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다시 읽기 위하여--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가 김응교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2016. 11. 10.
노고지리는 어찌하여 고독한가
‘최순실=박근혜=새누리당’ 게이트가 국정을 농락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국정원 선거 개입, 세월호 참사 외면, 위안부 합의, 해운·조선업 붕괴, 한반도 사드 배치, 원전·방산 비리, 역사 교과서 국정화, 패션 외교 등 끊임없이 문제가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에 속이 터진다. 뻔한 거짓에 거짓을 반복하는 허깨비에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일을 못할 정도다. 최순실 체포, 박근혜 하야, 새누리당 해체밖에 길이 없을까. 과연 이것만 하면 이 나라가 바로 설까. 이 기간을 어떻게 해야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을까.
1960년 4·19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많은 작가들이 혁명의 성공을 노래했다. 이 혁명이 실패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한 시인은 세 명이었다. 박두진은 <우리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를 썼다. 김수영은 1960년 6월 15일 그러니까 4·19혁명이 일어난 두 달 후에 <푸른 하늘을>을 썼다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詩人)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自由)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ㅡ 김수영 <푸른 하늘을>(1960.6.15)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 고 하는 어떤 시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는 시작된다. 그 시인이 누군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높이 하늘을 나는 노고지리를 보고 그저 '자유로이 보이는군. 멋있어'라고 피상적으로 보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피 없는 혁명은 가짜다
‘노고지리’는 ‘종달새’를 말한다. 참새처럼 생겼는데 참새보다는 조금 크다. 등산하다 살찐 참새처럼 보이는 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만한 참새로 보이는, 우리땅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텃새가 노고지리다. 북위 30° 이북의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분포하는 노고지리는 우리나라 전국에서 번식하는 흔한 텃새다. 방금 우리땅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썼는데, 그 말이 중요하다.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이나 필자도 모두 종달새처럼 흔한 존재다.
이 노고지리가 쉽게 날 수 있을까. 날기는커녕 알에서 나오자마자 들짐승에게 먹히는 경우도 있다. 종달새 새끼를 씹고 피 묻은 주둥이로 입맛을 다시는 살쾡이도 있을 것이다. 날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파닥이며 연습해야 할까.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뭣 모르고 절벽을 뛰어내린 종달새는 많이 죽었을 것이다. 만약 새장 속에 갇혀 있던 새라면 더욱 치열한 탈출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날기 위해 오랜 시간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을 견뎌 내야 한다. 그래서 한 마리 노고지리가 자유롭게 날기 위해서는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푸른 하늘을 날기 위해, 푸른색과 대비되는 붉은 피를 흘려야 하는 법이다.
혁명은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성취되지 않는다.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실패와 배반, 흐르는 피눈물을 삼키며 겨우 하늘에 오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피[血]는 신체적인 혈액만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더욱 치열하게 고독한 투쟁을 말한다. 비단 신체적인 혈액만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근본적인 각성(覺醒)의 훈련을 뜻한다.
김수영 <푸른 하늘을>이란 시가 그 뜻을 이어받고 있다. 박두진의 <푸른 하늘 아래>는 『청록집』(1947)에 발표된 작품이고,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은 1960년 6월 15일에 발표된 작품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김수영이 박두진을 읽었을 가능성도 있다. 박두진에게 푸른 하늘은 해방조국이며, 김수영에게 푸른 하늘은 혁명조국이다. 시기는 다르지만 박두진과 김수영 시에서 ‘푸른 하늘’이라는 이미지는 모두 자유의 표상이다. “산이 거기 있기에 산에 오른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종달새는 그저 하늘을 날기 위해 날개를 퍼덕인다. 여기서 시인은 너스레 떨지 않고 직언한다. 2연 끝부분과 3연을 보자.
“혁명(革命)은 / 왜 고독한 것인가를 // 혁명(革命)은 /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똑같은 말을 조금 다르게 꼬아서 두 번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해직당하고, 가족과 이별했고, 고문받고, 감옥에 가고, 자살했고, 죽어갔다. 팬옵티콘 어용 언론의 구축으로 인해 사회는 책임 없는 감시사회로 변했다. 아직 혁명은 아마득하다. 얼마 전 물대포를 맞고 농민 백남기 선생이 사망하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피의 냄새가 넘쳐야 깨달을까. 혁명을 이루고 난 뒤에도, 국민들 한 명 한 명이 ‘고독’한 노고지리처럼 피의 결심을 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않는다면 결코 ‘푸른 하늘을’ 날 수 없는 것이다.
“자유를 위해서 /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 사람”(2연 1~3행)은 자유의 냄새에 그 ‘피’가 섞여 있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피는 ‘고독’과 이어진다.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지,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지. ‘피’와 ‘고독’이야말로 혁명을 이루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혁명, 너무도 자연스러운 과정
혁명(革命)이라 하면 흔히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떠올린다. 혁명을 뜻하는 영어 ‘리볼루션(revolution)’은 라틴어 ‘revolutio’가 어원으로, ‘회전하다’, ‘바뀐다’, ‘반전하다’라는 뜻이다. 잠깐 성공했던 1960년 4·19 혁명, 1987년의 6월 민주항쟁 같은 정치적인 변화만 혁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산업혁명, 디지털혁명처럼 새로운 체계가 시작할 때 ‘혁명’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혁명의 혁(革)이라는 한자는, 죽은 뿔 달린 짐승의 가죽을 벗겨내 펼쳐놓은 상형이다. 짐승이 죽었을 때 그대로 두면 금방 썩어버린다. 가죽을 쓰려면 빨리 벗겨내 안쪽에 붙어있는 살을 다 떼어내 물에 잘 씻고 한참 두들겨 부드럽게 ‘무두질’한다. 버릴 껍질을 ‘무두질’하면 쓸 만한 가죽이 되듯이, ‘혁(革)’이란 한자에는 ‘고치다’, ‘새롭게 하다’라는 뜻이 있다.
혁명이란 꼭 사회 변화만이 아니라, 내 삶을 바꾸는 변화도 의미할 수 있겠다. 매일 매일 무두질(革)하듯 새롭게 살아가는 삶은 ‘혁명적인 삶’이다. 깨인 의식으로 내 삶을 혁명시켜야 한다. 내 삶과 의식과 제도를 혁명해야 한다.
서양 용어로만 알고 있는 혁명이라는 단어는 실은 고대 중국의 고전인 『주역(周易)』, 『서경』, 『맹자』에도 나온다. 『주역』의 「혁괘편(革掛篇)」은 “바꾸어야[革] 하는 형국이다. 고난의 날이 지나며 한 마음이 될 것이다. 시작해야 할 때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 나서며, 거두어야 할 때 거두고, 마무리해야 할 때 마무리하면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이렇게 써 있다.
“천지가 바뀌어 사시(四時; 춘하추동)를 이룬다. 탕과 무가 혁명하여, 하늘 뜻을 따르고 사람에게 응한 것이니, 바꿔야 할 때에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天地革而四時成。湯武革命、順乎天而應乎人。革之時大矣哉)
인용문을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첫째, “천지가 바뀌어 춘하추동을 이룬다(天地革而四時成)”는 말은 천지가 바뀌어(革)하여 새로운 천지를 이룬다는 선언이다. 계절이 새롭게 바뀌듯 혁명의 시기는 새로워야 한다. 흔히 혁명이라 하면 무서운 시간을 생각하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계절이 바뀌듯 새롭게 바뀌는 것을 혁명(革命)이라 했다. ‘하은주’ 삼대(三代)의 정치체제가 ‘변하는(革)' 혁명을 고대 중국인들은 계절 바뀌듯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혁명 과정을 거쳐 이상적인 국가로 기록되는 주(周, BC1046~BC256)가 세워진다.
둘째, 탕(湯) 임금과 무(武) 임금이 하늘(天)을 따라 정치적인 결단을 한다. 탕과 무의 혁명이 곧 역성혁명(易姓革命)이었다. 고대 중국, 하(夏)나라에서 은(殷)나라, 은에서 다시 주(周)나라로 왕조가 교체될 때를 소위 ‘은주혁명(殷周革命)’이라고도 한다. 왕조의 교체를 의미하는 ‘혁명(革命)’을 하려면 이렇게 하늘 뜻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하늘의 명(天命)을 ‘안민(安民)’으로 삼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서경』에 보면 ‘혁명’을 할 수 있는 자는 ‘하늘의 명(天命)을 바르게 아는 자’라고 명확히 나온다.
“하늘은 우리 백성들이 보는 것을 따라 보며(天視自我民視),
하늘은 우리 백성들이 듣는 것을 따라 듣는다(天聽自我民聽).” 
하늘(天)이 백성을 만들었으니(下民), 하늘의 뜻은 백성의 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여론 조사나 지지율도 백성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셋째, 인민들이 한마음으로 응했다.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정치가들이 인민을 귀히 여겨 ‘안민(安民)’에 힘썼기 때문에 인민들이 혁명 과정에 응하고 참여했던 것이다. 혁명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그 사건이 백성을 위한 것이냐 아니냐에서 판가름이 난다.
『맹자』에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왕조의 성(姓)을 바꾸는(易) 혁명이다. 맹자(孟子, BC372~289)는 임금이 된 자는 ‘백성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與民偕樂)’ 해야 하고, ‘백성들과 함께 즐기고, 백성들과 함께 근심(樂以天下 憂以天下)’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성들에게서 신뢰를 잃은 군주는 ‘혁명’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군주에게 큰 잘못이 있으면 말하고, 이를 반복하여 듣지 않으면 군주를 바꿔야 한다(君有大過則諫反覆之而不聽 則易位)’(『맹자』 萬章章句下)고 분명히 써 있다. 맹자는 ‘민’을 위한 위민정치(爲民政治)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민’을 위하지 않는 군주를 향해 폭력(暴力)을 가해도 좋다는 암시를 주기도 한다. 『맹자』에서는 역성혁명이 가능하려면 군주가 백성과 슬픔이든 즐거움을 나누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여러 번 강조한다.
‘혁명’이란 반란이나 정변이 아니다. 사계절의 순환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혁명의 잣대는 백성이 바라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고독 없는 혁명은 실패다
다시 시로 돌아가자. “어째서 자유(自由)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에서 ‘피’는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피[血]를 말하는 것일까. 김수영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 고독이 이제로부터의 나의 창조의 원동력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뚜렷하게 느낀다. 혁명도 이 위대한 고독이 없이는 되지 않는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혁명이란 위대한 창조적 추진력의 복본(複本, counterpart)이니까. 요즈음의 나의 심경은 외향적 명랑성과 내향적 침잠 혹은 섬세성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졸시<푸른 하늘을>이 약간의 비관미를 띄우고 있는 것은 역시 격려의 의미에서 오는 것이리라”ㅡ김수영「1960년 6월 16일 일기」『김수영 전집』, 1984, 332면.
인용된 일기를 보면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김수영은 ‘정치적 혁명’과 ‘내면의 혁명’을 따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정치혁명이나 내면혁명이나 모두 ‘고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의 심경은 외향적 명랑성과 내향적 침잠 혹은 섬세성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구절에 주목해야 한다. 김수영은 외향적 명랑성(정치적 혁명)과 내향적 침잠 혹은 섬세성(내면적 고독)을 일치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김수영에게 ‘혁명’이라는 단어는 사회적인 껍데기만의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진정한 혁명은 국민들의 진정한 고독에서 시작해야 한다. ‘혁명도 이 위대한 고독이 없이는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혁명 없어 사회혁명은 없다는 말이다. 철저히 자기혁명의 고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인, 타자의 힘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철저히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은 거대한 일은 하려 하면서 자기 곁의 일은 못한다. 역사혁명은 일으키려 하면서도 가족혁명은 일으키지 못한다. 아프리카 빈자를 도우려 하면서도 집안 노모의 대소변을 받아내지 못한다. 철저히 자기혁명을 이룬 고독한 단독자들의 연대, 그것이 없다면 내면의 혁명이나 외면의 혁명 모두 실패한다. 단독자들의 사유(思惟)혁명에서 비롯된 혁명이 아니라면 또 다른 ‘동물농장’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살아 있는 몸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고독’하다는 것은 사사로운 인간관계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곧 자기희생의 ‘피’와 적폐(積弊)에 썩어 있는 과거와 결별한 ‘절대고독’에서 혁명은 가능한 것이다. 순종적인 신체와 결별하는 ‘피’, 썩은 과거와 결별하는 ‘고독’의 씨앗으로부터 혁명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4·19 이후에 발표된 김수영의 시 몇 편 중에 나는 이 시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가 일기에 쓴 ‘격려의 의미’로 독자인 나에게도 위로가 된다. 차분하며 격정의 상태에서 멈추고 있다. 마치 한 방 탄알이 발사되기 직전에 숨을 멈춘 듯 하다. “그, 모오든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는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1967)를 연상시킨다.
혁명이란 단순히 사람을 바꾸는 문제를 떠나, 치열하게 깨달은 단독자들의 역사적 성과인 것이다. 이 땅에 사는 국민들 한 명 한 명이 고독하게 피 흘리는 심정으로 민주주의를 깨닫고, 온갖 언구럭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 매일 고독한 내면적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혁명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정신적 고투의 피를 흘리는 묵언정진(默言精進), 기억해야 할 것을 절대 잊지 않는 고독한 이들의 연대에 의해 진정한 혁명은 가능하다.
혁명은 박근혜 한 명 바꾼다고 성공하지 않는다. 혁명은 하늘 뜻을 따르는 각성한 민심이 한 마음이 될 때 이루어진다. 국민 한 명 한 명이 깨어 있는 고독한 단독자로서 모든 적폐(積弊), ‘친일파=친독재=박근혜=공범자’를 몰아내야 한다. 박근혜의 거짓으로 박정희의 적폐를 설명하기 쉬워졌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분노하고 소리지르는 행동 이상으로 고독하게 저 얼룩을 지워야 한다. ‘이제 나는 바로 보마’(<공자의 생활난>)라는 판단력을 키우며 실천해가야 한다, 그래서 혁명은 고독하다. 혁명은 고독해야만 한다. 혁명이란 고독한 단독자들이 뿌리와 뿌리를 얽으며 이루는 숲이다. 그래서 혁명은 늘 영원한 시작이다.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필자 소개김응교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연세대 신학과 졸업, 연세대 국문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하고,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1991년 「풍자시, 약자의 리얼리즘」을 『실천문학』에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도 시작했다. 1996년 도쿄외국어대학을 거쳐,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1998년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로 임용되어 10년간 강의했다. 2012년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페이스북과 트위터(@Sinenmul)로 세상과 소통한다.

