 오염되어 있는 사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지극히 일부에 국한된 일이며 전역에 걸친 대규모 준설은 전혀 필요 없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이 주장을 반박하고 싶다면 4대강의 전 지점에서 채취한 토양 샘플이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면 된다. 이런 간단한 반박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정부가 아무런 객관적 증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좋은 증거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영산강과 낙동강의 물이 썩었다.” 혹은 “겨울 갈수기가 되면 오염도가 특히 높아진다.” 정도의 막연한 말을 늘어놓는 일뿐이다.

 

또한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강물을 가둬 놓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논리적 근거도 무척 희박하다. 정부는 물 부족 사태가 올 것에 대비해야 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뿐, 언제 어느 정도의 불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은 전혀 내놓지 못한다. 물 부족의 가능성을 점치는 유일한 근거는 외국의 한 사설 연구단체가 내놓은 신빙성 없는 보고서인 것 같다. 강수량을 인구로 나눠 얻은 이 조잡한 분석 결과는 많은 전문가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이런 어설픈 분석 결과에 기초해 불 부족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것은 한 편의 코미디라고 말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우리가 가까운 장래에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앞으로 물에 대한 수요가 대폭 증가하거나 공급이 대폭 줄어든다고 예상할 하등의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물에 대한 수요는 우리의 생활방식 그리고 산업구조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만약 우리 생활방식이 어떤 이유로 갑자기 물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바뀐다면 물 부족 사태가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웬만한 집에서 모두 뒷마당에 수영장을 만들고, 매일 물을 갈아 넣는 일이 생긴다면 물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가까운 장래에 정말로 그런 일들이 발생할까? 구태여 대답을 기다릴 필요조차 없는 의문이다.

 

산업구조의 측면에서 볼 때도 물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야 할 이유를 전혀 발견할 수 없다. 서비스업에 비해 농업과 제조업이 물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사용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만약 서비스업의 비중이 더 작아지고 농업과 제조업의 비중이 더 커진다면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경제의 산업구조는 그 정반대의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경제규모가 전반적으로 커짐에 따라 물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 있으나, 이 수요 증가폭이 산업구조 재편에 따른 수요 감소폭보다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용으로 소비되는 물의 측면에서도 물 부족 현상을 야기할 이렇다 할 요인이 없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물의 공급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할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강수 패턴이 불규칙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부근의 강수량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장기 전망이 나와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사막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신빙성 있는 전망이 나와 있다면, 용수 확보를 위해 4대강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약간의 정당성을 인정해줄 수 있다. 내가 모르는 그런 전망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면 나에게 가르쳐 주기 바란다.

 

나아가 홍수 예방을 위해 4대강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구체적 근거가 제시된 것을 본 적도 없다. 홍수 예방을 위해 그 사업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받으려면 무엇보다 우선 그동안 일어난 홍수와 관련된 통계를 제시하고 4대강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날의 홍수 관련 통계를 보면 지금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구간에서 일어난 사례가 지극히 드물다. 진정으로 홍수를 예방하기 위한 사업을 한다면 상류와 지류에 토목공사가 집중되어야 한다. 이는 그들이 내걸고 있는 홍수예방이란 목표가 아무 의미도 없는 하나의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4대강사업은 이렇다 할 준비도 없이 대통령의 지시 하나로 인해 몇 달의 짧은 기간에 급조된 초대형 토목공사다. 4개의 강에 대해 판박이와도 같이 똑같은 공사를 시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준비가 부실한지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만약 철저한 사전조사를 통해 수질 정화, 용수 확보, 홍수 예방의 대책을 세운 것이라면, 토목공사의 내용이 강마다 달라져야 할 뿐 아니라 똑같은 강이라도 지점마다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영산강은 수질 정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인 한편, 금강의 경우에는 홍수 예방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하자. 그렇다면 영산강과 금강에서 이루어지는 토목공사의 내용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똑같은 영산강이라도 이곳에서는 습지를 정리하는 데 주력하는 반면, 다른 곳에서는 오염된 물이 흘러들어오는 것은 막는 데 주력한다는 식으로 지점마다 공사의 주안점이 달라져야 마땅한 일이다.

 

수질 정화, 용수 확보, 홍수 예방이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정부가 4대강에 대해 한결같이 깊숙하게 준설하고 높은 댐을 쌓는 방식으로 이 과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아무런 심사숙고도 없이 즉흥적으로 대규모 토목공사를 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냈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4대강의 모든 지점에서 판박이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마구잡이로 댐을 쌓고 강바닥을 긁어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토목공사의 과정에서 혹은 모두 끝나고 난 다음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더군다나 4대강사업처럼 사상 유례없는 대형 토목공사의 경우에는 돌발 상황의 발생 가능성이 특별히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예상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4대강사업본부가 과연 이런 대응책을 준비해 놓고 삽을 뜨기 시작했을까? 나는 절대로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만약 그런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면 온 국민이 그것의 피해를 몽땅 뒤집어써야 한다. 정부는 지금 준비 안 된 졸속공사로 국민의 안위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6. 경제적으로 전혀 가치가 없는 사업이다

