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18일 목요일

개인의 토지 vs 국가의 영토 / 경향신문 헌법 11.0 다시 쓰는 시민계약/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임아영·김경학·김한솔 기자

한국의 땅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5년 한국의 토지가격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2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일본의 2.2배보다 2배가량 높고, 인구밀도가 비슷한 네덜란드와 비교해도 3배가량 높다. 세계 최고 수준의 땅값은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도 무관치 않다.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인 ‘소득이 낮아서’ ‘집이 마련되지 않아서’ 등은 결국 높은 부동산 가격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높은 땅값은 생활비와 생산비용을 압박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부동산 가격을 잡아야 하는 이유이다. 
■ 개인 노력과 무관한 땅값 상승 
토지공개념은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권을 적절히 제한해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것이다. 토지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고, 한 지역에서 수요가 증가한다고 다른 지역에서 가져올 수 없는 등 다른 재화와 달리 공급이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물리적으로 마모되지 않는 것도 이유다. 여기서 말하는 토지는 땅을 포함해 천연자원이나 환경 등 자연물 전체를 가리킨다. 토지공개념의 원조는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다.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토지공개념이 실현돼야 공정하고 효율적인 진정한 시장경제가 된다고 했다. 
토지공개념에 반대하는 이들은 사유재산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유재산 제도는 개인의 노력과 기여의 산물에 절대적·배타적 소유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땅값과 같은 불로소득을 공적으로 환수해 사회에 나누는 것은 사유재산 제도와 부합한다. 땅값 상승은 사회 발달과 정부 정책 등 사회적 요인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학자들인 존 로크,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밀턴 프리드먼 등이 토지에 대한 절대적·배타적 소유권에 반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토지공개념 반대론자들은 토지공개념이 반시장적이라고도 주장한다. 토지의 절대적·배타적 소유권을 인정해야만, 토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가능하고 오용을 막으며 사용의 안정성을 보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토지에 절대적·배타적 소유권을 인정해 사용권과 처분권뿐 아니라 수익권까지 개인에게 부여하는 것은, 투기를 위한 보유를 자극해 오히려 효율적 사용을 막는다. 투기를 위해 보유한 이들은 시세차액을 챙기는 데 관심이 있어 토지의 적절한 사용에는 무관심하다.
토지공개념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대만은 ‘평균지권(平均地權)’을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 평균지권은 토지는 전 국민 소유이므로 국민이 골고루 보유하고, 특정인이 과도하게 소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평균지권은 4가지 원칙으로 구현된다. 모든 토지의 가격을 정부가 매긴다는 규정지가(規定地價)와 토지가격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는 조가징세(照價徵稅)가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규정지가를 고시하면 토지소유자는 토지가격의 80~120% 범위 내에서 신고하고 정부가 최종가격을 확정해 과세한다. 나머지 둘은 토지소유자가 신고가격이 규정지가의 상하한 20%를 벗어나면 정부가 이를 매수하는 조가수매(照價收買), 지가가 별다른 노력 없이 상승하면 늘어난 가치만큼을 공공부문에 귀속시키고 상승분에 토지증가세를 부과하는 장가귀공(張價歸公)이다.
스페인 헌법은 국민의 적절한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투기적인 토지사용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규정했다. 공공기관에 의한 도시계획은 사회적으로 이익을 주는 행위로 이해하고 이에 따른 편익을 각 지역사회가 향유할 권리가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은 과거 흑인과 백인 갈등이 국가통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경험에 바탕해 토지 등 부동산의 공평한 분배를 강조하고 있다. 이 나라 헌법 25조5항은 “국가는 가용 자원의 범위 내에서 국민들이 부동산 접근 권한을 공평하게 획득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합리적인 입법 조치 및 기타 조치를 취해야 한다”이다. 
■ 위헌 낙인찍힌 토지공개념 제도 
한국은 제헌헌법부터 재산권의 사회적 구속을 못 박았다. 현행 헌법 122조에서 토지 재산권은 일반 재산권보다 더 강한 사회적 구속성을 받도록 했다. 헌법재판소도 여러 사건에서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헌재는 “토지는 원칙적으로 생산이나 대체가 불가능해 공급이 제한돼 있고, 우리나라의 가용토지 면적은 인구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반면 모든 국민이 생산이나 생활의 기반으로서 토지의 합리적인 이용에 의존하고 있다”며 “사회적 기능에 있어서나 국민경제의 측면에서 다른 재산권과 같게 다룰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공동체의 이익이 보다 더 강하게 관철될 것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반에는 토지공개념이 위헌이라는 인식이 많다. 택지소유상한법과 토지초과이득세법, 종합부동산세법 등 토지공개념이 담긴 법률 일부 조항이 헌재에서 위헌 결정이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위헌이나 헌법불합치를 결정한 이유는 토지공개념이라는 입법 목적이 아니라 과세 방법 등 기술적인 문제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본 것이다. 
가령 택지소유상한법은 6대 도시의 경우 660㎡라는 가구별 소유 상한을 일률적으로 낮게 정한 부분, 그 상한을 초과해서 소유했을 경우 내는 부담금의 부과율이 4~11%로 높은 부분, 법 시행 전 택지를 소유하던 이의 유예기간이 법 시행 이후 소유하는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부분 등이 위헌이라고 봤다. 이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고쳤다면 이 법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 헌재의 판단이었다. 토지초과이득세법도 유휴토지가 아닌 택지에는 과세하지 않는 부분, 양도소득세가 부과될 때 세금을 공제하지 않는 부분 등이 헌법에 어긋났다. 종합부동산세법은 자산소득에 대해 개인별로 합산해 과세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를 합산해 과세하는 것이 위헌 이유였다.
학계에서는 세부적인 부분도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헌재 결정을 비판하기도 한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헌 심사를 할 때 재산권 등 경제적 기본권은 입법자의 재량을 광범위하게 인정해 국가가 규제를 많이 할 수 있고, 표현의 자유·양심의 자유 등 자유권적 기본권은 국가가 규제하는 것을 엄격히 심사한다는 이중 기준의 원칙이 있다”며 “토지공개념 관련 법률은 이것을 거꾸로 적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토지 등 재산권 부분에 대한 그 정도의 규제는 인정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헌법에 불로소득 환수 명시해야” 
한국에서는 매년 국내총생산(GDP) 30% 안팎의 부동산 불로소득이 발생한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 등이 한국은행 국민대차대조표 등을 가공한 결과, 2015년 실현된 부동산 자본이득과 부동산 임대소득을 더한 금액은 482조원으로 GDP의 31%였다. 부동산이 소수에게 집중된 현실에서 부동산 불로소득은 소수에게 돌아가고 소득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구체적으로 넣고, 그에 따른 법률과 제도를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경제·재정분과에서 나온 개정안은 현행 122조를 강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현재는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이다. 여기 ‘토지 투기로 인한 경제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하는 내용을 추가하자고 한다.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와 시민단체 토지+자유연구소(옛 토지정의시민연대)는 122조의 목적 부분에 ‘불로소득 환수’를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경제조항인 119조에 3항을 새로 만들어 “국가는 국토와 천연자원으로부터 소유자의 생산적 노력 및 투자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이익을 환수할 수 있다”고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지공개념의 실행방안으로 국토보유세 등을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다. 전국의 모든 토지를 용도 구분 없이 사람별로 합산해 과세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2015년 기준으로 개인 소유 토지에서 16조3383억원, 법인 소유 토지에서 3조3136억원 등 모두 19조6520억원이 걷힐 것으로 남 소장 등은 추산한다. 여기에서 지방세인 재산세 5조150억원을 빼면 국토보유세는 14조6370억원이 된다. 그리고 이 세수를 모든 납세자에게 나눠주자는 것인데 1인당 30만원 정도가 된다.
일각에서는 보유세가 오르면 지가가 하락하고 금융사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 때 모르핀을 줘서는 낫지 않는다. 수술로 치료해야 하는데 고통이 불가피하다. 고통을 겪지 않고 해결할 방법이 없다. 수술대 눕는다고 안 죽는다. 한국 경제가 경착륙을 버틸 능력이 있다. 지금 상태로 가다보면 언젠가는 터진다. 그때 진짜 금융위기가 온다. 엄청난 손실이 오기 전 보유세 강화 등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대는 많은 경우 그 소유자가 관심이나 주의를 전혀 기울이지 않고도 향유할 수 있는 수입이다. 따라서 지대는 그 위에 부과되는 특수한 조세를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다.” - 애덤 스미스

“지주들은 일하지 않고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혹은 절약하지 않고도 잠자는 가운데도 더 부유해진다. 전 사회의 노력으로부터 발생하는 토지가치의 증가분은 사회에 귀속되어야 하며 소유권을 갖고 있는 개인에게 귀속되어서는 안 된다.” - 존 스튜어트 밀
“(모든 세금은 나쁘지만) 세금 가운데 가장 덜 나쁜 것은 오래전 헨리 조지가 주장한 바, 미개량 토지의 가치에 부과되는 재산세이다.” - 밀턴 프리드먼
<도움말>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김낙년 동국대 교수,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박창수 주거권기독연대 공동대표,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황도수 건국대 교수 
<참고문헌> 
국민주도헌법개정전국네트워크 ‘토지공개념 개헌 토론회’ 자료집, 토지+자유연구소 <주요국의 토지가격 장기추이 비교>, 남기업 등 <부동산과 불평등 그리고 국토보유세>, 국회입법조사처 <토지공개념 관련 국내외 입법례 조사>, 한정희 <일제 토지조사업의 “자본화 과정” 연구> 등
<특별취재팀> =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임아영·김경학·김한솔 기자 
출처 https://goo.gl/mRGV9n

한국 문학은 ‘1987년’을 다루지 않았다…왜?/ 권영미 뉴스1 기자

군사독재정권 붕괴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중심으로 1987년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1987'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문학은 1987년은 어떻게 담아냈을까. 