시집 『씨앗/통조림』과 평론집『그늘-문학과 숨은 신』 『한일쿨투라』, 『한국시와 사회적 상상력』, 『박두진의 상상력 연구』, 『시인 신동엽』, 『이찬과 한국근대문학』, 『韓國現代詩の魅惑』(東京:新幹社、2007), 예술문학기행 『천년 동안만』, 시인론 『신동엽』, 장편실명소설 『조국』 등을 냈다. 번역서는 다니카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양석일 장편소설 『다시 오는 봄』, 『어둠의 아이들』, 윤건차 사상집 『고착된 사상의 현대사』, 윤건차 시집 『겨울숲』, 오스기 사카에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 엘던 라드 『부활을 믿는 사람들』 그리고 일본어로 번역한 고은 시선집 『いま、君に詩が來たのか: 高銀詩選集』(사가와 아키 공역, 東京: 藤原書店、2007) 등이 있다.

다시 읽기 위하여--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가 김응교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2016. 11. 10.
노고지리는 어찌하여 고독한가
‘최순실=박근혜=새누리당’ 게이트가 국정을 농락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국정원 선거 개입, 세월호 참사 외면, 위안부 합의, 해운·조선업 붕괴, 한반도 사드 배치, 원전·방산 비리, 역사 교과서 국정화, 패션 외교 등 끊임없이 문제가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에 속이 터진다. 뻔한 거짓에 거짓을 반복하는 허깨비에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일을 못할 정도다. 최순실 체포, 박근혜 하야, 새누리당 해체밖에 길이 없을까. 과연 이것만 하면 이 나라가 바로 설까. 이 기간을 어떻게 해야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을까.
1960년 4·19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많은 작가들이 혁명의 성공을 노래했다. 이 혁명이 실패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한 시인은 세 명이었다. 박두진은 <우리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를 썼다. 김수영은 1960년 6월 15일 그러니까 4·19혁명이 일어난 두 달 후에 <푸른 하늘을>을 썼다
푸른 하늘을 제압(制壓)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詩人)의 말은 수정(修正)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飛翔)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自由)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ㅡ 김수영 <푸른 하늘을>(1960.6.15)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 고 하는 어떤 시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는 시작된다. 그 시인이 누군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높이 하늘을 나는 노고지리를 보고 그저 '자유로이 보이는군. 멋있어'라고 피상적으로 보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피 없는 혁명은 가짜다
‘노고지리’는 ‘종달새’를 말한다. 참새처럼 생겼는데 참새보다는 조금 크다. 등산하다 살찐 참새처럼 보이는 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비만한 참새로 보이는, 우리땅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텃새가 노고지리다. 북위 30° 이북의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분포하는 노고지리는 우리나라 전국에서 번식하는 흔한 텃새다. 방금 우리땅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썼는데, 그 말이 중요하다. 동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이나 필자도 모두 종달새처럼 흔한 존재다.
이 노고지리가 쉽게 날 수 있을까. 날기는커녕 알에서 나오자마자 들짐승에게 먹히는 경우도 있다. 종달새 새끼를 씹고 피 묻은 주둥이로 입맛을 다시는 살쾡이도 있을 것이다. 날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파닥이며 연습해야 할까. 언덕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뭣 모르고 절벽을 뛰어내린 종달새는 많이 죽었을 것이다. 만약 새장 속에 갇혀 있던 새라면 더욱 치열한 탈출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날기 위해 오랜 시간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을 견뎌 내야 한다. 그래서 한 마리 노고지리가 자유롭게 날기 위해서는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푸른 하늘을 날기 위해, 푸른색과 대비되는 붉은 피를 흘려야 하는 법이다.
혁명은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성취되지 않는다.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실패와 배반, 흐르는 피눈물을 삼키며 겨우 하늘에 오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피[血]는 신체적인 혈액만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더욱 치열하게 고독한 투쟁을 말한다. 비단 신체적인 혈액만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근본적인 각성(覺醒)의 훈련을 뜻한다.
김수영 <푸른 하늘을>이란 시가 그 뜻을 이어받고 있다. 박두진의 <푸른 하늘 아래>는 『청록집』(1947)에 발표된 작품이고, 김수영의 <푸른 하늘을>은 1960년 6월 15일에 발표된 작품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김수영이 박두진을 읽었을 가능성도 있다. 박두진에게 푸른 하늘은 해방조국이며, 김수영에게 푸른 하늘은 혁명조국이다. 시기는 다르지만 박두진과 김수영 시에서 ‘푸른 하늘’이라는 이미지는 모두 자유의 표상이다. “산이 거기 있기에 산에 오른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종달새는 그저 하늘을 날기 위해 날개를 퍼덕인다. 여기서 시인은 너스레 떨지 않고 직언한다. 2연 끝부분과 3연을 보자.
“혁명(革命)은 / 왜 고독한 것인가를 // 혁명(革命)은 /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똑같은 말을 조금 다르게 꼬아서 두 번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해직당하고, 가족과 이별했고, 고문받고, 감옥에 가고, 자살했고, 죽어갔다. 팬옵티콘 어용 언론의 구축으로 인해 사회는 책임 없는 감시사회로 변했다. 아직 혁명은 아마득하다. 얼마 전 물대포를 맞고 농민 백남기 선생이 사망하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피의 냄새가 넘쳐야 깨달을까. 혁명을 이루고 난 뒤에도, 국민들 한 명 한 명이 ‘고독’한 노고지리처럼 피의 결심을 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내지 않는다면 결코 ‘푸른 하늘을’ 날 수 없는 것이다.
“자유를 위해서 /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 사람”(2연 1~3행)은 자유의 냄새에 그 ‘피’가 섞여 있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피는 ‘고독’과 이어진다.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지,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지. ‘피’와 ‘고독’이야말로 혁명을 이루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혁명, 너무도 자연스러운 과정
혁명(革命)이라 하면 흔히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떠올린다. 혁명을 뜻하는 영어 ‘리볼루션(revolution)’은 라틴어 ‘revolutio’가 어원으로, ‘회전하다’, ‘바뀐다’, ‘반전하다’라는 뜻이다. 잠깐 성공했던 1960년 4·19 혁명, 1987년의 6월 민주항쟁 같은 정치적인 변화만 혁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산업혁명, 디지털혁명처럼 새로운 체계가 시작할 때 ‘혁명’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혁명의 혁(革)이라는 한자는, 죽은 뿔 달린 짐승의 가죽을 벗겨내 펼쳐놓은 상형이다. 짐승이 죽었을 때 그대로 두면 금방 썩어버린다. 가죽을 쓰려면 빨리 벗겨내 안쪽에 붙어있는 살을 다 떼어내 물에 잘 씻고 한참 두들겨 부드럽게 ‘무두질’한다. 버릴 껍질을 ‘무두질’하면 쓸 만한 가죽이 되듯이, ‘혁(革)’이란 한자에는 ‘고치다’, ‘새롭게 하다’라는 뜻이 있다.
혁명이란 꼭 사회 변화만이 아니라, 내 삶을 바꾸는 변화도 의미할 수 있겠다. 매일 매일 무두질(革)하듯 새롭게 살아가는 삶은 ‘혁명적인 삶’이다. 깨인 의식으로 내 삶을 혁명시켜야 한다. 내 삶과 의식과 제도를 혁명해야 한다.
서양 용어로만 알고 있는 혁명이라는 단어는 실은 고대 중국의 고전인 『주역(周易)』, 『서경』, 『맹자』에도 나온다. 『주역』의 「혁괘편(革掛篇)」은 “바꾸어야[革] 하는 형국이다. 고난의 날이 지나며 한 마음이 될 것이다. 시작해야 할 때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 나서며, 거두어야 할 때 거두고, 마무리해야 할 때 마무리하면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이렇게 써 있다.
“천지가 바뀌어 사시(四時; 춘하추동)를 이룬다. 탕과 무가 혁명하여, 하늘 뜻을 따르고 사람에게 응한 것이니, 바꿔야 할 때에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天地革而四時成。湯武革命、順乎天而應乎人。革之時大矣哉)
인용문을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첫째, “천지가 바뀌어 춘하추동을 이룬다(天地革而四時成)”는 말은 천지가 바뀌어(革)하여 새로운 천지를 이룬다는 선언이다. 계절이 새롭게 바뀌듯 혁명의 시기는 새로워야 한다. 흔히 혁명이라 하면 무서운 시간을 생각하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계절이 바뀌듯 새롭게 바뀌는 것을 혁명(革命)이라 했다. ‘하은주’ 삼대(三代)의 정치체제가 ‘변하는(革)' 혁명을 고대 중국인들은 계절 바뀌듯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이다. 혁명 과정을 거쳐 이상적인 국가로 기록되는 주(周, BC1046~BC256)가 세워진다.
둘째, 탕(湯) 임금과 무(武) 임금이 하늘(天)을 따라 정치적인 결단을 한다. 탕과 무의 혁명이 곧 역성혁명(易姓革命)이었다. 고대 중국, 하(夏)나라에서 은(殷)나라, 은에서 다시 주(周)나라로 왕조가 교체될 때를 소위 ‘은주혁명(殷周革命)’이라고도 한다. 왕조의 교체를 의미하는 ‘혁명(革命)’을 하려면 이렇게 하늘 뜻에 따라야 한다. 그런데 하늘의 명(天命)을 ‘안민(安民)’으로 삼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서경』에 보면 ‘혁명’을 할 수 있는 자는 ‘하늘의 명(天命)을 바르게 아는 자’라고 명확히 나온다.
“하늘은 우리 백성들이 보는 것을 따라 보며(天視自我民視),
하늘은 우리 백성들이 듣는 것을 따라 듣는다(天聽自我民聽).” 
하늘(天)이 백성을 만들었으니(下民), 하늘의 뜻은 백성의 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여론 조사나 지지율도 백성의 마음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셋째, 인민들이 한마음으로 응했다.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정치가들이 인민을 귀히 여겨 ‘안민(安民)’에 힘썼기 때문에 인민들이 혁명 과정에 응하고 참여했던 것이다. 혁명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그 사건이 백성을 위한 것이냐 아니냐에서 판가름이 난다.
『맹자』에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왕조의 성(姓)을 바꾸는(易) 혁명이다. 맹자(孟子, BC372~289)는 임금이 된 자는 ‘백성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與民偕樂)’ 해야 하고, ‘백성들과 함께 즐기고, 백성들과 함께 근심(樂以天下 憂以天下)’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성들에게서 신뢰를 잃은 군주는 ‘혁명’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군주에게 큰 잘못이 있으면 말하고, 이를 반복하여 듣지 않으면 군주를 바꿔야 한다(君有大過則諫反覆之而不聽 則易位)’(『맹자』 萬章章句下)고 분명히 써 있다. 맹자는 ‘민’을 위한 위민정치(爲民政治)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민’을 위하지 않는 군주를 향해 폭력(暴力)을 가해도 좋다는 암시를 주기도 한다. 『맹자』에서는 역성혁명이 가능하려면 군주가 백성과 슬픔이든 즐거움을 나누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을 여러 번 강조한다.
‘혁명’이란 반란이나 정변이 아니다. 사계절의 순환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혁명의 잣대는 백성이 바라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고독 없는 혁명은 실패다
다시 시로 돌아가자. “어째서 자유(自由)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에서 ‘피’는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피[血]를 말하는 것일까. 김수영은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 고독이 이제로부터의 나의 창조의 원동력이 되리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뚜렷하게 느낀다. 혁명도 이 위대한 고독이 없이는 되지 않는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혁명이란 위대한 창조적 추진력의 복본(複本, counterpart)이니까. 요즈음의 나의 심경은 외향적 명랑성과 내향적 침잠 혹은 섬세성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졸시<푸른 하늘을>이 약간의 비관미를 띄우고 있는 것은 역시 격려의 의미에서 오는 것이리라”ㅡ김수영「1960년 6월 16일 일기」『김수영 전집』, 1984, 332면.
인용된 일기를 보면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김수영은 ‘정치적 혁명’과 ‘내면의 혁명’을 따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정치혁명이나 내면혁명이나 모두 ‘고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의 심경은 외향적 명랑성과 내향적 침잠 혹은 섬세성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구절에 주목해야 한다. 김수영은 외향적 명랑성(정치적 혁명)과 내향적 침잠 혹은 섬세성(내면적 고독)을 일치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김수영에게 ‘혁명’이라는 단어는 사회적인 껍데기만의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진정한 혁명은 국민들의 진정한 고독에서 시작해야 한다. ‘혁명도 이 위대한 고독이 없이는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혁명 없어 사회혁명은 없다는 말이다. 철저히 자기혁명의 고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인, 타자의 힘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철저히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은 거대한 일은 하려 하면서 자기 곁의 일은 못한다. 역사혁명은 일으키려 하면서도 가족혁명은 일으키지 못한다. 아프리카 빈자를 도우려 하면서도 집안 노모의 대소변을 받아내지 못한다. 철저히 자기혁명을 이룬 고독한 단독자들의 연대, 그것이 없다면 내면의 혁명이나 외면의 혁명 모두 실패한다. 단독자들의 사유(思惟)혁명에서 비롯된 혁명이 아니라면 또 다른 ‘동물농장’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피’를 흘린다는 것은 살아 있는 몸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고독’하다는 것은 사사로운 인간관계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곧 자기희생의 ‘피’와 적폐(積弊)에 썩어 있는 과거와 결별한 ‘절대고독’에서 혁명은 가능한 것이다. 순종적인 신체와 결별하는 ‘피’, 썩은 과거와 결별하는 ‘고독’의 씨앗으로부터 혁명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4·19 이후에 발표된 김수영의 시 몇 편 중에 나는 이 시가 가장 마음에 든다. 그가 일기에 쓴 ‘격려의 의미’로 독자인 나에게도 위로가 된다. 차분하며 격정의 상태에서 멈추고 있다. 마치 한 방 탄알이 발사되기 직전에 숨을 멈춘 듯 하다. “그, 모오든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는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1967)를 연상시킨다.
혁명이란 단순히 사람을 바꾸는 문제를 떠나, 치열하게 깨달은 단독자들의 역사적 성과인 것이다. 이 땅에 사는 국민들 한 명 한 명이 고독하게 피 흘리는 심정으로 민주주의를 깨닫고, 온갖 언구럭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 매일 고독한 내면적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혁명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정신적 고투의 피를 흘리는 묵언정진(默言精進), 기억해야 할 것을 절대 잊지 않는 고독한 이들의 연대에 의해 진정한 혁명은 가능하다.
혁명은 박근혜 한 명 바꾼다고 성공하지 않는다. 혁명은 하늘 뜻을 따르는 각성한 민심이 한 마음이 될 때 이루어진다. 국민 한 명 한 명이 깨어 있는 고독한 단독자로서 모든 적폐(積弊), ‘친일파=친독재=박근혜=공범자’를 몰아내야 한다. 박근혜의 거짓으로 박정희의 적폐를 설명하기 쉬워졌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분노하고 소리지르는 행동 이상으로 고독하게 저 얼룩을 지워야 한다. ‘이제 나는 바로 보마’(<공자의 생활난>)라는 판단력을 키우며 실천해가야 한다, 그래서 혁명은 고독하다. 혁명은 고독해야만 한다. 혁명이란 고독한 단독자들이 뿌리와 뿌리를 얽으며 이루는 숲이다. 그래서 혁명은 늘 영원한 시작이다.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필자 소개김응교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연세대 신학과 졸업, 연세대 국문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하고,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1991년 「풍자시, 약자의 리얼리즘」을 『실천문학』에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도 시작했다. 1996년 도쿄외국어대학을 거쳐,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1998년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로 임용되어 10년간 강의했다. 2012년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페이스북과 트위터(@Sinenmul)로 세상과 소통한다.

