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5일 화요일

진해 아지매들에게 도서관이란 ‘외출의 자유’… ‘도사모’ 엄마들 125주 분투기

오늘 점심시간. 국민일보 이영미 기자가 짬을 내어 사무처를 방문해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이영미 기자는 며칠 전에 진해에 출장을 가서 '도사모' 엄마들의 분투기를 썼다.

쿠키뉴스 2011년 3월 11일자. 이영미 기자의 보도. 진해 아지매들에게 도서관이란 ‘외출의 자유’… ‘도사모’ 엄마들 125주 분투기



어린이 장난감도서관 5월 개관주부 배동순(48)씨가 경남 진해시청(현 창원시 진해구청) 홈페이지에 ‘어린이 전용 도서관을 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건 2008년 11월 24일이었다. 그 후 세 번의 겨울이 오가는 동안 배씨 이름의 글은 한 주에 한 건씩 70여개가 쌓였다. 64차례 시위가 열리고, 시민 7000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오는 4월 말 진해구 옛 시립중앙도서관 자리에 158평 규모의 작은 어린이장난감도서관(가칭)이 문을 연다. 진해 엄마들이 거리에 나선 지 125주 만이다.

진해의 종은 누구를 위해 울리나

진해에는 구리 2만1000㎏으로 주조한 종이 있다. 진해가 시로 승격된 지 50년 되는 해를 기념해 2005년 17억원을 들여 만든 진해시민대종이다. 이 몸값 비싼 종의 ‘거취’가 2008년 말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30년 넘어 노후한 시립중앙도서관을 이전하고 그 자리에 종을 옮겨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타종 행사에 더 많은 시민이 참가하도록 한다’는 명분이었다. 도서관이 있는 중원로터리 부근은 교통이 편하고 널찍해 진해군항제 개막식 같은 대형 행사가 자주 열린다. 종을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은 9억8000만원. 적지 않은 돈이지만 군항제를 찾는 250만 관광객을 위해 해볼 만한 투자였다. 그게 시의 셈법이었다. 부수효과도 있었다. 시장은 재야의 종을 더 폼나게 칠 수 있다.

그게 무리라면, 주차장은 어떤가. 2009년 진해 제황산공원에 건설된 관광객용 모노레일카. 250만 관광객의 10%만 이용한대도 25만 명이니 진해의 명물이 될 게 확실했다. 다만 주차공간이 아쉬웠다. 대종 이사가 여론의 반대에 부딪치자 시는 도서관 자리에 55대가 들어가는 주차장 건설 계획을 짰다.

시의 야심은 ‘관광 진해’였다. 진해 엄마들의 생각은 달랐다. 1년에 고작 2∼3일 다녀가는 관광객 250만 명과 진해에 뿌리박고 사는 주민 17만 명. 우선순위는 시민들이라고 믿었다. 지금 주민들에게 절실한 것은 도서관, 그중에서도 어린이 도서관이었다.

진해 도서관 3곳 중 가장 성공적인 석동의 ‘진해 기적의 도서관’ 이용객은 하루 400명. 240평 안팎 도서관의 연 이용객이 무려 14만 명이 넘는다. 기적이라 불릴 만한 성공이지만 수용 한계를 넘어섰다. 2008년 11월 배씨의 글은 도화선이 됐다. 며칠 만에 ‘도서관을 사랑하는 엄마들의 모임’(도사모)이 꾸려졌다. 15일 만에 진해시청에, 다시 9일 후엔 4300명 서명을 청와대 민원실에 접수했다. 13일 뒤엔 청와대 신문고를 두드렸다.

결과는 모두 거절이었다. ‘민원’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게 확인되자마자 엄마들은 거리로 나섰다. 평생 시위란 걸 해본 적 없는 이들이었다. 더구나 도사모 회원의 70∼80%는 ‘튀는’ 행동 꺼리는 군인과 군무원 아내들. 그래도 엄마들은 매주 수요일 도심에서 피케팅을 하고, 전단지를 돌리고, 서명을 받았다. 시장실에 찾아가고 국회의원도 면담했다. 2009년 1월 시의회에 몰려갔을 때 도사모 열성 회원이던 35살 동갑내기 한혜원, 성순자, 손귀녀씨 모두 7∼8개월 만삭의 몸이었다.

1년 넘게 계속된 시위에도 시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상황을 역전시킨 건 선거였다. 지난해 6·2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제일 먼저 시의원들이 태도를 바꿨다. ‘어린이 도서관 건립’을 공약으로 내건 후보들이 하나 둘 등장했다. 그제야 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지난해 4월 엄마들은 시로부터 도서관 건립 약속을 받아냈다. 1년6개월 만의 승리.

