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일 수요일

돈 안 되는 인문학 하는 도시

<경남도민일보>의 김훤주 기자가 쓴 '돈 안 되는 인문학 하는 도시, 김해'의 시리즈가 오늘자로 모두 공개되었다.

 

2009년 8월 24일(월) <경남도민일보> 인터넷판에 게재된 "돈 안 되는 인문학 하는 도시, 김해 (상) 인문학을 하는 까닭과 현황"과 2009년 8월 31일(월)에 게재된 "돈 안 되는 인문학 하는 도시, 김해(하) 공부 주체들의 생각과 반응"을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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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공부하는 자치단체'가 있다. 우리 실정에서 뜻밖이고 또 놀라운 일이다.

결정권을 행사하는 자치단체장은 지역 주민에게 인기 있는 정책을 먼저 실행하게 마련인데, 인문학은 대학 같은 학문 공동체에서도 크게 대접을 받지 못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김해시(시장 김종간)가 2007년 10월 '책 읽는 도시'를 선포한 데 이어 2008년부터 여러 방면으로 인문학 읽기에 나섰다. 올해는 두 해째다. 인생을 살아가는 새로운 즐거움과 돈이나 물질이 아닌 다른 가치에 대한 눈뜸을 위해서다.

 

전국 자치단체마다 많은 돈을 들여 갖가지 축제는 벌이면서도 인문학은커녕 책읽기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에서 아주 색달라 보인다. 인문학 공부를 도시 차원에서 하게 된 이유와 진행 경과, 그리고 공부에 참여하는 주체들의 생각과 반응을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2008년 9월 20일 강명관 부산대 교수와 김해외고 학생들이 함께한 독서토론 장면.  
 

◇"우리는 인문학의 힘을 믿어요" = 인문학은 인간이 놓인 조건과 상태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문학 역사 철학 언어 미학 고고학 등을 뭉뚱그려 말한다.

인문학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돈이 안 된다.' 어떤 이는 '인문학도 돈 되는 학문'이라 말하지만, 이는 인문학을 천시하는 현실에 대한 '역설(逆說)' 또는 인문학이 근본 품고 있는 값어치에 대한 '역설(力說)'이기 십상이다.

대부분 인식이 이런 가운데서도 김해시는 시민사회의 요구와 희망을 바탕으로 평생학습지원과
와 도서관정책팀을 만드는 등 적극 나서 지역 대학(학자)과 기업 그리고 공공도서관을 주체로 세우면서 인문학 공부를 도시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에는 해당 공무원
의 추진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조강숙 도서관 정책팀장은 "우리는 인문학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재미로 읽는 통속 소설이나 사회과학 서적, 실용을 위한 재테크나 처세술을 다룬 책과 달리 인문학은 삶 전체를 관통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도록 한다. 그런 고민과 성찰을 거친 이와 그렇지 않은 이는, 사는 세상이 다르다."

시민사회는 물론 중요하다. 김해 인구가 늘면서 새로 들어온 사람 가운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책읽기 요구가 높아졌고 이는 공공도서관 확충으로 이어졌다. 인문학의 풀(pool)이다.

공공도서관 사서
들의 비공식 공부 모임과 학교도서관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제각각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에 대한 전수 조사를 진행하는 등 '자발적 노력'도 보태졌다.

현실적인 계기는 이렇다. "2007년 '책읽는 도시 김해'를 선포하고 나서 지난해 시장님이 '전국 독후감
대회'를 해보라고 지시했다. 그것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청소년'과 '인문학'이 중심 주제로 나왔다." "모든 시민을 주체로 삼지만 청소년에 집중하고, 모든 분야를 아우르려 하기보다는 인류의 성찰과 지혜가 담긴 인문학에 초점을 맞춰 차별화해 보자는 것이다."

◇10월 30·31일 제1회 청소년 인문학 읽기 전국 대회 = 김해시는 이런 포부로 무슨무슨 대회를 하기에 앞서 지난해 청소년에게 인문학을 하는 즐거움을 일러
주는 강좌를, 학교도서관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 주관으로 열도록 지원했다.