1987년을 둘러싼 분위기는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인기를 끈, 소위 '후일담문학'과 노동운동이나 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노동문학' 속에 담겼다. 하지만 문학계에 따르면 4·19혁명이나 광주민주화운동 못지않게 역사적 의미가 큰 사건임에도 1987년의 사건들이나 6·10항쟁을 직접 다룬 문학작품은 몇 편 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 한국문학은 1987년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을까. 평론가들은 그 이유를 1990년대 사회주의 이념의 붕괴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강력한 출현 때문에 1987년의 민주화 운동을 역사적으로 형상화할 기회를 놓친 데서 찾았다. 또 그런 문학적 쏠림 현상을 바로 잡아줄 비평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태순 '밤길의 사람들', 김숨의 'L의 운동화' 등이 1987년 다뤄

2016년 소설가 김숨이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 복원과정을 다룬 작품 'L의 운동화'를 발표했고, 1990년에 울산현대중공업 파업의 기록인 '철의 기지'를 쓴 김형진 작가가 지난해 말 소설 '6월10일'을 내면서 최근에 1987년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문학에도 일기 시작했다. 

이들 이전에는 2007년 출간된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 66인 시집인 '유월, 그것은 우리 운명의 시작이었다'(화남출판사)나 소설가 박태순 '밤길의 사람들'(1988) 등이 있었다. '밤길의 사람들'은 1987년 6월의 밤에 데이트를 하는 노동자 두 사람의 눈으로 혁명의 열기에 휩싸였던 당시를 증언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들 외에 1987년을 직접적인 배경이나 소재로 한 작품은 거의 없었다고 평론가들은 밝혔다.
1987년은 대신 주인공이 겪었던 학생운동 사건과 내면을 수 년 후 되돌아보는 '후일담문학'이나 '노동문학'에 배경으로 들어갔다. 공지영의 ‘더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1989)와 '고등어'(1994),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1992) 등은 후일담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 외에도 건대항쟁, 6·10항쟁, 이한열 장례식 등을 배경으로 한 심산의 '사흘밤 사흘낮'(1994), 김영하의 사실상 데뷔작인 '무협학생운동'(1992), 1990년 '현대소설'에 발표한 현기영의 '위기의 사내', 정도상의 '친구는 멀리 갔어도'(1988) 등이 1987년의 분위기를 담은 후일담문학으로 발표됐다. 김영현, 방현석, 김인숙, 권여선, 최영미, 김형경 등도 후일담 문학을 남겼다.

학생운동이 아닌 노동운동이나 사회운동의 경험을 담은 작품들에도 간접적으로 1987년 민주화운동 당시의 분위기가 담겼다. 1987년 무크지인 '전환기의 민족문학'에 발표된 정화진의 단편 '쇳물처럼'과 1989년 문예지 창작과비평에 실린 방현석의 단편 '새벽출정'은 노동소설의 신호탄이 된 작품들이다. 

교사출신 활동가이자 소설가인 유시춘이 학생운동과 전교조 활동의 경험을 담아낸 작품집 '우산 셋이 나란히'(1990)를 냈고 차주옥은 86년 초에서 87년 7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섬유업체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건설 과정을 담은 '함께 가자 우리'(1990)를 발표했다. 하지만 후일담문학과 노동문학은 1990년대 초중반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이후 개인의 내면이나 일상을 다룬 새로운 문학이 등장, 인기를 끌며 힘을 잃어갔다. 

◇1987년을 문학이 제대로 다루지 않은 이유

4.19나 광주항쟁을 다룬 작품들에 비해 1987년을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의 수가 압도적으로 적은 것은 매우 특이한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출판평론가 김성신은 한국문학 속 1987년의 부재에 대해 "결국 직선제는 쟁취했지만 민주진영의 대선승리로 연결시키지 못한 열패감이 컸고, 그래서 6월 항쟁을 계속 떠올리기엔 미안하고 부끄러웠던 것이 아닌가"라고 추정했다. 

문학평론가 김명인은 "광주항쟁 같은 경우는 트라우마가 깊은 사건인 반면 1987년의 6.10항쟁은 승리한 사건이어서 문학적으로 선택되지 않았을 수 있다. 통상 비극이고 패배한 기억이 더 문학적인 소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의 사건들과는 달리 1987년의 민주화투쟁은 역사적인 변화 때문에 작품으로 형상화할 타이밍을 놓쳤다고도 설명했다. 역사적 사건이 문학으로 형상화되는데는 통상 긴 시간이 필요한데 1987년의 사건이 문학으로 발표될 시기가 공교롭게도 사회주의 붕괴와 맞물렸다는 것이다. 

김명인 평론가는 "'후일담 문학'은 개인적인 회고라 앞서서 발표될 수 있었지만 역사적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본격적인 작품은 시기적으로 1990년대 들어야 가능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이 때 정치적 변화와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이 강력하게 등장했다. 그래서 역사적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작품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며 억압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작가들도 위축되었다. 소설가 방현석은 "1990년대에 학생운동이나 노동문제를 소설에 쓰면 거의 '응징당하는' 분위기였다"고 회고했다. "'아직도 이런 것을 쓰고 있냐'는 냉소적인 반응때문에 작가들이 맥이 빠져 그런 주제에 계속 천착하기가 힘들었다"는 설명이다. 

신세대 문학이나 포스트모더니즘 쪽으로만 쏠리는 분위기를 잡아줄 평론의 부재 역시 문제였다는 진단이다. 문학평론가 고명철은 "1990년대 사회주의 붕괴 후 한국문학이 너무 조급하게 '새로운 글쓰기'로 나아갔다"면서 "'신세대 문학'에 집중한 출판마케팅과, 정치적 변화에 휩쓸려 정당한 평가를 방기한 비평적 게으름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고명철 평론가에 따르면 손홍규 작가가 학생운동의 쇠퇴의 계기가 된 1996년 연세대 사태를 작품에 진지하게 담았고, 이기호 작가도 유신체제와 전두환 정권 문제를, 김종광 등도 운동권을 위트와 풍자를 섞어 자기 세대에 맞게 재해석한 작품들을 썼다. 1987년과 그 즈음을 다룬 작품을 쓰고 싶어하는 작가들은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작가들의 노력에도 문단은 '80년대 아류작이다' '왜 선배들의 목소리를 흉내내느냐'며 싸늘한 반응을 보냈고 평단도 이들 작품에 관심을 두지 않아 학생운동을 다룬 작품은 점점 사라져갔다. 

◇세월호로 사회 대한 관심 복원…역사와 사회 탐구하는 문학 나올 것 

그러나 세월호를 기점으로 역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복원되었기 때문에 역사의 의미를 묻는 작품들이 앞으로는 많이 창작될 것으로 문인들은 내다봤다. 고명철 평론가는 "영화 '1987'에 수백만 관객이 든 것을 보면 한국 대중이 현대 역사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면서 "단지 자신들이 가진 민주주의 열망을 예술이 제대로 담아내지 못해 갈증이 쌓여있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방현석 작가는 "1987 영화가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와 개인의 실존이 분리될 수 없다'는 공감대를 사람들이 갖게 되었고 그에 가장 신속하게 반응한 것이 영화"라고 말했다. 이어 "문학작품이란 소재나 당위성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작가의 내적 동력과 미학적으로 완성시킬 수 있는 능력이 확보되어야 나온다"고 설명하면서 "독자와 사회 변화가 작가에 영향을 미쳐 한국문학도 (다른 장르보다) 더디긴 하지만 사회와 역사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작품들이 다시 많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ungaungae@
출처 http://news1.kr/articles/?3204825

미국, 종이책 판매 늘고 독립서점 다시 늘어나 / 이강봉 객원기자

지난 2007년 11월 아마존이 전자책인 킨들(Kindle)을 내놓자 출판업자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MP3 등의 디지털 기술이 음반업계를 바꾸어놓았던 것처럼, 이 전자책이 출판업계 질서를 재편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예측은 들어맞았다. 이후 전자책의 판매량은 1200%가 늘어났다. 대신 기존의 책 판매량이 크게 줄고 많은 서점들이 판매부진으로 울상을 짓고 있다. 전자책(e-book) 기술은 혼자서 책을 낼 수 있는 자가출판(self-publishing)을 가능케 했다.
이런 풍토는 기존의 출판업자들을 위협하면서 기존 대기업 중심의 출판 풍토를 바꾸어놓을 것 같았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다. 2016년 미국과 영국의 전자책 판매량은 각각 18.7%와 16%가 줄어들었다.

