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문화·교육 관련 단체들, ‘KBS 어린이 독서왕’ 폐지 성명 발표
독서·문화·교육 관련 단체들이 모여 KBS의 ‘어린이 독서왕’ 프로그램을 폐지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독서·문화·교육 관련 단체들이 모인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는 2013년 4월 16일(화)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13년 9월부터 방영 예정인 ‘KBS 어린이 독서왕’의 폐지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는 성명을 통해 ‘KBS 어린이 독서왕’이 독서를 시험처럼 평가하고 독서환경을 파괴하고 독서문화를 황폐화시킬 것 즉각적인 폐지를 촉구했다.
KBS 한국방송이 주최하고 KBS한국어진흥원이 주관하는 ‘KBS 어린이 독서왕’은 초등 3~6학년생을 대상으로 책 40권을 선정하여 각 학교와 교육(지원)청 단위로 독서 능력평가시험을 보고, 선발된 학생들로 독서골든벨 대회를 열어 독서왕을 뽑는 프로그램이다.
시민연대는 ‘이 대회를 위해 학년별 20권씩 선정된 도서들이 독서지도안과 예상문제집을 부록으로 실어 재출간되고 있다’며 ‘교육청 후원을 받는 행사라 많은 학교들이 참여할 것이고 학생들은 이 대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공영방송인 KBS와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진 교육청이 나서서 독서마저 시험과 경쟁으로 몰아넣는 반교육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며 강하게 규탄했다.
시민연대는 ‘KBS 어린이 독서왕’이 내용 암기나 예상문제를 추리하는 책읽기를 강요하여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고 학교도서관을 시험 준비장으로 만들고 학교 독서교육의 방향성을 잃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출판시장을 왜곡하고 출판환경과 작가의 창작환경을 파괴할 것이며, 어린이들의 경쟁을 부추기고 독서 사교육을 확대시킬 것이라며 프로그램의 폐지를 촉구했다.
‘어린이 독서왕’ 프로그램을 주관하는 KBS한국어진흥원 박현우 원장은 기자회견 후 이뤄진 참가단체와의 면담에서 “어린이 독서왕 프로그램이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독서붐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에 공감하며, 프로그램을 지속할지 심사숙고 하겠다”고 밝혔다.
시민연대는 시·도교육청의 ‘KBS 어린이 독서왕’ 후원을 중단시키고 프로그램을 폐지할 수 있도록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이하 성명서 전문
성명서
학생들에게서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고 독서문화를 황폐하게 만드는
‘KBS 어린이 독서왕’을 폐지하라!
오늘 우리는 KBS 한국방송에서 전국 규모로 실시하려는 어린이 독서왕 대회를 막아내고자 한다. 독서를 시험처럼 평가하고, 선정 도서만 읽게 해서 어린이 독서환경을 파괴하고 독서문화를 황폐화하는 공영방송의 발상을 규탄하고 즉각적인 폐지를 촉구한다.
KBS 한국방송이 주최하고 KBS한국어진흥원이 주관하는 ‘KBS 어린이 독서왕’ 대회는 초등 3~6학년생을 대상으로 책 40권을 선정하여 각 학교와 교육(지원)청 단위로 독서 능력평가시험을 보고, 거기서 선발된 학생들로 독서골든벨 대회를 열어 독서왕을 뽑겠다는 것이다. 이 대회를 위해 학년별 20권씩 선정된 도서들이 독서지도안과 예상문제집을 부록으로 실어 재출간되고 있다. 교육청 후원을 받는 행사라 많은 학교들이 참여할 것이고 학생들은 이 대회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공영방송인 KBS와 학생들의 교육을 책임진 교육청이 나서서 독서마저 시험과 경쟁으로 몰아넣는 반교육적인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KBS한국어진흥원은 이 대회의 취지가 어린이 독서문화 활성화라고 밝히고, 교육청은 독서붐을 일으키는 행사라서 후원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어린이와 독서문화 관련 단체와 교사, 작가, 출판계, 학부모들은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KBS와 교육청이 진행하는 이 대회가 얼마나 학생들을 독서에서 멀어지게 하고, 어린이책 출판환경 및 독서문화 전반을 후퇴시키고 황폐화하는지 낱낱이 밝히고자 한다.
1. ‘KBS 어린이 독서왕’은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아 간다
독서 퀴즈대회나 골든벨 같은 정답 맞추기식 시험과 경쟁을 부추기는 이벤트로는 독서가 즐거운 것이 되기 어렵다. 책은 학생들이 각자의 취향이나 경험에 따라 즐겁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책을 읽는 것은 앎의 즐거움, 낯선 것을 만나 생각하는 즐거움을 준다. 책을 읽으면서 경험이 쌓이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감정과 상황들에 공감하거나 불편해하고 때로는 의문을 갖게 되면서 끊임없이 마음이 움직인다. 그런데 책 내용을 시험을 보고, 독서지도안과 예상문제집이 들어 있는 책을 읽게 되면 책 속의 삶과 만날 기회는 사라지고 만다. 내용 암기나 예상문제를 추리하는 책읽기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강제적 독서를 통해 아이들을 영원히 즐거운 책 읽기에서 멀어지게 한다.