시집 『씨앗/통조림』과 평론집『그늘-문학과 숨은 신』 『한일쿨투라』, 『한국시와 사회적 상상력』, 『박두진의 상상력 연구』, 『시인 신동엽』, 『이찬과 한국근대문학』, 『韓國現代詩の魅惑』(東京:新幹社、2007), 예술문학기행 『천년 동안만』, 시인론 『신동엽』, 장편실명소설 『조국』 등을 냈다. 번역서는 다니카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양석일 장편소설 『다시 오는 봄』, 『어둠의 아이들』, 윤건차 사상집 『고착된 사상의 현대사』, 윤건차 시집 『겨울숲』, 오스기 사카에 『오스기 사카에 자서전』, 엘던 라드 『부활을 믿는 사람들』 그리고 일본어로 번역한 고은 시선집 『いま、君に詩が來たのか: 高銀詩選集』(사가와 아키 공역, 東京: 藤原書店、2007) 등이 있다.

다시 읽기 위하여-- [도올 김용옥 특별기고] 민중의 함성이 곧 헌법이다

겨울이 오고 있다. 아니, 봄이 오고 있다. 아니, 혁명이 오고 있다. 우리 민족 최초의 진실한 혁명! 잔인한 4월보다 더 잔인한 달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너무 슬프다. 우리 조선의 민중이 너무 가슴아파한다. 내가 왜 이렇게 갑자기 먹구름 낀 죽음의 계곡에 갇히어 절망의 탄성을 발하고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묵시문학이 말하는 아비규환과도 같은 혼돈 속에서, 나는 기묘하게도 <도올의 로마인서강해>라는 희한한 성서주석서를 집필하고 있었다. 너무도 슬프기에, 너무도 깊은 슬픔을 이겨낼 수 없었기에 나는 유대인 바울이라는 인물의 심정의 심연에 기대어 나의 슬픔을 극복하고자 했다. 로마인에게 보낸 이 바울의 서한은 예수라는 인물이 죽은 지 불과 25년 만에 쓰인 것이며, 그 서한이 완성된 후 15년 만에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된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의 국가는 멸망해버렸고 유대인은 흩어져 향후 2천년 동안 디아스포라의 서글픈 망명 생활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의 <로마인서>에 새겨진 장엄한 논리는 기독교를 탄생시켰고, 예루살렘 성전을 멸망시킨 로마제국을 굴복시켰다. 향후 2천년 동안의 찬란한 서구문명의 도덕적 뼈대를 이루었던 것이다. <로마인서>는 인간혁명의 매니페스토였다. 나는 이 조선 역사의 가장 심오하게 슬픈 이 시점에서 바울의 매니페스토를 뛰어넘는 우리 민중의 매니페스토를 선포하고자 했다. 함석헌 선생이 “뜻으로 본 역사”라고 말한 그 뜻을 새롭게 밝히고자 했다.
지난 금요일 아침 박근혜 대통령의 두번째 사과 담화를 들었다. 그 담화는 전혀 사과가 아니었다. 오히려 첫번째 사과 담화보다도 더 사악하게 짜인 자기정당화의 변명일 뿐이었다. 자기 행위의 도덕적 정당성을 변명하는 구질구질한 언사였다. 그 담화를 가장 가소롭게 들었을 사람은 다름 아닌 박근령과 박지만이었을 것이다. 가족을 자기 죄악의 유일한 근원으로 공표하는 박근혜는 무의식적으로 최순실을 비호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는 최태민의 사교에 빠진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국민들은 박근혜의 언행 전부를 사교로 간주하고 있다.

