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27일 금요일

한 돌 맞는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이 가야 할 길

<교수신문> 2002년 5월 28일자, 노최영숙 전 사무국장이 쓴 글, '한 돌 맞는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이 가야 할 길'이라는 칼럼을 여기에 옮겨놓는다.


한 돌 맞는 "책읽는 사회만들기 국민운동"이 가야 할 길
노최영숙 /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사무국장

작년 6월 2일 “도서관콘텐츠확충과 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운동”(이하 국민운동)이라는 긴 이름의 시민 단체가 코엑스 앞마당에서 출범식을 가진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 동안 국민운동은 과연 책 읽는 사회 만들기를 위해 무슨 활동을 했는가.

책 읽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민운동이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공공도서관 확충이었다. 건국 이래 우리 공공도서관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도저히 국민들의 독서 욕구에 부응할 수 없는 상태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국민운동은 출범 직후 제 1차 대 정부 정책제안서를 문화관광부에 전달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제안 내용을 공표했다. 그 요지는 전국 통틀어 현재 4백 30개에 불과한 공공도서관을 2012년까지 1천 개로 증설하고, 2001년도 기준 52억 원의 공공도서관 도서 콘텐츠 구입 예산을 2002년에 1천억 원으로 증액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은 돈이 없다며 고개를 흔들곤 했다. 과연 정부는 돈이 없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 국민들은 막대한 세금을 내고 있다. 정부가 그 세금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것뿐이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가치를 지닌 갯벌을 메우고 환경을 파괴하는 일에는 돈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면서 도서관 한 곳 짓고 유지하는 비용은 아까워서 벌벌 떤다. 즉, “도서관 지을 돈이 없다”는 말은 정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이야기이다.

정부에 ‘요구’한 최초의 운동

우리 국민들은 공공도서관이라는 곳에서 서비스를 받은 경험이 희박하기 때문에 그 곳에서 서비스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왔다. 아무도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데 누가 애써서 주려고 하겠는가(사실 도서관에 관한 한 요구하지 않아도 미리 제공하는 나라들이 많이 있지만). 국민운동은 국민들이 조직적으로 힘을 합해 정부에 도서관을 제공해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한 ‘최초’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우리나라 도서관 운동사에서 시민 도서관 운동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국민운동은 대 정부 정책 제안 사업과 더불어 국민 독서 캠페인을 병행했다. 그 일환으로 제작한 홍보 포스터는 뜻밖의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한 일간지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포스터’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간 후 포스터 신청 전화가 쇄도했다. 비에 촉촉히 젖은 짙은 녹색의 나무들을 배경으로 중년의 남자가 고즈넉이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이 그토록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줄이야!

‘책 읽는 사람이 아름답다’라는 포스터 카피가 불필요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모델 안성기, 사진 강운구, 디자인 정병규라는 환상적인 팀이 만들어낸 이 포스터는 무보수 참여라는 점에서 더욱 세간의 칭송을 받음) 포스터 제작 직후 국민운동은 중앙일보, KBS ‘TV, 책을 말하다’ 팀과 함께 3개월간 도서관, 독서 관련 특집 캠페인을 전개했다. 도정일 경희대 교수(영문학) 혼자서 지난 1년간 쓴 도서관, 독서 관련 원고와 방송 출연만 1백 건이 넘고, 한상완 연세대 교수(문헌정보학)는 도서관 관련 세미나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이 결과 문화관광부는 정부 수립 50년만에 처음으로 도서관 정책을 준비하고 있으며 6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매년 10억 원 정도 증액되던 공공도서관 도서 예산이 올해 50억 이상 증액된 것도 작지만 의미있는 성과라고 하겠다.

국민운동은 포스터 제작을 계기로 명칭을 ‘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운동’으로 부르기 쉽게 줄였지만, 운동의 핵심에는 여전히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 정부에 대한 정책 제안에 이어 지방자치단체에도 도서관 정책을 제안할 예정이다. 우선 서울시에 4개의 전문 도서관(인문사회과학, 과학기술산업, 예술, 어린이)으로 구성된 중앙 도서관 건립을 제안할 계획이다. 이 사업이 성공하면 차례로 시민을 위한 지역 도서관 설립을 촉구할 것이다. 또한 상계동, 사당동 등 서울시 소외 지역 대단위 아파트에 어린이 도서관을 2백개 정도 지을 예정이다. 국민운동이 안을 만들어 제공하고 공익 재단들이 참여하도록 설득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던 아이도 중학교에 진학하면 책과 담쌓게 되는 것이 우리 교육 현실이다. 우리의 중 고등학교에는 학교 도서관이 제대로 갖추어진 곳이 거의 없다. 책을 읽히지 않는 교육 풍토를 방치하는 한, 책 읽는 사회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국민운동은 학교도서관살리기 국민연대와 긴밀하게 협조하여 중 고등학교 교육과 독서 교육이 연계되는 교육 개혁을 제안할 것이다.

행복한 도서관을 꿈꾼다

지난 5월 15일, 광화문 성곡 미술관 찻집에서 성악가 조수미씨를 모델로 한 포스터 촬영이 있었다. 작년처럼 비가 약간 뿌리는 날씨였지만 촬영은 무사히 끝났다. 이처럼 각계 각층에서 여러 사람들이 기꺼이 도와주고 참여하는 한 국민운동의 미래는 밝다. 국민운동은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운동이다. 우리 국민들이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할수록 책 읽는 사회는 빨리 올 것이다.

걸어서 10분 이내 거리에 도서관이 있고, 그곳에 가면 읽고 싶은 책이 있고, 원하면 편리하게 대출 받을 수 있으며, 사서들이 친철하게 원하는 책을 찾아주고 독서 상담도 해준다. 이는 책 읽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갖추어져야 할 기본 조건이다. 이 기본 조건이 갖추어질 때까지 국민운동이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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