가격, 피로감 때문에 전자책 기피
반면 종이책 판매량은 미국이 7.5%, 미국이 7% 각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독서의 나라 프랑스의 경우는 전자책 점유율이 3%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최근 판매량이 더 줄어들어 전자책의 생존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17일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관계자들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 가격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전자책 가격이 종이 한 장으로 책 표지를 장정한 염가의 페이퍼백 서적보다 훨씬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
또 다른 원인으로 전자책으로 인한 피로감을 지적하고 있다. 오랜 시간 전자책을 보면서 시각적 피로감을 느낀 독자들이 눈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피로감을 줄일 수 있는 종이책으로 다시 돌아서기 시작했다는 것.
여러 가지 다기능이 복합된 귀로 듣는 책 ‘오디오북(audiobook)’ 역시 전자책 판매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스마트폰 등을 통해 오디오북 판매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기존 출판업계 판도를 새롭게 바꾸어놓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소셜미디어(SNS)다. 그 동안 독서시간을 잠식하는 요인으로 활동해왔다. 온라인 매체 ‘쿼츠(Quartz)’에 따르면 사람들이 SNS를 들여다보고 있는 시간을 독서로 전환하면 연간 200권의 책을 읽을 수 있다.
이런 변화에 따라 독립서점들이 다시 늘기 시작했다. 독립서점들은 스스로 체인형태를 갖추고 ‘반스앤노블(Barnes & Noble)’과 같은 체인형태의 대형 서점이 주도해왔던 서적판매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중이다.
반면 덩치를 키워왔던 대형 서점들은 매출 감소로 곤욕을 치루고 있다. 그동안 아마존, 반스앤노블 등 주요 기업들은 ‘킨들’, ‘누크(Nook)’ 등 전자책 형태의 디지털 하드웨어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해왔다.
전자책 기술 결합한 제 3의 서적 예고
그러나 최근 전자책 시장이 위축되면서 투자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오히려 매장 내에 선물·장난감 가게, 카페, 음식점 등을 신설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안간 힘을 써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계속 점포망을 키우고 있는 아마존의 오프라인 서점 역시 서점가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해 7번째 오프라인 서점을 뉴욕시에 개장했는데 첨단 기술을 활용, 다른 서점들과 차별화된 판매 전략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아마존의 경쟁력은 강력한 기술력에 기인한다. 서점을 3D 가상의 세계처럼 꾸미고, 기존의 서점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출판 평론가인 알렉산더 얼터(Alexander Alter) 씨는 “아마존이 독자들의 심리를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마존의 경쟁력은 전자책 부문에서도 강력한 힘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청소년 독자들을 대상으로 채팅형 전자책 콘텐츠 ‘래피즈(Rapids)’다. 디지털 온라인 방식으로 전자책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전자책이 종이책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독자들의 독서 패턴에 맞는 새로운 기술을 접목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얼터 씨는 특히 다양한 스크린이 결합된 융복합형 전자책을 권고하고 있다.
전자책을 최초로 선보인 곳은 일본이다. NEC(Nippon Electric Company)의 디지털 북 플레이어 ‘DP-P1’은 5.6인치 흑백 액정 디스플레이에 문장과 화상을 재생할 수 있었고, 또한 확대 표시, 자동 페이지 넘김, 검색 등의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이후 전자책 산업은 빠르게 발전해 향상된 스크린 해상도, 다양한 편집기능 등을 갖추어 클릭만으로도 페이지를 넘길 수 있고, 메모는 물론 텍스트의 확대 및 축소, 인터넷 서점이나 도서관의 문서 검색 및 내용 다운로드 등도 가능하게 됐다.
또한 종이책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 온라인 구매를 통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며, 필요한 부분만 별도로 구입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으로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전자책을 다양하게 개발해 출판시장을 급속히 점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장점과 함께 성장해온 전자책이 종이책의 경쟁력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전자기술이 지니고 있는 기술적인 이점이 종이책의 강점인 감성적 경쟁력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관계자들은 향후 종이책 시장과 오프라인 서점, 그리고 전자책 기술 등이 결합해 새로운 출판 문화가 형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마존 등의 첨단 기술 투자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그 귀추가 궁금해지고 있다.

출처https://goo.gl/hgmFrQ

2018년 1월 17일 수요일

오래된 아파트 숲은 작은 국립공원/ 한봉호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오래된 아파트 숲은 작은 국립공원

글 한봉호
1980년대 건설된 아파트는 녹지율이 40퍼센트를 넘는다. 자연 상태 산림을 보존한 곳도 있다. 30년이 지난 현재 나무 높이가 20미터를 넘었고, 지름 50센티미터가 넘는 나무도 많다. 자연 생태가 우수한 국립공원 숲과 유사한 크기다. 자연 산림에 사는 야생조류가 서식한다. 전국 재건축 아파트 도시 숲을 합하면 작은 국립공원 1개 넓이 거대한 숲이 사라지는 셈이다.
아파트는 도시생태계에 불리한 구조다
우리나라 1970년대 급격한 경제 산업화는 사회의 물질과 정신 구조를 변화시켰다. 도시로 사람이 몰린 탓에 1990년대 전국 인구 82퍼센트가 도시에 거주하게 됐다. 많은 인구가 도시에 모이면서 좁은 땅에 많은 주택을 확보하기 위해 ‘아파트’라는 주택형태가 나타났다. 아파트(Apartment)는 미국 남북전쟁 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성장을 거치면서 도시에 밀집한 사람들을 위한 ‘고밀도 주거형식’이다. 우리나라 공동주택은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기숙사로 나누는데 아파트는 연면적 660제곱미터를 웃도는 5층 넘는 주택을 이른다.
도시가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려면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물이 지하로 자연 침투해 지상에 생물서식의 기반을 이뤄야 한다. 또한 지상에 다양한 생물이 안정된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 이것은 도시에서 인간이 안전한 환경에서 살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하지만 아파트는 이 전제 조건을 따르기 어렵다. 우선 에너지 순환 측면에서는 전기에너지를 많이 쓰는 구조다. 높은 곳까지 인간과 인간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옮기기 위해 승강기를 써야한다. 물도 마찬가지다. 또한 아파트는 여러 층을 높이는 만큼, 이를 지탱하도록 땅 밑을 개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물 순환 체계가 단절된다. 생물이 서식하는데 제약이 많다. 또한 녹지공간도 인공지반에 조성되고 면적도 협소하다. 자연생태 공간과 비교해 생물 서식은 최소한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서 생태적인 기능을 그나마 할 수 있는 공간이 녹지이다. 아파트 녹지는 숲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이다. 우리나라 아파트에서 녹지는 건축법 가운데 ‘대지안의 조경과 도시공원과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서 ‘거주자 1인당 공원조성 면적’이라는 제도를 바탕으로 조성된다. 대지면적 15퍼센트 정도를 조경면적으로 둬야 하고, 거주민 1인마다 3제곱미터 공원을 확보해야 한다. 아파트를 만드는 건설 주체에 따라 일부 녹지를 보강하여 숲을 만들기도 한다. 아파트 녹지는 건축물 전면 녹지, 후면 녹지, 측면 녹지와 대지 경계에 있는 완충 녹지로 구성된다.
1970년대 아파트 녹지율은 단지 전체면적 40∼45퍼센트 정도이며 지하가 개발되지 않은 자연지반 녹지로 조성됐다. 자연지반은 수목이 성장해 숲을 이루는데 자연구조와 유사한 형태가 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1980년대에는 아파트가 부동산가치로 바뀌면서 사유재산의 경제 가치를 최대화 하고자 녹지면적을 축소해 녹지율이 30퍼센트 정도가 됐고, 1990년대에는 24퍼센트까지 줄어 숲을 조성할 수 있는 면적은 최소화됐다. 아파트 녹지는 숲이라기보다는 보여주기 정도 수목 식재만 할 수 있는 상태가 됐다. 2000년대 뒤로는 아파트 내 수목과 숲이 거주민의 삶의 지표로 인식되면서 녹지면적이 다시 40퍼센트까지 늘었다. 하지만 건물은 더 높아졌고 그 만큼 지하공간도 더 개발했다. 녹지는 지하주차장 위에 인공지반으로 조성했다. 인공지반은 토양깊이가 2미터 안팎으로 수목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 환경조건이다. 수목이 정상으로 자라 숲을 이루기에는 크게 불리하다.
아파트 숲 개념이 바뀌다
아파트 녹지에 조성된 숲은 다양한 조경수목이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에는 스트로브잣나무, 메타세콰이어, 가이즈까향나무, 양버즘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수수꽃다리, 목련 같이 외래종을 심었으나 2000년대 뒤로는 왕벚나무, 소나무 같은 자생종 조경수목이 늘었다. 특히 상록교목이 지속해서 늘었다. 1990년대부터 경관수목인 소나무를 선호한 탓에 녹지율이 높은 인공지반 아파트에서 대폭 늘어났다. 관목은 큰 변화 없이 비슷한 비율로 심었다.
숲을 만드는 식재개념도 시기에 따라 달라졌다. 녹지율이 높았던 1970∼1980년대 아파트는 녹지유형별 식재개념이 정립 되지 않아 화목수종(꽃나무)과 상징수종, 녹음수종(낙엽활엽수)을 전면에 심었고, 후면에는 상징수목과 화목수종, 단풍수종을 주로 심었다. 측면녹지는 화목수종과 녹음수종을, 완충녹지에는 차폐수종(가림막 나무)인 속성수 위주로 심었다. 완충녹지를 빼고는 녹지유형과 기능과 관계없이 다양한 나무를 심었다. 대부분 숲은 교목이나 관목만 심은 단층구조였다. 1990년대 뒤부터 녹지율이 높은 인공지반 아파트에서 녹지유형별 식재개념을 정립했다. 녹지유형과 기능별로 전면녹지는 아름다운 경관수종을, 후면녹지는 녹음수종을, 측면녹지는 차폐용 수종을 심었다. 식재구조는 단층구조에서 복층구조 또는 다층구조로 변화했으나, 식재형식은 아파트 공간 특성상 줄을 맞추거나 규칙 있게 어긋나는 기하학 모양인 ‘정형식재’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상징성 있는 경관수종은 점차 늘어 차폐수종을 빼면 가장 높은 비율이었다. 유실수종은 1980년대까지 많이 심었으나, 2000년대 들어 줄어들었다. 녹음수종이나, 화목수종, 단풍수종은 큰 변화 없이 지속해서 심었다.
2000년대 뒤로는 녹지유형별 기능에 따른 수종을 심기 시작했다. 교목, 아교목, 관목이 어우러지는 다층구조 또는 교목과 관목이 어울리는 복층구조를 만들었다. 수관폭이 넓은 느티나무, 양버즘나무, 은행나무 같은 녹음수와 왕벚나무, 목련 같은 화목수종, 단풍이 아름다운 수종을 주로 심었다. 최근 조성되는 아파트는 대형 장송을 많이 심는 흐름이 있다. 하지만 토심이 낮은 인공지반에서 살기 어려워 많은 장송들이 죽어가고 있다.
아파트 숲은 도시 속 작은 국립공원이다
아파트에 심은 나무는 조성초기에는 작은 수목이었지만 20년 넘게 시간이 흐르면서 숲을 이룬다. 또한 녹지가 부족한 도심에서 녹지율이 40퍼센트를 넘으면 중요한 녹지공간으로 기능하게 된다. 시민들에게 휴식과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는 공원이면서, 대기오염원을 걸러주고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 공간이 된다.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숲의 기능이 크다.
1980년 조성되어 현재 남아있는 서울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와 송파구 방이동의 올림픽선수촌아파트는 아파트 숲이 도시생태계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사례다. 이들 아파트는 1980년대 초반과 중반에 건설된 아파트로 녹지율이 40퍼센트를 넘고, 자연지반이다. 또한 아파트를 개발할 때 있던 자연 상태 산림을 보존했다. 30년이 지난 현재 수목 높이가 20미터를 넘어섰고, 가슴 높이 기준 직경 50센티미터가 넘는 메타세콰이어, 느티나무가 살고 있다. 이 나무의 크기는 자연성이 우수한 국립공원 숲과 유사한 크기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숲의 바다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이러한 숲에는 박새, 쇠박새, 딱새 같은 산림성 소형 조류를 포함해 쇠딱다구리, 오색딱다구리 같은 포식성 야생조류가 살고 있으며, 아파트 외곽에는 생태계 먹이 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인 황조롱이도 서식하고 있다.
일반 도심에는 까치, 직박구리, 참새 같이 도시화된 야생조류만 살지만 오래된 아파트 숲에는 자연 산림에 사는 조류가 서식하고 있다. 올림픽선수촌아파트와 같이 단지 안에 하천이 통과하는 경우에는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 쇠백로와 중대백로, 해오라기, 물총새 같은 물새도 살고 있다. 오래된 아파트 숲은 도시민의 휴식, 아름다운 경관, 야생조류의 서식공간, 도시를 시원하게 하는 찬 공기 생성과 바람길 같이 도시기후를 조절하며, 도시를 생태적으로 안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재건축으로 작은 국립공원 1개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건설된 지 20년이 넘으면 재건축을 한다. 너무 짧은 기간이 사회문제가 되어 최근에는 30년으로 연장했고 안전진단을 거쳐 재건축하고 있다. 건설된 지 20∼30년은 아파트에 식재된 수목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하다. 나무는 심은 뒤 약 5년 정도 까지는 토양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성장을 거의 멈춘다. 5년 뒤에야 본격 성장하기 시작해 20∼30년이면 성숙한 나무로 자라 그 기능을 하면서 잘 살아가기 시작했는데 재건축으로 잘려나가고 있다. 이식하는 방법도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탓에 대부분 베어내고 다른 나무를 심는다. 이런 식의 재건축 방법은 도시 내 중요한 생태 숲을 사라지게 한다. 도시 환경에 매우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다. 도시 숲이 형성된 대부분 아파트가 재건축을 앞두고 있어 30년 넘는 숲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전국 재건축 아파트 도시 숲을 합하면 작은 국립공원 1개 넓이 거대한 숲이 사라지는 셈이다.
재건축을 하게 되면 우선 아파트 숲은 가능한 남기는 건축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피할 수 없을 때는 생태적 가치, 수목의 형태, 생육상태, 이식가능성을 검토해 이식하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아파트 숲이 형성된 아파트 가운데 최근 재건축이 확정된 둔촌동 주공아파트를 평가한 결과 75퍼센트 정도 나무가 이식해야할 대상이었다. 경제성을 고려하더라도 최소 50퍼센트 넘는 수목은 이식하는 것이 타당하다.
새롭게 개발되는 아파트 녹지가 기존 아파트 생태 숲 기능을 하려면 일부라도 자연지반 녹지로 조성하고 다층구조 숲을 만들어야 한다. 다양한 생물서식을 위한 수생공간을 조성하고, 외곽완충녹지 15미터 정도를 자연지반에 조성해야 한다. 아파트는 다른 생명체와 함께 안전하게 살아가야하는 생태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 이 글은 <재건축 아파트단지 조경수목 가치평가를 위한 이식수목 선정기법 개발연구>(이인용, 2016, 서울시립대 석사논문), <서울시 아파트단지의 녹지배치와 식재구조 변화연구>(이동욱, 2009, 서울시립대 석사논문), <용적율 변화에 따른 아파트단지 내 녹지구조 변화에 관한 연구>(김정호, 2002, 서울시립대 석사논문), <단지계획기준>(대한주택공사, 2000), <한국공동주택계획의 역사>(공동주택연구회, 2001)를 참고했습니다.
한봉호 – 서울시립대 조경학과에서 ‘환경생태계획’과 ‘도시환경과 녹지’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환경생태학회와 한국조경학회에 함께하면서 도시생태, 경관, 도시숲, 생태도시건설 관련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함께 쓴 책 《환경생태학》, 《환경생태계획》,《상생의 숲 오대산국립공원》이 있다.
출처 http://jaga.or.kr/?p=10758