금요일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는 대국민 담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의 은밀한 지지세력에게 “나는 아직 건재하며 굳건하게 버틸 것”이라는 사인을 보내는 일종의 암호였다. 이미 자기의 지지세력이 사라졌다는 것도 판단하지 못하는 무지한 영혼이었다. 하다못해 김병준 신임 국무총리의 내정을 둘러싼 절차상의 하자에 관하여 일말의 반성도 언급하지 않았다. 김병준은 제대로 된 학인이라 말할 수 없다. 생각해보라!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 한다면 로고스적 상황 판단이 있어야 하고, 절차적 논리가 있어야 하며, 주어진 상황의 역사성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현 상황에서 그러한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누구라도 이성적 판단력이 있다면, “여야의 합의가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라고 한마디 했어야 했다. 그렇게 현명한 자세를 취했더라면 그는 이 난국을 타개하는 정석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정석이 아닌 사석(捨石)이다. 그는 입 뻥끗할 때마다 여유가 있어 보이고 단호한 듯이 보인다. 한마디로 고수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권력의 기회를 탐하기만 하는 갈욕의 노예일 뿐이다. 자진사퇴 있을 수 없다구? 잘해보시게나!
박근혜의 대통령직 유지는 국가 혼란과 부도덕성 증가시킬 뿐
바울은 이렇게 외친다.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선포하노라.” 나는 바울이 말하는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피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원고지 위에 펜을 옮기고 있었다. 그때 홀연히 내가 집필하는 서재의 작은 창문으로 노도와 같은 민중의 함성이 들려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어느샌가 민중의 틈바구니에 끼어 종로 한복판을 걸어가고 있었다. 충격이었다! 그것은 진실로 거역할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쓰나미였다. 종로 대로로부터 광화문 네거리 주변을 꽉 메운 인파는 1만·2만으로 셀 수 있는 그런 풍류가 아니었다. 20만·30만의 인파가 외치는 함성은, 순간 나의 의식의 장에 저 바이칼호로부터 대흥안령을 거쳐 백두·두륜에 이르는 거대한 광야의 지맥을 연상시켰다. 최근 나는 동북3성의 고구려·발해성을 답사하여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맞았다! 그래! 맞았다! 이게 바로 내가 살던 고향이었어! 자동차가 사라진 텅 빈 종로와 질풍노도와 같은 인파의 홍류는 해방된 고조선의 영고·동맹제와도 같았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곳은 억압도, 착취도, 사기도 없었단다! 조그만 밭뙈기 하나 있으면 못살 일도 없었고, 잘살게 해준다고 꼬시는 사람도 없었단다! 내 주목을 크게 끈 천 명 가까운 한 시위대는 바로 중고생 집단이었다. “중고생이 일어났다! 중고생이 분노했다! 박근혜는 물러가라! 사과 말고 사퇴하라! 새누리도 공범이다! 재벌기업 해체하라!”
내가 중고생 시위대 앞에서 같이 종로를 활보하자, 내 주변으로 엄청난 인파가 모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기억 못하세요? 고대 농악대 82학번 아무개예요. 저 선생님하고 같이 길거리 데모하면서 최루탄도 무척 함께 뒤집어썼잖아요!” “그래그래 맞다! 너 아무개 아니냐?” 이렇게 저렇게 나는 또다시 30년 전 6월항쟁의 열풍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당시 “왕정이냐? 민주냐?”라는 글을 발표하고 단식에 돌입했다. 대학생 박종철군의 고문살인 조작·은폐로 시작하여 이한열군의 사망에 이르기까지 “군부독재타도·호헌철폐”를 외치던 민중의 민주화를 향한 절규는 드디어 100만 인파를 이루어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향하는 노제의 장엄한 광경을 노정했다.
그러나 1987년 6월항쟁과 현금의 11월항쟁은 매우 성격이 다르다. 6월항쟁은 투쟁 목표가 폭압적 무단정치의 타도였으며 그 대상은 절대악으로 보이는 선명한 개체였다. 다시 말해서 투쟁 목표가 민중 밖에 치립하고 있었다. 그것은 외재적 혁명이었다. 그러나 11월항쟁은 투쟁 목표가 가냘픈 여인허수아비를 둘러싸고 놀아난 행정·입법·사법·언론·문화·체육·국방 전반의 국가체제의 부패요, 괴멸이요, 야비한 기만성이다. 그 대상도 절대악으로 보이는 선명한 개체가 없다. 최순실이 대상이 아니라, 그 야비하고 비열하고 저속한 이를 국가 최고의 실세로 만들어 놓은 장기간에 걸친 국가권력체제의 농간이요 농단이요 농권(弄權)이다! 투쟁 목표가 민중 안에 거미줄처럼 들어와 있다. 그것은 내재적 혁명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민중의 자발적 각성의 힘에 의하여 민중 스스로를 개혁하고 개벽하는 어려운 혁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험로의 종착역은 눈앞에 다가와 있다! 종착이야말로 진정한 시발인 것이다!
광화문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무대 위로 아주 평범하게 보이는, 말도 아주 소박하게 하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올라왔다. 그녀는 말했다. “하야라는 말은 할 수가 없어요. ‘하야’라는 말은 위엄 있는 대통령 인격체를 전제로 해서만 가능한 말이잖아요? 그러나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이 아니에요. 대통령으로서의 위엄과 위신과 인격과 국정수행 능력을 다 상실했잖아요. 박근혜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박근혜는 불쌍하고 외로운 병자일 뿐이에요. 박근혜는 빨리 청와대를 걸어 나와서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빨리 박근혜를 입원시켜줍시다.”
11월 항쟁의 투쟁 대상은 국가체제 부패와 야비한 기만성
거대한 찬사의 함성이 일시에 폭발했다. 나는 순간 직감했다. 우리 민중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바스티유 감옥은 이미 터졌다! 노론-친일파-친미·반공 세력의 강고한 족쇄는 이미 풀렸다!
나는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무대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민중에 의하여 발견되었고, 민중의 함성에 떠밀려 무대 위에 설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그대들은 왜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까? 박근혜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입니까? 최순실-최태민이라는 터무니없는 인간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서입니까? 이 순간 여러분께서 단상에 서 있는 도올을 바라보는 그 가슴에 뭉클거리는 감정, 그리고 뇌리에 떠오르는 모든 일치된 언어, 그것은 바로 하늘의 소리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철학이요, 이 시대의 정언명령이며, 이 시대의 헌법입니다. 헌법은 조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로지 투쟁으로만 획득되는 민중의 양심이며 양식이며 끊임없이 변하는 괘상(卦象)과도 같은 것입니다. 나는 말합니다. 그 분노의 불길로 우리 스스로의 존재 그 자체를 불살라야 합니다. 우리 존재를 얽매고 있는 모든 체제의 압박을 불살라야 합니다. 우리의 혁명은 정권의 변화를 뛰어넘는 우리 의식의 혁명이며, 제도의 혁명이며, 가치관의 혁명이며, 새로운 사회를 갈망하는 소망의 혁명입니다. 우리 모두 헌 인간을 십자가에 못 박고 새로운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혁명은 어떠한 정치적 술수나 타협으로도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오직 순결한 민중의 순결한 의지의 표출로써만 가능한 혁명입니다. 어떠한 감언이설의 교사에도 속지 마십시오. 명(命)이 혁(革)파될 때까지 조금도 행진을 늦추지 마십시오. 혁명 완수의 그날까지 행진! 행진! 행진!”
