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11일 일요일

왜 한국의 진보세력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격파하지 못할까요(김갑수 페이스북에서) 2019년 8월 10일

왜 한국의 진보세력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격파하지 못할까요
최근 들어 식민지 근대화론이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 요상한 역사관을 퍼뜨리고 있는 것은 박유하나 이영훈 같은 대학 지식인들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노동자연대나 사회진보연대 같은 진보연하는 세력은 이런 역사관에 뚜렷이 반대하지 않습니다.
물론 건강한 진보세력은 이에 반대하지만 그들의 반대 논리는 공허합니다. 공부에서 부족하고 논리에서 밀리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왜 이러는 것인지 찬찬히 되짚어 보겠습니다.
제국주의 침략으로 유럽이 아시아보다 우위에 서게 된 시점은 명백히 19세기 중반 아편전쟁부터입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본격적으로 제국주의 침략에 나서면서 유럽이 아시아나 이슬람보다 최소 15세기부터, 심할 경우 11세기부터 앞선 것으로 역사를 조작하기 시작합니다.
15세기 이전의 유럽은 중세 암흑시대이고 이 시대의 생산양식을 ‘feudalism’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반목과 불화의 시대’라는 뜻이었지요. 즉 영주들 간의 반목과 불화, 영주-기사-농노의 삼각적인 반목과 불화를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유럽인들은 15세기 이후의 유럽은 ‘근대 자본주의’ 시대라고 규정합니다. 그들은 아시아를 유럽보다 낮추는 작업으로 ‘아시아적 생산양식’과 ‘아시아적 전제‘라는 말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란 고대 노예제와 ‘feudalism’ 사이의 과도기적 체제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역사관을 임의로 발설한 당사자가 마르크스입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feudalism’의 시대를 거쳐야 근대 자본주의로 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이 점에 착안하여 일본의 12세기 말 ~ 1860년대 메이지유신까지의 시대를 유럽을 좇아 ‘feudalism’의 시대로 규정하면서, ‘feudalism’을 의도적으로 오역하여 아시아의 전통적 용어인 ‘봉건(封建, 땅을 나눠 주어 건국하게 함)’으로 둔갑시킵니다.
‘봉건’에는 지방 분권의 의미가 들어 있지요. 그런데 당시로서 선진적인 중앙집권 관료국가였던 조선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서는 조선을 일본보다 저발전된 나라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feudalism 시대’ 이전 ‘아시아적 생산양식’과 ‘아시아적 전제국가론’을 차용하여, “너희 조선에는 봉건제가 없었으니 근대 자본주의 국가로 갈 수가 없다. 그때까지 우리가 너희를 보호하며 발전시켜 주겠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입합니다.
당연히 반발이 있을 수밖에요.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다시 비틀려집니다. 일본 동경상대 출신으로 당시 연희전문 교수였던 좌파 경제사학자 백남운은, “아니다. 우리 조선도 봉건제였다”라고 반발합니다. 깜냥에는 봉건제가 좋은 것인 줄 알고, 아니 왕조국가 조선이 이보다 더 나쁜 줄 알고서 말입니다.
한편 1958년 북에서 근대사 저작물 <조선민족해방투쟁사>가 발간되었습니다. 이 책의 1장을 쓴 사람이 북으로 가서 초대 교육상을 맡은 백남운인데, 여기에서 백남운은 예의 조선 봉건제론을 기술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1990년대 주체사관에 의해 정식으로 폐기됩니다. 아무튼 북은 주체사관으로 유럽중심사관과 식민지 근대화론을 나름 극복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한편 식민사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은 남측에서도 진행되었습니다. 이 중 가장 위력을 발휘한 것이 연세대 교수 김용섭의 ‘내재적 요인론(자본주의 맹아론)’으로서, 조선에도 ‘근대화(자본주의)로의 자생적 추진력’이 있었다는 관점입니다. 여기에 동원된 것이 ‘실학’과 ‘조선 중후기 상업자본 축적론’이었는데, 운동권에서 이를 받아들여 금과옥조처럼 여기게 됩니다. 당시 서울대 교수 김현 ‧ 김윤식이 공저한 《한국현대문학사》에도 이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한국 운동권은 이런 논리들을 대책 없이 수용한 채 후진 학습에 적용합니다. 그러므로 ‘조선 봉건제론’은 오히려 더 강고해진 채 존속합니다. 참고로 전 통합진보당 진보정책연구원장 조영건, 민중연합당 전 대선후보 김선동, 민중연합당 대선후원회장과 정치학교장이었으며 현 민중당 중앙당 후원회장 이병창 등이 이런 사관을 보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아무튼 이런 논리는 일본에 의해 세탁된 유럽중심사관을 오히려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유럽중심사관이란 곧 일제식민사관의 원천이지요. 근대화(자본주의)를 조선(봉건제)보다 무조건 선진화된 개념으로 파악하게 되자 ‘식민지 근대화론’이 대두되었지만 이것을 격파할 효과적인 무기를 스스로 없애버린 꼴이 된 것입니다. 참고로 ‘내재적 요인론’의 거두 김용섭 교수는 박정희의 유신사관 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합니다.
1990년대 들어 북과 남에서 1년 시차를 두고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되면서 조선 역사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결과 실학이란 실체가 없는 것이고 조선 중후기 상업자본의 축적이란 것도 멀리 고구려 백제 신라, 최소한 고려시대부터 명백히 이루어진 것임이 밝혀집니다. 마찬가지로 세계역사에서도 19세기까지 아시아 경제가 유럽을 앞섰다는 사실이 학문적으로 입증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의 진보세력은 케케묵은 유럽중심사관과 조선 봉건제론을 버리지 못합니다. 이것은 서양 추종의 모양주의와 상당한 관련을 가집니다. 결과 그들은 식민지 근대화론에 맞설 만한 실력이 없게 되고, 실력이 없으니 의지도 약화된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의 사관이 없으면 우리의 ‘자주’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북의 주체사관을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주체사관도 분단사관의 일종일 따름이며 통일 후에는 새로운 사관이 다시 정립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관을 만든다면 ‘민유방본’, ‘이민위천’, ‘인내천’ 등을 기조로 하는 우리의 전통을 반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이런 국가전략을 세운 나라들로 보입니다. 제 아무리 사회주의, 아니 사회주의 할애비라도 전통에 근거 하지 않는 국가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구소련, 동유럽, 쿠바 등의 일그러진 현대사가 예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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