유가학단의 적, 영원한 비주류 묵가와 양주/ 김갑수 페이스북에서

유가학단의 적, 영원한 비주류 묵가와 양주
역사를 바꿀 수 있는 100권의 책 - 95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보면 조선의 유학자들이 양주와 묵가를 비난하는 말이 자주 보인다. 양주와 묵자의 사상은 유학과는 크게 달라서 공존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선의 유학자들은 양주와 묵가를 기피하고 혐오했다.

일찍이 맹자는 “묵가의 무리는 군신과 부자의 도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비판했다. 순자의 묵가 공격은 더욱 논리적이었다. “묵자는 실용에 가려서 예문을 알지 못했다. 실용만을 도라고 하면 사람들은 모두 공리만을 추구할 것이다. 이는 도의 한 모퉁이일 뿐이다.”

사실 이렇게 된 데에는 묵가의 유가 공격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묵가의 시조 묵적은 공자 바로 다음 시기의 사람으로서 맹자나 순자보다 이른 시대의 인물로 추정된다. 근검과 절약을 강조했던 묵가는 유가의 천명론과 허례허식에 경멸을 보냈다. 묵가는 유가학단을 싸잡아 ‘속유의 무리’라고 비난했다.

《한비자》에는 “세간에 이름 높은 학파로 유가와 묵가가 있다, 유학의 으뜸은 공구(孔丘, 공자)요, 묵가의 으뜸은 묵적(墨翟)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요컨대 당대 약 100년 동안 묵가는 유가와 대등한 세를 형성한 양대 학단이었다.

‘묵수(墨守)’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이는 묵적지수(墨翟之守)의 줄임말인데, 글자대로 하면 ‘묵적이 (성을) 지켰다’는 뜻이다. 이 말은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견고하게 지켜 나간다는 좋은 뜻임에도 불구하고 융통성이 없어 답답하다는 투의 부정적 어감을 풍긴다.

묵적(BC 480 ~ ?)은 제자백가 중 묵가의 시조로서 묵자라고 경칭되는 인물이다. 공자가 인(仁), 순자가 예(禮), 맹자가 의(義)를 강조했다면, 묵자는 애(愛)를 강조했는데, 그의 애는 정확히 말해서 이타적인 애, 즉 겸애(兼愛)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다시 묵적지수로 논의를 돌리자면, 이 말에는 대단히 견고한 반전주의 논리가 들어 있다는 점이 간과되는 것 같다. 묵자는 사상 최초의 반전평화주의자로 꼽힌다. 묵자는 겸애를 그르치는 최악의 행위를 전쟁이라고 규정했다. 전쟁은 다수인 인민의 삶을 파탄내기 때문이다.

《중국철학사》를 저술한 펑유란은 “유가는 사대부, 법가는 신흥지주, 도가는 몰락 귀족, 묵가는 하층 평민층을 대표하는 사상이다.”라고 말했는데, 결과론적으로만 본다면 매우 그럴 듯한 분석인 것 같다. 묵자는 어떤 명분의 전쟁에도 반대하는 가운데, 다만 방어를 위한 전투의 필요성만을 인정했는데,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묵적지수라는 말이었다.

묵자는 남의 과수원에 들어가 자두나 복숭아를 훔치는 일보다 더 나쁜 것은 남의 개, 닭, 돼지를 훔치는 일인데 그것은 남을 해롭게 한 것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그는 타인을 해롭게 하는 것이 클수록 불인(不仁)의 정도가 더 심해진다고 보았다. 이렇게 따질 때 전쟁이야말로 최대의 불인이 되는 것이다.

묵자는 “사람을 한 명 죽이면 불의하고 10명 죽이면 10배로 불의하고 100명 죽이면 100배로 불의하다. 이 경우 천하의 군자들 모두 불의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남의 나라를 공격할 경우 불의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작은 불의를 저지르면 이를 비난하다가 전쟁을 일으키는 큰 불의를 보고는 비난은커녕 오히려 칭송하면서 ‘의’라고 말하는 자들, 즉 작은 불의와 큰 불의를 구분할 줄도 모르는 자들이 어찌 군자란 말인가?”라고 말했다.

근현대 제국주의 국가 영국과 미국은 걸핏하면 남의 나라를 침공하면서 명예를 위하여, 정의를 위하여, 자유를 위하여, 민주주의를 위하여 등을 주워섬겼다. 이는 한 마디로 말해서 예외 없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와 같은 것이다. 우리는 '묵적지수'의 방어전쟁 이외 그 어떤 전쟁에도 묵자처럼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묵가보다도 양주를 더 혐오했다. 그래도 묵가는 유가를 공격하기는 했지만 사상적으로 유가와 공통되는 점이 있다. 그러나 양주는 유학과는 공통되는 면이 없다. 조선의 유학자들은 양주를 지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고 여겼다.