이것은 과연 무슨 말인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에 이미 청와대가 환관으로 득실거리게 될 것이라는 말로써 이 난국을 예언한 것도 나 도올이었고,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처음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운위한 것도 나 도올이었다(<한겨레> 2014년 5월3일치 1면 세월호 참사 특별기고). 그런데 나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터진 직후에 <시비에스>(CBS) 김현정 앵커와 한 대담에서, 모든 사람이 대통령의 하야를 자유롭게 논하고 있는 분위기에서도, 나는 “하야”에는 반대한다는 역설적 논리를 폈다. 그러나 그 역설적 논리의 진의는, 쉽게 하야하고 나면 그만큼 박근혜는 쉽게 면죄부를 획득할 것이며, 또한 더욱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박근혜라는 허상을 조장해온 정계, 관계, 재벌, 보수언론, 보수여론주도층이 다 같이 쉽게 면죄부를 획득한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오늘의 사태의 죄악은 모두 박근혜·최순실과 그 주변의 사기집단 몇 명으로만 귀결되고 우리 민족의 역사는 반성의 기회를 유실하고 만다. 비록 지지부진하고 더러운 변명의 추태가 계속된다 할지라도 그 과정을 존속시키는 것이 오히려 박정희-박근혜 패러다임의 실상을 폭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설의 논리는 지금 박근혜의 두번의 사과와 독선적인 신임 총리 지명 사태만으로도 설 자리를 잃었다. 박근혜는 이미 대통령의 직무수행이 불가능한 금치산자와도 같은 인물이 되어버렸고,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는 도덕적 근거인 민심이 완벽하게 이반되어버렸다. 이러한 사태에서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선택은 많지가 않다. 박근혜의 대통령직 유지는 국가의 혼란과 국민의 분노와 정계의 부도덕성을 증가시킬 뿐이다.
지금 정가에서 나도는 해법은 세가지로 요약된다. (1)하야 (2)탄핵 (3)거국내각. 우선 우리 국민은 하야와 탄핵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탄핵은 현행 법질서 내에서 이루어지는 정당 간의 합의에 의한 정치적 프로세스이다. 그러나 하야는 정치적 프로세스가 아닌 초법적인 도덕적 선택이다. 이 도덕적 선택의 일차적 주체는 박근혜라는 자연인이다. 그러나 이 자연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러한 도덕적 선택을 자발적으로 내릴 수 있는 인격체가 아니다. 그러한 인격체라면 어찌 최순실 게이트의 사태에까지 당도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까 탄핵의 주체가 정당이라고 한다면, 하야의 주체는 국민이 된다. 하야를 하게 만드는 사역자가 국민이라는 뜻이다. 이 국민은 반드시 혁명의 열기를 누그러뜨리지 않는 각성된 국민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탄핵은 문제가 많다. 정당 간의 합의도 어렵고,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거쳐야 하는데, 이 전 과정은 장기화될 것이며 박근혜는 면죄와 휴식과 도덕적 마비를 얻는다. 그리고 헌재의 판결은 국민이 바라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강하다. 국민의 소망이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기실 탄핵은 국민의 입장에서는 헛수고일 뿐이다.
하야라는 평화로운 사태 국민의 명령이다
그렇다면 거국내각이란 무엇인가? 국민들이 이 말의 함의를 정확히 깨닫기에는 너무도 많은 역사적 언어가 필요하다. 그 핵심을 말하자면 거국내각이란 국회가 국체의 전권을 쥔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이 정의롭게 이루어지려면 대통령이 소속 정당을 탈당해야 하고, 일체 정무에서 손을 떼야만 가능한 것이며, 특검도 거국내각이 구성한 엄정한 수사기관이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실상 거국내각은 이루어지기가 어려우며, 그 실제 내용으로 말하자면 하야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최종 결론은 단 하나만 남는다! 하야! 하야! 하야! 그리고 또 하야!
하야를 강행하는 주체는 국민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이 시점에서 하야라는 평화로운 사태를 유발할 수 있는 힘은 정객에게 있지를 않다. 국민이 국민의 힘으로 국민을 위하여 국민의 역사를 새로 써야 한다. 여기 내가 말하는 “평화로운 사태”라는 말의 함의에 모두가 주목해주기를 바란다. 지금 집권자들은 국민의 분노나 항거나 시위를 과소평가하고 있을 수도 있다. 집권의 야욕을 허심하게 내려놓지 않는다면, 또다시 북한의 위협을 도발시키거나, 혹은 계엄사태를 구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국민은 더 이상 이렇게 케케묵은 수법에 농락당하지 말아야 한다. 군대도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는 명령이 아닌, 자체의 이성적 판단을 따라야 할 것이다. 군대는 국가의 군대이며, 국민의 군대이다. 경찰, 군대 모두 폭력적 사태를 유발하는 일체의 경거망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의 지지율은 제로다!
언론도 국민의 열기를 파생시킬 수 있는 불확정한 사태에 대하여 정의로운 판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미 보수와 진보, 야당과 여당, 지배자와 피지배자,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오직 불행한 사태의 저지를 위하여 박근혜의 하야에 총력을 모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 사태의 죄악을 죄악으로서 깨끗하게 종결시켜야만 한다. 오늘 이 위대한 혁명의 국면에, 대인의 우환을 지닌 모든 동포들은 민주의 제물로서 모든 아집을 버리고 혁명의 완수를 위해 전진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69069.html#csidx4ee87a30cf43e9591d495c3657ca7a4 

2016년 9월 7일 수요일

2015년 경기도 31개 시군의 도서관운영 현황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60162.html











경기도 시·군 1인당 도서구입비 1800원, 사서 3.8명 불과
전체 회원수 50만명 고양시 16개 도서관 평균치 가장 열악
경기도의 각 지자체가 공공도서관 건물은 번지르르하게 지었지만 정작 도서 구입과 사서 인력 충원에는 소홀해 도서관이 제구실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드러났다.
6일 경기도의회 이재준 의원(더불어민주당·고양2)이 경기도에서 받은 2015년 31개 시·군의 도서관 운영 현황을 보면, 지난해 경기도의 1인당 도서구입비는 연간 1800원으로 나타났다. 1인당 장서 수는 2.1권으로 경기도 목표치인 2.5권에 못 미쳤다.
특히 사서 수는 총 228개관에서 859명이 근무해 1관당 평균 3.8명으로, 적정인원(5000명)의 17%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9개 시·군은 법정 최소인원(3명)에도 못 미쳤다.
도서관법 시행령에는 330㎡ 규모 이하 도서관은 사서 3명을 둬야 하며, 초과하는 330㎡마다 사서 1명을 추가로 두고, 장서 6000권마다 사서 1명을 충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군별로는 고양시가 가장 열악했다. 고양시는 공공도서관 수가 16개로 수원(22개)에 이어 도내에서 두번째로 많지만 연간 도서구입비는 1인당 1200원으로 의정부, 안성(각 1000원)에 이어 가장 적었다. 사서 수도 고양시는 2.9명으로 성남, 의정부(각 6.0명)의 절반꼴로, 독서 지도나 책 안내 등 양질의 서비스는커녕 도서 대출·반납 업무만 하기에도 빠듯한 셈이다. 고양시의 도서관 회원 수는 50만6087명으로 용인, 수원에 이어 세번째로 많았다.
고양시의 한 도서관장은 “시에서는 예산에만 의존하지 말고 헌책을 기증받으라고 하는데 장서로서 가치있는 도서를 기증받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신간 도서나 희망 도서를 갖추지 못해 이용객들로부터 불만의 소리를 들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석재복 고양시 도서관센터 소장은 “아무리 건물이 좋아도 내용물인 도서가 충분치 않으면 껍데기에 불과하다. 눈에 보이는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로 예산 배정 때 후순위로 미루지 말고 의지를 가지고 도서관 예산을 현재보다 2배 이상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준 의원은 “고양이나 안산, 시흥, 오산시와 같이 재정력이 충분한 지자체들의 도서관 운영 실태가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이다. 경기도는 도서관법을 위반하고 치적 홍보용으로 도서관 수 늘리기에만 급급한 지자체에 대해 감독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내에서 도서구입비와 사서 인력이 가장 많은 곳은 과천시(1인당 4700원, 1관당 9.3명)로 조사됐다.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2015년 6월 15일 월요일

책읽기(독서)는 스트레스 감소에 최고

http://www.telegraph.co.uk/news/health/news/5070874/Reading-can-help-reduce-stress.html

텔레그라프 2015년 5월 30일자


영국 서섹스대 데이비드 루이스(David Lewis)
6분 독서, 스트레스 68% 감소. 심박수 낮아지고, 근육 긴장 완화
첫째 독서(68%), 둘째 음악감상(61%), 셋째 커피마시기(54%) 넷째 산책(42%)
게임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지만 심박수는 높여.
무슨 책인지는 중용하지 않다. 작가의 상상공간에 푹 빠지는 것이 중요.
스트레스-두통/소화불량/고혈압/면역력 감소

Reading 'can help reduce stress'

Reading is the best way to relax and even six minutes can be enough to reduce the stress levels by more than two thirds, according to new research.


