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7일 화요일

대학의 IMF

출처 http://magazine.hankyung.com/apps/news?popup=0&nid=01&c1=1001&nkey=2014043000960000381&mode=sub_view


[성장 멈춘 한국의 대학들] 1997년보다 더한 ‘대학의 IMF’ 왔다




# 1. 서울 소재 A 사립대는 2012년도부터 내리 3년간 등록금이 제자리걸음이다. 작년에는 그마저 2%를 인하하기까지 했다. 각종 용역비, 전기·수도·가스 등 공공요금은 매년 오르고 물가도 2~3%대 인상이 기본인 걸 감안하면 사실상 3년간 등록금을 인하해 온 꼴이다. 설상가상으로 작년에는 전체 재학생 수마저 줄어들었다. 소위 ‘인(in) 서울대’라는 프리미엄 덕에 입학 정원을 채우는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재학생 수가 줄어드는 건 유례없는 경험이다. 군 전역 후 복학을 미루는 등 휴학생 수가 늘어난 때문이다. 이 대학의 전체 등록금 수입은 지난해 기준으로 40억 원이 줄었다. A대 기획처장은 “등록금이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학의 현실을 감안하면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 2. 국내 유수의 전자 기업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B 씨. 한국에서 학부를 마친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 취득 후 그가 알아본 직장은 모교인 C대의 강단. 하지만 그가 받을 수 있는 연봉은 4000만 원대에 불과했다. 30대 후반의 나이에, 세계적인 명문대 박사 학위 소지자의 연봉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액수였다. 결국 그는 대학행을 접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전자 기업 연구소에 입사하는 길을 택했다. 현재 40대 중반인 B 씨는 임원으로 승진해 억대의 연봉을 챙기고 있다. B 씨는 “이래선 후학 양성 자체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응책은 인건비 절감뿐

한국의 대학이 위기에 빠졌다. 투자는커녕 운영과 생존 자체를 고민해야 할 지경이다. 문제는 돈이다. 대학은 수입의 대부분을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A대의 사례처럼 등록금을 동결하거나 인하해야 하는 게 정부(교육부)의 확고한 방침이다. 교육부의 대학 평가 항목 중 가장 중요한 지표 두 가지가 등록금 동결(인하) 여부와 교수 충원율이다. 주 수입원(등록금)이 줄어 정부 지원 없이는 생존이 힘든 대학으로선 등록금 인상 카드를 꺼내기가 언감생심이다. 평가를 잘 받아야 지원을 받고 지원을 받기 위해 수입을 낮추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등록금 인상 불가 방침이 정해진 것은 2012년 ‘반 값 등록금’이 정부 정책의 근간이 되면서부터다. 

수입이 한정된 상태에서 살아남으려면 고정비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서울 소재 D대는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교내 모든 발주 시스템을 전자 구매로 바꿨다. 100만 원이 넘는 거래는 모두 전자 구매 시스템을 통하게 돼 있다. 1000만 원 이하는 수의계약이 일반적이었던 과거는 이미 옛날 얘기다. 이 대학 기획처장은 “전자 구매를 통해 20억 원 정도의 돈을 아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스템 혁신을 통한 비용 절감만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억 원 절감으로는 생존의 갈림길에서 벗어나기가 요원하다. 결국은 ‘인건비’ 절감, 즉 인력 구조조정이 정해진 수순이다. D대는 시간강사·겸임교수의 한 해 인건비가 50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초빙·석좌교수가 20억 원, 조교도 30억 원 정도의 예산이 책정돼 있다. 정교수를 제외한 계약직 교수(조교 포함)의 인건비가 100억 원 수준인 셈이다. D대는 앞으로 강사·겸임교수의 강의를 100% 정교수 강의로 전환할 계획이다. 초빙·석좌교수와 조교 인력도 반 가까이 줄일 예정이다. 이러면 100억 원의 현재 인건비에서 76억 원 정도를 아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인건비 절감으로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다음 수순은 빤하다. 취업률 등 경쟁력에서 밀리는 학과를 중심으로 한 통폐합, 교직원 임금 삭감 등이다. D대 기획처장은 “반값 등록금은 대학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이라며 “국회의원 세비, 공무원 월급은 왜 동결하거나 깎지 않느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부실 대학 퇴출 경로 확보가 먼저