우리는 기원전 3세기에 활동한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 Laertios) 는 알지만 양주(楊朱, BC 440?~360?)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양주는 중국 전국시대의 학자로서 ‘위아설(爲我說)’, 즉 이기적인 쾌락설을 주장했다. 그의 삶은 명확하지 않고 《장자》, 《열자》 등에 그 편린이 남아 있다. 그러나 맹자가 “양주·묵적(墨翟)의 말이 천하에 충만하였다.”고 지적한 것으로 미루어, 당시 양주학파는 나름 융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의미 있는 철학사상일지라도 국가 공동체의 권력이나 기득권에 방해되는 것들은 후대까지 계승되기가 어렵다. 사실 민본혁명론을 주장한 맹자만 하더라도 춘추전국시대는 물론 한, 당대까지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맹자가 부각된 것은 송대 이후의 일이었다.

디오게네스와 양주는 국가권력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양주가 그렇듯이 디오게네스에 관련된 기록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노숙자 디오게네스’와 ‘황제 알렉산드로스’의 일화를 알고 있다.

“내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는가?”

“아, 몸을 좀 비켜 폐하의 그림자를 치워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햇빛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황제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라면 디오게네스 같은 사람이 되고 싶구나.”

하지만 그냥 넘어갈 디오게네스가 아니었다.
“제가 디오게네스가 아니라면 폐하가 아닌 그 어떤 사람이 되어도 좋겠습니다.”

이처럼 디오게네스는 그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세상에 대해 조롱과 독설을 서슴지 않았다. 이것은 장자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점에서는 장자보다 양주와 더 닮았다. 디오게네스와 양주의 공통점은 일면 개인주의적이지만 ‘개체 중심적인 세계관’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가 있다.

拔一毛而利天下 不爲(발일모이리천하 불위)

몸의 털 한 올을 뽑아서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맹자》, 〈진심장〉 편에서 인용)

이는 양주가 남긴 말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다. 맹자는 양주의 핵심 사상인 위아(爲我), 즉 나를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결국 사람과 짐승의 경계를 허물게 될 것으로 보아 혹독하게 비판했다. 맹자는 양주를 극단적인 이기주의자 또는 허용될 수 없는 혹세무민의 사설(邪說)로 보았던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도 양주의 입장은 지나친 점이 있어 보인다. 몸에서 털 한 올을 뽑는다고 해서 뭐가 그리 손해 보는 일이라고? 그런데 나라를 위해서 그것조차 하지 않겠다고 하니 너무한다고 생각될 수 있다. 특히 털 한 올과 나라의 비중을 고려하면 양주는 전혀 합리적인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털 한 올을 글자 그대로가 아니라 나의 건강을 유지하고 나의 의지에 반해서 누구에 의해서도 훼손될 수 없는 ‘생명체의 상징’이라고 생각해보자. 일모(一毛)도 개인의 생명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므로 천하의 가치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일모는 천하와 대등하거나 더 소중할 수도 있다. 부국강병을 내세우는 국가주의자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희생해서라도 나라에 이바지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했지만 제대로 보답을 받지 못하는데도 계속해서 개인의 희생만 요구한다면, “내가 왜 나라를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가?”라고 되물을 수가 있다. 양주는 바로 이러한 시대, 다수를 형성하는 개인들의 여망을 담아서 ‘위아’를 주장했던 것이다.

한비자는 양주의 사상을 물질의 가치를 가볍게 보고 생명의 가치를 높게 봐야 한다는 뜻의 ‘경물중생(輕物重生)’으로 규정했다. 이러한 한비자의 평가는 맹자의 비판에 비해서 단연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은 부분으로 나눌 수도 없고 어떤 외적 가치에 의해서 양도될 수도 없는 절대적 가치를 갖는다. 바로 이런 인식을 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어떠한 외부의 요구로부터 우리의 심신을 온전히 지키려는 ‘인권’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자각이 있어야 우리는 나의 심신을 스스로 통제하는 자유를 가지면서 내 생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국가보다 자기 생명을 중시한 양주의 글은 거의 소실되었지만, 사회와 국가의 힘에 굴하지 않고 생명의 온전한 가치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양주는 ‘대단히 독창적이고 인상적인 제자백가’였다는 평가를 내릴 수가 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kimcapsu?fref=nf

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 "생활문화 생태계 조성… 시민 삶 향상"/ 김동성 중부일보 기자

‘청소년 영화아카데미’ ‘국제판타스틱 영화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 ‘국제만화축제’ ‘전국대학가요제’ 등.

축제 이름만 보면 전국에서 열리는 축제들을 모아놓은 것 같지만 이 같이 굵직한 축제들이 열리는 곳은 바로 ‘부천’이다. 축제 이름에서 부천만 빼놓은 것이다. 

부천은 서울과 인천 등 대도시 사이에 위치해 있다. 생활권은 이들 도시들과 경계가 없지만, 부천의 문화·예술만은 이들을 압도할 만큼 다양하다. 


이와 함께 부천생활문화페스티벌 ‘다락(多樂)’, 생활문화예술지원사업 ‘키위(키움+we)’, 작가주의적인 예술활동, 표현하라 ‘청년예술가 S’ 등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 또한 놓치지 않는다. 부천의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부천문화재단의 손경년 대표에게 올해 계획을 들어본다.



-부천문화재단에서 본부장, 상임이사를 거쳐 대표이사가 됐습니다. 만감이 교차할 것 같습니다.


“2001년 10월1일 부천문화재단 설립 당시 저는 경영기획팀장으로 입사해 문화정책실장으로 3년간 재직했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와 상지대학교에서 각각 3년 간 재직하다, 2010년 12월 다시 재단으로 돌아와 문화예술본부장직을 맡게 됐다. 2016년 여름, 본부장에서 다시 임원직으로 상임이사가 돼 대표이사 직무대행을 수행했고 다음해 공채과정을 거쳐 2017년 8월 제6대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제가 재단의 팀장에서 출발해 대표이사까지 될 수 있었던 데는 부천시민들이 지역 재단의 역할과 비전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한 사람으로 인정해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더 나은 부천의 문화정책과 재단의 질적 성장을 기대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재단 대표이사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


-그동안의 부천문화재단에 대한 평가와 새해를 맞아 계획하시는 문화행사, 축제 등이 있다면.

“재단은 연초에 조직개편을 크게 했다. 생활문화지원센터와 부천시민미디어센터를 시로부터 이관 받고 당초 2본부 8팀 2위탁사업에서 3본부 7부 2센터 1위탁사업으로 전환한 것. 올해는 차근차근 쌓아온 재단만의 조밀한 역량을 ‘즐거운 관심, 소통과 공유의 문화’ 아래 문화기본권, 문화민주권, 문화평등권이라는 토대를 바탕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일상문화제공 ▶창의성과 감수성의 인간다움 보장 ▶건강한 문화공동체의 지속이라는 핵심가치를 구현하는 프로그램과 축제를 기획할 예정이다. ‘0세도 공연관람이 가능하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0세 콘텐츠 개발’이나 지역예술단체의 자생력 강화를 위한 지원사업 ‘부천공연창작소’, 어린이에게 통합문화콘텐츠를 제공하는 ‘제3회 부천어린이세상’, 그리고 시민이 기획하고 참여하는 ‘제2회 부천오케스트라페스티벌’ 등을 올해 준비하고 있다.”

-올해 지역 생활 문화 발전과 변화에 대한 노력이 있다면.

“시민의 여가문화와 생활 속 문화향유기회의 확대는 곧 지역문화발전과 삶의 질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부터 재단이 직접 운영하는 소사·오정생활문화센터는 중요한 생활문화거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재단은 시민의 ‘생활문화 일상 공간’으로 생활문화센터를 운영하고자 한다. 팍팍한 삶 속에서 여유 있는 시간을 내기 어려운 시민들이 동아리 등 자발적 문화활동을 통해 주체적 시민으로 성장하고 궁극적으로는 지역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천시민의 ‘문화력’으로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발적인 문화 삶터가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성’을 향상시키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올해는 생활문화센터와 같은 공간 관리 뿐만 아니라 협력파트너십 강화, 시민아트밸리 지속 추진, 생활문화축제 ‘다락’ 개최 등 시민생활문화 생태계 조성을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부천의 숙원사업인 문예회관이 착공되고 복사골문화센터 아트홀과 시민회관 소극장 리모델링이 끝났는데 앞으로 운영 방안이 있다면.

“재단은 복사골아트홀, 판타지아극장, 시민회관과 오정아트홀 등 다양한 문화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준공될 문예회관은 부천필을 중심으로 음악전용홀의 기능에 초점을 둘 것으로 생각한다. 재단은 현재 운영하고 있는 공연장의 특성에 맞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예를 들어 시민회관 대공연장은 콘서트와 뮤지컬, 소공연장은 연극이나 재즈, 복사골 아트홀은 소극장용 뮤지컬, 실내악, 무용, 그리고 판타지아 극장은 어린이 중심의 공연, 오정아트홀은 영화 상영과 함께 생활문화공연 등 공연장 특성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균형 잡힌 콘텐츠를 시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준비할 방침이다.”


-부천 시민들을 위한 한 말씀.

부천시는 지난해 11월 동아시아 최초로 유네스코 창의도시(문학) 네트워크에 가입했다. 부천과 문학이 무슨 관련이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문학은 인문학의 기본이며 삶의 본질과도 닿아있기 때문에 모든 이들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잘 알다시피 부천은 영화(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만화(부천국제만화축제), 애니메이션(부천국제애니메이션축제), 음악(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 분야와 성격이 분명한 축제와 부천예총, 민예총, 부천문화원 등의 예술가(단체)를 통한 문화예술생산과 주민문화향유 사업이 유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 평생학습센터, 작은 도서관 등 생활 속의 문화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이러한 점이 ‘문화도시 부천’의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유네스코 창의도시 지정을 가능하게 했고, 이제 ‘문학의 힘’으로 ‘문화도시, 창의도시’로서의 부천 도약이 시작된 것 같다. 그 과정은 결코 실망의 길이 아니라 배려와 환대를 통한 재미있고 즐거운 길이 돼야 한다고 본다. 부천문화재단은 그 길 위에서 함께 어우러지면서 진정한 문화도시 부천으로 나가는데 일조하고자 한다.” 