And it works better and faster than other methods to calm frazzled nerves such as listening to music, going for a walk or settling down with a cup of tea, research found.
Psychologists believe this is because the human mind has to concentrate on reading and the distraction of being taken into a literary world eases the tensions in muscles and the heart.
The research was carried out on a group of volunteers by consultancy Mindlab International at the University of Sussex.
Their stress levels and heart rate were increased through a range of tests and exercises before they were then tested with a variety of traditional methods of relaxation.
Reading worked best, reducing stress levels by 68 per cent, said cognitive neuropsychologist Dr David Lewis.
Subjects only needed to read, silently, for six minutes to slow down the heart rate and ease tension in the muscles, he found. In fact it got subjects to stress levels lower than before they started.
Listening to music reduced the levels by 61 per cent, have a cup of tea of coffee lowered them by 54 per cent and taking a walk by 42 per cent.
Playing video games brought them down by 21 per cent from their highest level but still left the volunteers with heart rates above their starting point.
Dr Lewis, who conducted the test, said: "Losing yourself in a book is the ultimate relaxation.
"This is particularly poignant in uncertain economic times when we are all craving a certain amount of escapism.
"It really doesn't matter what book you read, by losing yourself in a thoroughly engrossing book you can escape from the worries and stresses of the everyday world and spend a while exploring the domain of the author's imagination.
"This is more than merely a distraction but an active engaging of the imagination as the words on the printed page stimulate your creativity and cause you to enter what is essentially an altered state of consciousness."
The research was commissioned by Galaxy choocalate to launch a campaign to give away one million books over the next six months.

2015년 6월 10일 수요일

햇볕과 정면으로 맞서는 낙타/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http://hankookilbo.com/v/b60772e921944f8f829f501b52f389e6

햇볕과맞서는낙타삽화
두툼한 입술, 요염한 콧구멍, 그리고 슬픔에 잠긴 듯한 눈망울을 가진 낙타의 고향은 놀랍게도 북아메리카다. 공룡이 멸종하고 2,000만년이 지난 후인 4,500만년 전 낙타의 먼 조상이 북아메리카에 등장했다. 처음엔 토끼만 한 크기의 동물이었다. 1,000만년이 지나자 염소만 한 크기로 성장했다. 이들은 계속 북아메리카에만 살았다.
하지만 고향에서의 삶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몸집이 커다란 동물들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몸집을 더 키워야 했다. 340만년 전에는 덩치가 요즘 낙타보다 30%나 더 커졌다. 발에서 어깨까지 높이가 2.7m나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몸집을 더 키우는 데는 실패했다. 이제 남은 길은 두 가지뿐이다. 몸집을 줄여서 납작하게 엎드려 살든지 아니면 미련 없이 보금자리를 떠나든지.
낙타는 추운 북쪽 지방으로 점점 밀려났다. 추운 지역에 살기 좋게 굵은 털이 몸을 덮었고 발바닥은 넓적해져서 눈에 잘 빠지지 않았다. 또 등에 혹을 만들어서 지방을 갈무리했다. 낙타는 혹 속의 지방을 분해해서 양분으로 쓴다. 이때 지방이 공기 중의 산소와 반응해서 물을 만든다. 몸을 바꾸어도 살 수 있는 터전은 점차 좁아졌다.
마침 180만년 전 빙하기가 시작되었다. 빙하기의 영향으로 알래스카와 시베리아 사이의 베링해협이 육지로 연결되자 낙타는 북아메리카를 벗어나 시베리아를 거쳐 아시아로 이동했다. 빙하기가 끝난 후 북아메리카에는 단 한 마리의 낙타도 남지 않은 것을 보면 이것은 확실히 좋은 선택이었다.
아시아로 이동한 낙타는 두 종류로 분화되었다. 단봉낙타는 중동을 거쳐 아프리카에 정착했고, 아시아 초원에 머문 낙타는 쌍봉낙타로 진화했다. 북아메리카를 탈출했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라고 해서 만만하지가 않았다. 결국 낙타들은 포식자들이 더 이상 쫓아올 수 없는 사막을 선택했다.
추운 숲에 적응한 몸은 사막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두꺼운 털은 햇빛을 반사하고 뜨거운 사막 모래에서 올라오는 열을 차단했다. 단봉낙타의 넓고 평평한 발바닥은 모래 속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그리고 등에 달린 혹은 사막에서도 양분과 물의 저장소 역할을 했다.
낙타는 천신만고 끝에 마침내 전세계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동물이 되었다. 나도 작년 여름 고비사막에서 쌍봉낙타를 껴안고 사진을 찍고 낙타젖 치즈를 사흘 동안이나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음을 고백한다. 영화 ‘쥬라기공원’에 나오는 공룡 티라노사우루스가 포효하는 소리의 실제 주인공인 고비사막의 쌍봉낙타를 만나자 흥분해서 저지른 일이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낙타가 이제는 멀리해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바로 메르스 때문이다. 메르스가 퍼지자 당국은 낙타를 멀리하고 낙타젖을 먹지 말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덕분에 서울대공원의 단봉낙타와 쌍봉낙타가 지난 2일부터 4일 동안 자택격리 되기도 했다. 이 낙타들은 중동에 가 본 적도 없지만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영향인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도 혹시 낙타가 있느냐는 문의전화가 왔다. 없다. 있어도 죽은 지 오래된 박제일 뿐인데 그걸 왜 걱정한단 말인가. 도대체 메르스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을 만한 낙타를 가까이 하거나 익히지 않은 낙타젖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 어디에 있기나 한지 알고 싶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난 까닭이 뭘까? 전염병 그것도 새로운 전염병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초기에 막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때 기본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투명한 정보가 없으면 괴담이 퍼지는 법이다. 전염병을 통제할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지난 8일 청와대는 자기네가 메르스 사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친절하게 발표했다. 굳이 발표하지 않아도 시민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작년 세월호 침몰 사고 때 청와대 스스로 자신은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발표하던 장면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시민들은 메르스 사태 정도는 청와대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극복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대통령은 메르스 사태를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외교 행보에 전력하시기 바란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메르스는 전염력도 약하고 치사율도 상대적으로 낮은 신종 독감일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퍼진 게 메르스가 아니라 탄저균이었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도 한가하게 나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면피할 생각인가?
땡볕에 쉴 만한 그늘도 없을 때 낙타는 오히려 얼굴을 햇볕 쪽으로 마주 향한다. ‘낙타는 왜 사막으로 갔을까’의 저자 최형선은 그 이유를 햇볕을 피하려 등을 돌리면 몸통의 넓은 부위가 뜨거워져 화끈거리지만 마주 보면 얼굴은 햇볕을 받더라도 몸통 부위에는 그늘이 만들어져서 어려움이 오히려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도자가 최소한 낙타 정도의 지혜와 책임감을 갖추기를 기대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일까?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이정모 칼럼

2015년 6월 9일 화요일

대학교육에 대한 신자유주의 공세와 전쟁 [번역] 교수들의 황혼과 종말, By 마이클 슈월비. 번역 우동현


http://www.redian.org/archive/89341

이 글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사회학과 교수 마이클 슈월비가 ‘카운터펀치(Counterpunch)’ 주말판(2015년 6월 5~7일자)에 기고한 글을 우동현 선생이 필자의 동의를 얻어 번역해 기고하는 글이다. 대학 교육에서 좌파 교수들과 참여 지식인들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커지고 있고 사회참여 활동 자체도 억압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한국의 현실과 다르지 않는 모습이다. 글의 원문 출처 링크<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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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8년 전 러셀 자코비(Russell Jacoby)는 『마지막 지식인』(The Last Intellectuals)에서 2차 대전 이후 급속히 팽창한 미국의 고등교육이 자유롭고 지적인 말썽꾼보다는 교수가 되길 선택한 급진주의자들을 흡수했다고 주장하였다.
자코비에 따르면, 좌파 성향을 가졌던 많은 수의 교수들은 학계에서의 제약과 보상을 통해 효과적으로 탈정치화됐다. 그들은 당근과 채찍에 길들여져 교육받은 대중을 위한 일상어 대신, 한줌의 학자들을 위한 특수어로 글을 썼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대개 학계에서의 경력을 쌓는 데 정치력을 경주(傾注)하였다.
자코비는 괜찮은 삶을 좀처럼 살 수 없는 반체제적 사유가에게 대학이 안식처를 제공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또한 출세주의가 급진적인 저작을 출간하거나 또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라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과 그렇게 상충되지 않았다고도 지적한다.
문제는 오늘날 학계에서 경력을 쌓기 위한 이런저런 요구사항들로 인해 이전 세대의 참여적 지식인만큼의 성과를 내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자코비를 부연하자면, 따라서 우리는 수천의 좌파 사회학자들 가운데 라이트 밀즈(C. Wright Mills)는 없는 그런 현실에 부닥치게 되었다.
마지막 지식인
자코비의 ‘마지막 지식인’ 표지
자코비의 책이 출간된 이래 상황은 무척이나 악화됐다. 여전히 미국의 대학에는 좌파 성향의 교수들이 꽤 존재한다. 그러나 고등교육의 고용부문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오늘날 진행 중인 강력한 보수화 추세는 수십 년 안에 미국사회에서 좌파세력으로서의 교수를 멸종시킬 것이다.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자코비가 관측한 학계에서의 일자리 팽창이 오늘날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1960~70년대 교수직 시장이 커질 때에는 급진주의자도 대학에 자리를 잡고, 재직권(在職權)을 얻으며, 학계에서의 관습적인 보상에 대한 욕망에 왕왕 가려지긴 했어도 비판적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종신재직권을 보장하는 일자리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대학당국은 줄어든 예산에 더불어 값싸고 고분고분하며 처분하기 쉬운 “유연한” 노동력을 얻고자, 종신교수직을 대폭 축소하는 대신 일시적이고 비(非)종신 시간제 교원을 선호한다. 이처럼 학계의 취업시장이 혹독해지자 남아있는 종신교수직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었다.
이와 같은 조건에서는, 매번 새로운 대학원생들이 목도하듯이, 인쇄물을 통해서나 수업에서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말고 학술잡지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 대학원생들은 미래의 고용주를 염두에 두고 페이스북(Facebook)이나 트위터(Tweets)를 하라는 조언을 받는다. 따라서 대학원생들은 경쟁적인 취업시장을 생각하며 일찍부터 보수적으로 바뀐다.