2. ‘KBS 어린이 독서왕’은 학교와 도서관을 시험 준비장으로 만들어 독서교육을 왜곡한다
교육청 후원으로 진행될 'KBS 어린이 독서왕'은 학교 독서교육의 방향을 바꿔버리는 엄청난 일이다. 지난 2003년 이후 교육당국은 학교도서관 활성화 정책 이후, 학교에서는 독서 자료와 공간을 갖추어 아이들이 수많은 책을 즐겁게 만나고 다양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하지만 학생들이 학교 대표나 교육청 대표로 출전하는 대회가 열리면 학교는 그런 대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학생들은 책을 임의로 골라보는 것이 아니라 선정도서만 읽을 것이고, 시험을 위해 책을 달달 외우고 예상 문제나 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도와야 할 학교는 독서왕 시험을 준비하는 장으로 전락하고, 학교 독서교육은 길을 잃고 말 것이다.
3. ‘KBS 어린이 독서왕’은 어린이책 출판 환경을 파괴한다
독서왕 대회는 출판사의 고유 권한을 빼앗고 유통질서를 어지럽힌다. 출간 종수가 많을수록 아이들은 취향이나 욕구에 맞는 책을 만날 가능성이 커지고, 그런 책은 아이들에게 책의 즐거움을 안겨 줄 수 있다. 다양한 생각과 철학을 담은 책을 기획하는 출판사가 많아질수록 독서문화도 활성화된다. 하지만 ‘KBS 어린이 독서왕’에서 특정 책을 선정해버리면 1년 내내 그 책만 팔리고, 출판사에서는 다른 기획이나 시도를 해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이들 수만큼 다양한 책이 나와 개성에 따라 골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전국의 아이들이 똑같은 책만 본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게다가 부록으로 붙은 독서지도안과 예상문제는 책을 읽는 감상마저 획일화한다. 이것은 책이 아니다. 문제 풀이 도구일 뿐이다. 머지않아 많은 어린이책 출판사들이 문을 닫을 뿐 아니라 살아남은 출판사들도 문제풀이용 책을 내기 위해 급급할 것이다. 게다가 대회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정 도서를 일반 도매상 공급가보다 훨씬 낮게 공급함으로써 출판 유통 질서도 파괴되고 있다.
4. ‘KBS 어린이 독서왕’은 어린이책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쓰기 어렵게 한다
선정된 도서만 팔리는 환경에서는 어린이책 작가들이 창작 의욕을 갖기 어렵다. 많은 어린이책 작가들이 자기만의 관심과 간절함을 작품에 담아 어린이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건네고 싶어 할 텐데, 책을 자신의 관심대로 다양하게 골라보는 아이가 없다면 작가들이 책을 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한 작가는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독자가 저마다의 경험과 관심으로 대해줄 것을 기대할 텐데, 작품을 문제풀이 용으로만 이용하려 든다면 작가들이 작품을 펴내는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작품마다 독서지도안과 예상문제집을 덧붙이는 것은 작가의 창작을 침해하는 행위다.
5. ‘KBS 어린이 독서왕’은 경쟁을 부추기고 독서 사교육을 확대한다.
책읽기는 우정을 나누는 일이다. 혼자 읽기든 함께 읽기든 책에서 경험한 삶과 감정에 공감하고 세상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 보다 많은 사람들과 우정을 나눈다. 책읽어주기와 함께 읽기는 책 속에서만이 아니라 활동을 함께하는 사람들끼리도 공감과 우정을 북돋운다. 하지만 시험을 통한 독서 대회는 오로지 남보다 나은 성적을 위해 내용을 암기하는 식의 독서와 경쟁만 부추긴다. 그래서 학부모와 학생들은 사교육을 찾을 수밖에 없다.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왕 대회가 있는 한 독서 사교육시장은 무한히 늘어날 것이고 학생들은 시간과 마음에서 쫒기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경쟁을 부추기고 독서 사교육 시장만 배를 불리게 할 ‘KBS 어린이 독서왕’은 즉각 폐지되어야 한다.
위와 같이 'KBS 어린이 독서왕'은 학생들에게서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고, 학교와 도서관, 출판계, 어린이책 작가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독서환경을 파괴하고, 우리나라 독서문화를 황폐하게 하고, 아이들 삶까지 힘들게 한다. 이에, 공영방송 KBS와 교육청은 ‘어린이 독서왕’을 당장 폐지할 것을 촉구한다.
KBS는 당장 ‘어린이 독서왕’을 폐지하라!
각 시·도교육청은 어린이 독서왕 후원을 철회하고 대회를 막아내라!
KBS와 각 시·도교육청은 독서의 즐거움을 빼앗는 반교육적 행위를 중단하라!
KBS와 각 시·도교육청은 우리나라 독서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를 중단하라!
2013년 4월 16일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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