김동성기자/estar@joongboo.com

출처 https://goo.gl/z3XpV1

출판문화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회정책토론회/ 노웅래, 김민기, 신상근 의원 주최, 2018년 1월 17일/ 백창민 페이스북에서


오늘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출판문화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국회정책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중앙대학교 이정춘 교수가 좌장으로 토론회를 진행했고요. 백원근 한국출판학회 출판정책연구회장,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가 발제를 했습니다.

[발제 1] 문재인 정부의 출판정책 방향과 과제 (백원근 한국출판학회 출판정책연구회장) :

백원근 회장은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6가지 출판산업 정책과 ‘하지 말아야 할’ 7가지 행정 적폐를 발제했습니다. 해야 할 6가지 정책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출판계가 대통령 후보들에게 제시했던 ‘6대 정책 제언’을 실천해달라는 내용이었고요. 하지 말아야 할 7가지 행정 적폐로는 1)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2) 공공기관의 상업출판 사업 척결, 3) EBS-수능 연계출제 폐지, 4) 정부의 도서정가제 왜곡, 5)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 철폐 및 학교 독서환경 조성, 6) 공공도서관의 기증 요청 척결, 7) 병영 금서 목록 철폐를 들었습니다.

[발제 2] 문재인 정부 출판문화산업정책에 대한 몇 가지 제언 (장은수 (Eun-su Jang)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
장은수 대표는 세계 출판문화산업의 최근 움직임을 5가지로 요약한 후 책이 문화정책의 중심이 되기 위한 7가지 제언을 했습니다. 1)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민간거너번스 조직으로 개혁하자, 2) 출판산업 종합통계시스템 구축을 통해 유통 현대화를 이룩하자, 3) 출판콘텐츠 기금을 3천억 규모로 마련하자, 4) 도서정가제 중심으로 서점을 활성화하자, 5) 지역 출판을 활성화하자, 6) 독서가 권리가 되는 나라를 만들자, 7) 출판 관련 법제를 출판 친화적으로 바꾸자.

발제에 이어 서인석 안양대학교 행정학교 교수, 김명환 대한출판문화협회 출판정책연구소장, 김한청 한국출판인회의 기획정책위원장, 박옥균 1인출판협동조합 이사장, 이대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노동조합 사무국장, 김진곤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국장이 토론자로 나섰습니다.

[토론 1] 출판산업, 문화와 산업의 경계에서 (서인석 안양대학교 행정학교 교수) :
서인석 교수는 출판을 산업으로 바라볼지 문화로 바라볼지 관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 정부 정책의 방향과 출판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언급을 했고요.

[토론 2] 문재인 정부의 출판문화산업 정책의 방향 (김명환 대한출판문화협회 출판정책연구소장) :
김명환 소장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100대 과제 중 독서 출판 분야가 미흡하며, 출판계가 한목소리로 출판 정책을 이끌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에 독서출판도서관국을 신설하고 이를 집행할 조직으로 독서출판진흥위원회 설치하자고 했습니다.

[토론 3] 4차혁명 시대를 대비한 초중고 ‘독서’ 과목 신설 (김한청 한국출판인회의 기획정책위원장) :
김한청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 출판 관련 몇 가지 성과를 언급한 후 ‘독서’를 초중고 정규 교과목으로 신설하자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토론 4] 출판문화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정책 제언 (박옥균 (Ok Kyun Park) 1인출판협동조합 이사장) :
박옥균 이사장은 출판 데이터 유통의 문제와 선정도서에서 외서와 중대형 출판사 지원의 문제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내 IT 전문가의 부족을 지적했습니다.

[토론 5] 공공성 기반의 지속가능한 출판문화산업 방향 모색 (이대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노동조합 사무국장) :
이대연 사무국장은 블랙리스트 사건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진흥원 직원의 입장을 정리했고요. 문화체육관광부와의 갑을 관계 및 출판계와의 어려움, 새 진흥원장에게 바라는 리더십, 진흥원 노동조합과의 소통과 노동이사제를 통한 참여를 발표했습니다.

[토론 6] 출판문화산업의 위기와 타개 방안 모색 (김진곤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국장) :
김진곤 국장은 앞서 발제자와 토론자가 제기한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 정부 당국자로서 답변하고 앞으로 정부가 진행하려는 정책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발제자 2명, 토론자 6명의 발표까지 끝난 후 참석자 5-6명의 질의와 의견 개진 자리가 있었습니다.

발제자와 토론자 대부분이 출판사 또는 출판단체 소속이었는데요. 출판산업의 한 축을 이루는 서점 또는 유통사와 출판사 노동자를 대표할 출판노조, 일반 독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시민사회의 참여가 없었던게 아쉽기도 했습니다.

출협에서 새로 발족한 출판정책연구소 관계자와 출판문화산업진흥원 내부 노동조합의 의견을 공식적인 자리를 통해 처음 접한 건 새로웠는데요. 제3대 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의 선임을 앞두고 산적한 출판계 과제를 토론회 형태로 정리하는 자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 자리가 ‘정책’ 토론회였던 만큼 정부의 출판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는데요. 출판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출판계 내부 문제에 대한 성찰과 반성도 필요하다는, 한 참석자의 의견도 와닿는 자리였습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bookhunter?fref=nf

이명박 전 대통령 2018년 1월 17일 성명(나에게 물어달라 성명)/ 전두환 전 대통령 1995년 12월 4일 성명(일명 골목성명)

국민 여러분, 저는 매우 송구스럽고 참담스러운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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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나라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으로서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국정수행에 임했습니다. 
퇴임 후 지난 5년 동안 저는 4대강 살리기와 자원외교, 제2롯데월드 등 여러 건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만 저와 함께 일했던 많은 공직자들의 권력형 비리는 없었으므로 저는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최근 역사 뒤집기와 보복정치로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낍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수사에 대하여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고 또는 이를 위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공직자들에 대한 최근 검찰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기침) 지금 수사를 받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공직자들은 모두 (기침)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제 재임 중 (기침)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달라. " 이게 오늘의 제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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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끝으로 평창 올림픽을 어렵게 유치를 했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총 단합해서 평창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냄으로써 우리 국격을 다시 한번 높일 수 있는 그런 좋은 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

원문보기: https://goo.gl/Drfd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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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씨 대국민성명 전문(일명 골목성명)
[한국일보] 1995-12-04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이나라가 지금 과연 어디로 가고 있고 또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채 심히 비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잘 기억하고 계시겠지만 6년전인 89년12월15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세 야당총재의 영수회담의 결정에 따라 저는 소위 5공청산정국의 정치적 종결을 위해 그해 12월31일 국회의 증언대에 올라 과거문제의 매듭을 지었습니다.그러나 이렇듯 이미 정치적으로 완전 종결되었던 사안이 최근 또다시 제기되어 온나라가 극도의 혼란과 불안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다시금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개별적인 시시비비는 앞으로 여러 경로를 통해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아 오늘 이 자리에서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계속해서 되풀이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사회적 혼란과 불안에 직면해서 몇가지 말씀을 드리고 이에 대해 현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김영삼대통령의 명쾌한 설명이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11월24일 김대통령은 이땅에 정의와 진실과 법이 살아있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 5·18특별법을 만들어 저를 포함한 관련자들을 내란의 주모자로 의법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기억하고 있는대로 현재의 김영삼정권은 제5공화국의 집권당이던 민정당과 제3공화국의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신민주공화당 그리고 야권의 민주당, 3당이 지난 과거사를 모두 포용하는 취지에서 「구국의 일념」이라고까지 표현하며 연합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저는 대한민국 전임대통령의 자격으로 김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해서 격려를 아끼지 않았었고 김대통령이 저를 방문했을 때에는 조언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취임후 3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 김대통령은 갑자기 저를 내란의 수괴라 지목하며 과거역사를 전면 부정하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국가의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범죄자라면 이러한 내란세력과 야합해온 김대통령 자신도 이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순리가 아니겠습니까.

다음으로 현정부의 통치이념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초대 이승만대통령부터 현정부까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타도와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좌파운동권의 일관된 주장이자 운동방향입니다. 그런데 현정부는 과거 청산을 무리하게 앞세워 이승만정권을 친일정부로, 3공화국·5공화국·6공화국은 내란에 의한 범죄집단으로 규정하여 과거 모든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현정부의 이념적 투명성을 걱정하는 국민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김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자신의 역사관을 분명히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다음으로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검찰의 재수사와 관련된 문제입니다. 국민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이미 지난 13대국회의 청문회와 장기간의 검찰수사과정을 통해 12·12, 5·17, 5·18등의 사건과 관련하여 제가 할수 있는 최대한의 답변을 한바 있고 검찰도 이에 의거하여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를 종결한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검찰은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로 이미 종결된 사안에 대한 수사를 재개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검찰의 태도는 더이상의 진상규명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현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 저는 검찰의 소환요구및 여타의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다만 검찰이 저에 대한 사법처리를 하고자 한다면 이미 제출되어 있는 자료에 의거하여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존중하기 위해 사법부가 내릴 조치에는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저는 수용하고 따를 것입니다.

끝으로 12·12를 포함한 모든 사건에 대한 책임은 제5공화국을 책임졌던 저에게 모두 물어주시고 이 일을 계기로 여타의 사람들에게 대한 정치보복적 행위가 없기를 희망합니다.