“미안하지만 당신의 수업은 없소”

오늘날 많은 대학원생들의 앞날이자 교원들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인 바로 이 불안정한 고용은 더욱 보수적으로 바뀌고 있다. 모든 교수가 학문적 자유를 향유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비전임 교수의 글쓰기나 수업이 문제를 일으킬 경우 해고를 면치 못한다. 계약이 갱신되지 않거나, 학과장이 “미안하지만, 당신이 가르칠 수 있는 수업은 없소.”라고 말하면 그게 바로 끝이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은 몸가짐을 조심하게 하고, 어떠한 요구도 일축하며, 학생들을 계속 행복하게 만들도록 강요한다. 하지만 여전히 실제적인 문제가 남게 된다. 학기당 4개 이상의 강의를, 그것도 부당하게 낮은 임금을 받아가면서 겨우 삶을 연명하는 동시에 얼마나 많은 연구와 저술을 수행할 수 있을까?
구직경쟁 및 불안정 고용은 보수화를 이끄는 요인들 중 차라리 ‘보기 쉬운 것’이다. 다른 것들은 좀체 보이지 않는다. 이 중 하나가 바로 온라인 지침의 강화다. 수업, 즉 교수의 주관 하에 글과 즉흥성, 양자의 조합으로 이해되던 그 무엇은 이제 온라인 지침에 따라 행정적으로 검사될 수 있고 교체될 수 있는, 소유 가능한 어떤 지적 재산의 일부로 둔갑한다.
누군가가 교수자로서 하는 모든 일이 전자기록으로 남고 또 그것이 어느 때든 행정적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기껏해야 몸을 사리게 하고 최악의 경우 살 떨리게 한다. 다시 말하지만, 가장 안전한 방책은 수업에서 자료와 대화를 이전처럼 유지하는 것이다.

대학에서의 문화전쟁, 계급전쟁

보수화의 힘은 종신재직권을 받지 못한 교수뿐만 아니라 종신교수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예산 감소에 따라 연구비를 따내라는 압력이 가중됐고, 정상과학 및 전통을 존중하는 학문이 선호된다. 긴축은 또한 자원을 둘러싼 내부경쟁, 즉 생산성 수요를 높이는 경쟁(우리가 더 많이 출간하지 않으면 다른 학과에 비해 무능하게 보일 거야!)을 격화시켰고, 동시에 종신교수직 검토 절차를 더욱 엄격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교수가 상상력이 빈핍(貧乏)한 학문적 작업만을 수행하도록 인도한다. 공공 지식인으로서의 자질을 기르는 데 필요한 규칙이 없는 속에서, 교수들은 여타의 노동자처럼 그들이 책임질 수 있는 것과 보상 받을 수 있는 바에만 몰두하게 된다.
종래의 보수파는 여전히 교수를 공격하고, 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아테네의 노인에서부터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와 리드 어빈(Reed Irvine), 데이비드 호로위츠(David Horowitz)를 거쳐 오늘날의 무지(無知)한 공화당 의원에 이르기까지 심란한 질문을 제기하고 불편한 진실을 가리킨다며 교수를 꾸짖는 작태는 표준적인 문화·계급전쟁이다.
그러한 공격의 대부분은, 적어도 매카시 시대가 종언을 고한 이후부터는 언론 및 학계의 자유와 종신재직권에 의해 방향을 잃었다. 그러나 오늘날 새로운 정치·경제적 현실로 인해 보수파의 공격은 다시 한 번 더욱 불길한 것으로 바뀌었다.
우파 입법자들이 국가와 정부를 통제할 때, 그들의 반지성주의는 심각한 결말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직업과는 별 관련 없는 고등교육에 대한 입법자들의 적개심에서 비롯된 공립대학에 대한 예산 감축과 그 가능성 때문만은 아니고, 오히려 교수들이 공적인 활동으로 인해 보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더욱 잘 인지하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이곳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주에서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UNC)의 일부였던 연구소와 기관이 문을 닫았는데, 이는 그러한 연구소 및 기관과 관련 있는 교수들이 공화당 의원의 기분을 상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교수들이 직장을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누구도 미리 경고를 받지 못하였다.
심지어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몇몇 공화당 의원들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교수들의 수업 강도를 높이려 했고, 교수를 포함한 공무원이 근무시간이나 주 자원을 이용하여 공적인 사안에 대한 논평과 같은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려고 하였다.
두 제안은 즉각적으로 기각됐으나, 그것이 전달하고자 한 내용은 명백하였다. “우리는 너를 지켜보고 있고, 우리의 정치력을 발휘하여 너를 망신 줄 수도 있다.” 이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만 벌어지는 특수한 싸움이 아니다. 위스콘신(Wisconsin)주와 미국입법교환위원회(ALEC)와 관련 있는 공화당 의원의 주들에서 비슷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공공지식인으로서의 교수의 종말

신자유주의 이념이 미치는 범위가 확장되면서 이러한 위협은 더욱 강화되었다. 오스트리아학파를 추종하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이나 자유시장주의자들은 공립대학을 직업기술학교처럼 운영하고, 대기업에 복무하는 두뇌집단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제거를 핵심목표로 설정하였다. 주장의 근거는, 이러한 분과학문이 곧바로 취직으로 연결되지도 않고 또 자본주의적 경영을 돕지도 못하기 때문에 혈세를 들여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임금이 정체됐고 내야 할 세금은 높아진 중산층과 노동자층 유권자에게 높은 호소력을 갖는다. 또한 이러한 시각은 결국엔 공립대학에서 교양교육을 뿌리 뽑을 것이며, 따라서 참여적 지식인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박사학위 소지자의 일자리 역시 박탈할 것이다.
필자는 주로 공립연구대학을 거론했는데, 부분적으로는 그러한 대학들이 내가 아는 한 가장 낫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 공립연구대학이 갖는 가치와 취약성을 세심히 고려해야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대학들은 공익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운영돼야 하고, 따라서 교수들에게 정책현안이나 사회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보장해야만 한다.
그리고 교육에 초점을 맞춘 학교와 달리, 연구대학은 교수들에게 출간의 의무를 지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공립연구대학은 비판적인 학문을 배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납세자의 혈세가 그러한 대학들을 지원하기 때문에,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이념가들의 공세에 맞서 대학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하버드
미국 하버드 대학 모습(위키피디아)
유수(有數)한 사립대학의 이야기는 또 다르다. 사립대학들에게 예산 조정과 혈세의 적절한 사용에 대한 선동적 수사와 같은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한 학교의 교수에게는 연구와 저술에 필요한 충분한 시간과 지원이 뒤따른다. 아이비 리그(Ivy League)의 교수들 중에는 유명해지는 사람도 많아 대학을 즐겁게 해준다.
그러나 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 대중적 인지도를 획득하는 아이비 리그 교수의 행태는 가내(家內) 지식인이 국가 엘리트에게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급진적인 비판보다는 현상을 정당화하고 유지시킨다고 할 수 있다. 하버드(Harvard)에서 종신교수직을 꿰차기 위해서는 『월간 비평』(Monthly Review)을 거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렇듯 공공지식인으로서의 교수의 종말에 관해 필자와 대담을 나눈 몇몇 동료들은 필자에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들이 인정하듯, 오늘날 우리에게 과거의 걸인(傑人)은 없더라도, 수천 개가 넘는 누리집(websites), 블로그, 트위터를 통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교수도 광범한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정말 우리는 누리망(Internet) 이전 시기보다 생각과 정보를 전달하는 더 많은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여전히 편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비판적 분석을 다양하게 담아낼 방도가 있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보수화의 힘(가혹한 구직경쟁, 불안정 고용, 감시가 가능한 온라인 지침, 연구비 취득 및 종래 형태의 생산성에 대한 요구, 더욱 엄격해진 자기검열체제, 행정적 감시와 이에 따른 공격) 또한 여전히 강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계 바깥의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교수들에게는 그러한 수단을 일축할 이유가 충분하다. 트위터, 블로그를 하거나 누리집에 글을 쓰고 싶은가? 좋다. 남는 시간에 그렇게 하되 그에 대한 보상은 꿈도 꾸지 말라. 그리고 말조심해라.
2008년, 오하이오주립대학의 영어교수인 프랭크 도너휴(Frank Donoghue)는 『최후의 교수들』(2014, 차익종 옮김, The Last Professors)을 펴냈다. 그는 위신을 세워주고 보수도 괜찮으며 작업을 통제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갖는 교수가 여전히 좋은 직업이라고 말하며,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당국의 통제와 횡포로 인해 교수직의 이점은 점점 저하되고 있다. 따라서 교수들, 특히 학계의 중견 및 소장학자들은 그들이 한때 그랬거나 그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고 질문을 설정한 뒤 수행하는 작업을 그만두고 있다. 대학의 명백한 영리화(營利化)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도너휴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땐 그가 너무 불필요한 우려를 자아내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필자는 그가 너무 신중했다고 생각한다.
자코비가 흠숭(欽崇)하는 참여적 지식인은 깨인 대중을 상대로 하여 자유롭게 글 쓰는 것으로 더 이상 먹고살 수 없게 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러한 사정은 교수에게도 별반 다를 바 없다. 한때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비판적이고 지적인 작업을 뒷받침하고 교수들에게는 광범한 청중에게 자본과 무관한 명철한 분석을 제공한 자리(niche)는 변모하는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교수들, 심지어는 종신교수들 중에서 좌파적 공공지식인으로서 거듭나려는 열망을 품고 있는 이에게 차디찬 물을 끼얹을 것이다. 그 후 남는 것은 한낱 탁상공론(academic)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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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슈월비는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사회학과 교수이다. 그의 이메일 주소는 다음과 같다. MLSchwalbe@nc.rr.com.