'1318 북클래식'이다. 7월 12일 연구공간 수유
+너머의 고미숙 대표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경원고), 부산대 강명관 교수가 9월 20일 '조선의 뒷골목 풍경'(김해외고), 영산대 배병삼 교수가 '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분성여고), 수유+너머의 고병권 교수가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가야고)를 강의했다.

학생들 반응은 이랬다. "소설책 몇 권 읽는 것보다 재미있었다." "새롭게 많이 배웠다." 여기에 청소년 인문학 공부의 여지가 있었다. "인문학에 관심 있는 아이들은 틀림없이 있는데, 이들은 학교 교육에서 사각지대에 있다. '별난 녀석'으로 '왕따'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이들에게 훌륭한 인문학자를 만나게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 읽기 전국대회를 열게 된 까닭이다. 10월 30일과 31일 김해도서관과 한옥
체험관에서 열리는 제1회 대회를 위해 전국 1639개 고교에 공문을 보냈고 32개 학교에서 참여하겠다는 답장이 왔다. 이를 위해 6월 26일에는 김해도서관에서 '교사 워크숍'을 열었다.

모두 비경쟁으로 진행되는 대회는 주제가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다. 추상적이다. 소주제(지정 도서)는 '삶과 죽음'(<나무
의 죽음>) '소유냐 존재냐'(<소유냐 존재냐>) '행복한 삶이란'(<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사랑'(<난설헌, 나는 시인이다>) 등 4개다.

 

독서감상문은 쓰지 않는다. 인터넷 '펌질'이 일반화돼 있어서 '독창성'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독서토론과 스토리 텔링, UCC(동영상)로 대회를 치른다. 아울러 지정도서 지은이 또는 옮긴이를 초청해 함께 토론하고 함께 결론을 이끌어내는 소통하는 시간을 마련한다.

경남서는 가야고 간디고 경원고 김해외고 대아고 마산여고
분성여고 장유고 진례중 졸업생 연합, 창원명지여고의 독서 동아리들이 참가한다.

◇시민·공무원·시민운동가·기업인을 위한 강좌도 = 시민을 위한 인문학 강좌는 공공도서관에서 돌아가면서 마련한다. 2008년 8월 30일~11월 8일 여덟 차례 치른 '토요 인문학 강좌'와 12월 8~19일 여섯 차례 마련된 '송년 선물
인문학 강좌'는 단발성이었다. 반면 올해 6~12월 진행되는 '시민 인문학 강좌'는 책 한 권으로 세 차례 깊이 공부하는 연속성이 특징이다.

6월과 7월 김태언 교수의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와 이영식 교수의 <이야기로 떠나는 가야 역사 기행>을 했고 9월에는 안종수 교수가 <보이는 세계는 진짜일까>를 7·14·21일 김해시청 소회의실에서 연속 강의한다. 10월 <동양
철학의 흐름>(안종수 교수), 11월 <불이사상으로 읽는 노자>(이찬훈 교수), 12월 <조선시대의 한시>(강석중 교수, 이상 인제대)도 마찬가지 진행이다.

시청 과장급 이상 간부와 시민단체 임원급
이 대상인 'CEO 독서 아카데미'도 3월부터 다달이 한 차례씩 한다. 물론 일반 공무원에게도 열려 있다. 참여하면 시간을 인정하고 인사 고과에도 반영한다. 반면 '너무 바쁜 분들이라' 꾸준히 참여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다.

돋보이는 부분은 기업인들 인문학 공부다. 김해기업연구소
(소장 원종하 인제대 교수)가 주관하고 김해시와 인제대가 거든다. 셋째 수요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하는 '김해 기업 CEO 조찬 독서포럼'. 50명이 정원이고 회비는 50만 원이다. 김해시는 강의료를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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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공부는 자기 발 밑을 살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가장 필요하고 또 쉬운 일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저마다 욕망을 좇아 고개를 높이 쳐들고 앞만 보고 살기 때문에 쉽게 하기 어려운 일이 됐다. 김해시가 지난해부터 이처럼 사람 발 밑을 밝히는 공부를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인문학 읽기에 주체로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인문학을 하는 보람과 느낌, 앞으로 어떻게 펼쳐나가 보겠다는 그림의 일단이 여기에 있다. 김해시가 주관하는 인문학 읽기는 '2009 CEO 독서 아카데미'가 있다. '2009 시민 인문학 강좌'는 인제대학교 인문학부가 맡아 한다. 김해기업연구소가 주관하는 '김해기업 CEO 독서 조찬 포럼'과, 지난해 '1318 북클래식'을 진행했던 학교도서관을 생각하는 사람들 김해 모임의 청소년 책읽기도 있다.