등록금 동결에 따른 재정 압박은 작은 파도에 불과하다. 생존을 위협할 더 큰 쓰나미는 따로 있다. 바로 ‘입학 정원 감축’이다.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 수는 63만 명인데, 이 중 대학에 진학한 학생은 44만 명으로 진학률은 70%다. 이에 비해 전국 대학의 입학 정원은 56만 명이다. 12만 명의 미달 사태가 난다는 결론이다. 2023년에는 그나마 고교 졸업생 수가 40만 명으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대학 진학률을 지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가정했을 때 현재 입학 정원의 절반을 채우기도 급급해진다는 계산이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대학의 정원을 2022년까지 평균 30% 감축할 계획을 세운 상태다. 특히 서울이나 수도권에 비해 경쟁력에서 밀리는 지방대학의 고사(枯死)를 막기 위해서라도 정원 감축은 피해 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작 대학의 입장은 다르다. 주 수입원인 등록금이 묶인 상태에서 규모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까지 맞게 되면 생존이 어렵다는 주장이다. 

대학의 입학 정원을 고교 졸업생 수에 맞추겠다는 정부 방침의 맹점을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대학 진학률을 감안하면 여전히 입학 정원이 대학에 들어가려는 고교 졸업생 수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과 부실 대학의 미달 사태는 여전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단순히 산술적인 정원 감축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대학마저 자칫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서울 소재 E대 관계자는 “정원 감축이 아니라 부실 대학의 퇴출 경로 확보가 더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재단 운영 자체가 어렵고 파행을 겪는 대학의 만족할만한 퇴출 경로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지방대학의 자생력을 높이는 방안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대학 관계자들은 저마다 등록금 현실화 없이는 대학 부실화를 피해 갈 수 없다는 데 입을 모았다. “등록금 인상을 얘기할 때마다 나오는 ‘대학 적립금’은 몇몇 부자 학교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말도 나왔다. 2012년 기준으로 5000억 원 이상의 이월 적립금을 보유한 대학은 이화여대(8442억 원)·연세대(6561억 원)·홍익대(6339억 원) 등이다. 이월 적립금 규모 상위 10개교 중 7개교가 서울 소재 대학이다. 


대학의 본령은 학문이다. 제대로 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을 위해선 교수진의 역량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강의의 질을 따라가기 위한 강사진 확보가 재정 한계에 부닥쳐 꺾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F대는 올해로 교수 월급이 6년째 동결됐다. 다만 올해는 수당이 조금 늘어 통상 임금으로는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기본급은 제자리걸음이다. 전공과목을 꿰찬 정교수들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지만 문제는 교양과목을 맡고 있는 비정규직 교수들이다. 이 대학만 하더라도 900명 수준의 학부·대학원 교수(병원 임상교수 제외) 중 교양 교수가 250명에 달하고 이 중 200여 명이 비정규직이다. 

조교수와 부교수, 정교수로 이어지는 이 대학의 인사 시스템상 조교수·부교수는 모두 연봉 계약직이다. 조교수는 A와 B급으로 나뉘는데, 사정이 낫다는 A급의 최고 연봉도 4200만 원이다. 웬만한 대기업의 신입 사원 수준으로, 마흔을 훌쩍 넘긴 가장에겐 생계가 빠듯할 정도다. 그나마 4000만 원대가 넘어가면 다행으로, 200만 원 수준의 월급을 받는 조교수들이 허다하다. 

재계약 안 되면 바로 실업자

대개 조교수는 2년 단위로 계약한다. F대는 조교수 B급 4년, A급 4년을 넘겨야 부교수 자격을 갖출 수 있다. 문제는 승진이 되지 않는 이상 고용 보장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은 부교수도 마찬가지다. 논문 제출 건수, 정부 등 공공 기관 프로젝트 수주 등 평가 항목에서 밀리면 역시 재계약 불가 통보가 기다리는 파리 목숨이다. 