Noam Chomsky: The Death of the American University

https://www.jacobinmag.com/2014/03/the-death-of-american-universities/

http://voxpopulisphere.com/2014/08/10/noam-chomsky-the-death-of-the-american-university/

On hiring faculty off the tenure track

That’s part of the business model. It’s the same as hiring temps in industry or what they call “associates” at Walmart, employees that aren’t owed benefits. It’s a part of a corporate business model designed to reduce labor costs and to increase labor servility. When universities become corporatized, as has been happening quite systematically over the last generation as part of the general neoliberal assault on the population, their business model means that what matters is the bottom line.
The effective owners are the trustees (or the legislature, in the case of state universities), and they want to keep costs down and make sure that labor is docile and obedient. The way to do that is, essentially, temps. Just as the hiring of temps has gone way up in the neoliberal period, you’re getting the same phenomenon in the universities.
The idea is to divide society into two groups. One group is sometimes called the “plutonomy” (a term used by Citibank when they were advising their investors on where to invest their funds), the top sector of wealth, globally but concentrated mostly in places like the United States. The other group, the rest of the population, is a “precariat,” living a precarious existence.
This idea is sometimes made quite overt. So when Alan Greenspan was testifying before Congress in 1997 on the marvels of the economy he was running, he said straight out that one of the bases for its economic success was imposing what he called “greater worker insecurity.” If workers are more insecure, that’s very “healthy” for the society, because if workers are insecure they won’t ask for wages, they won’t go on strike, they won’t call for benefits; they’ll serve the masters gladly and passively. And that’s optimal for corporations’ economic health.
At the time, everyone regarded Greenspan’s comment as very reasonable, judging by the lack of reaction and the great acclaim he enjoyed. Well, transfer that to the universities: how do you ensure “greater worker insecurity”? Crucially, by not guaranteeing employment, by keeping people hanging on a limb than can be sawed off at any time, so that they’d better shut up, take tiny salaries, and do their work; and if they get the gift of being allowed to serve under miserable conditions for another year, they should welcome it and not ask for any more.
That’s the way you keep societies efficient and healthy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corporations. And as universities move towards a corporate business model, precarity is exactly what is being imposed. And we’ll see more and more of it.
That’s one aspect, but there are other aspects which are also quite familiar from private industry, namely a large increase in layers of administration and bureaucracy. If you have to control people, you have to have an administrative force that does it. So in US industry even more than elsewhere, there’s layer after layer of management — a kind of economic waste, but useful for control and domination.
And the same is true in universities. In the past thirty or forty years, there’s been a very sharp increase in the proportion of administrators to faculty and students; faculty and students levels have stayed fairly level relative to one another, but the proportion of administrators have gone way up.
There’s a very good book on it by a well-known sociologist, Benjamin Ginsberg, called The Fall of the Faculty: The Rise of the All-Administrative University and Why It Matters, which describes in detail the business style of massive administration and levels of administration — and of course, very highly-paid administrators. This includes professional administrators like deans, for example, who used to be faculty members who took off for a couple of years to serve in an administrative capacity and then go back to the faculty; now they’re mostly professionals, who then have to hire sub-deans, and secretaries, and so on and so forth, a whole proliferation of structure that goes along with administrators. All of that is another aspect of the business model.
But using cheap and vulnerable labor is a business practice that goes as far back as you can trace private enterprise, and unions emerged in response. In the universities, cheap, vulnerable labor means adjuncts and graduate students. Graduate students are even more vulnerable, for obvious reasons. The idea is to transfer instruction to precarious workers, which improves discipline and control but also enables the transfer of funds to other purposes apart from education.
The costs, of course, are borne by the students and by the people who are being drawn into these vulnerable occupations. But it’s a standard feature of a business-run society to transfer costs to the people. In fact, economists tacitly cooperate in this. So, for example, suppose you find a mistake in your checking account and you call the bank to try to fix it. Well, you know what happens. You call them up, and you get a recorded message saying “We love you, here’s a menu.” Maybe the menu has what you’re looking for, maybe it doesn’t. If you happen to find the right option, you listen to some music, and every once and a while a voice comes in and says “Please stand by, we really appreciate your business,” and so on.
Finally, after some period of time, you may get a human being, who you can ask a short question to. That’s what economists call “efficiency.” By economic measures, that system reduces labor costs to the bank; of course, it imposes costs on you, and those costs are multiplied by the number of users, which can be enormous — but that’s not counted as a cost in economic calculation. And if you look over the way the society works, you find this everywhere.
So the university imposes costs on students and on faculty who are not only untenured but are maintained on a path that guarantees that they will have no security. All of this is perfectly natural within corporate business models. It’s harmful to education, but education is not their goal.
In fact, if you look back farther, it goes even deeper than that. If you go back to the early 1970s when a lot of this began, there was a lot of concern pretty much across the political spectrum over the activism of the 1960s; it’s commonly called “the time of troubles.” It was a “time of troubles” because the country was getting civilized, and that’s dangerous. People were becoming politically engaged and were trying to gain rights for groups that are called “special interests,” like women, working people, farmers, the young, the old, and so on. That led to a serious backlash, which was pretty overt.
At the liberal end of the spectrum, there’s a book calleThe Crisis of Democracy: Report on the Governability of Democracies to the Trilateral Commission, Michel Crozier, Samuel P. Huntington, Joji Watanuki , produced by the Trilateral Commission, an organization of liberal internationalists. The Carter administration was drawn almost entirely from their ranks. They were concerned with what they called “the crisis of democracy” — namely, that there’s too much democracy.
In the 1960s, there were pressures from the population, these “special interests,” to try to gain rights within the political arena, and that put too much pressure on the state. You can’t do that. There was one “special interest” that they left out, namely the corporate sector, because its interests are the “national interest”; the corporate sector is supposed to control the state, so we don’t talk about them. But the “special interests” were causing problems and they said “we have to have more moderation in democracy,” the public has to go back to being passive and apathetic.
And they were particularly concerned with schools and universities, which they said were not properly doing their job of “indoctrinating the young.” You can see from student activism (the civil rights movement, the anti-war movement, the feminist movement, the environmental movements) that the young are just not being indoctrinated properly.
Well, how do you indoctrinate the young? There are a number of ways. One way is to burden them with hopelessly heavy tuition debt. Debt is a trap, especially student debt, which is enormous, far larger than credit card debt. It’s a trap for the rest of your life because the laws are designed so that you can’t get out of it. If a business, say, gets in too much debt it can declare bankruptcy, but individuals can almost never be relieved of student debt through bankruptcy. They can even garnish social security if you default. That’s a disciplinary technique.
I don’t say that it was consciously introduced for the purpose, but it certainly has that effect. And it’s hard to argue that there’s any economic basis for it. Just take a look around the world: higher education is mostly free. In the countries with the highest education standards, let’s say Finland, which is at the top all the time, higher education is free. And in a rich, successful capitalist country like Germany, it’s free. In Mexico, a poor country, which has pretty decent education standards, considering the economic difficulties they face, it’s free.
In fact, look at the United States: if you go back to the 1940s and 1950s, higher education was pretty close to free. The GI Bill gave free education to vast numbers of people who would never have been able to go to college. It was very good for them and it was very good for the economy and the society; it was part of the reason for the high economic growth rate. Even in private colleges, education was pretty close to free.
Take me: I went to college in 1945 at an Ivy League university, University of Pennsylvania, and tuition was $100. That would be maybe $800 in today’s dollars. And it was very easy to get a scholarship, so you could live at home, work, and go to school and it didn’t cost you anything. Now it’s outrageous. I have grandchildren in college, who have to pay for their tuition and work and it’s almost impossible. For the students. that is a disciplinary technique.
And another technique of indoctrination is to cut back faculty-student contact: large classes, temporary teachers who are overburdened, who can barely survive on an adjunct salary. And since you don’t have any job security, you can’t build up a career, you can’t move on and get more. These are all techniques of discipline, indoctrination, and control.
And it’s very similar to what you’d expect in a factory, where factory workers have to be disciplined, to be obedient; they’re not supposed to play a role in, say, organizing production or determining how the workplace functions-that’s the job of management. This is now carried over to the universities. And I think it shouldn’t surprise anyone who has any experience in private enterprise, in industry; that’s the way they work…. [continue reading]
This is an edited transcript (prepared by Robin J. Sowards) of remarks given by Noam Chomsky in February, 2014 to a gathering of members and allies of the Adjunct Faculty Association of the United Steelworkers in Pittsburgh, Pennsylvania.
To read Noam Chomsky’s complete remarks published in Jacobin, click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