 

한반도대운하사업은 조잡하지만 그나마 비용-편익분석 결과를 내놓아서 경제적 타당성을 평가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그러나 4대강사업은 아예 비용-편익분석의 결과를 제시하지도 않고 있어 경제적 타당성의 평가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와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에 기초적인 비용-편익분석도 실시되지 않았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지난번에 쓴 글에서 지적한 것처럼 “나를 믿느냐? 그러면 따라 오라.”는 식으로 사업을 밀어붙이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4대강사업과 관련된 비용-편익분석 결과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정부의 의도적 선택임이 분명하지만, 나로서는 그 배경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한반도대운하가 논의되고 있을 때 편익이 비용의 두 배 이상이라는 분석 결과가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던 것을 기억하고 이번에는 아예 그런 비판의 소지를 없애자는 의도가 깔려 있을 가능성이다. 그것보다 더욱 그럴듯하다고 생각되는 가능성은 몇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했기 때문에 비용-편익분석을 할 시간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구체적인 비용-편익분석의 결과 없이 제시된 4대강사업은 그 타당성 입증책임의 소재를 뒤바꿔놓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빚었다. 어떤 공공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당연히 그것의 시행 주체인 정부에 있다. 그런데 요즈음 진행되고 있는 4대강사업 관련 논의를 보면 찬성측이 반대측에게 왜 그 사업이 타당성이 없는지를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4대강을 정비하려 한다는데 무슨 근거에서 훼방을 놓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그런 적반하장식의 우스꽝스러운 요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논의가 혼란스럽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공공사업의 타당성을 입증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상식을 뒤엎으려 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수질 정화, 용수 확보, 홍수 방지에서 오는 편익이 22조원+알파를 초과한다는 확실한 증거를 우리에게 제시해야만 4대강사업이 타당성을 갖는다는 점을 인정받을 수 있다. (여기서 ?는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과 관련한 비용을 뜻하며, 이는 엄청나게 큰 값이 될 수 있다.) 그 토목공사에서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편익이 창출될 수 있는지를 밝히지 못하는 한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없다.

 

말이 쉽지 22조원이라면 이만저만 큰돈이 아니다. 최근 남유럽에서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인한 경제위기가 빈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도 결코 안심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로부터 건전한 재정을 물려받았기 망정이지, 부실한 재정을 물려받았다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경제성이 입증되지도 않은 사업에 22조원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으면서 재정의 건전성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 다음 정부에게 부실한 재정을 물려주는 최초의 정부가 되기 않기를 바란다.

 

이 22조원이란 불요불급한 지출의 부담이 누구에게로 돌아갈지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더군다나 부자 감세를 통해 중, 저소득층의 조세부담을 상대적으로 더 높여 놓았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무상급식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연간 1조 남짓의 추가적 조세부담을 놓고 포퓰리즘이니 아니니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그런데 22조원이나 되는 엄청난 돈을 쓸모없이 쏟아 붓는 것과 관련한 조세부담 논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나는 그런 쓸모없는 조세부담을 단 한 푼이라도 떠안기 싫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 22조원의 비용이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일단 공사가 완료된 후라 할지라도 매년 유지, 보수에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 분명하다. 청계천처럼 작은 물길 하나를 유지, 보수하는 데 매년 백억원 가까운 비용이 들어간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전국의 강들에 매년 퍼부어야 할 돈은 가히 천문학적인 규모가 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수질 정화한 가지에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엄청난 규모일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흘러들어가는 물은 여전히 더러운데 물을 담는 그릇이 커진다고 물이 더 깨끗해질 리 없다. 오히려 물의 흐름이 늦어져 더 더러워질 가능성이 크다. 4대강사업으로 물이 맑아진다는 것은 엄청난 비용을 들여 정수를 하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 많은 양의 물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과연 얼마나 많은 돈을 퍼부어야 할지 상상해 보기 바란다.

 

22조원에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과 관련된 비용을 더하고, 여기에 다시 매년 들어가는 유지, 보수비용까지 포함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결론이 나온다. 엄밀하게 계산해 보면 그 사업에서 나오는 편익이 그 1/10에도 못 미칠지 가능성이 크다. 나는 경제학자로서의 양심을 걸고 단언할 수 있다. 여러 정황에 미루어 판단해 볼 때 4대강사업은 경제적으로 전혀 가치가 없는 사업이라고 말이다. 정부가 좀 더 구체적인 수치로 나를 설득하지 못하는 한 나는 이 결론을 조금이라도 수정할 용의가 없다.

 

최근에는 4대강사업의 공정이 이미 30% 이상 진전되었기 때문에 사업을 계속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사이비 논리까지 등장하고 있다. 경제학의 기초만 갖고 있어도 이 논리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토목공사에 지금까지 쏟아 부은 돈은 무슨 수를 쓰든 회수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매몰비용(sunk cost)의 성격을 갖는다. 경제학원론 책을 보면 매몰비용은 얼마가 되었든 잊어버려야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는 미련 없이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4대강사업의 계속 여부를 고려할 때 이제까지 얼마의 돈이 들어갔는지는 상관하지 말고 미래의 일만을 생각해야 한다. 즉 공사를 계속해 우리의 국토를 더 망치는 것이 바람직한지 아니면 여기서 그치는 것이 바람직한지만 생각해야 한다는 뜻이다. 30%의 공정을 보이고 있는 지금 이미 처참하게 망가졌지만, 더 이상의 파괴를 막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응당 잊어버려야 하는 매몰비용에 연연해 추가적인 파괴를 용인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없다.