조교수·시간강사 등 비정규 교수들의 열악한 현실과 생활고가 사회문제화하면서 나온 법안이 ‘강사법’이다. 2011년 교육부가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1주일에 9시간 이상 강의를 전담하는 강사에 한해 공개 채용, 재임용 기회, 4대 보험 보장, 전임 교수 월급의 80% 보장(정부 보조) 같은 처우 개선·강화를 보장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법안이 오히려 강사들의 목을 조르고 있다. 이제까지 평균 5시간인 강의 수업시수(授業時數)가 9시간으로 상향 조정되면서 남은 4시간 분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학들은 강사 1인당 수업시수를 늘리고 남은 수업시수만큼 기존 강사들을 해고하고 있다. 교양과목 등 교육과정 자체를 줄이고 수업시수가 많은 대형 강의는 늘리는 등 전임 교수의 강의량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현재 강사법은 비정규교수노조 등 대량 해고를 앞둔 당사자들은 물론 대학 당국도 적극적인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전체 강의의 절반을 비전임 교수가 담당한 것을 감안하면 강사 대량 해고는 대학으로서도 강의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올해부터 발효될 예정이었던 강사법은 현재 2016년 1월 시행으로 미뤄진 상태다. 

교수진의 열악한 처우는 곧 학문 연구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국내외 명문대에서 학위를 받은 인재들이 박봉에 시달리는 비정규 교수의 길을 걸을 리 만무하다. 정교수로 승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5년 정도다. 그 사이 박봉과 언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을지 모르는 고용 불안을 감내하며 학문 연구·후학 양성에 뜻을 두기란 쉽지 않다. “1997년에 외환위기가 오면서 기업들이 망해 나갔잖아요. 그때 대학은 비교적 어렵지 않게 비켜갈 수 있었어요. 요즘 대학에서 뭐라고 말하는지 아세요? 대학의 진정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가 이제야 왔다는 거예요.” 대학의 재정 위기를 토로하는 A대 기획처장의 말이다.

어느 비정규 교수의 현실

40대 후반 조교수 “연봉 2800만 원, 결혼도 포기”

A 씨를 부르는 호칭은 너 나 할 것 없이 ‘교수님’이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대학 교직원들도 그를 A 교수라고 부른다. 서울 소재 명문 사립대의 교수라는 타이틀. 부와 명예를 모두 잡고 있을 것 같지만 앞으로의 진로와 장래 문제에 시커멓게 타들어간 속은 당사자만 알 일이다. 

일단 연봉부터 보자. A 교수가 받는 월급은 한 달에 240만 원이다. 연봉으로 치면 2800만 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나마 갖가지 명목의 세금을 제하면 200만 원이 채 될까 말까다. 그의 나이는 올해 마흔여덟. 곧 쉰을 앞둔 교수님 체면에 어디 가서 연봉 이야기만 나오면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다. 

A 교수의 첫 직장은 K자동차그룹이었다. 잘나가던 직장을 한순간에 잃은 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였다. 부도가 난 회사에서 정리 해고 대상에 오른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고민하게 됐고 그 결과 택한 길이 교수직이었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였지만 서울 소재 명문 사립대에서 경영정보시스템(MIS)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현재 그가 견뎌내야 할 현실은 조교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비정규 교수다. 조교수를 거쳐 부교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비정규직인 것은 마찬가지다. 웬만한 친구들은 대학생 자녀를 둘 법한 나이지만 A 교수는 아직 결혼도 올리지 못한 상태다. 

안정적이고 확실한 직장의 꿈을 안고 시작한 학업이었지만 현실은 냉담하기만 하다. 요즘엔 아예 중국 쪽에 눈을 돌리고 있다. 연봉 수준은 매한가지지만 생활 물가가 한국보다 낮고 홍콩 같은 곳으로 진출하는 길도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다. 

“젊음을 바쳐 공부한 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강의를 맡는다고 하더라도 세후 3000만 원도 안 되는 연봉이에요. 누가 이 돈을 받으며 대학에 오려고 하겠습니까. 결혼도 포기하다시피 했지만 오히려 잘됐다 싶습니다. 딸린 식구가 있으면 중국 같은 곳은 생각도 못했을 테니까요. 특단의 조치가 없는 한 대학은 이제 희망이 없다고 봐요.”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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