낭만적인 동네책방, 현실은?/ 이윤미 헤럴드경제 기자

2년 사이 폐업 줄이어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동네책방이 서점을 넘어 트렌디한 문화공간으로 인식되면서 개성적인 독립서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지만 1,2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곳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하루종일 일해도 수입이 최저시급에도 못미치는 현실의 벽 앞에서 고민하다 폐업을 결정한 곳들이 적지않다.

얼마전 이대역 인근 염리동 골목에 자리잡은 여행책방 ‘일단멈춤’이 문을 닫은 데 이어, 휘경동의 개성있는 독립서점 ‘책방 오후다섯시’도 폐업했다. 수원 율전동에서 독립출판물을 소개해온 ‘방식책방 하우위아’도 영업종료를 알렸으며, 상계동 독립서점 ‘반반책방’ 역시 지난해 4월 문을 닫았다. 
개성적인 공간으로 입소문을 탔던 중구 청계 상가에 위치한 책방 이백에이십도 문을 닫았다. 키워드를 정해놓고 그와 관련된 창작물을 판매하던 이 서점은 책방이름인 보증금 200에 월 20만원이란 저렴한 공간에도 버티지 못했다.

2015년 성동구 봉제공장에 문을 연 책방 이곳 역시 책주인의 개성있는 취향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순례지였지만 아쉽게도 문을 닫았다.

책방 주인의 취향에 따른 책들과 매력적인 인테리어로 독자들 뿐만 아니라 트렌디한 공간을 찾아다니는 이들의 순례지가 돼온 작은 책방들의 현실은 낭만적인 모습과는 다르다.

여행책방 ‘일단멈춤’을 운영했던 송은정씨는 막 펴낸 책방 폐업기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에서 책방의 월 순이익은 평균 60~80만원 선이라고 밝혔다. 2016년 최저시급 6050원, 하루8시간씩 주 5일 일하는 근로자의 임금 126만원보다 못하다. 일주일에 하루 쉬고 평균 9시간을 일해야 했지만 책 판매만으로는 부족한 수입을 메꾸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종일 손님이 끊이질 않았지만 매출이 바닥을 치는 날도 허다했다는 것.

이를 메꾸는 대안은 저녁마다 워크숍을 여는 것. “ ’적게 벌고 적게 일하겠다‘는 당초의 다짐과 현실은 너무 멀었다”며, 눈을 뜨자마자 시간에  쫓겼지만 손에 쥐는 수입은 참담했다고 밝혔다.

여행, 소설, 시, 잡지, 그림책 등 독립출판물을 제작, 판매해온 ‘방식책방 하우위아’를 운영했던 임소라씨는 책방을 낸 지 두 달 만에 책방을 접고, 함께 한 사람들과의 시간을 담은 폐업기,’한숨의 기술‘을 단행본으로 냈다. 그는 책을 통해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운영을 계속할지 판단은 빨리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상계동 주민의 자랑거리였던 반반책방주인은 책방문을 닫게 된 소회를 짤막하게 블로그에 올렸다.“세상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 책방도 그렇습니다. 공간만 만들어논다고 책방이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동네책방과 독립서점은 책 판매만으로는 운영하기가 어려운게 현실이다. 워크숍이나 저자 북토크 , 각종 클래스 등을 통해 부가적인 수입을 도모하지만 이도 녹록치 않다.

한 독립서점 주인은 “인건비는 없다고 보면 된다”며, “1년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meelee@heraldcorp.com


출처 https://goo.gl/Xvu38i

이호철 불출마 발언/ 부산공감 블로그에서 / 강민석 중앙일보 논설위원 인터뷰

1월 15일 아침 이호철 수석은 자신의 출마를 요구하는 지지자들에게 긴급히 연락해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불출마 발언을 했습니다. 그 발언을 참석자가 녹취·정리한 글입니다. 이호철의 생각의 깊이를 알게 해주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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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출마를 안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사람들이 슬렁임) 사람들이 갑자기 얼굴이 확 변해버렸는데요.(웃음) 원래부터 정치를 안 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지난 대선 때 사람들을 설득을 하긴 했지만,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노 대통령 돌아가시고 나서 사람을 설득하는 게 무섭고, 겁납니다. 사람을 설득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노 대통령도 나보고 정치를 해보지 않겠냐고 하셨는데, 그게 안 맞는거 같아요, 제가 호불호가 쎄거든요. 정치를 하려면 모르는 상갓집도 가야되고, 결혼식도 가야되는데 모르는 집은 못가겠더라고요. 노무현 의원 보좌관할 때, 30년 전인데, 제가 대신 가야 할 때 너무 하기 싫었습니다.

제가 낯가림이 심합니다. 혼자있는 걸 좋아합니다.

계속해서 제 입장을 안 밝히는 것은 여기 있는 분들에게 죄송하고 부산시민을 속이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안한다고 했는데, 이호철도 문재인 대통령처럼 결국 하지 않겠는냐 하시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책임의식이 강하고 나는 자유로운 것을 좋아합니다.

징역을 두 번 살았습니다. 독방에 있었습니다. 살인, 강도, 히로뽕 등 중죄인들이 내 옆방에 있었고, 감옥 창문으로 해가지면 하루가 가고, 그래서 밖에서 해지는 것이 보고 싶었습니다. 독방이라 사람을 못 만나서 사람이 보고 싶었습니다. 나가면 여행을 해야지 생각했습니다.

나는 79년 10월 부마사태 주동자로 구속돼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았고,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인 82년 부림사건 때는 남영동 치안본부에서 물고문·전기고문용 도구인 ‘칠성판’을 탔습니다. 지금도 미장원에서 뒤로 고개를 젖혀 수건을 얼굴에 덮고, 머리를 감겨주면 숨을 잘 못 쉽니다. 박종철 열사, 김근태 선배보다 내가 몇 년 먼저 칠성판을 탔는데, 그때 내가 죽었더라면 두 분은 그런 고문을 안 받았을 겁니다.

크리스마스 특사로 출소하게 되었습니다. 12월 24일 저녁 출소 하자마자 사람이 보고 싶어서 남포동 부영극장 계단에서 사람들을 한참 보고 앉아있었습니다. 그게 너무 재밌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회색만 보다가 너무 많은 색을 봐서 그런지 집으로 갔는데 두통이 너무 심하고 잠을 잘 수 없어서 한참 고생했습니다. 그 이후 합천 이모집에서 6개월 농사를 도왔습니다.

여행 많이 다녔고, 이제는 여행사도 차리고 지분도 가지고 있습니다. 제 아내도 가이드가 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나를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치를 하라고 많이 권유했지만, 나에게는 퇴임한 후에도 그런 권유하지 않고, 봉하에 와서 같이 농사를 짓자고 권유 하셨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저의 이런 성향을 잘 압니다. 정치하라고 권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대통령께서 사상에 출마하실 때는 제가 겁이 났지만, 설득을 했습니다. 혁신과 통합이라는 시민단체의 대표로써 민주당과 통합이후 빠져버리면 안 될 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떠났습니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출마 안하실 것이다.” 생각했고, 같이 설득하자고 했지만 난 하지 않았습니다. 마루(풍산개)랑 산책하는 게 가장 행복하다고 대통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 설득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께서 행복하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출마시킬 때처럼 하면 이호철도 나가지 않겠느냐 하시는데, 작전도 알고 있습니다. 옛날에 그 작전 썼기 때문에 잘 압니다.

5월 9일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외국으로 바로 떠났잖아요? 비행기표는 기차표와 달라서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합니다. 5월에 나가려고 하면 2월 달 쯤 예약을 해야 하기에 예약했습니다. 하지만 이기면 나간다. 지면 못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기면 자유로워 질 수 있는데, 진다면 비행기표 날린다고 했습니다.

출국소식을 몇몇 사람들에게 문자로 보냈는데, 그게 페이스북에 올라가 기사화됐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을 인천공항에서 봤습니다.

노무현대통령기념관 짓는 일을 4년째 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이창동 감독이 하셨습니다. 이 감독 이야기로는 “먼저 만든 대통령 기념관은 재미가 없다. 그렇게 만들면 60점짜리다. 그런데 당신들이 직접 만들면 80점짜리가 될 수도 있고, 40점짜리가 될 수도 있다.” 80점짜리라는 말에 혹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전시, 건축, 조명 등 어려운 일이 많고 영화감독은 정말 천재인거 같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일을 4년째 해왔고 앞으로 2년간 더 해야 합니다.

나는 6월 항쟁의 성과가 촛불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87년 세대가 아이들을 데리고 촛불집회에 나왔습니다. 이 촛불세대의 아이들이 20년 후에는 부모세대가 됩니다. 엄청난 민주주의의 에너지가 탄생한 것입니다. 한 번이라도 촛불을 들어봤던 사람들은 20년 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또 다시 촛불을 들 것입니다.

88년도 내가 30살에 노무현 국회의원 선거에서 기획실장이었습니다. 당시 건방졌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후보의 명함을 흑백으로 만들고, 산복도로에서 구호를 외치고 다녔습니다. 운동권들이 선거를 망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열정만 있었습니다. 그 이후 여러 차례 선거를 했는데, 할 때마다 선거 참 어렵습니다.

박근혜가 탄핵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 결코 쉽지 않습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87년에서 이까지 오는데 30년 걸렸습니다. 한 세대가 바뀌면서 세상이 바뀝니다. 부산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시장 바꾸고, 구청장, 시의원 30% 정도는 당선되면 좋겠습니다. 더욱 겸손하고, 단합해야 합니다. 나는 부산을 바꾸고 싶습니다.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해야지 누가 해야 한다고 하면 안 됩니다.