   
 
  지난 7월에 세 차례에 걸쳐 열린 이영식 인제대 교수의 시민 인문학 강좌 모습.  
 
'눈뜸'의 체험, 이끄는 학자도 배우는 시민도 푹 빠져드는…

◇"반응 뜨거워 나도 몰래 '오버'" = 이영식 인제대 역사고고학 교수는 '2009 시민 인문학 강좌'에서 7월 16·23·30일 세 차례 연속 강의(화정글샘도서관)를 했다. 주제는 '이야기로 떠나는 가야 역사 기행'. 이 교수가 올해 3월 펴낸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예상 밖으로 많이 오셨다. 준비한 좌석이 모자랄 정도였다. 부부가 함께 자녀와 동행한 경우도 눈에 띄었다. 듣는 태도도 아주 진지했고 아이들도 떠들지 않았다. 학교서도 강의를 열심히 하지만 인문학 강좌는 더 열심히 했다. 듣는 태도가 진지하고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하다 보니 흥분도 하고 준비한 내용보다 더 많이 얘기하게 됐다.

학교에서 '박물관대학'을 4년째 하고 있는데 거기 수강생이 여기 들으러 와서는 항의를 하더라. '여기서는 이리 열심히 하시면서 박물관대학에서는 대충 하시는 것 같다'고…….(웃음) 강의는 반응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인데, 수강하시는 분들이 자발적으로 와서 그런지 너무 관심있게 들으니까 시간도 내용도 '오버'하게 되는 것 같다. 유쾌한 경험이었다."

쉽고 편안하게 접근하는 지역 전문가의 인문학 강의

◇"생생하게 전달되는 현장감" = 김선옥씨는 자주 들르던 칠암도서관에서 리플릿을 보고 이영식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갔다. 평소 가야사를 비롯한 역사 전반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세 차례 모두 열심히 들었다.

"어렵게 생각한 가야 역사를 편하게 이해하기 쉽도록 강의를 해주셨다. 양동리 고분군 유물 발굴을 보기로 들자면, 당시 사진을 풍부하게 보여줬는데 설명과 함께 듣고보니까 현장감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최초 영남인'으로 알려진 '범방아이'(부산 범방 패총에서 발견된 4500년 전 어린이 유골)에 대한 설명도 인상깊었다. 아울러 간식을 깔끔하게 장만해 내오고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등 주최쪽이 참가자들을 배려하고 애쓰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지역 학자-자치단체-주민의 지속적 결합" = 인제대 인문학부 학부장인 이찬훈 교수는 '2009 시민 인문학 강좌' 전체를 주관하고 있다. 이 교수는 지역 대학과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의 결합을 강화하고 단발성을 뛰어넘어 지속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관심을 두고 있다.

"여태 자치단체 시민 강좌는 대체로 서울이나 부산 등지에서 유명 인사를 모셔와 한 차례 듣는 것이 전부였다. 이래서는 지역에 문화 인프라가 제대로 채워질 리가 없다고 본다. 지역 대학의 학자들이 지역 주민을 위해 적극 나서 서비스를 해야 한다. 이런 참여가 지역 학자들에게는 자극제도 되고 발전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지역사회도 좋고 학자(대학)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른바 '윈-윈'이다. 지난해 처음 주관했는데, 강좌가 좋은 반응은 얻었으나 일회성이 한계였다. 강의를 들은 분들 의견을 물어 올해는 심화된 강좌를 마련했다. 자기가 쓴 책을 갖고 세 차례 연속해서 모두 여섯 시간을 강의하는 것이다. 전해 듣기로는 아주 호응이 크다."