싸움은 거기서 다시 시작됐다. 이번엔 운영권이 문제였다. 도서관을 시가 직접 운영하느냐, 민간에 위탁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1년을 끈 줄다리기는 현재 진행형. 엄마들은 ‘건물 대신 문화를 심을’ 관장이 임명되길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도서관 오픈을 앞둔 요즘, 진해 엄마들은 모노레일카에 관해 자신들이 옳았다는 걸 확인했다. 공사비만 36억원을 들인 모노레일카는 2009년에는 이용객 6만7000명으로 4200만원 수익을 남기더니 지난해에는 2300만원 적자를 기록했다. 건설비 회수는 꿈도 못 꿀 상황이다.

어린이 도서관, 외출의 자유

17억원 들인 종을 3년 만에 또 10억원 들여 옮기겠다고 하면 세금 내는 시민들이 화내는 건 당연하다. 36억원 들이고 간신히 수지를 맞추는 모노레일카. 그 이용객을 위해 대형 주차장을 만들겠다고 해도 화가 날 만하다. 하지만 그게 어린이 도서관을 지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건 아니다. 노인시설도, 장애인 복지시설도, 공원도 아닌 꼭 어린이 도서관이어야 하는 이유. 진해 엄마들이 “어린이 도서관 하나만 지어 달라”고 거리에서 눈비 맞아가며 외친 이유. 그들이 그렇게 절박했던 이유. 그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배동순씨는 사회가 아기엄마들을 격리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왜 어린이 도서관에 목을 매느냐. 엄마와 아기들, 갈 데가 없습니다. 영화관 안 됩니다. 음악회, 아이 데려가면 큰일 나죠. 미술관도 아이들 싫어해요. 식당도, 심지어 공공도서관도 마찬가지예요.”

도사모 회원으로 시위 현장을 쫓아다닌 주홍진(41)씨. 그녀는 미술관에 갔던 경험을 말했다. “애가 두세 살 때인가. 미술관에서 뛰니까 안내인이 막 소리를 지르시더군요. 평일 낮이었고 관람객은 한 명도 없었어요. 이해야 되죠. 못 뛰게 하는 것도 맞고. 하지만 사회가 기다릴 필요도 있다고 믿어요. 그 아이가 예의바른 사회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지켜보고 도와주는 거죠. 시끄러우니까 애 데리고 집에만 있어, 우리 사회는 엄마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거예요. 아이는 낳으라고 하면서.”

3살, 6살 두 아이 엄마인 손귀녀씨도 비슷한 얘기였다. “공공도서관은 책이 아무리 좋아도 서너 살 애들 데리고는 불편해서 갈 수가 없어요. (애가) 조금만 돌아다녀도 사서들이 너무, 진짜 너무 싫어해요. 환영받지 못하는 곳은 아이들이 더 민감하게 알아요. 그런 공간에서는 아이들이 편안하게 책 읽고 놀 수 없어요. 도대체 엄마들은 애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그렇다고 애들이 맘대로 떠들고 뛰어다니게 해야 한다고? 예의와 공공질서를 강조하는 이들은 이 대목에서 발끈할지 모른다. 하지만 염두에 둘 일이 있다. 영유아기에는 말이나 훈육으로 통제할 수 없는 어떤 불가항력의 시기가 존재한다. 이 무렵, 아이와 민폐 끼치지 않고 외출할 방법이란 없다. 세상의 시선이 싫다면 방법은 하나다. 집에 박혀 있으면 된다. 진해 엄마들이 어린이 도서관을 지어달라고 아우성친 건 ‘외출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일종의 기본권 수호 운동인 셈이다. 시끄러우면 우리만의 공간을 달라. 그런 얘기다.

경제논리를 내세우는 이들에게도 엄마들은 할 말이 확실했다. 기적의 도서관은 동네를 바꿨다. 젊은 엄마들이 모이면서 새 상권이 형성되고 마을에는 활기가 돌았다. 어린이장난감도서관에 아이가 모이면 엄마들이 모이고 돈 역시 모인다. 도서관의 경제학은 시민대종과 모노레일카의 경제학보다 훨씬 값싸고 유쾌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이고 확실하다.

그 모든 것보다 더욱 중요한 한 가지. 엄마들은 “도서관 덕에 착해졌다”고 말한다. “나는, 우리는 기적의 도서관 하나로 충분해요. 혜택 받고 행복했어요. 하지만 너무 많이 받고 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거 나 혼자 누리면 안 되잖아. 세상에, 내가 그런 착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기 엄마들도 다 비슷해요. 그게 우리가 추워도, 더워도 거리에 나간 이유였어요.”

창원=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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