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5월 21일 화요일

'생리대로 만든 드레스'가 묻는다

1957년 5월 19일, 한국에서 처음으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열렸다. 장소는 서울 시립극장.

올해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5월 19일 오후 6시 30분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그러나 올해 열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공중파 방송에서 '퇴출'되었다는 점이다. 1972년부터 2001년까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지상파 방송의 붙박이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케이블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서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공중파에서 '퇴출'된 것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힘이 커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여성계는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는 데 공중파가 나서지 말 것을 주장해왔는데, 이것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바버라 크루거의 작품 <무제(너의 몸은 전쟁터다)>,1989. 여성의 성 상품화 등의 문제를 담은 작품이다.
사진 출처: <미술로 보는 20세기>(이주헌 지음, 학고재 펴냄) ⓒ
1999년부터 여성단체는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을 개최하였다.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을 통해 여성 자신의 시각으로 본 여성의 아름다움을 말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하였다.

사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라고 하면 33-24-33이라는 수치가 떠오르게 마련인데, 이런 식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이 획일화될 수는 없다는 점에 대해서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4회째를 맞은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
지난 5월 11일 남대문 메사 팝콘 홀에서 열렸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월드컵에 즈음하여 '운동하는 여자가 아름답다'는 것을 기치로 내걸었다.
시각장애우들의 스포츠댄스와 철인3종 경기를 하는 할머니, 아마추어 복싱을 즐기는 여대생 등 다양한 이들이 이번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여성신문 5월 17일자에는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에 참가한 이들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생리대로 드레스를 만들었다는 성미광 씨의 인터뷰였다.

성미광 씨는 행사장 한가운데 여성의 자궁이 연상되는 미술 작품을 설치했다. 일견 불결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생리대로 여성이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욕망의 상징물인 드레스를 만듦으로써 여성, 몸, 아름다움, 생리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 보이고자 하였던 것이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획일화된 남성의 시각, 자본의 시각에서 바라본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대회라면 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여성 자신의 시각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은 어떤 것인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생리대로 만든 드레스를 보면서, 우리는 생리는 불결한 것이 아니고, 드레스라는 '상징물에 붙어 있는 욕망'이 추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 심각한 미학적 질문 앞에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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