 

이미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으니 공사를 계속하자는 사이비 논리는 비단 이번뿐 아니라 늘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새만금사업의 경우에도 이와 똑같은 논리가 등장했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토건족은 언제나 일을 저질러 놓고 보는 습성을 갖고 있다. 일단 저질러 놓고는 이 사이비 논리를 동원해 공사를 계속할 빌미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쁜 버릇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4대강사업과 관련해 그와 같은 사이비 논리가 발을 붙일 틈조차 주지 말아야 한다.

 

7. 맺음말

 

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지식인으로서, 그리고 경제학자로서의 모든 양심을 걸고 4대강사업에 반대하고 있다. 나는 그 사업이 수행할 가치도 없을 뿐 아니라, 수행해서는 안 될 것임을 자신 있게 증언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면서 4대강을 정비해야 할 당위를 전혀 찾을 수 없다.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우리 강들이 심하게 오염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홍수와 물 부족의 위협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대규모 토목공사가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는 정부만 알고 있을 뿐 우리는 단 하나도 알지 못하고 있다.

 

4대강사업이 단지 아까운 세금이 낭비되는 결과를 빚는 데 그친다면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대규모의 환경 파괴와 생태계 교란이 가져올 파장이다. 현재 고작 30%의 공정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도 심각한 수준의 환경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 공사가 완전히 끝났을 때 4대강 연변이 얼마나 끔찍한 모습으로 변화해 있을지는 상상하기조차 싫을 정도다. 그때가 되면 수천, 수만 년을 우리 곁에서 정겹게 굽이치며 흐르던 강은 우리와 영영 이별을 고해야 한다. 그 대신 인공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저수지들이 우리를 맞게 될 것이다.

 

전국의 강들을 청계천과 양재천처럼 만들겠다고 하는데, 이는 전국의 강을 성형수술대에 올리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할지 몰라도 속으로 골병이 든 생태계를 만들어낼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 이 강에서 살던 물고기를 저 강으로 옮기고, 이 강변에서 자라던 풀과 나무를 저 강변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전 국토의 생태계는 엉망으로 망가져 버릴 테니까 말이다. 그와 같은 인간의 무모한 간섭이 어떤 무서운 결과를 빚을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크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순수한 동기에서 우러나온 국민의 걱정 소리에 귀를 닫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대통령과 정부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포기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수많은 지식인과 종교인들이 강한 목소리로 ‘4대강사업 절대불가’를 외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임기 안에 끝내겠다는 고집으로 맞서는 상황이다. 국민이 어떤 말을 하던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나라를 이끌어가겠다는 독선과 오만이 두렵기만 하다.

 

지금 4대강사업을 둘러싼 국론분열의 양상은 심각한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보수 언론이 이 진실을 잠시 은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민의 눈과 귀를 언제까지나 가려둔 상태로 묶어놓을 수는 없다. 나는 이 위기상황의 진전 과정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정부와 반대진영 사이에서 힘의 대결이 빚어질 수 있고, 어쩌면 2008년의 촛불시위 때보다 한층 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의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나는 정부에게 4대강사업에 반대하는 학자들과 종교인들이 발표하는 성명서를 정독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 사업을 저지하려는 이들의 결의가 얼마나 굳건한 것인지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회유와 위협에 넘어갈 사람인지의 여부도 미리 파악하고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4대강 사업 결사반대의 의지를 이미 굳혀놓은 상태이며, 어떤 회유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만약 이 사실을 잘 안다면 반대여론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지금과 180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처럼 약이라도 올리듯 속도전으로 대응하는 전략은 반대진영의 결의를 더욱 굳게 만드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은 낙관적인 전망을 내리기 어려운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결정적인 반전이 없는 한 이명박 정부가 4대강사업의 삽질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업에 반대하고 있는 지식인과 종교인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지도 않다. 파국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4대강사업의 삽질을 잠시 멈추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뿐이다. 어차피 4대강사업은 계속할 테지만 할 말 있으면 해보라는 식의 거짓 대화 제의는 오히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이 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끝내 설득할 수 없다면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각오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 사실 민주주의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계속 반대할 의사를 갖고 있다면 미련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 뽑혔다 해서, 국회의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했다 해서 모든 일을 자기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백지수표를 건네받은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제는 세계 어느 나라도 부럽지 않을 만큼 성숙한 단계에 들어섰다고 자부해도 좋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으로 인해 민주주의적 원칙은 중대한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4대강사업을 둘러싼 국론분열의 상황이 어떤 방식으로 정리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앞날이 결정될 것이다.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4대강사업을 그대로 밀어 붙인다면 이 땅의 민주주의는 회복이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된다. 나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