어린이부터 CEO까지 참가자 모두 진지하고 즐겁게

◇"2주 한 차례 학생 토론 중심으로" = 조의래 학교도서관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 김해 대표는 지난해 김해시 지원을 받아 '1318 북클래식'을 했다. 올해도 마찬가지 지원을 받아 교사와 학생들의 인문학 읽기를 하고 있다.

"올해는 토론이 중심이다. 지난해는 강의가 중심이었는데, 학생들 사이에 인문학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는 점을 감안해 작가들을 만나 흥미를 갖도록 하는 데 초점을 뒀었다. 올해는 선생님들이 먼저 읽고 토론을 한 다음 아이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좀 빡빡하다. 학교마다 2주에 한 번씩 하고 있다. 전체가 모이는 자리도 마련한다. 6월에는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를 쓴 이왕주 부산대 교수를 김해분성여고로 모셨다. 가야고 경원고 김해외고 같은 학교의 아이들도 함께하는 자리였다. 9월에는 김해외고에서 모일 예정이다. 겨울에는 전체가 모여 함께 토론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아이들은 재미있어 하고 새로운 눈뜸을 체험한다."

◇책읽는 사장이 필요하다 = 원종하 인제대 교수는 '김해기업 CEO 조찬 독서 포럼' 커리큘럼을 몸소 짰다. 독서 포럼을 진행하는 김해기업연구소를 2007년 2월 만들고 소장을 맡았다. 인제대 창업보육센터장을 하는 등 산학협력에 10년남짓 종사한 경험을 살렸다. 원 소장이 세운 서원(誓願)은 '책 읽는 사장을 만들자'이다.

"산업에 문화를 입히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교육-산업-문화에서 균형을 맞춰가야 한다고 본다. 책을 읽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반응은 아주 좋다. '한 달에 한 번씩 보약을 먹는 것 같다'고 하는 이도 있다. 8월에 임학종 국립김해박물관장을 모셨는데 김해에 살면서도 몰랐던 김해 유래와 역사 유물 등을 듣고 다들 즐거워했다. 공사 현장에서 유물이 나올 때 제대로 대처하는 방법 같은 것도 일러주니 금상첨화였다. 앞으로 강좌를 더 확대할 생각이다."

◇"인문학 읽기 지원은 자치단체 기본 의무" = 조강숙 김해시 평생학습지원과 도서관정책팀장은 인문학 읽기 실무를 떠맡고 있다. 세부 정책을 짜고 10월 30~31일 치르는 제1회 청소년 인문학 읽기 전국 대회도 준비한다.

"여태까지 책읽기는 개인 문제로 여겨져 왔는데, 과연 그것이 합당한가 문제 제기를 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주민이 의식 수준을 높이고 다양한 분야 지식을 쌓고 삶의 지혜를 찾아가는 것이 행복 추구라면, 국가나 자치단체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우고 정책을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얘기였다. 지금 김해시가 하는 인문학 읽기 등도 이런 기준에 비추면 사실 별것 아니다. 얼마 안가 전국 모든 자치단체가 기본으로 이런 사업을 하리라 본다. 그런데 CEO 독서 아카데미에 대해서는 조금 비판이 있다. 내년에는 좀더 문턱을 낮추고 폭을 넓혀서 상대적으로 인문학을 마주하기 어려운 주민들을 찾아가 보려 한다."

 

댓글 1개:

  1. trackback from: 김해 클레이아크 미술관
    김해에 있는 클레이 아크 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물론 다녀온 지는 꽤 됬지만 포스팅을 이제서야 하게되네요^^.. 이번에 작품이 바뀌면서 연락이 왔습니다. 9월 5일부터 작품이 바뀌게 된다고 한 번와서 작품을 감상하라는 문자와 전화가 친절히 왔습니다. 물론 안와도 찾아가려고 했지만 .. 친절히 전화가 와서 바로 준비를 했습니다. 저번에는 날씨가 좋아서 대중교통을 이용했지만 이번에는 진례에 가는 길에 '노무현 대통령' 비석에도 가 볼 생각으로 차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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