1인 시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에 이미 불출마를 결심했습니다. 설 이전에 입장을 밝히려고 했으나, 지금 지지자들이 있는 자리에 와서 말씀을 드리는 게 도리인거 같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립니다. 나는 출마를 안 합니다. 부산을 바꾸는데 있어서 여러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저를 지지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습니다. (웃음) 고맙습니다. 대신에 어떤 자리에서도 다른 후보들이 싸우면 중재 하고, 새로운 분들을 영입해서 한 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와 일 해보면 알겠지만 참 재밌게 일합니다. 여러분들이 해산하지 않고 깨시민 같은 조직으로 나와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체성이 다르더라도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고 응원한다면 함께 해야 합니다. 지난 대선 때 나는 우리당 사람들과 만나지 않았습니다. 새누리당의 시의원, 보수적인 목사, 스님들을 만나며 설득하고 함께하자고 했습니다. 그 중 다는 아니지만 60%정도는 성공했습니다. 지지율이 높으면 이렇게 되는데, 지지율이 낮으면 안 옵니다. 그러니 지금 지지율이 높을 때 당에서 이런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데, 안하니 저라도 하겠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저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뭐인지 아십니까? 어떤 자리를 준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자유를 준 것입니다.

당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저포함해서 1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이어갑시다. 운동권 방식으로 하지 맙시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진보세력은 신기술을 사용해야 승리합니다. 종교개혁도 칼이나 총이 아닌 금속활자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터넷이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SNS였습니다. 이번 선거에 신기술을 어떻게 장착할 지를 연구해 주십시오.

출처 http://busangonggam.tistory.com/m/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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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이 간다] 이호철, “문 대통령은 날 풀어주실 것” … 부산 정치판 요동

[출처: 중앙일보] "대통령은 날 풀어주실 것" 이호철 불출마에 부산 요동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사실상 은둔 중이었다. 부산시장 출마설이 지난해 불거진 뒤 언론, 정계인사들과의 접촉을 끊었다. 이 전 수석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소문에 나섰으나 “지금 한국에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체류 중이라는 곳도 ‘중남미’ ‘칠레’ 등 제각각이었고, 귀국 날짜도 “곧”이라고만 했다. 
  
그러던 중 이 전 수석이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책임을 맡고 있고, 일요일인 14일에 관련 회의가 있다는 얘기를 노무현재단 사람에게서 들었다. 무작정 서울 마포구 신수동 노무현재단으로 찾아갔다. 세 시간을 기다리자 푸른색 모자를 눌러 쓰고, 수염이 덥수룩한 여행객 차림의 이 전 수석이 나타났다. 20일간 쿠바에 있다가 14일 새벽 한국에 도착해 재단으로 오는 길이라고 했다. 
  
기자가 대화를 청하자 “담배나 한 대 얻어 피우자”고 했다. 한 달간 끊었다는 담배를 피우면서 오히려 이 전 수석이 먼저 물었다. “제가 출마할 거 같으세요, 안 할 거 같으세요?” 답을 내놓지 못하자 이 전 수석이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하려구요.” 
  
생각을 굳힌 거냐고 묻자 바로 “예”라고 답했다. 
질의 :왜 불출마를 선택했나.
응답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신 뒤로는 정치에 대해 트라우마가 있다. 우리의 아픔이죠. 둘째는 울리히 벡이 쓴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란 책에 답이 있다.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난 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책이다. 나는 ‘깨어있는 시민’으로 남으려 한다. 셋째는 노 대통령 기념관 때문이다. 기념관 건립을 4년째 맡고 있다. 제게는 소중한 일이다. 역사를 공간에 새긴다는 책임감이 있다. 이 일을 나는 해야 한다.”
질의 :출마할 수 있다는 말은 왜 나왔나.
응답 :“작년 추석 무렵 나서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내게 출마를 권하러 왔다가 불출마 선언만 하지 말아 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문 대통령께도 그런 방식을 써서 정치를 하게 했다. ‘불출마 선언만 하지 말아달라’, 그다음엔 ‘책 쓰자’, ‘북 콘서트 딱 한 군데에서만 하자’, 결국 전국을 다 돌았다.(웃음) 부산을 바꿔 보자는 그 간절한 마음들 때문에 잠시 불출마 발표를 미뤘지만 한 번도 출마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한 정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영역에서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다. 대의로 보고, 넓고 깊게 봐야 한다. 그럴 때 제 카드는 유용한 방식이 아니다. 저를 지지하는 분들은 젊거나 친노, 친문 아니겠나. 나중에 (친노·친문인) 전해철·박남춘·김경수 의원이 다 경선에 나올텐데 선거 과정에서 오히려 문재인 정부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질의 :문 대통령이 ‘나를 정치하게 만들었으니 이번엔 당신 차례야’라고 한다면.
응답 :“문 대통령은 그리 안 하실 거다. 본인도 스스로 정치를 피하시다가 하게 됐는데, 저를 풀어주려고 배려하시지 않을까. 노무현 대통령도 한때 많은 사람에게 정치를 권유했지만 ‘아, 이 친구는 정치를 안 할 거야’라고 하시고, 제게 정치얘기는 안 했다. 제가 워낙 자유로운 것을 좋아하고, 문 대통령도 잘 알고 계신다.”  
이 전 수석이 ‘자유’를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79년 10월 부마사태 주동자로 구속돼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을 받았고,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인 82년 부림사건 때는 남영동 치안본부에서 물고문·전기고문용 도구인 ‘칠성판’을 탔다. 지금도 미장원에서 뒤로 고개를 젖혀 수건을 얼굴에 덮고, 머리를 감겨주면 숨을 잘 못 쉰다고 한다. 그는 “박종철 열사, 김근태 선배보다 내가 몇년 먼저 칠성판을 탔는데, 그때 내가 죽었더라면 두 분은 그런 고문을 안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감옥의 독방에서 쇠창살 너머로 지는 해를 보면서 나가면 자유롭게 여행을 하고 살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 전 수석은 지금 모 여행사의 지분을 갖고 있고, 부인도 고교교사를 그만두고 여행기획을 하고 있다. 
  
질의 :문 대통령을 당선 후 만난 적이 있나.
응답 :“작년 대통령 여름 휴가 때 경남 진해에서 딱 한 번 뵀다. ‘(요즘은 또) 어디 갔다 왔노’라고 하시길래 (동유럽의) 코카서스(3국) 다녀온 얘길 해드렸다. 북핵 문제 등으로 고생하실 때라 살이 빠져 있으셔서 마음이 안됐더라.”  
질의 :대통령 최측근이라고 무조건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게 바람직한 건지 잘 모르겠다.
응답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새로운 시도다. 2012년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 때 ‘3철(이호철·전해철·양정철) 배제’가 조건이었다. 우리 진영 내부에도 ‘3철 프레임’이 셌다. 2016년 4월 총선 때 민주당 지도부가 출마할 생각도 없는 나한테 불출마 선언을 해 달라고 하더라. ‘나는 할 수 있는데, 다른 두 사람한테 이름 끝 글자가 같다고 불출마하라고 하면 되느냐’고 했다. 대선 때도 공직 포기선언을 해 달라고 (문재인 캠프의) 중진 의원이 요청했다. 그때도 ‘저는 약속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은 아니다’고 했다.”  
질의 :결국 양정철 비서관도 떠났다.
응답 :“양비(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하고는 대선 전인 작년 1~2월에 이미 ‘우리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나는 문 대통령 취임식(5월10일)을 인천공항에서 봤다. 비행기표는 3~4개월 전에 사야 싸다.(떠나려고 미리 구입했다는 뜻) 하지만 양비는 나중에는 들어가 릴리프 투수로 뛰어야 한다. 나는 구시대의 막차를 타기로 했다. 새시대의 첫차는 새로운 사람이 타고….”
  
그는 노무현-문재인 두 전·현직 대통령을 ‘노변’ ‘문변’이라 부른다. 두 전·현직 대통령과 가장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해 대선 때는 ‘~위원장’ ‘~본부장’ 같은 고위직함을 달지 않았다. 부산지역 특보단 부단장도 고사하고 ‘특보’ 명함 하나 갖고 주로 물밑에서 움직였다. 오거돈 전 해수부장관, 정경진 전 부산 부시장을 영입해 ‘부산빅텐트’를 성사시켰고, 새누리당 출신 전직 시의회 인사들을 접촉하는 등 취약지를 공략했다. 
  
질의 :여권의 부산시장 후보 중 김영춘 해수부 장관도 출마에 부정적이란 보도가 있었다.
응답 :“현직 장관한테 지금 출마할 거냐고 물으면, 한다고 하겠는가. 이번이 부산에서 승리할 기회라고 생각은 하지만 만만치 않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떨어지는 선거는 다 봤다. 항상 여론조사에서 이기다가 졌다.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출마자들이 한 팀으로 가야 겨우 이길 수 있을 거다. 나도 출마는 안 하지만 팀이 만들어지면 돕겠다.”
  
이 전 수석이 불출마를 결심하면서 부산선거의 가장 큰 변수 하나가 사라졌다. 
  
이 전 수석과 만나기 이틀 전 김 장관과 통화했다. 
  
질의 :지역언론에 나온 보도를 불출마 선언이라고 봐도 되나.
응답 :“허, 허. 이번 선거에 대한 제 입장은, 안 나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선거를 생각하지 않고 장관직에 전념하겠다”  
질의 :아직 결론을 낸 건 아니란 뜻인가.
응답 :“그렇게 얘기할 수 있다. 저보고 선택하라면 출마 안한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세상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15일 부산을 방문해 “우리는 이길만한 후보를 괴롭히는 의미 없는 경선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실상 야권후보군 중에는 지지율이 가장 높은 서 시장을 전략공천하겠다는 뜻이다.  
  
부산은 여권으로선 영남에 ‘교두보’를 확보하느냐, 마느냐의 의미를 갖고 있다. 상대진영 내에 만든 세력확장의 발판말이다. 한국당에겐 뚫려선 안 되는 ‘마지노선’이다. 낙동강 전선의 두 얼굴이다. 
  
강민석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대통령은 날 풀어주실 것" 이호철 불출마에 부산 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